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913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 후 작은 소동이 있었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도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출판사에 통보한 것이다. 결국은 없었던 일로 되었지만 경직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해프닝이었다. 그 뒤에 국회 본회의에서 시인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박병석 부의장님,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종환입니다. 저는 오늘 착잡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면서 시인입니다. 제가 쓴 시는 10년 전부터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고, 학생들이 배우고 공부해 왔습니다. 공문에 의하면 수정보완 이행 결과가 미진하면 검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과서 수정보완은 띄어쓰기, 맞춤법, 어휘 ..

읽고본느낌 2012.08.05

두 개의 문

2009. 01. 20 03:00 경찰 특공대 출동 명령 03:30 현장 도착 06:16 진압 크레인 설치 06:30 컨테이너 투입 06:50 망루 진입 07:06 화재 발생. 철거민 5명, 특공대원 1명 사망 2009. 02. 09 검찰, 철거민 7명 구속 기소, 15명 불구속 기소 2009. 10. 28 용산 1심 재판부,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2010. 11. 11 대법원, 망루 생존 철거민 7명에 원심(4~5년) 확정 판결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했던 철거민들은 갓 하루가 지나 불에 탄 시신으로 내려왔다. 살아남은 자들은 범법자가 되어 지금도 형을 살고 있다...

읽고본느낌 2012.07.17

우주의 풍경

(The Cosmic Landscape)은 '끈 이론'과 '메가버스'(Megaverse, 다중우주)를 주제로 한 교양과학서이다. 제목에 나오는 '풍경'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끈 이론에서 유도되는 가능한 진공들의 공간을 말하는 과학 용어다. 메가버스로 대변되는 우주의 풍경에는 무한한 종류의 우주가 무한하게 출현할 수 있다. 이 책은 유니버스(Universe)에 익숙한 우리의 우주관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책의 초반부에는 '인간 원리'에 대한 설명이 길게 나온다. 우리 우주는 왜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설계된 듯 보이는 것일까? 자연법칙은 생명과 인간이 탄생되도록 미세 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자연법칙이나 물리상수 중 하나가 조금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지 못하고 생명도 탄생할..

읽고본느낌 2012.07.16

역사 앞에서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 선생이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인공 치하의 서울에서 지내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일기문이다. 서울대 사학과 조교수로 있었던 선생은 피난을 가지 않고 정릉 집에 머물며 동란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중립적 입장에 섰던 선생은 역사학자답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사료로서의 가치를 염두에 두고 적으신 것 같다. 어느 전쟁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념의 광기에 희생되는 것은 죄 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민중들이다. 다만 그 시대에 존재했다는 것만으로 희생자가 된 경우가 허다하다. 6.25는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고,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벌써 62년이 지났지만 그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남북간에 적..

읽고본느낌 2012.06.25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7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나멘시스(41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370만 년 ~ 29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300만 년 ~ 24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에티오피쿠스(260만 년 ~ 230만 년 전) 호모 루돌펜시스(250만 년 ~ 180만 년 전) 호모 하빌리스(210만 년 ~ 15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로부스투스(190만 년 ~ 120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180만 년 ~ 3만 년 전) 호모 하이델메르겐시스(60만 년 ~ 20만 년 전)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20만 년 ~ 3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20만 년 전 ~ 오늘) 원시적인 인류의 형태는 약 2백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나타났다. 180만 년 전에 호..

읽고본느낌 2012.06.17

아흔 개의 봄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노모를 돌보고 있는 아들의 기록이다. 2007년 6월에 갑자기 쓰러진 선생의 모친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선생은 집과 시설을 오가며 극진히 보살펴 드린다. 책에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2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잡지에 연재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선생은 4남매 중 셋째 아들로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만 편애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선자라고 여기며 불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모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또 ..

읽고본느낌 2012.06.12

온 삶을 먹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 )는 미국의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로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다. 는 농업과 먹을거리에 관한 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대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인류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안적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이 그런 실험적 삶을 살고 있다. 웬델 베리가 보는 위기의 시작은 인간이 땅을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보았을 때부터였다. 농민이 사라지고 농기업가가 등장하면서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뒤틀린 것이다. 그는 1950년대에 트랙터를 몰며 앞에서 일하는 노새의 느린 걸음을 보고 속을 태웠던 때를 안타깝게 기억한다. 기계와 생명의 경쟁에서 승자는 분명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일손을 줄이는 기계와 무한..

