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 35

노팅 힐

가끔 단것을 먹고 싶을 때가 있듯, 달콤한 이야기가 당기는 날이 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가 '노팅 힐(Notting Hill)'이다. '노팅 힐'은 영국 런던에 있는 동네 지명이다. 유명 할리우드 스타 여배우와 노팅 힐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가 우연히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극히 드물어야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조건이 된다. 보통은 여자가 신분 상승을 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지만 이 영화는 반대다. 남자의 욕구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줄리아 로버츠(안나 스콧 역)와 휴 그랜트(윌리엄 대커 역)가 두 주인공으로 나온다. 스타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인간성의 줄리아 로버츠가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명대사도 그녀의 입에서 나온다. "The fa..

읽고본느낌 2020.04.30

벽초지수목원과 마장호수

손주를 데리고 파주에 있는 벽초지수목원에 갔다. 정문에 들어서니 색색으로 고운 튤립이 활짝 피어 있었다. 혼자 뒤처져서 튤립 사진 삼매경에 빠졌다. "자연을 사랑하는 한 사람과, 예술을 자연으로 그려내는 한 화가가 만나 벽초지수목원의 기나긴 여정이 200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안내 팸플랫에 나오는 설명이다. 벽초지수목원은 잘 가꾼 공원 같다. 설렘, 신화, 모험, 자유, 사색, 감동 등 여섯 개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이번에는 제 엄마가 따라와서 우리 손이 줄었다. 대신 손주와 노는 재미도 같이 줄어 들었다. 코로나19 덕분에 손주와 노는 재미을 알게 되었다. 밖에 데리고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놀게 된다. 손주는 할머니를 잘 따르면서, 하는 말과 행동이 예뻐 귀염을 독차지한다. 다시 유치..

사진속일상 2020.04.29

동의나물(2)

동의나물의 '동의'라는 어감에서는 약초 같은 느낌이 난다. 실제로 한방에서는 마제초(馬蹄草)로 불리며 진통과 항균 작용이 있다고 한다. 동의나물 잎은 말 발굽과 닮았다. 이름은 '나물'이 붙어 있지만 독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동의나물이라는 이름은 꽃이 피기 전 봉오리 모습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을 닮아 붙여졌다는 재미있는 설이 있다. '동의'가 한자 이름은 아닌 것 같다. 동의나물은 밝고 화려한 색깔로 눈길을 끄는 꽃이다. 한택식물원에서 봤다.

꽃들의향기 2020.04.28

사회적 거리 두기

'사회적 거리 두기'가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실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복 쇼핑'이라는 표현을 써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쇼핑을 마치 보복하듯 해댄다는 뜻이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전과는 달라지리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간격 두기에 불과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들의 익숙한 사고나 습관과의 거리 두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달라질 세상..

참살이의꿈 2020.04.27

죽산리 느티나무

내비에 '죽산면사무소'를 치니 이 느티나무까지 데려다 준다.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다. 수령이 450년인데 큰 가지가 여럿 잘려 나가서 우람한 줄기만 드러나 있다. 봄이 되었으나 새 잎을 내는 데도 벅차 보인다. 상대적으로 젊은 옆의 느티나무는 수세가 왕성하다. 안성의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무 높이는 18m, 줄기 둘레는 4.3m다.

천년의나무 2020.04.26

2020 한택식물원의 봄

손주를 데리고 한택식물원에 갔다. 바람이 몹시 불어서 표를 끊을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한 시간이나 달려온 시간이 아까워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꽃잔치에 흥겨웠다. 다양한 꽃들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튤립이 제일 눈에 들어왔다. 튤립은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꽃인 것 같다. 적으면 적은대로 많으면 많은대로 제 잘 난 척 튀지 않으면서 주위 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내가 꽃사진 찍는 게 부러웠는지 이번에는 저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 사진을 찍고나서는 화면을 보여주며 자랑하느라 바쁘다. 사실 자세랑 결과물이랑 별로 나무랄 데 없다. 한택에 있는 내내 꽃에 관심을 보이고 집중하는 손주가 기특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테 귀여움 받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 이해하지만, 그렇더라도 아직 ..

