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 32

논어[340]

자장이 말했다. "인격을 쌓는 데 안목이 좁고, 도리를 믿는 마음이 부실하면 할 수 있다고 할 것인가! 할 수 없다고 할 것인가!"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無 - 子張 2 도(道)와 덕(德)이 나온다. 에서 '도'는 우주와 인간 삶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인간이 나아갈 길이다. 반면에 '덕'은 도의 실천적 측면이 있다. 에 나오는 도와 덕 개념도 비슷할 것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과 일상에서의 실천, 그것이 '신도집덕(信道執德)'이다. 자장의 이 말은 유학자가 평생 간직해야 할 지표이지 싶다.

삶의나침반 2019.05.31

초록 바람의 전언 / 고재종

뒷동산 청솔잎을 빗질해 주던 바람이 무어라 무어라 하는 솔나무의 속삭임을 듣고 푸른 햇살 요동치는 강변으로 달려갔다 하자. 달려가선, 거기 미루나무에게 전하니 알았다 알았다는 듯 나무는 잎새를 흔들어 강물 위에 짤랑짤랑 구슬 알을 쏟아 냈다 하자. 그 의중 알아챈 바람이 이젠 그 누구보단 앞들 보리밭에서 물결치듯 김을 매다 이마의 구슬땀 씻어 올리는 여인에게 전하니, 여인이야 이윽고 아픈 허리를 곧게 펴곤 눈앞 가득 일어서는 마을의 정자나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끄덕, 무언가 일별을 보냈다 하자. 아무려면 어떤가, 산과 강과 들과 마을이 한 초록으로 짙어 가는 오월도 청청한 날에, 소쩍새는 또 바람결에 제 한 목청 다 싣는 날에. - 초록 바람의 전언 / 고재종 요사이 표현대로 하면 '초록초록'하고 '방실방..

시읽는기쁨 2019.05.30

로망

먼 남의 얘기가 아니다. 당장 내 얘기일 수 있다. 아주 가까이는 아흔 살이 다가오는 양가의 어머니가 계시고, 우리에게 지금 바로 이런 일이 닥친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화 '로망'은 함께 치매에 걸린 70대 부부의 슬픈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같이 살던 아들 부부는 부모를 감당하지 못해서 독립해 나갔고, 집에는 부부 둘만 남았다. 동반 치매에 걸린 두 사람의 생활이 오죽하겠는가. 둘은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이순재 씨와 정영숙 씨가 부부 역을 맡아서 애틋한 인생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로망'이 작품성 있는 영화는 아니다. 마치 한 편의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어느 집,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현실성이 있기 때문에 공감을 준다. 치매에서 자유로운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제목이..

읽고본느낌 2019.05.29

행복을 생각한다

뇌과학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하는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유전자는 한 사람의 외모나 기질을 결정한다. 심지어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장래에 생길 병도 예견할 수 있다. 외국의 유명 배우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해서 미리 유방 절제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니 행복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낙천적인 사람은 삶의 만족도가 비관적인 사람에 비해 높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유전자가 행복에 관계되는지 밝히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행복하게 사는 능력도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겠다. 그렇다고 조상 탓만 할 수는 없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 연구에 의하면 많은 부분이 외부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행복은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므로 변수가 많다...

참살이의꿈 2019.05.27

민백미꽃

처음 본 꽃이고, 처음 듣는 이름이다. 백미꽃이 있다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민백미꽃은 백미꽃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 밖에 선백미, 덩굴백미가 있다. 뽀얀 순백색의 꽃 색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티 한 점 없이 순결한 색이다. 사진에 찍힌 꽃은 꽃잎이 말려 있어 오각형을 이룬 모양도 특이하다. 민백미꽃은 깊은 산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쉽게 보지 못하는 꽃이다. 곰배령 산길에서 만났다.

