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 27

경안천변 봄꽃

맑고 미세먼지 걱정 없는 봄날이다. 오늘은 햇볕을 쬐기 위해 밖에 나선다. 겨울잠 자듯 주로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응달의 삶이 되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모자는 벗는다. 피부 세포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마음도 환해진다. 경안천을 따라 세 시간 반 걷다. 오랜만에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새롭다. 틈틈이 천변에 핀 봄꽃을 구경하다. 버들강아지, 개불알풀, 냉이, 꽃다지, 개나리, 산수유.....

꽃들의향기 2018.03.30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제목만 보면 괴기물로 오해하기 쉬우나, 청소년의 청순한 사랑과 우정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췌장암에 걸려 1년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소녀와 동급생 남자 친구가 주인공이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는 병에 걸린 같은 부위를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네 안에서 살고 싶다'는 표현이면서 '사랑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남자 주인공(이름이 하루키였다. 이 영화에서는 이름이 잘 불리지 않는다. 여자 주인공은 그저 '친한 친구'라고 부른다.)의 캐릭터가 특이하다. 하루키는 교실에서 급우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일종의 왕따 학생이다. 그런데 여자 주인공인 사쿠라는 동급생의 퀸카다. 자신의 병을 감추고 명랑하게 지낸다. 1년 뒤에 죽는다는 말을 듣고도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읽고본느낌 2018.03.30

따뜻한 편지 / 이영춘

비는 오는데 우체국 창가에서 순번을 기다리다 지쳐 아들아 이 편지를 쓴다 "춘천 우체국에 가면 실장이 직접 나와 고객들 포장박스도 묶어주고 노모 같은 분들의 입, 출금 전표도 대신 써주더라."고 쓴다 아들아, 이 시간 너는 어느 자리에서 어느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쓴다 나도 공직에 있을 때 제대로 했는지 돌아보겠지만 너도 우체국 실장처럼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고 싶은 시간이다 겨울날 창틈으로 스며드는 햇살 받아 안듯 "비 오는 날 문턱까지 손수 우산을 받쳐주는 그런 상사도 있더라"고 덧붙여 쓴다 살다 보면 한쪽 옆구리 뻥 뚫린 듯 휑한 날도 많지만 마음 따뜻한 날은 따뜻한 사람 때문이란 걸 알아야 한다 빗줄기 속에서, 혹은 땡볕 속에서 절뚝이며 걸어가는 촌로를 볼 때가 있을 것이다..

시읽는기쁨 2018.03.30

논어[282]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런 듯이 꾸며대면 인격을 손상하고, 작은 일을 못 참으면 큰 일을 그르친다." 子曰 巧言 亂德 小不忍 則亂大謀 - 衛靈公 20 작은 일을 못 참아서 큰일을 그르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강력한 대권 후보였던 사람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어디 그 사람뿐이겠는가. 드러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본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남자의 호기라고 용인되었던 부분도 많았다. 손가락으로만 찍어도 알아서 대령하는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권력을 가졌다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꾸며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일수록 처신을 삼가할 것, 진실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삶의나침반 2018.03.29

오늘만 산다

최근에 지인이 당한 비통한 사고 소식을 연이어 들었다. 전화 통화에서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초등학생인 손녀가 죽었단다.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머리를 시멘트벽에 부딪쳐 뇌진탕이 일어났다고 한다. 수술해도 소용이 없었다며 울먹인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다. 엄마는 며칠째 실신하며 응급실에 실려 간다고 한다. 화목하고 믿음이 좋은 집안으로 알려졌는데 불의의 사고를 맞고 말았다. 아빠는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며 정신을 못 찾고 있단다. 손녀를 잃은 본인의 심정도 오죽할 것인가. 사람을 만나기 싫어 두문불출하고 있단다. 너무 안타까워서 위로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 또 한 친구의 조카도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어제 들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의 아들인데 내..

