2016/04 34

논어[192]

사마우가 참된 인물에 대해 물은 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근심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근심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그러면 훌륭한 인물이라고 합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돌이켜 생각하되 잘못이 없으면 무엇이 근심되고 무엇이 두려울까?" 司馬牛 問君子 子曰 君子不憂不懼 曰 不憂不懼 斯謂之君子矣乎 子曰 內省不懼 夫何憂何懼 - 顔淵 4 군자(君子)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윤동주가 바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부끄럽지 않으니 사적인 근심이나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근심마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도 있을 것이다. 군자란 자신이 아닌 세상을 걱정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소인(小人)은 세상은 ..

삶의나침반 2016.04.29

열정

도전과 열정을 외치며 젊은이들을 닦달하지 마. 소수의 성공담에 열등감을 느낄 필요도 없어. 이것 아니면 못 살아, 라는 필생의 과제를 발견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그런 꿈이 있으면 좋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는 그렇지 못해. 차라리 각자의 방식대로 살도록 가만 내버려 둬. 너도 빨리 사다리를 기어오르라고 부추기지는 마. 제발. 그보다는 세상의 생태 구조를 가르쳐 줘. 약육강식의 먹이 피라미드를 보여 줘. 이 세상이 아름답고 살 만하다고 헛소릴랑은 하지 마. 무슨 시스템이든지 추종자가 없으면 작동되지 않아. 저들은 그게 두려운 거지. 그러니 욕망의 만족을 미끼로 네 넋을 빼앗아 가는 거야. 열정을 가지라고 외치는 거야. 현명한 사람이라면 무엇을 위한 열정인지 고뇌해야 해. 젊음의 패기란 그런 것이지. 덩달아 ..

참살이의꿈 2016.04.29

토성 느티나무(2)

집 부근에 두고도 이제야 알아보다니, 등잔 밑이 어두운 게 맞다. 성년기에 접어든 듯한 이 느티나무는 부챗살처럼 펼쳐진 균형 잡힌 외형이 아름답다.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아도 단아한 모양새다. 이것이 곱게 자란 느티나무의 전형적인 외모일 것이다. 지나는 사람마다 "참 곱다!" 하고 감탄한다. 겨울에 볼 때보다 신록의 잎으로 단장한 모습이 더 예쁘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천년의나무 2016.04.27

소금

박범신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적인 구조를 드러내 보이겠다고 했지만, 이야기 전개가 부자연스러워 효과가 반감된다. 너무 작위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래도 이 소설 은 우리 시대와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자본주의는 빨대와 깔대기의 거대한 네트워크란 작가의 말에 동의하지만 아버지만 희생자라고 할 수도 없다. 피해자는 아버지를 포함한 체제 속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소설은 아버지를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선명우는 열심히 일해서 회사의 상무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가정에서 그의 자리는 없다. 아내와 세 딸의 화려한 소비를 뒷받침해주기 위한 돈 버는 로봇일 뿐이다. 별나긴 하지만 우리 시대 아버지의 표상으로 봐도 무난하다. 어느 날 선명우는 홀연히 사라진다. 그리..

읽고본느낌 2016.04.27

고향집 황매화

고향집 뒤란에는 황매화가 자란다. 봄이 되면 노란 꽃이 집의 배경이 되어 예쁘다. 30년도 더 전에 선친께서 심으신 것이다. 사랑마루에 앉아 감상하시겠다고 몇 포기를 가져와 심으셨다는 걸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그러나 선친은 몇 해 지나지 않아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제대로 꽃을 보시지도 못하고 이승을 뜨셨다. 지금은 집에 아버지의 흔적은 거의 없다. 봄마다 이어서 피는 이 황매화가 유일하다. 고향집에 들리면 아버지 대신 황매화가 반갑게 맞아준다. 아마 꽃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더 애틋할 것이다. 자식에게는 드러내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다는 걸 어머니의 눈빛에서 읽는다. 나는 잠시 외면할 수밖에 없다.

