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 27

2월에 본 새

오늘 도서관에 다녀오면서 직박구리와 물까치를 많이 봤다. 이젠 새소리에도 유심히 귀를 기울인다. 갈 때 본 한 직박구리는 올 때도 같은 자리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마 짝을 찾는 애탄 지저귐이 아닌가 싶다. 새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 눈 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 같다. 도감을 뒤적이며 새 이름을 배워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2월에 본 새들을 대충 추려 보았다.

사진속일상 2021.02.28

구들목 /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 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

시읽는기쁨 2021.02.28

떠날 준비하는 고니

고니가 떠날 때가 며칠 안 남았다. 11월에 와서 우리나라에서 월동하고 3월 첫 주면 러시아의 번식지로 떠난다. 단체로 이동하는 얘들은 한 장소에 집결하는데 팔당도 그런 집합 장소 중 하나다. 어제 팔당에 나가 보았더니 고니와 기러기가 많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은 휴식하며 체력을 보충하는 듯하다. 자리를 옮기느라 날아가는 모습은 가끔 보인다. 일부는 아직 짝을 못 구했는지 단체 미팅을 하고 있다. 나중에 두 마리가 목을 서로 비비는 걸 보니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았는가 보다. 고니는 3월 초에 우리나라를 떠나서 중국 경유지를 거쳐 6월에 러시아 번식지에 도착한다. 이동거리는 약 4,000km다. 먼 거리를 잘 다녀오고, 올 겨울에 다시 만나자~

사진속일상 2021.02.27

성지(29) - 묘재

성지 44. 묘재 충북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 있으며 남종삼(南鐘三, 1817~1866) 요한 성인이 살았던 집이다. 이곳은 요한 성인의 부친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으로, 부친과 장자인 남명희, 처 이조이도 순교했다. 남종삼 요한은 남인계 학자로 22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철종 때 승지에 올랐고, 고종 초에는 학덕을 인정 받아 왕실 교육을 담당했다. 그의 학문과 신앙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고,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기 위해 서양 선교사를 이용한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인박해가 시작되며 1866년에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다른 가족들도 함께 체포되어 다음 해에 부친은 공주에서 옥사하고, 남명희는 전..

사진속일상 2021.02.25

늦은 설

코로나로 지난 설날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했다. 올해는 형제가 같이 모이지 못하고 각자 어머니를 찾아뵙게 되었다. 설날이 열흘 지나고 고향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뵙는 어머니가 건강하신 게 안심이 되고 감사했다. 혼자 계시는 날이 많은 데다 코로나로 사람들 왕래가 드무니 너무 적적하다고 하신다. 동네 마을회관이 문 닫은 지도 1년이 되었다. TV가 없으면 어떻게 지낼지 모른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자식이 있다고 노년의 외로움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이기도 한 게 오늘의 현실이다. 아침이면 집 마당 단풍나무는 새들의 놀이터다.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깨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참새와 박새 몇 마리가 들락거릴 뿐 조용했다. 어머니 옆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왔다. 떠날 때마다 자주 찾아뵈어야지, 라고 다짐..

사진속일상 2021.02.24

올림픽공원에서 새를 찾다

서울에 간 길에 짬을 내서 올림픽공원에 들렀다. 넓고 나무가 많으니 새를 볼 수 있을지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집 주변에서 만나는 백로나 황새 같은 큰 새는 잘 보이고 사진 찍기가 쉬웠는데 작은 새는 소리만 들릴 뿐 발견하는 것부터 힘들다. 봤다 해도 카메라를 들이대면 금방 사라져 버린다. 휴일의 올림픽공원은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기온도 15도를 넘어서며 봄날처럼 따뜻했다.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젊은이도 자주 보였다. 처음 만난 새가 물까치였다. 파스텔 톤의 깃털 색깔이 예뻤는데 여러 마리가 어울려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 직박구리 ▽ 곤줄박이 ▽ 박새 삼각대에 대포를 걸어놓고 한곳에 집중하는 사진사들을 우연히 만났다. 먹이로 새를 유인하며 새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로 어치가 들락거렸는데 나도 곁..

사진속일상 2021.02.22

마르코복음[7]

그때 마침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회당에 있다가 외쳤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우리를 없애려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십니다." 예수께서 "잠자코 떠나가라" 하고 꾸짖으시자 더러운 영이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 서로 캐물으며 "이게 웬일이냐? 권위 있는 새로운 가르침이다. 저분이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시니 그들도 복종하는구나" 하였다. 그분 소문이 곧 갈릴래아 근방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은 곧 회당에서 떠나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는데 마침 시몬의 장모가 열이 나서 누워 있었다. 사람들이 곧 사정을 말씀드렸다. 예수께서 다가가 손을 잡아 부인을 일으..

