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 24

사월에 걸려온 전화 / 정일근

사춘기 시절 등교길에서 만나 서로 얼굴 붉히던 고 계집애 예년에 비해 일찍 벚꽃이 피었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일찍 핀 벚꽃처럼 저도 일찍 혼자가 되어 우리가 좋아했던 나이쯤 되는 아들아이와 살고 있는, 아내 앞에서도 내 팔짱을 끼며, 우리는 친구지 사랑은 없고 우정만 남은 친구지, 깔깔대며 웃던 여자 친구가 꽃이 좋으니 한 번 다녀가라고 전화를 했습니다. 한때의 화끈거리던 낯붉힘도 말갛게 지워지고 첫사랑의 두근거리던 시간도 사라지고 그녀나 나나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 생에 사월 꽃잔치 몇 번이나 남았을까 헤아려보다 자꾸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눈물 감추려고 괜히 바쁘다며 꽃은 질 때가 아름다우니 그때 가겠다, 말했지만 친구는 너 울지, 너 울지 하면서 놀리다 저도 울고 말았습니다. - 사..

시읽는기쁨 2017.04.30

논어[235]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라의 질서가 섰을 때는 말도 대담하고 행동도 대담해야 한다. 나라의 질서가 문란한 때는 행동은 대담하되 말은 부드러워야 한다." 子曰 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 憲問 4 관리가 될 제자들에게 주는 공자의 처세훈 같다. 말을 잘못 해서 화를 입는 경우를 경계하는 말이다. 군주에게 간언할 때도 말은 최대한 부드럽게 할 필요가 있다.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행동이 비굴해서는 안 된다. 말에 방점이 찍힌 듯 하지만, 실제는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 같다.

삶의나침반 2017.04.29

신륵사

여주를 지나는 길에 잠깐 신륵사에 들렀다. 나에게 신륵사는 아련한 슬픔으로 젖어오는 곳이다. 저 석탑 옆 바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속울음을 삼킨 적 있었다. 세월이 지나가면 다 나을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다독였다. 그때는 시절의 배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한 상처가 아물고 다시 신륵사에 섰을 때 이번에는 4대강 사업으로 강변이 황폐화되고 있었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다시 신륵사에 가지 않았다. 다행히 정리된 후의 모습은 그다지 흉하지 않았다. 그래도 모래사장이 있던 자연스런 강과 비교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월이 약이라더니 두 감정 모두 이제는 많이 가라앉았다. 시대를 거역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나이도 되었다. 이제는 관조의 때라는 걸 안다. 선악의 칼날도 너무 날카로우면 자신을 벨 수 ..

사진속일상 2017.04.28

패신저스

우주선 '아발론' 호를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만하다. 외부 모양도 멋지고, 내부도 우리가 합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다. 거의 빛의 속도로 항성간 비행을 하는데, 영화에서는 새로운 개척지 행성으로 5천 명의 승객을 싣고 자동 항법으로 날아간다. 120년이나 걸리므로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동면 상태다. 수백, 수천 년이 걸리는 우주 비행에서 인간의 동면은 필수적이다. '패신저스'의 독특한 점은 기기 작동 오류로 승객 중 한 사람이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설정이다. 우주선이 운석과 충돌하면서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동면 기계는 다시 작동할 수 없다. 새 행성으로 가는 데는 90년이나 남았다. 그는 무인도에 던져진 셈이 되었다. 외로움 속에서 1년을 버티던 짐은 여성 승객 한 명을..

