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 28

마름산과 국수봉 걷기

오늘은 작은 산 둘을 연계하여 걷는다. 백마산 줄기에 있는 마름산과 맞은편에 있는 국수봉을 잇는 길이다. 동네 뒷산 정도라 등산이라 할 수 없는 평이한 산길 걷기다. 어느새 산은 가을물이 들기 시작한다. 나무들 사이로 너른골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요사이 오전에는 습도가 높아 시야가 깨끗하지 않다. 일요일 아침, 아내는 성당에 가고 나는 산길을 걷는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길을 걷는 것이 종교의식으로 신을 경배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신의 은총을 가리키는 표상이 아닌가. 성스런 예술품으로 둘러싸인 자연의 예배당에서 내 영혼은 맑고 순수해진다. 지저귀는 새소리, 속삭이는 바람소리는 신을 향한 찬미가다. 나는 존재의 근원과 연결된 듯한 경외감과 평온에 잠긴다..

사진속일상 2021.10.31

낙엽 / 복효근

떨어지는 순간은 길어야 십여 초 그 다음은 스스로의 일조차 아닌 것을 무엇이 두려워 매달린 채 밤낮 떨었을까 애착을 놓으면서부터 물드는 노을빛 아름다움 마침내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죽음에 눈을 맞추는 저 찬란한 투 신. - 낙엽 / 복효근 '투신'은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말이다. '낙하'가 아니라 '투신'이라고 한 데에 이 시가 살아 있다. '투신'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죽음에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고 맞이하는 태도다.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하다. 가을이 짙어진다. 어디에나 낙엽이 가까이 있다. 발에 밟혀 바삭거리는 낙엽은 재잘대는 아이들처럼 명랑하다. 낙엽한테는 거부의 몸짓을 찾을 수 없다. 생의 막바지에서 왜 노을빛처럼 아름다운지를 생각한다. 올 가을에 낙엽을 보며 내가 떠올려야..

시읽는기쁨 2021.10.30

푸르른 틈새

권여선 작가의 장편소설로 1996년에 발표한 작가의 데뷔작이다. 일종의 성장소설로 작가의 10대, 20대, 30대의 삶이 교차하며 그려진다. 어느 작가나 첫 작품은 이야기 전개나 구성이 미흡할지라도 풋풋한 느낌이 들어 좋다. 더구나 성장소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어, 작가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다.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젊은 시절로 함께 추억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에서 작가는 손미옥으로 나온다. 서른한 살의 미옥은 눅눅한 단칸 지하방에서 이사를 가려고 한다. 이사는 한 삶의 종착이면서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소설의 이야기는 이사를 가기 일주일 전부터 짐을 정리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이다. 소녀와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가 교대로 나오면서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보여준다. 누구나 성장통을 겪으며 커간다...

읽고본느낌 2021.10.29

독고다이 기질

독고다이 : 스스로 결정하여 홀로 일을 처리하거나 그런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는 독고다이의 뜻이다. 일본말이지만 엄연히 우리말 사전에 실려 있다. '특공대(特攻隊)'의 일본 발음이 독고다이다. 조직적인 집단에 속하지 않으면서 홀로 임무를 수행하는 단독자가 독고다이다. 군대나 건달 세계를 떠나 범위를 넓히면 사회의 아웃사이더도 독고다이의 기질과 통한다고 하겠다. 어느 분의 글에서 독고다이를 재해석한 걸 보았다. 그분은 독고다이를 한자로 '獨固多異'라 옮겼다. '혼자만을 고집하면서 많은 이와는 다르다' 라는 뜻이다. 독고다이의 원뜻을 살린 재미있는 조어다. 아니면 독고를 '獨孤'라 써도 좋을 것 같다. 독고다이라는 어감에는 사회의 일반적인 관습이나 상식과 다르게 자기만의..

