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 17

논어[221]

섭공이 선생님더러 말하기를 "우리 고장에는 고지식하게 곧은 사람이 있는데 제 아비가 염소를 도둑질하자 아들이 증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고장에 있는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비는 아들을 위하여 숨기고, 아들은 아비를 위하여 숨기나, 곧은 것은 그 안에 있습니다." 葉公語公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壤羊 而子證之 公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 子路 14 무엇이 '정직'[直]인지는 공자와 다른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우리집 경우로 대치해 보자. 아버지가 남의 물건을 훔쳐왔을 때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아버지를 설득해 돌려주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만약 아버지가 거부한다면 먼저 고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

삶의나침반 2016.11.30

소백산 1박 산행

밀포드 트레킹 연습 산행을 팀원 7명과 했다. 대피소에서 일박하며 밀포드의 헛(Hut)과 비슷한 체험을 했고, 배낭 무게도 10kg 이상으로 맞추어 걸었다. 이번 산행을 위해 침낭도 새로 장만했다. 마침 소백산에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우리도 올해의 첫눈을 소백산에서 맞았다. 눈은 26일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에 소백산은 백설의 세상이 되어 있었다. 의외의 선물이었다. 소백산 제2연화봉에 있는 대피소는 작년에 문을 열었다. 그래선지 대피소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시설이 좋다.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서로 칸막이가 되어 있고, 온풍기가 가동되어 겨울 날씨지만 침낭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물도 아주 잘 나오고 수세식 화장실도 깨끗하다. 반면에 일부 단체 산객의 무분별한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

사진속일상 2016.11.30

죽어가는 자의 고독

죽음을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건 병과 고통이다. 죽음 자체는 위협적이지 않다. 생명은 반드시 소멸한다. 누구도 예외가 없으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죽음 전에 찾아오는 고통과 상실감이 죽음을 두렵게 한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깨끗하고 품위 있게 가고 싶다. 은 고통보다는 고독의 측면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사실 고독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죽어가는 자에게는 육체의 고통과 함께 정신적 고독도 상당히 심각하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죽어가는 사람이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하고 부담만 주고 있다고 느낀다면 참으로 외로울 것이다. 현대에 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수명의 증가, 격리 시설, 개인주의 등이 전 시대와 달리 고..

읽고본느낌 2016.11.23

내가 만약 / 디킨슨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고 괴로움 달래줄 수 있다면 기진맥진 지친 울새 한 마리 둥지에 다시 넣어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 내가 만약 / 디킨슨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 If I can ease one life the aching, or cool onr pain, or help one fainting robin onto his nest, I shall not live in vain. - If I can / Emilly Dickinson 은둔과 고독의 삶을 택한 에밀리 디킨슨을 생각한다. 까마귀 떼를 떠나 백로 한 ..

시읽는기쁨 2016.11.21

차창 밖 풍경

나는 차창을 스쳐가는 풍경이 좋다. 서울을 오갈 때 버스를 이용하는데 늘 창가에 앉아 바깥 경치에 넋을 놓는다. 항상 보는 것이지만 다닐 때마다 새롭다. 그러나 사람들은 밖에 별 관심이 없다. 자리에 앉으면 아예 커튼을 닫아 버리기도 한다. 젊은이는 스마트폰에 빠져든다. 패키지여행을 가면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다. 차 안에서는 대개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잔다. 그런데 나는 바깥 경치에 탐닉한다. 버스에 타면 눈이 더 말똥말똥해진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참 특별하구나, 생각한다. 캄캄한 밤에도 마찬가지다. 드문드문 있는 불빛만이라도 괜찮다. 풍경이 단순해지면 이런저런 상념에 더 잘 빠진다. 스쳐지나가는 풍경에는 뭔가 신비한 요소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시간의 흐름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정지한 장..