꽃들의향기 2016.04.26

봄 펜팔 / 반칠환

올해도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쓰기교본'을 베낀 듯 작년과 똑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첫 줄엔 아지랑이 모락모락 안부를 묻고, 두 번째 줄엔 호랑나비 흰나비로 올해의 운세 물으셨죠. 그래도 눅눅한 겨울 다음엔 그만 한 위안도 없었습니다. 짐짓 눈 속 매화 한 점의 간결체로 시작된 당신의 문장은 점차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개나리의 만연체, 진달래의 우유체, 벚꽃의 화려체 따라 읽노라면 뭇벌과 새들 소리 시끄러워 눈 감고 귀 막기도 했지요. 젊은 날엔 왜 그리 문장의 배후만 헤아렸는지요. 흰꽃 속의 검은 빛, 꽃잎 속의 붉은 피, 순결 속의 타락, 환희 속의 비명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올해도 당신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아보았습니다. '편지쓰기교본'을 그대로 베낀 듯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었..

시읽는기쁨 2016.04.24

남산 튤립

봄 남산에 가니 길과 성벽을 따라 튤립을 많이 심어 놓았다. 꽃 구경에 정상 오르는 막바지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꽃을 보면 누구나 얼굴이 환해진다. 작은 짜증은 쉽게 풀어진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관광지에서 꽃이 주는 효과다. 우리 땅에 우리 꽃은 어떨까, 생각해 보지만 튤립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꽃은 찾아보기 어렵다. 은은한 아름다움에는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꽃들의향기 2016.04.23

삼삼회에서 남산 걷다

삼삼회에서 신록의 남산길을 걷다. 회장이 바뀐 뒤 모임 스타일이 달라졌다. 저녁에 만나 식사하는 대신, 오전에 만나 가벼운 걷기를 하고 점심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변했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지난 모임에서는 인왕산에 올랐고, 이번에는 남산길을 걸었다. 여섯 명이 모였다. 새로 나온 한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51년 만에 만났다. 시골 초등학교라 남학생 반은 하나밖에 없어 6년을 같이 보냈는데도 얼굴이나 이름이 낯설었다. 그래도 공통의 추억에 웃다 보니 금방 가까워졌다. 길 주변에는 꽃이 많아 이리저리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일행에 자꾸 뒤처져도 좋았다. 성곽길을 따라 팔각정에 올랐다. 팔각정에서 남산공원으로 내려가는 길. 전망대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중심부. 하필 올들어 제일 심한 황사가 찾아..

사진속일상 2016.04.23

자주알록제비꽃

제비꽃을 종류별로 구분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꽃보다는 잎에 유의해야 한다. 도감을 들여다보고 이것이다, 싶어도 다시 확인해 보면 자신이 없다. 얘를 자주알록제비꽃이라 동정했지만 백 프로 옳다고는 못하겠다. 알록제비꽃과는 잎의 무늬에서 차이가 난다. 자주알록제비꽃이 맞다면 나의 열네 번째 제비꽃이 된다. 에 나오는 53종 중에서 사분의 일 정도만 직접 본 셈이다. 어쨌든 올봄에 만난 반가운 녀석이다.

꽃들의향기 2016.04.22

매화말발도리

산에서 드물게 매화말발도리를 만나면 반갑다. 매화말발도리에서는 야생의 매화 느낌이 난다. 말발도리 종류 중에서 꽃이 매화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다. 말발도리는 산 속 바위 틈이나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관목이다. 꽃이나 나무에서 어려운 환경을 마다하지 않는 강인함이 보인다. 인간의 보호를 받고 자라는 뜰의 매화와는 다르다. 원시의 생명력이 느껴지는 그런 나무다.

꽃들의향기 2016.04.22

한 장의 사진(22)

초등학교 6학년 때 영월로 수학여행을 갔다. 1964년도였다. 기차를 타고 제천까지 가서 다른 열차로 바꿔타고는 영월에서 내렸다. 산골 촌놈들이라 기차를 처음 타 보는 아이들도 많았다. 기차 안에서는 의자 쿠션이 신기해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좋아라 했다. 첫날은 화력발전소를 견학하고 허름한 여관에 묵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여인숙 수준도 안 되는 집이었다. 저녁을 먹고는 오락 시간에 단체 춤판이 벌어졌다. 방 안에서 얼마나 뛰었는지 천정에서 떨어진 흙이 눈에 들어가 빼내느라 고생했다. 몇 명이 따라 나와서 도와주었다. 안에서는 유행가가 이어지는데 뒤뜰에서 쳐다본 밤하늘의 별들이 무척 아름다워 눈 아픈 핑계 대며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둘째 날에는 장릉과 단종 유적지를 돌아다녔던 것 같다. 이 사진은 ..