사진속일상 2020.04.25

체제에 관하여 / 유하

횟집 수족관 속 우글거리는 산낙지 푸른 바다 누비던 완강한 접착력의 빨판도 유리벽의 두루뭉술함에 부딪혀 전투력을 잊은 채 퍼질러 앉은 지 오래 가쁜 호흡의 나날을 흐물흐물 살아가는 산낙지 주인은 부지런히 고무호스로 뽀글뽀글 하루분의 산소를 불어넣어 준다 산낙지를 찾는 손님들이 들이닥칠 때 여기 쌩쌩한 놈들이 있는뎁쇼 히히 제발 그때까지만 살아 있어 달라고 살아 있어 달라고 그러나, 헉헉대는 그대들의 숨통 속으로 단비처럼 달콤히 스며드는 저 산소 방울들은 진정 생명을 구원하는 손길인가 투명한 수족관을 바라보며 나는 투명하게 깨닫는다 산소라고 다 산소는 아니구나 저 수족관이라는 틀의 공간 속에서는 생명의 산소도 아우슈비츠의 독가스보다 더 잔인하고 음흉한 의미로 뽀글거리고 있는 것 아니냐 - 체제에 관하여 /..

시읽는기쁨 2020.04.24

칠사산 트레킹

요 며칠 기상이 사나웠다. 어제 수도권에는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늦은 눈이 내렸다. 113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바람 불고 황사도 몰려왔다. 봄 날씨가 원래 이렇게 어수선하다. 닷새만에 집을 나섰다. 아직 바람이 잦아지지는 않았지만 황사는 지나갔다. 칠사산 트레킹은 천변과 산을 함께 걷는 길이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와 같이 걷기 시작했다. 칠사산 입구까지는 경안천을 따라 가는 약 6km의 천변 길이다. 그동안에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다섯 개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 첫 번째 징검다리 ▽ 두 번째 징검다리 메타세콰이어 숲 길을 지난다. 날씨 탓인지 오늘 천변에는 사람이 적다. ▽ 세 번째 징검다리 ▽ 네 번째 징검다리 네 번째 징검다리를 지나면 폭신한 흙길이 나온다. ▽ 다섯 번째 징검다리 천변..

사진속일상 2020.04.23

금강경[19]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떤 사람이 십억이나 되는 가없는 세계에 일곱 가지 보배를 가득 채워 이 보배를 부처님께 공양 올린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은 인연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까?" "그렇겠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이 사람은 그와 같은 인연으로 참으로 많은 복을 얻겠습니다." "수보리여, 만일 저 복과 덕이 참으로 '나'가 있는 복과 덕이라면 여래는 '복과 덕을 많이 받는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복과 덕은 결코 '나'가 있는 복과 덕이 아니기에 여래는 '복과 덕이 많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금강경 19(법계와 하나 된 삶, 法界通化分) 도올 선생은 21세기 인류의 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가 자연과 인간의 슬기로운 공존, 둘째가 모든 종교와 이념간의 배타의 해소, 셋..

삶의나침반 2020.04.22

낮술

낮술 맛을 알게 된 건 퇴직하고 난 뒤다. 직장에 다닐 때는 낮술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술은 퇴근한 뒤 저녁에 마시는 거였다. 여러 사람이 모여 왁자지껄한 가운데 직장 얘기를 안주 삼아 스트레스를 푸는 게 대부분이었다. 술맛을 음미하기에 적당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퇴직하고 나니 낮이 제일 한가한 시간이 되었다. 심심하다 보니 반주로 몇 잔 홀짝이게 된다. 집에서 마시는 낮술이 직장 다닐 때와 다른 점은 시간상의 차이와 함께 대작하는 사람의 유무다. 대개 혼자이고 가끔 아내가 앞에 앉기도 한다. 집에서 마시는 낮술은 조용한 가운데 술맛을 느끼면서 취해가는 과정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내 낮술을 방해하는 것은 바깥에 있지 않다. 기분 좋다고 연달아 낮술을 즐기다가는 이내 위..

