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 29

남한산성에서 이성산성으로

하필 이 계절에 걷는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꾸역꾸역 긴 산길을 걷고 싶다. 오늘은 남한산성에서 북동 줄기를 타고 이성산성을 지나 하남까지 이르는 길을 택했다. 남한산성 부근에서 20년 가까이 살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찾은 산이 남한산성이었다. 그때는 5호선 전철이 생기기 전이었다. 버스를 타고 거여동 종점에서 내려 남한산성을 오르내렸다. 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리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그 때문인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산을 싫어한다. 마천역에서 내려 옛날 길을 찾아 오른다. 길 모양은 그 시절과 많이 달라져 있다. 산길 오르는 중에 만난 뒷산 약수터 풍경. 가뭄 탓인지 약수터는 폐쇄되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매일 관리하는 듯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남한산성 약간 못 미쳐서 하남 덕풍..

사진속일상 2017.06.30

털중나리

나리의 계절이 찾아왔다. 꽃이 하늘을 보는 놈도 있고, 땅을 보는 놈도 있다. 중나리는 아마 중간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겠다. 중나리와 털중나리의 차이는 말 그대로 솜털의 유무다. 여름의 초입에 꽃을 피우면 대개 털중나리가 맞다. 이 시기 산길을 걷다 보면 털중나리를 가끔 만난다. 한 개체씩 고독하게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록 세상에서 붉은색 나리는 단연 눈에 띈다. 작은 환성에 산행의 피로가 가신다. 여름 산의 고마운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7.06.29

논어[243]

선생님이 위나라 영공의 무질서한 것을 말한즉, 강자가 말했다. "그처럼 하는데도 왜 망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중숙어는 외교를 맡고, 축타는 내정을 맡고, 왕손가는 군무를 맡았으니 그처럼 하는 데 왜 망하겠는가!" 子言 衛靈公之無道也 康子曰 夫如是 奚而不喪 孔子曰 仲叔어 治賓客 祝駝 治宗廟 王孫賈 治軍旅 夫如是 奚其喪 - 憲問 12 위나라 영공은 정치적으로 무능한 사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스캔들로 나라가 시끄럽기도 했다. 왕이 무능하면 신하라도 제 노릇을 하면 된다. 그러면 나라가 무너지는 일은 없다. 바른 인재를 등용하는 것도 지도자의 큰 몫이다. 박근혜 정권을 되돌아보면 그 의미가 보인다. 공자는 군자가 다스리는 나라를 꿈꿨지만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공자가 ..

삶의나침반 2017.06.28

청계산 한 바퀴

서울대공원을 중심으로 청계산을 한 바퀴 도는 길을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는데 오늘에야 실천에 옮겼다. 시간을 넉넉히 잡기 위해 일찍 집에서 출발해서 대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그저께부터 장마가 시작되어 이곳저곳에 소나기를 뿌리고 있다. 등산로에도 물이 흐른 자국이 나 있다. 습도가 높아 시야가 흐리고 끈적끈적한 날씨다. 등산하기에 좋은 철은 아니다. 계곡에서는 산모기도 많이 덤벼든다. 계획했던 코스에서 두 번이나 엇박자가 났다. 한 번은 망경대 전에서 왼쪽으로 가야 했는데 오른쪽 우회로로 접어들었다. 다행히 곧 합류되었다. 그러나 대공원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갈림길을 지나쳐서 통제된 길로 내려갔다. 덕분에 직원한테서 주의를 듣고 현대미술관 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그곳은 치유 숲 프..

