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 32

레 미제라블(4)

4권의 부제는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다. 코제트와 마리우스의 사랑, 그리고 1832년 6월 항쟁을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세상을 보는 자신의 견해를 직접 밝히기도 한다. 당시 프랑스는 왕당파와 공화파의 이념 대결이 치열했다. 마치 지금 우리의 보수와 진보 갈등을 보는 것 같다. 가족 간에도 이념의 차이로 갈라진다. 마리우스와 마리우스 외할아버스 관계가 대표적이다. 공화파의 과격 계열은 혁명을 통해서 세상을 뒤엎으려고 한다. 위고는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존재한다." 혼란한 세상에서 고통을 받는 계층은 빈민이다. 소설에서 위고가 제일 연민을 가지는 대상이다. 공평한 분배와 사회..

읽고본느낌 2019.02.28

봄 오는 목현천

냇물 졸졸거리는 소리로 봄이 온다. 가벼운 패딩 잠바로 갈아 입고 목현천 산책에 나갔다. 오늘 낮 기온은 14도까지 올랐다. 미세먼지에도 불구하고 따스한 기운에 끌려 밖에 나와 걷는 사람이 많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와 통화하다. 동생네는 또 남쪽에 간 모양이다. 혼자 지내도 괜찮느냐는 물음에 대답이 경쾌하다. "혼자 있으니 신경이 안 쓰이고 훨씬 낫다." 그만큼 정정하시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새로 돋아난 가지에 잎인지 꽃인지 모를 봉오리가 맺혀 있다. 봄을 준비하는 나무는 지금 얼마나 바쁠 것인가. 만물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저녁도 흐리다. 이번 주는 수성이 최대이각이 되는 기간이라 관찰의 적기다. 해 진 뒤 서쪽 하늘에 잠시 얼굴을 내밀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헛..

사진속일상 2019.02.27

산성마을 느티나무

남한산성 안 산성마을에 있는 느티나무다. 곧고 훤칠하게 잘 자란 나무다. 다만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점이 아쉽다. 여름에는 풀이 무성해 접근할 수 없다. 잘 정비하면 주민의 훌륭한 쉼터가 될 텐데 안타깝다. 행궁 안팎에 있는 느티나무 옆에도 가 본다. 행궁 뒷산에는 소나무가 많지만, 행궁 주변에는 느티나무를 많이 심었던 것 같다. 크고 작은 느티나무가 10여 주는 될 듯하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그중에서도 일부분일 것이다.

천년의나무 2019.02.27

아내와 나

아내는 현미를 좋아하고 나는 백미를 좋아한다 아내는 성당 옆에 살기를 원하고 나는 산속 외딴집에 사는 걸 꿈꾼다 아내는 혈관 계통이 약하고 나는 소화 기능이 약하다 아내 뇌의 80%는 자식이 차지하고 내 뇌의 80%는 나 자신이 차지한다 아내는 식탁에서 몸무게를 걱정하고 나는 식탁에서 소화제를 걱정한다 아내는 눈이 건조해 눈물약을 항시 넣고 나는 눈물이 많아 휴지가 옆에 있어야 한다 아내는 손주에게 인기가 있지만 나는 마지못해 손주가 안긴다 아내는 몇 시간을 뒤척어야 잠이 들고 나는 눕자마자 코를 곤다 아내는 사나흘에 한 번 응아를 하지만 나는 하루에 서너 번 들락거린다 아내는 TV 연예 프로를 좋아하고 나는 스포츠 중계를 좋아한다 아내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아내는 국..

길위의단상 2019.02.26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 장석남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새벽길에 나서서 서리 앉은 한길에 앉아보았지 갈비뼈가 가지런하듯 겨울은 길어 차분하게 정이 들고 긴 겨울 동안 매일의 새벽은 이러한 고요를 가지고 왔던가 매 새벽마다 이걸 가져가라 함이었던가 왜 그걸 몰랐을까 겨울은 가면서 매 새벽마다 이 깨끗한 절망을 가져가라 했던가 꽃씨처럼 꽃씨처럼 - 겨울이 가면서 무어라고 하는지 / 장석남 낮 기온이 10도 중반까지 올라가니 봄이 확 다가온 듯하다. 즐겨 입었던 패딩 옷이 갑자기 무거워진다. 동백꽃이 떨어지듯 한순간에 툭, 하고 겨울이 꺾이는 것 같다. 올겨울은 힘들게 보냈다. 그 여파가 아직 내 몸 안에는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선지 이 시 제목에 끌리면서 여운이 깊게 남는다. 내용 중에서는 '깨끗한 절망'이라는 구절에 오래 머문다...