삶의나침반 2021.02.21

왕숙천 산책

손주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구리에 있는 왕숙천에 들렀다. 함흥에 갔던 이성계가 환궁하면서 머물렀던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이라고 해서 왕숙천(王宿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저곳에 이성계와 관련된 지명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 어디나 하천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자전거 길도 사통팔달되는 것 같다. 휴일이라 걸으러 나온 사람이 많았지만 워낙 넓다 보니 북적이지는 않았다. 넓은 갈대밭도 있으면서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유심히 새를 살폈으나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는 않았다. 새가 깃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물닭, 참새. 우리 마을 경안천에서 다시 황새를 만났다. 이 황새는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신기하다. 시베리아로 떠날 때가 차차 다가오..

사진속일상 2021.02.20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

'외계 생명체를 찾아 떠나는 과학 여행'이라는 부제대로 외계 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계의 현황과 전망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을 쓴 제프리 베넷은 생물물리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 분야의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철저히 과학적인 관점에서 외계 생명체에 관한 여러 논쟁을 다루고 있다. 책의 내용은 고등학생만 되어도 충분히 이해할 정도로 평이하면서 흥미진진하게 쓰여 있다. 태양계에서는 미생물 형태의 생명체가 곧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후보는 화성이고, 그다음으로 목성이나 토성의 위성에서 우리는 지구 밖 생명체를 볼 지 모른다. 지구에서도 극한 환경에서 생존하는 미생물이 있으며, 지구의 첫 생명체도 심해 분화구 부근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다른 행성이나 위성에서 생명체를 찾는다면 ..

읽고본느낌 2021.02.19

성지(28) - 양양성당

성지 43. 양양성당 양양성당은 6.25 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李光在, 1909~1950) 디모테오 신부의 사랑과 헌신이 깃든 장소다. 이 신부는 193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3년 뒤에 양양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일제의 탄압 시기를 지낸 뒤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되면서 양양성당은 38선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양양성당에도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어 성당을 빼앗기고 가정집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이 신부는 남쪽으로 피난하는 수도자들과 신자들을 도우며 끝까지 성당을 지켰다. 이 신부는 다른 지역의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평강으로 갔다가 체포되었고, 6.25 전쟁이 터지고 유엔군이 북진하자 인민군은 포로들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총살시켰다. 이때 이 신부도 사망했는데 몇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수라장 속..

사진속일상 2021.02.18

낙산사 복수초

낙산사에서 처음 복수초를 본 게 화재 전이었으니 거의 20년 전이었다. 이른 2월에 강원도에서 복수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는 때에 맞춰 가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속초에 가는 길에 찾아가 보았다. 과연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과연 보타전 뒷편 양지바른 비탈에 복수초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예전의 그 장소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복수초를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가웠다. 낙산사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이곳은 모르는 듯 오직 아내와 둘이서 보물을 감상하듯 했다. "여기 꽃 보러 오세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면 이마저 훼손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복수초가 피는 한 이곳은 나의 비밀의 정원이 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1.02.17

일 년 만의 일박 여행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여행길을 막았다. 당일치기 나들이는 가끔 했어도 일박 이상의 여행을 다녀온 지가 일 년이 한참 넘었다.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국내 여행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동해안으로 놀러 간 둘째가 합류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정부에서도 가족끼리는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해제한 터였다. 날씨가 나쁘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떠났다. 먼저 양양성당에 들러서 성지 참배를 하고 낙산사를 찾았다. 워낙 오랜만에 와서인지 들머리부터 낯설었다. 보타전을 중심으로 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수관음상 마당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낙산해수욕장은 젊었을 때 단골 장소였다. 낙산사 경내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지나는 사람들 ..

사진속일상 2021.02.17

설날 아침 / 남호섭

설날인데 앞집 할아버지 화났다. 아들이 주고 간 용돈 그새 어디 둔지 몰라 찾고 있는 할머니한테도 화나고 또 까먹고 간 손자 장난감에도 화나고 고속도로 꽉 막혔다는 뉴스에도 화나고 새배 마치자마자 텅 빈 집 안,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건 하나도 없다. - 설날 아침 / 남호섭 명절 후유증은 고향에 남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도로가 막힌다고 경쟁하듯 박차고 떠나면 텅 빈자리가 심연처럼 깊고 크다. 화가 나서 심술을 부리는 사람이 앞집 할아버지만이겠는가. 뭐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할아버지 심사가 불편한 게 틀림 없다. 명절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회오리바람 같은 건지 모른다. 한 바탕 휘저어놓고는 나 몰라라 슬그머니 사라진다. 덕분에 우리의 허약한 바탕을 깨닫게 되는 이점도 있지만....

