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623

인생은 독고다이

"여러분, 인생은 혼자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사십시오. 여러분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여러분 자신이고,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세요. 누군가 멋진 말로 나를 이끌어주길, 나에게 깨달음을 주길, 내 삶이 더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세요. 그런 사람들 무리의 먹잇감이 되지 마세요. '인생 독고다이다' 생각하고 쭉 가세요." 지난달에 이효리 씨가 국민대 졸업식에 참석해 후배들에게 전한 인생 조언이다. '독고다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성격대로 직설적이면서 소탈한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한다.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 후배들을 위한 연설이었지만 7학년인 나는 내 식..

참살이의꿈 2024.03.20

죽음을 결정할 권리

며칠 전에 MBC 'PD 수첩'에서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소개하며 인간에게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방송되었다.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면 죽음을 결정할 권리도 달라는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이 예상외로 많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프로그램에서는 척수염과 어지럼증을 앓는 두 분이 나온다. 그중 한 분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의한 뇌염과 척수염으로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약성 진통제가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환상통에 시달린다. 생을 마감하려고 스위스 조력사망 센터를 알아봤으나 포기했다고 한다. 스위스에 가자면 다..

참살이의꿈 2024.03.09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

이근후 선생의 5년 전 인터뷰 기사를 보았다. 기사 제목에 나온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고'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선생은 1935년생이니 지금은 90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선생은 건강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 쓰고 인터뷰를 하는 등의 활동을 하고 계시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가련한 존재들이다. 인생은 고달프고 행복은 신기루다. 쉽게 사는 사람은 없다. 겉모습은 화려할지라도 속내는 누구나 쓰라리다. 다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으로 슬픔을 덮으며 살아갈 뿐이다. 원한이나 분노, 불안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작은 재미로 덮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슬픔을 잊고 가능한 한 재미있게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신조다. 평생을 인간의 아픔과 마주한 정신과 의사로서 당연한 귀결일..

참살이의꿈 2024.02.21

우울한 한국

미국의 인기 작가이자 유튜버인 마크 맨슨이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그가 '우울한 한국'이라는 주제로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화제가 되어서 찾아보았다. 마크 맨슨이 내린 진단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을 종합적으로 짜깁기해 놓은 느낌이 들었다. 영상 제목이 '나는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I Traveled to the Most Depressed Country in the World]'로 자극적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자살률인데 한국은 10만 명당 25명이 자살하여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다. 특히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은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낮은 출생률 또한 우울한 한국을 드러내주는 징표다. 마크 맨슨은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며..

참살이의꿈 2024.02.06

좌통

'좌통(좌측통행)'은 내 어릴 적 별명이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직후였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 지도를 했을 테고, 그중에 좌측통행 교육이 있었다. 복도에서는 뛰지 말고 좌측으로 질서 있게 다니라는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이었다. 국민학교 1학년 아이들이니 말을 잘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좀 과하셨던 것 같다. 학교를 나가서도 길을 다닐 때는 좌측통행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하느님의 말씀이라 한들 철부지들에게 학교 밖에서까지 통할 리가 없었다. 신작로를 지나 논둑길을 걷고 개울과 철길을 건너야 하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등하교 길이었다. 교문을 나서면 개구쟁이가 되어 장난하느라 정신을 놓았을 것이다. 모범이 되어야 할 고학년의 형들은 좌측통행을 아예 무시했다. 그럼에도 예외가 있었..

참살이의꿈 2024.01.06

[펌] 도구적 영성

'영성'은 기독교와 함께 본격화했다. 예수가 떠난 후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영적(spiritual) 삶을, 개인의 만족, 안락, 성공을 좇은 육적(fleshly) 삶과 대비했다. 자발적 가난, 사유 재산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 새로운 세상의 갈구, 인류에 대한 헌신 등은 그들이 구현한 영적 삶의 모습들이다. 예수는 하느님과 부(마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고, 아예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부를 좇는 일을 죄악시했다기보다, 애초에 길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사실 그렇다. 물질적 풍요보다 영적 풍요를 중시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난의 체제를 외면하지 않고 산다면 부자가 될 방법이 있는가. 1500년 후 예수의 메시지는 도래할 세상(자본주의)에 커다란 걸림돌이 ..

