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 32

7년차 풍란

이곳에 이사 와서 샀으니 우리와 함께 한 지 7년째가 된다. 한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여름이면 이렇게 멋진 꽃을 보여준다. 가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 외에는 한 게 없는데, 야생 환경이 아닌 아파트 베란다에서 살아내는 모습이 장하다. 뭇 생명은 어떤 조건에서도 제 몫을 살아낸다. 살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떼를 쓰지 않는다.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작은 풀 한 포기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꽃들의향기 2017.07.31

과하면 체한다

손발이 차서 집안에서 덧신을 걸치고, 잘 때는 수면양말을 신는다. 혈액 순환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젊을 때부터 그랬는데 나이가 드니 증상이 더 심해진다. 찬 방바닥에 맨발이 닿으면 얼음장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발 운동을 권했다. 발 부딪치기인데 두 다리를 쭉 펴고 발을 모은 다음 뒤축은 고정한 채 앞부분을 좌우로 움직여 부딪치는 운동이다. 발에 자극을 주니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열심히 따라 했다. 다다익선이라고 많이 할수록 좋다고 해서 욕심을 부렸다. 장난 같아 보이는 운동이지만 실제 해보면 만만치 않다. 다리 근육을 많이 써야 한다. 언제부턴가 엉덩이 근육이 아파오더니 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다. 빨리 효과를 보려는 욕심에 너무 과했던 것 같..

참살이의꿈 2017.07.30

주암리 은행나무

부여에서 대천으로 가다가 우연히 도로 옆 안내판을 보고 찾아간 나무다. 부여군 내산면 주암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 옆 정자에서 홀로 쉬고 있는 할아버지한테서 나무의 내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지금은 넓은 공터로 되어 있지만 몇 해 전까지도 나무 바로 밑에 민가의 지붕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이 영목으로 받드는 은행나무라면서 몇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나라에 큰 변고가 생기면 나무도 상처를 입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던 밤에 큰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이 나무의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당신이 직접 보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할아버지는 이 은행나무가 수령이 1,500년이나 된 우리나라 최고령 은행나무로 믿고 있었다. 전설에는 백제의 사비 천도를 전후하여..

천년의나무 2017.07.29

담박 / 정약용

담박을 즐기니 한 가지 일도 없어 타향의 살림살이 외롭지만은 않네 손님 오면 꽃 아래로 시권을 가져오고 중 떠난 침상 곁엔 염주가 남아 있지 한낮이면 채마밭에 벌이 한창 붕붕대고 따순 바람 보리 이삭 꿩이 서로 부르누나 우연히 다리 위서 이웃 영감 만나 조각배 함께 타고 진탕 마실 약속했네 - 담박 / 정약용 淡泊爲歡一事無 異鄕生理未全孤 客來花下携詩券 僧去牀間落念珠 菜莢日高蜂正沸 麥芒風煖雉相呼 偶然橋上逢隣수 約共扁舟倒百壺 - 淡泊 / 丁若鏞 '담박(淡泊)'이란 말이 좋다. '물 맑을 담(淡)'에 '머무를 박(泊)'이다. '담백함에 머무르다'는 뜻이겠다. 욕심 없고 순박한 마음, 무위(無爲)의 마음이다. 무엇을 인위적으로 함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다. 손님이 찾아오면 꽃 아래서..

시읽는기쁨 2017.07.28

홍산객사 은행나무

홍산(鴻山) 객사는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에 있다. 객사(客舍)란 관청의 손님이나 사신이 유숙하던 건물이다. 1838년에 재건한 홍산 객사는 가운데에 정당을 두고 좌우에 익실을 붙였다. 동쪽 익실은 대청마루이고, 서쪽 익실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수령이 700여 년인 이 은행나무는 홍산객사 안에 있다. 나무 높이는 15m이고, 줄기 둘레는 7.5m다. 마을의 정자나무이기도 한데 재난이나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울기도 하고 불빛이 나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정월 초하룻날에 제를 올리는 풍습이 있었다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천년의나무 2017.07.27

논어[247]

선생님 말씀하시다. "옛날 공부는 자기를 위한 것이더니, 요새 공부는 남 때문에 하거든." 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 - 憲問 16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의 의미를 바로 할 필요가 있다. 위기(爲己)라고 하면 나의 명성을 위한 이기적인 공부로, 위인(爲人)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세상을 낫게 하려는 공부로 오해하기 쉽다. 사실은 반대다. 공부의 목적은 자기 완성에 있다. 바른 인간이 되기 위해 하는 공부가 위기지학이다. 그 연후에 세상으로 나아간다. 반면에 위인지학은 처음부터 타인을 의식하는 공부로 출세를 지향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는 공부다. 공부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는 데 따른 공자의 한탄이 이 말씀에 있다.

