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 30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최첨단 물리학 이론인 '루프양자중력'을 설명하며 우주와 만물의 근본을 탐색하는 책이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썼다. 부제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숨 쉬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이다. 물리학의 두 기둥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와 블랙홀을 연구하는 우주론이 발전했고, 양자역학에서 원자물리학의 기초가 닦였다. 그런데 둘은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상대성이론은 장들이 양자화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역학은 시공이 휘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따른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양자중력론은 이 둘의 모순을 해결하며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양자 공간과 양자 시간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읽고본느낌 2019.10.31

논어 새로 읽기 / 권순진

사람이 칠십까지 살아내기가 여의치 않았던 시절 그 나이라면 가르칠 일도 깨우칠 것도 없었겠다. 나이 오십에 하늘의 뜻을 다 알아차려야 한다 했으니 그 문턱 넘은 뒤로는 다만 제각기 붙은 자리에서 순서대로 순해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귀가 순해지는 이순耳順에 앞서 쉰다섯 즈음엔 입이 순해지는 구순口順이어야 지당하고 귀와 입이 양순해진 다음에는 눈의 착함이 순서란 말이지 예순 다섯 안순眼順은 세상으로 향하는 눈이 너그러워질 때. 입과 귀와 눈이 일제히 말랑말랑해지면 좌뇌 우뇌 다 맑아져서 복장 또한 편해지겠거늘 아직도 주둥이는 달싹달싹 귓속은 가렵고 눈은 그렁그렁 찻잔 속 들여다보며 간장종지만 달그락대고 있으니. - 논어 새로 읽기 / 권순진 어제 읽기를 마쳤다. 무려 7년이 걸렸다. 를 다시 읽은 계기..

시읽는기쁨 2019.10.30

논어[357]

선생님 말씀하시다. "천명을 모르면 참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다. 예법을 모르면 몸 둘 곳이 없느니라. 말을 못 알아들으면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다." 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 堯曰 의 끝 구절이다. 이 말씀이 책 마지막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명(命), 예(禮), 언(言), 사람살이에서 공자가 무엇을 중시했는지 이 세 단어로 요약된다. 세상을 살 때 수직 관계로는 명(命)이 있고, 수평 관계로는 예(禮)와 언(言)이 있다. 셋 중 하나만 놓쳐도 군자로서는 부족할 것이다. 곰곰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겉핥기였지만 읽기를 마친다. 2012년에 시작했으니 7년이 걸린 셈이다. 감이불취(感而不取)란 말이 있다. 느꼈으면 됐지 남고 얻은 게 무엇인지..

삶의나침반 2019.10.29

세렴폭포 가는 길

치악산 단풍을 보러 갔는데 때가 좀 늦었다. 단풍이 많이 졌고 남아 있는 것도 색깔이 바랬다. 대략 일주일 전 쯤이 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 다녀왔다. 실버 코스라고 할 정도로 길이 평탄하고 쉽다. 불타는 듯 화려한 단풍은 없어도 가을산의 향취에 푹 빠졌다. 구룡사를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단풍의 명소. 한낮의 양광을 받아도 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세렴폭포로 올라가는 길. 드문드문 진홍빛 단풍이 보인다. 세렴폭포는 폭포라고 하기에는 초라하다. 지금 시기에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 나무는 자신을 덜어내면서 찬 계절을 견딜 준비를 한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의 수런거림으로 숲은 분주하다. 제 할 일을 마치고 난 자..

사진속일상 2019.10.28

신익희 생가

우리 고장 너른골 출신의 근현대 유명 인사로는 독립운동가며 정치가인 신익희 선생과 여배우인 최은희 씨가 있다. 너른 땅에 비해 인물은 그다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할 수 없다. 고향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시집 와서 묻힌 허난설헌 묘는 초월면 지월리에 있다.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1892~1956) 선생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에서 태어났다. 서하리 현지에 생가가 보전되어 있다. 현재 가옥은 1925년에 지었다. 서하리 마을 입구에는 선생 생가를 알리는 돌담 벽이 있다. 여기서 1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생가가 나온다. '조국의 독립과 정치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한 실천적 정치 지도자'라는 선생의 약력을 읽어본다. 선생의 일생은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 해방 후 정치 활동이라는 두 시기로..