길위의단상 2020.04.21

상처받지 않을 권리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금 당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이 욕망하는 것인가?" 그는 우리 욕망의 대부분이 자신의 욕망이라기보다 타자의 욕망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던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시대에 자본만큼 강하게 우리를 지배하는 타자도 없을 것입니다. 진정 무서운 일이 아닌가요? 자본은 마치 몸에 기생하는 암세포처럼 우리 내면의 욕망을 먹이삼아 번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욕망이 치열해질수록, 자본은 더욱 강해질 테고 우리 삶은 점차 병들어가겠지요. 자본이 남긴 뿌리 깊은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유하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가 상처 받고 병들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할 용기를 갖추는 일이 아닐까요? 숨겨진 상처를 상처 그대로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

읽고본느낌 2020.04.21

집 주변의 풀꽃

오가다 만난 집 주변의 꽃이다. 같은 장소라도 매년 우세종이 다르다. 그런 변화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 봄맞이꽃, 이태 전만 해도 하얀 꽃밭을 이뤘는데 지금은 몇 개체만 남았다. 봄맞이는 봄에 어울리는 예쁜 꽃으로, 청순하고 맑다. ▽ 꽃마리, 꽃 가운데 있는 노란 동그라미 무늬는 봄맞이꽃과 닮았다. 바라볼수록 앙증맞고 귀여운 꽃이다. ▽ 서양민들레, 반갑게 만나던 우리 민들레는 작년부터 눈에 띄지 않는다. ▽ 흰제비꽃, 올해 제일 많이 늘어난 건 흰제비꽃이다. ▽ 남산제비꽃 ▽ 잔텰제비꽃 ▽ 졸방제비꽃 ▽ 왜제비꽃 ▽ 둥근털제비꽃

꽃들의향기 2020.04.20

코로나 이후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심지어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역사를 구분하자는 얘기도 한다. 과연 그 정도일까? 코로나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궁금한 문제다. 과연 자본주의 체제에 균열이 생길까? 인류가 개과천선해서 더 나은 대안적 삶을 찾을까? 이 정도가 아니라면 코로나로 세상이 바뀐다고 큰소리를 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코로나 이후의 세상이 얼마나 달라질지 회의적이다. 코로나19가 올해 안에 진정되고 경제 회복이 이루어지면 코로나19는 표피에 상처에 남긴 채 사라질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가 수년간 지속하며 우리를 괴롭히거나,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는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참살이의꿈 2020.04.19

봄비 내린 뒷산

요란하긴 했으나 반가운 봄비가 내렸다. 공기가 맑아지고 산길의 먼지도 잠잠해졌다. 아내와 함께 봄물 든 뒷산을 찾았다. 진달래 진 자리에 철쭉이 피었다. 뒷산 철쭉은 색깔이 은은해서 좋다. 산이 보여주는 춘색(春色). 지난번에 이어 뒷산을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았다. 두 시간 반에 1만 3천 걸음수가 찍혔다. 이 정도면 노인네 하루 운동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다만 게을러서 쉬이 나서지 못할 뿐....

사진속일상 2020.04.18

위층 아래층 / 한현정

위층에 코끼리가 이사를 왔다 걸을 때마다 쿵쿵 천정이 울린다 아래층에는 토끼 아줌마가 산다 조그만 소리에도 놀라 깡충깡충 뛰어 올라온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들이 산다 발소리가 날까 봐 살금살금 뒤꿈치를 들고 걷는다 - 위층 아래층 / 한현정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가끔 아래층에서 항의를 받았다. "네, 조심하겠습니다"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뭘, 그 정도를 가지고"라며 마땅찮아 했다. 이제 늙어서 둘만 남게 된 지금은 가끔 위층에 연락한다. "잠을 못 자요. 조용히 좀 해 주세요." 공손한 대답과 달리 위층의 속마음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기'가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남에게는 역지사지를 요구하지만, 내가 역지사지하는 데는 인색..