길위의단상 2021.10.28

인생은 고(孤), 고(苦), 고(Go)

아침에 잠에서 깨어 커튼을 열면 안개가 자욱하다. 새벽의 낮은 기온 탓으로 생기는 복사안개다. 창밖을 보고 있으면 나도 짙은 안갯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안갯속에서는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있던 동무도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갈지 모르고 헤매는 모습이 꼭 인생길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습관처럼 "곧 죽는다"를 나직히 읊조린다. 안갯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지는 나를 본다. 안 그래도 울적하던 기분이 더 우울해진다. 안개가 사라지자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한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일어난다. 시계는 8시를 너머를 가리키는 게 보통이다. 하루가 시작된다. 인생은 홀로 가는 길이다. 친구가 옆에 있어서 위안이 된다고 하지만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오래 살게 되면 어차피 친구도 다 떠나간..

참살이의꿈 2021.10.27

은고개 - 남한산 왕복

가을이 짙어간다. 울긋불긋 눈요기를 할 수 있는 지금이 등산하기에는 최적의 계절이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모든 산길이 아름답다. 발길은 가까운 남한산으로 향한다. 은고개가 출발 지점이다. 은고개는 경기도 하남과 광주의 경계에 있다. 왜 '은'고개라는 지명이 생겼는지 궁금하지만 유래가 확실치는 않다. 옛날에는 엄고개로 불렀다고 하는데, 고개 옆 마을이 엄미리인 걸 보면 수긍이 간다. 은고개에서 능선을 타고 남한산까지 올라가는 길은 초반 된비알만 지나면 수월하다. 산 중턱에서부터 노랗게 물들어가는 참나무들이 보인다. 정상부는 완연히 색깔이 다르다. 남한산까지 산길을 왕복해서 걸으며 가을 분위기를 물씬 느꼈다. 네 시간 가까이 걷는 동안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인적 끊긴 산길이었다. 살짝 무섭기도 했다..

사진속일상 2021.10.26

마르코복음[28]

일행이 뭍을 향해 호수를 건너서 겐네사렛에 이르러 닻을 내리고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 지방 일대를 두루 뛰어다니며 앓는 이들을 침상에 눕혀 가지고 그분이 계시다는 곳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촌락이든 고을이든 농가든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너른 터에 병자들을 데려가 놓고는 당신 옷단에 달린 술이라도 만지게 해 주십사고 간청했고, 만지는 사람마다 나았다. - 마르코 6,53-56 예수는 가파르나움과 겐네사렛 지역을 수 차례 왕복하며 활동하신 것 같다. 갈릴래아 호수를 중심으로 한 이곳이 예수 운동의 중심 지역이었다. 당연히 예수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퍼져 있었을 것이다. 일반 민중들에게 예수는 어떤 분으로 인식되어 있었을까. 이 대목을 보면 민중들은 병고에서 벗어..

삶의나침반 2021.10.25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하다 사람 좋다 그기 다 욕인기라 사람 알로 보고 하는 말인 기라 겉으로는 사람 좋다 착하다 하믄서 속으로는 저 축구(芻狗) 저 등신 그러는 거다 우리 강생이 등신이 뭔 줄 아나 제사 때 쓰고 버리는 짚강생이가 바로 등신인 기라 사람 축에도 못 끼고 귀신 축에도 못 끼는 니 할배가 그런 등신이었니라 천하제일로 착한 등신이었니라 세상에 두억시니가 천지삐까린데 지 혼자 착하믄 뭐하노 니는 그리 물러 터지면 안 되니라 사람 구실을 하려믄 자고로 모질고 독해야 하니라 길게 말할 게 뭐 있노 우리 강생이 그저 할배랑 반대로만 살면 되니라 하모 그라믄 되니라! - 혼자만 착하믄 뭐하노 / 박제영 착한 남편과 사느라 할매는 무지 고생을 했는가 보다. 손주를 앞에 두고 착하게만 살면 안 된다고 간절하게 당부한다. 정..

시읽는기쁨 2021.10.24

아쉬운 단풍 여행

올해 단풍은 낙제점이다. 비가 잦았던 탓인지 예년에 비해 영 시원찮다. 처제네와 강원도로 단풍 여행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다. 아직 철이 약간 이른 탓도 있지만 단풍이 든 나무도 색깔이 선명치 못하고 한편에서는 말라버린다. 먼저 설악산 십이선녀탕에 들렀다. 여기는 작년에 왔다가 출입 시간인 12시가 지났다고 입장을 시켜 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제를 안 한다. 자기들 멋대로 오락가락이다. 십이선녀탕 초입부는 초록 세상이고 한참을 올라가야 가끔 단풍을 만난다. 그마저도 차마 탄성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칙칙하다. 이 정도면 설악의 단풍이라 칭하기 어렵다. 남자 둘은 응봉폭포까지 걸었다. 두 여자가 뒤처졌기 때문에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제..