시읽는기쁨 2019.02.25

프리터

프리터(Freeter)란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정규직 대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며 자유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프리터가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진정한 프리터는 정규직을 자의로 포기하고 최소한의 일을 하는 선택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10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갈 자신이 있어야 한다. 시간당 1만 원으로 계산해서, 하루에 5시간씩 20일 일하면 1백만 원이 나온다. 이런 프리터가 일본에서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 신문에 충북 청주에 사는 프리터 한 분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커피 전문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로 버는 50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월세와 관리비로 22만 원, 휴대폰비와 교통비로 10만 원, 나머지는 식비..

참살이의꿈 2019.02.24

홍릉수목원 풍년화와 복수초

Y 형과 홍릉수목원에 들리다. 나무꽃인 풍년화와 풀꽃인 복수초를 만나다. 풍년화는 홍릉수목원에서 제일 번저 피는 꽃이다. 원산지는 일본으로 잎보다 먼저 진한 노란색의 꽃이 피며, 일찍 필수록 풍년이 온다는 얘기가 전한다. 꽃이 형태가 특이하다. 우리나라에는 1931년에 들어왔다. 복수초 역시 꽃을 피우고 있다. 남녘까지 못 찾아가니 가까운 여기서 이른 봄을 느낀다.

꽃들의향기 2019.02.23

논어[330]

선생님 말씀하시다. "아무래도 계집애와 심부름꾼은 취급하기가 곤란해. 가까이하면 멋대로 하고, 멀리 하면 투덜거리거든." 子曰 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 陽貨 23 공자 역시 가부장적 봉건 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이런 발언을 하면 공동체에서 뭇매를 맞으리라. 지금의 잣대가 아닌 공자가 살았던 시대의 기준으로 봐야 할 발언이다. 허나, 아껴주면 기어오르는 게 여자(女子)와 소인(小人)만이겠는가. '불가근 불가근(不可近 不可遠)'의 원칙은 모든 인간, 모든 타자에 해당하는 게 아닐까.

삶의나침반 2019.02.22

대고려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고려전(大高麗展)'을 보다. 고려는 918년에 태조 왕건이 개국해서 1392년에 멸망하기까지 475년간 지속된 나라다. 작년이 개국 1100년이 된 해다. 고려는 조선 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 받고 있다. 그러나 고려는 굉장히 개방적인 국가였고, 나름의 문화를 꽃피운 나라였다. 13세기 개경은 50만 명이 거주한 대도시였고, 30리 떨어진 예성강변의 벽란도에는 장사를 하는 외국 배들이 쉼없이 드나들었다 한다. 이번 전시에는 5개국에 모은 450여 점의 고려 문화재가 선보인다. 불교 유물이 많아선지 스님들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포스터에 대표 유물로 소개된 표주박 모양이 병. 실제는 아주 작다. 정교한 무늬 장식이 일품이다. 고려청자. 기교가 대단하다. 일본에서 ..

사진속일상 2019.02.21

오죽헌 배롱나무

오죽헌에 있는 600년 된 배롱나무다. 신사임당이나 율곡 선생 생존시에도 이 자리에 배롱나무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나무는 원목의 다음 세대에 해당할 것이다. 보통 고사한 원줄기에서 돋아난 싹이 자라 새 나무로 우뚝 선다. 여름에 분홍색 꽃이 필 때를 노렸지만 이때까지 한 번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 나무는 잎과 꽃으로 치장했을 때보다 나체일 때 진면목이 드러난다. 겨울 배롱나무는 옷을 홀랑 벗고도 당당하다. 매끄러운 살결이 세월의 무게로 주름이 졌다.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천년의나무 2019.02.20

