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 28

99의 노예

단톡방에 친구가 '99의 노예'라는 글을 올렸다. 최근에 어느 집안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오른다. 토지 보상금 문제로 한바탕 분란을 겪은 집이다. 갑자기 생긴 돈 앞에서 모두가 제정신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돈은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나, 절에 다니면서 무욕을 강조하던 사람이나, 눈먼 돈 앞에서는 다 똑같아졌다고 한다. 누굴 비난할 처지가 아니다. 나도 같은 부류다. 글에서 가난한 요리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행복해요!" 그러나 막상 금화를 보자 가면이 벗겨진다. 우리의 신념, 신앙, 지조 등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가련한 자기 위안거리밖에 안 된다. 단지 아닌 척할 뿐이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묘하지 않은가. 예수나 부처는 가정과..

참살이의꿈 2019.07.31

남한산성 벌봉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물러났지만 꼬리가 길다. 짙은 구름이 벗겨질 줄 모른다. 간간이 가는 비가 뿌리는 날, 산성리에 차를 파킹하고 남한산성 벌봉에 다녀오다. 남한산성은 하나의 성곽으로 되어 있지 않고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다. 벌봉은 본성이 아닌 봉암성(蜂巖城)에 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를 볼 수 있는 벌봉을 청군에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12년(1686)에 봉암성을 쌓았다. 벌봉에 가자면 본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관문인 3암문을 지나야 한다. 3암문에서 벌봉으로 가는 길을 40대 때는 무척 좋아했다. 바람이 시원하고 꽃이 많은 길이었다. 한동안 뜸했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걸어본다. 남한산에서 이만한 바위는 벌봉..

사진속일상 2019.07.30

나의 아름다운 이웃

박완서 선생의 글을 읽고 싶어 찾은 책이다. 선생이 문단에 나온 초기에 쓴 짧은 소설 모음집으로, 시기로는 1970년대에 해당한다. 일상을 섬세하고 따스하게 그려내는 선생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선생은 40대의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그래선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젊은 작가와는 다르다. 이웃집 아주머니의 정겨운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속 작품을 읽으면 70년대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경제 성장과 부동산으로 부자가 생기기 시작하고, 아파트 문화가 시작될 때였다. 당시 사람들의 삶과 의식이 어떠했는지 잘 그려져 있다. 선생의 실제 경험이 작품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때 나는 20대였으니 마치 앨범의 옛 사진을 보는 듯, 이런 시절이었구나 하고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이런 콩트가 어쩌면 작가의 진면목을 제..

읽고본느낌 2019.07.29

막걸리 한 병에 취하다

막바지 장마다. 비 내리는 날에는 뭐니뭐니 해도 김치부침개에 막걸리가 최고다. 아내는 부침개를 만들고, 나는 동네 슈퍼에 나가 막걸리를 사 온다. 둘은 입맛이 달라서 아내는 지평 막걸리고 나는 장수 막걸리다. 늘 그러하니 이젠 슈퍼 주인도 알아챌 수 있을 게다. 바깥나들이가 뜸하다 보니 술 할 기회가 줄어들고 막걸리 한 병에도 뿅~ 가 버린다. 750mL 한 병이면 두 잔 반 정도 나오는데 그걸로 혼수상태가 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원래 주량 차이가 났는데, 이제는 술도 평준화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막걸리 한 병에 취해서 둘이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술만 들어가면 큰소리치는 내 버릇이 재발한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아주 나쁜 술버릇이다. 아내..

사진속일상 2019.07.28

고향으로 돌아가자 / 이병기

고향으로 돌아가자 나의 고향으로 돌아가자 암 데나 정들면 못살 리 없으련마는 그래도 나의 고향이 아니 가장 그리운가 방과 곳간들이 모두 잿더미 되고 장독대마다 질그릇 조각만 남았으나 게다가 움이라도 묻고 다시 살아 봅시다 삼베 무명옷 입고 손마다 괭이 잡고 묵은 그 밭을 파고 파고 일구고 그 흙을 새로 걸구어 심고 걷고 합시다 - 고향으로 돌아가자 / 이병기 전주 가는 길에 여산휴게소에 들렀더니 '시조시인 만남의 길'이라는 화살표가 있었다. 휴게소 한 켠에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작품으로 꾸며진 작은 공원이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팔각정 주변에 선생의 시조 작품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생가 안내가 있는 걸 보니 이 지역에서 선생이 나신 것 같다. 이 시조는 제일 큰 시비에 적혀 있었다. 아마 6.25 이..

