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 26

시의 문장들

책머리에 나오는 '왜 시를 읽느냐 묻는다면'이라는 글이 인상 깊다. 시를 읽는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에 대한 답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시를 읽는 것은 사는 데 도움이 되고 쓸모도 있다고 말한다. 시는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왜냐하면 시는 '다르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언어의 반전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뒤집는 것, 그리하여 세계의 틈을 보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 그것이 시의 힘이다. 시를 읽는 것은 멈춰서 돌아보는 것이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듯이 시 한 편을 읽으며 마음을 빗는 것이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나면 다시 먼 길을 갈 힘이 난다. 남들이 좋다는 이 길 저 길 기웃거리지 않고 시를 등불 삼아 오롯이 내 갈 길을 갈 배짱이..

읽고본느낌 2018.07.31

전주천 산책

폭염 속에서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갔다. 이 정도로는 발갛게 달아오른 대지를 식히기에는 부족한 듯 후끈한 열기는 멈추지 않는다. 땅 밑에 용광로라도 들어있는 것 같다. 아내와 한 시간 정도 전주천을 산책했다. 올 여름 더위는 대단하다. 1994년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기세다. 그해에는 에어컨이 없어 매일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고작 한 달 전기료 걱정을 한다. 뜨거워지는 지구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니콘 D750에 20mm를 물려 테스트 샷을 해 봤다. 초광각이지만 배경 흐림 효과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풀프+단렌즈)로 변화를 주려고 한다. 출발은 기분 전환용에서 시작한다.

사진속일상 2018.07.30

논어[299]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익한 즐거움도 셋이요, 손해 보는 즐거움도 세 가지다. 예법과 음악을 알맞게 좋아하고, 남의 좋은 점을 들추기를 좋아하고, 잘난 벗이 많은 것을 좋아하면 유익하다. 풍성풍성 놀기를 좋아하고, 흐늘흐늘 놀기를 좋아하고, 먹자판 놀기를 좋아하면 손해 본다." 孔子曰 益者三樂 損者三樂 樂節禮樂 樂道人之善 樂多賢友益矣 樂驕樂 樂佚遊 樂宴樂損矣 - 季氏 3 공자의 '세 가지' 시리즈가 계속된다. 인생에서 누리는 즐거움에도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이 있다. 그중에 해로운 즐거움 세 가지는 교락(驕樂), 일유(佚遊), 연락(宴樂)이다. 안하무인격으로 노는 것, 빈둥거리며 노는 것, 먹고 마시는 일에 빠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즐겁게 살아야 하지만 어떤 즐거움이냐가 중요하다. 피해야 할 즐..

삶의나침반 2018.07.27

늙은이가 읊다 / 김삿갓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辱)이라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는데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 老吟 / 金笠 유교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그중 으뜸이 수(壽)다. 그러나 오래 살아서 복이 되기보다 욕이 되는 경우를 더 자주 본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잔뜩 올려놓았지만, 심신의 ..

시읽는기쁨 2018.07.27

어느 정치인의 죽음

그저께 노회찬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노 의원은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 중 한 분이었다. 노동자와 서민 편에 섰던 분을 잃게 되어 안타깝고 비통한 심정이다. 그분을 자살로까지 내몬 정황이 그렇게 심각했는지 지금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라는 의문이 자꾸 든다. 고인은 드루킹으로부터 4천만 원을 불법으로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 액수가 많지도 않다.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이런 일은 정치판에서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러나 도덕성에 상처를 입은 고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는지 모른다. 고인이 남긴 유서에는 정의당과 진보 정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다. 아마 본..