읽고본느낌 2012.06.01

신의 정원에 핀 꽃들처럼

은 현경 선생(유니언 신학대학 교수)이 이슬람 국가 17개국을 일 년 동안 다니며 무슬림을 만나 대화를 나눈 순례기다. 2001년의 9. 11 사건에 충격을 받은 지은이는 이슬람의 이해와 종교간 평화를 위해서 이슬람 국가를 찾는다. 서구의 시각이 아닌 아랍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였다. 9. 11 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퍼부었다. 종교간 평화를 위해 일하고 있던 현경은 이런 사태를 관망만 할 수는 없었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서방세계 사이에 평화를 다리를 높고 싶었던 선생은 두 가지의 질문을 가슴 속에 품고 있었다. "이슬람이 원하는 평화는 무엇이고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리고 "이슬람 여성들이 삶에서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였다. 선생은 12..

읽고본느낌 2012.05.21

야곱 신부의 편지

짧고 간결하지만 울림이 큰 영화다. 상영시간이 70분 정도고, 등장인물도 고작 세 사람(야곱 신부, 레일라, 우체부)이다. 그러나 영화는 인간의 외로움, 연약함, 용서, 소통,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레일라는 어릴 때 엄마의 폭력에 시달렸다. 어린 그녀를 구해 준 것은 언니였다. 언니는 작은 몸으로 엄마를 막으며 동생을 보호했다. 그런데 결혼한 언니는 남편에 의한 가정 폭력의 희생자였다.어느 날언니의 집을 찾아갔을 때 형부가 언니를 폭행하는 장면을 보고 분을 이기지 못한 레일라는 형부를 죽였다. 그녀는 죄책감에 언니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킨다. 종신 복역 중 사면을 받고 출소한 레일라는 눈이 보이지 않는 야곱 신부에게 보내져 신부에게 오는 편지를 읽어주고 답장을 대필해 주..

읽고본느낌 2012.05.16

몸에 밴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가 한때 어린이였다. 어린 시절은 지나갔으나 그때의 흔적은 지금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가장 중요한 '내재과거아(內在過去兒, Inner child of the past)'란 개념이다. 내재과거아란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의 삶 안에 그대로 남아서 지속되고 있는, 우리가 과거에 겪어온 어린이의 모습이다. 이 책을 쓴 미실다인(W. H. Missildine)은 정신과 의사로 어린이 정신 건강 센터의 책임자로 일하다가 성인의 정신적인 문제에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을 발견했다. 어릴 때 가정에서 부모와의 온전하지 못한 관계 때문에 어른이 되어 외로움, 불안, 성적 장애, 우울증, 부부 사이의 불화,..

읽고본느낌 2012.05.09

모두 어디 있지?

밤하늘의 별을 보면가슴이 뛴다. UFO, 우주인, 외계 문명 등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지적 생명체를 상상하면 더욱 그렇다. 우주의 나이가 120억 년이나 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한 수의 별들이 있는데, 우주의 어딘가에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논리는 지극히 타당하다. 생명 발생이 지구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게 도리어 이상하다. 그러니 우주에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문명으로 발전시킨 존재가 있을 것이고, 그들은 성간 여행을 했을 것이고, 은하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온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우주 공간에서는 그들이 통신하는 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어디 있지?" 논리적으로는 그들과 접촉해야 마땅한데 ..

읽고본느낌 2012.04.16

낭만아파트

우리나라 근현대 문화사를 말할 때 아파트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한국을 '아파트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아파트는우리의생활 양식과 의식을 지배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전체 세대의 반 이상이 이미 아파트에 살고 있다. 아파트가 좁은 땅에서 주거 문화를 개선하는데 효과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국에서 아파트는 투기와 욕망, 물신숭배의 상징이 되고 있다. 어떤 소설가는 아파트를 '사람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넷'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파트가 주는 편리함과 안락을 무시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아파트는 돈이 된다는 데 있다. 또한 아파트 위치와 평수는 특권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파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개발 시대의 효용이 다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아파트의 매력이 쉽게 사라..

읽고본느낌 2012.04.09

나무가 민중이다

나무와 풀 이야기로 민초(民草)의 삶을 실감이 나고 감칠맛 나게 그린 책이다. 40대 이상으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지은이가 묘사하는 장면들에 가슴으로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서민들과 함께했던 나무와 풀을 통해 삶의 애환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라는 제목만큼이나 이런 종류의 책 중에서도 특별하다. 사대부들이 높이 평가했던 매화, 국화, 모란, 대나무 같은 건 아예 빠졌다. 소나무도 절개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라 민중의 삶의 동반자로서 풀어쓰고 있다. 지은이 고주환 님은 성황림이 있는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가 고향이다. 성황림은 몇 년 전에 직장 동료들과 찾아간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난 뒤였다면 아마 더 새롭게 보였을 것이다. 지은이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고향집(엉클한캐빈)에 내려가 ..