시읽는기쁨 2020.04.17

짜릿한 개표 방송

어제 실시한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전국 253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163석, 통합당이 84석, 정의당이 1석, 무소속이 5석을 얻었다. 민주당의 압승, 통합당의 참패다. 어느 선거나 결과가 조마조마하지만 이번 총선은 유례없는 진영 대결이 벌어져 더 흥미로웠다. 선거에서는 국민이 심판관이다. 이번 총선은 국민이 확실하게 민주당 손을 들어줬다. 통합당의 정치 행태에 환멸을 느낀 국민이 많았다는 얘기다. 민심이 어떠한지 통합당은 잘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제발 우리나라 정치도 한 단계 더 성숙해졌으면 좋겠다. 막말을 일삼는 정치인도 사라져야 한다. 이번에 그런 의원들 대부분이 낙선한 건 다행한 일이다. 이래서는 표를 못 받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줬다고 생각한다. 21대 국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길위의단상 2020.04.16

나는 농담이다

우주를 소재로 사용한 게 흥미롭다. 책 표지에도 우주 그림이 그려져 있다. 서가에서 책을 뽑을 때 표지 그림이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SF가 아닌 소설에서 우주가 등장하는 것은 드물다. 는 초기 화성 탐사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김중혁 작가의 소설이다. 송우영과 이일영이라는 두 남자가 주인공이다. 송우영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인데 어머니가 죽으면서 남긴 편지를 주인(이일영)에게 돌려주려 한다. 이일영은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된 상태다. 통신이 두절되고 산소가 점점 희박해져 가는 가운데 관제센터를 향해 메시지를 남긴다. 송우영과 이일영은 어머니가 같지만 아버지는 다른 형제다. 는 싱겁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희한하다고 해야 할까, 뚜렷한 색깔이나 개성이 없이 흐릿하다.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도 마..

읽고본느낌 2020.04.15

회리바람꽃

작년 곰배령에 이어 강촌의 구곡폭포 가는 길에서 회리바람꽃을 다시 만났다. 비록 인공으로 조성한 화단이지만 깊은 산에서 피는 야생화를 여럿 볼 수 있어 좋았다. 야생화를 찾아다니던 초기에 자주 만난 뒤 한동안 뜸했던 회리바람꽃이다. 노란 좁쌀이 모여 있는 듯 아주 작은 꽃이다. '회리'는 회오리의 준말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꽃 모양에서는 회오리가 연상되지 않는다. 회리바람꽃은 바람꽃 종류 중에서도 모양이 특이한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무척 깜찍하고 귀여운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0.04.14

봄내길 2코스를 걷다

코로나19로 멀리 나가는 걸 자제하다가 두 달만에 동네 밖으로 나갔다. 강촌에 있는 봄내길 2코스를 걷기 위해서였다. '봄내길'이라는 이름이 왠지 이 봄과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길이었다. 아내와 함께 손주가 동행했다. 봄내길은 춘천 지역의 트레킹 길이다. 전부 일곱 개 코스가 있다. 이번에 걸은 2코스는 별칭이 '물깨말구구리길'이다. 안내판 설명에 나온 대로 '물깨말'은 '물가 마을'이란 뜻이고, '구구리'는 '골 깊은 아홉 굽이를 돌아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물깨말과 구구리를 거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임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길게 올라야 한다. 봄내길 2코스는 전체 길이가 7.2km이고, 소요 시간이 두 시간 반으로 나와..