꽃들의향기 2019.05.26

올림픽공원 장미

5월은 계절의 여왕이고, 꽃의 여왕은 5월의 장미다. 꽃 인기도를 조사하면 장미가 단연 1등이다. 장미 축제가 열리는 올림픽공원에 잠시 들렀다. 30도까지 기온이 오른 햇볕 뜨거운 한낮이었다. 개인적으로 원예종 화초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는다. 아무리 예뻐도 너무 인공적인 냄새가 난다. 장미도 수많은 종들이 개발되어 있다. 그 중 몇 가지만 사진에 담아 보았다. 위에서부터 레드비즈, 시노브레도, 찰스톤, 코틸리온, 엘르다. 마지막 노란 장미 이름은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 넓은 장미 정원에 향기가 별로 없다. 몇 송이에 코를 가져가 봐도 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겉보기만 화려하도록 개량시켜서 그럴까, 꽃조차도 요즘 사람을 닮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꽃들의향기 2019.05.25

논어[339]

자장이 말했다. "선비는 위험에 직면하여 목숨도 바치고, 소득이 있는 일에는 옳은가 그른가를 생각하고, 제사 때는 경건할 것을, 상례 때는 슬퍼할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만 하면 되는 거야." 子張曰 士 見危致命 見得思義 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 - 子張 1 '자장' 편은 공자 제자들의 어록이다. 자장의 이 말에서는 먼저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가 떠오른다. 의사는 '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 적었다. '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옛 선비들의 삶의 지표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안중근 의사는 이를 올곧게 실천했다. 은거해 있다가도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의병을 일으켜 일어나는 것이 유교의 선비 정신이다. 이득도 의롭지 않으면 받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

삶의나침반 2019.05.24

외계인이 와야 한다 / 이영광

콩가루 집안도 옆집과 싸움 나면 뭉치고 툭탁거리는 아이들도 딴 학교랑 축구 하면 함께 응원을 한다 딴 동네 딴 도시 딴 지방과 다툼이 나면 한 동네 한 도시 한 지방이 된다 전라도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상도가 된다 경상도와 맞설 때면 전라도가 된다 북한과 다툴 때면 남한이 되고 일본 중국과 분쟁이 나면 한 민족이 된다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아우성치는 대한민국이 된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쳐들어와야 한다 성간우주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외계 우주선들의 어마어마한 습격 앞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을 것이다 서방과 아랍이 연대할 것이다 동아시아 제 국가들이 단결할 것이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 기독교와 무슬림이 형제가 될 것이다 흑 백 황 적, 모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뱀..

시읽는기쁨 2019.05.22

항거: 유관순 이야기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두 장이 이화역사관이 소장하고 있던 사진첩에서 발견되었다. 이화 독립운동가들 특별전을 준비하던 중 찾은 것이라고 한다. 열사의 실제 모습을 보니 전에 봤던 영화가 떠오르며 다시 가슴이 찡해진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으로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구금된 후 모진 고문으로 숨지기까지 1년 동안의 수형 생활을 보여준다. 후기를 쓰려고 했으나 너무 슬프고 먹먹해서 컴퓨터 앞에도 글을 적을 수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자책도 응당 따라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울컥해지는 대사가 몇 있었는데 지금은 두 개가 떠오른다. 하나는, 망가진 몸으로 독방에 갇혀 누워 있는 유관순에게 배식 담당하던 노인이 묻는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읽고본느낌 2019.05.21

진동리 쪽버들과 돌배나무

기린면 진동리는 곰배령 들어가는 입구 마을이다. 두 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하나는, 계곡에서 자라는 물을 좋아하는 쪽버들나무다. 수령은 약 200년으로 추정한다. 그동안 무수한 홍수가 있었을 텐데 버텨내며 생존한 능력이 놀랍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90cm다. 둘은, 역시 수령이 200년 정도인 돌배나무다. 돌배나무는 산에서 야생하는 배나무를 말한다. 산짐승이 씨앗을 퍼뜨려 번식한다. 열매는 당연히 작을 것이다. 이 돌배나무는 높이가 24m, 줄기 둘레는 1m 정도다.

천년의나무 2019.05.20

곰배령과 불바라기약수

점봉산 일대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점봉산은 2026년까지 출입 통제이고, 곰배령도 하루 입장 인원을 450명으로 제한한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곰배령의 별칭이 '천상의 화원'이다. 여름 꽃밭이 유명하지만 사계절 어느 때나 야생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이번에 트레커 팀과 1박2일에 걸쳐 곰배령, 불바라기약수를 둘러보았다. 5월 중순이라 들꽃에는 어중간한 시기지만 역시 곰배령은 이름값을 했다. 얼레지를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곰배령은 수도권 산보다 한 달 이상 계절이 늦다. 쥐오줌풀 참꽃마리 병꽃나무 졸방제비꽃 벌깨덩굴 미나리아재비 개별꽃 미나리냉이 피나물 현호색 줄딸기 홀아비바람꽃. 정상부에는 홀아비바람꽃 군락이 대단했다. 회리바람꽃 양지꽃 동의나물..

