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니 경안천이 옆에 있다. 경안천(慶安川)은 용인에서 발원하여 광주를 거쳐 분원리에서 한강과 합류한다. 길이가 약 50 km 되는 한강의 지천이다. 집에서 도서관을 거쳐 경안천에 처음 나갔다. 책 속에 묻혀 있는 것도 좋지만 새 길을 걸어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은 행복이다.
광주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천변이 청석공원이다. 하천 양쪽으로 넓은 부지에 운동이나 휴식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공원에서는 마침 ‘우리 꽃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눈요기를 했다. ‘광주시 우리 꽃 연구회’에서 주최한 것인데 꽃 종류도 다양하고 내용이 알찼다.
황사가 지나가는 중이어서 걷기에는 좋지 않은 날씨였다. 바람도 세게 불었다. 마스크를 하고 걷는 사람도 자주 눈에 띄었다. 하류 쪽으로 방향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이곳 광주(廣州)는 BC 200-300년 경 기자조선의 준왕(準王)이 회안(淮安)국을 세운 지역으로 굉장히 오래된 역사의 고장이다. 1360년 경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파천할 때 경안역에 며칠 묵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도 경안은 상당한 규모의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에 고려의 멸망을 애통해 하던 일곱 명의 한림학사들이 낮에는 산 속에서 숨어 지내다 저녁이면 경안천에 있는 바위에 앉아 고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했다. 물에 젖은 바위가 노을에 반사되어 유난히 푸른빛을 띠는 것을 보고 충절과 지조를 다짐했던 자신들의 마음과 같다 해서 청석바위라 불렀다고 한다.청석바위가 지금도 경안천에 남아 있다. 그 앞에는 이런 시조 한 수가 적혀 있다.
회안(淮安)의 정기 받아 맑고도 찬연한 내(川)
물빛도 푸르러 바위도 푸르러
우리들 마음도 꿈도 하늘처럼 푸르러
바위를 끌어안던 희디흰 모래벌에
숱한 애환 묻었던 인연은 흘러가고
지금은 바람을 건너온 갈대숲만 푸르러
칠사산 무갑산 감싸도는 능선 아래
옛 시절 그리움 담아 서리서리 흐르는 곳
이곳에 가슴을 묻고 너른고을을 지키네
폭풍우 타는 가뭄 물굽이를 잠재우고
누천년 영욕의 세월 묵묵히 감고 감는
그대는 광주의 역사다 푸르고 푸른 꿈이다
- 靑石바위 / 남재호
밑으로 내려갈수록 산색이 고왔다. 지금이 바로 ‘신록예찬’에 나오는 그 신록(新綠),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이산저산마다 예쁜 빛깔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건너편으로 징검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다리가 물에 잠겼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진 탓이다. 산책로에도 물이 지나갔던 흔적이 남아 있다. 다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경안천 살리기 운동을 몇 해째 해오고 있다는데 수질은 다른 데에 비해 양호하다. 그리고 여기는 아직 시골다운 맛이 남아 있다.
다시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흙길이 나타나기도 하면서 길은 계속 이어졌다. 길은 이렇게 천변을 따라 용인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언제 작정하고 걸어봐야겠다.
광주는 수도권의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이 느린 편이다. 상수도보호구역으로 개발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광주 시민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다. 이제 광주를 통과하는 전철과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광주역사가 여기에 세워질 모양이다.
천변 길에서 빠져나와 산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왔다. 그냥 방향만 대충 잡고 걷다 보니 엉뚱한 곳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런 게 재미있다. 새로운 길에 발자국을 남긴다는 것이 무척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만약 광주에 계속 살게 된다면 낯선 이 길도 친근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광주가 인연이 아니라면 다시 이삿짐을 싸야 되겠지. 세상사 내 뜻대로 되는 일 없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다.
* 걸은 시간; 11:30 - 16:00
* 걸은 거리; 약 15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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