사진속일상 2020.04.14

희망사항

보통 진보와 보수를 나눌 때 민주당은 진보, 통합당은 보수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 기준으로는 민주당이나 통합당이나 모두 보수다. 민주당은 약간 진보적 색채를 띤 보수당이고, 통합당은 오른쪽으로 치우친 보수당이다. 진보라고 하면 정의당이나 녹색당, 민중당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이나 통합당은 기득권층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다. 민주당보다는 통합당이 훨씬 심하지만, 통합당과 다르다고 민주당을 진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재벌이나 부동산을 대하는 엉거주춤한 자세, 특히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보면 그렇다. 진보라면 사회가 다소 혼란을 겪더라도 복지나 평등, 정의의 문제에서 원칙을 견지하고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 말이나 구호만이 아니라 정치인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도 마땅..

길위의단상 2020.04.13

금강경[18]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에게 이 세상 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는 이 세상 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에게 하늘 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는 하늘 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에게 지혜의 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는 지혜의 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에게 진리의 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는 진리의 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여래에게 깨달음의 눈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행복하신 분이시여. 여래께는 깨달음의 눈이 있습니다." "수보리여, 여래가 저 갠지스 강 모래..

삶의나침반 2020.04.12

호제비꽃

제비꽃은 워낙 변종이 많아 하나하나 종류를 구분하기는 정말 어렵다. 그냥 두루뭉술 제비꽃이라고 하면 쉽겠지만, 꽃을 보다 보면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이의 이름이 무엇인지 우선 궁금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제비꽃을 정확히 구분하자면 전제적인 모양과 함께 꽃과 잎의 특징, 털의 유무 등을 살펴야 한다. 그러자면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쌓아야 한다. 도감을 보면서 발버둥쳐 보지만 예나 지금이나 헷갈리는 건 마찬가지다. 이놈은 호제비꽃이라 동정하지만 역시 자신이 없다. 호제비꽃은 제비꽃과 제일 닮았다. 잎이 제비꽃에 비해 다소 통통한 편이다. 꽃 안쪽에 털도 보이지 않는다. 외견상 느낌은 제비꽃과 왜제비꽃 사이쯤 되는 것 같다. 서울제비꽃과도 비슷하다. 호제비꽃의 '호'는..

꽃들의향기 2020.04.11

남한산성 솜나물

4월의 남한산성에는 꽃이 많이 피어 있다. 제비꽃과 현호색이 제일 많지만, 자세히만 살핀다면 어지간한 봄꽃은 만나볼 수 있다. 솜나물도 그중 하나다. 잎과 줄기에 솜처럼 하얀 털이 많다고 해서 솜나물이다. '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당연히 어린 잎은 먹을 수 있을 게다. 정리되지 않은 듯 자유분방한 모습의 꽃잎도 특색 있다. 성곽길을 걸으며 앞서가던 손주가 "여기 하얀 꽃이 있어요" 라고 알려준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0.04.09

손주와 남한산성에서 놀다

손주를 데리고 남한산성에 갔다. 산성마을에 주차하고 현절사를 지나는 산길에 들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처음에는 무척 차가운 날씨였다. 아이들은 시력이 엄청 좋다. 어른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을 무척 잘 잡아낸다. 또한, 움직이는 것에도 매우 예민하다. 슈퍼 레이더이다. 아이 눈에는 길을 걸으며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가 보다. 나는 사소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아이를 신기해 한다. 손주는 다른 아이에 비해 자연물에 호기심이 많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이든 움직이는 걸 찾아내고 놀려고 한다. 아이들이 '개미 박사'라고 불러줄 정도다. 식물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번 산길에서도 새로운 꽃 이름을 여러 개 알려 주었다. 할머니와 손 잡고 성곽길을 걷는다. 이만큼 컸으니 이젠 어디든 ..