삶의나침반 2017.07.27

글쓰기의 최전선

이 책의 저자인 은유 작가를 안 건 오래되었다. 팔 년쯤 전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이라는 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때는 작가가 본격적으로 글쓰기 지도에 나서기 전이었다. 블로그에서는 아이들 교육 문제나 일상의 고민을 진솔하게 고백해서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글에는 이 야만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뇌가 있었다. 블로그를 자주 찾게 된 건 작가의 뛰어난 글쓰기 솜씨도 한몫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작가는 글쓰기 지도에 전념하게 되었고, 그 뒤로 블로그에는 소홀한 듯하여 아쉬웠다. 은 그동안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얻은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글쓰기 지도 방식은 독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같이 책을 읽고 생각 나누기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다. 글쓰기의 기교보다..

읽고본느낌 2017.07.26

손주와 여름 휴가

손주 따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나는 기사 역할을 맡았다. 장마의 막바지여서 여행 내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가끔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2박을 했다. 부여 롯데리조트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건물이다.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에 신경을 쓴 것 같다. 현재를 살지만 우리도 과거의 씨줄과 얽히며 삶의 무늬를 그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과거의 사연이 있다. 놀러 온 사람이 있고, 그걸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 부모를 잘 만나 땀 흘리지 않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근면하게 노동을 해도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옆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손주에게 부여를 설명하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오직 물놀이가 좋은 나이다. 가족이 아..

사진속일상 2017.07.25

대조사 소나무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대조사(大鳥寺)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미륵불이 있다. 신체 비례가 어울리지 않고, 조각 기법이 세련되지 않은 점 등이 이 지방의 미륵신앙을 잘 보여주는 석불이다. 세련되지는 않아도 사바세계로부터 구원을 바라는 민초의 염원을 표상하는 모습이다. 이 미륵불 옆에는 바위 틈에서 자라난 노송이 있다. 앞에서 보면 마치 미륵불을 감싸듯 보호하는 모양새다. 수령이 300여 년 정도이고, 나무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1.5m다. 그런데 3년 전 폭설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미륵불의 보관을 때려서 파손 되었다고 한다. 지금 원형 복구 작업이 한창이다. 미륵불 쪽으로 방향을 튼 소나무의 선한 의도는 오로지 인간의 해석일 뿐인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년의나무 2017.07.25

잡초 비빔밥 / 고진하

흔한 것이 귀하다. 그대들이 잡초라고 깔보는 풀들을 뜯어 오늘도 풋풋한 자연의 성찬을 즐겼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은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숱한 맛집을 순례하듯 찾아다니지만, 나는 논 밭두렁이나 길가에 핀 흔하디흔한 풀들을 뜯어 거룩한 한 끼 식사를 해결했느니. 신이 값없는 선물로 준 풀들을 뜯어 밥에 비벼 꼭꼭 씹어 먹었느니. 흔치 않은 걸 귀하게 여기는 그대들이 개망초 민들레 질경이 돌미나리 쇠비름 토끼풀 돌콩 왕고들빼기 우슬초 비름나물 등 그 흔한 맛의 깊이를 어찌 알겠는가. 너무 흔해서 사람들 발에 마구 짓밟힌 초록의 혼들, 하지만 짓밟혀도 다시 일어나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나니, 그렇게 흔들리는 풋풋한 것들을 내 몸에 모시며 나 또한 싱싱한 초록으로 지구 위에 나부끼나니. -..

시읽는기쁨 2017.07.21

건강에 관한 어떤 생각

이웃 블로그에서 본 글이다. 일본 의사가 쓴 것 같은데 병과 건강에 관한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내용이다. 일부 지나치다 싶은 견해도 있지만 대체로 공감이 간다. 약과 의사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충고다. 특히 암에 대해서는 현대의 치료법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다. 자연 치유라고 할까, 내버려두면 낫는다는 생각에 전체적으로 깔려 있다.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1. 환자는 병원의 돈줄이다. 의료도 비지니스이며, 그것이 의사의 생계 수단임을 알아야 한다. 2. 병원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빨리 죽는다. 40여 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지켜본 결과, 장기를 절제해도 암은 낫지 않고 항암제는 고통을 줄 뿐이다. 3. 노화 현상을 질병으로 봐서는 안 된다. 나이가 들면 혈관은 탄력이 떨어지고 딱딱해지..

