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 33

뒷산 조개나물

뒷산이 걷기에는 좋지만 품고 있는 꽃은 빈약하다. 계곡이 발달하지 않고 물이 없는 메마른 산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약간 아쉽다. 그런데 어제는 뒷산에서 꽃밭을 이루고 있는 조개나물을 만났다. 묘지 주위였다. 조개나물은 유난히 묘지에서 잘 자란다. 할미꽃과 비슷하다. 조개나물은 원래 양지 바르고 메마른 땅을 좋아한다고 한다. 잔디가 깔린 묘지가 적지인 셈이다. 가끔 꿀풀과 헷갈리는데 꿀풀은 줄기 윗부분에 꽃이 있는 반면, 조개나물은 아래에서 위까지 촘촘이 나 있다. 흰색과 붉은색의 꽃도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산길에서 그나마 반가운 조개나물이었다. 조개나물꽃과 꼭 닮은 게 금창초(金瘡草)다. '부스럼 창'자를 쓰는데 부스럼 치료에 효과가 있는 풀인 것 같다. 꽃만 보면 조개나물과 금창초를 구별하기 어렵..

꽃들의향기 2018.04.30

노욕은 추하다

인간이 제 몫을 챙기고 재산을 소유하게 된 건 신석기시대에 들어서며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수렵채취시대에는 모아둘 물량이 적었을뿐더러 이동 생활에서 보관이란 생각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탐욕도 농사와 함께 따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 뒤부터는 서로 많이 가지려고 싸움박질이 시작되었다. 사탕이 있으면 아이들도 다툰다. 그러나 아이들의 욕심에는 한계가 있다. 한두 개면 만족하지 수십 개의 사탕을 혼자 독점하려고는 안 한다. 많이 가지고 있다면 다른 아이에게 나누어줄 줄 안다. 동물도 제가 배부르면 더 이상 먹이를 탐하지 않는다. 사자가 수십 마리의 얼룩말을 사냥해서 제 창고에 보관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젊은이의 욕망도 현실적인 이득이 아닌 미래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젊은이의 야망은..

참살이의꿈 2018.04.30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작가의 '가족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러나 소설이라기보다는 작가 가족의 실제 삶을 정감있게 보여주는 글 모음이다. 2011년부터 월간지에 연재된 내용을 책으로 묶었다. 슬며시 미소를 띄게 되다가도 찡해지는 순간이 많다.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삶의 애환이 맛깔스런 문장에 잘 표현되어 있다. 서로를 아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는 마음씨가 곱다. 글 한 편 한 편이 예쁜 삽화 같다. 책의 처음에 적힌 한 문장이 오래 눈길이 간다. "누운 자리는 좁았고,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글 하나를 옮긴다. 이 책 제목으로 인용된 내용이 들어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을 때까지도 책 제목을 착각했다. '여든'이 아니고 '여름'이라니, 나도 여덟 살 꼬맹이에 다름 아니다. 여름이 되면 올해 여..

읽고본느낌 2018.04.30

뒷산을 돌다

화창한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뒷산을 걸었다. 대개 꼭대기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내려오지만 오늘은 한 바퀴 도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네 시간 가까이 걸었다. 날씨 탓이 컸다. 그저께 남과 북의 판문점 선언이 있었는데 이틀 밤이 지나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우리 민족의 앞길도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밝게 열리기를 희망한다. 뒷산 등산로는 지금 공사중이다. 정자가 새로 세워지고 길은 다니기 좋게 정비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이 반듯해지니 걷기에는 편해졌다. 앞으로는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평일에 올라가면 산에 있는 두세 시간 동안 한두 사람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자연에 지나치게 손을 대는 것은 반대지만 어느 정도의 편의 시설은 필요할 것 같다. 작년에 불이 ..