길위의단상 2018.07.25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

한겨레신문 강윤중 기자가 사진을 통해 소외된 이웃을 재조명한 책이다. 신문 연재물을 책으로 엮어낸 것 같다. 책에는 광부, 난민, 이슬람교인, 말기 암 환자, 철거민, 동성애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쪽방촌 노인 등과 함께 생활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에서는 소외된 이웃을 대하는 지은이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보다는 글이 더 와 닿는다. 아마 카메라를 들이대기에 조심스럽고 망설인 탓이 아닌가 싶다. 공감과 이해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 뒤에 사진과 글이 나오는 게 순서다. 우리는 세상을 색안경을 끼고 본다. 색안경은 대체로 이 사회가 만들어준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임의로 만든 색안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현상을 사실 그대로 보지 못한다. 타인이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 오해와 편견투성이다...

읽고본느낌 2018.07.24

논어[298]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익한 벗이 셋이요, 손해 보는 벗이 셋이다. 곧은 이와 벗하고, 믿음직한 이와 벗하고, 박학한 이와 벗하면 유익하다. 편벽스런 이와 벗하고, 능글능글한 이와 벗하고, 재잘거리는 이와 벗하면 손해 본다." 孔子曰 益者三友 損者三友 友直 友諒 友多聞益矣 友便벽 友善柔 友便녕 損矣 - 季氏 2 공자가 사람 나누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셋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스승이 있다고 했으니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세상 만물이 다 나의 스승이 된다. 그러나 누구와 어울리느냐에 따라 공부의 성과가 달라진다. 자극을 받는 벗이 있고, 방해되는 벗도 있다. 곧은[直], 믿음직한[諒], 박학한[多聞] 벗과 가까이하라고 한다. 아주 실용적인 지침이다.

삶의나침반 2018.07.23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예창해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꽃보다 아름답다 세상 환하게 밝히고 사람 살맛나게 하는 것이 살뜰한 인정말고 또 있던가 그러나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여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말하지 말라 꽃이 꽃을 속이던가 꽃이 꽃의 것을 빼앗던가 꽃이 꽃을 죽이던가 장미가 되겠다는 풀꽃이 있던가 모란이 호박꽃을 깔보던가 아침에 피는 나팔꽃이 밤에 피는 박꽃을 비웃던가 꽃은 저마다 꽃답고 꽃답게 사느니 그러므로 모든 꽃은 진실로 아름다운 것 사람 세상에 꽃처럼 사는 이가 얼마나 된다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하는가 / 예창해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들으면 거북하다. 뇌는, 그렇지 않아, 라고 계속 중얼거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역설적인 절규처럼 들리는 건 나만의..

시읽는기쁨 2018.07.22

사이판 불꽃나무

사이판 어디를 가나 만날 수 있는 나무다. 꽃 색깔이 붉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사이판을 상징하는 나무로, 이름이 불꽃나무(Flame Tree)다. 4월에는 불꽃나무 축제도 열린다. 꽃이 한창일 때는 온 나무가 불꽃처럼 붉게 타오를 것 같다. 만개 시기는 5월 중순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나무와 비교하면 나뭇잎이 자귀나무와 닮았다. 꽃 색깔도 비슷하니 서로 친척 사이지 싶다. 앞으로도 사이판 하면 이 불꽃나무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8.07.21

손주 따라 사이판(2)

사이판 셋째 날, 하늘이 활짝 개였다. 오늘 밤 별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젖는다. 개인적으로는 사이판의 별 사진을 찍어보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었다. 부피가 나가는 DSLR과 삼각대도 챙겼다. 구름 많은 날씨라는 예보를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한 것이다. 아침 날씨가 지속되기를 빌었다. 오늘은 북쪽으로 올라가며 유명 관광지를 찾아보는 날이다. 혼자 아침 산책을 하는 길이 행복했다. 손주는 일어나나마자 할머니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모든 투정을 받아주고 시중을 들어준다. 아이는 엄마를 졸라 또 수영장에 들어갔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은 없었다. 혼자서 물 미끄럼도 잘 탔다. 맨 처음 들린 곳은 사이판에서 제일 큰 마운트 카멜 성당이었다. 사이판은 스페인 통치를 받아서 가톨릭을 믿는 주민이 가장 많다. ..

