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 32

검단능선을 걷다

검단산에서 용마산을 거쳐 번천리까지 이어지는 능선길 걷기를 다시 시도해 보았다. 14년 전에 걸었다가 중도에서 포기한 적이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와서는 가까이서 자주 보는 산이라, 언젠가는 걸어봐야지, 라는 마음이 늘 있었다. 6개월 만에 하는 등산이라 출발점을 산곡초등학교로 잡았다. 검단산 정상을 지나쳐서 능선에 오르게 되기 때문에 코스가 좀 짧아진다. 그렇더라도 다리 힘을 붙이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이 능선길의 단점이라면 오르내리막이 너무 심하다. 그래서 쉽게 지친다. 체력 단련 코스로는 좋을지 몰라도 우리 같은 사람이 느긋하게 걷기에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야 한다. 다른 하나는, 옆으로 중부고속도로가 평행으로 지나기 때문에 길 내내 자동차 소음을 견뎌야 ..

사진속일상 2019.04.30

논어[337]

버림받은 사람은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이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자기 뜻을 버리지 않고 몸을 더럽히지 않는 사람은 백이, 숙제일거야!" 유하혜와 소련을 평하여 말씀하시다. "자기 뜻을 버리고 몸을 더렵혔지만 말씨는 결(理)에 맞고 행동은 생각대로 맞아갔다는 그 점일 거야!" 우중와 이일을 평하여 말씀하시다. "숨어 살면서 함부로 지껄이되 처신이 깨끗하고, 그만두는 태도도 좋았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내게는 좋은 것도 없거니와 좋지 않은 것도 없다." 逸民 伯夷 叔齊 虞仲 夷逸 朱張 柳下惠 少連 子曰 不降其志 不辱其身 伯夷 叔齊與 謂柳下惠 少連 降志辱身矣 言中倫 行中慮 其斯而已矣 謂虞仲 夷逸 隱居放言 身中淸 廢中權 我則異於是 無可 無不可 - 微子 6 여기 나오는 일곱..

삶의나침반 2019.04.29

과보를 받겠습니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물질세계에서 생기는 원인과 결과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학문이 자연과학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만물의 작동 원리를 설명해주는 인과 관계에 대한 깔끔한 이론이다. 만일 원인 없는 결과가 존재한다면 과학은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행위에 인과 원칙을 적용한 것이 불교의 업론(業論)이다. 선업에는 좋은 과보가 따르고, 악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善因樂果 惡因苦果]. 인간이 짓는 모든 생각이나 행위가 업(業)으로 남아 영향을 미친다. 업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것이 불교의 원리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악업을 지어 놓고 좋은 과보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에 다름 아니다. 거기서 괴로움이..

참살이의꿈 2019.04.28

밤골과의 인연

나에게는 세 가지 마음의 짐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밤골이다. 끝맺음을 잘하고 나오지 못해서 밤골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꿈에 밤골이 나타나면 대개가 악몽인데, 늘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곳을 떠난 지 12년이 되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쉽사리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있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 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도 서로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오늘, 언젠가는 매듭을 풀어야 할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우연이 무수히 겹쳐지면 필연이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다...

사진속일상 2019.04.27

숲속의 은둔자

기이한 은둔자가 있다. 1986년 스무 살이었던 크리스토퍼 나이트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그의 집을 떠나 메인 주로 가다가 돌연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27년 동안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은 은둔 생활을 하다가 2013년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려 27년간 완벽히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노스 폰드의 은둔자'라 불렀다. 나이트가 숨은 곳은 미국 북동부의 메인 주에 있는 '노스 폰드' 호수에 있는 숲이었다. 호수 둘레로 별장만 산재할 뿐 인적이 드문 곳이어서 완전히 자신을 숨길 수 있었다. 그는 바위 사이에 야영지를 만들고 텐트 생활을 27년 동안 했다. 음식을 비롯한 생활 용품은 전부 별장에서 훔쳤다. 별장은 주말에만 사람이 찾아왔고 평일에는 비었다. 나이트는 별장에 사람이 없는 때를 ..

