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 35

논어[334]

제나라 경공이 선생님의 대우에 대하여 말하기를 "계씨처럼 할 수 없고, 계씨와 맹씨의 중간으로 하지." 또 말하기를 "나도 늙었어. 쓰기가 힘들 거야." 선생님은 떠나 버렸다. 齊景公 待孔子 曰 若季氏 則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 行 - 微子 3 공자가 제나라에 가 있었던 때가 BC 517년, 공자 나이 35세였다. 아마 그때 일이 아닌가 싶다. 공자를 어느 수준으로 대우할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경공이 공자를 얻은 것을 기뻐했다. 그러나 당시 제나라의 실력자인 재상 안영이 공자의 등용을 반대했다. '공자세가'에 나오는 안영이 경공에게 간언한 말의 일부다. "유자(儒者)는 입만 번지레할 뿐 본받을 만한 것이 없고, 속으로 거만하면서 겉으로 공손한 척하니 수하에서 부..

삶의나침반 2019.03.31

자두꽃

어릴 때 고향에서는 자두를 츄리라고 불렀다. 고향 집 뒤에 츄리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유난히 시어서 나는 우리집 츄리만 보면 고개를 저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자두를 보면 외면하는 일이 잦다. 과일나무 꽃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데, 자두꽃이 이렇게 화사하고 예쁜 줄 올봄에 처음 알았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에 나오는 오얏나무가 자두나무다. 한자명은 오얏 이(李)다. 자두는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에는 유럽을 거쳐 개량된 자두가 1920년경에 들어왔다고 한다.

꽃들의향기 2019.03.30

미세먼지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미세먼지 수치부터 확인한다. 하루의 활동 여부가 그 수치로 결정된다. 집에는 인터넷으로 주문한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가 몇 박스나 쌓여 있다. 그런 아내를 나는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핀잔 주고, 아내는 무지하면 병을 키운다고 나를 타박한다. 외출할 때마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 안 쓰겠다'로 서로 티격태격한다.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미세먼지를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아내처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무딘 사람도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마스크를 쓰는 것이 미세먼지를 마시는 것보다 더 나쁘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 헷갈린다. 미세먼지의 발생원부터 파악하는 게 우선일 텐데 그마저 정확한 데이터가 없다. 중국 영향이 몇 퍼센트인지부..

길위의단상 2019.03.29

탄실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전기소설이다. 김별아 작가가 고발하듯 펴냈다. 김명순의 어릴 때 이름이 탄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와 시대와의 불화로 지난한 삶을 한 여인이다. 1세대 여성 문인으로서 나혜석과 닮은 점이 많다. 문정희 시인이 쓴 '곡시(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에 그녀의 일생이 잘 그려져 있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에서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

읽고본느낌 2019.03.27

분매(盆梅) / 임영

백옥당 안에서 어느 날 문득 피어난 매화여! 벗님과의 술자리에서 고결한 미소를 짓누나 온 천지에 눈 내리고 찬 바람 휘몰아치는데 그대, 짙은 향기를 풍기며 어디메서 왔는가? 白玉堂中樹 開花近客杯 滿天風雪裏 何處得夫來 - 분매(盆梅) / 임영(林泳) 올해는 남도 지방에서 몇 그루의 고매(故梅)를 만났다. 매화는 선비가 지켜야 할 정신을 상징하는 꽃이었음을 이번 길에서 확인했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는 말이 나타내듯, 어떤 가난과 고난에도 선비는 지조를 꺾을 수 없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에 꽃을 피워내는 매화를 보며, 옛 선비들은 위안을 받고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다짐을 했을 것이다. 임영(林泳, 1649~1696)은 조선조의 문신이다. 경전과 역사서에 정통하였고, 제자백가..

