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스카이 캐슬

샌. 2020. 12. 19. 12:21

 

'스카이 캐슬'이 방영되던 2년 전에 친구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다룬 내용이라면서 꼭 보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때는 TV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커서 코웃음 치며 흘려넘겼다. 이번에는 넷플릭스에 들어갔다가 이 드라마를 보고 몰아보기를 했다. 예상외로 흡인력이 강하고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한때 이 드라마의 무대가 된 강남의 어느 명문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 학교에 간지 이태째 되던 해에 어쩌다 담임을 맡았다가 정말로 죽을 고생을 했다. 강남 학부모와 아이들의 생태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했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내가 있을 때 그 학교에서 암에 걸린 교사가 여럿 나왔고, 친한 동료는 몇 달 만에 죽었다. 그 동료는 학부모와 소송전에 말려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입시 전쟁에서 학생, 학부모만 아니라 교사도 피해자였다. 나도 한 해 더 담임을 했다면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강남 한복판으로 갔을 때 학교 환경은 충격이었다. 실상을 모두 밝힐 수는 없다. 나 같은 풋내기 교사한테는 엄청난 번민을 안겨주는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교내 물리 경시대회를 위해 아이에게 대학교수를 붙여 준비한다고 어느 어머니는 공공연히 자랑했다. 삐딱해진 나는 일부러 문제를 엉뚱하게 내서 원성을 듣기도 했다. 학부모와 뜻이 맞을 수가 없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나 같은 교사를 만나 재수 없다고 여겼을 것이다. 어쨌든 되새기고 싶지 않은 그 시절이다.

 

그 시절에 학교 아랫동네에서 드라마와 비슷한 조건에서 존속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부모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것이다. 교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시커멓게 그을린 2층 양옥집 눈에 들어왔다. 이런 교육을 계속해야 하는지, 참담한 마음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살인적인 경쟁 시스템에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하기 어렵다. 후유증은 아이 본인은 물론이고 학부모에게까지 일생을 괴롭힌다. 그러나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달라지는 건 없다.

 

현대를 '처방 사회'로 규정하는 사회학자도 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만사를 전문가의 처방에 의지해야 안심이 된다. 건강은 의사에게, 법률은 변호사에게, 몸매는 피트니스클럽의 트레이너에게, 이성 교제와 결혼은 결혼상담소에 맡긴다. 그러므로 '입시 코디'라는 직업 생경하지 않다. 원한에 찬 코디 선생에 의해 교육 드라마가 스릴러물이 되어 버리지만, 돈과 학부모의 욕망이 합쳐져서 나올 수밖에 게 입시 코디가 아닌가 싶다. 모든 건 결과가 말해주니까. 유능하고 실력 있다는 말은 학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키는 능력을 말한다. 어떤 불의나 부정이 있어도 과정은 불문이다. 아이들은 미래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인내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생명이 어디 그런가. 드라마는 학부모의 탐욕에 시드는 아이들의 고통과 저항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물론 수임네 가정과 같은 예외도 있다.

 

"자식에 실패하면 쪽박 인생"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대한민국 교육은 시험 잘 치르게 하는 것"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중 언뜻 떠오르는 몇 부분이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말인데 드라마에서 들으니 더 각별하다. 2년 전 '스카이 캐슬'은 시청률이 30%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사람이 이 드라마를 보고 과연 무엇을 느꼈고 얼마나 변했을까? 그래서 대치동의 불빛이 조금은 줄어들었을까? 서준네 집처럼 피라미드를 내동댕이칠 수 있을까? 우리 안의 스카이 캐슬은 너무나 완고하다. 허물어지기는커녕 도리어 점점 더 견고해지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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