참살이의꿈 2024.01.04

사람을 만나고 오면 쓸쓸해진다

연말이라 모임이 잦다. 이번 주도 두 차례 송년 모임이 있다. 뜸한 해도 있었는데 올해는 별스럽게 만남이 많다. 사람과의 교류가 적은 편인 내가 이럴진대 다른 분들은 어떨까 싶다. 모임을 다녀오면 피곤하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의 피로도가 크기 때문이다. 사람을 만난다는 게 나한테는 어렵고 힘이 든다. 대화에서는 억지로 박자를 맞춰주며 고개를 끄덕여줘야 한다. 그렇다고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기 십상이다. 가능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지만 모든 관계를 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타인과 만나고 접촉해야 활력이 솟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사소한 갈등이야 문제 삼지 않는다. 사람이 북적이는 데가 좋고, 모여서 수다를 떨어야 생기가 돋는다고 하니 신기하다. 나는 혼자 있어야 편하다. 사람과..

참살이의꿈 2023.12.19

그럭저럭과 그러려니

'그럭저럭'과 '그러려니'는 늙어가면서 사용 빈도가 늘어나는 말이다. 가끔 지인과 통화를 하게 될 때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서로 묻는다. 이때 내 대답은 일정하다. "그럭저럭 지내지 뭐." 늙어서의 일상이란 게 그렇다. 잘 지낸다고 자신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못 지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그럭저럭'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반면에 '그러려니'는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늙으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을 안팎으로 자주 만난다. 세상 돌아가는 일도 성에 차지 않고, 몸도 이곳저곳이 고장 난다. 그럴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려니 하는 게 제일 속 편하다. 여러 달째 손가락과 이빨이 말썽이다. 어느 때부터 양 손의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기 시작했다. 아..

참살이의꿈 2023.11.24

복이 없어 이렇게 오래 살았어요

얼마 전에 A 선배와 노년의 삶에 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 중에 몇 살까지 사는 것이 적당할까, 라는 물음이 나왔고 선배는 망설임 없이 85세라고 답했다. 병이 없더라도 그 이상은 살기 싫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노인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면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사람이 50%에 달한다. 이에 비하면 선배는 소박한 바람을 갖고 있는 셈이다. 반면에 일본은 100세까지 살고 싶다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사회에 들어간 일본은 장수와 고령이 가져다주는 비극을 다수가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TV를 보면 100세를 넘기고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슈퍼 노인이 자주 나온다. 이걸 보고 자신도 그렇게 되리라고 착각하기 쉽다. A 선배와의 대화에서도 김형석 선생이 화제..

참살이의꿈 2023.11.12

그냥

들판에서 자라나는 풀꽃을 생각한다. 만약 풀꽃이 말을 한다면 왜 사느냐는 물음에 "그냥"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풀꽃은 사는 게 무슨 이유가 있느냐고 고개를 갸웃하며 살포시 웃을 것이다. "그냥"이라는 말이 참 좋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좋을 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댄다면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슨 목적이나 의미가 있어 사는 게 아니다. "그냥" 산다. "그냥" 산다고 자신에게 가만히 속삭여 보라. 나를 짓누르던 삶의 무게가 홀연히 가벼워지는 걸 느낄 것이다. 기쁜 일이 찾아오면 웃고, 슬픈 일이 찾아오면 울면 된다. "그냥" 그렇게 살뿐이다. 지금 좋게 보인다고 좋은 일은 아니다. 지금 나쁘게 보인다고 나쁜 일은 ..

참살이의꿈 2023.10.06

교양 실종의 세계

대학교에 들어갔던 1학년 때는 '교양 과정'이라고 해서 전공과 관계없이 모든 신입생이 공통된 교육을 받았다. 그렇다고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공 수업을 듣기 위한 기초 소양을 가르친다는 의미가 컸다. 교과목도 국, 영, 수 중심의 고등학교 커리큘럼과 대동소이했고, 담임선생만 없을 뿐이지 사실 고등학교와 별 다른 게 없었다. 교과 수준만 약간 올라갔을 뿐이었다. '교양'이라면 이과생이라도 철학이나 인문학을 접하도록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이름만 '교양 과정'이었을 뿐, 교양과는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무척 아쉬운 점이다. '교양 과정'은 교양을 단순한 지식 차원으로 격하시키는 나쁜 명명이었다고 생각한다. '주간 경향' 칼럼에서 김규항 선생이 쓴 교양에 관련한..

참살이의꿈 2023.09.27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지난달 29일에 열렸던 제77회 서울대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축사를 했다. 선배로서 졸업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인데 근래 보기 드문 명연설이었다. 최 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모교 생명과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06년부터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근무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진화생물학자다. 이번 축사의 요지는 자기만 잘 살려는 사람이 되지 말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선생은 "주변은 온통 허덕이는데 혼자 다 거머쥐면 과연 행복할까"라고 반문한다. 가진 자들은 별생각 없이 키 차이가 나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의자를 나눠주고 공정하다고 하지만 그건 일률적인 공평에 지나지 않는다. 키가 작은 이들에게는 더 ..