율곡매와 율곡송

강릉시 오죽헌에 있는 매화나무와 소나무로, 율곡매과 율곡송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율곡매는 천연기념물 484호로 1400년 경 이조참판을 지낸 최치운이 오죽헌을 건립하고 별당 후원에 심었다고 한다. 신사임당과 율곡 선생이 직접 가꾸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사임당은 고매도(古梅圖) 등 여러 매화 그림을 그렸고, 맏딸 이름을 매창(梅窓)이라고 지을 만큼 매화를 사랑했다. 율곡매의 수령이 600년 가량 된다면 율곡 선생 당시에도 상당한 굵기였을 것이다. 아마 지금 보는 나무는 그때 나무의 아들나무쯤으로 추정된다. 꽃잎이 연분홍인 홍매(紅梅) 종류라는데, 한 달 뒤면 꽃이 핀 율곡매를 만날 수 있겠다. 강릉에는 소나무가 많다. 오죽헌에 소나무가 없을 리가 없으니 문성사(文成祠) 마당에 두 그루의 소나무가 우뚝..

천년의나무 2019.02.20

눈 내리는 아침

"Is it snowing there now?" 바다 건너에 가 있는 사람한테서 카톡이 왔다. 눈 소식은 외국에서도 들리나 보다. "Here is white winter. Beautiful!" 어쩌면 이 눈이 올 겨울 마지막 선물이 될 듯하다. 기온이 올라 낮에는 비로 변한다는 예보다. 유치원 종업식을 하러 간 손주는 눈을 만져볼 수 있을지. 저 하늘 먼 곳에서부터 봄이 진군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겨울이 흔드는 백기(白旗)가 산야에 가득하다.

사진속일상 2019.02.19

패터슨

뉴저지주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은 버스 기사다. 도시락 가방을 들고 출근해서 저녁까지 버스를 몰고, 퇴근해 저녁을 한 뒤에는 개를 산책시키며 바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신다.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이다. 특이한 점은 패터슨은 틈틈이 시를 쓴다. 시 쓰기가 그의 전부라 해도 좋다. 예술가 기질을 가진 아내도 자신의 취향대로 집을 꾸미며 나름의 삶을 즐긴다. 이 영화 '패터슨'은 일견 무미건조해 보이는 패터슨 부부의 일주일 동안의 삶을 그린다. 화려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현 세태와는 정반대의 생활이다. 이런 삶도 충분히 가능하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의 내면에 숨어 있는 욕구인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면 단조롭고 건조한 일상이지만 똑같지는 않다. 영화는 매일 아침 침대에 같이 누워 ..

읽고본느낌 2019.02.18

중앙고 히말라야시다

강릉 중앙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히말라야시다다. 1931년 제 1회 졸업 기념으로 심은 나무라고 한다. 수령이 100년이 넘었다. 나무 높이는 28m, 줄기 둘레는 4.8m로 우람하다.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라 성장 속도가 빠르다. 히말라야시다는 원산지가 히말라야 지역이다. 네팔에 갔을 때 이런 모양의 나무를 자주 만났던 기억이 난다. 줄기에서 난 가지가 옆으로 뻗는 게 특징이다. 나무는 전체적으로 피라미드 형태다. 수형이 아름다워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주로 심는데, 개잎갈나무, 히말라야삼나무, 설송(雪松) 등으로 불린다. 왕성한 생명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2.17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가는 소리에 잠 깼다 온 줄도 몰랐는데 썰물 소리처럼 다가오다 멀어지는 불협화의 음정(音程) 밤비에도 못다 씻긴 희뿌연 어둠으로, 아쉬움과 섭섭함이 뒤축 끌며 따라가는 소리, 괜히 뒤돌아보는 실루엣, 수묵으로 번지는 뒷모습의 가고 있는 밤비 소리, 이 밤이 새기 전에 돌아가야만 하는 모양이다 가는 소리 들리니 왔던 게 틀림없지 밤비뿐이랴 젊음도 사랑도 기회도 오는 줄은 몰랐다가 갈 때 겨우 알아차리는 어느새 가는 소리가 더 듣긴다 왔던 것은 가고야 말지 시절도 밤비도 사람도.... 죄다 - 비 가는 소리 / 유안진 비 '오는' 소리만 알았지, '가는' 소리를 의식하지는 못했다. 오는 게 있으면, 응당 가는 것도 따른다. 삼라만상의 변화가 그러하다. 누구나 이 세상에 던져지듯 왔다가 불현듯 사라져 간다..