사진속일상 2018.04.29

미황사 / 박남준

미황사까지는 아직 멀다 마음은 저 산너머로만 가 닿는데 이제 나아갈 길은 없구나 밤바다가 낯선 발자국에 자꾸 몸을 뒤집는다 여기까지라니 먼저 밀려온 물결이 땅 끝에 이를 때마다 부르지 않은 지난 일들이 나지막한 이름을 부른다 봄밤이 깊다 달마산 너머 열나흘 지나 보름 달빛이 능선을 향해 오를수록 산은 한편 눕고 혹은 일어나기를 거듭한다 잊었다는 듯이 잊지 않았다는 듯이 그래 때가 되면 이윽고 가야지 꽃숭어리째 붉은 동백이 긴 봄밤을 끝내 참을 수 없다는 듯 땅바닥에 뚝뚝 목을 내놓는다 미황사까지가 멀다..... 그때 대웅전에 들며 나는 왜 그 말을 떠올렸을까 미황사를 등뒤로 발길을 떼놓는다 내게 있어 아득히 잡히지 않는 먼길을 떠올린다 결국 알 수 없는 그곳까지가 멀다 - 미황사 / 박남준 미황사에 가고..

시읽는기쁨 2018.04.28

4월 27일

하루 종일 TV 앞을 떠나지 못했다. 아침 식사를 단식하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지켜보자는 본당 신부님의 부탁이 있었다며 아내는 아침을 걸렀다. 나도 덩달아 따라 했다. 4월 27일 오늘, 11년 만에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평화로 나아가는 선언을 했다. 전에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보다 이번 판문점에서의 만남이 훨씬 더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 생중계의 효과인지 몰라도 군사분계선에서 둘이 악수하고 북쪽으로 넘어갔다 돌아오는 퍼포먼스부터 도보다리에서의 밀담 등 가슴 뭉클한 장면이 많았다. 몇 달 전까지도 한반도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덮여 있었다. 평창올림픽 이후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통일이 되지는 않더라도 제발 좀 사이좋게 지내자. 이번 '판문점 선언'에 밝힌 대로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다. 지금까..

길위의단상 2018.04.27

논어[286]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는 진종일 먹지도 않고 온 밤을 꼬박 새워가며 생각해 보아도 별것 없었다. 공부하는 것만 못하다." 子曰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無益 不如學也 - 衛靈公 24 학(學)의 중요함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사(思)를 폄훼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학과 사는 나란히 굴러가는 수레의 두 바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학과 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위정'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 제일 적확한 듯 싶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운다고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쫓아다녀도 제 생각으로 깊어지지 않는다면 자신의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에 배우지 않고 제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편협해지고..

삶의나침반 2018.04.26

들바람꽃

깽깽이풀을 만나려고 가평천에 갔다가 깽깽이풀은 흔적도 찾지 못하고 대신 들바람꽃을 선물로 받았다. 사실 들바람꽃이라는 꽃 이름도 이날 처음 들었다. 내가 아는 바람꽃 종류는 꿩의바람꽃, 변산바람꽃, 만주바람꽃, 회리바람꽃, 너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정도다. 들바람꽃은 겉모습으로는 꿩의바람꽃과 닮았다. 꽃잎이 작고 도톰하지만 분위기는 비슷하다. 가녀리면서 순백의 단아한 느낌이 좋다. 내년에 깽깽이풀과 함께 제대로 재회해야겠다.

꽃들의향기 2018.04.24

리틀 포레스트

맑고 따뜻한 영화다. 도시 생활에 지친 젊은이가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통해 치유와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혜원은 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뒤 고향의 빈집에 내려온다. 아르바이트로 버티던 서울 생활은 삭막했고, 남자 친구와는 삐걱거렸다. 시골집은 고등학생 때까지 엄마와 살았지만, 엄마는 혜원이 대학에 들어가자 본인의 삶을 찾아 떠나갔다. 고향 마을에는 옛 친구들이 있고, 모든 것을 품어주는 자연이 있다. 혜원은 눈동냥 했던 엄마의 요리를 따라 하며 엄마와의 추억과 함께하면서 행복을 찾는다. 이런 자연주의 삶을 뜬구름 잡는다거나 도피적이라는 등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물신주의에 투쟁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자연주의 삶이다. 재벌의 갑질을 비난하지만 내일이면 대한항공을..

