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824

장자[113]

열자께서 여행을 하다가 길에서 밥을 먹었다. 우연히 백 살의 해골을 발견하고 쑥대를 뽑아 가리키며 말했다. "오직 너와 나만이 삶도 죽음도 없다는 것을 아는구나! 해골은 과연 근심할까? 나는 과연 즐거운 것인가?" 列子行 食於道 從見百歲촉루益 건逢而指之曰 唯予與我知 而未嘗死未嘗生 若果養乎 予果歡乎 - 知樂 6 어제가 부활절이었다. 부활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것은 곧 악에 대한 선의 승리, 절망에 대한 희망의 승리다. 죄에서의 완전한 해방이다. 기독교는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신의 심판과 섭리의 완성을 지향한다. 그러나 장자에게 있어 죽음은 이기고지고 할 것이 없다. 삶과 죽음은 자연의 순환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해가 뜨거나 해가 지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변화다. 자연의..

삶의나침반 2010.04.05

장자[112]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교사(郊祀)에 날아들었다. 노나라 제후는 그 새를 맞아들여 묘당에서 잔치를 베풀고 술을 올렸으며 순임금의 음악인 구소를 연주하여 즐겁게 했고 소, 염소, 돼지로 반찬을 만들어주었다. 새는 드디어 눈이 어질어질하고 근심과 슬픔에 젖어 고기 한 조각도 먹지 않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사흘 만에 죽어버렸다.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 而觴之于廟 秦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련 不敢食一杯 三日而死 - 至樂 5 새를 사랑하는 방법은 인간을 사랑하는 방법과 다르다. 그런데 노나라 제후는 새를 사랑한다면서 자신의 방법으로 사랑했다. 새에게 술을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고, 고기를 먹게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 새도 좋아하는 줄로 알았다. 어리석은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무..

삶의나침반 2010.03.31

장자[111]

해골이 말했다. "주검에게는 위로는 군주가 없고 아래로는 신하가 없으며 사시사철의 수고로운 일도 없이 천지를 따라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비록 왕의 즐거움도 이보다 더할 수는 없을 것이오." 장자는 믿지 못했다. 그래서 말했다. "내가 염라대왕에게 부탁하여 그대의 몸을 부활시키도록 하여 그대의 골육과 피부를 만들고 보모처자와 마을의 친구들에게 돌려보내 준다면 그대는 그렇게 하겠소?" 해골은 심히 불쾌한 듯 콧대를 찡그리며 말했다. "내 어찌 왕보다 더한 즐거움을 버리고 인간의 수고로움을 반복하겠소?" 촉루曰 死無君於上 無臣於下 亦無四時之事 從然以天地爲春秋 雖南面王 樂不能過也 莊子不信 曰 吾使司命 復生子形 爲子骨肉肌膚 反子父母妻子 閭里知識 子欲之乎 촉루深빈축알 曰 吾安能棄南面王樂 而復爲人間之勞乎 - 至樂 4..

삶의나침반 2010.03.24

장자[110]

지리숙과 골개숙은 둘이서 명백의 언덕과 곤륜의 빈 터를 관람했다. 이곳은 황제가 머물던 곳이다. 갑자기 골개숙의 왼쪽 팔꿈치에 버드나무가 생겼다. 그의 마음은 놀라 싫어하는 눈치였다. 지리숙이 말했다. "자네는 그것이 언짢은가?" 골개숙이 말했다. "아니네. 내 어찌 싫어하겠나? 생명은 임시로 빌린 것이야. 또 빌린 몸을 다시 빌려 생겨난 것은 티끌이야. 삶과 죽음은 낮과 밤이고 나와 그대는 그 조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야. 그리고 그 조화가 나에게 미친 것인데 내 어찌 싫어한단 말인가?" 支離叔與滑介叔 觀於冥伯之丘 崑崙之虛 黃帝之所休 俄而柳生其左주 其意蹶蹶然惡之 支離叔曰 子惡之乎 滑介叔曰 亡予何惡 生者假借也 假之而生生者塵垢也 死生爲晝夜 且吾與子觀化 而化及我 我又何惡焉 - 至樂 3 장자에서는 자연의 변화..