시읽는기쁨 2019.07.28

논어[346]

자하가 말했다. "위대한 인격자는 매사에 엇나가지 않지만, 사소한 인물들에게는 다소의 차는 있을 수 있다." 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 子張 8 '마음 가는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하지 않는다[從心所慾不踰矩]'고 한 공자는 대덕(大德)의 경지에 이른 것일 게다. 반면에 소덕(小德)은 경계를 들락거린다. 일탈했더라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가 과제일 것이다. 벗어났으면서도 벗어난 줄 모르는 자가 제일 병통이다. 그 무지를 깨우쳐주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삶의나침반 2019.07.27

비에 젖는 세미원 연꽃

장마 속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세미원에 가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바로 출발했더니 사람이 적어 좋다. 연꽃은 한창 때를 지난 것 같다. 피어 있는 꽃보다는 이미 져 버린 게 많다. 그래도 꽃봉오리가 계속 올라오니 8월까지는 아쉽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꽃은 굵은 눈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꽃이라고 서러움이 없겠는가. 오히려 꽃이기에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외로움과 슬픔이 있으리라. 연잎이 넓은 이유는 떨어지는 꽃잎을 고이 받아주기 위해서인가 보다. 한 생을 마친 꽃잎이 연잎 품에서 안식을 취한다. 연꽃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이 다가온다. 약 4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까이 있어도 너무 조용하다. 조곤조곤 말하는 일본어가 들린다. 역시 일본 ..

꽃들의향기 2019.07.26

강변의 참나리

어린 시절 강가에서 뛰어놀던 내 모습을 참나리는 보고 있었을 게다. 책보 던져놓고 옷 홀라당 벗고 강물로 뛰어들어 놀다 보면 어느새 어스름 저녁이 되었다. 그 강변 어딘가에 참나리는 피어 있었을 테고, 아이들 노는 걸 구경하느라 참나리 고개는 아래로 기울어지지 않았을까. 참나리는 참 당돌하지. 주근깨 얼굴이 부끄럽지도 않은지 머리털 뒤로 젖히고 활짝 드러내고 있잖아. 그 당당함이 좋다. 여름을 닮은 뜨거운 색깔은 어떻고. 참나리는 자연의 열정과 순수를 그대로 드러낸다. 참나리 앞에 서면 인간의 가식과 엄살이 부끄럽다. 장맛비도 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참나리는 씩씩하게 피어 있다.

꽃들의향기 2019.07.25

한 글자 사전

의 후편이라 할 수 있다. 김소연 시인은 언어와 사물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사전에 나오는 한 글자로 된 낱말을 시인의 예리한 촉수로 더듬어 본 결과물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미소 짓게 하고, 무릎을 치게도 한다. 낱말을 재정의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를 열어보이는 일이다. 시인을 따라 시늉을 내보지만 이내 벽에 막힌다. 평시에 주변과 내면을 관찰하고 주시한 내공이 쌓이지 않는다면 버거운 작업이다. 책 한 권 분량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작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전편과 비교하자면 은 집중도에서 에 미치지 못한다. 이 책이 부실하다기보다 전편의 감동이 워낙 컸기 때문이리라. 아니면 '한 글자'지만 여러 의미를 가진 단어들의 산만함 때문..

읽고본느낌 2019.07.24

노래 / 김남주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지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노래 / 김남주 조국 민정수석이 페이스북에 인용해서 화제가 된 시다. '죽창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로 불려졌는데, 원래 제목은 '노래'다. 제목에 따라 시가 주는 느낌이 다르다. '죽창가'라고 하면 주먹을 불끈 쥐게 하는 의분이 일어난다. 조국 민정수석은 SNS로 이번 사태의 진상이 무엇인지 법률학자답게 냉철하게..

시읽는기쁨 2019.07.23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소견

점잖게 말하면 '수출 규제'이고, 사실은 '경제 보복'이다. 위안부 합의 사항을 파기한 것과, 개인의 불법 징용에 대해 일본 기업의 배상을 결정한 우리나라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본다. 역시 아베다운 행동이다. 첫째, 정치 문제를 무역으로 보복하는 일본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일본은 한국 반도체 제조에 꼭 필요한 소재의 수출 길을 막으려 한다. 자기들만 가지고 있는 핵심 기술이니 대체재도 마땅치 않다.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고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가하려는 치졸한 짓이다. 이렇게 하면 세계 자유무역의 질서는 깨진다. 상대국 정책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는 한국을 길들이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이 명약관화하다. 껄끄러운 문재인..

