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 33

얀테의 법칙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나라와 선진국을 비교하는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하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양보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의 일상 생활부터 정치판까지 이기주의가 극성을 부리는 난폭한 사회라는 것이었다. 모임 중의 한 사람이 북유럽 정신의 토대가 된다는 '얀테의 법칙(The Law of Jante)'을 소개해 주었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nything special. 2. 당신이 다른 사람처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You're not to think you are as good as we are. 3.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

참살이의꿈 2016.09.30

과천시청에서 관악산에 오르다

들머리를 과천시청으로 잡은 것은 처음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은 늘 설렌다. 같은 산이라도 어디로 오르느냐에 따라 산의 느낌은 다르다. 이번에는 과천시청능선을 따라 관악산에 오른다. 능선길은 큰 오르내림 없이 꾸준히 이어진다. 전망도 좋다. 관악산은 암산이다. 곳곳에 솟은 바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걸음은 무척 느리다. 2박3일 여행 뒤 쉬어야 하지만 불가피한 산행길에 나서게 되었다. 능선 따라 연주암에 오르는 데만 2시간 30분이 걸렸다. 연주대까지 본 뒤 다른 능선을 타고 내려갈 계획이었지만 체력이 달려 연주암에서 바로 계곡길을 택한다. 과천향교로 내려가는 가장 짧은 길이다. 능선에 비해 계곡은 답답하고 계단이 너무 많다. 주로 돌을 밟아야 한다. 그래도 평일이라 산객이 드물어 ..

사진속일상 2016.09.29

화성 바둑 2박3일

바둑회원 중 J씨가 화성에 별장을 마련했다. 전원주택 단지에 있는 집으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생활하기에 적당한 집이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게 로망이지만 전에 "앗 뜨거!"한 경험이 있어서 지금은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게 첫째 이유일 것이다. 이 집에서 2박3일간 머물며 바둑을 두었다. 이틀 동안은 밖에 나가지도 않고 주구장창 바둑만 두었다.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재미있었다. 좋아하는 짓을 하면 지치지도 않는다. 개인당 열두 판씩 뒀는데 마지막 결과는 7승5패, 6승6패, 5승7패가 나왔다. 한 게임씩만 차이가 날 정도로 실력은 서로 박빙이다. 돌아오는 날 들린 화성방조제 앞 바다 풍경. 궁포항에서. 날이 흐리다는 핑계로 회 대신 바지락칼국수..

사진속일상 2016.09.28

논어[214]

선생님이 위 공자인 형을 평하여 말씀하시다. "살림을 잘 하거든! 처음 모여진즉, '이만하면 쓰겠지'하고, 좀 더 불어난즉, '이만하면 됐지' 하고, 넉넉해지즉, '이만하면 훌륭하다'라 하였다." 子謂 衛公子荊 善居室 始有曰 苟合矣 少有曰 苟完矣 富有曰 苟美矣 - 子路 7 형(荊)에게서 '이만하면'의 마음을 배운다.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는 마음이다.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불행이 닥쳐도 "이만하니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한 칭찬이다. 공자는 귀와 천, 부와 가난을 구별하지 않는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을 강조한다. 어떤 처지도 즐거이 받아들이는 자족(自足)의 정신이다.

삶의나침반 2016.09.26

올림픽공원 코스모스

올림픽공원의 코스모스 화원이 환하다. 올림픽공원 들꽃마루의 한쪽 사면에는 코스모스가, 반대쪽 사면에는 풍접초가 활짝 폈다. 이곳 코스모스는 가을에 흔히 보는 코스모스와 종류가 살짝 다르다. 노란색의 노랑코스모스(Yellow Cosmos)와 분홍색의 센세이션 코스모스(Sensation Cosmos)다. 개량 품종으로 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청초한 느낌보다는 원색의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종류다. 이곳은 도심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색다른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장소다.