읽고본느낌 2018.04.23

충북선 / 정용기

다음 생에는 충북선 기찻길 가까운 산골짜기에 볕바른 집을 마련해야지. 3, 8일에 서는 제천 장날이면 조치원 오송 충주를 지나오는 기차를 타고 터키석 반지를 낀 고운 여자랑 제천 역전시장을 가야지. 무쇠 솥에서 끓여내는 국밥을 사 먹고 돌아다니다가 또 출출해지면 수수부꾸미를 사 먹어야지. 태백산맥을 넘어온 가자미를 살까 어떤 할미의 깐 도라지를 살까 기웃거리다가 꽃봉오리 맺힌 야래향 화분 하나 사고 귀가 쫑긋한 강아지도 한 마리 사서 안고 돌아오는 기차를 타야지. 손잡고 창 너머로 지는 저녁 해를 보다가 삼탄역이나 달천역쯤에 내려서 집으로 와야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산그늘로 숨어들어야지. 소쩍새 소리 아련한 밤이면 둘이 나란히 엎드려 시집을 읽을까,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들을까. 어쨌거나 다음 생에..

시읽는기쁨 2018.04.22

팽목항과 무위사

가만히 있으라, 해 놓고는 자기들은 허겁지겁 탈출했다. 그러면서 발걸음이 떨어졌을까. 너무 어이없으니 그 뒤에 어두운 음모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울어진 선실에서 아이들이 천진스레 찍은 동영상을 보았다. 다가오는 마지막을 예감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끝까지 구조의 희망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물이 코 밑까지 차올랐고, 뒤에 발견된 아이들 손가락은 전부 상처투성이였다고 한다. 팽목항에 찾아간 어느 날 저녁, 화나고 슬프고 많이 많이 미안했다..... 숨가쁘게 기다리다 끝끝내 접히고 만, 저 여리디 여린 꽃잎들에게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 태초로 돌아가는데도 말이 필요하다면 그 중에 가장 선한 말을 골라 공순하게 바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

사진속일상 2018.04.21

월출산 유채밭

남도의 봄 들판은 노란색과 분홍색으로 물든다. 유채꽃밭과 자운영꽃밭이다. 내 어릴 적 자란 고향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그런데도 아련하고 포근하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마음의 고향에 온 것 같다. 월출산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넓은 유채꽃밭 사이를 지났다. 잠깐 차를 세우고 살며시 마음에 담았다. 잠깐 스쳐 지난 봄 풍경이었다.

꽃들의향기 2018.04.20

논어[285]

선생님 말씀하시다. "허물을 고치지 않는 그것이 잘못인 거야."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 - 衛靈公 23 선생 노릇 할 때 자주 써먹었던 말이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네 죄를 알렷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가 한 일이 잘못이라는 걸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무심코 던지는 돌에 맞는 개구리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잘못이라는 걸 깨우치게 되면 행동이 변한다. 문제는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경우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법률 위반까지는 안 가더라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걸 알면서도 거리낌 없이 살아간다. 현실에는 이런 인간들이 의외로 많다. 허물인 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여기에 타성이 젖으면 안 될 것이다.

삶의나침반 2018.04.20

월곡리 느티나무

나무를 처음 본 순간 나도 몰래 중얼거렸다. "이 나무 하나로 영암에 온 값을 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게 당연할 만큼 대단한 느티나무다.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다.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신성시한다는 설명은 차치하고라도 이 나무 앞에서는 누구라도 합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 같다. 울타리 밖에는 촛대 같은 도구가 놓여 있기도 하다. 500년이 넘은 거목이지만 연초록 새잎으로 덮인 나무는 생기발랄해 보인다. 길게 뻗어 구불구불한 가지들이 춤추듯 사방으로 뻗어 있다. 한 가지는 아예 땅에 닿았다. 줄기 일부는 상해 있지만 나무는 싱싱하다. 초봄의 기운 때문인지 모른다. '옷이 날개'라는 말은 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계절에 따라 나무의 인상은 완연히 다르다. ..

천년의나무 2018.04.19

월출산에 오르다

친구 모친 문상으로 진도에 간 길에 월출산에 오르기로 했다. 일행은 저녁에 올라가고 나는 홀로 떨어져 월출산온천관광호텔에 들었다. 친구 덕분에 언젠가는 한 번 오르리라 다짐했던 월출산과 만나게 되었다. 월출산 등산은 코스가 여럿 있지만 원점 회귀하는 데는 천황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는 게 제일 낫다. 경치도 볼 만하고 라운딩 산행이 가능한 코스다. 나는 구름다리를 거쳐 천황봉에 올랐다가 바람폭포로 내려오는, 시계방향으로 도는 길을 택했다. 주차장 부근에 있는 산장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10시에 출발한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천황사가 나오는데, 최근에 조성한 흔적이 묻어난다. 이름에 비해 절 규모는 소박하다. 처음은 완만한 흙길이다. 동백꽃이 길 위에 떨어져 있기도 하고, 대나무숲 사이를 지나기도 한다...