시읽는기쁨 2019.02.16

죽헌동 회화나무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회화나무다. 수령이 600년 가까이 되었다. 그러나 나무 상태는 썩 좋지 못하다. 자라는 터도 옹색하다. 여기저기 가지가 잘려나가 나무 체통이 말이 아니다. '산림청 선정 100 보호수'에 이 나무가 선정되어 있다. 전설이나 설화가 전해지는 나무들이다. 이 나무는 율곡 선생이나 신사임당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나무의 연륜으로 볼 때 율곡 선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 나무는 있었다. 소싯적에는 이 회화나무 아래서 놀았을 수도 있다. 오죽헌 주차장 옆에 있는 회화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2.15

60.4kg

몸무게가 지금 같이 떨어진 것은 기억에 닿는 한 전에는 없던 일이다. 오늘 아침에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60.4kg이 나왔다. 작년 이맘때 66kg이 넘었으니 6kg이나 빠진 셈이다. 겨울에는 활동량이 줄어드니 보통 몸무게가 늘어난다. 그런데 이번 겨울에는 반대다. 속병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못 먹어서다. 소화가 안 되니 소식을 해야 하고, 기름진 음식은 먹지 못한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먹는 양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빠져야 하는 게 맞다. 소화불량과 부글거림 증상이 이렇게 오래 가는 건 처음이다. 늙은이는 한 번 탈이 나면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덕분에 좋은 점도 있다. 우선 몸이 가벼워서 경쾌하다. 65kg이 넘으면 둔하다. 느낌으로는 내 적정 체중이 61kg 내외인 것 같다. 나..

길위의단상 2019.02.15

논어[329]

자공이 말했다. "참된 인간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미워하는 일이 있지. 남의 허물을 도리어 칭찬하는 자를 미워하고, 밑바닥에 깔린 사람이 윗사람을 헐어 말하는 자를 미워하고, 용감할 뿐 예법을 모르는 자를 미워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으면서 숨막히는 짓을 하는 자를 미워한다." "사야,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남의 말을 받아서 제 것인 체하는 자를 미워하고, 함부로 하는 것을 용기인 양 여기는 자를 미워하고, 남의 잘못을 들추되 곧은 일을 하는 양하는 자를 미워합니다." 子貢曰 君子亦有惡乎 子曰 有惡 惡稱人之惡者 惡居下流而산上者 惡勇而無禮者 惡果敢而窒者 曰 賜也 亦有惡乎 惡요以爲知者 惡不孫以爲勇者 惡알以爲直者 - 陽貨 22 사제간에 쿵짝이 잘 맞는다. 우리는 군자, 어..

삶의나침반 2019.02.14

선교장 소나무, 주엽나무

조선 시대 상류층의 저택을 대표하는 강릉 선교장(船橋莊)은 뒷산의 소나무가 일품이다. 저택을 감싸듯 품고 있는 뒷산에는 사, 오백 년 생 소나무가 울창하다. 곧게 뻗은 금강송이다. 소나무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걸으면 선교장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중 대표 소나무 하나에 보호수 안내문이 적혀 있다. 수령은 500년이 넘었고, 나무 높이는 23m, 줄기 둘레는 1m다. 밑에서 올려다 보면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이 나무를 포함헤 모두가 멋진 우리의 소나무들이다. 선교장 뒤편에는 오래된 주엽나무도 있다. 안내문에는 수령이 570년으로 되어 있다. 가지 대부분은 잘린 채 고사 직전의 모습이다. 줄기를 두드려보니 퉁퉁 공명 소리가 난다. 속은 썩어서 텅 비었다. 선교장이 세워진 지는 300년 정도..