사진속일상 2017.06.27

강자와 약자

일부러 약자가 되려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누구나 강자가 될 수는 없다. 일부 사람은 강자에게 빌붙어 강자 행세를 한다. 일종의 호가호위다. 위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도 있다. 자발적으로 몰려든 무리로 인하여 강자는 지배를 정당화한다. 찾아온 알렉산더에게 디오게네스는 "거참, 햇빛이나 가리지 말아주쇼"라고 답했다. 강자가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을 만난 것이다.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이런 말로 존경을 나타냈다고 한다. 강자에게는 욕심 없는 사람만큼 두려운 사람이 없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강자는 아니다. 성공했다고 강자는 아니다. 살아남았다고 강자도 아니다. 진정한 강자는 주체적으로 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자기가 제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

참살이의꿈 2017.06.26

호모 데우스

전작 가 인류가 어떻게 지구를 정복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다면, 이 책은 21세기 신기술과 만나게 되는 인류의 미래를 예견한다. 인간은 상호주관적 실재를 믿는 능력으로 대규모 협력이 가능했고, 농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기가 도래했다. 이 책 에서는 인본주의 혁명에 대해서 자세히 다룬다. 신이 사라진 자리의 빈 구멍을 메워준 것이 인본주의 종교였다. 지난 수백 년 동안 세계를 정복한 새로운 교리가 인본주의다. 중세에서는 모든 판단을 종교의 경전이 했다. 진리는 이미 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근대에서 의미와 권위의 최고 원천은 자신의 내면이 되었다. 기아, 질병, 전쟁을 극복한 인류는 자유 인본주의 정신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게 될 것이..

읽고본느낌 2017.06.25

단추를 채우며 / 이정록

남자 옷은 오른쪽 옷섶에 단추가 달려 있다 여자 옷은 반대로 오른쪽 옷섶에 단춧구멍이 파여 있다 누구는 좌우뇌의 발달 차이 때문이라 했다 누구는 하인이 채워주기 쉽도록 귀부인의 단추가 옮겨갔다고 했다 모래밭에서 단추 찾듯 동서양 복식발달사를 뒤적였다 동서고금의 민화와 동굴벽화도 설펴보았다 뒤죽박죽이었다 칼 찬 병사와 말달리는 전사를 보고야 알았다 젖 물리는 여인네의 눈물 젖은 단추를 만나고야 무릎을 쳤다 남자는 왼 허리에 찬 긴 칼을 재빨리 뽑기 위해, 여자는 보채는 아이에게 젖 물리기 쉽도록 단추를 매단 것이었다 내 수컷이 단추처럼 작아졌다 내 단춧구멍은 죽임의 묘혈, 여자 것은 살림의 숨구멍이었다 무지개는 하느님의 단추, 너무 커서 테두리만 산마루에 걸쳤다 왼쪽 옷섶에 낮달이 떠 있다 아득히 멀지만,..

시읽는기쁨 2017.06.24

주어리 느티나무

여주시 산북면 앵자봉 남쪽 산자락에 주어사지(走魚寺址)가 있다. 아랫동네 이름도 주어리다. 이름이 특이한데 이는 절을 창건한 설화와 관계가 있다. 한 스님이 절터를 찾던 중 잉어를 따라가 보라는 꿈을 꾸고 실제로 개울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기를 따라가다가 좋은 터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어사는 17세기 초에 세워진 절인데 천주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앵자봉 너머의 천진암과 이곳 주어사가 초창기 천주교 입문자들이 모였던 곳이다. 그래서 두 사찰 모두 폐사(廢寺)되는 운명을 맞았다. 주어사는 1776년 즈음에 권철신을 중심으로 강학이 이루어졌다. 주어사 아래에 있는 주어리에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대략 400년 내외 된 나무들이다. 주어사를 오르내린 선각자들이 아마 이 나무 아래서 다리쉼을 했을 ..

천년의나무 2017.06.23

세계 50 트레킹 코스

외국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세계의 이름난 트레킹 코스 50개를 소개한 걸 보았다. 한번쯤 이름을 들어본 유명한 코스가 다 나온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하나도 없다. 일본이나 중국도 마찬가지다. 제일 많이 등장하는 나라는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호주, 네팔 등이다. 서양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쉽다. 내가 걸어 본 길은 랑탕과 밀포드 둘이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 나온 길이 모두 욕심나지만 그럴 정도로 젊지가 않다. 그래도 바라는 게 있다면 안나푸르나, 몽블랑, 산티아고다. 그리고 다시 뉴질랜드에 간다면 여기 소개된 코스를 걸어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어쨌든 가슴이 뛰는 트레일 목록이다. 1. Inca Trail - 위치: 페루 - 길이: 42km - 소요일: 4일 - 최적기: 5월~9월 One ..

