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3

함석헌 읽기(6) -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함석헌 저작집 6권에는 선생 개인의 인생 역정이 그려진 글이 여럿 실려 있다.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내가 맞은 8.15' '내가 겪은 신의주학생사건' 등과, 종교적 체험을 설명한 '이단자가 되기까지'가 대표적이다. '남강, 도산, 고당'에서는 세 분 스승과 만난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선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알 수 있는 글들이다. 신의주학생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생은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 일을 맡고 있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뒤 시내는 공포 분위기로 변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1945년 11월 23일에 학생들이 반소, 반공 시위를 할 때 학생들이 학살당하는 현장에 선생은 있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선생이 월남할 수밖..

읽고본느낌 2013.03.19

클라우드 아틀라스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는 500년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스케일이 큰 영화다. 대신 조금은 난해하다. 나도 두 번째 보고서야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간을 달리 하는 여섯 개의 장면이 교차적으로 나오며 영화는 진행된다. 1. 1849년 남태평양 2. 1936년 스코틀랜드 3. 1973년 샌프란치스코 4. 2012년 영국 5. 2144년 서울 6. 2321년 지구 문명 멸망 후 이 여섯 개의 전혀 다른 배경이 섞여 나오기 때문에 관객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윤회를 반복하며 등장하는, 피부에 별 표시가 된 인물을 중심으로 보면 줄거리의 뼈대를 잡을 수 있다. 1849년의 어윙부터 프로비셔, 레이, 캐번디시(레이와 캐번디시의 연결은 의문), 손미를 거쳐 지구 멸망 후..

읽고본느낌 2013.03.14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오웰은 인습과 관성을 거부한 작가였다. 사립 명문인 이튼 출신으로서 대학을 포기하고 당시 식민지였던 버마 경찰이 되었고, 뒤에는 안정된 간부직을 마다하고 자발적으로 부랑자가 되어 밑바닥 생활을 체험했다. 스페인 내전 때는 공화국 편의 민병대 소속으로 참전했다. 런던에 있을 때도 문단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골 마을에서 텃밭을 일구는 살아가는 쪽을 택했고, 2차대전 후 명사가 되었을 때도 한적한 섬에서 은거하며 지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는 조지 오웰의 에세이 모음집이다. 29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세상을 보는 그만의 예리한 통찰을 읽을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따스한 인간의 정과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읽고본느낌 2013.02.13

함석헌 읽기(5) -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5권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비롯해 21개의 글이 실려 있다.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심(憂國心)으로 가득하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1958년 '사상계' 8월호에 실린 글로 '6.25 싸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선생 글의 주제가 깨어 있는 씨알이 되자는 데 있다면,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만큼 선생의 외침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제목도 없다. 이번 대선 투표 성향을 분석했더니 소득 최하위층에서 박근혜 지지율이 제일 높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려 66%로 문재인 지지율 34%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되었다. 반면 중상층에서는 그 격차가 2%에 불과했다. '가난한 사람은 왜 부자를 위해서 투표하는가'라는 의문이 이번에도 들었다.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 구조를 ..

읽고본느낌 2013.02.05

다석 전기

'류영모와 그의 시대'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제자인 박영호가 쓴 다석 선생의 전기다. 다석(多夕) 류영모(柳永模, 1890~1981)) 선생은 진리의 구도자이자 수도승으로 불릴 만한 분이다. 선생의 사상이나 삶은 보통 사람이 따라가기 어려운 비범한 데가 있다. 기독교 사상가라 불리지만 정통 신앙인은 아니었다. 선생이 가장 존경한 사람이 톨스토이와 간디였는데 이를 통해 선생의 지향한 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선생은 나라가 기울어가던 1890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고 수하동소학교를 거쳐 경신학교에 입학했는데 YMCA에 출입하면서 기독교를 접하고 연동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선생의 나이 20살 때, 남강 이승훈의 초대를 받아 평북 정주에 있는 오산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재직했다. 이때..