읽고본느낌 2017.04.27

축령산의 봄꽃

얼레지를 보려고 축령산에 갔지만 때를 놓쳤다. 얼레지 꽃밭은 예전과 마찬가지였지만 대부분은 이미 시들었다. 몇 송이 남은 놈과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다른 꽃들은 많이 만났다. 봄의 가운데서 오랜만에 꽃 호사를 즐긴 날이었다. 얼레지 피나물 댓잎현호색 점현호색 산괴불주머니 털제비꽃 졸방제비꽃 고깔제비꽃 족두리풀 노랑제비꽃

꽃들의향기 2017.04.25

얼떨결에 축령산에 오르다

아내와 축령산 계곡으로 꽃 보러 갔다가 얼떨결에 축령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이정표가 축령산 정상까지 1.8km로 되어 있어 만만하게 봤다. 둘 다 근래에 등산을 하지 못했고 몸 상태도 온전하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니 느릿느릿 걸으면 되겠지 했다. 정상까지는 그럭저럭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에서 고생을 했다. 축령산이 886m나 되는 줄 미처 몰랐다. 게다가 바위도 많았다. 등산 준비도 하지 않아 먹을 것도 부족했다. 아내는 나무 막대를 지팡이 삼았다. 3km의 하산길이 너무 길었다. 다행히 산길에 꽃이 많아 눈요기로 피로가 일부 감해졌다. 정산 부근에는 노랑제비꽃 천지였다. 축령산이 야생화의 보고란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다. 힘들었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지만 뿌듯했다. 아내는 관절 치료 뒤 1년 만의 ..

사진속일상 2017.04.25

내 일상의 종교 / 이재무

나이가 들면서 무서운 적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핸드폰에 기록된 여자들 전화번호를 지워버린 일이다 술이 과하면 전화하는 못된 버릇 때문에 얼마나 나는 나를 함부로 드러냈던가 하루에 두 시간 한강변 걷는 것을 생활의 지표로 삼은 것도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한 시대 내 인생의 나침반이었던 위대한 스승께서 사소하고 하찮은 외로움 때문에 자신이 아프게 걸어온 생을 스스로 부정한 것을 목도한 이후 나는 걷는 일에 더욱 열중하였다 외로움은 만인의 병 한가로우면 타락을 꿈꾸는 정신 발광하는 짐승을 몸 안에 가둬 순치시키기 위해 나는 오늘도 한강에 나가 걷는 일에 몰두한다 내 일상의 종교는 걷는 일이다 - 내 일상의 종교 / 이재무 걸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종교 의식에 빠졌을 때와..

시읽는기쁨 2017.04.24

논어[234]

선생님 말씀하시다. "선비가 집안일을 못 잊어 하면 선비답지가 못하다고 할걸." 子曰 士而懷居 不足以爲士矣 - 憲問 3 공자가 말하는 '선비[士]'는 벼슬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선비가 집안일에 신경을 쓰느라 국정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아예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 큰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선비 소리를 들었다. 사랑방에서 책을 읽거나 찾아온 손님과 담소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농사나 집안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소나기가 쏟아져도 마당에 널린 곡식조차 거둘 줄 몰랐다. 큰할머니는 자주 혀를 쯧쯧 찼다. 또, 남자애를 부엌에 들이지 않으려는 옛 교육 태도도 이런 오해에서 비롯된 ..

삶의나침반 2017.04.23

공터에서

김훈의 근작 소설이다. 작가의 문체에 끌려 이 책을 찾아 읽었다. 김훈은 가장 개성 있는 작가다. 짧고 건조한 문장이 매력이 있다. 감정이 배제된 서술은 시베리아의 찬바람 같다. 이즈음에 더욱 만나고 싶은 글이다. 이 소설에서도 김훈의 문체는 도드라진다. 반면에 내용은 밋밋한 편이다. 그것 역시 작가의 특징인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김훈의 문체는 스케일이 큰 경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비장미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에서 대규모 전투와 순장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는 마 씨 가족 두 세대의 역사를 담았다. 일본 강점기 시대, 해방, 6.25 전쟁, 월남전, 군부독재 등 파란만장했던 근대사 속에서 살았던 힘 없는 민초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