삶의나침반 2010.03.12

장자[109]

장자의 부인이 죽어 혜자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莊子妻死 惠施弔之 莊子則方箕踞 鼓盆而歌 - 至樂 2 장자만큼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평판에는 일고의 가치도 두지 않는다. 그런 것이 때로는 괴팍하게 보인다. 이 예화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죽었는데 도리어 항아리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혜자가 보기에 기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곡을 안 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혜자는 힐난한다. 장자는 처음에는 자신도 슬펐다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아내의 시원을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란 없었소. 생명뿐 아니라 형체도 없었고, 형체만이 아니라 기도 없었소. 무엇인가 혼돈 속에 섞여..

삶의나침반 2010.03.07

장자[108]

오늘날 세속에서 행하는 쾌락에 대해 나는 그것이 과연 즐거움인지 또는 아닌지 알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세속의 쾌락은 군중의 손짓을 따라 죽도록 달리며 그칠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면서 모두들 즐거움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이 즐거움인지 또는 즐거움이 아닌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과연 즐거움은 없는 것인가? 나는 무위만이 진실로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今俗之所爲 與其所樂 吾又未知樂之果樂邪 果不樂邪 吾觀 夫俗之所樂 擧群趣者 경경然如將不得已 而皆曰樂者 吾未知樂也 亦未知不樂也 果有樂無有哉 吾以無爲誠樂矣 - 至樂 1 장자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즐거움이 과연 참된 즐거움인지 회의한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부귀, 장수, 명예이고, 쾌락이라 여기는 것들은 안락함, 좋은 음식, 예쁜 여자, 황홀한 음악 ..

삶의나침반 2010.02.26

장자[107]

장자와 혜자가 냇물의 징검다리 위에서 놀았다.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한가롭게 헤엄치는 걸 보니 물고기가 즐거운 모양이오." 혜자가 말했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닌데 어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안단 말이오?" 장자가 말했다. "그대는 내가 아닌데 어찌 내 마음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가?" 혜자가 말했다. "그렇소. 나는 당신이 아니니까 당신을 모르오. 마찬가지로 당신은 물고기가 아니니까 정말 당신은 물고기의 즐거움을 모른다고 해야 논리상 옳지 않겠소?" 장자가 말했다. "질문의 처음으로 돌아갑시다. 그대가 처음 나에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말한 것은 이미 그대는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서 나에게 반문한 것이오. 내가 물 위에서 지각한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즐겁다는 것이었소." 莊子與惠子 遊於..

삶의나침반 2010.02.18

장자[106]

남방에 원추라는 봉황새가 있소. 그대도 잘 알 것이오. 그 원추는 남해에서 북해까지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단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오. 이때 마침 올빼미가 썩은 쥐를 얻었는데 원추가 그 곁을 지나갔소. 올빼미는 원추를 올려다보고 썩은 쥐를 빼앗길까 놀라 "꽥! 꽥!" 소리쳤소. 지금 그대는 그대의 재상 자리 욕심에 나를 보고 "꽥! 꽥!"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南方有鳥 其名爲원추 子知之乎 夫원추發於南海 而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不食 非醴泉不飮 於是치得腐鼠 원추過之 仰而視之曰 혁 今子欲以子之梁國 而혁我邪 - 秋水 12 혜자(惠子)가 양나라 재상으로 있을 때 장자가 찾아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장자가 찾아온 것은 재상 자리를 빼앗기 위해서라고 혜자..

삶의나침반 2010.02.07

장자[105]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는데 초나라 위왕이 대부 두 사람을 먼저 보내 전했다. "삼가 우리나라에 모시기를 원합니다."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가 듣건대 그대 초나라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 지난 신령스런 거북이 있는데 왕께서 수건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 위에 모셔두었다더군요. 생각건대 이 거북이는 죽어 해골을 남겨 귀하게 되기보다는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끌고 다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대부가 말했다.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 꼬리를 끄는 것이 낫겠지요." 장자가 말했다. "돌아가시오! 나는 장차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거북이가 되려 하오." 莊子釣於복水 楚王使大夫二人往先焉 曰 願以竟內累矣 莊子持竿不顧 曰 吾聞 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筐 而藏之廟堂之上..