길위의단상 2017.07.21

용소막성당 느티나무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때 중앙선 열차를 타고 고향을 오갔다. 서울로 갈 때 왼쪽 자리에 앉아 있으면 멀리 이 성당이 보였다. 나무가 있는 풍경이 평화스럽게 보여서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까지 오래 바라보곤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던 대여섯 시간 동안 창밖을 스친 풍경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특히 성당을 둘러싼 나무의 인상이 깊었다. 언젠가는 저 성당에 찾아가 봐야지, 하고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만에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느티나무는 옛날의 느낌처럼 아름답고 단정했다. 오래된 성당 건물도 운치 있고 경건했다. 성당과 느티나무가 어울린 풍경이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켰다. 원주시 신림면에 있는 용소막성당은 시잘레 신부가 1915년에 완공하였으니 백 년이 넘었다. 전통적인 성당 건축의 ..

천년의나무 2017.07.20

혼자 있고 싶은 병

혼자 있고 싶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혼자 있고 싶다. 나만큼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자꾸 더 혼자 있고 싶어진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귀찮다. 한둘 정도 잠깐 만나는 일이야 괜찮지만 여럿이 모이면 너무 피곤하다. 나는 천성적으로 고독한 동굴인인가 보다. 혼자서 빈둥거릴 때가 제일 행복하다. 산에 갈 때도 주로 혼자다. 이유는 없다. 혼자 걷는 게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이런 증상이 더 심해졌다. 심지어는 손주가 찾아와도 빨리 돌아갔으면 싶다. 물론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혼자 지낸다고 외로운 건 아니다. 혼자 있는 데 재미를 붙이면 스스로 고독을 선택하게 된다. 선택한 고독은 쓸쓸하지 않다. 내적으로 충일한 고독이 있고, 즐거운 고독도 있다. 나는 고독의..

참살이의꿈 2017.07.19

논어[246]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위로만 틔고, 하찮은 위인은 아래로만 틘다." 子曰 君子上達 小人下達 - 憲問 15 젊어서 교회 나갈 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라는 가사의 찬송가를 좋아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이 그려져 있다. 공자 역시 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공자의 '군자는 상달(上達)하고, 소인은 하달(下達)한다'의 느낌은 앞의 둘과는 다르다. 종교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않은, 현실적인 영역의 일이다. 진리는 지금 이 자리, 삶의 현장에 있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한 정진 그 자체에 인생의 의의가 있다고 공자는 말하는 것 같다.

삶의나침반 2017.07.18

에이리언 커버넌트

에이리언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는 거창하다. 인류의 시작과 끝이다. 에이리언은 단순한 우주 괴물 이야기가 아니라, 창조와 파괴에 대한 거대한 서사라 할 수 있다. 엄청한 주제를 그런대로 잘 그려내고 있다. 신작 '에이리언 : 커버넌트'는 인류의 미래에서 AI의 역할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자의식을 갖게 된 AI는 인류는 파멸시키는 데 앞장 선다. 영화에서는 두 AI가 나온다. 선한 월터와 악한 데이빗이다. 그러나 나중에 보면 둘은 마치 공모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는 프로그램이 어떻게 되든 창조와 파괴에 대한 본능을 갖고 있게 되는지 모른다. 결국은 인류를 멸종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우주를 지배하려 한다. 정확한 결말은 속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A..

읽고본느낌 2017.07.17

성호저수지 연꽃

이천 성호저수지 한쪽에 아담한 연꽃밭이 있다. 세미원이나 관곡지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이곳은 연꽃보다 개개비를 찍으러 오는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개개비는 몸집이 작은 여름 철새다. 그러나 재재거리며 짝을 찾는 소리는 들판을 울린다. 내가 갔을 때도 연꽃밭에 개개비 노랫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개개비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낮이라 햇볕이 너무 따가워 연꽃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이 예쁘게 가꾸려는 정성이 느껴지는 연꽃밭이었다.

