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올해 큰 맘 먹고 에어컨을 샀는데 한 번도 틀어보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았고 중부 지방에는 큰 더위가 찾아오지 않았다. 열대야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새로 이사 온 이곳은 교외 지역이라 도심과 달리 공기 자체가 시원하다. 여름에 피서를 간 것도 아니고 내내 집에 있었는데 에어컨이 아니라 선풍기 신세도 별로 지지 않았다. 9월의 늦더위로 정전이 되고 난리가 났지만 그때도 덥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겨울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겨울바람은 무척 세고 찰 것 같다.
이곳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이 맑은 공기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강원도 심심산골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만하면 서울 생활 40여 년 동안 찌든 폐를 깨끗이 청소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다 서울에 들어가면 목이 답답함을 느낀다. 어느 곳이든 장단점이 있지만 공기 하나만으로도 이곳 생활에 만족한다.
여름을 겪어보고 에어컨을 살 걸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 식구들은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 찬바람을 쐬면 나는 배에서, 아내는 머리에서 단박 신호가 온다. 새로 여러 가지 살림 장만을 하면서 덜컥 에어컨까지 산 것은 아무래도 실수였다.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서는 내년 여름이 한껏 더워야 하는데, 그렇더라도 고작 며칠을 쓸까? 일 년 내내 거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에어컨을 보며 찬바람 내는 것 말고 다르게 이용할 기능이 무엇 없을까,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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