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0 3

등대지기

한때 등대지기를 꿈꿔 본 적이 있었다. 나처럼 혼자 잘 노는 게 특기인 사람은 누구나 그런 소원을 품어봤을 것이다. 사실 훈장 길에 들어설 때부터 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그나마 무난할 듯하여 선생을 선택했으나 사범 교육을 받으면서 오산이라는 걸 알아챘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했다. 은둔형은 할 직업이 아니었다. 교직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기 때문이다. 첫 발령을 받기 전부터 다른 길을 생각했다. 첫 번째 시도가 신학이었다. 신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Y대 신학대학원인데 당당히 시험을 보고 합격한 것이다. 1년 정도 열심히 공부한 결과였다. 그러나 현실과 꿈 사이에서 갈등 하다가 결국은 접었다. 만약 그때 신학..

길위의단상 2017.11.10

반계리 은행나무(3)

이 나무와는 13년 전에 처음 대면했다. 노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강렬함에 넋을 뺏긴 기억이 난다. 10여 년이 흘렀어도 마찬가지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은행나무 중 제일 선연한 노란 색깔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도 아름답다. 800년 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때에 비해 주변은 잘 정리되었다. 마을 가운데 있지만 공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다. 혼자였다면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지는 석양을 받을 은행잎은 더욱 환상적일 것이라고 상상을 해 본다. 가을이 되면 꼭 찾아보고 싶은 나무 중 하나다.

천년의나무 2017.11.10

용문사 은행나무(4)

이번에는 때가 늦었다. 노란 은행잎이 많이 떨어지고 허전했다. 10월 말에 찾았던 재작년에는 초록 잎새가 남아 있을 정도로 빨랐고, 이번에는 지각을 했다. 절정의 순간을 맞추기가 그만큼 힘들다. 떨어진 은행잎을 쓸어내었는지 나무 아래도 휑해서 아쉬웠다. 이번 길에는 처제와 동서가 동행했다. 입시를 코앞에 둔 자식이 있어서 마음이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 고목을 보면서 좀 더 넓게 세상을 보았으면 한다. 그때는 사소한 일에 왜 그렇게 노심초사했을까, 지나고 봐야 깨닫는다. 인생의 일이란 대부분 그렇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천년의나무 2017.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