길위의단상 2016.04.22

튤립

태안 튤립 축제장에서 튤립 향기에 흠뻑 취하다. 튤립은 단아한 모양과 함께 색깔이 곱고 다양하다. 품종만 100종이 넘는다고 한다. 튤립 하면 네덜란드를 떠올리는데 원산지는 터키다. 1500년대에 네덜란드로 건너가서 사랑을 받으며 세계적인 재배 국가가 되었다. 한 해에 네덜란드에서 기르는 튤립만 90억 송이가 넘는다니 전 세계 사람이 한 송이씩 가지고도 남는다. 이곳은 세계 5대 튤립 축제라는데 정말 규모가 대단하다. 150만 송이를 이식해 놓았다. 구경해 볼 만한 화려한 꽃 잔치다.

꽃들의향기 2016.04.21

논어[191]

사마우가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다운 이는 말을 더듬거린다." "말만 더듬거리면 사람답다고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실행이란 힘든 것인데 말을 안 더듬거릴 수 있겠느냐?" 司馬牛 問仁 子曰 仁者其言也인 曰 其言也인 斯謂之仁矣乎 子曰 爲之難 言之得無인乎 - 顔淵 3 안회, 중궁, 사마우가 각각 '사람 구실[仁]'을 물을 때 공자의 대답은 다 다르다. 아마 각자의 성정에 맞게 응답해 주었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사마우는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인자(仁者)는 어눌하다"는 공자의 말에 바로 "어눌하면 인자가 됩니까?" 라고 묻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공자가 강조하는 것은 말보다 실천이다. 실천이 어렵다는 것을 안다면 함부로 입을 나불거릴 수는 없..

삶의나침반 2016.04.21

간월암 사철나무

간월암(看月庵)은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떠오르는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이름 지어졌다. 그전에는 피안도(彼岸島) 또는 연화대(蓮花臺)로 불렸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된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해서 오늘에 이른다. 간월암 경내에 250년 된 사철나무가 있다. 높이는 3.5m인데 더는 위로 자라지 못한다. 줄기 가운데 부분은 상해서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줄기에서는 연륜이 느껴지지만 잎은 여전히 싱싱하다. 2백 년이 넘은 사철나무는 처음 본다. 간월암에는 사철나무 외에 150년 된 팽나무도 있다. 간월암을 멀리서 보면 여러 그루의 팽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듯 하다. 간월암 풍경을 살려주는 데 나무가 큰 몫을 하는 건 물론이다.

천년의나무 2016.04.20

태안 나들이

꽃향기를 맡고 싶어 아내와 태안으로 하루 나들이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천리포수목원과 태안 튤립 축제장이었다. 천리포수목원에서는 4월 한 달동안 목련 축제가 열리고 있다. 수목원 안에는 600여 종의 목련이 있다고 한다. 3월부터 종에 따라 피고 지기를 계속하고 있다. 목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없을 것 같다. 목련이 아니어도 천리포수목원은 봄의 향기로 가득하다. 정성들여 가꾼 풀꽃들이 많다. 느리고 행복하게 꽃길을 걸었다. 이름표에 큰별목련이라고 적혀 있다. 별목련은 이보다 꽃이 더 작다. 목련 종류가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여러 종류의 수선화도 볼 수 있다. 한두 시간 훌쩍 보고 가기에는 아쉬운 곳이다. 흰색과 붉은색 꽃이 동시에 피는 명자나무도 흥미로웠다. 화분 사람. 수..

사진속일상 2016.04.20

우리 동네 흰제비꽃

우리 동네에는 유달리 흰제비꽃이 많다. 빈터 군데군데 흰제비꽃만 자라는 마을이 있다. 그리고 해마다 마을 규모는 확장되어 간다. 여기서 보라색 제비꽃은 손님 취급을 받을 뿐이다. 어느 꽃이나 그렇겠지만 흰색은 순수하고 정결한 느낌을 준다. 바람에 꽃잎이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면 마음도 따라 맑아진다. 봄이면 흰제비꽃과 재회하는 기쁨이 크다.