꽃들의향기 2016.09.25

육탁 / 배한봉

새벽 어시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

시읽는기쁨 2016.09.25

올림픽공원 풍접초

올림픽공원에 풍접초가 활짝 폈다. 이곳은 어느새 꽃구경 명소가 되었다. 하긴 서울 도심에서 이만한 화원을 보기도 힘들다. 삼면이 나무로 둘러싸이고 한쪽 면 언덕 위에는 원두막이 있어 사진 찍기에도 좋다. 풍접초는 아메리카가 원산이지만 꽃이 화려하면서 색깔이 고와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고향집 화단에도 수 년 전부터 풍접초가 자리잡고 있어 이젠 익숙해졌다. 개화 기간이 길고 어디서나 잘 자라는 풍접초는 도시 경관용으로 잘 어울릴 듯한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6.09.24

삶은 홀수다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이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 시사성이 짙은 내용이 많다. 글마다 후기가 붙어 있는 게 특이하다. 현재 시점에서 본인의 느낌을 재정리했는데, 작가의 글에 대한 책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인간적 특징은 산문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의 일상이나 관심사, 가치관이 직설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에 대한 내적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므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문을 읽는 것이 필수다. 김별아 작가의 인간적 매력도 이 산문집을 통해 넉넉히 확인할 수 있다. 에서는 반짝이는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소설가라 어휘력이 풍부한 건 당연하겠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우리말이 문장을 더 빛나게 한다. 새로운 단어를 여럿 알게 되었다. 써..

읽고본느낌 2016.09.23

낮술에 환해지다

점심 모임에서 와인으로 반주를 했다. 기분이 들떠서 뒤에 가서는 소주도 추가했다. 햇살 속 낮술에 세상이 환해졌다. 낮술에는 금기를 깨는 짜릿함이 있다는 시인의 권주가를 따라 읊으며.... 낮술에는 밤술에 없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이라거나, 뭐 그런 것. 그 금기를 깨뜨리고 낮술 몇 잔 마시고 나면 눈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햇살이 황홀해진다.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아담과 이브의 눈이 밝아졌듯 낮술 몇 잔에 세상은 환해진다. 우리의 삶은 항상 금지선 앞에서 멈칫거리고 때로는 그 선을 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것.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 선이 오늘 나의 후회와 바꿀 만큼 그리 대단한 것이었는지. 낮술에는 바로 그 선을 넘는 짜릿함이 있어 첫잔을 입에 대는 순간 입술에서부터..

사진속일상 2016.09.23

남한산성 노랑물봉선

남한산성에는 물봉선이 많다. 이맘 때는 산길 어디서나 물봉선을 볼 수 있다. 특히 개원사 뒤 산자락에는 300평 정도 되는 물봉선 군락지가 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꽃밭이다. 물봉선은 붉은색과 노란색이 많고, 가끔 흰색도 보인다. 그중에서도 노란색 물봉선이 제일 예쁘다. 화사한 노란색 꽃 안쪽에 붉은 점이 올올이 새겨져 있는 모습은 시선을 당기는 매력이 있다. 수수한 시골 아가씨를 보는 것 같다. 사진발도 상당히 잘 받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6.09.22

다 얼맙니까?

추석 장을 보러 어머니를 모시고 시장에 갔다. 주차장을 찾느라 시장 골목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안 그래도 좁은 골목이 대목을 맞아 엄청 복잡했다. 조심해서 빠져나가는데 "저런 우째노!"라는 큰 소리가 들리고 시선이 내 차에 집중되었다. 놀라 내려가 보니 바닥에 진열된 채소 위를 차 바퀴가 지나가고 있었다. 할머니 앞에 놓인 가지와 고추가 짓뭉개졌다. "다 얼맙니까?" 그때 내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다. 미안해하는 건 오히려 할머니였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죄송함을 표시하는 게 우선일 터였다. 그런데 할머니의 안타까움이나 망가진 채소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빨리 돈으로 해결하고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내 실수로 손해를 끼쳤으니 보상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돈보다 중..

길위의단상 2016.09.21

산박하

이놈이 누굴까, 궁금해 하며 유심히 보고 있는데 지나던 사람이 말을 붙인다. 들어보니 꽃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내가 꽃을 바라보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면식이 없어도 꽃 이야기만으로 쉽게 가까워진다. 그러나 큰 카메라를 든 사람은 왠지 어렵고 경계심이 생긴다. 좋은 사진 찍으려는 욕심이 먼저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 꽃을 산박하라고 알려줬다. 친절하게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들어가 사진까지 보여주며 확인시켜 준다. 꽃은 작고 앙증맞다. 너무 작아 사진 찍기가 어려울 정도다. 가까이 다가가니 대부분이 핀트에서 빗나갔다. 그러나 작아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입술을 벌리고 활짝 웃는 모양새다. 작고 볼품없어 보여도 자세히 보면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비단 꽃..