사진속일상 2021.10.23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모르는 영역' 등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 작가의 글을 읽으면 사람살이의 슬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의 단편들도 모두 그런 범주에 들어 있다. 작가는 아프지만 세상의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폭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들 대부분은 가련하고 쓸쓸한 존재들이다. 누구는 아빠 찬스로 50억을 받고 떵떵거리는데, 다른 누구는 노동 현장에서 아무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이 세상은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그런 점이 이 단편집의 제목에 '아직 멀었다'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된다. '손톱'이라는 소설에 '아직 멀었다'라는 말이 스쳐가듯 나온다. 소희는 엄마와 언니가 집을 나가고 가난하게 살아가는 처녀다. 손톱을 다쳐 빠지게 되었는데도 ..

읽고본느낌 2021.10.20

단풍 드는 소요산

소요산은 여러 차례 찾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주로 단풍 구경하러 자재암 정도까지 갔다 온 게 고작이었다. 이번에는 단풍과 무관하게 오로지 등산 목적으로 소요산을 찾았다.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逍遙山, 587m)은 이름이 매력적이다. 에 나오는 소요유(逍遙遊)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절대자유의 경지를 말한다. 이 산과 관련이 있는 원효대사, 서화담, 매월당 등과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소요산에 들면서 그분들의 체취 한 자락이라도 맡아볼 수 있을까. 자가용으로 집에서 소요산까지 오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주차장에서 등산 준비를 하고 진입로에 들어선다. 산길 초입에서 공주봉과 하백운대로 갈라지는데 나는 공주봉 방향으로 향한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고 한다. 능선에 올라가서야 제대..

사진속일상 2021.10.19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

종교에 빠지는 인간의 심리에 관심이 많다. 한 번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이성이 마비되고 너무나 쉽게 맹신의 늪에 떨어진다. 사악한 종교 지도자는 이런 인간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취한다. 유사 이래 종교의 탈을 쓴 이런 집단은 반복적으로 나타나서 인간의 마을을 파괴해 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현재진행형일지 모른다. '콜로니아: 사악한 믿음의 마을'은 최근에 넷플렉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1961년 칠레에 독일인들 수백 명이 이주해 와서 신앙 공동체(콜로니아 디그니다드)를 만든다. 우두머리는 파울 셰퍼로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 출신이다. 전후의 황폐한 시기에 기독교 리더로 등장해 활동하다가 소아 추행에 관련되어 추방 당하자 추종자를 이끌고 칠레에 정착한 것이다. 콜로니아 디그니다..

읽고본느낌 2021.10.18

마르코복음[27]

그리고 곧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 베싸이다로 가게 하시고, 그동안 당신은 군중을 헤쳐 보내셨다. 그들과 헤어진 뒤에는 기도하러 산으로 물러가셨다. 날이 저물어 배는 호수 복판에 있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셨다. 바람이 마주 불어와서 제자들이 노 젓느라고 몹시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께서 밤 사경에 호수 위를 걸어 그들에게로 가셨다. 그리고 곁을 지나쳐 가시려는데 제자들이 예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들 질겁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곧 말을 걸어 "힘내시오, 나요. 겁내지 마시오" 하셨다. 그리고 와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그쳤다. 제자들은 몹시 질려 넋을 잃었다. 그들은 마음이 무디어 빵 기적에 대해 아직 깨닫지 못하..