읽고본느낌 2019.04.26

사곡리 복사꽃

복사꽃이 피면 과년한 딸을 둔 부모는 안절부절못한다. '앵두나무 우물가'보다 더 위험한 곳이 복사꽃밭이 아니던가. 복사꽃의 요염한 색깔이 춘정(春情)을 일깨우는 봄이 한창이다. 장호원 일대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그중의 한 군데 사곡리를 찾았다. 사곡리는 온통 복숭아나무에 둘러싸인 마을이다. 복숭아밭 한가운데에 있는 미루나무가 눈길을 끈다. 어릴 때는 신작로와 개울가에서 자주 보았던 나무인데 이제는 천연기념물처럼 귀해졌다. 복사꽃과 미루나무를 보니 고향과 거기서 뛰어놀던 유년 시절이 그리워진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들의향기 2019.04.24

성지(14) - 감곡매괴성당

23.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충북 음성에 있는 감곡본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임가밀로 신부가 1896년에 설립했다. 주보는 '매괴(묵주 기도)의 성모'이다. 현 성당 건물은 1903년에 신축을 시작했는데, 성당 정면에 '1930'이라는 표석이 있는 걸로 봐서 그 해에 완성된 것 같다. 전에 왔을 때는 공사중인 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청주교구는 2006년에 감곡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때 성모를 통한 은총의 표징이 드러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성당 뒤 매산 정상에는 산상 십자가가 있다. 임가밀로 신부는 1914년에 한국 최초로 성체신심행사인 성체거동을 거행했다. 십자가 옆에는 성체거동을 기념하는 신부님 동상도 있다. 묵상하며 걷기에 좋은..

사진속일상 2019.04.23

꽃다지와 현호색

우리 동네 주택 사이에 작은 공터가 있다. 넓이가 20평 정도 되는 버려진 땅인데, 봄이면 이곳이 꽃다지와 현호색 꽃밭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게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매년 찾아보게 되는 소중한 장소다. 올해는 어떻게 피어 있을까,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투리땅이라도 텃밭을 만들려 애쓰는데, 다행히 여기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고 있다. 그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없는가 보다. 덕분에 이사 온 지 8년째가 되지만 여기는 여전히 나만의 귀한 화원이다. 흔한 꽃다지와 현호색이지만 만남의 인연에 따라 특별한 의미를 띄게 된다. 이사를 오고 나서 마을길을 산책할 때 와, 하고 눈길을 끌었던 기억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남아 있다. 그래서 올봄에도 찾아보고 눈맞춤을 한다. 안녕! 일 년간 잘 있었구나. 워..

꽃들의향기 2019.04.22

담배 피우는 여자 / 윤임수

아침 출근길에 만나는 여자, 오십이 훨씬 넘어 보이는 여자, 지난밤도 편치 않았던 것일까, 아파트 모서리 중국단풍 아래에서 연방 담배를 피워대는 여자, 채 달아나지 못한 연기 꼬리에 또 연기를 더하는 여자, 숨 가쁘게 살아온 날들을 모두 내려놓겠다는 듯 연방 연기를 토해내는 여자, 처음 볼 때는 거북했으나 날이 지나면서 연민으로 다가오는 여자, 어쩌다 보이지 않는 날이면, 웬일일까, 조금 걱정도 되는 여자, 걱정과 함께 담배 연기가 그 여자의 거친 날들을 모두 거두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여자,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치 오래된 관성처럼, 이제는 중국단풍만 봐도 떠오르는 그 여자 - 담배 피우는 여자 / 윤임수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태도에서 여자와 남자는 차이가 난다. 당당한 남자에 비해 여자는 조심..