꽃들의향기 2016.09.20

큰꿩의비름

때가 지났지만 아직 예쁜 핑크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한산성 성곽에 피어 있는 큰꿩의비름이다. 꿩의비름 꽃이 옅은 색깔인데 비해 큰꿩의비름은 선명한 붉은색이다. 한창일 때 보면 색깔이 고혹적일 정도로 곱다. 또한 수술이 꽃잎보다 길게 나오는 게 꿩의비름과 다른 특징이다. 남한산성의 성곽 돌 틈 사이에서 초가을을 장식해 주는 꽃, 큰꿩의비름이다.

꽃들의향기 2016.09.20

남한산성의 가을 하늘

태풍 말라카스(MALAKAS)가 먼 남쪽 바다를 지나면서 가을을 밀어올렸다. 비 뿌리고 바람 지나더니 파란 가을 하늘이 열렸다. 그 하늘을 맞으러 남한산성에 갔다. 청명(淸明)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성곽을 돌면서 하늘바라기를 했다.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만나는 사람들 표정도 하늘처럼 밝았다. "보세요, 하늘이 어쩜 이렇게 맑나요!" 누구나의 눈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늘 보고, 꽃 보고, 느릿느릿 산성 둘레를 반 바퀴 돌았다. 가을 햇살에 곡식 영글듯 내 마음도 설레며 익어간 하루였다.

사진속일상 2016.09.19

논어[213]

선생님 말씀하시다. "제 자신이 바르면 명령 없이도 잘 되고, 제 자신이 그르면 명령한들 복종 않는다."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 - 子路 6 세상을 바로잡는 것은 '나'에게서 출발한다. 내가 바르면 가정이 바르고, 가정이 바르면 마을이 바르고, 마을이 바르면 나라가 바르게 된다. 기본은 나다. 이것이 공자 말씀의 알짬이며, 평생을 정진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삶의나침반 2016.09.19

이 느림은 / 정현종

이 느림은, '진짜'에 이르기 어려워 그건 정말 어려워 미루고 망설이는 모습인데 앎과 느낌과 표정이 얼마나 진짜인지에 민감할수록 더더욱 느려지는 이 느낌은.... - 이 느림은 / 정현종 그러고 보니 '느림'과 '느낌'이라는 두 단어는 많이 닮아 있다. 진짜 느낌은 느리게 찾아온다는 뜻인지 모른다. 알게 될수록 주저하고 망설이게 되고, 진짜 앎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15장에 옛 성인을 묘사한 이런 말이 나온다. 古之善爲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强爲之容 豫兮 若冬涉川 猶兮 若畏四隣 儼兮 其若客..... 도를 체득한 훌륭한 옛사람은 미묘현통하여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알 수 없으니 드러난 모습으로 억지로 형용을 하자면 겨울에 강을 건너듯 머뭇거리고 사방의 이웃 대하듯 주춤거리고 손님처..

시읽는기쁨 2016.09.18

이명현의 별 헤는 밤

지은이인 이명현 선생은 전파천문학을 전공한 연세대 교수님이다. 이 책은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을 정도로 아주 쉽고 흥미롭게 우주를 소개하고 있다. 밤하늘을 사랑하는 선생의 열정이 글에 녹아 있다. 소개에 보면 선생은 어린 시절에 이미 별세계에 빠졌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외국의 천문잡지를 구독했고, 아마추어 천문가 모임의 주요 멤버였으며, 고등학교 때는 유리알을 직접 갈아 망원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도 꾸준히 썼다.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천문학도로 성장한 것이다. 선생은 칼 세이건을 존경한다는 데, 한국의 칼 세이건이 될 소질이 충분히 갖추어진 것 같다. 에 나오는 글을 봐도 그 실력이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별에 꽂혔던 내 옛날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읽고본느낌 2016.09.17

웃는 추석

오랜만에 삼 형제가 함께 모인 추석이었다. 손주 데리고 둘째도 다녀가서 시골집에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날은 벌초한 뒤 성묘하고, 같이 차례 준비를 하는 손길이 가벼웠다.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저녁을 먹고 동생네와 넷이서 두 시간 가까이 산책을 했다. 걷는 동안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를 제외하면 동생과 대면할 일이 거의 없다. 만약 어머니가 세상을 뜨시면 더욱 뜸해질지 모른다. 어디서 무엇으로 살든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하나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 작년 추석과 올해가 다르다. 그래도 이만큼 정정하신 게 자식으로서는 너무나 큰 복이다. 어머니에게 삶의 활력은 땅에서 나온다. 어머니를 지켜볼 때 늙어서도 본..