길위의단상 2019.07.22

논어[345]

자하가 말했다. "참된 인간은 세 번 변한다. 바라다 보면 위엄이 있고, 마주치면 부드럽고, 그의 말을 들으면 엄정하다." 子夏曰 君子有三變 望之儼然 卽之也溫 聽其言也려 - 子張 7 군자는 큰 산이다.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가까이서 볼 때와 들어가서 볼 때도 다르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군자 언행의 특징을 보여준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위엄이 있고, 가까이서 만나면 부드럽고, 말을 들으면 엄정하다. 군자는 어느 한 모습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군자불기(君子不器)와도 통하는 말이다.

삶의나침반 2019.07.21

추억의 선유도

선유도 해수욕장이 개장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은 썰렁하다. 더구나 장마철이니 해수욕장에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들다. 할 일 없는 구조요원들만 한데 모여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있다. 장모님 모시고 선유도에 다녀오다. 새만금방조제와 선유교가 놓이면서 선유도가 성큼 가까워졌다. 배 탈 필요 없이 군산이나 부안에서 30분이면 닿는다. 친구와 처음 선유도에 놀러온 때가 46년 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장항까지, 배를 타고 군산으로, 군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선유도에 왔으니 온종일이 걸렸다. 그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방조제가 놓이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앞으로 이 지역이 또 어떻게 변모할지 예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해수욕장 오른편의 저 바위산, 망주봉(望主峰)을 보니 그때가 어슴프레 떠오른다. ..

사진속일상 2019.07.20

뒷모습

"뒷모습은 정직하다. 눈과 입이 달려 있는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 보이지 않는다. 마음과 의지에 따라 꾸미거나 속이거나 감추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의도의 세계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존재하는 세계다. 뒷모습은 단순 소박하다. 복잡한 디테일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한 판의 공간, 한 자락의 옷, 하나의 전체일 뿐이다. 뒷모습은 골똘하다. 골똘함을 얼굴보다 더 잘 나타내는 것이 등이다. 뒷모습은 너그럽다. 그 든든함과 너그러운 등에 의지하고 기댈 수 없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어머니의 등이 있어서 우리는 업혀서 안심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뒷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나와 같은 대상을 바라보는 동지다. 서로 마주 보는 두 사람은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지만 서로를 공격하려는 ..

읽고본느낌 2019.07.17

대한민국人 / 주영헌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원주민이라는 주민등록증도 있습니다. 봄철이면 중국발 황사를 다 함께 호흡합니다. 우리는 함께 애국가를 부르고, 월드컵에는 붉은 옷을 입고 함께 큰 함성을 질렀습니다. 올림픽에는 "영미!"라고 같이 외쳤습니다. 당신과 나는 한국말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도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까? '안녕'이라는 말까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까'라는 말도 이해하겠습니다. 주어와 동사와 단어, 그 낱낱의 의미는 이해하겠는데,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목청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고, 삿대질하는 모습을 보니 감정의 격함은 알겠는데,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

시읽는기쁨 2019.07.16

이럴 수도 있지

낯선 외국에서 고생도 많이 했지.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가진 재산 다 털어먹고 빚까지 졌어. 희망이 없었어. 가족은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서 뒷정리를 했어. 살아갈 일이 막막하더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스페인 북부로 정처 없이 떠났어. 사람이 적고 쓸쓸한 풍경을 택한 거지. 며칠 동안 바닷가를 배회하니 가진 돈도 다 떨어졌어. 절벽 위에도 서 봤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용기는 없더군.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파 바닷가에 있는 허름한 집 대문을 노크했어. 노부부 두 분이 사는데 따뜻이 맞아주더군. 내 행색이 그랬나 봐.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며 그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지냈어. 그분들도 자식처럼 대해줬어. 저녁을 먹고 나면 두 분은 소파에서 손을 맞잡고 TV를 보는 거야. 작은 화면에 금방 고장이라도..

참살이의꿈 2019.07.15

논어[344]

자하가 말했다. "하찮은 사람은 그르치면 기어이 꾸며댄다." 子夏曰 小人之過也 必文 - 子張 6 유아일 때는 무엇이 잘못인지 알지 못한다. 성장하면서 잘못을 인식하게 되고, 더 크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안다. 자하의 말처럼 잘못임을 알면서도 핑계 대고 변명한다면 소인(小人)이다. 소인은 세상을 보는 시야가 좁다. 흠이나 결점이 없는 인간은 없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잘못을 꾸며대지 않고 성장을 위한 반성의 계기로 삼는 사람이 군자다. 이것이 소인과의 차이다.