참살이의꿈 2018.03.29

당구와 치킨

당구를 한 지는 30년이 넘었다. 옛날에는 술 한 잔을 한 뒤 술 깨야 한다는 핑계로 당구장에 들렀다. 그러다가 내기를 해서 다시 호프집으로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내 당구 실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100이다. 재미로만 치다 보니 거기에서 늘어나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당구 모임이 있다. 예닐곱 정도 모이는데 100에서 250 사이로 고만고만하다. 즐기는 데는 잘 치고 못 치고가 관계없다. 그중에는 열심히 연구하는 친구도 있다. 1년 전에는 나와 비슷했는데 지금은 150으로 올라가 있다. 뭐든지 공부하면 는다. 당구를 하고 난 뒤에는 인근 시장에 있는 치킨집에 간다. 서울의 3대 치킨집이라는 소문대로 맛이 좋다. 전통 방식으로 닭을 튀긴다. 저녁에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다...

사진속일상 2018.03.28

부부 여행

친구 A가 이렇게 투덜댄 적이 있다. "마누라와 다시는 같이 여행 가지 않을 거야!" 부부가 함께 유럽 여행을 하고 온 뒤에 한 말이다. 줄곧 티격태격하느라 볼썽사나운 여행이 되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하는 여행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여행하게 되면 하루 24시간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 부딪힐 일이 자주 생긴다. 더구나 패키지여행은 일정이 빠듯해서 몸은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말다툼이 생긴다. 그래서 배우자보다는 친구가 편하고 좋다. 친구는 사소한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여행은 따로따로 다니는 부부가 많은 이유다. 그러나 반대인 경우도 가끔 있다. 늘 부부가 함께 해외여행을 나가는 친구 B가 있다. 한두 달씩 있다 오기도 한다. "넌 안 싸우니?" 물어보면, "왜 싸울 일이 생기는 ..

길위의단상 2018.03.27

사시사철 제라늄

제라늄은 대단하다. 사시사철 꽃을 피운다. 오죽하면 화무십일홍인가. 꽃을 피워내고 지키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한시도 쉼이 없다. 볼 때마다 감탄이다. 특별한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베란다에 방치 상태다. 심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물 줄 때도 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봉오리를 맺는다. 어떤 때는 지나치다 싶다. 6년 전에 산 제라늄 줄기는 이제 분재처럼 굵어졌다. 유럽에 가면 집 창문마다 예쁜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라늄이 아니었던가 싶다. 제라늄은 큰 정성 없이도 제가 알아서 일년 내내 다양한 색깔의 꽃을 보여준다. 지난 추웠던 겨울을 그냥 베란다에서 버티더니 봄이 되니 꽃색이 화사해졌다. 새 봉오리도 여럿 생겼다. 잘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지만 그것도 인..

꽃들의향기 2018.03.26

외롭지 않은 말

이탈리아 여행에 갖고 가서 읽은 책이다. 여행 중에는 바쁘고 피곤해서 책을 볼 짬이 나지 않았고, 이탈리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주로 읽었다. 대부분 곤히 잠 자는데 독서등을 켜고 있으려니 눈치가 보이긴 했다. 이 책은 우리 일상에서 쓰이는 속어나 은어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의 겉뜻과 속뜻, 주석과 용례를 달았다. 사전처럼 딱딱하지 않고 유머러스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권혁웅 시인이 썼다. 에는 77개의 말이 실려 있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냐, 교회 오빠, 귀요미, 그림 좋은데?,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넘사벽, 늙으면 죽어야지, 다리 밑에서 주웠어, 루저, 먹방, 밀당, 빵꾸똥꾸, 사랑하니까 헤어지자, 삼삼한데?, 식당 이모, 심쿵, 썸, 아몰랑, 언제 밥 한번..

읽고본느낌 2018.03.25

봄바람난 년들 / 권나현

보소! 자네도 들었는가? 기어이 아랫마을 매화년이 바람이 났다네 고추당초보다 매운 겨우살이를 잘 견딘다 싶더만 남녘에서 온 수상한 바람넘이 귓가에 속삭댕께 안 넘어갈 재주가 있당가? 아이고~ 말도 마소! 어디 매화년 뿐이것소 봄에 피는 꽃년들은 모조리 궁딩이를 들썩이는디 아랫마을은 난리가 났당께요 키만 삐쩍 큰 목련부터 대그빡 피도 안 마른 제비꽃 년들까정 난리도 아닌갑소 워매 워매~ 쩌그 진달래 년 주딩이 좀 보소 뻘겋게 루즈꺼정 칠했네 워째야 쓰까이~ 참말로 수상한 시절이여 여그 저그 온 천지가 난리도 아니구먼 그려~ 워쩔 수 없제 잡는다고 되것어 말린다고 되것어 암만 고것이 자연의 순리라고 안 혀라 보소 시방 이라고 있을 때가 아니랑게 바람난 꽃년들 밴질밴질한 낯짝이라도 귀경할라믄 우리도 싸게 나가..