사진속일상 2018.07.21

사이판의 꽃

사이판에서 만난 꽃이다. 전부 처음 보는 꽃으로 응당 이름도 모른다. 지역이 다르면 식물상도 달라지고 꽃도 생경하다. 적도에 가까워질 수록 색깔은 화려하고 크기도 커진다. 그런데 꽃이 아름다운 건 어디나 공통이다. 마지막 사진의 바닥에 떨어진 꽃은 사이판의 국화(?)인 플루메리아라고 한다. 키작은나무인데 눈부신 흰색이 특징이다. 가운데 노란색이 도드라지게 대비된다. 그저 눈에 띄는 대로 스쳐 지나간 사이판의 꽃이었다.

꽃들의향기 2018.07.20

손주 따라 사이판(1)

손주 따라 3박4일로 사이판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무 준비도 없이 따라나섰다. 둘째가 모든 계획을 짠 탓에 믿고 맡겼다. 해외여행 플랜에는 젊은이를 당할 수 없기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여행의 중심은 당연히 손주였다. 따라서 오랜만에 바다에도 들어가고, 많이 웃었다. 아내는 질겁을 하지만 손주를 놀리는 재미는 모를 것이다. 사이판까지는 네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떠나기 전까지도 사이판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아무 정보 없이 떠나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관계 없는 미국령인 것도 가서야 알았다. 크기도 자그마하다. 고구마 같이 생겼는데 길이가 긴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도 30분이면 넉넉하다. 첫 이틀간의 숙소는 코아나 리조트였다. 바다에 연하고 있어 방에서 바로 열대 바다가 내려다 보..

사진속일상 2018.07.20

자살률 1위

2018년도 OECD 보건 통계가 나왔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항목이 있다. 여전한 자살률 1위와 건강 만족도 최하위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8명으로 압도적 1위다. OECD 35개국 평균이 11.6명인데 그 두 배가 넘는다. 자살률이 제일 낮은 터키에 비하면 무려 23배에 달한다. 2위와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자살률은 지금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수치다. 한 해에 자살로 죽는 사람이 1만 명이 훨씬 넘는다. 경제 수준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먹고 살만큼은 되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삶이 고달픈 사람이 많을까?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유달리 높다. 그만큼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얘기다. 청소년은 성적 스트레스와 가족과의 갈등이 ..

길위의단상 2018.07.13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장마처럼 눅눅하고 우울한 기분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도서관 서가의 책을 훑어보다가 제목에 끌려서 꺼낸 책이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접하면서 위안을 받는 어찌할 수 없는 동물이다. 그런 연민이나 안도감이라도 없다면 세상을 살아내기가 훨씬 더 뻑뻑할 것이리라. 는 카툰 작가인 박광수 씨가 그리고 썼다. 짧은 글에 그림이 어우러져 있어 책장이 쉽게 넘어갈 듯하지만 문득 멈추어야 되는 순간이 잦다. 그래 맞아,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 라는 독백이 절로 나온다. 지은이가 자주 지적하는 대로 삶은 버텨내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볼 때는 즐겁고 재미나게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은 '버티기'가 삶의 기조였다고 한다. 그런 산을 무수히 넘어서 왔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

읽고본느낌 2018.07.13

축복 받은 삶

노년층에게 롤모델이 되면서 부러움을 받는 두 분이 있다. 송해와 김형석 선생이다. 송해 선생은 92세로 KBS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높다. 90세가 넘어서도 바깥 활동을 하며 돈을 벌어 오니 남편으로는 최고일 것이다. 철학 박사인 김형석 선생은 지식층 사이에 화제다. 올해 99세니 백수(白壽)를 맞았다. 그런데도 저술과 강연으로 젊은이보다 더 바쁘게 지내신다. 재작년에 나온 책 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오래 살면서 건강할 뿐 아니라 인간적 성숙의 표본이 된다는 점에서 선생은 존경을 받고 있다.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이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하나둘씩 무릎을 꿇는다. 질병이 찾아오고 정신은 쇠해진다. 두 분은 특별한 ..