사진속일상 2019.10.27

반일 종족주의

책 첫머리가 우리나라를 '거짓말의 나라'로 규정하고, 우리를 '거짓말하는 국민'으로 조소한다. 몇 가지 통계를 뽑아와 이런 단정을 하는 자체가 너무 건방지다. 읽어보면 책 전체가 이런 편견과 확증편향으로 일관되어 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의 정직함을 증명할 수 있는 통계나 사례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만 골라 논지를 펼쳐나가는 것은 학자의 자세가 아니다. '종족주의'의 '종족'은 민족보다 저차원 개념이다. 샤머니즘을 신봉하고 이웃을 악의 종족으로 간주한다. 일부 극단적 주장에서 드러나는 종족주의를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의 정신문화 전체를 종족주의로 폄하하는 것은 동의하기 힘들다. 차라리 혐한 시위를 일삼는 일본 극우 단체가 종족주의의 표본이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일본 ..

읽고본느낌 2019.10.26

이 넉넉한 쓸쓸함 / 이병률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무심함을 단순함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 만나자 저녁빛이 마음의 내벽 사방에 펼쳐지는 사이 가득 도착할 것을 기다리자 과연 우리는 점 하나로 온 것이 맞는지 그러면 산 것인지 버틴 것인지 그 의문마저 쓸쓸해 문득 멈추는 일이 많았으니 서로를 부둥켜안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되게 살자 닳고 해져서 더 이상 걸을 수 없다고 발이 발을 뒤틀어버리는 순간까지 우리는 그것으로 살자 밤새도록 몸에서 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자는 일에 육체를 잠시 맡겨두더라도 우리 매일 꽃이 필 때처럼 호된 아침을 맞자 - 이 넉넉한 쓸쓸함 / 이병률 일행과 헤어져서 돌아오다가 버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화사한 가을 햇살에 끌려 중간에 내..

시읽는기쁨 2019.10.25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통계를 보면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찾아오는 횟수가 하루에 500~900번 정도다. 가끔 1천 회가 넘기도 한다. 지난주에는 2천 회를 넘은 날이 있었다. 아주 드문 경우다. 어떤 검색어로 들어왔는가 봤더니 박노해의 '동그란 길로 가다'라는 시를 통해서였다. '동그란 길로 가다'는 2012년 5월에 블로그에 올렸는데, 하루에만 이 시를 검색해서 들어온 사람이 1천 명을 넘었다. 정경심 교수가 페이스북에 이 시를 인용하면서 많은 사람이 확인차 내 블로그에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시를 다시 읽어본다.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

길위의단상 2019.10.23

주전골 단풍

올해 설악산 단풍 감상은 십이선녀탕으로 잡았다. 너무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해서 가는 도중에 점심까지 먹고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아뿔싸, 12시까지만 입장이 된다며 들어가는 걸 막는다. 헛걸음이 되었다. 한두 시간만 단풍 구경을 하고 나오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긴 시간 등산하는 사람이야 조난 위험 때문에 늦은 시간 입장을 통제할 수 있다지만 잠깐의 단풍 구경도 막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투덜대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 한계령을 넘어 주전골로 향했다. 3년 전에 찾았던 곳이다. 만경대를 개방하면서 구경하러 갔는데 만경대 입구에 긴 줄이 서 있어 주전골만 보고 되돌아왔었다. 개방 첫해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워낙 몰리니 지금은 만경대에 가기 위해서..

사진속일상 2019.10.22

북가현리 느티나무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에 있는 느티나무다.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들판에 있다. 사진 피사체로서는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줄기에서 나온 가지의 반이 무슨 이유에선지 고사했다. 뇌졸증으로 반신불수가 된 모양새다. 이 나무에 얽힌 전설이 있다. 옛날에 마을에 괴질이 돌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어느 날 허름한 옷차림의 도인이 지형을 살피더니 구봉산의 정기를 누르기 위해서 심으라고 나무 한 그루를 주고 갔다. 그 뒤부터 마을에 가뭄이나 질병이 없어지고 화목하게 잘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도인이 주고 간 나무가 바로 이 느티나무다. 나무의 수령은 400년, 키는 12m, 줄기 둘레는 5.4m다. 온전한 형태였으면 멋진 느티나무였을 텐데 무척 아쉽다.

천년의나무 2019.10.20

[펌] 어떻게 죽을 것인가

몇 달 전 조선일보에 실린 김훈 작가의 글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잘 죽는 법은 지금 잘 사는 도리밖에는 없다. 잘 살았다고 믿더라도 꼭 잘 죽는다는 보장도 없지만..... 글 전문을 옮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김훈 망팔(望八)이 되니까 오랫동안 소식이 없던 벗들한테서 소식이 오는데, 죽었다는 소식이다. 살아 있다는 소식은 오지 않으니까, 소식이 없으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난달에도 형뻘 되는 벗이 죽어서 장사를 치르느라고 화장장에 갔었다. 화장장 정문에서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 있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가면 고인의 이름 밑에 '소각 중'이라는 문자등이 켜지고, 40분쯤 지나니까 '소각 완료', 또 10분쯤 지나니까 '냉각 중'이..