읽고본느낌 2017.04.23

영릉 진달래(2)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변명이 올해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꽃구경 하려 바깥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했다. 꽃이 가장 한창일 때 감기로 한 열흘 꼼짝 못 한 게 컸다. 그래도 진달래는 봐야지, 하고 가까운 영릉으로 나갔다. 4월 하순에 들었으니 진달래는 이미 색깔이 바래지고 있었다. 무엇이건 절정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힘이 떨어지는 법이다. 꽃이 내뿜는 기운도 마찬가지다. 이즈음의 진달래에서는 생명의 약동을 느끼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동네 뒷산을 뛰어다니며 진달래를 따먹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힘겹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산길을 걸으며 지리한 인생을 한탄할 때, 진달래 역시 꽃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17.04.21

바둑과 놀다

바닷가에 있는 동료의 세컨드 하우스에서 바둑으로 놀았다. 점심 먹으러 잠시 외출한 걸 빼고는 2박3일 동안 바둑만 두었다. 어지간히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아직도 자존심이 남아 있어 바둑을 지면 속이 부글거린다. 라이벌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더구나 상대가 약을 올리면 싫은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인격 수양의 미숙을 자주 자책한다. 바둑의 매력 중 하나는 대국 중에 말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바둑을 수담(手談)이라고 한다. 그만큼 예의가 필요한 게임이다. 교유의 폭이 좁지만 그나마 만나면 바둑 친구가 제일 반갑다. 그러나 이젠 나이가 많이 들었다. 고 형은 내년이면 70이 된다. 언제까지 함께 바둑을 둘 수 있을지, 가는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사진속일상 2017.04.20

돌아가는 꽃 / 도종환

간밤 비에 꽃 피더니 그 봄비에 꽃 지누나 그대로 인하여 온 것들은 그대로 인하여 돌아가리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제나 잠시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저녁 햇살로 그늘지리 - 돌아가는 꽃 / 도종환 부활절인 오늘은 세월호 3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하다. 세월호를 기억하며 드리는 미사에서 옆자리 아주머니는 세월호 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흐느끼신다. 그 슬픔의 깊이가 어떠한지 나는 잘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먹먹할 뿐이다. 경안천에 나가 꽃을 보며 이 시를 읊조린다. "그대 곁에 있는 것들은 / 언제나 잠시 // 아침 햇빛에 아름답던 것들 / 저녁 햇살로 돌아가리". 생명 사이의 인연이 그런 것이리, 찡 해진 가슴으로 뿌연 봄하늘을 바라본다.

시읽는기쁨 2017.04.16

경안천 봄맞이꽃

이맘때 경안천변에는 봄맞이꽃과 개불알풀 꽃밭이 펼쳐진다.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벌써 오래전 일이지만 처음 봄맞이꽃을 만났을 때의 감격이 잊히지 않는다. 노란 입술에 입맞춤하듯 꽃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몇 해 동안은 봄이 오면 꼭 봄맞이꽃을 만나러 바깥나들이를 했다. 우리 주변에 흔한 꽃이지만, 찾으려고 하면 안 나타나 야속할 때도 있었다. 다행히 이곳 경안천에서는 봄맞이꽃 풍년을 맞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7.04.16

내 탓이오

접촉 사고가 나더라도 절대로 잘못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무조건 네 탓이라고 우겨라. 30년 전에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샀을 때 선배 운전자한테서 들은 충고였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는 통설이 널리 퍼졌던 시기였다. 지금은 보험회사에 전화만 하면 과실 비율을 판정해 준다. 네 탓, 내 탓으로 낯 붉힐 일이 별로 없다. 겨울 스포츠로는 배구를 좋아한다. 특히 여자배구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즐겨 본다. 배구는 실수가 자주 나오는 경기다. 그럴 때는 손을 들거나 가슴에 손을 대면서 미안함을 표시한다. 대신에 동료들은 괜찮다고 격려해 준다. 배구는 팀워크가 중요하다. 반대로 상대 팀에 대해서는 자기 잘못을 드러내지 않는다. 블로킹을 하다가 손가락에 맞았더라도 모른 척한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