시읽는기쁨 2021.02.14

설날과 세배

코로나로 이번 설은 형제들과 따로따로 지내기로 했다. 설날에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아침에 첫째가 찾아와서 셋이 오붓하게 보내는 설날 아침이다. 오가는 고속도로의 정체 걱정도 없고, 다른 신경 쓸 일도 없다. 사람들과 접촉 없이 지내는 조용한 명절이 좋긴 하나 마음 한편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어릴 때 설날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설날 준비로 며칠 전부터 집안은 부산했고, 섣달 그믐날 저녁은 왁자지껄한 명절의 전야제였다. 잠을 안 자려고 버텼지만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었다. 설날에 일어나면 먼저 차례를 지냈다. 좁은 방에서 열 명 남짓이 차례상 앞에 모이면 바싹 붙어있어야 했다. 절을 하면 아버지 엉덩이가 바로 얼굴에 닿을 정도였다. 그게 우스워 킥킥거리다가 항상 주의..

길위의단상 2021.02.12

말할 수 없어 찍은 사진, 보여줄 수 없어 쓴 글

최필조 선생의 사진 에세이로 부제가 '힘껏 굴러가며 사는 이웃들의 삶'이다. 124편의 작품이 우리 이웃의 애틋한 사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사진과 글이 절묘한 앙상블을 이루며 감동의 화음을 만들어 낸다. '뒷모습', '손', '밤골', '길 위에서' 등 4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작가는 교사 생활을 하며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우리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지만 사진 한 장에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담겨 있을지를 생각한다. 다른 동네의 낯선 사람을 만나고, 얘기를 듣고, 친해지면서 카메라에 담기까지 발품은 또 얼마나 될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내는 일입니다. 둘은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사진은 테크닉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마음이..

읽고본느낌 2021.02.11

날아라 오리

다시 경안천에 나갔다. 며칠 전보다 고니가 두 배는 더 많이 모여 있다. 분주한 걸 보니 이제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고니 사이에 흰뺨검둥오리(?)가 섞여서 놀고 있다. 가끔 날아오르는 건 오리이고 고니는 소리만 지를 뿐 수면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은 오리만 찍었다. 그래, 훨훨 날아라, 오리야! 나란히 나란히~, 얘들은 줄 맞추기의 달인들이다. 다정해 보이다가도 먹이를 앞에 두고는 추호의 양보가 없다. 세상 어디서나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야생에서는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무리를 이루고 살아야 한다. 경쟁 가운데 공생의 원리가 없다면 그 종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새들은 제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다른 걸 욕심 내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점이다. 잠깐의 소동이..

사진속일상 2021.02.10

꽃으로 세상을 보는 법

구성이 재미있는 책이다. 꽃을 주제로 인문학자와 자연과학자인 두 친구가 얘기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공이 다르고 살아가는 환경이 같지 않으니 같은 꽃이라도 보는 관점이 다른 건 당연하다. 두 사람의 글을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이 흥미롭다. 을 쓴 사람은 이명희와 정영란 선생이다. 한 분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다른 분은 약학을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다는데 성인이 되어서 이런 공통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 함께 책을 만들면서 둘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두 분이다.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세상 만물이 스승 아닌 것이 없다. 거기에 애정이 더해진다면 친구면서 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두 분에게 꽃과 나무는 그러한 존재일 것 같다. 부제가 ..

읽고본느낌 2021.02.09

다시 만난 황새

어제 경안천에 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도전을 했다. 혹시 북쪽으로 떠난 게 아닌가 했던 걱정은 기우였다. 지금껏 본 중에 제일 가까운 거리에 황새가 있었다. 곁에 백로와 왜가리, 청둥오리가 친구를 하고 있었지만 서로 모른 척 무심한 게 얘들의 특징이다. 다른 위치에서 찍어보려고 자리를 옮겼더니 금방 알아채고 날아가 버린다. 미안해~ 다음에 또 만나자~ 황새에 이어 여러 새들의 멋진 비행을 보았다. 어쩜 저렇게 멋질 수가 있는 거지.... #1 #2 #3 #4 #5 #6 #7 #8 #9 두 시간 정도 새와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날아가는 새를 보고 있으면 찬탄과 함께 가슴이 두근거린다. 신의 피조물 중에 군더더기 없이 날렵한 몸매를 꼽으라면 단연 새다. 저들의 몸은 가벼우면서 공기 저항을 최..