꽃들의향기 2016.04.18

지금 여기, 산티아고

후배가 지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 지난달 하순에 출국했으니 20일 넘게 걷고 있는 중이다. 카톡으로 보내오는 사연을 보면 하루에 40km 넘게 걷는 날도 있다니 굉장히 강행군을 하는 모양이다. 체력이 좋으니 다른 사람보다 일주일 정도는 빨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산티아고를 안 건 10년 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였다. 아마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 때문에 걷기 열풍이 해외로 확장되었을 것이다. 산티아고는 단순한 걷기가 아니라 영적인 순례 여정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다. 지금도 찾는 사람이 이어지고 있다. 퇴직하면 나도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직장을 떠난 지도 어느덧 5년 차가 되었..

읽고본느낌 2016.04.18

호암미술관의 봄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 벚꽃은 주변보다 일주일은 늦게 핀다. 수도권에서는 거의 마지막에 볼 수 있는 벚꽃이다. 서울 벚꽃이 다 진 다음에 여기서는 벚꽃 축제가 시작된다. 호암미술관의 봄은 산, 호수, 길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3년 전과 달리 올해는 호수의 물이 말라 정취가 덜 한 게 아쉬웠다. 긴 몸살에서 회복된 아내와 함께 나들이했다.

꽃들의향기 2016.04.17

다 공부지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지방을 쓸 때 '학생(學生)'이라는 글자에서는 늘 가슴이 뭉클해진다. 학사금이 없어 소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아버지의 한이 생각나서다. 돌아가셔서야 '학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학생'이 벼슬을 하지 못한 망인에게 붙인다지만 의미로 보면 매우 아름다운 이름이다. 꼭 학교에서 배우는 게 공부가 아니다. 삶이 곧 공부인 것이다. '학생'이라는 말에는 인생을 배우는 과정으로 보는 유교의 관점이 들어 있다. 학(學)은 도(道)나 각(覺)보다 훨씬 친근하고 가깝다. 도나 각은 아무나 다다를 수 없다. 그러나 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삶을 통해서 더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는 노력이 학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살아서도 학생이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학교의 학생인 것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

참살이의꿈 2016.04.17

화인 / 도종환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 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

시읽는기쁨 2016.04.16

개나리

가장 한국적인 봄꽃이라면 개나리와 진달래가 아닐까 싶다. 봄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은 노란 개나리 색깔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피어나 산하를 물들이는 개나리는 우리 봄의 상징이다. 더구나 개나리 학명은 'Forsythia koreana Nakai'로 한국이 원산지임을 확인해 준다. 우리 꽃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가지를 꺾어서 아무 데나 꽂아도 잘 자라는 개나리는 민중의 삶을 닮았다. 이름에 '개' 자가 붙어 오히려 더 친근하다. 그러나 너무 잘 자라니 괄시당하기도 한다. 귀하게 여기지를 않는 것이다. 여러 송이가 한꺼번에 달려 꽃다발을 이루는데 한 송이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무척 곱고 앙증맞다. 그런데 책을 보다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다는 걸..

꽃들의향기 2016.04.13

논어[190]

중궁이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밖에서는 큰손님을 보듯하고, 백성을 부리되 큰제사를 받들 듯하며,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그러면 나라에서도 원망을 안 듣고 집안에서도 원망을 안 듣게 될 것이다." "제가 비록 불민하지만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仲弓 問仁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無怨 在家無怨 仲弓曰 雍雖不敏 請事斯語矣 - 顔淵 2 인(仁)의 실천 강령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말씀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는 황금률도 포함되어 있다. 성경에는 '내가 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행하여라'라고 약간 다른 표현으로 나온다. 공자 쪽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더 짙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밖에..

삶의나침반 2016.04.13

칠사산 걷기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산이 넷 있는데, 그중에서 칠사산(七士山)은 다양한 풍경을 접할 수 있어 좋다. 산 아래 경안천을 따라 난 길은 강과 산을 같이 즐길 수 있다. 전에 비해 길이 넓어지고 시멘트로 포장된 게 아쉽지만, 그런대로 고즈넉한 시골 맛이 난다. 칠사산 걷기는 1시간 가량 경안천을 따라 걸은 뒤 산으로 들어 능선을 따라 정상을 경유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강변을 따라 걸을 때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엔돌핀이 팡팡 솟아오른다. 봄 햇살이 몸을 뚫고 들어와 세포를 춤추게 한다.세상의 부귀영화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자연 속 걸음에는 마약 효과가 있다. 모든 것 잊고 걷는 지금이 최고다. 내일이 총선일이라 도로를 지나는 유세 차량의 목소리 톤도 더 높아졌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는..