사진속일상 2018.04.19

큰개별꽃

이즈음 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게 개별꽃 종류다. 그중에서도 개별꽃과 큰개별꽃이 흔하다. 개별꽃과 큰개별꽃은 꽃잎 갯수로 구분하면 된다. 개별꽃은 꽃잎이 다섯 장인데, 큰개별꽃은 여섯 장이 넘는다. 또 잎 모양도 차이가 난다. 개별꽃 잎은 타원형인데, 큰개별꽃 잎은 가늘고 길쭉하다. 개별꽃이나 큰개별꽃은 그동안 수없이 만났지만 이상하게도 사진은 없다. 너무 흔해서 아예 무시한 듯하다. 다음부터는 좀 예쁘게 찍도록 해 봐야겠다.

꽃들의향기 2018.04.16

어떤 대화

A : 형, UN 기준으로 형은 만 나이로는 아직 청년이십니다^^. 축하해요~ * UN이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 UN에서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에 대한 측정 결과, 연령 분류의 표준에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며 사람의 평생 연령을 5단계로 나누어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 0세 ~ 17세까지는 미성년자 * 18세 ~ 65세까지는 청년 * 66세 ~ 79세까지는 중년 * 80세 ~ 99세까지는 노년 * 100세 이후는 장수노인 B : 내 육체와 정신 상태를 냉정히 판단하면 누가 뭐래도 지금은 노년의 초입이 맞아요. 굳이 다운그레이드시킬 필요가 있나요? A : ㅎㅎ, UN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형은 아직 왕성하게 트레킹 하시고 기억력 판단력 똑 부러지시니 청년이 맞아요. ㅋㅋ B : 트레킹은..

참살이의꿈 2018.04.15

꽃피는, 삼천리금수강산 / 황지우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미아리 점쟁이집 고갯길에 피었습니다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파주 인천 서부전선 능선마다 피었습니다 백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방배동 부잣집 철책담 위로 피었습니다 철쭉꽃이 피었습니다 지리산 노고단 상상봉 구름 밑에 피었습니다 라일락꽃이 피었습니다 이화여자대학 후문 뒤에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서귀포 앞 남마라도 산록에 피었습니다 안개풀꽃이 피었습니다 망월리 무덤 무덤에 피었습니다 망초꽃이 피었습니다 동두천 생연리 봉순이네 집 시궁창에 피었습니다 수국꽃이 피었습니다 순천 송광사 명부전 그늘에 피었습니다 칸나꽃이 피었습니다 수도육군통합병원 화단에 피었습니다 백일홍꽃이 피었습니다 태백산 탄광 간이역 침목가에 피었습니다 해바라기꽃이 피었습니다 봉천동 판자촌 공중변소 문짝 앞에 피었습니다 ..

시읽는기쁨 2018.04.14

둔황의 사랑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다 읽지 못했는지 모른다. 내용이 어렵게 느껴져서 그랬을 것 같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보고 옛날이 어슴푸레 떠올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역시 명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이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재의 탐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은 알 것 같다. 이야기의 화자인 '나'는 주간 잡지의 기자로 일하며 가난하게 살아간다. 단칸방에서 동거하는 여자가 있지만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고 있다. 현실은 누추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꿈꾸는 세상은 따로 있다. 서역의 사자를 찾고, 공후를 불었다는 노인을 만나려 한다. '천세불변(千世不變)'이라고 비단 조각에 적힌 '누란의 소녀' 미이라도 주인공의 관심을 끈다. 우리는 찰나의 존재들이다. 사랑이 영원으로 이어지길..