천년의나무 2019.02.14

강릉 드라이브

몸은 시원찮고 마음도 서걱거린다. 동쪽으로 차를 몰고 나가다. 강릉이 그리 멀지 않다. 오래된 나무를 만나면 작게나마 위안이 되리라. 바다도 봐야겠지. 경포대해수욕장 바다 바람이 드세다. 내 고향 소백산 능선에서 맞는 바람에 못지 않다. 사람들은 바람 불어오는 방향을 등지고 서 있다. 가슴이 뻥 뚫리고 시름이 다 날라가 버릴 듯하다. 선교장 뒷산 길을 한 바퀴 돌다. 산수유 노란 꽃봉오리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오죽헌도 들리다. 응당 나무를 만나는 게 목적이다. 見得思義 - 율곡 선생의 말씀인가 보다.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 옳지 않은 것이라면 이득을 포기할 줄 아는 대장부가 이 시대에 과연 얼마나 있을까. 죽 파는 집을 찾아 시내를 배회하다. 강릉까지 가서는 죽으로 점심을 때우다. ..

사진속일상 2019.02.13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문명: 지금 우리가 사는 방법' 사진전을 관람하다. 32개국, 130여 명의 작가들이 3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선보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인간이 만든 문명을 바라보면서, 우리 삶의 모습을 확인해 보는 사진전이다. 작품은 8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져 있다. 벌집(Hive) 따로 또 같이(Alone Together) 흐름(Flow) 설득(Persuasion) 통제(Control) 파열(Rupture) 탈출(Escape) 다음(Next) 다양한 사진이 모여 있어서 문명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다. 인간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또한 문명의 그늘에 어두워진다. 인간의 획일화나 탈개성화에 대한 경고를 자주 볼 수 있다. 자연 파괴를 고발하는 사진은 거의 안 보인다. 너무 디스..

사진속일상 2019.02.12

레 미제라블(3)

1800년대 초반의 파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한 편의 세밀화를 보는 것 같다. 당시에도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첨예했다. 지금 우리 시대와 다를 바 없다. 보수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왕당파와 개혁을 꿈꾸는 자유주의파가 대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권의 주인공은 마리우스다. 마리우스는 사회 변혁을 바라는 청년 그룹을 통해 눈을 뜬다. 7, 80년대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들어간 학생이 의식화되는 과정과 비슷하다. 마리우스는 할아버지의 후원을 거절하고, 가난하지만 주체적인 삶을 찾아 나간다. 열정적인 활동 이전에 이런 내적 성숙 과정이 있어야 한다. 여기 등장하는 마리우스는 순수한 영혼을 가진 고결한 청년으로 그려지고 있다. 장발장과 팡틴은 자베르의 추적을 피해 조용히 숨어 살고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

읽고본느낌 2019.02.11

둔해지면 좋겠다

첫째, 위와 장이 둔해지면 좋겠다. 나는 위와 장이 너무 예민하다. 우선, 찬 것과는 상극이다. 냉 음료는 아예 못 마신다. 한여름에도 냉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바로 배탈이 난다. 먹는 것만 아니라 복부에 냉기만 닿아도 반응이 온다. 에어컨을 켤 때는 배를 담요로 감싸야 한다. 이런 위장이니 정신적 스트레스에 약할 수밖에 없다. 신경 쓰는 일이 생기면 속이 부글거리고 소화가 안 된다. 병원에서는 과민성 대장 증상이란다. 젊을 때부터 나를 괴롭힌 병이다. 사는 데 애로사항이 많다.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위와 장도 좀 둔해지면 좋겠다. 둘째, 소음에 둔해지면 좋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소리에 민감해진다. 소음을 견디지 못한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퇴직하고 난 뒤부터 더 심해졌다. 조용히 ..

