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805

소래풀

소래풀꽃은 유채꽃과 비슷한 시기에 핀다. 겉보기로는 유채와 닮은 점이 많아 '보라유채'라고도 불린다. 유채와 소래풀은 같은 십자화과에 속하니 계통상으로는 근연관계에 있는 종이다. 유채처럼 나물로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소래풀도 유채처럼 넓은 면적에 대량으로 기르면 비슷한 분위기를 낼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채와 섞어서 꽃밭을 만들면 좋을 듯하다. 유채나 소래풀이나 낱개보다는 군락으로 있어야 더욱 빛이 나는 꽃이다. 전주천에서 처음 만난 소래풀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04.18

문수사 겹벚꽃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문수사(文殊寺)는 겹벚꽃으로 유명하다. 전주에서 올라오는 길에 마침 겹벚꽃 때와 맞아 문수사를 찾았다. 봄비 내리는 평일이라 겹벚꽃 명소지만 드문드문 사람들이 보일 뿐이었다. 비를 맞은 벚꽃 색깔이 더 진해 보여 나에게는 안성맞춤의 날이었다. 겹벚꽃은 벚꽃이 지고나서 핀다. 꽃 색깔은 분홍색이다. 문수사 겹벚꽃은 대략 4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활짝 핀다. 같은 종류지만 겹벚꽃은 벚꽃과는 완연히 느낌이 다르다. 화려하고 풍성한 복사꽃을 보는 듯하다. 올해는 이곳저곳 아름다운 봄꽃을 자주 만나고 있다.

꽃들의향기 2024.04.16

정충묘 자목련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있는 정충묘(精忠廟)는 병자호란 때 나라를 위해 순국한 장군들의 절의를 기리고 제를 드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당시 남한산성에 포위되어 있는 인조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서 청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을 비롯한 4명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정충묘에는 자목련 숲이 있어 봄이 되면 목련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차를 타고 지나다가 갓길에 세우고 들르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만한 목련 숲을 만나기가 흔치 않다. 마침 때가 제일 잘 맞을 때 찾아본 정충묘 자목련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04.11

남한산성 얼레지(2024/4/8)

얼레지가 지고 있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남한산성을 찾았다. 사기막골에서 계곡을 타고 올라 능선 왼쪽으로 가면 검단산이 나오는데 이 주변에 얼레지가 핀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는 얼레지다. 얼레지를 처음 본 것이 30년 전 천마산에서였다. 그때 첫 느낌이 "참 당돌한 꽃이구나"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숙이고는 있지만 꼿꼿이 서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하게 과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꽃 모양이 연 날릴 때 실을 감는 도구인 얼레와 비슷하다고 해서 얼레지란 이름이 붙었다고 옆의 선배가 설명해 주었다. 나는 내심 마를린 먼로가 떠올랐다.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치마가 위로 올라간 명장면 말이다. 얼레지의 젖혀진 꽃잎이 꼭 그러했다. 그 뒤로 거의 매해 여러 산에서 얼레지를 만났다. 얼레지는 언제 봐도 찬..

꽃들의향기 2024.04.09

뒷산 진달래(2024)

뒷산에도 진달래가 활짝 폈다. 진달래가 폈다는 것은 봄이 곁에까지 다가왔다는 신호다. 매화나 산수유가 봄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고, 진달래가 펴야 제대로 봄이 온 것 같다. 이제 다음 차례은 벚꽃이다. 벚꽃이 만개하면 농익은 봄이 기다린다. 햇살 좋은 일요일 오전에 진달래를 감상하며 뒷산길을 걸었다. 이른 봄철 뒷산에는 산길을 따라 진달래가 곱게 핀다. 아직 산은 겨울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분홍색 진달래는 나무들에게 어서 빨리 잠에서 깨어나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진달래를 보면 철없이 뛰놀던 소년 시절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때 고향 뒷산에도 봄이 찾아오면 진달래가 피어났다. 온 산을 돌아다니다가 허기가 지면 진달래꽃을 따먹으며 다시 내달렸다. 진달래 앞에서 셀카를 찍었다. 이런 게 둔갑술..