참살이의꿈 2019.10.20

백마산에 오르다

올해 들어 산행이 뜸해졌다. 체력이 저하된 탓은 아니고, 발바닥에 생긴 통증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적당한 걸음은 괜찮은데 많이 걸으면 발이 경고를 보내온다. 가능하면 산행을 자제하고 있다. 오랜만에 배낭 속에 한 끼 식사를 챙겨 길을 나선다. 집 가까이 있는 백마산 산행이다. 바로 지척에 있는 산인데 한 해 반만에 찾는다. 새광주주유소에서 버스를 내리면 바로 백마산행의 기점이다. 조금 걸어 올라가면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이 나오는데, 한창 개발되고 있는 광주시의 서부 지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런 산길 참 좋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만 봐도 마구 엔도르핀이 샘솟는다. 휴일이지만 사람 만나기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좋은 길이 호젓하기까지 하니 금상첨화다. 이 쉼터는 누군가가 항상 깔끔하게 쓸어 놓는..

사진속일상 2019.10.19

일본산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수출 규제를 시작한 지 석 달이 지났다. 우리 정부도 맞대응하며 일본과 맺은 지소미아를 폐기했다. 처음 우려한 것과는 달리 우리 산업계에 미치는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부품 국산화 등 탈일본으로 가는 계기가 된 긍정적인 면도 있다. 지금은 양국 모두 숨 고르기를 하는 것 같다. 이번 사태에서 주목할 점은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NO JAPAN' 캠페인이다.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안 하기 운동이 다수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과거 같으면 불이 붙었다가 금방 사그라지는데 이번은 달랐다.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들의 혐한 소동도 반일 감정에 한몫을 하고 있다.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

읽고본느낌 2019.10.18

하늘 /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하늘 / 박두진 박두진 시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시다. 박두진 문학길을 걸으며 이 시를 찾아 읊었다. 요사이는 휴대폰이 있으니 편리하다. 젊었을 때 무척 좋아했던 시였는데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음을 새삼 알아챘다. 푸른 가을 하늘 아래 호수를 따라 오붓하게 길이 나 있었다. 시인이 말하는 호수를 여기 금광호수로 착각한들 어떠랴. 호수는 지상의 꿈, 하늘은 천상의..

시읽는기쁨 2019.10.17

성지(19) -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30. 은이성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은이(隱里)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되어 귀국해서 첫 사목지로 택한 곳이다. 김 신부는 여기에 공소를 설립하고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했다. 가까이에는 김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이 있다. 은이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던 상해의 김가항(金家巷) 성당이 새롭게 복원되어 있다. 김 신부는 김가항 성당에서 184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상해의 도시 개발로 성당이 철거되면서 주요 부재를 옮겨와 2015년에 원형 그대로 건립했다. 김가항 성당은 소박하면서 단아한 흰색 건물이다. 문이 잠겨 있어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다. 뜰에는 두 줄기가 맞붙은 느티나무가 있다...

사진속일상 2019.10.16

오흥리 느티나무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금광호수변에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다. 가까이에 혜산 박목월 시인의 집필실이 있던 곳이어선지 소공원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 두 그루 중 할아버지 나무라 불리는 오래된 느티나무에는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떤 사람이 느티나무 아래서 개를 잡았다. 그 뒤로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는데, 어느 만신이 나무 아래에서 굿을 해보라고 했다. 식구들이 굿을 하자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정월 열나흗 날에 모여 한 해의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 나무는 수령이 450년이 되었고, 나무 높이는 13m, 줄기 둘레는 6.8m다. 이웃해 있는 느티나무는 수령이 350년이 되었다. 옆 나무가 할아버지라면 이 나무는 할머니 느티나무라 할 만하..

