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 27

나팔꽃(2)

나팔꽃의 보라색이 유난히 선명하다. 꽃 가운데에 강렬한 조명이 밝혀진 듯하다. 그래서 꽃 전체에서 빛이 난다. 자세히 보면 꽃 표면에 별 무늬가 있고 중심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온다. 저 빛의 유혹을 물리칠 곤충이 얼마나 될까. 나팔꽃의 진한 보라색은 내가 응원하는 여자배구 흥국생명팀의 유니폼에도 들어가 있다. 핑크와도 잘 어울리는 색깔이다.

꽃들의향기 2019.09.28

논어[355]

숙손무숙이 조정에서 대부들과 이야기하기를 "자공은 중니보다 잘났다." 자복경백이 그대로 자공에게 알린즉, 자공이 말했다. "그것을 담장에다 비기면 내 담장은 어깨 남짓하여 집안의 좋은 점이 넘겨다보이지만, 선생님의 담장은 여러 길이 되는 까닭에 문을 찾아 들어가지 않으면 종묘의 아름다운 모습이며 많은 벼슬아치들이 우글우글한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문을 발견하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으니 그 분이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叔孫武叔 語大夫於朝曰 子貢賢於仲尼 子服景伯 以告子貢 子貢曰 譬之宮牆 賜之牆也 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 數인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 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 - 子張 17 자공의 비유가 뛰어나다. 자신은 담장이 낮은 집이라 안이 들여다보여 사람들이 감탄하지만,..

삶의나침반 2019.09.28

초가을 뒷산 한 바퀴

신경이 날카롭고 짜증이 늘어났다. 머리가 무겁고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하는 영향이 크다. 기본에서 덜거덕거리니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 계절마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가볍게 배낭을 매고 뒷산에 오른다. 목 마른 것도 참고 한 번의 쉼도 없이 정상에 이른다. 바지런히 걸으니 꼭 한 시간이 걸린다. 땀을 흘리니 몸이 개운하고 머리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게 내 '마음'으로부터 기인한 게 아니겠는가. 바깥 탓을 대지만 사실은 내면에 관한 문제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산길에서 도토리를 줍는 한 남자를 만났다. 인공관절 수술을 한 사연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일흔 셋인데 지금도 버스를 몬다고 했다. 직장인을 아침 저..

사진속일상 2019.09.27

성지(17) - 구산성지

28. 구산성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성지다. 서울에서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우리도 성지 조성 초기에는 여기서 미사를 자주 드렸고 후원회원이기도 했다. 그 뒤로 오랜만에 다시 찾다. 구산성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안토니오 성인 외 여덟 분의 순교자가 묻혀 있다. 마을 뒷산이 거북 모양이어서 구산(龜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왕흘을 들고 계시는 구산성지 성모상. 김세중 화백의 작품이다. 김성우 안토니오(1795~1841) 성인은 옛 경기도 광주 구산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인이 되어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사진속일상 2019.09.26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김규항 선생의 아포리즘이다. 선생의 글에서 핵심 되는 부분을 모았기 때문에 선생의 생각이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선생의 주장에는 동의되는 부분이 많다. 선생의 글은 간결하면서 주장이 선명하다. 인간 삶에 대한 통찰이 저변에 깔려 있다.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 사람은 내적 음성과 대화하고 외적 음성과도 대화할 때 비로소 외롭지 않다. 우리,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건 대개 내적 음성과의 대화다. 고독solitude과 외로움loneliness을 구분해야 한다. 고독은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고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과 차단된 고통이다. 자신과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까. 고독을 피한다면 늘 ..

읽고본느낌 2019.09.25

경안리에서 / 강민

"이 놈의 전쟁 언제나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때와 땀에 절어 새까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부풀어 터진 그의 발바닥이 찢어진 이 강산의 슬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치고 더럽게 얼룩진 그의 몸에선 어쩌면 그의 두고 온 고향 같은 냄새가 났다 1950년 8월의 경안리 주막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우리는 같은 또래끼리의 하염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적의(敵意)는 없었다 같은 말을 쓸 수 있다는 행복감마저 있었다 고급중학교에 다니다 강제로 끌려나와 여기까지 왔다는 그 그에게 나는 또 철없이 말했었다 "북이 쳐내려오니 남으로 달아나는 길"이라고 적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고, 우리만 하염없는 얘기로 밤을 밝혔다 그리고 새벽에 그는 떠..