꽃들의향기 2024.03.31

동네 매화

우리 동네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다. 남녘 매화 축제는 보름 전에 열렸지만, 여기는 이제 꽃봉오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곳까지 찾아와 준 봄이 기특하고 고맙다. 동네에서 만나는 매화는 아파트 단지 안에 조경수로 심은 것이다. 백매가 제일 많고 홍매와 청매가 한 그루씩 있다. 그중에서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홍매다. 수줍은 듯 발갛게 물든 색깔이 곱다. 올해 각 지자체에서 벚꽃 축제를 잡았지만 꽃이 없어 애를 태우고 있다. 요사이 흐리고 비 오는 날이 계속되어 벚꽃 개화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지자체에서는 벚꽃 축제를 일주일 연기하면서 이런 사죄 문구를 올렸다. "죽을죄를 졌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제 열흘 뒤면 총선이다. 집권당의 답답함도 같은 심정이지 않을까 싶다. "죽을죄를 졌습..

꽃들의향기 2024.03.29

우리 동네 첫 산수유꽃(2024/3/10)

우리 동네에도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했다. 남녘에서는 만개한 꽃소식이 들리지만 여기는 아직 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나무 꽃 중에서는 산수유가 제일 먼저 춘신(春信)을 전해준다. 옆에 있는 목련은 꽃봉오리가 기름칠을 한 듯 반들반들하다. 얼마 안 있어 터지기 시작하면 바라보는 사람을 혼미하게 만들 것이다. 겨울 잠바를 입고 외출했더니 등에 땀이 배었다. 봄이 성큼 가까이 왔다.

꽃들의향기 2024.03.10

유카

유카(Yucca)는 용설란과로 북아메리카의 남부 지역이 원산인 식물이다. 추위에 약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 노지에서도 그런대로 잘 자란다. 포도송이처럼 달린 꽃은 여름과 가을에 걸쳐 핀다. 유카는 관목이어서 오래 자라면 2층 높이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키가 큰 유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유카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꽃이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커서 볼품이 없다. 마치 키만 실속없이 큰 꺽다리를 보는 것 같다. 이런 류의 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취향은 아니어서 흘낏 스쳐보며 지나간다.

꽃들의향기 2023.10.20

서양등골나물(2)

이즈음 산야에서는 하얀 서양등골나물 꽃을 흔히 볼 수 있다. 들국화류와 함께 제일 많이 보이는 꽃일 것이다. 생태계를 파괴한다고 원성을 받지만 척박할수록 잘 자라 헐벗은 땅을 덮어준다. 동네의 벌목한 산등성이에도 서양등골나물이 제일 먼저 나타나 꽃을 피웠다. 서양등골나물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귀화식물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는 40년 정도 되었다.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식물을 밀어내고 산야를 점령해가고 있다. 한때는 서양등골나물 퇴치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서양등골나물이 무슨 죄가 있을까. 너도 너무 욕심 내지 말고 숲의 다른 동무들과 사이좋게 지내렴.

꽃들의향기 2023.10.12

닥풀

처음 봤을 때는 부용화인 줄 알았다. 미심쩍어 검색해 보니 닥풀 또는 금화규라 부르는 식물이다. 닥풀은 닥나무로 종이를 만들 때 첨부하는 용도로 쓰여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뿌리를 약재로 사용한다. 닥풀의 연한 노란색 꽃잎에서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주로 약용으로 재배하는 것 같지만 꽃은 관상용으로도 괜찮아 보이는 닥풀이다.

