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주위의 산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절집도 좋지만 나무와 계곡이 있는 이 산책로를 나는 사랑한다. 선운사에 갈 때는 절을 지나 선운산으로 난 이 길을 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선운산을 오른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선운산 정상은 두 시간 정도면 다녀올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이 산길에 지금 현호색이 한창이어서 꽃길을 이루고 있다. 길 가운데에도 꽃이 피어있어 발을 디디기가 조심스럽다. 산수유, 매화, 벚꽃 등 눈을 화려하게 하는 봄꽃의 향연이 벌어지고 사람들은 몰려 다지지만,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발밑에서도 작은 꽃들의 잔치가 한창이다.
현호색 외에도 댓잎현호색, 제비꽃, 양지꽃, 산자고, 자주괴불주머니, 개불알풀, 개별꽃, 냉이꽃, 꽃다지 등이 눈에 띈다. 아마 작심하고 꽃을 관찰한다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꽃들을 만날 것 같다.
이번에 가보니 선운사 주위에는 꽃무릇을 엄청나게 많이 심어 놓았다. 심은지 얼마 되지 않는지 살짝 건드려도 뿌리째 뽑혀 나온다. 원래 꽃무릇 자생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꽃무릇 단지를 대규모로 조성하는 듯 하다. 가을이면 붉은 꽃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이 눈에 선하다. 이제 선운사 하면 봄의 동백과 가을의 꽃무릇으로 유명한 절이 될 것 같다. 둘 다 붉은 색이 공통이다.
절 뒤편 동백나무 숲에는 지금 동백이 한창이다. 여러 차례 선운사에 들렀지만 이렇게 만개한 동백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꽃이 없을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꽃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고목의 동백나무들이 역시 우리나라 최고라 할 만 하다. 금년에는 동백 풍년을 만나고 있다. 2월의 남도 여행에서부터 이곳 선운사까지 그 전에 보아왔던 동백의 몇 배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산은 아직 초록으로 덮이기 전이지만 금방이라도 초록물이 밸 듯 폭풍 전야 같은 긴장감이 이곳 선운사에서도 느껴진다.
앞산은 이제 초록물이 들기 일보 직전이다. 그 산 아래 자리한 절집의 모습이 평화롭다. 마당 한 켠에는 목련 한 그루만이 독야백백(獨也白白)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