시읽는기쁨 2019.03.27

바다부채길을 걷다

강릉에 다시 간 목적은 꽃 핀 율곡매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때를 못 맞췄다. 율곡매 매화는 이미 졌다. 강릉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데도 꽃이 피는 시기는 빠르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개화를 시작했다. 아쉬움을 접고 정동진으로 가서 아내와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다. 정동진과 심곡항을 연결하는 탐방로인데, 그동안 해안 경비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이곳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다. 바다부채길 길이는 2.9km다.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남쪽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안단구 지형을 볼 수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신생대 3기 말인 23..

사진속일상 2019.03.26

봄 맞는 뒷산

어제는 한 시간 정도 진눈깨비가 흩날렸다. 지붕과 산이 하얀 옷을 입었다가 금방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오늘 산길은 촉촉하게 젖어 걷기에 좋았다. 남쪽 지방은 벚꽃이 한창이지만 여기는 이제 봄기운이 도착했다. 진달래가 꽃봉오리를 맺은 채 따스한 햇볕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며칠 뒤면 활짝 필 것이다. 뒷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한창이다. 지금부터 폭죽 터지듯 봄꽃의 향연이 펼쳐지리라. 올해는 개화 시기가 일주일 정도 빠르다. 각 지방의 꽃 축제도 예년보다 앞당겨지는가 보다. 뒷산 꼭대기에 이를 때쯤 조그만 쉼터가 나온다. 대여섯 사람이 앉을 만한 평지다. 남향이어서 햇살 따스하고 뒤로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 포근하다. 나무를 가로로 걸쳐놓은 의자가 있고, 작은 탁자도 있다. 항상 쉬어가는 곳인데 워낙 사..

사진속일상 2019.03.24

화엄사 흑매와 야매

홍매화 종류지만 너무 붉은색이 진하니 흑매(黑梅)라고 부른다. 전남 구례 화엄사에 있는 매화나무다. 수령은 3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봄이 되면 이 매화의 색깔 때문에 화엄사 스님들 마음에 파문이 일 것 같다. 그러다가 파문 당하는 일은 없겠지, 설마. 나무의 맵시 또한 고혹스럽다. 화려하면서도 곱게 성장(盛裝)한 여인네의 단심(丹心)이 이러하리라. 이번 탐매 여행에서 유일하게 꽃 때를 맞춘 매화나무다. 그런데 매화나무 옆 건물을 보수공사하느라 사진을 제대로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내년에 다시 한 번 들러야겠다. 흑매의 개화 시기는 3월 20일 경이다. 화엄사 뒤편에 길상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는다. 길상암 앞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가 있다. 야매(野梅..

천년의나무 2019.03.24

백양사 고불매

우리나라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가 네 그루 있다. 그중 하나가 이 백양사 고불매(古佛梅)다. 백양사에서는 1700년경부터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 왔다고 한다. 그때 심은 매화나무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매화나무다. 분홍색 꽃이 피는 홍매로, 수령은 350년가량 되었다. 장성 백양사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이라 불린다. 총림(叢林)은 선원, 강원, 율원 등을 갖춘 사찰로,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를 5대 총림이라 한다. 1947년에 백양사에서는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을 따르자는 뜻으로 고불총림을 결성했다. 그래서 이 매화를 고불매라 부른다. 고불매는 대웅전을 바라볼 때 뜰 왼편 통로에 있다. 줄기에서 가지가 셋으로 갈라졌는데, 전체적인 모양새가 단아하고 품위 있다. 우리가 찾아갔..

천년의나무 2019.03.23

논어[333]

유하혜는 재판관이 되었다가 세 번 쫓겨났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선생은 아직도 떠나실 판국이 아닌가요?" "도리를 꼿꼿이 세우면서 사람을 섬기면 어디를 간들 세 번 쫓겨나지 않을까! 도리를 굽혀가면서 사람을 섬기면 하필 고국을 떠날 것까지야 있나!" 柳下惠 爲士師 三黜 人曰 子未可以去乎 曰 直道而事人 焉往而不三黜 枉道而事人 何必去父母之邦 - 微子 2 유하혜는 공자보다 150년 정도 앞선 시대를 산 노나라 사람이다. '위영공'편에도 현인으로 나온다. 공자와 제자들이 존경한 사람인 듯하다. 재판관이 되어서 세 번이나 쫓겨났다는 것은 그만큼 올곧은 처신 때문일 것이다. 그런 대우를 받을 바에야 왜 다른 나라로 떠나지 않는지 사람들이 물었다. '도리를 꼿꼿이 세우면서[直道]' 살면 어디 간들 쫓겨나지 않겠느냐고..