시읽는기쁨 2018.03.24

논어[281]

선생님 말씀하시다. "우리 때만 해도 역사의 기록에 빈 데도 있었다. 망아지를 가진 사람은 남을 주어 타게도 했다. 요새는 그런 일이 없구나!" 子曰 吾猶及史之闕文也 有馬者 借人乘之 今亡矣夫 - 衛靈公 19 "우리 때만 해도~"라는 말을 공자도 쓰는구나. '역사의 기록에 빈 데도 있었다'는 표현은 인간미가 있고, 순박했던 시대였다는 뜻일까. 현실이 각박할수록 과거는 아름답게 보인다. 과거 사람은 그 전 과거를 또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면서 역사는 진보해 나간다.

삶의나침반 2018.03.23

이탈리아 우산소나무

이탈리아 풍경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이 우산소나무다. 시골이나 도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키 크고 날씬한 멋쟁이 소나무다. 학처럼 맑고 고고한 분위기를 풍긴다. 곧은 줄기가 위로 자라서는 몇 갈래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 소나무로는 반송과 닮았다. 버스를 타고 갈 때 보니 옛 로마가도에도 가로수로 우산소나무가 심겨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사랑하는 나무인 것 같다. 우산소나무의 원산지는 지중해로, 남유럽과 중동,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자란다. 외양이 무척 아름다운데 우리나라에 심으면 어떨까 싶다. 관상수로는 최고가 될 것 같다. 우산소나무와 함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나무가 사이프러스다. 측백나무과로 나무 모양은 길쭉한 삼각형이다. 이탈리아의 오래된 건물과 사이프러스는 특히 잘 어울린다. 한..

천년의나무 2018.03.22

이탈리아(7) - 로마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1786년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기행문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날이 자신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1년간 로마에 거주하며 보고, 배우고, 사람들과 교유를 했다. 수개월 동안 걷거나 마차를 타고 힘들게 로마에 도착한 괴테와 달리 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만에 로마에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탈리아 주요 지역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괴테가 봤다면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 역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로마에 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걸린 시간은 다섯 시간에 불과했다. 슬프다. 바티칸 한 곳도 다섯 시간으로는 부족할 텐데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전차경기장, ..

사진속일상 2018.03.21

이탈리아(6) - 폼페이, 카프리

AD 79년 여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과 함께 분출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력이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 주민은 피할 겨를도 없이 20m가 넘는 두께의 화산재에 갇혔다.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폼페이는 잊혀졌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나서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발굴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도시가 온전한 모습으로 지상에 드러나고 있다. 비극적인 참사가 도시를 원형 그대로 보존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일곱째 날, 새벽 6시에 로마를 출발해서 아침은 간편식으로 버스에서 먹는다.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 시간 정도 걸린다. 폼페이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한 명 더 합류한다. 오늘은 폼페이를 보고 카프리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

사진속일상 2018.03.20

이탈리아(5) - 피렌체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는 장점이 있으나 겉핥기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주마간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명소에 가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대개 기념사진 몇 장 찍으면 끝난다. 유럽에는 예쁜 성당이 많다. 제대로 보자면 안에도 들어가 봐야 하는데 시간상 어림도 없다. 그저 성당 껍데기만 구경할 뿐이다. 여러 군데를 다니자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개인여행을 생각해 보지만 만만치 않다. 숙소를 정하는 것부터 모든 일정을 직접 짜야 한다. 제일 골칫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하나 먹는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젊을 때야 패기로 부딪쳐 본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너무 큰 장벽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를 선택한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따라만 가 주..