읽고본느낌 2013.01.31

함석헌 읽기(4) - 민중이 정부를 다스려야 한다

4권에는 1960년대 초중반에 쓰인 글이 주로 실려 있다. 그때는 민정이양과 한일회담 등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한 시기였다. 선생은 줄기차게 군사정권에 대항하며 권력자와 각을 세운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위한 회담 역시 반대한다. 돈과 경제를 위해 민족 자존심을 팔아먹는 걸 좌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군사정권은 계엄령을 발동하고 조약을 비준한다. 선생은 이렇게 외친다. "달러가 아니고는 못 사나요?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면 어떻습니까. 나라 운명을 한일회담에다가 매고, 비겁하게 벌벌 떨기 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살려면 우리 손으로 우리끼리, 살다 못 살면 같이 죽지 하는 각오를 해서만 이 난관을 열 수 있습니다. 나더러 무식하답니까. 어저께 우리 집에 강도로 들어와서, 우..

읽고본느낌 2013.01.23

함석헌 읽기(3) - 새 나라 꿈틀거림

함석헌 선생 사상은 비폭력 평화주의다. 선생의 글을 읽어보면 간디와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은 걸 알 수 있다. 비폭력 평화가 뜻은 좋지만 과연 현실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과 같은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군대와 무기를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다. 잘못되면 국가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생은 비폭력 이상을 버리지 않는다. 국가가 망하더라도 뜻은 남는다고 한다. 선생은 '우리나라의 살 길'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이북에서 침입하는 경우에도 아무 무력의 대항 없이 태연히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심하면 죽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평화적인 태도로 맞으면 이북군이 아무리 흉악하더라도 절대로 그 흉악을 부리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첫째는 그들도 사람이요 한국 민족이기 때..

읽고본느낌 2013.01.18

함석헌 읽기(2) - 인간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2권은 함석헌 선생의 혁명에 관한 글을 묶었다. 그러나 선생은 힘에 의한 혁명을 주장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인간 혁명'이다. 폭력에 의한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낳을 뿐이다. 인간이 변하는 혁명이라야 새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갈 길은 비폭력혁명의 길이다. 이것이 일반 혁명가들과는 다른 선생의 독특한 점이다. 선생은 혁명의 근거를 생명의 본성에서 찾는다. 생명은 변화하고 자라는 것이다. 나무는 연륜을 지어야 하고, 뱀은 허물을 벗어야 한다. 끊임없이 탈바꿈함으로써 생명은 진화한다. 또, 역사적으로 볼 때 정치의 지배자는 보수주의와 반동주의로 자기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역사의 움직임을 방해한다. 악에 대한 투쟁이 곧 혁명이다. 현대문명을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읽고본느낌 2013.01.07

로얄 어페어

18세기 후반 덴마크, 영국의 캐롤라인 마틸다는 정략결혼으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왕에게 시집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크리스티안은 첫날밤부터 왕비를 실망시킨다. 왕의 주치의로 들어온 독일인 요한은 계몽사상에 영향을 입은 점에서 왕비와 잘 통하게 된다. 왕의 신임 아래 실권을 장악한 요한은 개혁 정책을 밀고 나가지만 기득권층의 저항을 받는다. 그는 왕비와의 불륜 스캔들로 체포되어 처형된다. 왕비는 유배되고 곧 병사한다. 개혁은 좌절되고 덴마크는 다시 중세의 어둠에 빠진다. 영화 '로얄 어페어[A Royal Affair]'는 왕비와 요한의 사랑, 그리고 개혁과 실패라는 두 개의 줄기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내용이다. 우리나라 조선 시대에도 비슷한 예는 찾아볼 수..