참살이의꿈 2023.09.17

인생의 의의와 가치

아주 오래전, 20대 때 본 책 중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권이 있다. 대부분 내용은 잊었는데 책의 모양과 제목만은 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 책을 샀던 서점과 서가의 풍경까지 떠오른다. 그런 책 중의 하나가 다. 이 책을 가방 속에 애지중지 넣고 다니면서 조금씩 맛보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은 어두운 색의 하드 커버 표지에 두께는 얇았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1966년에 신조문화사에서 출판된 책이다. 지은이는 오이켄이라는 독일 철학자였고, 제목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의미와 가치에 대해 논했을 것이다. 이 책 역시 제목과 외형만 남아 있을 뿐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은 정신의 창조 행위를 통해 인생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논지를 펼치지 않았나 추측한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

참살이의꿈 2023.08.23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교수직에서 은퇴하고 작은 섬에 들어가 사시는 분을 화면에서 봤다. 이분은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덕목을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로 표현했다. 교수로 살면서 덧씌워진 명성과 과대포장된 삶을 벗고 본연의 나를 찾고픈 바람이 간절해 보였다. 하지만 속 마음이야 어떻든 섬에서 살아가는 삶은 외롭고 쓸쓸하고 초라하게 보이지 않았다. 교수인 삶을 살았던 조건(정신적, 경제적)을 떨쳐버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명성을 버린다 하면서 명성을 이용한다. 소유의 맛을 즐기면서 겉으로는 무소유를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숨겨진 민낯이 드러나 비난을 받는 유명인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차라리 무소유를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이상적/대안적 삶이 가진 자에 의해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소유라든가 '..

참살이의꿈 2023.08.10

가만히 다정하게

장마철과 연관이 있을까. 짜증 나고 화가 솟는 일이 잦다. 이럴 때는 한 호흡 쉬어가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다정하게. 짜증 나는 원인이 밖에 있지 않다고 누군가가 속삭여준다. 화를 내는 것은 내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대상은 어쩌다 거기에 있었을 뿐이다. 단지 핑곗거리였을 뿐. 누구나 위로 받고 사랑 받길 원한다. 고개를 돌려 둘러보라. 누가 나를 위로하고 사랑해 줄 것인가. 이 시들어가는 세상에서 변함없이.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음을 안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자. 작고 연악한 어린아이가 오들오들 떨고 있을지 모른다. 다정한 미소로 다가가서 껴안아주자. 쓰담쓰담 토닥토닥. 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알면 타인 역시 연민의 념으로 바라보게..

참살이의꿈 2023.07.25

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

일주일 전부터 오돌토돌한 붉은 반점이 팔에 돋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퍼지더니 사흘째에는 다리에도 나타났다. 원인은 모르지만 두드러기인 것 같다. 우선 보기에 엄청 징그럽다. 다행히 간지러움은 심하지 않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을 먹으면 금방 낫겠지만 그냥 견디기로 한다. 며칠 더 고생하고 병원 신세를 안 지는 쪽을 나는 선택한다. 한 달 전에는 앞니 하나에 이상이 생겼다. 건드리면 아파서 양치질도 피해서 했다. 음식 먹는데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치과에 가는 대신 기다려보기로 했다. 날이 지나니 통증이 가라앉고 많이 진정되었다. 지금도 정상이 아니지만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아마 치과에 갔다면 깔끔하게 임플란트를 하자고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 이빨로 가능하면 버틸 수 있는..

참살이의꿈 2023.07.04

심심함의 변명

나는 외출보다 집에서 보내는 날이 더 많다. 대략 두 배쯤 된다. 한 달이면 20일 정도는 집에 있고, 10일 정도밖에 나간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활동량이 적은 편이다. 집에 있을 때는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지낸다. 당신은 심심하지도 않느냐고, 아내가 늘 신기해 한다. 사람들은 하루를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 없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한다. 퇴직한 이후도 마찬가지다. 삶의 관성이란 무섭다. 봉사 활동이든 취미 생활이든 뭔가를 해야 한다. 그전까지 일 속에서 살아온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은퇴 후에도 바쁘게 보낸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현대인은 혼자 있는 시간을 앗기고 있다. 휴대폰이 등장한 이후로는 더 심해졌다. 전철에서 보면 열에 아홉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한다. 휴대폰이 없..