사진속일상 2016.04.12

마지막 3분

스티븐 와인버그가 쓴 은 빅뱅 이후 3분 동안에 우주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준 책이다. 그 시기에 우주를 구성하는 수소와 헬륨 핵이 만들어졌으므로 우주의 기본 틀은 이때 완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 우주의 시작에 관한 책이라면, 폴 데이비스가 쓴 은 우주의 마지막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은 우주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의문과 연관되어 있다. 놀랍게도 양자론과 상대성이론에 바탕을 둔 현대 과학은 이런 호기심에 일정 부분 대답을 해 주고 있다. 물론 변수가 많아 불확실하지만 여러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우주가 점점 가속 팽창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우주의 '열 죽음'이라는 암울한 종말로 귀결된다. 모든 별의 불은 꺼지고 우주의 온도는 절..

읽고본느낌 2016.04.11

좌탈 / 김사인

때가 되자 그는 가만히 곡기를 끊었다. 물만 조금씩 마시며 속을 비웠다. 깊은 묵상에 들었다. 불필요한 살들이 내리자 눈빛과 피부가 투명해졌다. 하루 한 번 인적 드문 시간을 골라 천천히 집 주변을 걸었다. 가끔 한 자리에 오래 서 있기도 했다. 먼 데를 보는 듯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을 향해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저녁별 기우는 초저녁 날을 골라 고요히 몸을 벗었다 신음 한 번 없이 갔다. 벗어둔 몸이 이미 정갈했으므로 아무것도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개의 몸으로 그는 세상을 다녀갔다. - 좌탈(坐脫) / 김사인 이렇게 저세상으로 갈 수는 없을까? 동물의 죽음에서 성자의 모습을 본다. 인간계에서는 생사를 깨친 선승만이 좌탈입망(坐脫立亡) 할 수 있다고 한다. 요사이는 웰빙보다 웰다잉(well-d..

시읽는기쁨 2016.04.10

통영

꽃이 피면 지는 게 자연의 원리지만, 다음 해에는 다시 화사한 모습으로 찾아올지 알지만, 오늘의 낙화는 언제나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 역시 한 송이 꽃,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갈 날을 맞아야 할 것이다. 누가 먼저인지 모르기에 천 년을 살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통영에서 1박을 한 아침, 숙소 화단에 떨어진 동백이 붉었다. 벚꽃이 거리와 산하를 환하게 덮은, 그렇지만 꽃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은 봄날이었다.

사진속일상 2016.04.07

논어[189]

안연이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욕을 억누르고 예법대로 실천하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으니, 하루만 사욕을 억누르고 예법을 실천하더라도 천하 사람들이 모두 사람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사람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은 내게서 되는 것이지 남에게서 될 법이나 할 일이냐!" 안연이 말했다. "자세한 것을 일러 주십시오." 선생님 말씀하시다. "예법대로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법대로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마라." 안연이 말했다. "제가 비록 불민하지만 말씀대로 해보겠습니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 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仁乎哉 顔淵曰 敢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

삶의나침반 2016.04.04

남 일 아니야

작년부터 병원 출입이 잦다. 올해는 방문 목록에 신경과가 추가되었다. 병원에 가 보면 아픈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하나같이 남의 일로 보이지 않는다. 건강할 때는 나와는 관계없는 일로 여겼다. 늙고 병든다는 건 먼 얘기였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달라지고 있다. 어린아이를 보면 손주 같고, 노인을 보면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휠체어에 탄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를 환갑은 족히 지났을 아들이 밀고 간다. 어머니 건강이 여의치 못하면 나 역시 어쩔 수 없으리라. 내 모습이 투영되니 심란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내 몸뚱이 사정도 당장 내일 일을 모른다. 검사 결과에 따라 환자복을 입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사가 깃털만큼 가볍다. 그래선지 TV를 보다가도 슬..

길위의단상 201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