사진속일상 2018.03.19

이탈리아(4) - 친퀘테레, 피사

어제 묵은 밀라노의 티파니 호텔은 시설이 안락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중간에 잠을 깨지 않고 4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이탈리아 여행 다섯째 날이다. 호텔에서 보이는 이탈리아 아파트다. 이탈리아에는 아파트를 보기 어렵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당이 있는 집을 선호한다. "사랑을 얻으면 한 달이 행복하고, 젖소를 얻으면 1년이 행복하고, 마당을 가꾸면 평생 행복하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친퀘테레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걸어간다. 가로수인 오렌지나무가 정겹다. 친퀘테레행 기차를 타는 라스페지아 기차역이다. 숨가쁘게 달려갔지만 눈 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에서 비둘기와 놀다. 빵 부스러기를 주니 먹이 다툼이 치열하다. 친퀘테레(Ci..

사진속일상 2018.03.19

이탈리아(3) - 베로나, 밀라노

3월 11일 이탈리아 여행 넷째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늘은 여유 있는 일정이라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한다. 오전은 베로나, 오후는 밀라노 관광이다. 베로나(Verona)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도시다. 교황파와 황제파의 싸움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랑 이야기다. 관광객들은 줄리엣을 만나러 베로나로 몰려든다. 그러나 시대 배경은 맞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소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베로나 시에서는 건물을 사서 줄리엣의 집으로 꾸몄다. 사람들은 허구의 집인 이곳으로 끊임없이 찾아온다. 문화 컨텐츠가 성공한 예다. 또 다른 베로나의 자랑거리는 아레나 원형경기장이다. 현존하는 원형경기장 중 세 번째로 크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2) - 베네치아

3월 10일, 이탈리아 여행 셋째 날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는 날이어서인지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가랑비가 뿌린다. 비 오는 날 베네치아 관광은 최악이라는데 제발 많은 비만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베네치아(Venezia)는 바다 위에 세워진 경이로운 도시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6세기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열두 개의 섬에 마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번영을 누리게 된다. 10세기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15세기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던 베네치아는 이후 쇠락해 간다. 지금은 110여개의 섬들이 400개가 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3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실제 베네치아에 가면 엄청난 규모에..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1) - 아시시

2018년 3월 8일 오후 4시 40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낮 12시 4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까지 12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아내와 함께 하는 7박 9일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 밖에서 패키지여행 멤버들이 모였다. 총 27명인데 여자가 24명, 남자가 3명이다. 여자끼리 단체로 온 10명과 8명 그룹에 우리와 비슷한 나잇대의 부부, 그리고 자매와 모녀 팀, 혼자 온 남자가 한 명 있다. 여자들 틈새에서 어떻게 지낼까, 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첫날은 다른 일정 없이 로마 시내에 있는 호텔에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는 김밥이 나왔다. 호텔로 가는 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 사람들도 무뚝뚝해 보..

사진속일상 2018.03.17

휘게 라이프

덴마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중 하나다. 모든 행복도 조사에서 항상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다. 그 중심에 '휘게(hygge)'가 있다. 덴마크어인 휘게는 어떤 특정한 단어로 번역하기 어렵다. 휘게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 느끼는 것으로, 정취나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 같은 것이 휘게다. '휘게 라이프'는 덴마크인이 가장 사랑하는 삶의 모습이다. 휘게 라이프는 간소한 것, 느린 것과 관련이 있다. 새것보다는 오래된 것, 화려한 것보다는 단순한 것, 자극적인 것보다는 은은한 분위기를 즐기는 삶이다. 단순하고 느린 삶이다. 여기서 ..

읽고본느낌 2018.03.07

논어[280]

자공이 묻기를 "한 마디로 평생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것은 미루어 생각하는 것일 거야!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子貢問 曰 有一言 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 衛靈公 18 에 나오는 황금률이다. 자공이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말을 묻자 공자는 '서(恕)'라고 했다. 서(恕)는 상대 입장에서 헤아려주는 마음일 것이다. 예수님도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여러분을 위해 해 주기 바라는 것을 그대로 그들에게 해 주시오. 이것이 율법과 예언자들의 정신입니다." 무릇 가르침의 핵심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함이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나에게 해 주기 바라..

