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825

화야산 얼레지

화야산은 수도권에서 얼레지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산이다. 큰골계곡을 따라 얼레지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이맘때가 되면 화야산은 얼레지를 찍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 산이지만 다시 찾는데 긴 시간이 걸렸다. 10년도 더 되었다. 이번에는 화야산장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얼레지 구경을 했다. 얼레지가 너무 많으니 사진 찍는 데는 도리어 혼란스러웠다. '얼레지'라고 이름을 알려줬더니 자꾸만 '엘레지'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게 익숙한 모양이었다. 너무 화려하게 되면 슬픔과도 통하니, 얼레지의 별명을 엘레지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얼레지의 날씬하고 고운 분홍색 자태는 봄의 여왕이라 할 만하다. 수줍은 듯 꽃잎을 오므린 얼레지가 있고, 꽃잎을 뒤로 젖힌 당돌한 얼레지도 있다. 같은 얼레지지..

꽃들의향기 2018.04.04

천마산 봄꽃

어느 때 찾아도 실망하지 않는 천마산의 봄이다. 이번에는 신현회원 세 명과 동행했다. 봄꽃을 보러 천마산을 찾은 건 7년 만이다. 남양주시 호평동에서 천마의 집을 지나 팔현계곡 상류까지 올라가는 코스가 꽃 산행길이다. 초입의 점현호색을 필두로 다양한 종류의 꽃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꽃 호사를 누렸다. 이번 산행에서는 노랑미치광이풀 꽃을 보여주겠다는 분을 만났다. 미치광이풀 꽃은 대부분이 자주색인데 노란색 꽃은 희귀종이라고 한다.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나는 포기했고, 일행 중 한 사람이 따라가서 결국 사진을 찍어 왔다. 결과물을 보니 번거로웠어도 따라가 볼 걸 싶었다. 이번 길에서는 약 20종 가까운 꽃을 만났다. 그중 일부를 사진으로 남겼다. 점현호색, 현호색, 큰괭이밥, 얼레지, 만주바람..

꽃들의향기 2018.04.03

호랑버들꽃

노란색 꽃이 온 나무에 달려 있어 처음에는 생강나무꽃인가 싶었다. 그런데 색깔이 훨씬 연했다. 알고 보니 호랑버들꽃이었다. 솔직히 호랑버들이라는 나무 이름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천마산을 오르던 중이었다. 호랑버들은 버드나무과에 속하니 당연히 물 가까이서 자랄 것 같은데 여기는 산 중턱 비탈진 곳이다. 수분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호랑버들은 호랑이를 찾으러 산으로 올라가는 버드나무인가 보다. 사연이야 어떻든 꽃은 무척이나 곱고 귀엽다. 연노란 작은 새가 나무 가득 앉아 있는 것도 같다. 호랑버들은 암수딴그루라는데 이 꽃은 수꽃으로 보인다. 노란 꽃가루로 단장한 호랑버들꽃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예쁘다.

꽃들의향기 2018.04.02

경안천변 봄꽃

맑고 미세먼지 걱정 없는 봄날이다. 오늘은 햇볕을 쬐기 위해 밖에 나선다. 겨울잠 자듯 주로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응달의 삶이 되었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모자는 벗는다. 피부 세포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마음도 환해진다. 경안천을 따라 세 시간 반 걷다. 오랜만에 타박타박 걷는 재미가 새롭다. 틈틈이 천변에 핀 봄꽃을 구경하다. 버들강아지, 개불알풀, 냉이, 꽃다지, 개나리, 산수유.....

꽃들의향기 2018.03.30

사시사철 제라늄

제라늄은 대단하다. 사시사철 꽃을 피운다. 오죽하면 화무십일홍인가. 꽃을 피워내고 지키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닐 텐데 한시도 쉼이 없다. 볼 때마다 감탄이다. 특별한 정성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그냥 베란다에 방치 상태다. 심할 때는 한 달에 한 번 물 줄 때도 있다. 그런데도 끈질기게 봉오리를 맺는다. 어떤 때는 지나치다 싶다. 6년 전에 산 제라늄 줄기는 이제 분재처럼 굵어졌다. 유럽에 가면 집 창문마다 예쁜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라늄이 아니었던가 싶다. 제라늄은 큰 정성 없이도 제가 알아서 일년 내내 다양한 색깔의 꽃을 보여준다. 지난 추웠던 겨울을 그냥 베란다에서 버티더니 봄이 되니 꽃색이 화사해졌다. 새 봉오리도 여럿 생겼다. 잘 돌봐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있지만 그것도 인..