삶의나침반 2019.07.14

장마 속 갠 날 경안천 걷다

장마 기간이지만 중부 지방은 아직 제대로 된 장맛비는 찾아오지 않았다. 장마전선이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서 정체 상태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환한 날, 경안천을 걷다. 같은 태양이라도 스페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여름 햇볕은 끈적끈적한 편이다. 습도가 높아서 공기가 후덥지근한 탓이다. 반면에 지중해의 태양은 강렬하지만 쨍그랑, 소리가 날 듯 맑고 경쾌하다. 스페인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여름에는 유라시아 대륙 기단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하늘 색깔이 참 예쁘다. 이 산책로는 흙길이었는데 어느새 시멘트로 포장해 버렸다. 길 걷는 아기자기한 맛이 사라졌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열기도 대단하다. 그대로 뒀으면 더 좋았으련만.....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 예상했던 길을 다 걷지 못하다. 자꾸 나무 그늘을 따..

사진속일상 2019.07.13

고야의 유령

스페인 여행 중에 가이드가 스페인 역사 이해를 위해 버스에서 틀어준 영화다. 화면이 작고 흔들려서 눈이 아파 그때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귀국하고 나서 올레 영화에서 다시 뽑아 보았다. 이 영화가 그리는 스페인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고야의 유령'은 18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친 스페인이 무대다. 궁정화가인 고야(Goya, 1746~1828)의 눈으로 바라본 시대의 혼란상과 인간의 사악함, 그중에서도 가톨릭의 부패와 음모를 잘 그려낸 수작이다. 당시 스페인을 지배하던 '유령'은 진리를 내세우면서 인간을 억압한 가톨릭이었다. 스페인 가톨릭계는 교리 수호를 위해 악명 높은 종교재판소를 다시 가동한다. 로렌조 신부의 마수에 이네스가 걸려들고, 저녁 식사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대교인으로 몰..

읽고본느낌 2019.07.12

김씨 / 정희성

돌을 던진다 막소주 냄새를 풍기며 김씨가 찾아와 바둑을 두면 산다는 것이 이처럼 나를 노엽게 한다 한 칸을 뛰어봐도 벌려봐도 그렇다 오늘따라 이렇게 판은 넓어 뛰어도 뛰어도 닿을 곳은 없고 어디 일자리가 없느냐고 찾아온 김씨를 붙들고 바둑을 두는 날은 한 집을 가지고 다투다가 말없이 서로가 눈시울만 붉히다가 돌을 던진다 취해서 돌아가는 김씨의 실한 잔등을 보면 괜시리 괜시리 노여워진다 - 김씨 / 정희성 어제 양재기원에서 고씨와 만나 근 2년 만에 바둑을 두었다. 바둑팀이 해체된 뒤로는 바둑 둘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지인 중에는 바둑을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인터넷으로는 바둑의 맛을 느끼지 못한다. 바둑이 노년의 좋은 취미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맞는 수담(手談) 상대를 만나기가 어렵다. 삶이 ..

시읽는기쁨 2019.07.11

세상에 이런 일이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침대는 90도로 발딱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페인 여행 중 새벽 3시에 어느 호텔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것이 그때의 황당한 상황이다. 아무리 가장자리에 누워 있다 하더라도 침대가 뒤집어질 수 있겠는가. 소리에 놀라 옆 침대에서 자던 아내도 일어났다. 둘 다 어이없어했다. 아내는 침대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닌지 살펴봤지만 철제 다리는 이상 없었다. 설령 다리가 부러졌대도 한 편으로 무너지기만 하지 저렇게 발딱 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기며 침대를 바로 세워 놓고 다시 잠이 들었다. 해외여행이라 너무 피곤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침대는 구조상 ..