읽고본느낌 2018.04.13

논어[284]

선생님 말씀하시다. "사람이 길을 넓히는 것이지, 길이 사람을 넓혀 주는 것이 아니다."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 衛靈公 2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습니다." 이 예수님 말씀과 비교해 보면 둘의 차이가 명확하다. 아니, 비교하는 게 무리일지 모른다. 하나는 믿음의 세계고, 다른 하나는 신념의 세계다. 공자 철학은 인간 중심이다. 그 무엇도 인간을 떠나서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길[道]'도 인간을 통해서 발현될 뿐이다. 절대적인 진리가 외부에 존재해서 인간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길을 만들어 나간다. 공자가 초월적인 존재를 부정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간사에 간섭하는 인격신은 아니었다. 인간의 힘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

삶의나침반 2018.04.13

은고개~한봉

등산 목적으로는 올해 들어 처음 배낭을 멨다. 은고개를 기점과 종점으로 해서 남한산성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택했다. 아무리 한적한 경로라지만 산에 있었던 다섯 시간 동안 등산객 한 명 만나지 못했다. 너무 한적해서 조금은 무서울 정도였다. 은고개에서 약수산을 거쳐 남한산성 한봉까지 올랐다. 남한산성의 동쪽 지역에 있는 한봉은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올라와 산성 안 행궁으로 대포를 쏜 곳이다. 그래서 취약한 방어선을 보완하기 위해 한봉성을 쌓았다. 현재 한봉성은 많이 허물어져 있고, 아직 보수 공사가 시작되지 않았다. 내려갈 때는 엄미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을 따랐다. 처음 가보는 길이라 일말의 호기심과 함께 긴장도 되었다. 계곡을 끼고 가는 길이라 봄꽃 기대를 했었는데 의외로 삭막했다. 길이는 조금 단축되었으..

사진속일상 2018.04.12

신북천 벚꽃길

울산에 친척 문상 다녀오는 길, 문경을 지날 때 신북천에 들렀다. 문경온천을 중심으로 신북천을 따라 약 4km 길이의 벚꽃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안내문에 드라이브 코스라고 표시한 부분도 산책 데크가 잘 되어 있어 걸으면 좋다. 마침 벚꽃 절정기였는데 이 화려한 꽃길에서 우리 외에는 겨우 한두 사람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수도권이었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참으로 호젓하게 벚꽃 구경을 한 날이었다.

꽃들의향기 2018.04.11

누비길: 산성역~남문

용두회에서 올해는 성남을 한 바퀴 도는 누비길을 걷기로 했다. 누비길은 전체 길이 62km에 일곱 구간으로 되어 있다. 지난달에 복정역에서 소(小) 영장산 줄기를 지나는 1구간 A코스를 걸었고, 이번에 산성역에서 남문까지 이르는 B코스를 걸었다. 원래는 1구간을 한번에 걸어야 했으나, 걷는 도중에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코스로 나누어졌다. 산성역에서 남문까지는 약 4km 길이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차도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나란히 나 있다. 우리는 남문에서 산성마을로 내려가 두부전골로 점심을 한 뒤에 오후에는 모란역으로 나가 관례대로 당구를 즐겼다. 산길은 벚꽃으로 환했다. 평지의 벚나무는 잎이 나오며 꽃이 진 곳이 많을 텐데 산은 지금이 눈부신 절정이다. 꽃 풍경에..

사진속일상 2018.04.11

얼굴 흉터

내 얼굴 왼쪽 눈 옆에는 100원짜리 동전만 한 불그스름한 흉터가 있다. 20년 전 K 고등학교에 근무했을 때 생긴 것이다. 그때는 내 교직 생활 중 제일 힘들었던 시기였다. 안 하던 담임을 맡았는데 아이들과 늘 엇박자였다. 교과목 가르치는 것도 벅찬데 반에서는 연신 사고가 터지고 뒷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나 학부모와 코드가 맞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반대로 그쪽에서는 내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K 고등학교는 교사들 사이에 근무 희망 경쟁이 벌어지는 A급 학교였다. 학교 내에서도 서로 담임을 하려고 지저분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눈치가 빨랐으면 애초부터 담임 신청을 말았어야 했다. 한번 해 보지 뭐, 하다가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옛말이 틀리지 ..