길위의단상 2016.11.20

논어[220]

자하가 거보 지방 원이 되어 정치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성공을 서둘지 말고, 잔 잇속에 팔리지 마라. 서두르면 사리가 툭 트이지 않고, 잔 속수에 팔리면 큰 일이 되지 않거든." 子夏 爲거父宰 問政 子曰 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子路 13 지금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작은 이익[小利]'에 급급하면 큰 일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때일수록 욕심을 버리고 정도(正道)를 걸어가길 충고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하는 문구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한다. 안연편에 나온다. 자공이 정치에 대하여 선생님께 물으니, 국방, 민생, 신뢰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그중에서도 제일 귀한 것이 신뢰이고, "백성들은 믿음 없이는 지탱 못한다[民無信不立]"라고 ..

삶의나침반 2016.11.19

모르고 지낼 권리

주민끼리 인사를 금지하는 규칙을 정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며칠 전에 있었다. 그것도 일본의 아파트 단지에서다. 처음에는 잘못 본 게 아닌가, 내 눈을 의심했다. 친절하며 인사성 밝기로 유명한 일본인이라 더욱 그랬다. 이 아파트 단지 주민을 대상으로 "이웃과 마주칠 때 인사를 나누고 있나?"라는 설문조사를 했더니, "매번 인사한다"고 답한 사람은 22%, "가끔 인사한다"는 50%, "거의 하지 않는다"는 28%로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아마 더 심할 것이다. 엘리베이터와 같은 폐쇄된 공간에서는 가끔 목례를 하지만, 어른들이 길거리에서 인사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파트 생활의 장점으로 익명성을 든다. 서로를 알 필요가 없고, 각자의 생활에 간섭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참살이의꿈 2016.11.18

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선 선생이 강의 형식으로 인문학을 설명하는 책이다. 제목인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인문(人文)'을 글자 그대로 옮긴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휩쓰는 인문학 열풍을 선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느 사회나 초기 단계에서는 정치학과 법학이 중심 기능을 하고, 사회가 좀 발전하면 경제학, 사회학 등이 주도적인 기능을 한다. 사회가 좀 더 발전하면 철학이나 심리학 같은 인문학이 중심 학문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인문학 바람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진정한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고 성장하기 위한 열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선생은 인문학의 목적이 인문적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접하고 '좋다'거나 '나쁘다'라는 판단을 한다면 인문 정신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판단..

읽고본느낌 2016.11.17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 허만하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 허만하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이 되어야 날개를 편다." 이 시와 무슨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문득 헤겔의 이 말이 떠올랐다. 높고 밝은 세계는 정신의 빈곤을 가리킨다고 믿었다. 도시의 달동네, 꼬챙이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의 힘을 생..

시읽는기쁨 2016.11.15

2016년 가을

충격적인 일이 닥치면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분노하게 되고, 그 뒤에는 우울증이 찾아온다. 암 판정을 받았을 때도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사회적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몇 주째 허탈과 우울증에 빠져 있다. 처음 사건이 불거졌을 때는 설마 그랬을까, 라고 생각했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분노하게 되고, 그 뒤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지금은 화를 내기도 지쳤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십 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거의 매일 글을 올렸다.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를 열지 않은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지금은 머리가 텅 빈 듯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다. 바깥나들이도 귀찮다. 세..

길위의단상 2016.11.14

논어[219]

섭공이 정치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가까운 사람들은 기뻐하고, 먼 데 사람들은 찾아오게 해야 합니다." 葉公 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 子路 12 우리 현실이 슬프다. 젊은이들은 자조적으로 '헬조선'이라고 말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뜨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사람도 많다. 청소년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천박한 욕망이 창궐한다. '박근혜 퇴진' 구호의 바탕에는 이런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을 것이다. 지도자의 생각이 바르지 않고는 나라가 바른 길로 갈 수는 없다.