시읽는기쁨 2019.09.24

신장생태공원을 걷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뒤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공기도 극상으로 깨끗하다. 아무리 방콕파라 해도 그냥 집 안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이다. 가까운 하남의 신장생태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나가다. 11년 만에 다시 찾아보는 곳이다. 신장생태공원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산곡천과 덕풍천 사이에 있다.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를 이룬 공원이다. 서울의 한강변처럼 건물이나 위락 시설 없이 산책로만 있다. 산책로 밖으로는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전에 없던 메타세콰이어 길이 새로 생겼다. '위례 강변길'이라는 표찰이 달려 있다. 길이가 1.3km 가량 되는데 앞으로 10년만 더 자라면 명품길이 될 것 같다. 산곡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에 팔당대교가 있다. 건너편이 예봉산이다. 한강에는 자연스레 섬이 생기고 풀이 무성..

사진속일상 2019.09.23

너무 예민해

나는 소리에 예민해서 탈이다. 다른 데는 둔한 편인데 유독 소음에는 까다롭다. 그래서 사는 데 피곤하다. 도시에 살면서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디를 가나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소음 공해라는 말도 있다. 소음에 오래 노출되면 대개 무감각해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나 같은 경우는 반대로 점점 예민해진다. 소음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 (시골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조용한 곳을 찾아 시골살이할 때 옆집 개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많았다. 시골 마을의 개 짖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바깥에서 여러 명이 만나는 모임이 꺼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왁자지껄한 분위기 때문이다. 술이라도 몇 순배 돌면 각자 목소리가 커지고 시장 바닥처럼 변한다. 대화의 소재가 무엇이든 이 정도 되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언제 ..

길위의단상 2019.09.22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지난 추석 연휴 중 SBS TV에서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요한과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김용현 선생의 삶을 소개하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의 요한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와의 만남을 계기로 요한은 독재 타도의 시위 현장에서 앞장을 섰다. 그의 활동 중 하나가 1987년에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사병의 억울한 죽음을 고발한 일이다. 군에서는 훈련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다고 구타를 당해 숨진 것이다. 요한은 사병의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요한이 주장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요한은 사라졌..

참살이의꿈 2019.09.21

논어[354]

위나라 공손조가 자공더러 묻기를 "중니님은 어디서 배웠는가?" 자공이 말했다. "문, 무 두 왕의 교훈이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사람들에게 남아 있습니다. 잘난 사람들은 그의 위대한 점을 기억하고 있으며, 보통 분들은 그의 자잘한 점을 기억하고 있으니, 모두가 문 무 두 왕의 교훈 아닌 것은 없습니다. 선생님은 어찌하여 배우지 않았을까마는, 어찌 한 사람만의 스승에게서 배웠겠습니까." 衛公孫朝 問於子貢曰 仲尼焉學 子貢曰 文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 子張 16 공자를 폄하하려는 사람이 당시에도 있었을 것이다. 공손조는 위나라의 대부인데 자공과도 가까운 사이였을 것이다. 공자가 어디서 배웠는가를 묻는다는 것은 공자의 현재 학문적 성취보다는..

삶의나침반 2019.09.20

해피 엔드

'다가오는 것들'에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강렬하게 남아 올레TV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찾아보았다. '해피 엔드'는 올여름에 개봉한 그녀의 최근작이다. 자막을 보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것 같다. 만든 이는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다. '해피 엔드'는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는 프랑스 상류층의 한 가족을 다루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속은 병들어 있다. 밝은 화면과는 대조적이다. 이 영화에서 위페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CEO로 나온다. 아들을 후계자로 키우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들'에서 보여준 자립적이고 지적인 여성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인지, 이 영화에서는 위페르의 연기가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물질의 ..

읽고본느낌 2019.09.19

씨팔! / 배한봉

수업 시간 담임선생님의 숙제 질문에 병채는 "씨팔!"이라고 대답했다 하네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으나 "씨팔! 확실한 기라예!" 병채는 다시 한 번 씩씩하게 답했다 하네 처녀인 담임선생님은 순간 몹시 당황했겠지 그러다 녀석의 공책을 보고는 배꼽을 잡았겠지 어제 초등학교 1학년 병채의 숙제는 봉숭아 씨방을 살펴보고 씨앗수를 알아가는 것 착실하게 자연 공부를 하고 공책에 '씨8'이라 적어간 답을 녀석은 자랑스럽게 큰 소리로 말한 것뿐이라 하네 세상의 물음에 나는 언제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을 외쳐본 적 있나 울퉁불퉁 비포장도로 같은 삶이 나를 보고 씨팔! 씨팔! 지나가네 - 씨팔! / 배한봉 에 보아뱀 그림 이야기가 나온다. 어린 왕자가 보아뱀이 코끼리를 잡아먹은 그림을 그렸지만, 어른들은 모자 그..