삶의나침반 2010.02.02

장자[104]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연나라 수릉의 소년이 걸음걸이를 배우러 조나라의 서울 한단에 갔는데 한단의 걸음걸이를 배우기도 전에 옛 걸음걸이를 잊어버려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는 것을! 且子獨不聞 壽陵餘子之 學行於한鄲與 未得國能 又失其故行矣 直匍匐而歸耳 - 秋水 10 여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닮고 싶은 당니귀가 있었다. 살펴보니 여치는 항상 아침 이슬만 먹으며 사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당나귀는 이슬에서 맑은 소리가 나오는 줄 알고 자신도 이슬을 먹으며 여치를 닮고자 했다. 결국 당나귀는 뼈만 앙상해지다가 결국은 죽고 말았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장자의 세계는온갖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장이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며 작은 대로, 잘났으면 잘난 대로, 못났으면 못난 대로, 여치는 여치대로, 당나귀는..

삶의나침반 2010.01.27

장자[103]

그대는 우물 안 개구리 얘기를 듣지 못했단 말인가? 그 개구리는 동해의 자라에게 이렇게 말했다는군! "나는 즐겁다네! 한번 뛰어올랐다 하면 우물 난간에 오르기도 하고 우물 벽돌이 빠진 구멍에 들어가 쉬기도 하며 물에 뛰어들면 겨드랑이를 붙이고 턱을 들 수도 있다네. 진흙에 엎어지면 발이 빠지고 발등이 묻히기도 하지만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를 둘러보아도 내 능력을 따라올 자 없지. 또한 한 구덩이의 물을 제 맘대로 하고 우물의 쾌락을 독차지한다네. 그대는 어찌 때때로 와서 관람하지 않는가?" 이에 동해의 자라는 우물에 왼발을 밀어 넣기도 전에 오른쪽 무릎이 끼어버렸다. 이에 뒷걸음쳐 물러나와 개구리에게 바다 이야기를 해 주었다. 子獨不聞 夫坎井之蛙乎 謂東海之오 曰 吾樂與 出跳梁乎井幹之上 入休乎缺추持崖 赴水..

삶의나침반 2010.01.17

장자[102]

교룡을 꺼리지 않고 물길을 가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며, 맹수를 꺼리지 않고 산길을 가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이며, 흰 칼날이 번뜩이는 앞에서 죽음을 삶처럼 보는 것은 열사의 용기이며, 곤궁함은 운명임을 알고 형통함은 시세임을 알아 큰 난관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다. 유(由)는 안심하라! 내 운명은 하늘이 결정할 것이다. 夫水行 不避蛟龍者 漁父之勇也 陸行 不避시虎者 獵夫之勇也 白刃交於前 視死若生者 烈士之勇也 知窮之有命 知通之有時 臨大難而不懼者 聖人之勇也 由處矣 吾命有所制矣 - 秋水 8 요사이 라는 무척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거기에 동양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공자는 한 페이지 정도, 노자는 반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는데 장자는 딱 한 줄이다. 노자를 신비주의자라고 설명하고 나서는 장자를..

삶의나침반 2010.01.07

장자[101]

외발 짐승인 기는 발이 많은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뱀을 부러워하고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고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다. 기가 노래기에게 말했다. "나는 외발이라 깡충깡충 걸어야 한다. 나는 너만 못하다. 너는 수많은 발을 부리는데 나만 이게 무슨 꼴인가?" 기燐현 현燐蛇 蛇燐風 風燐目 目燐心 기謂현曰 吾以一足 참초而行 예无如矣 今子之使萬足 獨奈何 - 秋水 7 상대와 비교하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것 때문에 마음앓이를 하는 것은 인간 공통의 병인 것 같다. 열등의식은 시기와 질투로 이어지는데 그 배경에는 끝없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서도 발 가진 것은 발이 많은 것을 부러워하고, 발이 많은 것은 발이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발이 없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을 부러워한다. 하늘은지렁..