꽃들의향기 2017.07.16

은현리 천문학교 / 정일근

내 사는 은현리 산골에 별을 보러 가는 천문학교가 있다. 은현리 천문학교에서 나는 별반 담임선생님. 가난한 우리 반 교실에는 천체망원경이나 천리경은 없다. 그러나 어두워지기 전부터 칠판을 깨끗이 닦아놓는 착한 하늘이 있고, 일찍 등교해서 교실 유리창을 닦는 예쁜 초저녁별이 있다. 덜커덩 덜커덩 은하열차를 타고 제 별자리를 찾아오는 북두칠성 같은 덩치 큰 별들이 있고, 먼 광년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별도 있다. 오래 전 나도 별과 같은 학생이었다. 그 때의 우리들처럼 별들도 여간 말썽꾸러기가 아니다. 내가 출석을 부르는 사이 슬쩍 자리를 바꾸어 앉는 개구쟁이별이 있고, 시간시간 붉은 옷 노란 옷으로 갈아입는 멋쟁이별도 있다. 그러나 나는 별들을 야단치지 않는다. 혹시 별이 울어 버릴까 두..

시읽는기쁨 2017.07.15

행구동 느티나무

나무를 처음 봤을 때 와, 하는 감탄사가 나올 때가 가끔 있다. 이 나무가 그랬다. 크고 오래된 것은 둘째치고, 모습이 예쁘고 단정하다. 쓰다듬어 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1.000년으로 되어 있다. 정말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나무줄기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무 높이는 22m, 줄기 둘레는 8.5m다. 나무가 자라는 주변 환경도 넓고 여유가 있다. 나무 아래에는 평상이 두 개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어르신을 위한 게이트볼장이 있어서 운동 후 여기서 쉬기에 좋다. 나무에서 느껴지는 기운 밝고 환한, 치악산 아래 원주시 행구동 오리골에 있는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7.07.14

5000

블로그 글 수가 드디어 5,000개가 되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날은 2003년 9월 12일이다. 하루에 하나씩 글을 올리자고 다짐했는데 그때로부터 5,052일이 지났다. 1D1P[1 Day 1 Post]는 꾸준한 블로거의 상징이다. 불가피하게 어긋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이 약속을 지켰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일차 목표가 글 수 5,000개였다. 십삼 년 열 달 만에 그 목표에 이르렀다. 블로그 내용은 하찮더라도 나의 꾸준함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나에게 '성실상'을 주고 싶다. 이렇게 초지일관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글쓰기가 내 생활과 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블로그를 하기 전부터 시 읽기는 매일의 습관이었다.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읽기로 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시 ..

길위의단상 2017.07.12

장마 지나는 경안천

장마철이다. 연나흘 비가 내리다가 잠시 그치고 햇빛이 환하다. 경안천에 나가니 바닥의 열기와 물비린내가 섞인 계절의 냄새가 진하다. 가물 때는 비를 바랐는데, 막상 비가 연일 쏟아지니 구름이 야속하다. 인간의 장단을 맞추자면 하늘도 피곤할 것 같다. 땡볕에서 한 시간 넘게 걸으니 몸이 흐느적거린다. 이런 날에 배낭 메고 나오는 사람이 이상한 거지. 더울 때는 다리 밑이 최고다. 다리 밑은 왜 시원할까? 물, 그늘, 바람의 삼박자를 갖춘 곳이 다리 밑이다. 특히 다리 구조물 때문에 주위보다 바람이 더 세게 불 수밖에 없다. 베르누이의 원리다. 할 일이 없다 보니 별스런 생각을 다 한다. 벽화에 적힌 '배려 대한민국, Better Korea'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배려'와 'Better'를 연관시킨 발..

사진속일상 2017.07.11

논어[245]

자로가 주군 섬기는 법을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숨기지 말고 따지며 덤벼라." 子路問 事君 子曰 勿欺也而犯之 - 憲問 14 주군에게 충성한다는 것은 이런 자세를 말함이다. 임금이라도 잘못이 있을 때는 가차 없이 따져야 한다. '덤빈다[犯]'는 말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른말을 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뜻이 들어 있다. 이게 선비 정신이다. 마찬가지로 지도자도 알랑방귀만 뀌는 작자를 곁에 두어서는 안 된다. 듣기 거북하더라도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해야 한다. 감히 자신을 '범(犯)'할 수 있는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 이것이 큰 사람이다. 조무래기들만 모여 있던 조정이 어떤 꼴이 났는지는 최근의 사례가 확실히 보여주었다.