읽고본느낌 2012.04.02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 책이 출판된 게 1999년이니 어느새 13년이 지났다.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당시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다. 지금 한 걸음 비켜서서 읽어보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내용도 아니다. 이 책은 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 덕분을 많이 본 것 같다. 당시 한국은 IMF 환란이 지나고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였다. 책에서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지 반성함과 동시에 비난할 대상도 필요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1910년 한일합방, 1950년 6.25, 1997년 IMF를 근세에 우리가 겪은 3대 위기로 보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지은이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런 위기의 근원에는 우리 문화와 의식을 지배한 유교에 있다고 말한다.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읽고본느낌 2012.03.29

핸드메이드 라이프

며칠 전에 마트에서 산 물건이 한 보따리 배달되었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참 좋은 세상이다!" 방에 앉아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을 하면 약속된 시간에 집에까지 갖다 준다. 너무 편하다. 그러나 아내의 '좋은 세상'이라는 말은 액면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정말 좋은 세상일까?'라는 의문과,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라는 두려움이 '좋은 세상'이라는 말 속에 들어 있다. 가능하면 대형 마트를 이용 안 하려 하지만 가격과 편리함 때문에 무너지고 만다. 도시에 살게 되면 머리와 몸이 따로따로 놀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세상은 살기 좋아지고 편리해졌지만 우리는 전보다 더 공허해졌다. 뭔가 근본에서 멀어진 것 같고, 우리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러한 때에 ..

읽고본느낌 2012.03.18

사기열전

사마천의 을 읽고 있다. 김원중 선생이 옮기고 민음사에서 펴낸 건데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번역본 중 가장 잘 된 책이라고 한다. 문장도 유려하고 고증이나 해설이 잘 되어 있다. 두 권으로 되어 있는데 첫째 권을 읽었다. 는 상고시대부터 사마천이 살았던 한 무제 때까지의 중국 역사를 다룬다. 본기(本紀)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열전은 인물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간다. 주나라 붕괴 후 등장한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칠웅[진(秦), 한(韓), 위(魏), 제(齊), 초(楚), 연(燕), 조(趙)]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열전은 역사적 정보가 아니라 인물의 특징과 의미를 전하는데 ..

읽고본느낌 2012.03.09

호치민 평전

1960년대 중반 우리나라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베트남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당시에 나는 중학생이었는데 영화관의 대한뉴스에서 국군이 베트콩을 물리치는 장면이 나올 때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또, 아버지가 면에서 갖고 오시는 월남 소식을 알리는 책이 있었다. 반짝이는 지질에 선명한 칼러사진이 눈을 끌었던 화보였다. 그 책에는 국군의 활약상, 대민봉사하는 모습, 그리고 월남을 소개하는 사진이 많았다. 도대체 전쟁을 하는 나라답지 않게 월남은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하얀 아오자이에 모자를 쓴 월남 처녀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호지명(胡志明)이라 불린 호치민은 어린 나에게는 악당 월맹의 괴수였다. 몇 년 전에 베트남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친구에게서 호치민이 얼마나 베트남 국..

읽고본느낌 2012.02.28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고,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유대계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제3수용소에서 노예보다 못한 나날을 보내다가 종전을 맞았다. 는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174517'로 지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작품을 여럿 읽었지만 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 책은 단순히 대학살의 현장을 증언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또한 강제수용소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폭력으로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존엄성을 상실하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존재의 ..

읽고본느낌 2012.02.16

일본영화 두 편

괜찮은 일본영화 두 편을 보았다. 과 다. 개봉한 지 몇 해 지난 거라서 안방극장에서 본 게 아쉬웠다.그러나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닌 잔잔한 영화는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얼마 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옆자리의 여자가 휴대폰으로 쉼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바람에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은 일본의 중학교가 무대다. 반 아이들에 의해 담임교사의 어린 딸이 살해된다. 이 영화는 담임교사의 우아한(?) 복수를 줄기로 하는 스릴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라 일본 사회의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인간 본성과 용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본 학교의 교실 붕괴와 왕따 문제, 살인을 해도 처벌할 수 없는 미성년자보호법, 가정 문제, 아이들을 통해 표현..