꽃들의향기 2023.10.05

천사의나팔꽃

동네 골목길 어느 집 마당에 천사의나팔꽃이 활짝 폈다. 얼마나 왕성하게 자랐는지 키가 2m를 훌쩍 넘는다. 천사의나팔꽃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가지과 관목이다. 조건만 맞으면 일 년 내내 꽃을 볼 수 있다. 꽃은 크고 무거워서 줄기에 매달려 아래를 향한다. 하늘에서 땅을 향한 모습이 천사가 부는 나팔이 연상되어 천사의나팔꽃(Angel's trumpet)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꽃에 귀를 갖다 대니 천사의 감미로운 속삭임 대신 군대 생활 3년 동안 매일 아침 들었던 트럼펫 기상나팔 소리가 울려 퍼져 쓴미소를 짓게 된다.

꽃들의향기 2023.09.30

동네 공원 무궁화

무궁화를 볼 때면 과연 우리나라 국화(國花)로 적당한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국화로서 사랑을 받는 꽃이 못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궁화를 심지 않는 제일 큰 이유는 벌레들이 너무 꼬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오랫동안 피기는 하지만 깔끔하거나 청결한 꽃은 아니다. 옛사람의 글에서도 무궁화가 언급된 경우는 드물다고 알고 있다. 중국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전하길, 중국 도로변에 무궁화를 엄청 많이 심어 놓아서 놀랐다고 한다. 무궁화는 우리나라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더 대접을 받는 것 같다. 동네 공원에 계속하여 무궁화가 피고지고를 반복하고 있다. 너무 오래 볼 수 있는 꽃이어서인지 그다지 눈길을 끌지는 못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안타까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래서 꽃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

꽃들의향기 2023.09.18

이웃집 능소화

능소화(凌霄花)는 특이한 한자 이름을 가지고 있다. '없신여길 능(凌)'에 '하늘 소(霄)'를 쓴다. '하늘을 능가하다' '하늘을 업신여기다'라는 뜻이다. 이름에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능소화는 오랫동안 꽃을 볼 수 있다. 6월에 피기 시작해 9월까지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 고향 마을의 이웃집 마당에 핀 능소화가 담을 넘어와 주황색 꽃을 드리웠다. 활짝 핀 꽃, 봉오리를 맺은 꽃이 보이고, 바닥에는 떨어진 꽃들도 있다. 능소화는 동백처럼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진다. 낙화한 꽃이 주는 정취를 즐길 수 있는 꽃 중 하나다.

꽃들의향기 2023.09.12

악마의나팔꽃

이 꽃에 처음 '악마'라고 명명한 이는 누구일까. 무척 짓궂은 사람일 것 같다. 물론 '천사의나팔꽃'에 대응하여 지은 이름이긴 하겠으나, 그래도 꽃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다. 꽃도 인간이 붙여준 자기 이름을 들으면 억울해할 게 분명하다. 천사의나팔꽃(Angel's trumpet)이나 악마의나팔꽃(Devil's trumpet)이나 같은 독말풀속이다. 둘 다 독이 들어 있는 식물이긴 마찬가지다. 차이점은 천사의나팔꽃은 꽃이 땅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악마의나팔꽃은 꼿꼿하게 하늘을 향한다. 세가 훨씬 기운차 보여 좋다. 열대아시아 원산으로 꽃은 8, 9월에 핀다.

꽃들의향기 2023.08.30

꽃범의꼬리

이웃 텃밭이 환한 이유는 밭 둘레에 이 꽃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보통 텃밭에는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무엇이라도 심으려고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밭 둘레에 옥수수 하나라도 더 심으려고 최대한 넓혀 놓았다. 그런데 이 밭 임자는 경계에 꽃을 심었다. 비록 만나지는 못했어도 마음의 여유가 전해져 미소가 인다. 나도 가을에는 코스모스 씨라도 받아야겠다. 이 꽃은 꽃범의꼬리다. 피소스테기아(physostegia)라고도 한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흰색, 분홍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꽃의 어딘가에 범의 꼬리와 닮은 데가 있는 모양이다. 사실 범의 꼬리를 닮은 것은 범꼬리라 불리는 다른 식물이 있다. 꽃범의꼬리는 외래종이지만 흔히 보는 여름꽃이 되어가고 있다.