삶의나침반 2010.01.02

장자[100]

우마는 각각 네 발을 가졌다. 이것은 자연이다. 말에 굴레를 씌우고 소에 꼬뚜레를 뚫는 것은 인위다. 옛말에 이르기를 인위로 자연을 죽이지 말고 기술로 천품을 죽이지 말며 덕으로 명예를 좇지 말라고 했다. 삼가 자연을 잘 지켜 잃지 않으면 이를 참된 나로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牛馬四足 是謂天 落馬首穿牛鼻 是謂人 故曰 無以人滅天 無以故滅命 無以得殉名 謹守而勿失 是謂反其眞 - 秋水 6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다. 말과 소는 네 발을 가졌고 들판을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이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존재의 본성이 제한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연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보인다. 카오스의 영역이다. 생물들은 각자의 본성대로 경쟁하고 싸우지만의도된 작위나 욕심이 없다. 어느 생물도 생존에 필요한 영역 ..

삶의나침반 2009.12.29

장자[99]

지난 세월은 잡을 수 없고, 시간은 그치지 않는다. 소멸되면 살아나고 차면 비우고 끝나면 시작이 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대의의 방도를 말하고 만물의 이치를 논하는 것이다. 만물의 삶이란 달리는 말이 문틈으로 지나는 것과 같다. 움직여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고 때에 따라 옮기지 않는 것이 없으니 무엇을 다스리고 무엇을 다스리지 않을 것인가? 본래 사물은 스스로 조화할 뿐이다. 年不可擧 時不可止 消息盈虛 終則有始 是所以語大義之方 論萬物之理也 物之生也 若驟若馳 無動而不變 無時而不移 何爲乎 何不爲乎 夫固將自化 - 秋水 5 장자를 읽다 보면 장자의 세계는 거대한 용광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광로 속에서는 돌맹이든 쇠붙이든 다 하나로 녹아버린다.장자도 마찬가지다. 그곳은 영(榮)과 욕(辱), 성(聖)과 속(俗),..

삶의나침반 2009.12.25

장자[98]

도의 입장에서 보면 사물에는 귀천이 없다. 물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는귀하고 상대는 천하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귀천은 능력 차이 때문이 아니다. 차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조금 크니까 큰 것이라면 만물은 크지 않은 것이 없고 조금 작으니까 작은 것이라면 만물은 작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하늘과 땅을 쌀 한 톨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알고 터럭 한 올을 큰 산이라 할 수도 있음을 안다면 차별의 이치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以差觀之 因其所大 而大之 則萬物莫不大 因其所小 而小之 則萬物莫不小 知天地之爲제米也 知毫末之爲丘山也 則差數覩矣 - 秋水 4 우리 인식의 상대성에 대한 변주가 계속 울리고 있다. 유무(有無), 시비(是非), 대소(大小), 고저(高低..

삶의나침반 2009.12.18

장자[97]

그러므로 대인의 행동은 드러나지 않지만 남을 해치지도 않고 인의와 은혜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행동은 이익을 앞세우지 않으나 이익을 찾는 노예를 천시하지도 않는다. 재화를 다투지 않지만 사양한 것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손수 일을 하며 남의 노동을 빌리지도 않지만 노동으로 먹고사는 것을 찬양하지도 않으며 탐하고 땀 흘리는 것을 천시하지도 않는다. 행동이 세속과는 다르지만 괴이한 것을 찬양하지도 않는다. 다스림은 민중을 따르는 데 달려 있으니 영합하고 아첨하는 자를 천시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작록도 그를 권면할수 없고 죽음과 부끄러움도 그를 욕되게 할 수 없으니 그것은 시비를 분별할 수 없고 대소는 나눌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是故大人之行 不出乎害人 不多仁恩 動不爲利 不賤門隸 貨財不爭 不多辭讓 事焉不借人 ..