읽고본느낌 2013.01.04

함석헌 읽기(1) - 들사람 얼

한길사에서 펴낸 30권으로 된 함석헌 저작집을 읽으려 한다. 왜 지금 함석헌인가? 어두운 시대를 이겨낼 힘을 선생한테서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사자후를 다시 들어야 내 속이 시원해질 것 같아서다. 따스한 봄볕만 바라는 세태에서 한 소리 큰 뇌성을 듣고 싶다. 이번에 1권을 읽어보니 선생의 말씀은 예언자의 목소리며 혁명의 외침이다. 요단강 세례 요한의 고함이다. 어둠과 불의의 시대를 밝히는 횃불이다. 지금도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말씀이다. 선생은 험난한 20세기를 온몸으로 사셨다. 일본 강점기, 해방, 6.25, 이승만독재, 4.19, 5.16, 군사독재 등을 거치며 생명 존중과 인간 자유를 위하여 싸웠다. 선생의 사상은 민중과 씨알,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는 세계..

읽고본느낌 2012.12.31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래 권력에 눈이 먼 무리가 늘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 분탕을 치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피와 눈물을 쏟게 했다. 그리고 국가의 발전을 몇백 년씩이나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조선의 수양대군과 그의 주위에 모였던 무뢰한들이 그러했다. 이덕일 선생이 쓴 은 김종서를 중심으로 수양의 야망과 조선의 비극을 생생히 설명한다. 김종서가 조정에 출사한 때로부터 단종 죽음까지의 이야기다.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왕위를 노린 수양은 김종서를 제일 두려워했다. 거사 당일 직접 김종서의 집으로 찾아가 제일 먼저 살해한다. 김종서의 죽음은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종의 죽음이자 그가 섬겼던 태종, 세종, 문종이 만들어 놓은 정상적인 헌정질서의 죽음이었다. 조선이 난세로 빠져드는 출..

읽고본느낌 2012.12.27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한국사에서 송시열(宋時烈, 1607~1689)만큼 논란 많은 인물도 드물 것이다. 송시열은 조선시대 주자학을 신봉한 유학자면서 정치가였다. 치열했던 당쟁의 시대에 노론의 영수로 정국을 좌지우지했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숙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덕일 선생이 쓴 는 송시열 신화의 반대편에서 그를 파악하려는 시도다. 지은이의 결론은 책의 '나가는 글'에 잘 나와 있다. 송시열은 사대부 계급의 이익과 노론의 당론을 지키는 데 목숨을 건 사람이었다. 그의 당인 노론은 조선이 망할 때까지 정권을 잡았으나 이는 백성들의 나라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송시열의 인물을 평한다.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벽되지 않지만, 소인은 편벽되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子曰 君子 周而不..

읽고본느낌 2012.12.17

26년

1980년 5월 광주의 그날로부터 26년 뒤인 2006년, 가족을 잃은 세 사람이 대기업 회장의 지원 아래 '그 사람'을 처단하기 위한 복수 프로젝트에 들어간다. 그리고 미진이 쏜 최후의 총성 한 발과 함께 화면은 어두워진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광주항쟁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가족을 잃고 삶이 망가진 사람들의 사무치는 심정을 국외자인 우리가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영화에서 대변하고자 하는 복수혈전이 이해되고도 남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분들의 아픔에 진하게 공감되었다. 미진이 홀로 서울 도심에서 결행한 1차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는 너무나 안타까웠다. 영화에서 작전 설계자인 김갑세 회장의 말에서 나오듯이 희생자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가해자의 참회일 것이다. 용서와 화해란 가..

읽고본느낌 2012.12.13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영조 38년(1762) 윤5월 21일, 여드레 동안 뒤주에 갇혀 있던 사도세자가 죽었다. 왕인 아버지가 세자인 아들을 굶겨 죽이는 조선왕조 최대의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덕일 선생이 쓴 는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의 책이다. 지금까지는 혜경궁 홍씨가 쓴 이 세자의 죽음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료였다. 세자빈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에서는 세자의 죽음이 영조의 이상 성격과 세자의 정신병이 충돌해서 빚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은 과 다른 자료들을 분석해서 세자가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니었음을 밝혀낸다. 도리어 성군의 자질을 지닌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영조 31년(1755)에 나주 벽서 사건이 일어나고, 노론은 ..