삶의나침반 2016.11.13

사람

경지 정리가 매끄럽게 잘된 땅에서 누구나 심으려고 하는 작물을 심고 남들보다 더 잘되기만을 바라는 경쟁적인 요행심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측량도 안 된 황량한 들판에 서서 땅과 자신의 관계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시 고민하는 우직한 자, 자와 컴퍼스로 그려진 정치한 설계도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집 지을 땅 위에 서서 바람의 소리를 따르고 태양의 길을 살펴 점 몇 개와 말뚝 몇 개로 설계를 마무리할 수 있는 자, 외국 철학자들 이름을 막힘없이 들먹이면서 그 사람들 말을 토씨 하나까지 줄줄 외우는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념을 새로 산출해 보려는 자, 믿고 있던 것들이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

참살이의꿈 2016.11.10

작은 집을 권하다

나에게 남은 바람이 있다면 조용한 터에 자그마한 집 하나 갖고 싶은 것이다.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피신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마음이 답답한 때는 그곳에 찾아가 며칠 푹 쉬었다 오고 싶다. 책을 한 보따리 들고 가서 오직 글자 속에 묻혀 지내고도 싶다. 다카무라 토모야 씨가 쓴 는 아주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 생각 같은 세컨드 하우스 개념이 아니라 실제 거주하는 집이다. 집 크기는 대체로 세 평 안팎이다. 극단적으로 작은 집이다. 작은 집은 작고 소박한 라이프 스티일을 지향한다. 세 평 짜리 집에 산다는 건 종교적인 신념에 가까운 의지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스몰 하우스 운동'에 뛰어든 이들은 대부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들이다. ..

읽고본느낌 2016.11.10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찬지름 들지름 들이 서울 갑니다 충청북도 옥천군 이원면 강변에 모랫벌에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여름내 김매고 땀 흘려 가꾼 참깨 들깨 들이 찬지름 들지름이 되어 소주병에 담겨 서울 가는 기차를 탑니다 마른 나무 강변말 해바라기 선 집 들지름 발라 김 구워 주면 미어지게 먹던 막내를 생각합니다 날달걀 깨서 찬지름 떨어뜨려 밥 비벼 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그릇 해치우던 맏이를 생각합니다 - 찬지름 들지름 / 송진권 가을은 아프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지은 농작물을 갖고 오는 것도 죄스럽다. 가을이 되면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더해진다. "나도 이제 따스한 밥 얻어먹고 싶다." 가을은 불효를 자각하고 속울음을 삼키게 되는 계절이다. 충청도에서는 '찬지름 들지름'이라고 부르는가 보다. 자식을 향한 모정이 '..

시읽는기쁨 2016.11.07

주흘산에 오르다

용두회의 문경새재 트레킹에서 벗어나 나 홀로 주흘산에 오르다. 10년 전에 봄꽃을 보러 계곡에 찾아온 적이 있었지만 정상에 오른 건 처음이다. 주흘산(主屹山)은 높이가 1,106m로, 문경을 지나는 소백산맥의 주봉이다. '주흘'은 '가장 우뚝한 산'이라는 뜻이겠다. 돌이 많긴 하지만 산길은 급경사가 없이 부드럽다. 차분히 가쁜 호흡 없이 걷기에 알맞은 산이다. 주흘산은 계곡이 잘 형성되어 있다. 깊은 산이라 늦가을이지만 수량도 풍부하다. 계곡 물소리를 벗삼아 걷는 재미가 좋다. 이미 단풍철은 지났지만 산 아래에는 아직 단풍의 여운이 남아 있다. 화려했던 주흘산의 단풍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제 때에 온다면 멋진 단풍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궁폭포. 정상인 주봉에서 바라본 풍경. 하산길 중간 쯤..

사진속일상 2016.11.06

천진암의 가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계절 변화가 무척 빠르다. 가을옷을 꺼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겨울옷을 챙겨야 하게 생겼다. 가까운 천진암에 아내와 떠나는 가을을 보러 나갔다. 낙엽으로 덮인 순교자 묘역 가는 길이 예뻤다. 천진암의 조형물이나 시설은 미적 감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대로 가만히 둔 자연은 아름답다. 손이 미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계절 탓인지, 시국 탓인지, 요사이 심사가 착잡하다.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 라는 물음이 이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사진속일상 2016.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