시읽는기쁨 2019.04.21

봄 물드는 뒷산

산벚꽃 사이로 봄 산은 연초록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매년 맞이하지만 봄은 늘 새롭고 경이롭다.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다. 같은 색깔,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우리가 봄을 보는 눈은 같지 않다. 봄과 봄 사이의 인간사 사연들이 투영된 마음의 프리즘으로 우리는 봄을 맞이한다. '절망의 의지'를 너무 들여다보지 말고, 지상이 표상하는 생명의 약동에 한눈팔아도 괜찮은 봄이다. 잘려나간 나무줄기에서도 생명은 돋아난다. 멀리 산골 동네서 개 짖는 소리도 포근하다. 연초록 새잎이 꽃보다 더 예쁘다. 봄 물드는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속일상 2019.04.21

논어[336]

자로가 따라오다가 뒤쳐졌다. 지팡이로 대바구니를 짊어진 어느 노인을 만났다. 자로가 묻기를 "여보시오! 우리 선생님을 만나셨습니까?" 그 노인은 말하기를 "손톱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곡식조차 구별 못하는 사람을 누가 선생님이라 하던?"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맨다. 子路 從而後 遇丈人 以杖荷조 子路問 曰 子見夫子乎 丈人 曰 四體不勤 五穀不分 孰爲夫子 植其杖而芸 - 微子 5 공자 일행에서 뒤처진 자로가 또 다른 은둔자를 만난다. 공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자로에게 노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손톱 하나 까딱하지 않고, 곡식조차 구별 못하는 작자는 선생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도 당시 유학파에 대한 비판의 하나였을 것이다. 육체적인 일을 천시하는 풍조가 유학에는 애초부터 배태되어 있는지 모른다. ..

삶의나침반 2019.04.20

외국 사는 자식이 효자다

올해는 손주 돌보는 일에 매이게 되었다. 제 어미가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육을 1년간 받게 되어 손주를 유치원에 보내고 맞는 일을 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침에 버스에 태워 보냈다가 오후 3시에 받으면 저녁 시간까지 맡아봐야 한다. 부부가 함께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손주 돌보미는 우리 나이 또래가 대부분 겪는 일이다. 자식이 맞벌이를 하면 제일 크게 부딪히는 문제가 육아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데가 조부모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잊을 만하면 TV에서 보모의 아동 학대 영상을 보여주니 도무지 남에게 맡길 수 없다 한다. 자식의 요청에 거절할 수 있는 부모가 있겠는가. 겉으로는 손주가 이뻐서 괜찮다지만 과연 속까지 그럴까. 며칠 전 지인이 하는 불평을 들었다. 딸이 쌍둥이를 뱄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

길위의단상 2019.04.19

경안근린공원 벚꽃

경안근린공원은 집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공원이다. 정상에 정자가 있고 주위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있는 아담한 공원이다. 도서관 옆에 있어 책 보러 갈 때 들러 산책을 한다. 봄에는 산책로가 벚꽃으로 환해진다. 살펴보면 사는 곳 어디에서도 벚꽃 구경을 할 수 있다. 요사이는 어지간한 길에는 벚나무를 많이 심어 놓았다. 시끌벅적한 축제장보다는 차라리 이런 한적한 동네 벚꽃길이 낫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나만의 벚꽃길을 갖는 것도 행복한 봄을 보내는 비결이리라. 벚나무에는 연초록 잎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람이 부니 꽃비 되어 와사사 떨어진다. 얼굴을 꽃비에 내맡긴다. 벚꽃잎은 얼굴을 간질이다가 어떤 놈은 옷 속으로 파고들기도 한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도 없이 흩날리지만 끝이 없다. 문득 5년 전 그날이 ..

꽃들의향기 2019.04.18

인생 후르츠

"바람이 불면 낙엽이 떨어진다. 낙엽이 떨어지면 땅이 비옥해진다. 열매가 여문다. 차근차근 천천히." 얼마 전에 타계한 키키 키린의 이런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인생 후루츠'는 90세의 슈이치 할아버지와 87세의 히데코 할머니가 전원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쁘고 맛있게 열매가 영글듯 두 분 노년의 삶이 아름답다. 마냥 부럽기만 하다. 슈이치 할아버지는 건축가다. 젊었을 때는 국가의 신도시 프로젝트 일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효율성을 앞세우는 신도시 개발이 자연과 공존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슈이치와는 마찰을 일으킨다. 히데코 할머니는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에 할아버지와 철학이 맞는다. 두 분은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그들만의 자연주의 삶을 실천한다. 꽤 ..