참살이의꿈 2017.04.15

동네 벚꽃길

시원찮은 몸을 일으켜세워 벚꽃을 보러 나섰다. 멀리 유명한 장소를 가지는 못하고 집 가까이 있는 벚꽃길을 찾아갔다. 여기는 한적해서 좋다. 500m 되는 벚꽃길에 고작 서너 사람이 느릿느릿 걸을 뿐이다. 아마 이름이 알려졌다면 여기도 여느 장소와 마찬가지로 상춘객들로 시끌벅적할 것이다. 꽃의 화려함은 덜해도 사람들에 시달리지 않아 좋은 곳이다. 크고 작고를 불문하고 병은 사람에게 겸손을 가르쳐 준다. 내 몸뚱이 하나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다. 하물며 바깥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큰 착각을 하며 산다. 아무리 경계를 그어야 허무한 노릇이다. 바람에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벚꽃잎 하나가 사람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존재계에서 쉼없이 이어지는 인연의 순환, 그것이 신비하고 소중할 뿐이다.... 그..

꽃들의향기 2017.04.14

논어[233]

"원망이나 욕심을 꺾어 자라나지 못하도록 하면 사람답게 됐다고 할 수 있겠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하기 힘들다고는 할 수 있지만 사람답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克伐怨欲 不行焉 可以爲仁矣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 憲問 2 날뛰는 제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니 세상은 늘 시끄럽다. 원(怨)과 욕(欲)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른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사람답다'는 것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공자의 완곡한 표현에서 인(仁)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불교로 비유하면 소승과 대승의 차이쯤 될까. 는 무엇인가? 지금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을 돌아보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자문하게 하는 책이다.

삶의나침반 2017.04.13

부러워라

12박 13일 동안 패키지로 유럽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있다. 너무나 원기왕성한 친구다. 이 친구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집에 짐을 풀자마자 차로 한 시간 거리인 텃밭으로 달려가 땅을 고르고 채소를 심었다. 다음날은 시제를 지내러 KTX를 타고 목포로 내려갔다. 올라와서는 꽃 보러 산에 같이 가자고 한다. 먼 나라 여행을 다녀왔으면 피곤해서 며칠 쉬어야 정상이 아닌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다. 천생이 약골인 나는 이런 체력을 보면 너무 부럽다. 해외에 나갔다 오면 두 주일 정도는 헤매는 게 보통이다. 시차 부조화로 잠자는 시간이 흐트러지니 밤낮없이 약 먹은 병아리처럼 비실거린다. 도시 외출할 기운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에 뉴질랜드에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회복되는 듯하여 바깥 걸음을 했다..

길위의단상 2017.04.12

위층 아이들 / 이중현

쿵쿵쿵 저건 형 뛰는 소리 콩콩콩 이건 동생 뛰는 소리 아빠, 위층에 전화해요 천장 무너지겠어요 그냥 둬라 너도 어릴 때 저랬거든 이제 그 빚 갚는 거다 - 위층 아이들 / 이중현 손주 둘이 모이면 통제 불능이 된다.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날이면 이 방 저 방으로 쿵쿵 콩콩이다. 며칠 전에는 아래층에서 조용히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하나는 제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까지도 위층 아이들 때문에 여러 차례 인터폰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훨씬 덜해졌다. 이젠 반대로 내가 받을 차례가 되었다. 사는 게 빚을 갚는 일이다. 부모한테 잘못한 건 자식을 통해 갚는다. 사는 건 빚을 지는 일이다. 지금도 부지불식간에 누군가에게는 빚을 지고 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언젠가는 갚아야 한다. ..

시읽는기쁨 2017.04.09

컨택트

외계의 지적 생명체와의 조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나에게는 이 궁금증이 SF를 찾는 이유다. 그래서 이 영화 '컨택트'도 먼저 제목부터 끌렸다. 원제는 'Arrival'인데 배급사에서 만든 'Contact'가 훨씬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느 날 지구 곳곳에 12개의 우주선이 찾아온다. 길이가 450m 정도로 렌즈 같이 생겼다. 그리고 외계인과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와 문자를 해독하는 작업을 한다. 그들의 문자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원형의 무늬인데 우리처럼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 구조다. 사고 패턴이 우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루이스는 우주인의 언어를 이해하면서 미래를 투시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선형으로 이..