삶의나침반 2019.03.23

남사마을의 오래된 나무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남사마을은 고가가 잘 보존되어 있는 전통 마을이다. 옛 담이 아름다워 '예담촌'이라고도 한다. 마을을 둘러볼 때 전통 가옥과 함께 오래된 나무를 만나보는 즐거움이 크다. 제일 유명한 나무는 '원당매'지만, 다른 오래된 나무도 여러 그루 있다. 1. 남호정사 매화나무(이씨매) 백매(白梅)로 희고 맑은 꽃이 핀다. 은은한 향기와 품격 있는 모습으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며 사랑을 받는 매화나무다. 수령은 150년 되었다. 2. 하씨고가 감나무 고려말 원정공 하즙(河楫)의 손자 하연이 어릴 때 심은 나무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수령이 600년이 넘는다. 안내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나무라 적혀 있다.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3. 선명당 매화나무(정씨매) 남사마을에서 가..

천년의나무 2019.03.22

백양사 갈참나무 길

전남 장성 백양사로 들어가는 길에 갈참나무 군락이 있다. 수령이 300년이 넘는 갈참나무 30여 그루가 자란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700년 된 갈참나무도 있다. 야산에서 흔히 보는 갈참나무가 이런 고목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원래 이곳은 갈참나무 숲이었고, 이만한 갈참나무가 남아 있음은 정성들여 보호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은 도로에 자리를 내어주고 나무만 덩그라이 서 있다. 원래의 생육 환경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우회 도로를 만드는 등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갈참나무 노거수가 모여 있는 이런 군락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천년의나무 2019.03.22

산청 삼매

산청에 있는 세 그루의 오래된 매화나무를 '산청 삼매'라고 부른다. 남명매, 원정매, 정당매다. 오래전부터 찾아가 보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원을 이루었다. 그런데 너무 늦었는지 두 그루는 이미 고사했다. 십 년 전까지는 살아 있었다는데 아쉽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1. 남명매(南冥梅)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61세 때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뜰에 심은 나무라 한다.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되는 매화나무다. 이 매화나무와 관계 있음직한 선생의 시가 전한다. 朱點小梅下 高聲讀帝堯 窓明星斗近 江闊水雲遙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큰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있네 2. 원정매(元正梅..

천년의나무 2019.03.21

남도 탐매 여행

경떠회 다섯 명이 산청과 구례 지역을 중심으로 탐매 여행을 다녀왔다. * 때: 3. 18 ~ 19(1박2일) * 곳: 단속사지 정당매 - 남사마을 원정매 - 산천재 남명매 - (지리산 더케이가족호텔) - 산수유마을 - 화엄사 흑매와 야매 - 백양사 고불매 같은 남도 지역이지만 산청에서는 매화가 거의 졌고, 고불매는 꽃봉오리 상태였다. 지금 이때, 구례 화엄사 흑매만이 한창이었다. 만개한 때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 마을 입구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라는 간판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사마을.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뭔가 부조화가 느껴진다. 마을길에 들어서도 높은 담장 때문에 답답하다. 안동 하회마을과 여러 면에서 비교된다. < 남..