길위의단상 2019.07.10

무의도 일몰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가까이 있는 무의도에 갔다. 마침 저녁 시간이어서 식사를 할 겸 일몰을 보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친구가 유럽 여행을 다녀오며 바로 텃밭으로 달려가서 물 주고 잡초를 뽑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피곤해서 한시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을 텐데 먼저 텃밭으로 달려가는 에너지가 부러웠다. 나도 흉내내 보고 싶었고, 텃밭이 없으니 대신 섬을 택했다. 무의도는 최근에 다리로 연결되어 차가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새로 만든 무의대교도 구경하고 싶었다. 하나개해수욕장에는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잔잔한 노을이 예뻤다. 아직 해수욕 철이 아닌데 텐트도 여럿 보이고, 방갈로에서는 가족 단위로 온 손님도 있었다. 해가 지고 나니 갯벌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려는 사람들도 많이 ..

사진속일상 2019.07.09

논어[343]

자하가 말했다. "널리 배우면서 목표를 굳게 세우고, 똑똑 끊어 물으면서 자신의 일을 생각하면, 사람값은 절로 그 안에 있을 거야." 子夏曰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 - 子張 5 오늘의 내용에서는 '근사(近思)'에 주목한다. 직역하면 '가까이를 생각한다'이다. 제 자신이나 주변에 집중하는 게 우선이다. 멀리 있는 타인과 비교할 게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 훌륭한 인품은 우선 가족에게서 인정받는다. 내향(內向)의 힘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삶의나침반 2019.07.08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5) - 바르셀로나

여행 여덟째 날, 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다. 9시에 출발하니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다. 이번 여행은 바삐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다. 숙소에서 본 발렌시아의 아침 주택가 풍경. 숙소는 대체로 이런 수준이다. 값싼 패키지니 숙소나 음식은 마음에 안 들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휴게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건물 벽에 걸린 노란 리본이 자주 눈에 띈다.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과 문화나 언어가 다르다. 500년 전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통합을 했지만 아직 융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 정부의 강제 진압으로 실패했다. 독립 운동으로 수감된 사람의 석방을 기원하는 마음을 노란 리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다. 바르셀로나는..

사진속일상 2019.07.07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4) - 론다, 미하스, 그라나다

여행 여섯째 날,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론다로 출발하다. 아침 식사 전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세비야 교외 주택가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집들은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행. 론다로 가는 길에는 해바라기 밭이 많이 보인다. 꽃이 지고 있어 볼 품이 없어 차를 세우지는 않다. 스페인은 5월에 와야 많은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론다(Ronda)는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로 집은 하나 같이 하얗다. 파란 하늘과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이 확 풍긴다. 론다에는 데레사 수녀(1515~1582)가 설립한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이 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도원이다. 시원한 초록의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 론다는 투..

사진속일상 2019.07.06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3) - 세비야

여행 다섯째 날, 세비야로 가다.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400km,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 30분이 걸리다. 세비야(Sevilla)는 여행 오기 전 스페인 역사를 읽으면서 책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도시였다. 신화적 요소가 있지만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가 세비야이고, 여기서 스페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로도 세비야는 스페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슬람 지배 시대는 물론이고 대항해 시대에는 신대륙과의 무역항으로 영화를 누렸다. 세비야 가로를 따라 대성당으로 가다.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인이 자신들의 사원으로 처음 세웠고, 이슬람을 몰아낸 가톨릭 세력이 100여 년의 대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폭이 넓은 모양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 성당, 런..

사진속일상 2019.07.05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2) - 포르투, 파티마, 리스본

여행 셋째 날,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하다. 포르투(Portu)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오래전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한 지역이다. 대항해시대에는 해상 무역의 거점 도시였으며, 포트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포르투'에서 나왔다. 수백 년 전 건축물이 남아 있는 히베리아 구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포르투 역사 지구의 중심에 있는 리베르다드 광장이다. 보이는 사람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중앙에 동 페드로 1세의 기마상이 있다. 여기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 60대 부부를 만나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타일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 기차역. 기차역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포르투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탑 3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이..

사진속일상 2019.07.04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1) - 마드리드, 톨레도, 살라망카

스페인으로 가는 길은 멀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8시간이 걸렸으니 비행 시간만 18시간이었다. 경유하면서 대기한 시간까지 합하면 가는 데만 꼬박 22시간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새벽에 건넜다. 며칠 전에는 미군 드론이 격추되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트럼프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가 취소했다는 보도가 출발 직전에 있었다. 이번에 카타르 항공을 이용했는데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는 것 같다. 도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환승 공항으로 많이 활용된다. 고객은 항공료가 싼 카타르 항공을 선호한다. 카타르는 워낙 석유 부국이라 다른 민간 항공사가 경쟁할 수 없다. 도하에서 여행 팀원끼리 인사하다. 전체 23..

사진속일상 2019.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