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걱정을 먹고 사는 인간

샌. 2006. 3. 15. 16:30

인간은 걱정을 먹고 사는가 보다.

누구나 걱정 없기를 바라는 것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스스로가 걱정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허다함을 알 수 있다. 없는 걱정을 만들어내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

인생살이가 원래 그러하다고 이해를 해보지만 소위 팔자 좋은 사람들의 쓸데없는 걱정거리를 얘기 들으면 어떨 때는 비위가 상할 때도 있다. 나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점에도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자족(自足)과는 먼 존재인 것 같다.


사람들이 하는 걱정거리를 분석해 봤더니 98%가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 이미 지나간 일, 또는 미래에 일어날 불확실한 일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걱정할 거리가 되지도 않는 것들을 끌어다 놓고 노심초사 한다는 말이 된다. 자신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이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가진 걱정의 대부분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과 욕심 탓인 것이다.

가정에서 자식 때문에, 배우자 때문에 생기는 마찰과 걱정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그 대부분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괜한 염려고 기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또 얼마나 흔한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똑 같은 오류를 지금도 범하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을 옥죄는 걱정거리의 원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도에 지나친 교육 욕구와 성장 욕구라고 생각한다.

자식을 더 잘 교육 시키고,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한다는 무의식에 뿌리박힌 이 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집단 최면에 걸려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스트레스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연유한다. 이것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라고 하지만 각 개인과 집단에 주는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문제는 충분히 만족하고 삶을 즐길 여건이 되는 사람들이 더욱 자신을 닦달하며 욕심의 벼랑 끝까지 몰고 나가는데 있다. 사회의 상류층일수록 욕망의 끝에는 한계가 없다. 도리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몫을 더 늘이기 위해 더욱 혈안이 되어 있다. 이것은 모든 계층에서 만연된 현상이다. 멈출 줄 모르므로 짧은 인생을 걱정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이것은 풍요한 물질문명이 그것을 누리는 개체들에게 과하는 업보일지 모른다.


A는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있고, B는 요사이 같이 집값이 계속 오르는 때에 집이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한다. A가 볼 때 B의 생각은 괜한 걱정에 불과하고, B가 볼 때 A의 생각은 세상 물정 모르는 답답한 사람일 뿐이다. 더구나 B는 빚을 내서라도 편리함과 과시욕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집을 갖길 원한다. A에게는 그것이 욕심으로만 비친다.

요사이 둘 사이에는 이 문제로 자주 티격태격 한다. 서로가 생각은 다르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참된 삶은 소유가 아니라, 자족과 마음의 평화에서 온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자신의 생활로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이 세상의 방식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면 바보처럼 살아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혼자 바보 같이 초연하게 살기는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의지적으로라도 그런 길을 가고 싶다. 그것이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드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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