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1 15

에픽테토스의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는 데는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리고 행복은 마음의 평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바세계를 살면서 어떻게 하면 평정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을까? 종교와 철학의 기원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인류 역사를 볼 때 물질에 비해 마음의 진보는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대인이 고대인보다 더 행복하다는 증거는 없다. 삶의 객관적 여건은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우리가 마음에 대해 아는 건 그다지 증가하지 않았다. 또한 지식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옛날 사람이 했던 질문을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던진다. 에픽테투스(Epictetus, 50년 무렵 ~ 120년 무렵)는 후기 스토아 철학자다. 그는 노예인 데다 다리까지 절었다. 다행히 관대한 주인을 만나 해방노예가 되었고, 로..

읽고본느낌 2017.01.30

논어[228]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차분하되 뽐내지 않는다. 하찮은 것들은 뽐내면서 차분하지 않다." 子曰 君子 泰而不驕 小人 驕而不泰 - 子路 21 공자가 사람을 군자와 소인으로 구분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수긍한다. 공자가 말하는 소인이란 속물성과 이기성을 드러내는 인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소인들이 많으니 세상은 시끄럽다. 이만큼이라도 세상이 굴러가는 건 그나마 '착한(?) 소인'이 다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에는 소인보다 더 하질의 인간도 수두룩하다. 제 행위에 대해서 창피함을 모르는 부류다. 뻔뻔하고 염치를 모른다. 제 이익을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폭력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무리들이 날뛰면 세상은 난장..

삶의나침반 2017.01.22

그런 일이 있은 뒤

然後列子自以爲未始學而歸 三年不出 爲其妻찬 食豕如食人 於事無與親 雕琢復朴 塊然獨以其形立 紛而封哉 一以是終 "그런 일이 있은 뒤, 열자는 비로소 자기가 아직 참된 학문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3년 동안 밖에 나가지 않으며 아내를 위해 밥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하며, 세상 일에 좋고 싫음이 없어졌다. 허식을 깎아 버리고 본래의 소박함으로 돌아가, 무심히 독립해 있으면서 갖가지 일이 일어나도 거기 얽매이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이와 같이 하여 일생을 마쳤다." '응제왕' 편에 나오는 구절로, 처음 를 읽었을 때 매우 감명을 받은 부분이다. 고상한 철학 이론이 아닌 구체적인 삶과 직결되는 내용이 좋았다. 열자에게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결정적인 '그런 일'이 있었다. 그 일..

참살이의꿈 2017.01.21

그리스 인생 학교

종교 전문인 조현 기자의 그리스 여행기다. 종교와 신화, 철학 중심으로 그리스인들의 사색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때문에 지은이와 함께 그리스 여행을 하는 느낌이다. 과거 유적과 철학자들의 삶을 통해 현재의 우리 역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여기에는 지은이의 해박한 지식이 한 몫 하고 있다. 에는 그리스 신화와 함께 철학자 피타고라스,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등이 등장한다. 그들의 가르침을 현장에 직접 찾아가 되새겨본다면 훨씬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책을 읽으면 나도 따라 하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언젠가는 그런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면 좋겠다. 지은이는 직장에서 얻은 한 달 간의 휴가를 이용해서 아토스 산에서 트로이까지 그리스와 터..

읽고본느낌 2017.01.20

논어[227]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섬기기는 쉬우나 기쁘게 해 주기는 어렵다. 기쁘게 해 주는데도 옳은 방법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는다. 사람을 부리되 그릇처럼 생김새대로 쓴다. 하찮은 사람은 섬기기는 어렵고 기쁘게 해 주기는 쉽다. 기쁘게 해 주는데 옳은 방법이 아니라도 기뻐한다. 사람을 부리되 아무거나 죄다 시킨다." 子曰 君子 易事而難說也 說之不以道 不說也 及其事人也 器之 小人 難事而易說也 說之雖不以道 說也 及其事人也 求備焉 - 子路 20 소인(小人)이 정치를 하면 어떤 폐해가 생기는지 생생한 실례를 우리는 지금 경험하는 중이다. 문제는 정치판은 언제나 소인배와 아첨꾼들로 시끌하다는 점이다. 소인배는 자신을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주변에 둔다. 그래서 인(仁)과 덕(德)의 정치는 아직도 난망이다. 정치..