사진속일상 2020.04.09

왜제비꽃

꽃 이름에 '왜'가 붙으면 보통 작다는 뜻이다. 왜당귀, 왜갓냉이, 왜모시풀, 왜솜다리 등이 있다. 그런데 왜제비꽃은 꽃 크기에서 눈에 띄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제비꽃의 다른 종류와 마찬가지로 잎으로 구분해야 한다. 왜제비꽃은 잎이 긴 심장 모양이다. 문제는 잎 모양이 다른 종류와 명확히 구별되는 게 아니다. 한참을 고민해야 겨우 이름을 동정할 수 있다. 어쨌든 왜제비꽃은 새로 올리는 제비꽃 종류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제비꽃은 50종이 넘는다. 그중에서 내가 만난 것은 이제 고작 16종이다. 아직 한참 멀었다.

꽃들의향기 2020.04.08

1917

전쟁은 일으킨 놈이 있고 치러야 하는 놈이 있다. 전자는 소수의 권력자이고, 후자는 다수의 민중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자 같은 약자와 젊은 청년이 고통을 겪는 직접적인 피해자다. 전쟁을 일으킨 놈은 이겼건 졌건 상관없이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영화 '1917'은 특별한 느낌의 전쟁 영화다.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연합군으로 참여한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날 독일군이 참호를 버리고 작전상 후퇴를 한다. 이때 영국군의 한 부대가 돌격 작전을 계획하는데 이는 독일군의 함정이었다. 이를 간파한 지휘소에서 작전 취소를 명령하려 하지만 연락이 안 된다.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모든 시설과 영국군의 통신 설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

읽고본느낌 2020.04.08

만만한 뒷산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니 만만한 게 뒷산이다. 뒷산을 찾는 빈도가 두 배는 늘었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만화방창한 봄이 집 주변이라고 비껴갈 리 없다. 코로나19로 지구가 조용해지고 깨끗해졌다는 보도가 연신 나온다. 인간 활동이 주춤해진 결과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산스럽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행' 대신에 '소풍'이라는 말이 되살아날까. 탐욕을 좀 덜어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코로나19 전과 후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말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한다는 의미일까. 국가간 연대나 차별을 넘어선 인류의 통합이라는 가치가 살아날 것인가. 위기는 기회가 된다지만 IMF나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방향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코로나로 잠깐 멈칫하겠지..

사진속일상 2020.04.07

안내 방송 / 주미경

아, 아, 오늘 늘푸른공원에 약을 친다고 합니다. 단풍나무 길 거위벌레 씨 아기 방 창문 꼭 닫아 주세요. 벚나무 길 자벌레 씨 아침 운동 참아 주시구요. 꽃등에 씨 라일락꽃은 비 온 뒤에 찾아 주세요. 아, 아, 돌배나무 길 비단벌레 씨 비단 마스크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참, 말매미 씨 바쁘시더라도 때맞춰 사이렌 부탁합니다. - 안내 방송 / 주미경 아파트 단지 안 수목에 약을 친다는 안내 방송이 가끔 나온다. 약이 들어갈 수 있으니 저층 세대는 창문을 닫아 달라고 당부하는 방송이다. 그런데 이 시를 보고 뜨끔했다. 인간의 입장에서만 볼 줄 알았지, 나무에 살고 있을 생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관점을 바꾸면 이렇게 신선한 시도 나온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

시읽는기쁨 2020.04.06

금강경[17]

그 때 수보리 장로가 부처님께 여쭈었네. "행복하신 분이시여,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선남선녀는 어떻게 순간순간을 살아가야 합니까?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선남선녀는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 장로에게 말씀하셨네.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선남선녀는 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온 중생을 나 없는 행복으로 살아가게 하리라. 나는 온 중생을 나 없는 행복으로 살아가게 하되 한 중생도 그와 같이 살게 한다는 마음이 없이 다 그와 같이 살게 하리라." 왜 그렇겠습니까? 수보리여, 만일 위 없이 바른 깨달음에 마음 낸 보살이 '스스로 있는 나'가 있다는 생각, '죽지 않는 나'가 있다는 생각, '바뀌지 않는 나'가 있다는 생각, '숨 쉬는 ..

삶의나침반 202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