길위의단상 2017.06.22

논어[242]

선생님 말씀하시다. "진문공은 속임수를 쓰니 바르지 않고, 제환공은 바르기에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子曰 晉文公 譎而不正 齊桓公 正而不譎 자로가 물었다. "환공이 규를 죽였을 때 소홀은 따라 죽고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사람 구실을 못한 것이 아닐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환공이 제후를 규합할 대 무력을 쓰지 않은 것은 관중의 힘이다. 그이처럼 사람 구실 했지! 그이처럼 사람 구실 했지!" 子路曰 桓公殺公子糾 召忽 死之 管仲 不死 曰 未仁乎 子曰 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 - 憲問 11 진문공과 제환공은 춘추오패로 불린다. 둘 다 공자보다 백 년 전 사람이다. 공자는 제환공에 대한 평가가 후하다. 그런데 제환공을 있게 한 것은 관중이다. 관중과 소홀이 모시던 규가 암살 당했을 때..

삶의나침반 2017.06.21

친구 텃밭

상추를 뜯으러 남양주에 있는 친구 텃밭에 갔다. 서울시에서 시민에게 분양한 텃밭으로 5평 사용료가 3만 원이다. 서울에는 빈 땅이 없으니 경기도에까지 이런 농장을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이런 지원은 매우 바람직하다. 넓은 터에 온갖 작물이 자라고 있는데 주인의 정성에 따라 차이가 크다. 친구 텃밭은 그중에서도 A급에 속한다. 쌈채소 네댓 종류에 감자, 고구마, 아욱 등 다양하게 심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지만 인간의 유전자는 수렵채집과 농경 시대의 생존 본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근대는 한순간에 불과하다. 진화적으로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그래서 흙을 만지고 작물을 가꾸는 데서 느끼는 만족감은 생래적이다. 산업과 기술이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사진속일상 2017.06.20

나의 산티아고

바란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달할 수 없는 꿈도 있다. 나에게는 산티아고가 아직 그러하다. 그 길에 서고 싶지만 자신이 없다. 체력적인 이유는 아니다. 지금은 그저 다른 사람의 체험으로 간접 경험을 한다. 이 영화 '나의 산티아고'는 독일의 인기 코미디언인 하페가 과로로 병을 얻어 수술을 받고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생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산티아고를 걸은 이야기다. 42일 동안 800km를 걸었다. 산티아고를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하루에 20km 넘게 걸어야 하는 건 고행에 가깝다. 인기 연예인에게 산티아고의 숙소나 음식은 견디기 힘든 조건이다. 더구나 각자 다른 사연으로 길을 찾아온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외로움과 정면으로 대..

읽고본느낌 2017.06.19

나쁜 엄마 / 고현혜

이런 엄마는 나쁜 엄마입니다 뭐든지 맛있다고 하면서 찬밥이나 쉰밥만 드시는 옷이 많다고 하면서 남편의 낡은 옷까지 꿰매 입는 아픈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면서 밤새 끙끙 앓는 엄마 한평생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고 왠지 죄의식을 느끼며 낮은 신분으로 살아가는 엄마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하면서 딸에게 자신의 고통이 전염될까 봐 돌 같이 거친 손과 가죽처럼 굳은 발을 감추는 엄마 이런 엄마는 정말 나쁜 엄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모두 헌신하고 더 줄 게 없어 자식에게 짐이 될까 봐 어느날 갑자기 눈을 뜬 채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엄마는 정말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뜻한 밥을 풀 때마다 고운 중년 부인의 옷을 볼 때마다 뒷뜰에 날아오는 새를 "그랜마"라고 부르는 아이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식 가슴에 못 박히게 하..