읽고본느낌 2019.04.17

수청리 벚꽃

우리 고장에서는 한강변의 귀여리와 수청리 지역이 벚꽃으로 유명하다. 때만 잘 맞추면 벚꽃 터널을 달리는 10km 길이의 멋진 드라이브가 코스다. 어제 찾아갔을 때는 아직 꽃봉오리 상태의 나무가 많았다. 귀여리 쪽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강변이어선지 이곳은 다른 데보다 벚꽃 개화 시기가 늦다. 다행히 수청리 벚꽃은 활짝 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차에서 내려 강변 산책을 하면 봄기운에 더 젖을 수 있겠다. 귀여리와 수청리 사이에는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수도권에서 마지막으로 벚꽃을 볼 수 있는 곳이지 싶다.

꽃들의향기 2019.04.16

마음 설거지

스롱 피아비라는 캄보디아 출신 여자 당구 선수가 있다. 피아비는 2010년 스무 살 나이에 한국 남자와 국제결혼을 하고 우리나라에 왔다. 남편은 스물여덟 살이나 많았다. 의사가 꿈이었으나 가난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고 타의로 낯선 나라에 온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온 뒤에 인생 역전이 일어났다. 결혼 이듬해 우연히 남편 따라 당구장에 갔다가 큐를 잡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자세가 남달랐다. 재능을 알아본 남편이 당구 선수로 적극 지원했고,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얼마 되지 않아 여자 당구 3쿠션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2017년에 프로가 되었다. 프로 데뷔 10개월 만에 국내 1위에 올랐다. 현재 아시아 챔피언이자 세계 랭킹 3위에 올라 있다. 당구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상..

참살이의꿈 2019.04.15

봄은 스캔들이다 / 최형심

목련, 바람이 났다 알리바이를 캐내려는 흥신소 사내가 분주하다 흰 복대로 동여맨 두툼한 허리가 어딘지 수상하다 하루가 다르게 치마폭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저기 나뭇잎들이 쑥덕쑥덕거린다 하룻밤 사이에 소문이 온 개봉동에 다 퍼졌다 소문에 시달리던 목련, 나는 아무 죄가 없다고 몸을 활짝 열어젖힌다 봄이 뜨겁다 - 봄은 스캔들이다 / 최형심 연분홍 진달래는 염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뜨거운 소문이 온 산을 불태울 듯하다. 빨간 명자꽃은 요염하고 정열적이다. 화사하게 차려입은 벚꽃은 바람둥이처럼 흩날린다. 노란 개나리는 순진한 풋사랑이다. 목련은 어느새 아기를 뱄나 보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옛말이 맞다고 모두가 쑥덕거린다. 그렇다, 봄은 스캔들로 시끌벅적하다.

시읽는기쁨 2019.04.14

탄천의 봄

치과 진료차 야탑에 나간 길에 탄천에 나가보았다. 분당을 관통하는 탄천은 자연을 즐기면서 운동과 휴식을 할 수 있는 도시 속 아름다운 공간이다. 벚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어 봄이면 꽃잔치가 벌어진다. 지금 벚꽃과 개나리를 비롯한 봄꽃이 한창이다. 야탑에서 천변을 따라 수내동 중앙공원까지 꽃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집에 와서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손주를 맞아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나갔다. 제 어미가 독감에 걸려 사흘째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생태공원은 오래된 나무 데크 보수하느라 내부는 출입이 통제되고 둑길만 열려 있다. 아이는 외할머니 따라 쑥 캐는데 빠졌다. 식물과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다.