사진속일상 2019.05.19

언제까지 운전할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운전이다. 운전대를 잡으면 기분이 고양되면서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종일 운전해도 피곤하거나 질리지 않는다. 무엇이건 즐기면 힘든 줄을 모른다. 나는 즐기면서 운전을 한다. 젊었을 때는 드라이브가 취미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었다. 속력을 높여 고속도로를 달리면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국도는 국도대로 달리는 맛이 있었다. 집 벽에는 대형 우리나라 전도가 걸려 있었는데, 내가 운전한 길은 빨간색으로 표시했다. 우리나라 전체를 빨간색으로 덮는 게 목표였다. 그래서 안 간 길을 찾아 일부러 빙 돌아가는 일이 흔했다. 운전을 직업을 선택했다면 훨씬 더 인생을 즐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언젠가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 트럭 기사 스토리를 TV로 보았다. ..

길위의단상 2019.05.16

보문사 향나무

석모도 보문사에 있는 향나무다. 대웅전 왼쪽 옆의 석실 앞에 있다. 나무가 있는 땅은 주변보다 2m 정도 높다. 땅을 깎아내면서 나무만 덩그러니 남은 듯하다. 수세가 왕성하여 잎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다. 수령은 700년 정도로 추산한다. 45도로 땅에서 나온 줄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용트림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철주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가지 하나는 상했을 것이다. 이웃해 있는 느티나무와 함께 이 향나무는 보문사의 중요한 풍경을 이룬다. 이런 나무가 있으므로 절 역사는 깊이를 더한다.

천년의나무 2019.05.16

성공회강화성당과 보문사

천주교 성지순례 겸 바람을 쐬기 위해 아내와 강화도에 간 길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 들렀다. 1900년에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이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달린 2층의 팔작지붕 구조의 한옥 형식의 건물이다. 주련이 있는 것도 우리 전통을 그대로 살렸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神化周流有庶物同胞之樂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먼지 지으신 분이 진실한 주재자시다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의 참된 근본이시다 하느님의 가르침 아래 만물이 성장하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복음이 전파되어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니 영생의 길이로다 목조로 ..

사진속일상 2019.05.15

관청리 느티나무

강화읍 관청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강화성 동문 가까이에 있다. 지대가 높아 나무에서는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수령은 600년 정도이고, 높이는 19m, 줄기 둘레는 7m다. 이 나무는 큰 가지가 하나가 잘려나가서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온전한 나무라면 360도 대칭 구조라 어디서 봐도 비슷하다. 그러나 균형이 깨지면 같은 나무인데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신산한 세월의 흔적이 배인 관청리 느티나무다.

천년의나무 2019.05.14

성지(15) - 강화도

강화도에는 천주교 성지가 세 곳 있다. 갑곶순교성지, 진무영성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차례대로 찾다. 잔뜩 흐리고 가는 비가 간간이 뿌리다. 24. 갑곶순교성지 강화도는 한양 방어의 요충지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이 카톨릭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에 이은 병인박해 때다. 조선이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류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프랑스군이 물러간 뒤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갑곶순교성지는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다. 아내는 11시 미사를 봉헌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특이하게 인도인 단체여행객이 보인다. 기도하는 사람은 없고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사진속일상 2019.05.14

어미의 마음

오늘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문득 스님이 된 고향 동무가 떠오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서로 떨어져 소식이 뜸했는데 어느 날 출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엉뚱하면서 진지한 면이 있긴 했지만 스님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머니가 해인사에 찾아갔지만 만나주지 않아 눈물바람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젠 자식이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는 매몰찬 대답만 전해 들었다 한다. 에미 얼굴도 안 보려는 지독한 놈이라고 돌아와서도 눈물 마를 날이 없었다 한다.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그 뒤로도 풍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었을 뿐이었다. 아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동무와는 정말 우연히 군대에서 재회했다. 사단 사령부에 ..