참살이의꿈 2023.06.23

노인의 예절

노인을 대하는 예절이 아니라 노인'의' 예절이다. 평균수명이 짧았던 옛날에는 60을 넘기면 잔치를 열었고 70을 넘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젊은이는 많고 노인은 적었으니 노인은 집안이나 공동체에서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제는 시대가 역전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2025년이면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간다고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것이다. 노인이 넘쳐나면 존경과 대우는커녕 자칫하면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더구나 노인은 생산성이 없어서 경제적 측면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적다. 과거에는 지혜와 경륜으로 한몫했지만 이제는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시대여서 노인이 자리 잡을 영역은 좁아지고 있다. 시대에 뒤지지 않으려면 젊은이에게 ..

참살이의꿈 2023.06.10

끼리끼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로서의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즉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 특성이 오늘의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었다.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 계발되면서 두뇌가 발달하고 문명의 건설이 가능하게 되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가정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공동체에는 구성원들 사이에 공유하는 공통분모가 있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이루어진 모임도 많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듯 인간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결국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 대하기가 편하다. 이해의 폭이 넓은 탓이다. 예를 들어, 내향성인..

참살이의꿈 2023.05.27

몰라서 못 먹는다

집에는 냉장고가 세 대 있다. 두 노인이 사는 집 치고 과하지만 전에 자식들과 같이 살 때 쓰던 냉장고가 고장 없이 작동하고 있으니 계속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아내에게 한 대를 없애자고 제안했지만 다 쓸모가 있다고 한다. 부엌 살림살이는 아내 소관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세 대의 냉장고는 어디를 열어봐도 빈틈없이 뭔가가 가득 들어 있다. 둘이 사는 살림에 무슨 먹을거리가 이토록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내조차도 냉장고에 들어 있는 음식을 파악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뭘 찾자면 이 냉장고 저 냉장고로 왔다갔다 한다. 냉장고만 아니라 옷장도 마찬가지다. 십 분의 일로 줄여도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 같다. 냉장고 문을 열면서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부쩍 늘어난 말이다. "이런 게 있..

참살이의꿈 2023.05.25

조만간 죽는다

"조만간 죽는다." 생략된 주어는 당연히 '나는'이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인간도 짧은 지상의 삶을 누리다가 반드시 죽는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은 외면하려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애써 피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의식은 불안을 동반한다. 살아 있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완전 소멸을 감당하기 힘들다. 공자마저 죽음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며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는 철학은 다른 말로 하면 죽음을 직시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불안과 부조리가 죽음이라는 숙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는 것이 병이다. 죽음을 예견하지 못..

참살이의꿈 2023.05.08

지금 여기서 행복하세요

화장실 세면대 옆 수건걸이에 걸린 수건이 눈에 들어온다. 9년 전에 친구가 교장으로 정년 퇴임을 하며 기념으로 준 수건이다. 아랫단에 친구 이름과 함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세요!"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지금 여기서 행복하기 어렵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현재에만 충실할 수 없다. 과거와 미래 일이 발목을 잡아서 근심과 걱정 속에 살아간다. 반면에 동물은 단순하기 때문에 과거나 미래에 매여 현재를 희생하지 않는다. 오리 두 마리가 연못 위에서 직각을 이루는 물길을 따라오다가 충돌했다. 이내 꽥꽥 소리와 푸드덕 날갯짓의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두 오리는 서로 떨어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히 가던 길을 간다.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네가..

참살이의꿈 2023.04.18

인간의 세 가지 편향

인간이 이성을 가진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 두뇌는 불완전하고 허점 투성이다. 군중 심리에 쉽게 매몰되고 형편없는 신념을 금과옥조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의 세계관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보면 근거의 박약함에 한숨이 나올 정도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에 더 가깝다. 앞으로 AI 시대가 되면 인간의 설 자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궁금해진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호모 사피엔스'라는 명칭을 부여했다. 너무 건방진 말이 아닐까.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이고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싶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심리학이 제시하는 인간이 범하는 세 가지 편향 오류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첫 번..

참살이의꿈 2023.04.04

가슴에 박힌 가시들

학폭을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인기인 모양이다. 드라마가 일부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면서 가해자에 대한 복수극에 통쾌해하는 것 같다.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60년대는 학교 폭력이나 왕따가 거의 없었다. 힘깨나 쓰는 치들은 저희들끼리 놀았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지는 않았다. 학폭이나 왕따라는 못된 문화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학폭과 함께 교폭(교사 폭력)에 대한 비난 글도 많이 올라온다. 그 시절에 교사한테서 억울한 체벌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중에는 교사 실명을 공개하며 적의를 드러내는 글도 있다. 지금 기준으로 하면 당시의 교사들은 상당수가 처벌 대상이 되고 감옥에 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매가 아닌 교사의 감정을 못 이긴 채 어린..