시읽는기쁨 2019.09.18

맑고 푸른 날

웬일일까, 올해는 늦봄부터 초가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세먼지 염려 없이 살고 있다. 연일 맑고 푸른 날이다. 시국은 어지러워도 자연은 더없이 청명하고 밝다. 이 좋은 날씨에 이끌려 아내와 밖에 나섰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이 좋아 일부러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반바지도 입었다. 피부도 얼마나 생생한 햇빛을 원하겠는가. 드러낼 수 있는 한 한껏 쬐어주고 싶었다. 그늘이 아니라 햇볕 따라 걸었다. 후줄근한 마음도 이 쨍한 햇볕에 말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뽀송뽀송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비 뒤여서인지 목현천 냇물이 더욱 깨끗하다. 송사리떼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목현천은 경안천과 합류하며 넓은 하천이 된다. 더 내려가면 경안천은 한강과 합쳐진다. 세상 살면서 근심 걱정 없길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

사진속일상 2019.09.17

파티마의 은총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함께 가톨릭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세 군데 모두 성모 발현지다. 1917년 5월 13일, 작은 마을 파티마에 살던 세 아이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그 뒤로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차례나 발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을 비롯해 많은 기념 건물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의 대표 성지다. 지난 6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아내가 제일 가보고 싶어 한 곳이 파티마였다. 가톨릭 신자로서는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성지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묵었고, 파티마에 머문 시간도 다른 팀에 비해 길었다. 그래서 아내는 세 번이나 성지를 찾을 수 있었다. 가던 날 오후에는 가이드의 안내로 성지 전반에 대한 설..

길위의단상 2019.09.16

논어[353]

자공이 말했다. "참된 인간의 허물은 일식이나 월식 같다. 잘못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고치게 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게 된다." 子貢曰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焉 過也人皆見之 更也人皆仰之 - 子張 15 이 말의 방점은 군자는 잘못을 고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잘못을 저지른다. 군자나 소인이나 마찬가지다. 군자는 제 허물이 무엇인지 알고, 허물을 고쳐 나가면서 더 나은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 허물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다. 반면에 소인은 제 허물이 무엇인지 모르고, 알더라도 변명하기 급급하다. 아예 제 허물에는 눈을 감는 경우가 흔하다. 예수도 말하지 않았는가. "이 위선자, 먼저 당신 눈에서 들보를 빼내시오. 그때에야 당신은 똑똑히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

삶의나침반 2019.09.15

2019 추석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막혔다. 평소 두 시간이면 넉넉하던 길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가 동행했다. 며칠 전에 운을 떼었더니 기꺼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조카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모이는 숫자가 단촐해졌다. 동생과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를 찾아뵈었다. 엎드려 절 할 때에 조상님께 면구스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내려보신다면 형제, 친척간의 우애를 제일 바라실 게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효도하고 우애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우애하는 자로서 효도하지 않는 자는 없다." 9월 13일이 추석이니 올 한가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들의 벼는 이제 익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찾아갈 이유..

사진속일상 2019.09.14

뒷산 닭의장풀

뒷산길을 걸을 때 이맘때까지도 제일 자주 만나는 꽃이다. 산꼭대기 풀밭에도 많이 피어 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뜻이리라. 너무 흔해서 귀한 대접을 못 받지만 특이한 모양에 개성이 강한 꽃이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볼수록 매력이 더하다. 특히 두 장의 나비 모양을 한 꽃잎의 푸른색이 예쁘다.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꽃, 닭의장풀이다.

꽃들의향기 2019.09.11

불행해지는 법

행복해지는 법은 어려울지 몰라도 불행해지는 법은 쉽고 단순하다. 그래서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많다. 불행해지려면 남과 비교하면 된다. 사람은 늘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산다. 비교는 성취욕을 북돋는 긍정적인 작용도 하지만 대개는 시기심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자기 학대에까지 이른다. 불행의 시작이다. 나보다 잘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잘 생기고, 많이 배우고, 돈이 많고, 운이 좋은 사람은 주위에 수두룩하다. 사람들은 아래를 보기보다는 위를 쳐다보며 부러워한다. 그런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열패감으로 연결된다.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위험한 신호다. 나보다 못난 사람 역시 많다. 내가 얼마나 혜택받는 조건에서 살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바로미터다. 그러나 남의 불행이 ..

참살이의꿈 2019.09.10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 김창완

모아요 -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 김창완 시 제목이 길고 내용이 단 한 마디로 된 게 재미있다. 역시 재치있는 김창완 시인이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부터 아이의 대답까지 따라가는 내내 웃음이 나온다. 아이의 "모아요" 한 마디가 절정을 찍는다. 천진난만한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예순 여섯 나이에 어디서 이런 동심이 샘솟는지 정말 '모아요'다.