삶의나침반 2009.12.10

장자[96]

헤아려보면 사람이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만 못하고 살아 있는 시간은 살아 있지 못한 시간보다 못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으로 지극히 큰 영역을 궁구하려 하므로 혼미하고 어지러워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여러 가지로 비추어본다면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털끝이 반드시 지극히 미세한 것의 끝이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겠는가? 천지가 반드시 지극히 큰 것의 궁극적인 경지라고. 計人之所知 不若其所不知 其生之時 不若未生之時 以其至小 求窮其至大之域 是故迷亂 而不能自得也 由此觀之 又何以知 毫末之足以定至細之倪 又何以知 天地之足以窮至大之域 - 秋水 2 하백(河伯)과 북해약(北海若)의 긴 대화 중 일부분이다. 둘의 대화에서는장자 철학의 주요한 논점이 말하여지고 있다. 그 철학적 내용에 대하여는 내가 설명할 ..

삶의나침반 2009.11.29

장자[95]

우물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장소에 구애되기 때문이요, 매미에게 얼음을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때에 굳어 있기 때문이요, 편벽된 선비에게 도를 말해도 알지 못하는 것은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가 강 언덕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부끄러움을 알았으니 그대와는 더불어 큰 이치를 말할 수 있겠구나! 井蛙不可以語於海者 拘於虛也 夏蟲不可以語於氷者 篤於時也 曲士不可以語於道者 束於敎也 今爾於出於崖矣 觀於大海 乃知爾醜 爾將可與魚大理矣 - 秋水 1 강의 신인 하백(河伯)이 바다를 보고 나서 하는 탄식이 앞 부분에 나온다. "옛말에 백 가지 도를 들어도 내 것만 못하다고 생각한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었구나!" 하백은 넓은 바다를 보고 나서야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깨닫고 부끄..

삶의나침반 2009.11.22

장자[94]

도는 본래 작은 행함이 아니고 덕은 결코 작은 앎이 아니다. 도리어 작은 지식은 덕을 손상하고 작은 행함은 도를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몸을 바르게 할 뿐이라고 했고 즐거움을 온전히 하는 것이 뜻을 얻었다고 말한 것이다. 道固不小行 德固不小識 小識傷德 小行喪道 故曰 正己而已矣 樂全之謂得志 - 繕性 2 장자가 말하는 '작은 앎'[小識]이란 무엇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식을 말한다. 그 목적이 아무리 고상하더라도 무엇을 위한다거나 무엇을 이루려는 의지가 들어 있는 지식은 유위(有爲)일 뿐이다. 도리어 덕을 손상시키기만 한다. '작은 앎'의 결과인 '작은 행함'[小行]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이고 의도된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선행이나 또는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이 있을지라도 도(道)를 손상시킨다. 오른손..

삶의나침반 2009.11.17

장자[93]

옛사람은 (차별이 생기기 이전의) 혼동 중에 있었으므로 세상과 더불어 하면서도 맑고 고요한 본성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시절은 옴앙이 조화롭고 고요하여 귀신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고 사시는 절도가 있어 만물은 손상되지 않고 뭇 생명이 수명을 다했으며 사람은 비록 지혜가 있어도 그것을 사용할 곳이 없었다. 이것을 일러 지극한 하나 됨(절대평등)이라고 말한다. 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물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無所用之 此之謂至一 - 繕性 1 장자가 말하는 옛날이란 인간이 자연과 분리되기 전의 하나였던 상태를 말한다. 세상을 대상으로 보는 분별심이나 인간적 지식, 지혜도 없었다. 성서에서 그리고 있는 에덴동산과 비슷하다.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서 추방되었다는 ..

삶의나침반 2009.11.06

장자[92]

순수하고 소박한 도란 오직 신령스러움을 지키는 것이니, 지켜서 잃지 않으면 신과 하나가 되며 그 하나가 정미 신통하니 천륜과 부합하는 것이다. 시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속된 사람은 이익을 중히 여기고 깨끗한 선비는 명예를 중히 여기며 어진 사람은 뜻을 숭상하고 성인은 정신을 귀하게 여긴다. 그러므로 소박하다는 것은 어울려도 잡스럽지 않은 것을 말하고 순수하다는 것은 정신이 이지러지지 않는 것을 말한다. 능히 순수하고 소박함을 체현한 자를 진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純素之道 惟神是守 守而勿失 與神爲一 一之精通 合於天倫 野語有之 曰 衆人重利 廉士重名 賢人尙志 聖人貴精 故素也者 謂其無所與雜也 純也者 謂其不?其神也 能體純素 謂之眞人 - 刻意 2 여기에서 장자는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순수하고 소박한 도'[純..