참살이의꿈 2018.07.12

세한정 소나무

양평 세미원에 세한정(歲寒庭)이라는 정원이 있다.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공간이다. 건물은 전혀 세한도 분위기를 못 내지만 소나무는 그림 속 노송과 닮았다. 세한정을 조성하면서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구해 이곳에 옮겨놓은 듯하다. 그림에는 나무 네 그루가 그려져 있는데, 눈길을 끄는 나무는 단연 오른쪽에 있는 소나무다. 벼락을 맞은 듯 줄기는 부러졌고, 가지 하나만 옆으로 뻗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추사의 곤고한 삶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세한도의 주제는 신의라 할 수 있다. 발문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제일 늦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드는 것을 안다'고 하였으니, 소나무와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시들지 않는 것이지만, 춥기 이전에도 하나..

천년의나무 2018.07.11

논어[297]

선생님 말씀하시다. "구야, 참된 인간은 '욕심이 납니다'라 하지 않고, 무어니 무어니 핑계를 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내가 듣기에는 '나라나 집을 지닌 사람은 사람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불공평할까 걱정하며,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않고 불안정할까 걱정한다'고 한다. 대개 공평하면 가난하지 않고, 화목하면 사람이 적지 않고, 안정하면 기울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되기 때문에 먼 데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문화의 힘으로 따라오게 만들며, 이미 왔거들랑 안정을 시켜 주어야 한다. 이제 유와 구는 그 분을 돕되 먼 데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 것을 따라오게도 못하며, 나라는 갈가리 찢어져도 걷어잡지 못하고, 그러고서 국내에서 병력을 동원하려고 하니, 내 짐작에는 아마도 계손씨의 근심은 전유에게 있는 것..

삶의나침반 2018.07.10

장마 / 안상학

세상 살기 힘든 날 비조차 사람 마음 긁는 날 강가에 나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 보면 저렇게 살아 갈 수 없을까 저렇게 살다 갈 수 없을까 이 땅에 젖어들지 않고 젖어들어 음습한 삶내에 찌들지 않고 흔적도 없이 강물에 젖어 흘러 가버렸으면 좋지 않을까 저 강물 위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이 땅에 한 번 스미지도 뿌리 내리지도 않고 무심히 강물과 몸 섞으며 그저 흘러흘러 갔으면 좋지 않을까 비조차 마음 부러운 날 세상 살기 참 힘들다 생각한 날 강가에 나가 나는 - 장마 / 안상학 "사는 게 다 그래." 나만 힘들다 여겨질 때 가끔 되뇌는 말이다. 나에게만 집중하면 세상의 무게를 혼자 다 뒤집어쓴 것 같지만, 이웃으로 시선을 넓히면 사람살이가 다 비슷하다는 걸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견뎌내는 일이다. 외..

시읽는기쁨 2018.07.09

부도덕 교육 강좌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가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궐기를 촉구하며 할복자살한 때가 48년 전인 1970년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사진과 함께 신문에 크게 보도된 기사를 보며 놀랐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가 외친 내용은 차치하고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죽음의 방식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극우 민족주의자인 그에 대한 관심은 멀어졌다. 는 미시마 유키오가 쓴 산문집이다. 책 제목 그대로 사회 통념이나 도덕에 반기를 드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선생을 무시하라' '거짓말을 많이 하라' '약속을 지키지 마라'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여자에게 폭력을 사용하라' 등의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는데, 미시마 유키오다운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어 보면 제목처럼..

읽고본느낌 2018.07.07

선택과 과보

한 판의 바둑은 인생과 닮았다. 포석 단계는 청소년기와 비슷하다. 처음 둘 때 정석이 등장하듯, 인생 초반도 정해진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시기다. 중반전이 되면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치열함은 삶의 현장과 닮았다. 후반부에 들어서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건 바둑이나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바둑에서 어떤 수를 둘까 선택을 해야 하듯 인생도 그렇다. 바둑이나 인생이나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수를 택하느냐에 따라 바둑은 천변만화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라는 사소한 선택에서 결혼 같은 중차대한 선택도 있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듯 어떤 선택은 인생 행로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사실이다. 바둑의 경우에는 잘못된 한..