길위의단상 2018.04.08

봄 / 반칠환

저 요리사의 솜씨 좀 보게 누가 저걸 냉동 재룐 줄 알겠나 푸릇푸릇한 저 싹도 울긋불긋한 저 꽃도 꽝꽝 언 냉장고에서 꺼낸 것이라네 아른아른 김조차 나지 않는가 - 봄 / 반칠환 마술사 같은 요리사의 솜씨다. 한쪽에서는 팡팡거리며 팝콘도 터진다. 풍성한 자연의 식탁이 펼쳐지고, 우리는 그저 수저만 잡으면 된다. 연례행사로 이런 대접 받아왔으니 의례 그러려니 하지만, 이건 기적이 아닌가. 바라보는 풍경에, 코를 간지리는 향기에, 가슴 콩당콩당 뛰어야 할 감사며 경외가 아닌가.

시읽는기쁨 2018.04.07

차남들의 세계사

"작가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해 쓸 의무가 있다." 이기호 작가가 한 말로 기억한다. 작가의 글에는 세상의 고통과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세상살이의 애틋함이 녹아 있다. 이 소설 도 그런 범주에 들어간다. 는 대머리 독재자가 등장한 1980년대가 배경이다. 1982년에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을 일으킨 문부식과 김은숙은 지학순 주교가 있던 원주로 피신한 뒤 자수했지만, 수사 당국은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선다. 이때 택시 운전사였던 나복만은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이 사건에 엮이게 된다. 교통사고로 경찰서를 찾게 되었는데, 실수로 그의 이름이 사건 관련자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몇 가지 우연이 겹치면서 독재 시대 때 흔했던 용공 조작의 희생자가 되고 만다. 소설은 미친 시대에 한 인..

읽고본느낌 2018.04.06

흰얼레지

산자락에 여럿이 몰려 있어 가 보니 흰얼레지를 찍는 사람들이었다. 흰얼레지 둘레로 빙 둘러앉거나 엎드려 카메라를 겨누고 있고, 나머지는 뒤에 대기하고 있었다. 흰얼레지의 인기가 대단했다. 화야산에서였다. 어릴 적에 사촌 형으로부터 백사(白蛇)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뱀이 이슬과 산삼만 먹고 자라면 백사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백사만 한 명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거의 불로장생급이었다. 흰얼레지도 아마 그만한 명성을 누리지 않는가 싶다. 분홍색인 얼레지에 비해 흰얼레지는 하얀색이고 수술도 노랗다. 금방 눈에 띈다. 그렇지만 흰얼레지를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네 잎 클로버 찾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만큼 개체 수가 적다. 얼레지가 지천인 산이라도 겨우 한두 개체 있을 정도다. 무엇이..

꽃들의향기 2018.04.05

논어[283]

선생님 말씀하시다. "대중이 싫다 하더라도 반드시 조사해 보아야 하고, 대중이 좋다 하더라도 반드시 조사해 보아야 한다." 子曰 衆惡之 必察焉 衆好之 必察焉 - 衛靈公 21 사람은 출생 지역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경상도냐, 전라도냐에 따라 정치적 성향도 달라진다.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느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 시대 집단 관념의 지배를 받는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견해는 대부분 편견이다. 상식적인 편견이냐, 아니냐만 있을 뿐이다. 대중의 견해가 다수라고 해서 옳을 수는 없다. 가장 부화뇌동하기 쉬운 것이 대중심리다. 성찰이 없는 확신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어떤 사안이든지 여러 관점에서 검토가 되어야 한다.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정치만 아니라 개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늘 자신을 ..

삶의나침반 2018.04.05

화야산 얼레지

화야산은 수도권에서 얼레지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산이다. 큰골계곡을 따라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맘때가 되면 화야산은 얼레지를 찍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 산이지만 다시 찾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10년도 더 되었다. 이번에는 화야산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얼레지 구경을 했다. 얼레지가 너무 많으니 사진 찍는 데는 도리어 혼란스러웠다. '얼레지'라고 이름을 알려줬더니 자꾸만 '엘레지'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너무 화려하게 되면 슬픔과도 통하니, 얼레지의 별명을 엘레지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얼레지의 날씬하고 고운 분홍색 자태는 봄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수줍은 듯 꽃잎을 오므린 얼레지가 있고, 꽃잎을 뒤로 젖힌 당돌한 얼레지도 있다. 같은 얼레지지..

꽃들의향기 201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