삶의나침반 2018.03.06

애첩 한고랑 / 김진완

- 느 아부지 요즘 첩이 생겼다 첩에 홀린 아버지 새벽이슬 밟는다 전철 두 번 갈아타고 30분을 걸어 만난 첩 연초록 치마 들춘다 - 히따야 요게 하는 재미! 주책이지! 침까지 흘린다 가족 소풍날, 아버지 상추 첩- 첩- 겹쳐 건넨다 아비 애첩은 손이 크고 인심도 푸져서 열 네 식구 배불리 먹이고도 성에 안 차 상추 한 보따리씩 안겨준다 - 요즘 느 아부지 팔자에 없는 첩 덕택으로 어깨에 힘 쫌 주니라 - 하모, 내 이래 뵈도 동네 삼아웃 쌈싸무기를 책임지고 있는 싸나이라! 그라니 어깨에 힘 안 주고 배기겠나! 봐라 상추가 얼매나 싱싱한지 펄펄 날라가라칸다 희안하지? 늙은 아비 혼을 빼먹어도 본처는 시샘이 안 나 첩 이름은 한고랑 변두리 주말농장 밭 한 고랑 - 애첩 한고랑 / 김진완 내일이 경칩이다. ..

시읽는기쁨 2018.03.05

Me Too

연말이 되어 올해의 키워드를 뽑는다면 '미투'(Me Too)가 단연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올 초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으로 시작된 미투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숨어 지내던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작년 10월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사건의 폭로를 계기로 연예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수십 명의 여성 배우들에게 성추행과 성폭력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세상이 시끄럽긴 하지만 미투 운동은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진보하는 바람직한 현상이다. 미투 운동의 본질은 성이 아니라 권력이다. 권력을 이용한 갑질이 여성에게 향할 때 성희롱이나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미투 운동은 4년 ..

길위의단상 2018.03.04

로마 제국 쇠망사

기번의 를 읽어보려 했으나 열 권이 넘는 대작이어서 두 손을 들었다. 대신 북프렌즈에서 나온 다이제스트 본인 이 책을 골랐다. 로마의 역사를 압축해서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이다. 깊이를 기대하진 못하지만 빠르게 개관하는 데는 이런 책이 장점이 있다.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는 한 편의 거대한 드라마다. 어디를 펼쳐도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중에서도 하이라이트는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BC 100년 전후의 기간일 것이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가 꾸미는 무대는 언제 읽어봐도 흥미진진하다. 그 뒤의 황제 시대에는 참으로 별난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다. 잠깐의 황금시대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혼란기였다. 로마 제국 쇠망의 원인은 밖보다 안에서 찾는 게 맞을 것 같다. ..

읽고본느낌 2018.03.03

논어[279]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정의를 바탕으로 삼고, 예법으로 행동하고, 겸손하게 말을 꺼내며, 신의로 매듭을 맺으니, 참된 인간이지." 子曰 君子 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자신의 무능을 뼈아프게 생각하지, 남이 자기를 몰라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子曰 君子 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之也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죽게 될 때까지 칭찬받을 만한 이름을 남기지 못함을 뼈아프게 생각한다." 子曰 君子 疾沒世而名不稱焉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사람값을 제게서 찾고, 하찮은 사람은 그것을 남에게서 찾으려고 한다." 子曰 君子 求諸己 小人 求諸人 선생님 말씀하시다. "참된 인물은 기품을 높이나 싸우지 않고, 어울리기는 하나 끼리끼리 짝..

삶의나침반 2018.03.02

쫄딱 망하기 / 백무산

시골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고들 말하지만 그 말은 어제오늘 나온 말이 아니다 소설가 백신애가 1930년대에 쓴 글에 요즘 촌부들은 이악해서 도회지 사람들을 속여도 먹는다, 고 썼다 오랜 세월 빨아먹어도 그래도 아직 시골로 남아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시골로 살러 오는 사람들 가운데 제일 반가운 사람들은 도시에서 망하고 왔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토목공사를 벌이지 않고 땅장사를 부업으로 하지도 않는다 한 아이가 시골에 이사 와서 동네방네 졸랑졸랑 자랑을 하고 다닌다 우리 아버지 서울에서 쫄딱 망했어요 망해서 즐거운 것은 아이와 땅뿐이다 따지고 보면 우주가 쫄딱 망해서 생긴 것이 땅이다 땅의 마음을 얻었다면 그건 대체로 망한 거다 구름의 발길을 따라갔다면 그건 이미 사전에 망한 거다 생긴 대로 사는 것은 망하..

시읽는기쁨 2018.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