삶의나침반 2009.11.02

장자[91]

그러나 준엄한 뜻이 아니라도 고상하고 치세를 위한 인의가 없이도 수기(修己)하고 조정에 공명을 세우지 않더라도 다스려지고 속세를 등지고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더라도 한가로우며 도인의 양생술이 아니라도 장수한다면 잃지 않음이 없으면서도 갖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맑고 고요하여 끝이 없으니 온갖 아름다움이 따른다. 이것이 천지의 도요, 성인의 덕이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염담, 적막, 허무, 무위를 천지의 화평이요, 도덕의 바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若夫不刻意而高 無仁義而修 無功名而治 無江海而閒 不道引而壽 無不忘也 無不有也 澹然無極 而衆美從之 此天地之道 聖人之德也 故曰 夫염淡寂寞虛無無爲 此天地之平 而道德之質也 - 刻意 1 장자는 다섯 종류의 선비를 예로 들고 있다. 세상을 떠나 세속과 다르게 살아가는 ..

삶의나침반 2009.10.24

장자[90]

내 너에게 이르나니 삼왕오제의 다스림이란 명분은 다스림이라 하지만 실은 어지러움이 막심했다. 유묵이 숭상하는 삼왕의 지혜란 위로 일월의 밝음을 어그러지게 하고 아래로 산천의 정기를 배반하고 가운데로 사계절의 운행을 잃게 했다. 그들의 지혜란 전갈과 독별의 꼬리보다 혹독하여 눈에 띄지 않는 짐승들조차 타고난 본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도리어 스스로 성인이라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진실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다. 余語汝 三王五帝之治天下 名曰治之 而亂莫甚焉 三皇之知 上悖日月之明 下山川之精 中墜四時之施 其知참於뢰치之尾 鮮規之獸 莫得安其性命之情者 而猶自以爲聖人 不可恥乎 其無恥也 - 天運 5 노자와 공자의 대화 중 일부인데 여기서도 도가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다. 태평성대라 불리는 삼..

삶의나침반 2009.10.17

장자[89]

학은 날마다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날마다 검정 칠을 안 해도 검소. 흑백이란 자연이므로 분별할 것이 못 되며 명예란 볼거리에 불과한 것이라 키울 것이 못 되오. 샘물이 말라 고기들이 모두 뭍으로 나가 서로 물기를 끼얹고 거품으로 적셔주는 것은 강과 바다에서 서로 잊고 모른 척하는 것만 못할 것이오. 夫鵠不日浴而白 鳥不日黔而黑 黑白之朴 不足以爲辯 名譽之觀 不足以爲廣 泉학 魚相與處於陸 相구以濕 相濡以沫 不如相忘於江湖 - 天運 4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한 수 배우기를 청했다. 노자는 공자가 말하는 인의(仁義)는 모기나 등에와 같아서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여 마음을 막히게 한다고 가혹하게 답한다. 도(道)가 사라진뒤에 인의로 세상을 구하려는 것은 마치 북을 치며 죽은 자식을 찾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삶의나침반 2009.10.11

장자[88]

옛 진인은 잠시 인에서 길을 빌리고 의에서 잠자리를 의탁하지만 자유로운 소요의 공허에 노닐며 진실로 간소한 밭에서 먹고 남을 빌리지 않는 들에 서 있었다. 소요는 인위가 없음이며, 간소함은 보양을 쉽게 하는 것이요, 빌리지 않음은 소모가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를 일러 진리를 캐는 놀이라고 했다. 古之至人 假道於仁 託宿於義 以遊逍遙之虛 食於苟簡之田 立於不貸之圃 逍遙無爲也 苟簡易養也 不貸無出也 古者謂是采眞之遊 - 天運 3 이 대목에서는 '진리를 캐는 놀이'[眞之遊]라는 표현에 눈길이 간다. 인생이란 유쾌한 놀이가 되어야 한다. 진리를 찾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고상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즐기며 자족할줄 모른다면 삶의 멍에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꿉장난을 하며 놀듯이 인생도..