시읽는기쁨 2017.06.18

빈집

고령사회가 되면서 일본의 빈집이 800만 채가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전체 주택 수 대비 비율로는 13.5%에 해당한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경향이 지속되면 2030년에는 전체의 1/3이 빈집으로 변한다고 예상한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인구 감소로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이미 수두룩하다. 이것은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 것 같다. 젊은 사람이 농촌에서 살 리가 없다. 수입, 자녀교육, 문화생활 등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귀농 지원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촌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꿀 때가 되었다. 도시인은 전원생활을 그리워한다. 닷새는 도시에서, 이틀은 시골에서 보내는 '5도2촌'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삶은 도시인의 로망이다. 그러나 누구나 세..

참살이의꿈 2017.06.17

물의정원 꽃양귀비

6월은 꽃양귀비의 계절이다. 꽃양귀비는 한 송이보다도 이렇게 군락으로 피어 있으면 더 아름답다. 꽃양귀비는 중국에서 우미인초(虞美人草)로 불린다. 우미인은 항우와 마지막을 함께 한 여인이다. 양귀비나 우미인 모두 절세의 미를 뽐냈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물의정원 공원이 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여름에는 꽃양귀비 꽃밭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강과 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멋있다. 눈호사를 하고 싶을 때 찾아가 볼 만하다.

꽃들의향기 2017.06.16

양자산에 오르다

양자산(揚子山)은 경기도 광주와 여주의 경계에 있다. 해발 710m로 경기 남부에 있는 산으로는 꽤 높다. 양자산 정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체관측소가 들어설 후보지 중 하나였다. 그만큼 청정 환경 지역이었다. 주어리 마을회관을 들머리로 해서 양자산 등산에 나섰다. 수도권 산이라도 평일에 들면 거의 사람을 보지 못한다. 한적해서 좋기도 하지만 약간 무서울 때도 있다. 이번에도 그랬다. 네 시간 정도 산에 있는 동안 등산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양자산은 경사가 상당하다. 능선을 제외하고는 거의 급경사다. 걷기에는 만만치가 않다. 더구나 초여름이라 날벌레와 산모기도 많다. 뉴질랜드 갈 때 산 얼굴에 쓰는 방충망이 아니었다면 꽤 힘들었을 것이다. 정작 뉴질랜드에서는 안 쓰고, 국내 ..

사진속일상 2017.06.15

논어[241]

선생님이 공숙문자에 대하여 공명가더러 물었다. "사실일까요? 그 분은 말도 않고, 웃지도 않고, 받지도 않았다니." 공명가가 대답했다. "그런 이야기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 분은 할 때라야 말을 하니 사람들은 그 말에 지치지 않고, 즐거워야 웃었으니 사람들은 그 웃음에 지치지 않고, 합당해야만 받으니 사람들은 그가 받는 것을 괴롭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랬던가요! 정말 그랬을까요!" 子問 公叔文子於公明賈曰 信乎夫子 不言 不笑 不取乎 公明賈對曰 以告者過也 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樂然後笑 人不厭其笑 義然後取 人不厭其取 子曰 其然 豈其然乎 - 憲問 10 무슨 일인지 공자는 위나라 정치인인 공숙문자에 대해 관심이 있어 보인다. 공숙문자는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을 해야 할 ..

삶의나침반 2017.06.14

능내리 느티나무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고향이다. 이곳도 전에는 광주군에 속했다. 강에서 떨어져 예빈산 쪽으로 들어간 동네에 이 느티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 500년, 나무 높이 16m, 둘레 5m로 되어 있다. 그러나 눈짐작으로는 500년까지는 되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마을은 예쁜 전원주택이 많이 들어와 있다. 나무는 마을 위쪽에 있는데, 옛날에도 여기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다. 그 흔적이 이제 나무로만 남아 있다.