꽃들의향기 2023.08.14

제비콩

넝쿨식물인 제비콩은 길만 잘 만들어주면 엄청난 높이까지 성장한다. 이 제비콩은 3층을 지나 옥상까지 올라갈 기세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면서 관상용으로도 적당하다. 꽃은 보라색이고 콩꼬투리 역시 짙은 보라색이다. 옛날에 처갓집이 단독주택에 살 때 여름이면 마당에 심은 제비콩이 2층 옥상까지 올라가서 집을 시원하게 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제비콩을 보니 내년에는 텃밭이나 베란다에서 제비콩을 길러볼 생각이다. 따가운 여름 햇볕을 가려주면서 꽃과 열매까지 선사하니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꽃들의향기 2023.08.07

일일초

이웃에 자그마한 집이 있다. 터가 좁아서 마당도 없이 길에서 바로 현관으로 연결된다. 돈이 많은 집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여느 집과 다른 점은 집 주변이 항상 꽃으로 풍성하다. 땅이 없으니 화분에 심은 꽃들이다. 집주인을 만나본 적은 없지만 누구보다 마음이 고운 분이실 것 같다. 화분 옆에는 꽃에 물을 주기 위한 페트병이 놓여 있는데, 반쯤 물이 담겨 있다. 꽃을 가꾸는 분은 약하신 몸의 할머니일지 모르겠다. 젊은이 같다면 남은 물을 저렇게 밖에다 남겨두지는 않을 테니까. 올여름에는 붉은색 일일초가 이 집을 에워싸고 있다. 일일초는 페어리스타와 비슷한 품종이다. 고향은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라고 한다. 열대 식물이니 지금이 제 철을 만난 셈이다. 한자로 '日日草'라 쓴다면 매일매일 피는 꽃을 볼 수 있다..

꽃들의향기 2023.07.29

족제비싸리

물가나 숲 언저리에서 자주 봤지만 그동안 이름을 특정하지는 못했다. 잎이 아까시를 닮아서 아까시의 다른 종류로 추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꽃이 아까시와는 영 딴판이다. 색깔이나 모양이 가까이하기엔 꺼려진다. 꽃에서 이런 인상을 받는 건 드문 일이다. 이 식물의 이름은 족제비싸리다. 꽃 색깔이 족제비와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족제비싸리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사방공사를 할 때 경사면에 심는다. 아까시나 싸리와 용도가 비슷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녀석이니 이제는 제대로 이름을 불러줘야겠다.

꽃들의향기 2023.06.02

노루발풀

요사이는 꽃을 찾아다니지 않으니 새로운 꽃을 볼 기회가 없다. 어쩌다가 처음 보는 꽃을 만나게 되면 운이 좋은 때다. 며칠 전 산길을 걸을 때 만난 이 노루발풀이 그랬다. 앞서 가던 몇 사람이 뭔가를 유심히 들여다보기에 인연이 닿은 것이다. 그들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쳤으리라. 노루발풀은 꽃 생김새가 노루발굽을 닮아 붙은 명칭이다. 산속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노루발풀은 항균작용이 있어서 약초로 쓰인다. 초여름의 숲에서 귀엽고 올망졸망하게 피어 있는 노루발풀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3.06.02

다육이(7)

이곳으로 이사를 온 초기에는 다육이를 사 모으고 정성들여 키웠다. 대여섯 해 반짝했을까, 그 뒤로는 거의 방치 상태가 되었다. 물을 주는 것도 늘 때가 늦어서 쭈글쭈글해질 정도가 되어야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물통을 든다. 다행히 다육이는 물이 부족해도 잘 버텨냈다. 반면에 풍란은 반 이상이 말라죽었다. 시간이 흐르면 관심은 멀어지고 열정은 시든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 번 맺은 인연이 무서워 야박하게 내치지 못한다. 상대를 향한 미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고운 정 미운 정이 아닐까. 십 년 넘게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는 다육이들이다. 창 밖 낙숫물 소리에 더욱 배가 고플 너희들을 위해 오늘은 시원하게 목을 축여주려무나!