읽고본느낌 2012.12.08

또 다른 예수

1945년 12월 어느 날, 한 이집트 농부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500km 떨어진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라는 곳 산기슭에서 땅을 파다가 토기 항아리를 발견했다. 농부는 그 안에 들어 있던 파피루스 종이 문서를 시장 골동품상에게 팔아 담배, 설탕 등과 맞바꾸었다. 이 문서가 바로 도마복음이다. 1947년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와 함께 성서 고고학상 최대의 성과였다. 발견된 도마복음은 기원후 350년경에 필사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도마복음이 씌어진 것은 기원후 약 100년경으로 요한복음과 비슷한 시대일 것으로 본다. 도마복음은 예수 어록으로만 되어 있으며, 공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과 50% 정도는 일치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에서 자주 나오는 기적, 종말, 부활, 믿음, 심판, 대속 같은 단어는 거의 볼..

읽고본느낌 2012.12.02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초판이 나온지 20년이 넘은 책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하며 고향에 있는 두 아들, 흑산도에 유배된 형,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이다. 한 인간의 내면세계를 엿보는데 편지만큼 솔직한 것도 없다. 다산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는 근엄한 학자가 아닌 이웃집 아저씨 같은 선생의 인간적 면모를 만나게 된다. 다산 역시 자식 걱정에 노심초사했고, 학문에 정진하는 모습을 기뻐했다. 지켜야 할 예절에서부터 채소밭 가꾸는 방법까지 가르쳐주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또한 형의 건강을 염려해서 개고기 요리하는 법까지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절로 미소가 일어난다. 번역한 이는 다산을,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실낱 같은 한 줄기의 민중적 의지로 75년 동안 치열하게 살다가 사라져간 위대한 인..

읽고본느낌 2012.11.25

공부도둑

은 물리학자면서 녹색사상가인 장회익 선생의 70년 공부 인생 이야기다. 선생에게 공부란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거나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게 아니라 인생의 의미를 찾고 '앎'을 추구하며 즐기는 데 있었다. 그래서 본인의 생애를 앎과 숨바꼭질하며 살아온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또 공부꾼이라고도 했다. 우주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학문의 정수를 골라 훔쳐내는 '공부도둑'이라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선생의 공부 방법은 남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집안 어른의 반대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원리를 스스로 깨달았다. 당신 스스로 아인슈타인과 비교하는 데서 볼 수 있든 특별한 두뇌 탓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에 가든 공부에서는 1등이고 수석이었다. 그런데 엘리트 의식이 전혀 없고 겸손하다. 도리어 남과..

읽고본느낌 2012.11.20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라 시대 경주에 살던 사람들의 놀이나 취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종대왕 때 한양 사람들이 쓰던 말은 어땠을까? 지금 우리가 얼마만큼 알아들을 수 있을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는 연대기적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죽은 유적 대신 생생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알베르토 안젤라(Alberto Angela)가 쓴 이 바로 그런 궁금증을 없애 주는 책이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였던 기원후 115년 어느 날, 트리야누스 황제 치하의 로마의 하루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시간대별로 생생히 그리고 있다. 당시 제국의 인구는 약 5,000만 명이었고, 로마에는 15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읽고본느낌 2012.11.10

시인의 서랍

이정록 시인의 재미있는 산문집이다. 유년 시절의 추억을 중심으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 감명 깊게 그리고 있다.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가장 중심 되는 인물은 시인의 어머니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 시인이 시를 쓰는 소재도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얻는 것 같다. 시인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는 곧 나의 얘기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보다 두 살 일찍 학교에 들어가 약자로 시달리면서 자란 이야기는 무척 공감된다. 또 현재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시인의 학교 현장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시인이 떠올리는 어릴 적 풍경에는 이런 게 있다. '잔치를 준비중인 할머니께서 두부를 만들고 난 뜨거운 국솥 찌꺼기를 가지고 부엌에서 나오신다. 외양간 구유도 돼지집 밥통도 이미 가..