시읽는기쁨 2019.09.09

다가오는 것들

40대 중반쯤 되면 생의 전환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인생관의 변화가 일어난다. 주변 환경도 변한다. 이루고 성취하기보다 잃고 보내는 일이 늘어난다. 삶이 익숙해지는 대신 심드렁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도전을 받으며 일에서도 변방으로 밀린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 더는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 나탈리는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재직하며 평범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부다. 성실해 보이는 남편과 십대 후반의 아들, 딸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학교에서는 급진 사상을 가진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출판사는 수익 문제로 책 출간을 거절한다. 성장한 자식은 나탈리에게서 멀어지고, 늘 딸에게 의지하려던 어머니도 세상을 뜬다. 이런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다가..

읽고본느낌 2019.09.08

경의선숲길 산책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용산역과 신의주역을 잇는 518km 길이의 철도다. 일제가 한반도 지배와 대륙 침략을 위해 건설했다. 당시에는 경부선 다음으로 운수교통량이 많았다고 한다. 경의선은 남북 분단으로 끊어졌다가 2003년에 연결식이 군사분계선에서 있었다. 2009년에 광역전철이 개통되면서 경의선 중 용산선 구간 6.3km가 지하화됨에 따라 지상 구역은 공원으로 만들었다. 2016년에 경의선숲길 공원으로 완공되었다. 경떠회원 다섯 명과 경의선숲길을 걷다. 서울로 진입하는데 너무 시간이 지체한 통에 나는 중간에서 합류하다. 철로를 따라 만든 공원이라 띠 모양으로 길게 뻗어 있다. 꽃과 나무로 잘 가꾸었고 도심이지만 숲에 들어 있는 느낌이다. 주변의 가게들도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옛 철로 풍경을 재현한 ..

사진속일상 2019.09.07

성지(16) - 풍수원성당

27. 풍수원성당 1801년 신유박해 이후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신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신앙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전을 일구거나 토기를 구우며 지내다가 1888년에 뮈텔 주교가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르메르 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수는 약 2천 명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천주교 신앙 중심지가 풍수원성당이었다. 르메르 신부에 이어 1896년에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여 1943년까지 사목하였고, 정 신부는 1907년에 지금의 성당 건물을 준공 봉헌하였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 정면 성당 측면 성당 후면 성체조배실과 성모상 풍수원성당 ..

사진속일상 2019.09.04

청곡리 느티나무

인가 없는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느티나무다. 시야가 훤히 열려 있으니 더욱 우뚝해 보인다. 큰 느티나무지만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작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줄기 둘레가 7m나 되고, 나무 높이는 26m다. 나무 주변에 쉼터를 잘 만들어 놓았고, 임지 화장실까지 있는 게 특이하다. 그렇지만 찾는 사람이 그리 많을 것 같지는 않다.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청곡리에 있다.

천년의나무 2019.09.03

횡성호수길(5구간) 걷다

횡성호수길은 강원도 횡성 갑천면에 있는 횡성호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다. 6개 구간이 있으며 전체 길이는 32km다. 이중에서 인기 있는 구간은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다시 회귀하는 5구간이다. 풍광이 제일 좋고 길이도 4.5km로 걷기에 적당하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호수를 옆에 끼고 걷는다. 흙길이고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호수 건너편의 전원주택 단지가 무척 마음에 든다.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 건 왜일까. 길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어 눈요기도 쏠쏠하다. 횡성호수길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관리도 깔끔하게 잘 하는 것 같다. 2000년에 만들어진 횡성댐은 원주, 횡성..

사진속일상 2019.09.03

횡성향교 은행나무

강원도 횡성읍에 있는 횡성향교(橫城鄕校)는 조선 건국 초기인 태조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향교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 성현과 우리나라의 18선현을 봉안하고 있다. 횡성향교 담장 밖에 100여 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다. 전에는 향교 안에 속해 있었을 나무다. 이 중에서 수령이 170년인 은행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2.6m다. 수세나 연륜이 보호수로 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지만, 향교의 지킴이로 꿋꿋하게 자라고 있다.

천년의나무 2019.09.02

논어[352]

자공이 말했다. "주의 잘못도 이렇듯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참된 인물은 밑으로 내려가기를 싫어하는 것이니, 천하의 악이란 악은 다 그리로 밀려들기 때문이다." 子貢曰 紂之不善 不如是之甚也 是以君子 惡居下流 天下之惡皆歸焉 - 子張 14 국가 관계에서는 승자가 선이고 패자는 악이다. 새로 창업한 나라는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멸망한 나라를 희생양으로 삼아야 한다. 역사 기술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 군주는 음란하고 잔인한 폭군으로 만들어진다. 나라가 망한 게 어찌 한 사람의 잘못만이겠는가. 누대에 걸친 적폐가 쌓여서 그때 곪아 터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공이 주왕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말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 번 둑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똥에 구더기가 들끓듯 천하의 악이 다 그..

삶의나침반 2019.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