삶의나침반 2009.10.10

장자[87]

옛날 서시는 가슴병이 있어 마을에 살 때 자주 눈을 찡그렸다. 마을에 추인이 그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여 마을에 돌아오자마자 자기도 가슴을 부여안고 눈을 찡그리고 다녔다. 마을의 부자들은 그것을 보자 문을 걸어 잠그고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으며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것을 보자 처자식의 손을 끌고 마을을 떠나 달아나 버렸다. 그녀는 찡그린 모습이 아름다운 것만 알았지 그 까닭을 몰랐던 것이다. 故西施病心 而빈其里 其里之醜人 見而美之 歸亦捧心 而빈其里 其里之富人見之 堅閉門而不出 貧人見之 설妻子而去之走 彼知빈美 而不知빈之所以美 - 天運 2 서시(西施)는 춘추전국시대에 월(越) 나라의 미인이었다. 중국의 4대 미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녀의 모든 행동은 그 시대의 여자들에게 모방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삶의나침반 2009.09.29

장자[86]

그러므로 공경함으로써 효도하기는 쉽지만 사랑함으로써 효도하기는 어렵고 사랑으로 효도하기는 쉬우나 친지를 잊기란 어렵고 친지를 잊기는 쉬우나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고 친지가 나를 잊게 하기는 쉬우나 천하를 두루 잊기란 어렵고 천하를 두루 잊기는 쉬우나 천하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故曰 以敬孝易 以愛孝難 以愛孝易 以忘親難 忘親易 使親忘我難 使親忘我易 兼忘天下難 兼忘天下易 使天下겸忘我難 - 天運 1 일상의 효조차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장자가 말하는 '효 넘어의 효'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모[親]를 잊고 나[我]를 잊으라는 것은 효를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들지 않는 경지라 할 수 있다. 예수가 말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가르침과 통한다. 그런데 더 나아가 천하를 잊..

삶의나침반 2009.09.19

장자[85]

환공이 마루 위에서 독서를 하는데 마루 아래서는 윤편이 바퀴를 만들고 있었다. 윤편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가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묻습니다. 공께서 읽는 책을 무엇이라 합니까?" 환공이 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다." 윤편이 물었다. "성인이 있습니까?" 환공이 답했다. "이미 돌아가셨다." 윤편이 말했다. "그러면 군주께서 읽은 책들은 죽은 사람의 시체일 뿐입니다."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독서를 하는데 공인 따위가 어찌 용훼하는가? 나를 설득하면 좋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윤편이 말했다. "신복합니다. 신이 하는 일로 본다면 바퀴를 깎는데 느슨하게 하면 헐거워 견고하지 못하고 단단히 조이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느슨하지도 않고 빡빡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으로 얻어지고 마음으..

삶의나침반 2009.09.11

장자[84]

노담이 물었다. "인의는 사람의 본성인가?" 공자가 답했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인이 없으면 안민(安民)할 수 없고 의가 없으면 살릴 수 없으니 인의는 참으로 사람의 본성입니다. 인의가 아니면 장차 어찌 다스리겠습니까?" 노담이 말했다. "묻겠는데 무엇을 인의라고 하는가?" 공자가 답했다. "마음속으로 만물과 함께 즐거워하고 겸애하고 무사(無私)하다면 이것이 인의의 진실된 모습입니다." 노담이 말했다. "그럴까? 뒷말은 위태롭구나! 대저 겸(兼)이란 우원한 것이 아닐까? 사(私)를 없애겠다는 것 또한 사사로움일 뿐이다. 그대가 만약 온 천하 사람들에게 양생을 잃지 않도록 한다면 천지는 본래의 상도가 보존될 것이다. 그대도 역시 천지의 덕을 본받아 행하고 도를 따라 나아가면 이미 지극한 것이거늘, 또 어..

삶의나침반 2009.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