읽고본느낌 2012.11.01

승자독식사회

전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후련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20:80의 세계를 넘어 1:99의 세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부와 소득의 독점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가야 할 운명적 길인지도 모른다. 로버트 프랭크과 필립 쿡이 쓴 (The Winner-Take-All Society)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대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는 현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강화되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제로섬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한다. 승자독식은 원래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통용되었으나 이제는 시장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예술, 언어,..

읽고본느낌 2012.10.17

위로

어른을 위한 가슴 따스한 동화다. 이철환 님이 글을 쓰고 그림도 직접 그렸다. 파란나비 피터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붉은꽃을 따먹은 후 원했던 반쪽붉은나비가 된다. 그러나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친구들은 떠나가고 피터는 혼자가 된다. 외톨이가 된 피터는 숲의 이웃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인생의 지혜를 얻는다.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진다. 아파본 사람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에는 가슴에 새겨두고 싶은 주옥같은 글이 많다. 힘들고 어려울 때 언제라도 꺼내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싶은 것들이다. 잔잔한 여운이 남는 책이다. 나무의 말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을지도 몰라. 네가 진정으로 높이를 갖고 싶다면 깊이에 대해 먼저 고민해야 돼..

읽고본느낌 2012.10.13

피에타

나에게는 무척 거칠게 느껴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눈 감고 싶은 추악한 현실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복수를 통해 돈으로 미쳐버린 세상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무대가 된 청계천 공구상가의 어두운 분위기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 거기는 세상에서 낙오된 패배자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강도'는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를 불구로 만들거나 목숨까지 뺏는 악마 같은 짓을 서슴치 않는다. 그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된다. 돈의 노예가 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다. 세련되게 포장하기는 했지만 본질에서는 다름이 없는 우리들 ..

읽고본느낌 2012.09.23

한정록

빗소리를 들으며 을 읽는다. 은 허균(許筠)이 42세 때, 중국의 고서들에서 선비들의 한적한 삶을 그린 글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당시는 어렵게 진출했던 공직에서 쫓겨나는 등 허균으로서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아마 그 자신 은둔의 삶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서(序)에서 그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찬찬하지 못하였고, 또 부형父兄이나 스승 또는 훈장이 없어서 예법 있는 행동이 없었다. 또 조그마한 기예技藝는 세상에 보탬이 될 만하지도 못하면서도 스물한 살에 상투를 싸매고 과거를 보아 조정에 나갔다. 그러나 경박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에 당세 권세가에게 미움을 받게 되어, 나는 마침내 노장老莊이나 불교 같은 데로 도피하여, 형해形骸를 벗어나고 득실得失을 ..

읽고본느낌 2012.09.13

시간의 숲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읽은 게 이 영화로까지 이어졌다. 은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야쿠 섬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다. 올봄에 개봉되었지만 뒤늦게 알게 되어 영화 자료실에서 찾아 감상했다. 배우 박용우는 영화 촬영을 끝내고 일본 남단에 있는 야쿠 섬으로 열흘간의 여행을 떠난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 7,200년 된 조몬삼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 배우 타카기 리나를 만나고 둘은 숲과 해변을 거닐며 자연이 주는 고요와 평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자연스럽게 내면의 상처가 드러나면서 위안을 받는다. 자연을 통한 심리 치유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수천 년 된 나무들을 배경으로 인간 내면으로의 여행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사람의 대화보다 야쿠 섬 풍경과 숲, 조몬삼나무를 보는 게 더 흥미로..