천년의나무 2017.06.14

사피엔스

다섯 달 전에 이 책을 사서 읽었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흥미도 있어 단숨에 독파했다. 인간 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많아 책상 위에 두다가 이번에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이라는 부제대로 동물에서 출발한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정복자가 되었는지를 묻고 밝힌다. 지금 우리는 자연선택에 의한 유기적 생명의 시대에서 지적 설계에 의한 비유기적 생명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사피엔스가 근본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불장난으로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사피엔스는 전혀 새로운 종으로 대체될 것이다. 사피엔스의 종말이 눈앞에 왔다. 아마 우리가 사피엔스의 거의 마지막 세대에 가까워졌다. 저자는 사피엔스가 20만 년 전에 등장해서 지..

읽고본느낌 2017.06.13

굴뚝 / 윤동주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몽기몽기 웨인연기 대낮에 솟나 감자를 굽는 게지 총각애들이 깜박깜박 검은 눈이 모여 앉아서 입술에 꺼멓게 숯을 바르고 옛이야기 한 커리에 감자 하나씩 산골작이 오막살이 낮은 굴뚝엔 살랑살랑 솟아나네 감자 굽는 내 굴뚝 / 윤동주 동생은 새집을 지으며 군불을 때는 방을 만들었다. 한쪽 벽으로 아궁이와 굴뚝이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다. 마당에는 어머니가 해 놓으신 나뭇더미가 있다. 오래된 나무는 한쪽에서 삭아간다. 이젠 사라진 풍경이 되었지만 취사와 난방을 전부 땔감으로 하던 시절에는 저녁이 되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아이들은 뒷산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모았고, 어른들은 도시락을 싸들고 먼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민둥산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대식 주택에서..

시읽는기쁨 2017.06.12

전주천 걷기

둘째의 눈물바람을 뒤로 하고 전주천에 나갔다. 한 시간 정도 걸으니 무거웠던 발걸음이 풀리는 듯했다. 돌아올 때는 가속을 붙여 땀으로 몸을 적셨다. 찬물로 샤워를 했고, 그때쯤에는 둘째의 서러움도 풀어져 있었다. 어찌 되었든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간다. 누가 도와줄 수 없다. 제가 풀고 제가 견뎌내야 한다.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 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좀 더 튼실해졌으면 좋겠다. 전주천을 걸은 지 꽤 오래되었다. 퇴직하고 오히려 걸을 여유가 없었다. 점심 약속이 아니었다면 이 길의 끝까지 걷고 싶은 날이었다. 종아리를 문지르며 발바닥을 두드리며 종일 걷고 싶다. 그렇게 하면 삿된 마음의 때가 후루룩 벗겨질 것만 같다.

사진속일상 2017.06.11

부자를 질투한다

요사이 부자들은 돈만 많은 게 아니라 교양미도 갖추었다. 전에는 졸부라고 비난하면서 정신적 우위를 자부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안 된다. 도리어 부자들이 예의를 갖출 줄 알고 겸손하다.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다. 부자의 기준은 뭘까? 도시에 빌딩 하나쯤은 소유하고 있고, 월 소득이 3천만 원 이상이 되면 부자 소리를 들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이 정도 되면 상위 1%에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경제개발 시기에는 갑자기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무식한 사람이 돈벼락을 맞으면 꼴불견으로 손가락질을 당한다. 그런 행동에 돈 없는 사람은 정신적 자위를 한다.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부가 대물림하면서 자식들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해외 유학은 필수다. 노는 물이 다른 것이다. 지적이나 정서적..

길위의단상 2017.06.09

백마산길을 걷다

지난해 이맘때 트레커에서 백마산길을 걸었는데, 올해는 나 홀로 같은 코스를 밟았다. 여럿이 시끌벅적한 것보다는 혼자 걷는 산행이 나에게는 맞는다. 평일 백마산 능선은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다. 사람 소리는 거의 들을 수 없다. 금년 들어서는 등산을 거의 하지 못했다. 지지난달에 어쩌다 축령산에 오른 게 전부다. 다시 산과 친해져야겠는데 체중이 불어선지 몸이 무겁고 게을러지고 있다. 아무래도 심기일전해야겠다. 산에 들면 산으로부터 받는 기가 있다. 몸은 피곤해도 활기가 돋는다. 도시 길을 걸을 때와는 완연히 다르다. 산의 정기를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침묵 속에서 걷는 게 좋다. 정신을 흩트리지 말고 자연에 나를 맡겨야 한다. 산길을 걷는 것은 육체의 활동과 함께 정신의 정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럴 때..