천년의나무 2019.10.15

박두진 문학길

안성에 간 길에 '박두진 문학길'을 걸어보다. 박두진 시인의 고향이 안성이고, 말년의 집필실이 이곳 금광호수변에 있었다. 문학관을 비롯해서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 호수 주변에 만들어졌다. 박두진 문학길도 그중 하나다. 시인이 4.19 혁명 직후 연세대에서 해직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는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반대한 서명 문인 1호였다고 한다. 당대 현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문단 정치와도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걸은 분이다. 혁명 뒤에 쓴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는 시를 보면 선생의 의기를 느낄 수 있다. 시의 한 구절은 이렇다.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사진속일상 2019.10.15

처음 로또를 사다

시내와 집을 오가는 길에 로또 판매점이 새로 생겼다. 견물생심이라고 선명한 노란 불빛에 끌려 지난주에는 난생처음으로 로또를 샀다. 1만 원을 내니 작은 종이 두 장을 주는데 거기에는 기계가 찍은 10개의 숫자열이 적혀 있었다. 눈에 안 보일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로또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물욕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다. 어제 당첨 숫자 발표가 나왔는데 당연한 결과겠지만 꽝이었다. 3개 번호만 맞으면 되는 5등에도 하나 걸리지 못했다. 우리나라 로또는 45개 숫자에서 6개를 맞히면 1등이다. 5개가 일치하고 보너스 번호를 맞추면 2등, 5개만 일치하면 3등, 4개는 4등(5만 원), 3개는 5등(5천 원)이다. 이런 자세한 내용은 이번에 로또를 사며 처음 알았다. 로또 당..

길위의단상 2019.10.13

한양 삼십리 누리길 걷기

'한양 삼십리 누리길'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최근에 만든 길이다. 광주 목현동에서 남한산성 산성리까지 12km 길이로 기존의 등산로와 마을길을 연결했다. 4개 구간으로 되어 있으며 오전리, 불당리, 검복리를 차례로 지난다. 옛날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이 이용하던 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 시험 길'을 주 컨셉트로 잡은 것 같다. 경떠회 다섯 명이 전 구간 걷기 도전에 나섰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만나 역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남한산성 7암문이 출발점이다. 산국이 곱게 피어 있다. 회원 여섯 중 하나만 빠지고 다섯 명이 만났다. 우리는 전부 '좌빨'이라 불릴 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J가 새로운 용어를 하나 알려줘서 한참을 웃었다. '대깨문'이라고, '대가리가 깨져도 문..

사진속일상 2019.10.12

식구

가족(家族)은 나를 기준으로 배우자와 부모, 자식까지를 가리킨다. 가까운 혈연관계로 맺어진 집단이다. 반면에 식구(食口)는 혈연보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같이 음식을 먹으며 생활한다면 한 식구로 보는 게 보통이다. 가족과 식구를 겸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가족이면서 식구가 아닌 경우도 있다. 식구를 직역하면 '먹는 입'이니 그다지 아름다운 말은 아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 제목을 '식구'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는 김별아 작가의 체험적 가족 이야기다. 부제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인데, 가족만큼 빛과 그늘의 양면성이 두드러진 집단도 드물다. 위로와 따스함의 원천이면서 상처와 집착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거의 유일한 피난처지만, 어떤 때는 족쇄가 ..

읽고본느낌 2019.10.10

동문 바둑대회

동문의 날 행사가 고등학교 모교에서 열렸다. 오랜만에 학교 구경을 할 겸 나가 보았다. 바둑 대회에 참가하려 했으나 신청이 늦는 바람에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옛날 교사와 건물은 거의 다 없어지고 교정은 새로 싹 변했다. 50년이 흘렀으니 달라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까까머리 동기생도 이제는 중노인이 되어 바둑판 앞에 앉아 있다. 현관에 옛날 사진 한 장이 전시되어 있다. 1970년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다. 저 사진 어딘가에 나도 서 있을 것이다. 옛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건물이 반갑다. 그때는 강당이었는데 지금은 체육관으로 쓰고 있다. 정문을 지나 학교로 들어가던 오르막 길 흔적이 남아 있다. 등하교하던 유일한 길이었는데 지금은 학생들 통로가 바뀌었다. 이 길은 차량 출입로로 쓰..

사진속일상 2019.10.09

복권 가게 앞에서 / 박상천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가 문득 복권이 사고 싶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다가 잠시 망설인다. 복권을 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긴 싫어 꾸욱 참고 가게 앞을 그냥 지나쳐 간다. 자꾸만 호주머니에 손이 가지만 아이에게 변명할 말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내 행동을 이해하도록 설명해주어야 할만큼 아이가 자라고 나니 이제 나는 복권을 사고 싶은 나이, 참 쓸쓸하고 허전한 나이에 이르고 말았다. - 복권 가게 앞에서 / 박상천 집으로 오는 길목에 복권 가게가 새로 생겼다. 몇 번 지나치다가 어제는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가 앉아있다가 반갑게 맞는다. 언제 개업했느냐고 물으니, 그동안 세 번 추첨했는데 5만 원짜리 당첨이 여러 번 나왔다고 자랑한다. 고작 5만 원이냐고 반문하니 그것도 쉽지 않단다. 6개 숫자 중 ..