꽃들의향기 2018.03.26

겨울 갈대

누가 갈대를 연약하다 했는가.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강변에서 몸 굽히지 않고 제 형태 온전히 지켜내는 것은 갈대밖에 없다. 봄에 올 새싹들에게 자리 물려줄 때까지 굳건히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 갈대다. 한 생을 마감했지만 그 생을 견뎌낸 의지만은 청청히 살아 있다. 갈대는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더 강해진다. 글 한 편을 읽는다. 겨울 갈대밭에서 / 손광성 슬퍼하지 말자. 날카롭던 서슬 다 갈리고, 퍼렇던 젊은 핏줄 모두 잘리고, 눈, 코, 입, 귀, 감각이란 감각들 다 닫혀 버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남루를 걸친 채 섰을지라도, 슬퍼하지 말자. 찬물에 발목이 저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들, 그들이 칭얼거리다 간 빈자리에, 아무것도 줄..

꽃들의향기 2018.01.29

울릉도 해국

울릉도는 작은 섬이지만 식물 생태는 다양하다. 750여 종의 식물이 살고 있고, 지구상에서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도 32종이나 된다. 짧은 울릉도 여행에서 식물까지 살필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스쳐 지났던 길이지만 나리분지 주변의 천연 원시림의 규모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11월 초의 울릉도에서 제일 많이 본 꽃이 해국이었다. 바닷가 바위 절벽에, 심지어는 마을의 돌 축대 틈에서도 해국이 자라고 있었다. 특히 화산암 검은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는 해국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울릉도 해국은 육지 해국에 비해 분포 밀도가 높고 꽃도 컸다. 울릉도 가을 풍경의 주인공은 해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울릉도 북면에는 바다와 함께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다고 한다. 다시 울릉도에..

꽃들의향기 2017.11.05

울릉국화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이다. 옛날에는 울릉도에서 가을이면 흔하게 피어났다는데 지금은 나리분지의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이면서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울릉국화는 구절초와 똑 같이 생겼다. 울릉국화라 부르기 보다는 울릉구절초라고 해야 맞겠다. 구절초와 다른 점은 잎이 윤기를 띠고 있다는 데 그것도 전문가가 아니면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할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울릉국화를 육지에서 기르면 잎의 윤기가 없어진다고 한다. 꽃은 9, 10월에 피는데, 이미 시들어가는 울릉국화를 나리분지에서 보았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쳐 놓고 보호하고 있었다. 없어지는 데는 순식간이지만, 다시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 같다. 사람 곁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

꽃들의향기 2017.11.04

양재천 백일홍

시골 초가집 장독대에 몇 송이 피어 있으면 잘 어울리는 수수한 꽃이 백일홍이다. 그렇듯 백일홍을 보면 유년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 강남 지역을 지나며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양재천에 백일홍 꽃밭이 있다. 산책로를 따라 길게 만들어 놓았다. 이 꽃을 보며 누구나 어린 시절의 추억 한 자락쯤 떠올릴 것이다. 떠나면서도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는 백일홍이다.

꽃들의향기 2017.10.13

맥문동(2)

맥문동(麥門冬)은 한자 이름에서 특징을 볼 수 있다. 겨울에도 살아 있는 초록 잎은 보리와 닮았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고 다른 식물이 기피하는 소나무 밑도 상관없다.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래선지 강장작용을 비롯한 여러 효능의 한약재로도 이용된다. 밀집해서 핀 맥문동 군락은 아름답다. 보라색이 참 곱다는 걸 맥문동 꽃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꽃들의향기 2017.09.20

진득찰

가을에 들길을 걸을 때면 바지에 까만 씨앗이 붙곤 한다. 떼어내자면 무척 성가시다. 진득찰의 꽃이 지고 맺히는 길쭉한 열매다. 진득찰 나름의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하면 참아줄 수도 있겠다. 얼마나 진득진득하게 달라붙으면 진득찰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진드기와 찰거머리의 합성어 같다. 진득찰은 한약의 재료로도 쓴다. 특히 중풍에 좋다고 한다. 진득찰의 노란 꽃은 여름의 막바지에 피어난다.