사진속일상 2017.06.08

논어[240]

자로가 완성된 인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장무중의 지혜, 공작의 무욕, 변장자의 용기, 염구의 재주에다가 예의와 음악으로 문체를 내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요즈음 완성된 인간은 그런 것까지도 없습니다. 잇속에 당면해서는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에 직면하여 목숨을 바치고, 오래된 약속도 평생토록 잊지 않으면 완성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子路問 成人 子曰 若臧武仲之知 公綽之不欲 卞莊子之勇 염求之藝 文之以禮樂 亦可以爲成人矣 曰 今之成人者 何必然 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平生之言 亦可以爲成人矣 - 憲問 9 텍스트의 번역대로라면 자로는 선생의 가르침에 맞설 정도로 당돌하다. 자로의 성격에 비춰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다수의 번역에서는 뒤의 말도 공자의 ..

삶의나침반 2017.06.06

나, 다니엘 블레이크

현대 사회의 복지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영화다. 무대는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영국이다.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병에 걸려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탈락하고 소송까지 간다. 실업수당마저 만만치 않다. 그런 과정에서 규정과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공무원 때문에 특히 고통을 받는다. 이 영화는 법과 원칙, 매뉴얼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잘 보여준다. 전 정권에서 법과 원칙을 그렇게 강조했지만 결국 약자에게만 가혹한 결과가 되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블레이크의 말이 의미하는 바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좌절하지..

읽고본느낌 2017.06.05

동생네 집

고향에 새로 지은 동생네 집이 완성되었다. 공사를 시작한지 한 달 반 만에 새집으로 입주했다. 워낙 솜씨가 좋아서 동생이 직접 인부들을 써서 완벽하게 지었다. 상급 자재를 쓴 내실 있는 목조주택이다. 아흔 가까이 되어 자식이 곁에 오니 어머니도 무척 기뻐하셨다. 나도 한시름을 놓았다. 대신 내집을 잃은 허전함도 있다. 동네 사람들과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 집들이를 했다. 동생에게는 고마운 마음과, 첫째의 역할을 못하는 미안함이 겹친다. 새집이 동생네와 어머니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길 빈다.

사진속일상 2017.06.04

운명 / 도종환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 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 치열한 희망으로 바꿔온 그 순간을 순간의 발자욱들이 보이십니까 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 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며 이겨낸 승리 수만마리 새 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 같은 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오래 아팠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로 야만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어디에도 담아둘 수 없는 슬픔 어디에도 불지를 수 없는 분노 촛농처럼 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아픔을 노여움 대신 열망으로 혐오 대신 절박함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지는 오월이 오면 나뭇잎처럼 떨리며 이면을 드러내는 상처 우리도 벼랑 끝에 우리 운명을 세워두고 했다는 걸..

시읽는기쁨 2017.06.04

한양도성길 걷기(3)

한양도성길 걷기 세 번째면서 마지막 구간이다. 창의문에서부터 숙정문과 혜화문을 지나 흥인지문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용두회원 여섯 명이 함께 했다. 아침에 소나기가 지나가고 청명한 초여름 날씨가 열렸다. 창의문에서 출입증을 교부 받아 성곽길을 오른다. 30분 가까이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 정상. 이곳에는 DMZ 같은 철조망이 아직 남아 있다. 1968년 무장공비가 침투한 1.21 사태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그 뒤로 49년이나 지났다. 이젠 철거해도 괜찮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양 도성의 북대문인 숙정문. 여기 조금 지나서 출입증을 반납하고 행동이 자유로워진다. 시내에 들어서면 훼손된 성곽이 보인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남아 있으면 다행이다. 혜화문. 옛날 이 부근에 살았..

사진속일상 2017.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