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 25

타고나야 해

은퇴한 야구 선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구의 자질은 타고난다고 한 마디로 단언했다. 연습벌레로 소문난 유명 야구 선수도 자신이 옆에서 봤을 때 타고난 타격의 재질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노력이 더해져서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었겠지만 어떤 수준 이상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성공한 야구 선수들의 천재성과 노력의 비율을 9:1까지 봤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어온 에디슨의 말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는 선한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거짓말이란 걸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학생일 때 반에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친구가 있었다. 시험 기간이 되어 우리가 약을 먹어가며 밤을 새워 책과 끙끙댈..

참살이의꿈 2017.10.30

논어[260]

자로가 참된 인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몸단속을 잘 하면서 사람됨이 경건하다." "그러면 그만인가요?" "몸단속을 잘 하면서 뭇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그러면 그만인가요?" "몸단속을 잘 하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 몸단속을 잘 하면서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은 요, 순도 애태웠던 일이다." 子路問 君子 子曰 修己以敬 曰 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人 曰如斯而已乎 曰 修己以安百姓 修己以安百姓 堯舜其猶病諸 - 憲問 29 군자됨의 기본은 수신(修己)다. 그를 바탕으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길로 나아간다. 수신제가 연후에 치국평천하로 확장하는 것이다. 제 몸단속도 못 하는 사람이 명예욕만 키울 때 어떤 불행을 자초하는지는 우리가 늘 보게 되는 바다. 세상을 혼란케 하는 ..

삶의나침반 2017.10.29

과천에서 사당으로

가을 짙어가는 때에 과천에서 사당으로 관악산을 넘었다. 사당에서 약속된 저녁 모임에 나가는 길에 가벼운 등산을 했다. 과천향교에서 마당능선을 따라 연주대로 올랐는데 한적해서 전에 자주 다녔던 길이다. 관악산은 붉은 단풍과는 거리가 멀다. 참나무 종류만 있기 때문이다. 가을의 갈색은 쓸쓸한 느낌을 준다. 화려한 단장이 아닌 수수한 모습이 오히려 가을 분위기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낮 기온이 20도를 넘어서며 여름이 다시 찾아온 듯했다. 어떤 사람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지만 서울 상공은 뿌연 매연층이 덮고 있었다. 그래도 올 여름과 가을은 미세먼지 걱정을 덜 해서 다행이었다. 시간 여유가 많아서 자주 쉬면서 느릿느릿 걸었다. 내려가는 길, 등 뒤에 내려앉는 가을 햇살이 ..

사진속일상 2017.10.28

밥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 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숫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시읽는기쁨 2017.10.25

연대기, 괴물

올해 나온 임철우 작가의 소설집이다. 일곱 편의 중,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전쟁의 처절함 대신 현대 문명에서 소외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뭔가 체한 듯한 느낌은 마찬가지다. 이번 소설집인 에는 인생의 가련함이 특히 두드러진다. 첫 작품인 '흔적'은 여객선에서 바다로 뛰어내려 자살하는 70대 독거남이 주인공이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산속에서 홀로 지내던 당신은 갈 때가 다가왔음을 알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연대기, 괴물'은 지하철에서 자살하는 60대 노숙자의 이야기다. 전쟁의 상흔이 그를 폐인으로 내몰았다. '세상의 모든 저녁'은 쪽방에서 독거사한 한 노인의 슬픈 이야기다. '간이역'에는 암에 걸린 아내와 함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젊은 부부가 나온다. '이야기 집'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 같다. 단추눈아..

읽고본느낌 2017.10.24

자발적 고독

'자발적 가난'이 조용한 흐름을 타고 있다. 서구에서부터 시작된 '심플 라이프(Simple Life)' 운동의 일환이다. 재물을 더 모으려 하지 않고, 실생활에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은 없애며, 간소한 삶을 지향한다. 요사이는 '자발적 고독'이라는 말도 간간이 들린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자면 자발적 고독 역시 자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자발적 가난과 무관하게 인간관계가 피곤해서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자발적 고독은 부정적 의미의 고독과는 다르다. 대인기피증이나 노년에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외로움은 본인 의사와 별개로 스트레스를 주는 고독이다. 그러나 자발적 고독은 스스로가 선택한 삶의 태도다. 경쟁 사회에 대한 저항이자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한 나름의 투쟁이다...

참살이의꿈 2017.10.23

논어[259]

선생님 말씀하시다. "윗사람이 예법을 좋아하면 백성들도 부리기 쉽다." 子曰 上好禮 則民易使也 - 憲問 28 상(上), 민(民), 사(使) 같은 용어에는 거부감이 든다. 상(上)은 하(下)를, 민(民)은 인(人)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2,500년 전의 인식 체계를 지금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할 수는 없다.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나라가 잘 돌아간다, 쯤으로 가볍게 해석하면 될 듯하다. 위정자들부터 정신을 차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삶의나침반 2017.10.22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 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 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장이 목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또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종소..