시읽는기쁨 2019.10.08

큰개여뀌

여뀌, 개여뀌, 큰개여뀌를 구분할 눈이 아직 없다. 집 앞에서 만난 이 여뀌는 자란 높이가 내 키만큼이나 되니 큰개여뀌가 아닌가 추정할 뿐이다. 여뀌가 들판을 붉은색으로 덮으면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한다. 그런데 여뀌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찾아보니 역귀(逆鬼), 또는 역귀(疫鬼)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가진 풀인 듯하다.

꽃들의향기 2019.10.07

논어[356]

진자금이 자공더러 말하기를 "그대는 겸손한 까닭이야! 중니님이 왜 그대보다 잘 났단 말인가?" 자공이 말했다. "참된 인간은 말 한 마디로 아는 사람도 되고, 말 한 마디로 먹보 같은 인간도 되기 때문에 말이란 삼가야 하는 거야. 우리 선생님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마치 하늘은 사닥다리로 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생님이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면 '세울 자리에 세워 주고, 갈 곳으로 인도해 주고, 품에 안아주므로 모여오게 되고, 서로 격려하여 화목하도록 할 것이다. 그가 살아서는 영화를 누리고, 죽으면 애달파 할 것이니' 어떻게 그의 본을 딸 수 있을 것인가." 陳子禽 謂子貢 曰 子爲恭也 仲尼豈賢於子乎 子貢曰 君子一言以爲知 一言以爲不知 言不可不愼也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夫子之得邦家者 所謂..

삶의나침반 2019.10.06

우리 시대의 가난

오랜만에 참석한 이번 주 미사의 복음 말씀은 루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 비유였다. 신부님의 아름다운 강론을 들으면서 과연 종교적 심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들었다.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에게 죽은 뒤의 복락에 대한 약속이 타당한지, 부자에게 주는 경고가 그들에게 얼마나 유효할지 자꾸 의문이 생겼다. 예수가 곧 도래할 하늘나라를 강조한 것은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변혁시킬 혁명을 꿈꾸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영적인 혁명만 얘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양극화라고 생각한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지고 계급화가 고착되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메이저와 마이너 리그로 나누어진 것이 보인다. 요사이 정의와 공정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마저도 기득..

참살이의꿈 2019.10.05

어른의 의무

일본의 만화가인 야마다 레이지가 쓴 책이다. 지은이는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인터뷰하며 존경받는 어른이 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신이 찾아낸 내용을 중심으로 노년이 될수록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지은이는 이를 '어른의 3가지 의무'라 이름 붙였다. 첫째, 불평하지 않는다. 둘째, 잘난 척하지 않는다. 셋째,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한다. 멋지게 나이 드는 비결은 간단하다. 이 세 가지만 실천하면 된다. 반대를 생각해 보면 확실해진다. 매사에 불평만 하고, 잘난 척하며, 무엇엔가 화가 나 있는 노인을 상상해 보라. 누구도 옆에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의 부제가 '어른의 노력이 모든 것을 바꾼다'이다. 주변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

읽고본느낌 2019.10.04

태풍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태풍 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 하늘에 취해 경안천을 걸었다. 청석공원에 파크 골프장이 생겼다. 멀리서 봤을 때는 게이트볼인 줄 알았는데 요사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스포츠다. 파크 골프는 골프를 노년에 맞게 변형시킨 운동인 것 같다. 좀 더 나이 먹으면 한 번 해 볼만 하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한껏 받았다. 저 맑고 파란 하늘을 닮고 싶어서.....

사진속일상 2019.10.03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

시읽는기쁨 2019.10.03

성지(18) - 되재성당

29. 되재성당 퀴즈를 하나 내 보자.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성당은 어디일까? 서울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이다. 그럼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은? 천주교 신자라도 정답을 맞추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답은 전북 완주에 있는 되재성당이다. 약현성당이 1892년, 되재성당은 1895년에 건축되었다. 명동성당은 1898년이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과 고산면 일대는 깊은 산골이다. 천주교 박해의 여파로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다. 병인박해 때는 이 지역에 56개의 교우촌이 있었다고 한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에 되재성당이 건립되고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쉽게도 되재성당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사라졌고, 최근에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종탑이다. 나무로 ..

사진속일상 201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