삶의나침반 2021.10.17

30%

당구 모임이 있는 날 저녁에는 편의점 야외 탁자에서 캔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술집보다 경제적이기도 하거니와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밀폐된 실내보다 안전해서 좋다. 출입구 옆이라 옹색하긴 하나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유럽의 야외 카페가 부럽지 않다. 그렇게 동기들끼리 만나면 옛날 학창 시절의 추억담이나 앞으로 살아갈 노년의 삶 따위에 대해 잡담을 나눈다. 건강 문제도 빠질 수 없다. 우리 나이 정도가 되면 등산 모임이 하나둘씩 없어진다. 등산 공고를 하면 전에는 북적댔는데 이제는 서넛밖에 나오지 않으니 산 대신 둘레길 같은 수월한 걷기로 대체된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어제는 한 친구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인구 통계로 볼 때 남자 80세가 되면 생존율이 30% 정도라는 것이다. 이미..

길위의단상 2021.10.16

손주와 고구마 캐기

텃밭에 심은 고구마를 캤다. 진작부터 고구마 캐기를 기다리고 있던 손주도 부리나케 달려왔다. 좁은 텃밭에 심은 고구마라야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고구마가 목적이 아니라 고구마순을 먹기 위해서였다. 대략 쉰 포기 정도를 심어 놓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작물에 비하면 홀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고구마 수확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씨알이 굵었다. 손주의 고구마 캐기 체험에 더해 얻은 망외의 재미였다. 고구마는 심어놓기만 했지 거의 제 스스로 자라준 것이다. 거름도 주지 않았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무시했는데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할 때 옆에 손주가 있으니 활기가 난다. 두 노인만이면 무슨 웃을거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손주의 작은 손짓, 말짓 하나에도 추임새를 넣어주고 감탄사를 연발한..

사진속일상 2021.10.15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준비물 설탕 소다 국자 불 뚜껑을 열면 연탄 냄새 콧구멍 수세미질을 한다 코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날름거리는 불꽃 위에 설탕 담은 국자를 갖다 대면 꿀이 된다 젓가락으로 소다를 찍어 녹은 설탕물을 저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뽑기가 된다 황홀하게 달콤하고 위험하게 고소하다 국자 색깔은 새카맣다 이제 얻어맞는 일만 남았다 -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오징어 게임' 때문에 다시 뽑기가 유행하는가 보다. 그것도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열풍이다. 드라마에서는 '달고나'라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종류가 엄청 많다. 대략 1만 원 정도 하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서 처음보다 두 배나 값이 올랐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취방이 바..

시읽는기쁨 2021.10.14

영장산 북능선을 타다

3년 전에 영장산을 찾았을 때 발이 아파서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려갈 때는 친구의 스틱을 빌려서 짚고 절뚝거리며 걸었다. 나는 다리나 무릎은 괜찮은데 발이 말썽을 부린다. 그때 이후로 등산을 접고 가벼운 뒷산 정도로 만족하며 지냈다. 오래 쉬고 무리를 하지 않았더니 지금은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집에서도 쿠션이 있는 실내화를 신으며 조심한 결과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다시 등산을 시도해 보고 있다. 길게 걸으면 발바닥에 신호가 오지만 무시하고 여러 산길 테스트를 해 보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등산과는 영영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내 발이 스스로 단련이 되면서 잘 버텨주길 바랄 뿐이다. 십여 일 정도 흐리고 비 내리는 날씨가 이어지다가, 오늘은 화창한 가을날이 열렸다. 이매 전철역을 기점으로 ..

사진속일상 2021.10.13

백세 일기

모임에 나가면 김형석 선생님이 자주 화제가 된다. 자기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자처하는 이도 있다. 선생님은 1920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올해 102살이다. 그런데도 한 해에 100회가 넘는 강연을 다니시고, 꾸준히 책도 내신다. 가 작년에 나왔으니 101살에 쓰신 책이다. 예로부터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했다. 아무리 장수시대라지만 아흔을 넘기는 일이 만만치 않다. 그중에서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물며 백세를 채우고도 여전히 정정하다니 부럽다 못해 질투가 생긴다. 평소에 몸 관리를 잘한다고 되는 일일까. 아무튼 대단한 복을 타고나신 분이다. 선생님은 쉼없는 공부와 일을 강조하신다. 삶의 활력을 주기 때문이다. 공부와 일을 놓치지 않는 사람에게 노년기는 없다. 65세..