참살이의꿈 2023.03.21

노년의 갈림길

노년이 시작되는 공식적인 나이는 65세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65세에 노인이 되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로 우대증을 받기는 했지만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은 이팔청춘'이라는 말속에는 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배어 있는 게 아닐까. 실제 노년이 시작되는 나이는 몇 세 쯤일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로서는 일흔을 넘어서니 노년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어봐도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인간은 세월 따라 서서히 늙어가겠지만 노인이 되었다고 정서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한순간에 찾아온다. 인생의 과정은 단계가 있고 점프하듯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불연속적인 ..

참살이의꿈 2023.03.10

내 안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거의 매일 밤 꿈을 꾼다. 그런데 꿈이 영 마뜩잖다. 열에 아홉은 사람들과 다투고 마찰을 겪는 내용이다. 악몽까지는 아니어도 괴롭고 답답한 꿈이다. 잠을 깨고 반추해 보면서 늘 기분이 씁쓸하다. 오늘 새벽 꿈도 그랬다. 옛 직장 동료들과 무슨 발표를 하게 되어 있었다. 나누어준 프린트 자료가 있었는데 집에다 두고 나왔다. 내 발표는 두 번째였다. 뒤에 발표하게 되어 있는 동료에게 자료를 빌려달라 했는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집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아끼던 물건(큰 수정 구슬인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음)은 마당에서 뒹굴고, 대드는 동생과 티격태격하며 손찌검까지 했다. 너무 화가 난 상태에서 잠이 깼다. 싸우고 지지고볶고 꾸는 꿈마다 패턴이 비슷하다. 인간관계의..

참살이의꿈 2023.02.28

재미를 버릴 때 찾아오는 재미

교직에 있을 때 나를 괴롭힌 건 선생 노릇에 대해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교사는 -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 자본주의 시스템의 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부모의 욕망에 충실히 복무할수록 유능한 교사로 인정받았다.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만큼 불행한 것도 없다. 30여 년의 교직 생활 동안 보람을 느끼거나 재미있게 지낸 적이 없었다. 그저 버텨냈을 뿐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삶이 재미없었던 제일 큰 이유는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의미를 구하는 동물이다. 무슨 일을 하건 의미/명분이 있어야 열정이 생기고 재미도 느낀다. 아니면 삶이 무미건조해지고 무기력에 빠진다. 오락이나 쾌락이 위안을 주지만 일시적 도피일 뿐이다. 근원적인 해결 없..

참살이의꿈 2023.02.15

어른 김장하

MBC TV에서 방송된 2부작 다큐멘터리인 '어른 김장하'를 봤다. 진주에서 남성당한약방을 하며 남몰래 선행을 베풀고 여러 지역사회 운동을 지원한 김장하 선생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선생은 제목에 나오는대로 우리 시대의 '어른'이신 분이다. 선생이 세상에 드러나는 걸 고사하셔서 직접 인터뷰는 하지 못하고 선생과 관련된 분들 중심으로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경남도민일보 기자였던 김주완 씨가 채현국 선생에 이어 다시 훌륭한 분을 소개해주어 고맙다. 언론이나 TV의 역할이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1944년생인 선생은 19세인 1963년에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사천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열고 박리다매 전략으로 돈을 많이 번다. 10년 뒤 진주로 옮겨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은 번 돈을 쌓아두지 않고 지역사..

참살이의꿈 2023.01.30

산 대로 죽는다

"엄마의 죽음의 과정은 삶의 과정과 직결되어 있었다. 즉 엄마가 평생 살아온 과정과 방식이 죽어가는 과정과 방식을 결정했다.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평생 늘 해오신 말들을 했고 늘 해오신 걱정들을 했으며 늘상 눈을 주곤 했던 대상들에 눈을 주셨다. 엄마 평생의 사랑의 방식은 죽어가는 과정에도 관철되었다. 나는 이 점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박희병 선생이 어머니의 마지막 1년을 옆에서 간병하며 지켜본 끝에 내린 결론이다. 의 에필로그에 적혀 있다. 선생의 어머니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장애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한 인간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태도가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생로병사는 생명체의 숙명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자신이 죽을 존재임을 살아 있을 때부터 인식한다. 다른 동물은 현재만 살뿐 ..

참살이의꿈 2023.01.12

되어가는대로 살기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고,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가까워지지 못한다. 이만큼이나마 세상을 살아보니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더라. 세상일은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 헛심만 쓴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순리에 따를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되어가는대로 살기'다. 되어가는대로 살기는 되는대로 살기와는 다르다. 되는대로 사는 것은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자기 통제와 규율이 있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실행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열매를 맺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일이다. 되어가는대로 사는 것은 진인사..

참살이의꿈 2022.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