시읽는기쁨 2017.10.21

알파고 제로

'알파고 제로' 버전이 새로 나왔다.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학습하고 연구해서 바둑 실력을 키웠다는 점이 기존의 알파고와 다르다. 이세돌과 커제와 대결했던 알파고는 인간의 기보를 바탕으로 실력을 연마했다. 그런데 알파고 제로는 기존 지식을 완전히 배제한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했다. 알고리즘 설계 때 입력된 바둑의 기초 규칙 외에는 인간이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자가 강화학습을 통해 업그레이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알파고 제로가 이전 알파고들을 모두 물리쳤다는 사실이다. 알파고 제로가 인간 기사를 넘어서는 데는 불과 70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알파고 제로는 현존 최고 레벨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제는 인간과 비교하는 게 무의미해졌다. AI의 능력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무서워지는..

길위의단상 2017.10.20

천불동과 선재길 단풍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동쪽으로 떠났다. 1박2일로 잡았고, 설악산 천불동 계곡 외에 다른 곳은 미정이었다. 둘째 날 영동 지방은 비 예보가 있어 날씨에 따라 갈 장소가 변할 수 있었다. 첫째 날은 천불동으로 가기 위해 아침 여섯 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새로 생긴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내린천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설악동으로 들어갔다. 세 시간이 걸렸다. 새 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데 20여 분 대기해야 했다. 주차료 5천 원에 신흥사 입장료 7천 원(2인)이었다. 길은 복잡했지만 주차 안내는 친절하고 정확해서 혼잡은 없었다. 신흥사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초입은 넓은 길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숲의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신흥사..

사진속일상 2017.10.19

아버지의 땅

임철우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이렇게 묵직한 글을 읽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마치 러시아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컴컴한 동굴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다. 은 임철우 작가의 단편집이다. '아버지의 땅'을 비롯해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임철우는 주제 의식이 뚜렷한 작가다. 전쟁과 이데올로기, 그리고 체제의 폭력성을 고발하며 인간 존재의 심연을 파헤친다. 둔중하지만 여운이 긴 울림이 있다. 내용은 어둡지만 문체는 간결하고 짜임새가 치밀하다. 단편소설의 전범을 보는 것 같다. 작품 중에서는 '그들의 새벽'과 '사평역'에 호감이 간다. '그들의 새벽'은 거대 폭력에 굴복하며 보신에만 몰두하는 우리들 소시민을 비유적으로 그린다. 이런 태도는 군화 발자국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면, 미세먼지에..

읽고본느낌 2017.10.16

논어[258]

선생님이 위나라에서 경쇠를 치고 있을 때 바구니를 들어 메고 공 선생 집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마음이 있나 보다! 경쇠 치는 것을 보니!" 얼마쯤 있다가 "비루하군! 땡땡거리는 소리가! 몰라주면 그만두면 그만이지.깊으면 잠방이로 얕으면 걷어올리지." 선생님 말씀하시다. "과연 그렇군! 따질 수도 없는 말이다." 子 擊磬於衛 有荷궤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旣而曰鄙哉 갱갱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려 淺則揭 子曰 果哉 末之難矣 - 憲問 27 공자의 경쇠 소리를 듣고 마음을 알아보는 사람도 대단하다. 이 사람은 공자와는 결이 다른 은둔형이다. 이 사람이 볼 때 공자의 처신은 못마땅하다. 굳이 현실에 참여하여 세상을 바꾸려 애쓰는 게 가련하게 보였을 수 있다. 공자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

삶의나침반 2017.10.16

아내와 백마산에 오르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이지만 아내와 함께 한 건 처음이다. 이만큼이나마 걸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나도 여름에는 거의 산에 들지 못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차고 헉헉댔다. 몸은 예민하다. 산에 적응되어 있자면 꾸준한 산행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경안교에서 산 능선을 타고 마름산을 거쳐 백마산을 찍은 뒤, 초월역으로 내려왔다. 휴일인데도 백마산은 호젓할 뿐이다. 서울에서 떨어져 사는 이점이 이런 데 있다. 가을 드는 산길을 자분자분 잘 걸었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시 교외 지역이 많이 변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7년째다. 삭막해서 어찌 살까 싶었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느 곳이나 나름의 장점이 있다. 원래 생각은 5년 정도 살고 더 시골로 내려갈까 했는데, 지금은 떠날 이유..