사진속일상 2019.03.21

백양사 산자고

백양사 비자나무 숲에 들었다가 산자고 무리를 만났다. 산자고는 작고 올망졸망한 이른 봄꽃과는 스타일이 다르다. 활짝 편 꽃잎을 보면 크고 시원시원하다. 백합과에 속한다. 산자고(山慈姑)는 한자 이름대로 하면 '산의 인자한 시어머니'가 된다. 이런 이름이 붙은 연유가 궁금했는데 이번에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먼 옛날, 산골에 노모와 외아들이 살고 있었다. 늙은 어머니를 부양하는 가난한 산골 총각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처녀는 없었다. 시름이 깊어가던 어느 봄날, 보따리를 한 처녀가 찾아왔다. 그 처녀는 산너머에서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내가 죽으면 산너머 외딴집에 시집을 가라"는 유언을 남겼단다. 총각과 처녀는 결혼해서 노모를 모시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며느리 등..

꽃들의향기 2019.03.20

백양사 비자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는 비자나무 숲이다. 전남 장성군 북하면에 있는 백양사 주변 산에 7천 그루 정도가 자생하고 있다. 이 숲은 고려시대 진각국사(眞覺國師, 1270~1355)가 당시 구충제로 사용되던 비자나무 열매를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와 같은 의약 재료나 식물성 기름으로 사용되고, 목재는 탄력이 좋고 무늬가 예뻐 건축과 가구재, 바둑판 등에 많이 쓰인다. 비자나무는 추위에 약한 난대성 상록침엽수라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백양사 비자나무 숲은 산감(山監) 스님을 둘 정도로 절에서 정성들여 관래한 탓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천년의나무 2019.03.20

안동 숙맥 박종규 / 안상학

신문 지국을 하는 그와 칼국수 한 그릇 할 요량으로 약속 시간 맞춰 국숫집 뒷방 조용한 곳에 자리 잡고 터억하니 두 그릇 든든하게 시켜 놓고 기다렸는데 금방 온다던 사람은 오지 않고 국수는 퉁퉁 불어 떡이 되도록 제사만 지내고 있는 내 꼴을 때마침 배달 다녀온 그 집 아들이 보고는 혹 누구누구를 만나러 오지 않았냐고 은근히 물어오길래 고개를 끄덕였더니만 홀에 한 번 나가보라고는 묘한 미소를 흘리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을 지나 홀 안을 빼꼼 들여다보니 아연하게도 낯익은 화상이 또한 국수를 두 그릇 앞에 두고 자꾸만 시계를 힐끔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 안동 숙맥 박종규 / 안상학 오늘 점심은 시장에 나가 국수를 먹었다. 잔치국수 한 그릇에 4천 원이다. 집은 허름하지만 국수는 맛있고 양도 푸짐하다...

시읽는기쁨 2019.03.17

지공거사가 되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65세 이상 되는 노인)가 된 지 두 달이 지났다. 학교 동기들보다 이태나 늦다. 학교를 한 해 빨리 들어간 데다, 호적마저 일 년 늦은 결과다. 그래서 제일 끄트머리로 지공거사에 편입했다. 아직 경로카드는 발급받지 못했다. 서울에 살지 않으니 지하철 무료 이용 카드가 그다지 소용이 없다. 다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 된다. 그동안 몇 번의 전시회와 시설 입장료에서 할인을 받았다. 막상 요금 할인을 받아보니 그 재미가 쏠쏠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옛말이 있듯이 돈 앞에서는 나이 든 사실을 자랑할 만도 하다. 이젠 대중교통 경로석에도 떳떳하게 앉을 수 있다. 전에도 날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머리가 백발이라 나를 칠십대로 보..

참살이의꿈 2019.03.17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1979년생. 상하이 자오퉁대학교를 졸업하고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에서 유학한 뒤 돌아와 상하이 푸딘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놀며 '꼬마 깡패'로 악명이 높았다. 한편으로는 소문난 독서광이었으며, 지는 것을 싫어해 공부에서든 놀기 또는 먹기에서든 항상 또래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곤 했다. 환경 경제를 공부하기 위해 노르웨이에 유학을 갔다가, 이른바 '노르웨이 숲'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숲에 미래가 있다'는 비전을 세운 채 중국으로 돌아와 교수가 되었다. 숲에서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숲 프로젝트'를 정부에 제안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던 2009년 10월, 갑작스럽게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이륙 준비를 마친 우주선이 카운트다운 직전..