삶의나침반 2017.01.19

아름다운 구멍 / 장정일

카파도키아에서 사흘을 보내고 이스탄불로 돌아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공항은 밤새 내린 폭설로 마비되었다. 대합실 통유리 밖으로 제설차가 활주로를 새로 닦는 모습을 구경하며, 폭설로 지연된 비행기 운행이 내 인생에 선사하게 될 뜻밖의 구멍을 상상했다. 뚱뚱한 스페인 아주머니들은 단체 여행을 왔다. 가죽점퍼를 입은 흑인 청년은 껌을 씹고 피부색이 갖가지인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말로 동맹을 맺는다. (카파도키아에서 여행 중에 몇 번이나 마주친 네 명의 한국 남자 대학생들, 이들은 영어로만 대화한다.) 몇 시간 만에 눈을 치우고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폭설을 감안하면 정상 운행이었다. 창밖으로 흘낏 본 남겨진 비행기들. 비스킷과 오렌지 주스를 사양하고 그보다 더 달콤한 꿈이 생각나 얼른 눈을 감았다. 이..

시읽는기쁨 2017.01.19

소금강과 상원사

뉴질랜드 트레킹 연습으로 아홉 명이 1박2일 오대산 걷기에 나섰다. 일행 중 한 명이 수술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가벼운 코스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첫날은 소금강, 둘째날은 선재길 걷기였다. 그런데 소금강 들어가는 입구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내 등산화 뒷굽이 떨어져서 덜렁거리게 된 것이다. 아이젠으로 임시처방을 했으나 돌길을 온전히 걸을 수는 없었다. 일행에 뒤처져 걷다가 중간에서 되돌아왔다. 금년들어 계속 따뜻한 날씨로 계곡의 눈이 모두 녹았다. 깊게 그늘진 곳만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눈 없는 겨울산은 썰렁했다. 느린 걸음으로 구룡폭포까지 올라갔다. 폭포 구경만 하고 하산하니 만물상까지 올라간 일행과 대략 완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대신에 천천히 걸으며 겨울 계곡 감상할 여유는 넉넉히 가..

사진속일상 2017.01.11

명상록을 읽는 시간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나의 명상록'을 쓰고 싶어진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를 누비면서 명상록을 썼다. 삶 역시 전쟁터와 마찬가지다. 누구의 삶이든 세상과의, 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일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뇌하는 기록이 곧 명상록이 아닐까. 누구를 의식함이 아닌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쓰는 글이 '나의 명상록'이다. 유인창 선생이 쓴 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을 읽은 느낌을 적은 책이다. 의 한 구절을 주제로 삼고 선생의 생각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문체도 부드럽고 유연하다. 선생은 직업이 기자인데 내적 성찰의 깊이가 대단하다. 많이 감동을 받은 책이다. 철학자를 꿈꿨던 아우렐리우스는 자신의 뜻과 달리 황제가 되어야 했다. '철인(哲人) 황제'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행복하거나 평온한..

읽고본느낌 2017.01.08

논어[226]

자공이 물었다. "마을 사람이 다 좋아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마을 사람이 다 싫어하면 어떻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마을 사람 중에서 착한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 사람 중에서 못된 자들이 싫어하는 것만 못하지." 子貢問 曰 鄕人皆好之 何如 子曰 未可也 鄕人皆惡之 何如 子曰 未可也 不如鄕人之善者好之 其不善者惡之 - 子路 19 누구나 다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소위 호인(好人)이라 불린다. 이 사람에게도 응, 저 사람에게도 응, 이다. 두루뭉술하며 모난 데가 없다. 인간성이 좋다는 소리를 들을지는 몰라도 리더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일을 추진하는 데는 결단과 과감함이 필요하다. 비난을 겁내서는 안 된다. 공자의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평..

삶의나침반 2017.01.07

별 / 윤주상

우리가 이 별 저 별 하듯이 너희도 이 인간 저 인간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우리가 너희더러 반짝인다고 말할 때 너희도 우리가 몸부림친다라고 표현한다는 것도 나는 안다 오리온좌 카멜레온좌 카시오페아좌 등으로 쓸데없이 우리가 너희를 갈라 놓았듯이 너희는 우리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우는 자와 웃는 자 오른쪽과 왼쪽 남과 북 등등으로 늬들보다 더 복잡하게 갈라져 있음을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별이여 나는 알 수가 없구나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고 우리가 너희를 노래하는 밤에도 왜 너희는 결코 우리를 노래해 주지 않는지를 너희가 가장 밝게 빛나는 밤에 우리는 이 땅의 가장 어두운 길을 가고 있음을 별이여 너희는 과연 알기나 하는 일인지 - 별 / 윤주상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머리 위에..