사진속일상 2019.04.13

논어[335]

초나라 거짓 미치광이 접여가 노래부르며 선생님 곁을 지나가며 말하기를 "봉황새야! 봉황새야! 왜 그처럼 인품이 시들었노! 지난 일은 따질 것이 없고, 시방도 따르면 되지. 그만두구려! 요새 정치란 위태위태하구려!" 선생님이 수레에서 내려와 마주 이야기하여 보려고 한즉, 총총걸음으로 달아나 버리니, 마주 이야기해 볼 수가 없었다. 楚狂接與 歌而過孔子 曰 鳳兮 鳳兮 何德之衰 往者不可諫 來者猶可追 已而 已而 今之從政者殆而 孔子 下欲與之言 趨而避之 不得與之言 - 微子 4 미치광이 접여는 세상을 발로 걷어차버린 은둔자다. 도가(道家) 사상과 가까운 인물이니 당연히 유가(儒家)와는 각을 세운다. 에도 접여 이야기가 나오는데 공자를 비판하고 심지어는 조롱까지 한다. 에 등장하는 접여는 매우 순화되어 있다. 공자가 접..

삶의나침반 2019.04.11

새벽꿈

산속에서 혼자 사는 초등 동기 S에게 놀러 갔다(실제로 S는 소백산 깊은 곳에 살고 있다). 황토로 직접 지은 단칸방의 집인데 하룻밤을 같이 자게 되었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귀곡산장처럼 으스스했다. 둘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밖에서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부르며 찾으시는 소리였다. 처음에는 외면했지만 너무 간절하게 부르셔서 문을 열고 나갔다. 하얀 소복을 입은 외할머니가, 여기는 위험하니 빨리 도망가자고 하셨다. 안 그래도 꺼림칙하던 차에 외할머니를 따라가리라 마음먹고, 방으로 들어가 S에게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S는 정색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문을 모두 잠가버렸다.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밖에서는 S가 외할머니를 해치는 소리가 들리고..

길위의단상 2019.04.10

열심히 안 살아 다행이다

아흔이 가까워지면서 어머니는 지나온 삶을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신다. 죽을 둥 살 둥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았더니 다 헛것이었다. 너희들은 나같이 바보로 살지 마라. 좋은 데 돌아다니고, 맛있는 것 먹고, 건강을 챙겨라. 늙고 아프면 모든 게 쓸데없다. 인생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식으로서는 마음이 아프다. 잘 못 해 드리는 게 있지 않나 싶어서다. 어머니는 그래도 둘째네와 살고 있지만, 고향의 다른 노인은 독거로 지내시는 분이 많다. 자식이 많지만 전부 외지에 나가 있다. 한밤중에 잠이 깨면 외로워서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병과 외로움은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에 부딪히는 실존의 문제다. 따져보면 인생은 어차피 혼자이고, 생로병사는 모두가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나만 특별할 수가 없다...

참살이의꿈 2019.04.09

성내천 벚꽃

서울은 지금 벚꽃이 한창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여의도와 석촌호수에서는 이번 주에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원래는 여의도에 가려고 했으나 지나는 길에 성내천 벚꽃이 보여 방향을 틀었다. 20년 전에 성내천 부근 직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중간에 비는 시간이 생기면 나와서 성내천 둑을 자주 걸었다. 그때는 벚나무를 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봄이 되어도 꽃이 얼마 피지 않았다. 10년만 지나면 벚꽃 터널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되었다. 이곳 성내천 벚나무는 30년생쯤 될 것이다. 훌쩍 자란 벚나무 길을 걸으며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석촌호수에 간 첫째가 보내준 사진에는 꽃길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여기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다. 점심시간에는 현대아산병원 직원들이 몰려나와 잠깐 북적였..