삶의나침반 2017.07.11

무한 묘수

두 권으로 된 강철수의 바둑 만화다. 강철수 하면 발바리가 떠오른다. 발바리는 옛날에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면서 상당한 인기를 끈 캐릭터다. 그 발바리 스타일이 이 만화에도 등장한다. 여자 꽁무니만 따라다니던 백수 김달호는 미미라는 여자애를 만난다. 미미는 다섯 살인데 굉장한 바둑 고수다. 는 이 둘이 합작하여 내기 바둑을 두며 돈을 따먹는 이야기다. 달호가 철딱서니 없는 청년이라면 다섯 살 미미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네 같다. "멋있는 여자를 만나고 싶으면 자신이 멋있는 사람이 되라!" 이것이 유치원 다닐 아이가 할 소린가 말이다. 이런 비현실적인 두 캐릭터에 강철수의 가벼운 유머가 입혀져 만화는 경쾌하고 흥미롭다. 특히 바둑의 진행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은 긴장감으로 아슬아슬하다. 바둑을 어느 정도 둘 ..

읽고본느낌 2017.07.10

까치수영(2)

아직도 이름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꽃이다. 까치수염이라고도 하는데 어디에서 까치나 수염과 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여름 산길이 힘들어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활력을 주는 꽃이 까치수영이다. 같은 꽃대에서 순백의 꽃이 시차를 두고 사이좋게 피어난다. 꼬리 끝은 아직 꽃봉오리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반대쪽은 만개했다. 아주 느린 파도타기를 보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7.07.09

잠꼬대 아닌 잠꼬대 /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시읽는기쁨 2017.07.08

화성 걷기

35℃도까지 치솟은 땡볕 날이었다. 폭염주의보도 내려졌다. 더구나 장마철이라 후덥지근까지 했다. 그래도 용두회에서 수원 화성 걷기에 나섰다. 더위 탓인지 약속을 취소한 친구도 있었다. 화성은 9년만에 다시 찾았다. 전체로는 세 번째다. 화성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성이라고 생각한다. 군사용이기보다는 미학적으로 설계된 것 같다. 화성에서 제일 높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 화성장대(華城將臺). 화성에 주둔했던 장용외영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정조는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지휘했다고 한다. 서북각루(西北角樓). 각루란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하는 시설이다. 비상시에는 군사지휘소 역할도 한다. 화서문(華西門).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이다. 성문 원래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진속일상 2017.07.07

대물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쩌다 아버지 옆에서 잠자게 되면 숨소리조차 내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따라서 아버지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서워할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들은 기억도 별로 없는데,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서웠던 것 같다. 아버지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셨다. 동네 사람들도 아버지를 어려워했다고 뒤에 들었다. 아버지가 길을 가시면 미리 피했다고 한다. 나는 한 번도 아버지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면장으로 계실 때 지역 국회의원이 면사무소를 방문했다. 국회의원이라고 내가 왜 마중 나가냐며 아버지는 면장실에서 그를 맞았다고 한다. 그만큼 꼿꼿하신 분이었다. 내가 자식을 키우면서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바가 한..

참살이의꿈 2017.07.05

논어[244]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무렇게나 이야기해 버리면 실행할 때 곤란하지." 子曰 其言之不작 則爲之也難 - 憲問 13 공자는 여러 차례 말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한다.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말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군자는 어눌하다"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군자는 말을 머뭇머뭇, 조심하기 때문에 어눌해 보일 것이다. 항상 세 치 혀에서 문제가 생긴다. 삼가고 삼가야 할 것이 말이다. 그런데 나는 30년 넘게 말로 하는 직업을 갖고 살았으니, 그 허언(虛言)이 어느 정도였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삶의나침반 2017.07.04

밖에서 본 한국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술된 역사는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낫다. 후대의 올바른 역사 해석은 편향된 거품을 얼마나 잘 걷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역사의 주체를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른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새 정권 들어 국정 역사교과서 사태가 해결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김기협 선생의 는 우리 역사를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다. 안에서 쓴 한국사는 민족의 역사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미화하려 한다. 이것이 지나치면 국수주의가 된다. 자신을 똑바로 성찰하지 못하면 정신의 절름발이가 된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마찬가지다. ..

읽고본느낌 201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