꽃들의향기 2017.09.03

남한산성 큰꿩의비름

만개 시기에는 조금 이르다. 작년과 다른 점은 성벽에 풀이 많이 자라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큰꿩의비름을 보호하기 위해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고 좋게 해석해 본다. 다른 곳은 말끔한데 큰꿩의비름이 자라는 곳만 풀이 무성하기 때문이다. 큰꿩의비름 개체 수도 늘었다. 작품사진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꽃 주변이 지저분해서 좋은 앵글을 잡을 수 없는 게 아쉬울지 모른다. 남한산성에 큰꿩의비름이 피면 가을이 왔다는 신호다. 기다리는 꽃이 있고, 해가 바뀌어도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간 행복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꽃만큼 반겨줄 것 같지는 않다.

꽃들의향기 2017.09.02

7년차 풍란

이곳에 이사 와서 샀으니 우리와 함께 한 지 7년째가 된다. 한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여름이면 이렇게 멋진 꽃을 보여준다. 가끔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는 것 외에는 한 게 없는데, 야생 환경이 아닌 아파트 베란다에서 살아내는 모습이 장하다. 뭇 생명은 어떤 조건에서도 제 몫을 살아낸다. 살펴주지 않는다고 투덜대거나 떼를 쓰지 않는다. 알아봐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도 않는다. 작은 풀 한 포기 앞에서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꽃들의향기 2017.07.31

성호저수지 연꽃

이천 성호저수지 한쪽에 아담한 연꽃밭이 있다. 세미원이나 관곡지와 비교하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다. 이곳은 연꽃보다 개개비를 찍으러 오는 사진가들이 많이 찾는다. 개개비는 몸집이 작은 여름 철새다. 그러나 재재거리며 짝을 찾는 소리는 들판을 울린다. 내가 갔을 때도 연꽃밭에 개개비 노랫소리가 요란했다. 그러나 개개비를 두 눈으로 확인하지는 못했다. 한낮이라 햇볕이 너무 따가워 연꽃밭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이 예쁘게 가꾸려는 정성이 느껴지는 연꽃밭이었다.

꽃들의향기 2017.07.16

까치수영(2)

아직도 이름에 고개가 갸웃해지는 꽃이다. 까치수염이라고도 하는데 어디에서 까치나 수염과 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여름 산길이 힘들어질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활력을 주는 꽃이 까치수영이다. 같은 꽃대에서 순백의 꽃이 시차를 두고 사이좋게 피어난다. 꼬리 끝은 아직 꽃봉오리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반대쪽은 만개했다. 아주 느린 파도타기를 보는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17.07.09

털중나리

나리의 계절이 찾아왔다. 꽃이 하늘을 보는 놈도 있고, 땅을 보는 놈도 있다. 중나리는 아마 중간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붙은 이름이겠다. 중나리와 털중나리의 차이는 말 그대로 솜털의 유무다. 여름의 초입에 꽃을 피우면 대개 털중나리가 맞다. 이 시기 산길을 걷다 보면 털중나리를 가끔 만난다. 한 개체씩 고독하게 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초록 세상에서 붉은색 나리는 단연 눈에 띈다. 작은 환성에 산행의 피로가 가신다. 여름 산의 고마운 꽃이다.

꽃들의향기 2017.06.29

물의정원 꽃양귀비

6월은 꽃양귀비의 계절이다. 꽃양귀비는 한 송이보다도 이렇게 군락으로 피어 있으면 더 아름답다. 꽃양귀비는 중국에서 우미인초(虞美人草)로 불린다. 우미인은 항우와 마지막을 함께 한 여인이다. 양귀비나 우미인 모두 절세의 미를 뽐냈지만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남양주시 북한강변에 물의정원 공원이 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초여름에는 꽃양귀비 꽃밭이 사람들을 유혹한다. 강과 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멋있다. 눈호사를 하고 싶을 때 찾아가 볼 만하다.