꽃들의향기 2019.04.08

가대리 느릅나무

단양, 영월 지역에는 느릅나무 고목이 많다. 마을 정자목으로 느릅나무를 많이 심은 듯하다. 느릅나무는 쓰임새가 여러 가지지만 수형도 호방한 나무다. 이 느릅나무는 단양군 가곡면 가대리에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5m에 이른다. 안내문에 수령이 500년으로 나와 있는데, 너무 높게 계량한 것 같다. 나무 앞에는 간이 정자와 성황당이 있다. 오랜 세월 잘 자란 멋진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4.07

고래

긴 겨울밤 시골 사랑방에서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얘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밤새는 줄 모르고 사설에 빠져든다. 낯선 동네와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줄거리를 예측할 수 없으니 긴장감도 높다. 이 소설을 읽은 느낌이 그랬다. 는 천명관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2004년에 이 작품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했다. 유명세는 알고 있었지만 늦게서야 직접 읽어봤다. '무모한 열정과 정념, 어리석은 미혹과 무지, 믿기지 않는 행운과 오해, 끔찍한 살인과 유랑, 비천한 욕망과 증오, 기이한 변신과 모순, 숨가쁘게 굴곡진 영욕과 성쇠' - 소설에 설명된 구절대로 다사다난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인생사를 그린 소설이다. 금복과 춘희를 중심으로 3대에 걸친 파란만장한 삶이 펼쳐진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가..

읽고본느낌 2019.04.07

임현리 느티나무

임현리는 충북 단양군 어상천면소재지 마을이다. 삼태산 등산로의 기점이기도 하다. 이 느티나무는 임현리 입구에 있으며 수령은 200년 정도 되었다. 도로 쪽으로 40도 정도 기울어졌고, 줄기의 반은 보형재로 채워져 있다. 나무 밑에는 정자와 운동 기구가 있는데 마을 주민이 얼마나 이용할지는 의문이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지만 도로에 붙어 있어 쉼터로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천년의나무 2019.04.05

고향 가는 길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다가 길 주변에 있는 몇 군데를 들러보다. 원래는 청풍호 벚꽃 구경이 우선이었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고 꽃봉오리만 맺혀 있다. 서울보다다 개화 시기가 늦다. 제천 금수산 자락에 정방사(淨芳寺)가 있다. 정방사는 통일신라 초기인 문무왕 2년(662)에 의상대사의 제자 정원스님이 창건한 고찰이다. 금수산과 청풍강의 맑은[淨] 물과 바람이 꽃향기[芳]와 어우러진 절이다. 절은 큰 암벽 앞에 세워져 있다. 터가 좁으니 건물이 크거나 많을 수 없다. 그래서 정방사는 소박하고 단아하다. 정방사에서 바라보는 확 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정면으로는 충주호와 멀리 월악산이 보인다. 절 조망으로 치면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 같다. 절 건물 중 하나인 유운당(留雲堂)이다. 주련 내용은..

사진속일상 2019.04.05

한국은 노래방 / 김승희

당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사람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에게 노래를 부를 것을 권한다 강요한다 애소하고 명령한다 노래방에서 당신 혼자만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십분 넘게 앉아있어 본 적 있는가 당신은 남북통일에 반대하는 사람 DMZ를 만드는 사람 수원지에 독극물을 붓는 사람 성수대교를 무너뜨리는 사람 백범 김구를 암살한 바로 그, 그, 그 장본인이 된다 길은 이것뿐이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남겨두고 노래방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당신은 아웃사이더가 된다) 노래를 부르라고 부르라고 잡아끄는 친구들의 팔목을 절단해 버리고 친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당신은 체제 부정자가 된다) (이제 당신은 비로소 노래부르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시읽는기쁨 2019.04.03

신대리 백송(2)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커졌고 싱싱해진 느낌이다. 10여 년 사이에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없을 테지만, 보는 각도가 달라져서인지 천연기념물로서의 가치를 보여주는 듯하다. 백송이 귀하다 보니 오래된 백송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신대리 백송은 약 210년 전 조선시대 참판을 지낸 민달용의 묘소에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이천시 백사면 신대리 산32번지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