참살이의꿈 2019.05.12

노랑해당화

이름에는 '해당화'가 들어있지만 전혀 해당화 느낌이 나지 않는다. 해당화라고 하면 의례 붉은색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까. 노랑해당화의 학명은 'Rosa xanthina Lindl'다. 해당화가 장미과 장미속에 들어가는 식물이니 장미와 닮은 데가 많다. 노랑해당화는 겉보기로는 해당화보다 장미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해당화와 장미를 통틀어서 한자로는 '매괴'라고 한다. 감곡에 가면 '매괴성당'이 있는데, 천주교에서는 매괴를 묵주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꽃들의향기 2019.05.11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이 열리고 있다. 부제가 '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이다. 창령사(蒼嶺寺)는 고려시대에 세워졌지만 조선조에 들어서 폐사된 절이다. 2001년에 창령사 절터에서 땅에 묻혀 있던 나한상들이 발굴되었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산스크리터어 'arhat(아르핫)'을 한자로 음역한 것이다.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불교의 성자를 가리킨다. 부처님 입멸 뒤 그의 말씀을 경전으로 편찬하기 위해 모인 가섭을 비롯한 500명의 제자들이 오백나한이다. 본격적인 나한 신앙은 당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이번에 창령사터에서 발굴된 나한상은 친근한 우리의 모습이어서 더 마음을 끈다. 인간의 다양한 희로애락 감정을 담고 있는데 특히 천진한 미소가 일품이다. 우리 내면에 잠자고..

사진속일상 2019.05.10

관훈동 회화나무

서울시 종로구 관훈동에 있는 회화나무다. 나무 높이는 20m, 수령은 400년 정도로 추정한다. 이곳은 율곡 이이 선생이 살았던 집터라고 한다. 지금은 사방으로 빼곡하게 빌딩이 들어서 있고, 회사원들이 휴식시간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는 쉼터다. 나무를 보호한다고 돌로 울타리를 쳤지만, 나무의 생육 환경으로는 최악의 조건이다. 안내문에는 이곳 터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에 이 일대가 '독녀혈(獨女穴)'로 묘사되어 있는데, 과부가 많이 생기는 좋지 않은 땅이라고 한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방법 중 하나로 큰 나무를 심었는데, 이 회화나무도 그런 의미로 봐야 한다는 해설이다. 큰 인물이 살거나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것도 효과가 있다. 지기(地氣)가 나쁜 땅이라도 대응 여하에 따라 활용 가능하다는 것이 풍..

천년의나무 2019.05.09

조계사 연등(2019)

서울에 간 길에 조계사에 들러 연등 구경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조계사 부처님 오신 날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매운 조계사 연등은 장관이었다. 경내에 있는 회화나무가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꼭 사람처럼 보인다. 회화나무도 지금 열심히 연등을 매달고 계신다. 가련한 인간의 기원이 오색찬한한 연등으로 꽃 피고 있는 조계사다.

사진속일상 2019.05.08

화양연화 /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짖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 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 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 화양연화(花樣年華) / 김사인 김사인 시인이 노래하는 '봄..

시읽는기쁨 2019.05.07

논어[338]

주공이 노공더러 이르기를 "참된 인물은 자기 친족을 버리지 않고, 대신들로 하여금 씌어주지 않는다는 원망을 안 하도록 하며, 오래 된 분들은 큰 실수가 없는 한 버려서는 안 되며, 한 사람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周公謂魯公 曰 君子不施其親 不使大臣怨乎不以 故舊 無大故 則不棄也 無求備於一人 - 微子 7 공자가 제일 존경하는 주공(周公)의 말이니 공자의 말과 다름 없을 것이다. 노공(魯公)은 주공의 아들로 노나라를 다스린 인물이다. 주공이 노나라로 떠나는 자기 아들에게 준 당부로 봐도 될 듯 싶다. 전체적인 내용은 권력자의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공자가 존경하게 된 주공의 인품이기도 하다.