읽고본느낌 2017.04.08

한양도성길 걷기(1)

용두회에서 한양도성길 걷기에 나섰다. 체력이 좋은 사람은 단번에 끝내기도 한다지만, 우리는 18km를 세 구간으로 나누어 걷기로 했다. 첫번째는 흥인지문에서 숭례문까지 시내를 통과하는 코스였다. 출발 지점인 흥인지문(興仁之門). 광희문(光熙門) 앞. 시내 성곽은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 장충체육관을 지나면서부터는 제대로 된 석축이 나타난다. 여기는 형태로 보아 세종 때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성곽과 남산에는 봄꽃이 환했다. 이번에는 넷이 같이 걸었다. 고정 멤버들이다. 남산에 있는 사랑의 자물쇠는 못 미더운 사랑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비 내린 후 잔뜩 흐린 날씨였다. 비 덕분에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좋았다. 복원된 남산공원의 성벽. 서울역 고가도로는 새 단장이 한창이다. 다음달 20일에 보도..

사진속일상 2017.04.07

논어[232]

원헌이 부끄러움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라의 질서가 섰을 때도 국록을 먹고, 나라의 질서가 문란할 때도 국록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일 걸." 原憲問 恥 子曰 邦有道穀 邦無道穀 恥也 - 憲問 1 국정 농단 사태로 대통령이 구속되는 상황까지 이른 작금의 우리나라를 생각한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던 인물 중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변명과 핑계를 일삼거나, 무도(無道)를 선동하고 부채질 한다. 도리어 큰소리를 친다. 부끄러움이 없는 시대다. 나라의 정신이 썩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인간의 기본 덕목이다. 관료나 정치인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더 철면피가 되고 뻔뻔해져야 하는지를 경쟁하는 것 같다. 미세먼..

삶의나침반 2017.04.04

54년

54년 전에 이 집을 지었을 때는 동네에서 유일한 기와집이었다. 전에 살았던 집이 좁아서 옆의 밭을 사서 아버지가 새집을 세웠다. 당시로서는 꽤 번듯했던 집이었다. 그러나 긴 세월을 거치면서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낡았고, 수리도 여러 번 했지만 이젠 한계에 이르렀다. 마침 동생이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고 새로 집을 짓기로 했다. 어머니를 모시며 살겠다고 하니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곧 이 집은 헐릴 예정이다. 처음에는 이 집에서 할아버지, 부모님, 네 동생과 여덟 식구가 함께 살았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도중에 제일 먼저 집을 떴다. 그 뒤로 하나둘씩 떠나면서 오랜 기간 어머니 홀로 이 집을 지키고 계셨다. 어머니 연세도 이제 아흔을 바라보시니 부양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삼형제가 모여서 어..

사진속일상 2017.04.03

봄의 서곡 / 노천명

누가 오는데 이처럼들 부산스러운가요 목수는 널판지를 재며 콧노래를 부르고 하나같이 가로수들은 초록빛 새옷들을 받아들었습니다 선량한 친구들이 거리로 거리로 쏟아집니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더 야단입니까 나는 포도鋪道에서 현기증이 납니다 삼월의 햇볕 아래 모든 이지러졌던 것들이 솟아오릅니다 보리는 그 윤나는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바람이 마음대로 붙잡고 속삭입니다 어디서 종다리 한 놈 포루루 떠오르지 않나요 꺼어먼 살구남기에 곧 올연한 분홍 베일이 씌워질까 봅니다 - 봄의 서곡 / 노천명 시절이 하 수상하니 봄이 와도 봄을 실감하지 못한다. 세월호는 3년만에 뭍으로 돌아왔고, 탄핵 당한 전직 대통령은 감방에 들어갔다. 묵직한 돌덩이가 짓누르는 것 같다. 곧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누가 되든 선거 후가 다시 걱정이..

시읽는기쁨 2017.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