읽고본느낌 2012.02.07

짚 한오라기의 혁명

을 쓴 후쿠오카 마사노바(福岡正信)는 농부라기보다 사상가요 철학자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자신의 깨달음인 일체무용론(一切無用論)을 농업에 적용하여 자연농법(自然農法)을 창안했다. 직접 농사를 지으며 40년 동안 연구한 결과다. 자연농법은 땅을 갈지 않고, 비료를 쓰지 않고, 농약을 쓰지 않고, 제초를 하지 않는다. 지금의 과학농법이나 심지어는 유기농법과도 질적으로 다른 혁명적인 농사법이다. 선생은 일체의 인위를 쓸모없는 것이라 본다. 인위를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기는 현대의 가치관이 문제의 근원이다. 과학 지식을 비롯한 모든 인간 행위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을 왜소화시켰다. 자연농법은 그런 인간의 지혜를 부정하는 무위의 농법이다. 농부는 놀고, 농사는 자연이 짓는다. 자연농법으로 쌀과 ..

읽고본느낌 2012.02.01

신과 인간

1996년 3월 27일, 알제리에 있는 티베린 수도원에서 프랑스인 수사 일곱 명이 반군에게 납치되었다. 반군은 인질과의 교환 협상을 벌이다가 거부당하자 두 달 뒤 수사 전원을 살해했다. '신과 인간'은 이 실화를 다룬 영화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배타적 민족주의로 무장한 반군은 사전에 수사들에게 알제리를 떠날 것을 경고한다. 정부 쪽도 같은 권고를 한다. 그러나 수사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남기로 결정한다. 거듭된 생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의 부름에 충실히 따른다. 영화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그들의 고뇌와 의지를 그려 나간다. 영화에는 인상적인 두 장면이 있다.기관총을 장착한 전투용 헬기가 굉음을 내며 수도원 바로 위에 떠서 협박한다. 그 소리에 맞서 수사들은 수도원 안에 함께 모여 찬송을..

읽고본느낌 2012.01.26

물리학의 최전선

오랜만에 물리학 책을 읽었다. 아난타스와미(A. Ananthaswamy)가 쓴 이다. 그래도 전공이랍시고 물리 용어를 접하니 반가우면서 마치 고향을 찾은 듯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 책은 지은이가 세계 곳곳의 실험물리학의 최전선을 찾아가서 현장을 직접 보고 과학자들을 인터뷰해서 썼다. 세계에서 가장 춥고, 깊고, 높은 곳에서 우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실험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남극 대륙의 반물질 탐사,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힉스 입자를 찾는 대형강입자충돌기(LHC, Large Hardron Collider), 시베리아 바이칼 호의 뉴트리노 검출 장치, 수단 광산의 극저온 암흑 물질 탐사, 우주 배경 복사 탐사 위성, 그리고 칠레, 하와이, 남아프리카 등의 초대형 망원경 프로젝트가..

읽고본느낌 2012.01.16

인간과 사물의 기원

재미있는 책이다. 이라는 제목만 보면 무거운 과학 서적으로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다. 책 제목도 일부러 이렇게 비틀어 정한 것 같다. 지은이 김진송 씨의 기발한 상상력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글을 연상시킨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된다. 지은이는 국문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후 양평에 내려가 목수가 된 분이다. 최근에는 라는 책을 펴냈다.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지식에 대한 냉소가 상쾌하다. 기존 관념을 혐오하면서 유머러스하게 비튼다. 거기에는 인간 문명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다. 현실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질서의 세계로 보이지만 지은이에게 합리성과 이성은 질서를 위한 형식이며 억압일 뿐이다.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올바르다고 믿는 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때로는 자신의 억압과 속박..

읽고본느낌 2012.01.09

장기 비상시대

쿤슬러(J. H. Kunstler)가 쓴 는 석유 없는 미래를 다룬 충격적인 책이다. 부제가 '석유 없는 세상, 그리고 우리 세대에 닥칠 여러 위기들'이다. '장기 비상시대'는 석유로 대표되는 화석연료가 고갈된 에너지 위기 상황의 시대를 말한다. 그때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규모의 경제적, 정치적 혼란과 고통이 찾아올 것이다. 인류는 지금 불타는 집을 나서 몽유병 환자처럼 벼랑 끝으로 걸어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미래가 묵시론적 종말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는 인구나 기대수명, 생활 수준, 지식과 기술, 품위 등의 측면에서 엄청난 상실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은 어둠의 통로를 지나고 살아남으리라 예상된다. 저자는 석유 시대 이후의 '장기 비상시대'가 지역농업 중심 시대가 될..