삶의나침반 2019.05.07

영장산에서 삼동으로

어제는 초여름 날씨더니 오늘은 가을처럼 선선하다. 봄날씨 변덕은 알아줘야겠다. 휴일에는 외출을 자제하는데 오늘은 예외다. 하늘 쨍하며 눈부시고, 공기는 더없이 맑고 상큼하다. 심호흡을 크게 하며 영장산으로 향한다. 이매역에서 바로 산으로 들어간다. 도시에 인접한 산이고 휴일인데 산길에서는 사람 만나기 힘들다. 걷기 열풍이 약간 수그러들었나 보다. 산길이 조용하니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이매역에서 영장산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절로 힐링이 되는 걷기 좋은 평평한 흙길이 많다. 지금의 나한테 딱 맞는 길이다. 이런 길은 하루 종일 걸어도 괜찮겠다. 정상이 빨리 다가오는 게 아쉽게 느껴진다. 영장산에서 북쪽 능선으로 방향을 튼다. 유행이 뭔지, 레깅스를 입고 등산하는 여자들이 자주 보인다. ..

사진속일상 2019.05.06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우리 땅에 있는 식물은 19세기 후반부터 서양과 일본 학자들에 의해 채집, 정리되기 시작했다. 우리 손으로 우리 식물을 연구할 기회가 없었고, 외국인들 손에 의해 조사된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흔적이 제일 많이 남아 있다. 우리 고유 식물 527종의 학명에 나카이(Nakai)를 비롯한 일본인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327종이나 된다. 무려 62%에 달한다. 슬픈 역사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부르는 식물 이름도 일본 이름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많다. 그래서 우리 정서와 동떨이진 이름이 되었다. 예를 들면, 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같은 이름은 일본말에 더럽혀진 대표적인 경우다. 식민지 시대의 한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일이다. 만약 우리 식물학자에 의해 주체적으..

읽고본느낌 2019.05.05

길상사 연등

김영한과 백석과 법정 - 길상사(吉祥寺)가 세워진 인연이 연등의 색깔처럼 아름답게 빛난다. 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무소유의 꽃으로 피어난 곳이다. 환락의 장소에서 청정 도량으로 변한 기적이 우리 마음밭에서도 일어나지 않을까. 씨앗은 사라지지 않고 기다릴 뿐이다. 여건이 되면 언젠가는 싹을 틔우고 수천, 수만 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흰 연등은 돌아가신 분의 극락왕생 염원을 담고 있다. 그런데 길상사의 흰 연등은 세속의 집착을 버린 텅 빈 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백석 시의 '흰 당나귀'와 연결되는 건 아닐까.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사진속일상 2019.05.04

블랙홀의 그림자

지난달에 인류가 최초로 찍은 블랙홀 사진이 공개되어 화제를 모았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만 할 뿐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으니 직접 볼 수는 없다. 주변에 있는 물질이 블랙홀의 영향을 받아 격렬한 운동을 하면서 방출하는 전자기파를 통해 블랙홀의 존재를 유추한다. 간접적으로 볼 수 있으니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부른다. 바로 이 사진이다.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M87이라는 은하 중심에 있다. 붉은색이 블랙홀 주위를 회전하는 원반이고, 가운데 보이는 검은 영역이 블랙홀이다. 블랙홀에서는 '사건의 지평선'과 '특이점'이라는 용어를 알아두면 편하다. 고밀도로 압축된 천체는 중력이 엄청 강해서 주변의 시공간을 휘게 만든다. 그래서 빛조차 빠져나갈 수 없게 되는데 그 경계..

길위의단상 2019.05.03

성북동 한 바퀴

신현회 다섯 명이 성북동을 한 바퀴 돌기 위해 한성대입구역에서 만났다. 성북동은 서울도성 밖에서는 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그래서 서울시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길상사, 수연산방 등 단편적으로 들러본 적은 있지만, 하루를 온전히 답사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먼저 길상사를 찾았다. 길상사는 언제 찾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도심 속 사찰이다. 이번에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둔 연등에 매료되었다. 일행이 길상사를 돌아보는 동안 나는 연등 아래서만 놀았다. 성북동에는 고급 주택이 즐비하지만, 다른 한 켠에는 달동네도 있다. 둘이 공존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모습이다. 성북동성당도 잠시 기웃거렸다. 선잠단 옆에 선잠박물관에 들렀다. 선잠단은 양잠의 신인 서릉씨에게 제사를 지..

사진속일상 2019.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