사진속일상 2021.02.08

경안천 버들(210208)

세 그루인 줄 알았는데 오늘 자세히 보니 두 그루로 된 나무다. 이런 나무를 혼인목이라고 한다. 몸은 둘이어도 하나의 나무처럼 사는 나무다. 서로 마주 보며 겹치는 부분은 비워두고 반대쪽으로만 가지를 뻗는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한 나무처럼 보인다. 혼인목에서 신기한 점은 한 나무가 죽으면 다른 나무도 따라서 죽는다고 한다. 인간 세상에서 이렇게 사이좋은 부부는 찾기 어려우리라. 경안천 버들 주변의 얼음도 거의 다 녹았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가 열흘 뒤다.

천년의나무 2021.02.08

2월 경안천 풍경

황새를 보려고 경안천에 나갔지만 이번에는 만나지 못했다. 혹여나 이곳 생활을 끝내고 이미 북쪽 나라로 날아가지 않았을까 염려된다. 그렇다면 정말 서운할 것 같다. 주말 휴일이라 사람이 많아서 나오지 않았기를 바란다. 대신에 백로와 왜가리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둥지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낮에 먹이 활동을 할 때는 얘들은 철저히 독립적이다. 몇 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멍때리기의 달인들이다. 고독한 철학자의 고고한 모습도 연상된다. 이 두 마리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 짝짓기 사전 단계가 아닐까. 백로가 날아가는 모습을 찍자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백로보다는 왜가리에 더 정감이 간다. 약간은 슬퍼보이기도 하고.... 백로나 왜가리에 비하면 늘 바삐 움직..

사진속일상 2021.02.07

겨울 설봉공원과 고달사지

지인을 만나러 이천에 내려가서 함께 설봉공원을 찾았다. 설봉호 둘레를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두 바퀴 돌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내린 눈이 은세계를 만들었지만 걷는 길은 눈이 잘 치워져 있었다. "어느 멋진 날,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날이었다. 밤골 앞을 지나가며 잠시 차를 세웠다. 이제서야 이렇게라도 바라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달사지에 들렀다. 눈 위에 우리가 첫 발자국을 남겼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지어진 절이다. 쨍한 겨울 햇살을 맞으며 고달사지를 한 바퀴 돌았다. 400년 된 고달사지 입구의 느티나무는 마치 죽은 듯 앙상했다. 그러나 곧 봄이 오고 있음을 나무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맑은 겨울 속의 짧은 나들이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1.02.06

꼬막 /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한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 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읎어서 바다와..

시읽는기쁨 2021.02.04

마르코복음[6]

그리고 그들은 가파르나움으로 들어갔는데, 곧바로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다. 사람들은 그분 가르침에 무척 놀랐다. 율사들과는 달리 권위를 지닌 분으로서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 마르코 1,21-22 예수의 공생애 첫 활동은 가르치는 일이었다. 가파르나움은 갈릴래아 호수 북쪽에 있는 도시로 예수 운동의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이곳 회당에서 한 예수의 말씀은 전해지지 않는다. 대신 모인 사람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사람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무척 놀랐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가르침과 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추정컨대 유대교의 엄격한 하느님 관념에 대해 다른 시각의 해석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징벌을 내리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사랑하고 용서하고 위로하시는 하느님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그리..

삶의나침반 2021.02.03

힘 빼는 데 3년

"힘을 빼라" "부드럽게 밀어라", 당구를 칠 때 옆의 고수한테서 자주 듣는 말이다. 수 년째 똑같은 지적을 받고 있으나 말처럼 쉽지 않다. 오래전에 테니스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깨에 힘을 빼라는 충고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마 10년 정도 지나서야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힘 빼는 데 3년이 걸린다고 운동선수들이 흔히 말한다. 전문 선수들이 그럴진대 일반 아마추어는 오죽하겠는가. 운동에서 힘 빼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리라. 힘이 들어가는 이유는 이기려는 욕심이 앞서기 때문이다. 힘주어 친다고 공이 세게 나가는 게 아니다. 근육이 경직되면 제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잘하려는 마음이 앞서니 몸에 힘만 잔뜩 들어갈 뿐이다. 멘털 스포츠인 바둑도 마찬가지다. 힘이 들어간 수는 ..

참살이의꿈 2021.02.02

의릉 향나무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 뒤편에 있는 향나무다. 의릉(懿陵)은 옛 중앙정보부가 위치한 곳이라 일반인에게 개방이 늦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다른 능에 비해 이름이 생소하다. 경종(1688~1724)과 선의왕후(1705~1730)가 잠들어 있다. 연도를 보니 경종은 37살, 부인은 26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두 분 모두 단명한 셈이다. 의릉 주위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이 향나무는 능 뒤편 산책로 옆에 있다. 두 줄기가 V자 형으로 뻗었는데 지면의 큰 줄기 둘레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수령은 약 200년 정도다. 왼쪽 줄기에는 잎이 나지 않으니 고사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되어 노쇠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지팡이도 없고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대견한 향나무다.

천년의나무 202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