길위의단상 2018.07.05

나는 행복합니다

내 산 게 억울하다. 왜 그리 미련하게 일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래 살았어도 자식한테 효도 받지도 못한다. 요새 젊은 사람들 재미나게 사는 것 보면 인생 헛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고향에 내려갔을 때 하신 어머니의 직설적인 말이다. 이런 내색을 안 하셨기 때문에 적잖이 놀랐다. 작년에 동생이 낙향해서 어머니를 곁에서 모시고 있으니 지내시는 환경은 좋아졌다. 어머니는 동생이 내려간 뒤로 평생을 하시던 농사일을 그만두셨다. 밭에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에서 종일 노신다. 예전 같이 식사 준비도 걱정 안 하시고, 혼자서 드시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전에는 듣지 못했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는 여장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억척스레 농사일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는 모든 것이 당신의 책임이었고 몫..

참살이의꿈 2018.07.04

논어[296]

음악 선생 면이 만나려고 왔을 때 층계에 이른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층계입니다." 앉는 자리에 이른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앉는 자리입니다." 모두들 앉은즉, 선생님은 그에게 일러주기를 "아무개는 여기 있고, 아무개는 여기 있습니다." 음악 선생 면이 나간 후에 자장이 묻기를 "그것이 음악 선생과 함께 이야기하는 도리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렇다. 본시 음악 선생은 도와 드려야 하는 거다." 師冕見 及階 子曰 階也 及席 子曰 席也 皆坐 子告之曰 某在斯某在斯 師冕出 子張問曰 與師言之道與 子曰 然 固相師之道也 - 衛靈公 34 여기 적힌 내용으로 볼 때 음악 선생 면은 장님이 분명하다.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공자학당에 찾아왔을 것이다. 공자는 손수 안내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설명해 준다..

삶의나침반 2018.07.03

나의 유물론 / 김나영

왜 하필 느끼한 레스토랑이냐고 툴툴거리는 남편의 식성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생일날에 다친 마음도 밥 앞에서는 이내 맥을 못 추는 나는 이 세상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족속이다 평일보다 더 못한 기념일 소화되지 않는 속내와 날이 서는 내 눈초리에 선물 대신 뒤늦게 내미는 남편의 돈봉투를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순간 손끝으로 좌르르- 전해오는 돈의 두께에 다친 마음이 초고속촬영을 하듯이 아물고 있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지만 그것은 두꺼운 성경책 안에서나 통하는 말 돈의 위력 앞에 뭉쳐있던 내 속과 눈꼬리가 순식간에 녹진녹진 녹아났다 조금 전까지 야속하던 남편도 면죄하고야마는 나의 종교는 유물론에 더 가깝지 싶었다 내 안에서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울컥 올라왔지만 빳빳하고 두둑한 돈을 꽉 움켜쥐..

시읽는기쁨 2018.07.02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자기만의 고유한 색깔을 가진 글을 쓴다는 것은 칭송받을 만하다. 서너 문장만 읽어도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있다면, 그 작가는 자기 '류(類)'를 가진 것이다. 대표적인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에는 김훈이 있다.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마취에 걸린 듯 몽환적인 기분이 든다. 몸이 땅에서 몇 cm쯤 떠오르는 것 같다. 센티멘탈하면서 비현실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독특하면 호오의 구별이 갈린다. 나는 하루키 스타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도 힘들게 읽었다. 는 하루키의 에세이집이다. 글이 쓰인지는 30년도 더 되었다. 문학동네에서 나온 이 책은 삽화가 반은 차지해서 그나마 수월하게 넘어간다. 이 책에는 '소확행'이라는 제목의 에세이가 나온다. 요즈음 이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하루키에게서 유..

읽고본느낌 2018.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