사진속일상 2016.09.16

가장 존엄한 파티

'한겨레21'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실렸다. 존엄사를 택한 한 여성의 이야기다.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화가인 베치 데이비스(41)는 3년 전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루게릭병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이 차례로 파괴되면서 근육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움직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결국은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환자의 50% 가량이 3~4년 안에 세상을 떠난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택했다. 지인들을 초대한 이별 파티를 준비한 것이다. 마침 캘리포니아 의회는 작년에 미국에서 5번째로 의료안전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삶을 끝내는 선택' 조항이다. 18세 이상의 성인으로, 치명적인 병에 걸려, 남은 삶이 6개월 미만이며, 온전..

참살이의꿈 2016.09.12

논어[212]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 시를 삼백이나 외우는데, 정치를 맡되 사리에 어둡고, 외국에 보내 보아도 제 구실을 못하면 많이 안다고 한들 무엇에 쓴담!" 子曰誦詩三百 授之以政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 - 子路 5 시를 외우는 건 당시에 공부의 중요 과목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지식 전반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아무리 아는 게 많아도 실무에 응용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고 공자는 말한다. 실용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공자 학당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장자는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無用之用]'을 강조했다. 현실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제는 가장 쓸모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두 학파의 대비되는 입장을 살펴볼 수 있다.

삶의나침반 2016.09.12

경안천을 따라 걷다

걷고 싶어서 작은 배낭을 메고 경안천으로 나갔다. 집에서부터 상류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용인과 만난다. 경안천에 만들어진 보도는 시 경계에서 끝나지만 둑길을 따라 왕산교까지는 갈 수 있다. 용인 외대 캠퍼스 입구다. 이 길은 조용해서 좋다. 길은 잘 만들어져 있는데 걷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지나간다. 걷는 동안 아무 방해를 받지 않는 길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제멋대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젊었을 때는 선악, 진위의 시비를 가리느라 헛심을 썼다. 나이가 드니 둘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진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도 이젠 큰소리치지 못하겠다. 대신 느림과 침묵이 어느샌가 자리를 차지하려 엿보고 있다. 앎의 종착지는 모름지기 무지인가 보다. 살이 쪄서 그런지 몸이 무겁다..

사진속일상 2016.09.11

별 / 류시화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 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 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 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 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 시인은 말했다. 별은 내 눈물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는 신비주의자에게 가서 물었다 신비주의자는 별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 네 안에 있는 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 그 설명들을 듣는 동안에 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었다 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 별들을 바라본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인도의 어느 노인처럼 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만으로 만족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 ..

시읽는기쁨 2016.09.11

서프러제트

100년 전 영국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인 '모드 와츠'는 남편과 함께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당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은 재론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아직 참정권도 얻지 못했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억압하는 사회였다. 모드는 우연히 거리에서 서프러제트의 시위 장면을 보고 차별적인 현실에 눈을 뜬다. 서프러제트인 동료 노동자의 권유로 집회에 참석하면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에게 딸이 있다면 그 딸은 어떤 세상을 살까요?"라고 남편에게 하는 질문에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모드는 서프러제트의 일원이 되어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폭력 시위에 나선다. 감옥에도 가고 단식투쟁도 한다. 그 결과 집에서도 쫓겨..

읽고본느낌 2016.09.10

박주가리(2)

자라는 환경이나 이름은 거칠게 보이지만 꽃은 귀티가 난다. 별 모양에 하얀 솜털이 보송보송한 모습은 무척 귀엽다. 꽃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고 지나쳤을 것이다. '박주가리'라는 이름은 가을에 달리는 열매가 박처럼 둘로 쪼개지기 때문에 붙은 것으로 보인다. 안에서 하얀 솜털 달린 씨앗이 나와서 바람에 날려가 번식한다. 늦여름에 들판 곳곳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6.09.09

은고개에서 남한산 왕복

집요함에서 산모기를 당할 생물이 있을까? 오늘 산행은 산모기와의 싸움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달라붙더니 산에 있었던 네 시간이 넘는 동안 줄기차게 달려들었다. 얼마나 지독한 놈들인지 하산한 뒤 차 안에까지 따라 들어왔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려 했는데 완전히 망쳐버렸다. 산모기가 달려들면 무시하려고 해도 안 된다. 피야 빨려줄 수 있지만 앵앵거리는 소리가 신경이 거슬려 산행 기분을 망쳐버린다. 모기 무게는 0.01g이나 될까, 덩치로 비교하면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데 두 손을 들 수밖에 없다. 동물을 만나면 집요하게 달라붙도록 설계된 그 속성이 감탄스럽기만 하다. 오늘은 한봉 가는 길이 헷갈려 몇 번 알바를 하다가 결국은 올라간 길로 되돌아왔다. 여러 차례 다닌 길을 찾지 못하다니, 이럴 때는 나이 든 것을 ..