읽고본느낌 2021.10.12

백마산 왕복

며칠 비가 내린 뒤라 산길은 폭신하다. 10월은 산길 걷기 좋은 때다. 살갗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의 감촉이 새롭다. 땀이 나도 금방 마르니 훨씬 덜 지친다. 또한 성가신 날벌레가 사라져서 좋다. 익어가는 숲의 향기도 달다. 흠흠,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걷는다. 곤지암으로 가는 이웃 차에 편승해 경안교 들머리에서 내려 산에 오른다. 전망 좋은 활공장이 곧 나타난다. 경기광주역 주변으로 새로운 주거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산 아래 공터에는 종합경기장이 세워진다. 백마산에 오르는 중간 지점에 있는 쉼터다. 정자가 새로 만들어졌다. 여름에는 이곳까지 오는 데도 헐떡였지만 오늘은 쉬지도 않고 가뿐하게 왔다. 가을이라는 계절 때문이다. 가을 산길에서 흔히 보는 누리장나무 열매다. 백마산은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길면..

사진속일상 2021.10.11

휴대폰 멀리하기

고향에 내려갔을 때 길을 걷다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놓쳐서 액정이 깨졌다. 바닥이 우둘투둘한 시멘트길이였는데 마침 액정면이 직접 부딪치면서 여러 군데 거미줄이 생겼다. 다행히 휴대폰은 정상으로 작동했다. 당장에는 실수를 한 것에 대해 기분이 언짢았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거였다. 화면 보기가 불편하니 휴대폰을 자주 들여다볼 일이 없을 터이고, 이참에 휴대폰과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액정 수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집에 있으면서도 수시로 핸드폰을 켜고 무슨 연락이 오지 않았나 확인한다. 그냥 습관적으로 손이 휴대폰으로 간다. 늙은 백수에게 특별하거나 긴급한 연락이 있을 리 만무하다. 대개 본 걸 또 보고, 할 게 없으면 뉴스라도 검색하며 만지..

참살이의꿈 2021.10.10

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호주 이주를 택한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의 6년의 과정이 한국과 호주 생활을 대비하며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 장강명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이렇게 항변하는 주인공 계나는 자신을 톰슨가젤에 비유한다. 톰슨가젤은 아프리카 초원 다큐멘터리에서 사자한테 늘 잡아먹히는 동물이다. 사자가 다가올 때 이상한 데서 뛰다가 잡히는 애가 있는데 자신이 꼭 그 꼴이었다는 것이다. 계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직해 직장인이 되지만 살벌한 경쟁 사회..

읽고본느낌 2021.10.09

운동장의 밤

저녁을 먹고 운동장으로 산책을 나갔다. 코로나 때문이리라, 밤 운동하러 나온 사람이 확연히 줄었다. 저녁 8시밖에 안 됐으니 다른 때 같았으면 꽤 북적였을 터였다. 전주에 내려온 날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장모님 모시고 함께 트랙을 돌았다. 이제는 걸음이 불편해서 나올 엄두를 못 내신다. 흐르는 세월은 야속하고 잔인하다. 누구나 예외가 없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내 두 발로 걸어가지 못할 때가 언젠가는 닥치리라.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슬프고 쓸쓸한 일이다. 혼자 걷는 걸음이 영 맥이 없다. 전주 경기장은 사용을 안 하는지 관리나 보수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겉에 페인트칠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너무 지저분하다. 새로운 종합경기장을 딴 곳에 짓고, 이곳은 다른 용도로 재개발할 계..

사진속일상 2021.10.08

마르코복음[26]

사도들이 예수께 돌아와 모여서 행하고 가르친 것을 모두 보고 드렸다. 그러자 예수께서 "따로 외딴곳에 가서 좀 쉬도록 하시오" 하고 이르셨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먹을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배를 타고 따로 외딴곳으로 물러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았고, 갈 곳을 알아챈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모든 고을에서 나와 잰걸음으로 함께 달려서 일행보다 먼저 그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는 배에서 내리며 많은 군중을 보고 측은히 여기셨다. 목자 없는 양떼 같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들을 여러 모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어느덧 저녁이 되자 제자들이 다가와 말씀드렸다. "이곳은 외딸고 이미 때가 지났으니 사람들을 헤쳐보내어 주변 농가와 마을에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도록 하시지요." 예수께..