사진속일상 2017.10.15

사과 한 알

해마다 주로 먹는 과일이 다르다. 어떤 해는 토마토, 어떤 해는 복숭아가 최고의 과일이 된다. 올해는 단연 사과다. 봄부터 습관이 하나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 한 알을 먹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입이 칼칼해서 냉장고에 든 사과를 꺼내 먹었는데 상큼하고 좋았다. 아침에 먹는 사과 한 알은 보약보다 낫다는 말도 생각났다. 그 뒤로 일어나면 자연스레 사과로 손이 가게 되었다. 머리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몸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였다. 가을 들어서는 고향에서 계속 사과가 올라오고 있다. 벌레가 먹어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웃에서 거저 준 것이다. 썩은 데를 도려내면 성한 사과나 별반 차이가 없다. 사는 경우는 낱개로 포장되어 껍질째 먹는 사과를 고른다. 아무래도 정성을 들인..

참살이의꿈 2017.10.15

맘도 두지 말고 / 주미경

빈 땅을 보면 노는 땅 아깝다 그러지 말고 딱정벌레 방 내주고 풀꽃이나 피우면서 한 해 놀게 두자 집도 짓지 말고 콩도 심지 말고 맘도 두지 말고 - 맘도 두지 말고 / 주미경 고향에서 어머니가 부치는 밭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힘에 부쳐서 모두 관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마 내년에는 한 마지기 정도는 놀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에는 노는 땅을 보면 혀를 찼던 어머니지만 이제는 어찌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신다. 빈 자리에 딱정벌레가 찾아오고 풀꽃이 사는 걸 보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갈고 닦고 하는 것보다 가끔은 텅 빈 자리 그대로 두는 것도 필요하다. 이젠 그만 채워 넣어야 한다. 비닐을 걷어내고 비바람 그대로 맞도록 해야 한다. 아이들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

시읽는기쁨 2017.10.14

양재천 백일홍

시골 초가집 장독대에 몇 송이 피어 있으면 잘 어울리는 수수한 꽃이 백일홍이다. 그렇듯 백일홍을 보면 유년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 강남 지역을 지나며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에 백일홍 꽃밭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만들어 놓았다. 이 꽃을 보며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자락쯤 떠올릴 것이다. 떠나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백일홍이다.

꽃들의향기 2017.10.13

종교개혁 500주년

올해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 교회 앞에 게시하고 그릇된 제도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의했다. 루터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가톨릭에 대한 선전포고가 되고 개신교가 출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박문을 읽어 보면 루터가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와도 토론으로는 루터를 당해낼 수 없었을 것 같다. 가톨릭은 교회의 권위를 내세워 루터를 핍박할 수밖에 없었다. 반박문은 베드로 성당 건축에 관한 문제, 교황의 신적 권위, 면죄부의 해악 등을 지적한다. 다만 '종교개혁'이라는 용어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개혁'이라고 불러야 맞다. 젊었을 때 다녔던 교회 목사는 기독교를 종교라 부르는 것도 ..

길위의단상 2017.10.12

양재천 걷기

오랜만에 양재천을 걸었다. 선바위역에서 시작해서 양재시민의숲을 경유해 양재역까지였는데 느릿느릿 두 시간 가량 걸렸다. 용두회 넷이 같이 했고, 둘은 양재동에서 만났다. 흐린 날씨에 간간이 비도 뿌렸다. 양재천은 군데군데 꽃밭이 펼쳐져 있어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났다. 벌써 10월 중순이다. 우리도 인생에서 이 계절쯤을 걷고 있을 것이다. 친구를 통해서 늙어가는 내 모습을 본다. 쓸쓸하고도 안스럽다. 많이 지껄인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의 공허를 드러내는 게 아닐까. 가을꽃으로 자꾸만 눈길이 갔다.

사진속일상 2017.10.11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이오덕 선생과 권정생 선생이 생전에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1973년에 만난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하며 편지를 주고받았다. 당시 이 선생은 마흔아홉, 권 선생은 서른일곱이었다. 아동문학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분은 인생의 도반이 되어 사귀었다. 1976년 5월 31일 권 선생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혹시 만나 뵐까 싶어 버스 정류소에서 서성거려 보았습니다." 숨어 살던 권 선생을 세상에 알린 분이 이오덕 선생이다. 끊임없이 작품 활동을 격려하고, 책 출판을 도와주었다. 권정생 선생이 평생을 병고에 시달린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편지를 보니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 편지에서도 이 선생이 염려할까 봐 제대로 밝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말 목숨을 걸고 썼다는 말이 맞을 것 ..