읽고본느낌 2019.03.16

무갑산의 너도바람꽃

3월 초중순이면 무갑산 계곡에 너도바람꽃이 핀다. 가까이 있는 무갑산이지만 6년 만에 찾았다. 그때에 비해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어 안타까웠다. 사진을 찍으러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이다. 한 번 소문이 나면 어디서나 이런 시련을 겪는다. 그동안 무갑산에 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수리산 변산바람꽃 군락지는 보호하기 위해 아예 폐쇄해 버렸다. 무갑산도 극단적인 조치를 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드문드문 피어 있는 너도바람꽃이 반가우면서도 애처로웠다. 굳이 꽃사진을 찍으러 다녀야 하나, 회의를 품으며 돌아선 날이었다.

꽃들의향기 2019.03.15

봉은사 가는 길

사진작가 김희중 선생의 부음에 잠시 생각이 멎는다. 작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두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사진에 특출한 재능을 드러냈다. 그뒤 미국으로 건너가 동양인 최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사의 편집장을 지냈다. 우리나라 사진가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가진 분이다. 오래전에 작가의 자서전을 겸한 에세이인 를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김희중 작가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봉은사 가는 길'이라는 작품이다. 바로 이 사진이다. 이 사진에 대해서는 작가가 촬영 당시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1955년 7월에 뚝섬에서 야외 촬영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그때 고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유일하게 교복을 입고 참가했단다. 모델 촬영이 싱거워 작가는 나룻배를 타고 한강 건너 봉은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

길위의단상 2019.03.15

누비길: 복정역~옛골

성남 누비길 마지막 7구간을 걸었다. 이로써 내 임무는 끝났다. 그동안 근교 산길과 서울 둘레길, 한양 도성길, 성남 누비길을 안내하며 10년 가까이 용두회의 대장 노릇을 했다. 후임에게 넘겨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누비길 7구간은 복정역과 청계산 옛골을 연결하는 약 10km 길이다. 중간에 인릉산(326m)을 지난다. 겨울을 보내고 오랜만에 걷는 걸음이라 이만한 높이에도 숨이 찼다. 더구나 이런저런 사유는 여럿이 빠지고 둘만 함께 했다. 아침에는 돌풍이 불며 눈까지 휘날렸다. 대신 바람이 미세먼지를 쫓아내서 공기는 깨끗해졌다. 전날 나경원 의원이 국회에서 대표 연설을 하며 문 대통령을 '김정은의 대변인'이라고 발언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아침 단톡방에는 그게 화제였다. 다들 칠십에 가까운 노털이니 ..

사진속일상 2019.03.14

명월리 팽나무 군락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 군락지다. 제주시 한림읍 명월리 하천변을 중심으로 수령이 5백 년 된 팽나무 6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팽나무가 워낙 자유롭게 자라는 나무다 보니 줄기와 가지의 생김새가 전부 다르고 독특하다. 볼만한 광경이다. 팽나무는 그 생김새 때문에 여름보다는 겨울에 보는 게 더 멋있다. 제주도 중산간 마을은 해변의 관광지와 멀어서 조용하고 깔끔하다. 이곳 명월리도 그렇다. 명월리에는 16세기 후반에 군위 오씨가 들어오면서 주성을 이루게 되었다. 마을은 꽤 넓다. 주민이 늘어나며 마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울을 따라 팽나무가 심어진 것 같다. 명월리는 가수 백난아 씨의 고향이라고 한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머릿속에는..

천년의나무 2019.03.12

논어[332]

미자는 홀연히 떠나고, 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은나라에는 사람 구실한 이가 세 분 계셨느리라." 微子 去之 箕子 爲之奴 比干 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 微子 1 은나라 주(紂)왕의 폭정에 항거한 셋을 공자는 인자(仁者)라고 말한다. 공자의 인(仁)에는 의(義)의 개념이 들어 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신이 인이다. 불의한 왕조라면 타도할 수도 있다는 혁명 사상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공자의 인(仁)은 '어질다'보다 '사람 됨'으로 이해하는 게 맞겠다.