삶의나침반 2021.10.06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넷플릭스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다. 요사이는 책 읽기가 힘들다. 습관적으로 책을 펴지만 활자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영상을 자주 본다. 그것도 보통 때와 달리 스릴러물을 찾게 된다. 요사이 내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The Devil All the Time]'의 배경은 1950년대 미국의 한 시골 마을이다. 참혹한 2차대전의 트라우마를 안고 귀향하는 청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을 분위기는 어둡고 황량하다. 주민들은 폭력과 광신에 노출되어 있다. 순박한 정신과 삶은 악마의 쉬운 먹잇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인간과 인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나라하게 노출한다. 악마는 다른 게 아니다. 타인을 내 욕망 충족의 도구로 여기는 자가 악마다..

읽고본느낌 2021.10.05

겨울 산 / 황지우

너도 견디고 있구나 어차피 우리도 이 세상에 세 들어 살고 있으므로 고통은 말하자면 월세 같은 것인데 사실은 이 세상에 기회주의자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지 사색이 많으니까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 - 겨울 산 / 황지우 이 세상에 세 들어 사는 우리가 월세로 내야 하는 게 고통이란다. 고통의 해석이 신선하다. 살면서 응당 지불해야 할 대가로 생각한다면 고통도 어느 정도 견뎌낼 수 있으리라. 더 나아가 성장과 발전의 디딤돌로 삼을 수도 있다. 시인은 겨울 산에 올라서 사람만 아니라 산 역시 견디며 산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만물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어떤 연유로 집에서 나왔든,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라고 마음먹은 걸 보니 삶을 대하는 태도가 너그러워졌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기회주의자'라는 단..

시읽는기쁨 2021.10.04

성지(31) - 배론

성지 46. 배론 제천시 봉양읍에 있는 배론 성지는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모인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이 마을 계곡이 배[舟] 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舟論]'이라고 부른다. 배론은 천주교 성지 중에서도 아름답고 잘 정돈된 성지다. 배론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 요셉 신학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가 있다. 배론 성지는 고향 가는 길에 있어 오래전부터 자주 찾았는데 근래는 뜸했다. 거의 10년 만에 찾아보는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최양업 토마스 기념 성당이 보인다. 잔디 정원 앞에 '인생 미로'가 있다. 동심원 모양을 따라 중심을 향해 걸으며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는 길이다. '은총의 성모 마리아 ..

사진속일상 2021.10.03

단양팔경휴게소 구절초

중앙고속도로 하행선에 있는 단양팔경휴게소에는 넓은 꽃밭이 있다. 무슨 꽃이 피어 있는지 휴게소에 들를 때면 꼭 찾아본다. 요사이는 관리를 잘 안 해서 어수선하지만 그래도 긴 시간 운전으로 인한 피로를 씻어주는 반가운 꽃밭이다. 이번에는 화단의 소나무 밑에 구절초가 활짝 피어 있다. 식재한 구절초는 산에서 만나는 야생 상태와는 다르지만 그래도 색다른 느낌으로 가을의 정취를 한껏 맛보게 해 준다. 순백의 귀티 나는 꽃은 소박한 코스모스와 대비되며 가을을 장식한다. 코로나로 바깥 나들이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때에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특별한 구절초다.

꽃들의향기 2021.10.02

늦은 추석 귀성

추석이 지나고 열흘 뒤에야 고향에 찾아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추석을 쇠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꼭 추석날이 아니라 각자 편리한 날짜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 같은 경우는 조상님 뵙기에 면목이 없기는 하다. 명절이 즐거운 것은 어릴 때 얘기다.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사정이 중첩되면 눈치 볼 일도 많아지고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여간 복잡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계신 노모 걱정이 제일 크다. 이래저래 고향 내려가는 마음이 무겁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성당 주변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고 아름다웠다. 경황없이 나오다 보니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휴대폰으로 찍었다. 용소막성당에서 10여 분만 더 내려가면 배론성지다. 고향 가..

사진속일상 2021.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