참살이의꿈 2019.02.10

월훈(月暈) / 박용래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드러내면 보이는 마을. 갱坑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모과木瓜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

시읽는기쁨 2019.02.09

경안천 작은 한 바퀴

기해년 설을 지내고 경안천에 걸으러 나가다. 몸속 위장을 운동시켜 주기 위해서다. 뱃속 전쟁이 멈출 기미가 없다. 보급을 끊기 위해 술은 물론이고 커피도 금하고 있다. 두 주째다. 마음대로 먹지를 못하니 몸무게도 61kg대로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다이어트가 된 셈이다. 싸늘하나 공기가 깨끗해 기분 좋은 날이다. 미세먼지 '좋음' 상태가 반갑다. 찬 바람이 불어줘야 미세먼지가 걷힌다. 그래서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다니 통탄할 세상이다. 경안천 주차장에서 돌다리를 건너 돌아오는 데 두 시간이 약간 더 걸린다. 작은 한 바퀴다. 더 멀리 나가는 코스는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전에는 긴 코스를 주로 다녔는데 요사이는 주로 작은 한 바퀴를 돈다. 이것도 세월이 쌓여가..

사진속일상 2019.02.08

논어[328]

자로가 말했다. "지도적 인물도 용기를 숭상합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지도적 인물은 정의를 으뜸 삼지. 지도적 인물이 용기만 뽐내면서 정의감이 없으면 반란을 꿈꾸고, 덜된 인간이 용기만을 뽐내면서 정의감이 없으면 도둑질을 한다." 子路曰 君子尙勇乎 子曰 君子義以爲上 君子有勇而無義 爲亂 小人有勇而無義 爲盜 - 陽貨 21 자로가 용기[勇]를 물은 건 자로에 어울리는 질문이다. 군자는 정의[義]를 으뜸으로 삼는다고 공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선지 정의를 내세우지 않는 무리가 없다. 부글거리는 욕망을 가리는 명분으로 정의만 한 게 없다. 전두환 독재 정권 때는 모든 관공서에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 한때 높이 들었던 정의의 깃발 또한 젊음의 객기나 멋있어 보이기 위한 만용이 아니었는..

삶의나침반 2019.02.07

단촌리 느티나무(3)

고향에 내려가는 길에 단촌리 느티나무에 먼저 들리다. 고향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닿는 거리에 있다. 겨울이 되니 느티나무의 우람찬 풍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줄기의 굵기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나무다. 볼 때마다 "대단하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줄기에 비해 키가 작으니 오히려 안정감이 있다. 이렇게 살아남기까지 감내해야 했을 무수한 인고의 때를 생각한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래 가사 그대로, 여기 거인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너무 왜소해진다. 쓸쓸한 겨울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천년의나무 2019.02.06

2019 설날

내려가는 길은 심란했다. 지난가을부터 몇 차례 회오리바람이 지나갔다. 고향 가는 길이 이렇게 마음이 무거운 적도 없었다. 설 차례를 지내고 올라오는 길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동생도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은 듯했다. 일단은 일단락된 듯 보인다. 정성 들여 차린 설음식을 나는 거의 먹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속병이 다시 심하게 나타났다. 지난가을 이래로 반복되는 증상이다. 나에게는 스트레스를 직격탄으로 받는 부분이 위와 장이다. 무심한 듯 감추려 해도 위장은 너무 솔직해 탈이다. 좀 둔하면 좋으련만.... "나는 괜찮다. 잘 지낸다." 겉으로는 미소를 짓지만, 부모의 속마음을 자식이 얼마나 헤아릴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게 제일 큰 효가 아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도. 설날 아침에 증손자와 장난..

사진속일상 2019.02.06

보헤미안 랩소디

음악에 문외한이니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화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추천하는 소리를 반복해서 듣다 보니 느지막이 해서 보게 되었다. 서너 번씩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감동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퀸이라는 록 밴드 이름은 알지만 노래는 거의 모른다. 영화를 보니 'We are the champions' 하나만 귀에 익다. 팝송이라도 컨트리풍이나 발라드 같은 조용한 음악만 골라 들으니 퀸의 음악이 마음에 다가올 수 없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곡이 있는 줄도 이번에 알았다. 퀸의 네 멤버 중 보컬을 맡은 프레디 머큐리를 중심으로 시간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이라이트는 영화의 마지막 20분을 장식하는 웸블리 구장에서의 공연이다. 퀸의 팬인 사람에게는 가슴 뛰게 할 장면이다. ..

읽고본느낌 2019.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