삶의나침반 2019.03.11

어음리 팽나무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있는 팽나무다. 수령은 400년 정도 되었고, 나무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4.8m다. 나무는 전체적으로 가지가 많이 상했고, 줄기에도 옹이가 많이 생겨 있다. 나무가 자라면서 겪은 풍상을 말해주는 듯하다. 제주 4.3 사건 때 어음리도 큰 피해를 봤다고 한다. 그때의 고통이 나무에 새겨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잔하게 바라보게 되는 제주의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3.10

성지(13) - 관덕정, 김기량 순교현양비, 정난주 묘, 용수포구

3월 3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제주도에 있는 성지 네 곳(관덕정, 김기량 순교현양비, 정난주 묘, 용수)을 찾았다. 19. 관덕정 1901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민란군에게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공식적인 천주교 박해가 끝났음에도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나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의 충돌이 일어났다. 신축교안도 그중 하나다. 가까이에 제주시 중앙 주교좌성당이 있다. 20. 김기량 순교현양비 김기량 베드로는 제주도 함덕 출신으로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표류하다가 영국 배에 구조되어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1857년에 제주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했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사진속일상 2019.03.10

랩 걸

이 책의 저자인 호프 자런(Hope Jahren)은 여성 식물학자다. 풀부라이트 상을 세 번이나 수상했으며, 2016년도에는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과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책 제목인 에도 나타나 있다. 책 초반부에는 소녀 시절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놀던 추억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책은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 설명에 대응하여 자신의 과학자로서의 일생을 보여준다. 나무가 씨앗에서 떡잎을 내고 성장하고, 시련을 겪으며, 꽃 피고 열매를 맺듯이 인간의 일생도 마찬가지다. 생물학자다운 구성이다. 책을 읽으며 제일 놀라운 점은 저자의 뛰어난 문장력이다. 과학자가 맞아, 라는 질문이 저절로 나온다. 작..

읽고본느낌 2019.03.09

슬픔을 물들이다 / 손세실리아

셀프 염색을 지켜보던 남편이 세월에 순응하는 것도 지천명의 덕목 아니겠냐 길래 산수국과 동박새와 늙은 등대와 길고양이 랭보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라 대꾸하고서 서릿발 내린 머리카락이 물들기를 기다리다 별안간 목울대가 뜨거워져 엊그제 엄마에게 다녀왔는데 몰라보더라고 자식이 둘도 아닌 딱 하난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아무래도 반백 때문인 것 같다고 실토하며 어깨 들먹이는 - 슬픔을 물들이다 / 손세실리아 손세실리아 시인이 운영하는 북카페 '시인의 집'에 들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창가에 앉아 조천 해변을 바라보고, 탁자에 놓인 책도 뒤적이고, 시인과 작은 대화도 나누었다. 따스한 인상이 좋은 분이었다. '시인의 집' 입구에 이 시가 적혀 있다. 시인의 최근작이라고 한다. 찬찬히 읽어 보니 울컥하게 된다. ..

시읽는기쁨 2019.03.08

수양매화

제주도 '노리매'에는 수양매화가 많이 심어져 있다. 수양벚꽃은 자주 봤지만 수양매화가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가지에 매화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수양버들과 매화가 만난 교배종이리라. 매화에 대한 고전적 이미지가 강한 탓일까, 수양매화 스타일은 어색하다. 코디가 안 된 옷을 입은 느낌이다. 수양벚꽃은 잘 어울린다 여겼는데, 수양매화는 그렇지 못하다. 매화는 굳고 꺾인 매화나무 가지에 피어야 제 맛이 난다. 어쨌든 흥미로운 매화의 한 종류다.

꽃들의향기 2019.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