사진속일상 2016.09.08

시간강박증

많은 사람이 날 느긋할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무척 화를 잘 내고 조급하다. 나이 들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지금도 가끔 불뚝 성질이 튀어나온다. 그중에 가장 큰 단점은 기다리질 못하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음식점엘 갔다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고 악을 썼더니 홀 안의 손님이 다 쳐다봤다. 그러고 나서는 금방 후회한다. 아내는 부끄럽다고 질색이다. 조금만 더 참을 걸,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 약속을 안 지키는 이다. 느긋이 기다려주지를 못하니 그런 사람과는 꼭 마찰이 생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잃었다. 아마 상대편에서는 뭐 저런 소갈머리가 있나, 하고 욕을 했을 것이다. 남에게 시간 지키기를 요구하..

길위의단상 2016.09.07

논어[211]

번지가 농사짓는 법을 배우려고 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채소 가꾸는 법을 배우려고 한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늙은 밭갈이꾼만 못하다." 번지가 나간 후에 선생님 말씀하시다. "하찮은 애야. 번지는! 윗사람이 예의를 좋아하면 백성들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리에 살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믿음직하면 백성들이 진정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사방 백성들이 아기를 업고서도 모여 올 것인데, 농사짓는 법은 어디다 쓰려는지!" 樊遲 請學稼 子曰 吾不如老農 請學爲圃 曰 吾不如老圃 樊遲出 子曰 小人哉 樊須也 上好禮 則民莫敢不敬 上好義 則民莫敢不服 上好信 則民莫敢不用精 夫如是 則四方之民 襁負其子而至矣 焉用稼 - 子路 4 선비 대접을..

삶의나침반 2016.09.06

방학동 은행나무(2)

이 은행나무를 첫 대면했던 때는 꼭 10년 전이었다. 전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찾아갔었다. 이번에는 서울둘레길을 걷다가 자연스레 지나치게 되었다. 10년만의 만남이 반가웠다. 안내문에 보니 2013년에 방학동 은행나무는 보호수에서 서울시 기념물로 상향 조정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그리고 정밀 조사를 했더니 이 나무의 수령이 550살로 추정된다고 한다. 전에는 800살로 예상했었다. 바로 옆에 연산군 묘가 있는데 550년 전이면 묘를 조성했던 시기와 대략 비슷하다. 경복궁 증축 당시 이 나무도 징목 대상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제외되었다는 일화도 새로 적혀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대감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무 높이는 25m, 줄기 둘레는 10.7m인 거목이다. 서울시 기념물 제..

천년의나무 2016.09.05

하늘길 / 함민복

비행기를 타고 날며 마음이 착해지는 것이었다 저 아랜 구름도 멈춰 얌전 손을 쓰윽 새 가슴에 들이밀며 이렇게 말해보고 싶었다 놀랄 것 없어 늘 하늘 날아 순할 너의 마음 한번 만져보고 싶어 새들도 먹이를 먹지 않는 하늘길에서 음식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운 나라 가는 길이라 차마, 하늘에서, 불경스러워, 소변이나 참아보았다 - 하늘길 / 함민복 지지난달에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였다. 캔맥주를 부탁했다가 다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승무원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었다. 맥주도 안 주는 이따위 비행기가 어디 있냐고, 했을 것이다. 이 시를 접하니 그때 일이 더 뜨끔해진다. 시인은 하늘길에서 음식 먹는 것도 미안하고, 불경스러워 소변도 참았다는데 내 꼬락서니는 뭐였단 말인가. 아, 똑같은 길을 가도 사..

시읽는기쁨 2016.09.05

춘추전국 이야기

공자(BC 551~479)는 춘추시대 후기에 살았다. 시대 구분을 보면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수도를 낙읍으로 옮긴 BC 770년에서 BC 403년까지, 전국시대는 BC 403년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다.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배경을 알아야겠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는 공원국 선생이 쓰고 있는데 전체 12권으로 계획되고 있다. 현재 9권까지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번에 3권까지 읽었다. 춘추오패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1권이 제(齊) 환공, 2권이 진(晉) 문공, 3권이 초(楚) 장왕을 다루고 있다. 춘추시대 중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나라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제후국이라는 명분이 유지되고 있던 때가 춘추시대였다. 형식적이었다해도 주로부터 권위..

읽고본느낌 201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