읽고본느낌 2017.10.10

논어[257]

자로가 석문에서 쉴 때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왔나?" 자로가 대답했다. "공 선생에게서다." "저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해 보겠다는 사람말인가?" 子路 宿於石門 晨門曰 奚自 子路曰 自孔氏 曰 是知其不可 而爲之者與 - 憲問 26 짧은 대화지만 공자에 대한 당시 평가가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안 될 줄 뻔히 알면서도 해 보겠다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공자의 끈질긴 현실 참여 의지가 보인다. 그러나 공자의 주장은 당대 권력자들에게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렸을 수 있다. 그래도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으면서 세상 속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공자의 고군분투는 다수에게는 비아냥거리였는지 모른다. 그런 걸 무시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간 데 공자의 위대함이 있다.

삶의나침반 2017.10.09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밤낮 침대에 누워 있자니 등뼈가 아파서 견딜 수 없다. 그래도 낮에는 정우가 안아서 잠시라도 앉아 있지만 밤에는 누워서 꼼짝 못 한다. 수건을 등뼈 양쪽 깔아 달라 해서 겨우 견디는데 이번에는 발뒤꿈치조차 아프다. 그래도 꼼짝 못 한다. 이건 아주 관 속에 들어가 있는 산 송장이다. 정말 밤마다 나는 관 속에 들어가 생매장되어 있다가 아침이면 살아난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또 죽었다가 살아나고 고것 참 재미있구나. 하루가 새 세상 새 한평생 앞으로 내가 몇 평생 살는지 고것 참 오래 살게 되었네. - 몇 평생 다시 살으라네 / 이오덕 2003년 8월 20일에 쓴 선생의 마지막 시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8월 20일 새벽에 선생은 숨을 거두었다. 8월 14일에 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선생은 검사도..

시읽는기쁨 2017.10.09

동해는 비

고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올라와서는 손주와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되어 전국이 사람 몸살을 앓았다. 11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7시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삼양목장에 들를 계획도 하염없는 거북이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는 차 안에서도 즐거워하며 잘 놀았다. 제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마냥 좋을 뿐이었다. 어디 어디 좋은 데 돌아다닐 구상은 어른들 머릿속일 뿐 지금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부끄러웠다. 정체보다는 앞으로의 비 예보에 우울해 있던 참이었다. 둘째 날, 비 때문에 바깥나들이는 포기하고 삼척의 솔비치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항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 의자에서까지 한참을 이어지고서야 깼다...

사진속일상 2017.10.08

2017 추석

동생이 귀향하고 난 뒤 첫 추석이다. 전에는 내 집이었는데, 이제는 동생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간다. 주인에서 객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뭔가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이번처럼 가벼운 귀성은 없었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너무 울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동생에게 감사하기 그지없다. 조카들이 와서 차례 준비를 한 덕에 시간 여유가 많았다. 아내와 동네 앞 하천의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만 바라지만 말자고, 일가정 일걱정이라고 우리를 달랬다. 저녁에는 동생과 바둑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막내가 늦게 왔다. 어머니가 군불을 ..

사진속일상 2017.10.04

안나푸르나에서 밀크티를 마시다

이 책을 읽으며 8년 전 랑탕과 고사인쿤트 트레킹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새겨졌다. 긴 일정이나 5,000m에 달하는 최고 고도가 저자가 체험한 안나푸르나 라운딩과 비슷했다. 우리도 추운 1월에 히말라야를 걸었다. 다만 우리는 12명의 단체 트레킹이어서 포터만 데리고 홀로 걸은 저자와는 처한 입장이 달랐다. 는 '2014년 1월 1일, 사직서를 냈다'로 시작한다. 33살의 여자는 그렇게 네팔로 떠났다.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을 연이어서 했다. 이 책은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에 대한 기록이다. 히말라야 트레킹에 대한 책은 매우 많다. 신선함과 참신성에서 이 책은 뛰어나다. 문장은 통통 튀는 살아 있는 비유와 재치로 넘쳐난다. 마치 현장에서 같이 걷는 듯 생생하다. 경쾌하고 솔..

읽고본느낌 2017.10.02

논어[256]

선생님 말씀하시다. "현명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고, 그 다음은 지방을 피하고, 그 다음은 눈치를 피하고, 그 다음은 말을 듣고 피한다." 子曰 賢者避世 其次避地 其次避色 其次避言 - 憲問 25 공자의 말이 아니라 도가의 글을 보는 것 같다. 자신의 몸을 보신하기 위해서 은둔하는 것을 공자는 비판했다. 그러나 태백편에서 "찌우둥거리는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말고, 정치 질서가 섰을 때는 나서야 하고, 질서가 깨지면 숨어야 한다[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라고 했으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도 아니다. 세상이 완전히 망가지고 무도하다면 차라리 숨는 게 낫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공자가 실제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었다. 현자피세(賢者避世)는 나도 여주로 내려가면서 써먹은 ..

삶의나침반 2017.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