읽고본느낌 2012.09.04

더 바랄 게 없는 삶

책장에서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1)의 책 한 권을 꺼내 다시 읽어 본다. 야마오 산세이 하면 그분이 살았던 야쿠 섬과 7,200살의 조몬삼나무가 떠오른다. 에 이 나무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나무를 만나러 야쿠 섬에 가리라고 다짐했던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은 선생이 야쿠 섬에 살면서 쓴 에세이집이다. 선생은 1960년대부터 대안문화공동체 운동을 하다가 1977년에 가족과 함께 섬에 들어와 살았다.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시와 글을 발표했다. 삼라만상 온갖 것이 모두 신성한 존재임을 깨닫고 지구의 미래와 희망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이었다. 을 통해 그런 선생의 생각과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가미미에 군이 배에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식칼을 바다에 떨구고..

읽고본느낌 2012.09.04

소설 공자

는 최인호 작가의 근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료에 근거하여 공자의 삶을 재구성했다. 공자의 출국과 주유천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오늘과 별로 다르지 않다.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유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책이다. 책에는 공자 외에 노자와 장자, 예수 이야기도 나온다.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차이가 그분들의 삶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노자는 세상에 알려지자 함곡관을 통해 사라졌지만, 공자는 끝없이 세상과 권력을 찾아 들어간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2012.08.28

도둑들

광주에도 극장이 생겼다. 광주터미널 2층에 롯데시네마가 들어왔다. 인구가 30만이 안 되는 소도시라 그런지 그동안 영화관 하나 없었다. 영화를 보려면 서울이나 분당으로 나가야 했다. 3개 관의 작은 규모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영화관이 생긴 건 기뻐할 일이다. 개관 기념으로 '도둑들'을 보았다. 얼마 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화제의 영화다. 본 사람이 재미있는 영화라고 추천도 해 주었다. 무거운 메시지를 주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런 오락 영화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얼마나 발전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고도 싶었다. 그런대로 재미있게 봤다. 후반부로 갈수록 스릴이 있고 흥미진진했다. 스피디한 전개와 끝없는 반전이 유쾌한 활극을 만들었다. 쿨한 영화였다. 카지..

읽고본느낌 2012.08.25

아름다운 마무리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악의 경우도 상상된다. 암에 걸려 고통에 시달린다든지, 치매로 정신줄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난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선종(善終)'이라는 말 그대로 아름답게 이 세상을 뜨고 싶다. 스코트 니어링이 떠오른다. 그분은 100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만들었다. 옆에서 도와준 아내의 역할도 컸다. 작년에 봤던 영화 '청원'도 생각난다. 안락사를 다룬 내용인데 전신마비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약물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순간이 친구들이 모여 노래하고 추억하는 즐거운 파티가 되었다. 박기호 신부님이 쓴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끝 부분에 어..

읽고본느낌 2012.08.18

악마의 백과사전

'OO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하는 책들이 있다. 상식의 위선을 까발리며 말 이면에 숨어 있는 솔직한 의도를 드러내 준다. 만화가 박광수 씨가 펴낸 도 같은 류의 책이다. "그래,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았다. 책에 나온 단어의 새로운 해석을 옮긴다. -------------------------------------------------------------- 가난 貧困 poverty 사람마다 기준과 정의가 다른 지갑의 무게. 일반적으로 지갑의 품질과 관계가 없으며 용모나 인생관, 인격따위와도 크게 연관이 없다. 가발 假髮 wig 철든 사람이 타인에게 함부로 맨살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기에 큰돈 주고 구입하는, 인체..

읽고본느낌 2012.08.09

악의 심연

더위를 잊기 위해 스릴러 소설을 골랐다. 막심 샤탕의 이다.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어젯밤에는 무서워서 문을 꽁꽁 잠그고 잤다. 더위를 잊으려다 도리어 더위를 더 맞이한 셈이 되었다. 소설에는 인육을 먹는 등 너무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뒷 느낌이 꺼림찍하다. 아무래도 책을 잘못 골랐다. 그러면서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다. 스릴러의 매력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타인의 비극을 엿보려는 심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호기심으로 손가락 사이를 살며시 연다. 머리가죽이 벗겨진 여자가 뉴욕의 공원을 발가벗고 도망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예순일곱 명의 실종사건이 드러나고 범인들의 윤곽이..

읽고본느낌 2012.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