시읽는기쁨 2017.01.06

30,000,000

전국을 휩쓴 조류인플루엔자(AI)로 한 달 사이에 닭과 오리가 3천만 마리 넘게 살처분 되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3천만이라는 숫자에 현기증이 난다. TV 화면으로 보는 살처분 현장은 세기말적 풍경이다. 아우슈비츠가 연상되는 건 과민 반응인지 모르겠다. 언젠가는 인간도 무더기로 살처분될 수도 있다는 예감이 두렵다. 거의 매년 AI 소동을 겪으며 이런 난리를 치고 있다. 공장식 축산 산업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양계장을 보면 도저히 닭을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을 정도로 야만적이다. 저도 생명일진대 어떻게 저런 대우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수익을 내자면 어쩔 수 없는 받아들여야 하는 시스템에서 축산업자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문명의 비극이다. 대규모 공장식 축산이 이런 ..

길위의단상 2017.01.05

나이듦과 죽음에 대하여

몽테뉴 수상록 중에서 노년과 죽음 부분을 발췌한 선집이다. 몽테뉴 수상록은 대학생 때 문고판으로 읽었다. 너무 오래전이라 지금 기억에 남는 내용은 거의 없다. 그런데 수상록은 젊을 때보다는 흰머리 희끗희끗해질 때 읽어야 제맛이 나는 건 사실이다. 몽테뉴(1533~1592)는 16세기 프랑스의 사상가로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선택된 교육을 받고 고등법관이 되었다. 그러나 공직에 대한 부담과 환멸로 37세의 나이에 사임하고 몽테뉴 성에 은둔하며 생의 후반은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조용히 살면서 정신을 성숙하게 하고,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몽테뉴가 살았던 시기는 종교 전쟁이 한창인 때였고, 개인적으로도 주변에서 죽음을 많이 접했다. 그런 점이 몽테뉴로 하여금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하게 한..

읽고본느낌 2017.01.04

행복불감증

연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누가 행복한 사람이 되느냐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행복은 타고난 성격이 어떠냐에 따라 좌우된다. 같은 조건에서 비관파보다는 낙관파가 훨씬 더 행복을 느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행복유전자가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나는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다. 분류하자면 비관파에 속한다. 한 예로, 바둑을 둘 때는 형세 판단을 하게 된다.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알아야 작전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유리하면 안전하게 마무리하려 할 것이고, 불리하면 무리가 되더라도 승부수를 던지게 된다. 그런데 내 경우는 집이 많은데도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잦다.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판을 그르친다. 바둑만이 아니라 삶의 곳곳에서 이..

참살이의꿈 2017.01.03

논어[225]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진정으로 화합하지 고개만 끄덕거리지 않는다. 하찮은 인간은 고개만 끄덕거리지 진정으로 화합하지 않는다." 子曰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 子路 18 책상 위에 도자기로 된 필통이 있다. 30년 전에 도자기 체험장에 갔다가 만든 것이다. 그때 겉면에 썼던 글씨가 '화이부동(和而不同)'이었다. 젊었던 한때 이 문구를 좋아했다. 당시는 아무래도 '부동(不同)'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나 싶다. 같이 어울려 지내지만 나는 너희들과 달라, 라는 오만이 있었다. '화(和)'는 체면이나 겉모습 같은 것으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생각해 보니 방점은 '화(和)'에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세상이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외모만 아니라 생각이나 가치관이 제각각..

삶의나침반 2017.01.02

나무 기도 / 정일근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린 너무 빠르다, 세상은 달려갈수록 넓어지는 마당 가졌기에 발을 가진 사람의 역사는 하루도 편안히 기록되지 못했다 그냥 나무처럼 붙박혀 살고 싶다 한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어린 자식 기르며 말씀 빚어내고 빈가지로 바람을 연주하는 나무로 살고 싶다 사람들의 세상은 또 너무 입이 많다 입이 말을 만들고 말이 상처를 만들고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는 적을 만들고 그리하여 입 속에서 전쟁이 나온다 말하지 않고도 시를 쓰는 나무의 은유처럼 온몸에 많은 잎을 달고도 진실로 침묵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침묵으로 웅변하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삶은 베풀 때 완성되느니 그늘 주고 꽃 주고 열매 주는 나무처럼 추운 아궁이의 뜨거운 불이 되어주기도 하고 사람의 따뜻한 가구가 되는 나무처럼 가진 것..

시읽는기쁨 2017.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