꽃들의향기 2017.06.16

절물휴양림 새우난초

제주도 절물자연휴양림 안에 새우난초 꽃밭이 있다. 귀한 새우난초만으로 꽃밭을 꾸민 것은 처음 보았다. 새우난초는 제주도와 서해안에서 주로 자란다. 절물휴양림의 새우난초는 색깔로 보아 금새우난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 난초 종류는 워낙 변이가 많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린 절물휴양림에서 새우난초로 눈 호사를 했다.

꽃들의향기 2017.05.25

메꽃

이때껏 메꽃 사진을 올리지 못했다. 너무 흔해서 소홀히 여겼나 보다. 야생화라는 이름에 잘 어울리는 꽃이 메꽃이다. 수수하면서 내팽겨쳐둬도 어디서나 저 혼자 잘 자란다. 고이 가꿔야 하는 화초와는 다르다. 꽃을 봐도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메꽃, 갯메꽃, 나팔꽃은 잎 모양으로 쉽게 구별된다. 그중에서 메꽃은 잎이 삼각형 모양으로 길쭉하다. 다른 풀과 섞여서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그만큼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좋다. 메꽃에서는 문명 이전의 소박한 삶의 원형이 느껴진다. 오늘 경안천을 걸으며 만난 메꽃이다.

꽃들의향기 2017.05.23

서양금혼초

처음 봤을 때는 민들레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잎이 달랐다. 확인해 보니 서양금혼초라는 외래식물이었다. 근래에 제주도에서 번성하기 시작하는 풀이다. 서양금혼초가 제주도의 초원 풍경을 변화시키고 있다. 보기에는 괜찮지만 토종식물을 잠식해 들어가서 문제라고 한다. 서양금혼초가 무리 지어 피어 있으면 유채꽃밭을 보는 것 같다. 번식력이 좋으니 가만두면 제주도의 들판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일부의 우려가 이해되지만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조정 작용은 자연 생태계에 맡겨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도의 5월은 서양금혼초로 인해 더욱 환했다.

꽃들의향기 2017.05.21

귤꽃

"서울에 있다가 제주도에 오니 살 것 같다. 마을에 들어서니 꽃향기가 제일 먼저 반기더라." 제주도에 살고 있는 지인이 전화로 한 말이다. 집안 행사로 서울에 왔다가 공기가 탁하다며 일찍 내려갔다. 지인의 집은 귤 과수원에 둘러싸여 있다. 요사이는 매일 달콤한 향기 속에서 산다고 전했다. 귤을 먹기만 했지 귤꽃은 이번에 제주도에 내려가서 처음 봤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 있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꽃은 늘 신기하고 예쁘다. 귤꽃이 순백의 색깔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른 과일꽃처럼 요염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고, 담백하면서 기품이 있다. 거기에 은은하면서 달콤한 향기가 더해진다. 귤꽃 향기에 취하는 제주도의 5월이다.

꽃들의향기 2017.05.20

축령산의 봄꽃

얼레지를 보려고 축령산에 갔지만 때를 놓쳤다. 얼레지 꽃밭은 예전과 마찬가지였지만 대부분은 이미 시들었다. 몇 송이 남은 놈과 눈인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대신 다른 꽃들은 많이 만났다. 봄의 가운데서 오랜만에 꽃 호사를 즐긴 날이었다. 얼레지 피나물 댓잎현호색 점현호색 산괴불주머니 털제비꽃 졸방제비꽃 고깔제비꽃 족두리풀 노랑제비꽃

꽃들의향기 2017.04.25

영릉 진달래(2)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변명이 올해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별로 한 일도 없으면서 꽃구경 하려 바깥 나들이 한 번 제대로 못했다. 꽃이 가장 한창일 때 감기로 한 열흘 꼼짝 못 한 게 컸다. 그래도 진달래는 봐야지, 하고 가까운 영릉으로 나갔다. 4월 하순에 들었으니 진달래는 이미 색깔이 바래지고 있었다. 무엇이건 절정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면 힘이 떨어지는 법이다. 꽃이 내뿜는 기운도 마찬가지다. 이즈음의 진달래에서는 생명의 약동을 느끼지 못한다. 어린 시절에 동네 뒷산을 뛰어다니며 진달래를 따먹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힘겹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산길을 걸으며 지리한 인생을 한탄할 때, 진달래 역시 꽃잎을 떨어뜨릴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꽃들의향기 2017.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