읽고본느낌 2012.01.02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

,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었다.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라는 독일인이 썼는데 잘 나가는 언론인이었다가 한순간에 실업자로 전락한 자신의 경험에서 깨우친 내용이 토대가 되어 있다. 경제적 고통 앞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의연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한 결과다.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를 강조하는 여느 책들과 비슷하지만, 관념적이 아닌 실제 생활 예가 많이 나온다. 가난을 궁핍이나 두려움이 아니라 윤리적 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공감을 얻는 것은 저자 자신이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아함'과 '가난'은 서로 상충하는 개념인 것 같지만, 저자는 도리어 가난해야 우아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돈 없이도 부유한 인생을 사는 것은 가능한 일이고, 오히려 돈이 많을 때보다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2011.12.19

물방울의 마술

수면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되튀어 나오는 모습을 순간 포착한 사진이다. 우산, 버섯, 사람, 토성, 왕관등 온갖 신기한 모양이 다 생긴다. 작은 물방울이 만드는 마술이라고 할 만하다. 카메라 렌즈는 사람의 눈이 잡지 못하는 짧은 순간을 보여준다. 기초적인 과학 원리와 기술을 이용하면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날아가는 총알을 정지시켜 찍기도 한다. 이 사진은 캐나다에 사는 코리 화이트(Corrie White, 63) 할머니가 찍었다. 우유에 원색의 물감을 섞어 색깔을 만들었고, 카메라와 마이크로 렌즈, 플래시의 기본 장비만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추어 작가지만 할머니는 프로보다 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아름다운 사진을 만들었다.디지털 시대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다. 만약 필름 카메라였다면많은 시행착오를..

읽고본느낌 2011.12.15

위대한 패배자

롬멜, 체 게바라, 고르바초프, 라이너 바르첼, 앨 고어, 메리 스튜어트, 루이 16세, 빌헬름 2세, 요한 슈트라우스, 하인리히 만, 렌츠, 라살, 트로츠키, 오스카 와일드, 크누트 함순, 리제 마이트너, 앨런 튜링, 게오르크 뷔히너, 이사크 바벨, 빈센트 반 고흐,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볼프 슈나이더가 쓴 에 소개된 사람들이다. 세상에 이름을 남겼으니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마지막에는 승리를 사기당하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몰리고, 왕좌에서 쫓겨나고, 명성을 도둑질당한 사람들이다. 또, 고흐처럼 살아서는 인정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역사는 승리자만 기억한다. 세상은 승리자의 논리로 돌아가고 승리자들이 역사를 쓴다.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번진 적도 있었다. ..

읽고본느낌 2011.11.29

청원

천재 마술사로 인기를 누리던 이튼은 14년 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방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감옥 같은 생활을 한다. 그러나 라디오 DJ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유머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치료될 가망도 없이 계속되는 고통에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영원한 행복을 찾기 위해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한다. 영화는 어디까지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 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죽느냐는 것이 어떻게 사느냐와 결부되어 있음을 영화는 일깨워준다. 영화 전편을 통해 흐르는 음악이 무척 감미로웠다. 특히 'What A Wonderful World'는 지금껏 내가 들었던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 슬펐다. 어머니를 땅에 묻으며 이튼이 부르는 이 노래는 정말 가슴 뭉클했다. 가장 슬픈 순간에 부르는 ..

읽고본느낌 2011.11.23

트리 오브 라이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도 영화가 얘기하려는 것이 뭔지 뚜렷이 잡히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과 치유를 다루는 것 같은데 우주적 차원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난해해져 버렸다.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해석하려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욕심이 지나친 것 같다. 단순한 걸 어렵게 그려내는 재주가 감독에게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좋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 너머의 깊은 신비의 세상이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특히 아름다운 영상 표현이 압권이다.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에 나온 장면 70개가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우주와 지구가 탄생하는 과정이 길게 나온다. 이 장면은 마치 장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감독은 우주의 탄생과 ..

읽고본느낌 2011.11.15

녹색세계사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이 지은 (A New Green History)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책이다. 부제가 'The Environment and the Collapse of Great Civilisations'이듯이 인간이 만든 문명이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고 약탈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관점을 지구로 돌리면 심각한 생태적 위기와 만난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하고 환경에 타격을 주는 방법을 써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과학 보고서라 할 정도로 정량적인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인간이 자연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짚어간다. 약 1만 년 전 농경정착사회가 되면..

읽고본느낌 201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