꽃들의향기 2023.05.28

물빛공원 장미(2023)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장미의 달이기도 하다. 온갖 품종의 장미가 서로 자태를 뽐내며 화려하게 꽃피는 때가 지금이다. 전국에서는 장미 축제가 열린다. 서울에서는 올림픽공원, 서울대공원, 중랑천 장미가 규모가 크면서 유명하다. 이름이 나면 당연히 사람들이 몰릴 수밖에 없고 번잡하다. 우리 동네 물빛공원에 있는 작은 장미 터널이다. 아담한 소규모여서 한적하니 좋다. 대단한 볼거리가 아니니 일부러 찾는 사람은 드물다. 공원을 걷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에게 5월이 주는 선물이다. 나에게는 요란한 행사장보다 이런 소박한 장소가 더 낫다. 살펴보면 사는 곳이 어디든지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내 주변의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도 쏠쏠한 것이다.

꽃들의향기 2023.05.24

백모란 한 송이

가는 줄기에 딱 한 송이만 피었다. 아마 이 세상에 나와서 첫 꽃을 피웠는지 모른다. 길을 가다가 눈길을 끈 모란이다. 나는 모란이 애호하는 꽃이 아니어서 그저 일별하고 지나가는 정도지만 이 모란에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만히 바라보니 순백의 색깔이 순결하면서 고귀하게 느껴진다. 그래, 붉다 못해 검기까지한 색깔보다는 훨씬 낫다. 모란이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온 때는 기록에 남아 있다. 신라 진평왕 때 당나라에서 모란 그림과 꽃씨를 보내왔다. 뒤에 선덕여왕이 된 공주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걸 보고 이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꽃씨를 심어보니 향기 없는 꽃이 피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이 어릴 때부터 영민한 소녀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코를 대보니 전하는 이야기와는 달리 향기가 진하다. ..

꽃들의향기 2023.05.14

단양휴게소 은방울꽃

내가 좋아하는 봄꽃 삼총사는 노루귀, 은방울꽃, 앵초다. 그중에서도 아침 숲길에서 이슬을 송골송골 매달고 부끄러운 듯 숨어 피어 있는 순백의 은방울꽃을 보면 쪼그린 무릎이 펴지지를 않는다. 맑은 종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탓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야생의 은방울꽃을 만나지 못한 지 꽤 되었다. 중앙고속도로 단양팔경휴게소 뒤편에 넓은 꽃밭이 있다. 고향에 내려갈 때면 들러서 눈요기를 하는 곳이다. 이번에는 화단 한편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은방울꽃이 있었다. 고맙다, 이렇게라도 널 만나는 올봄이구나. 고개 들어 하늘 보니 아련한 어느 봄날이 떠올라 따스해진다.

꽃들의향기 2023.05.11

동네 등꽃

차로 30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등꽃 명소가 있다. 차려입고 나가야 하는 게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러다가 등꽃이 지면 아쉬워할 게다. 다른 인생사와 마찬가지다. 집 가까이서도 등꽃을 볼 수 있다. 동네 산책 중에 만나지만 볼 때마다 감탄한다. 여기는 야생 상태로 자라는 등나무다. 이 나무 앞에 서면 봄은 보라색이다. 그런데 올해는 색깔이 좀 시무룩하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식물이다. 등나무가 얼마나 힘이 세고 질긴지 잘못 등나무와 인연을 맺으면 자리를 내준 나무는 죽을 지경이 된다. 사람 세상에서도 이런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식물 세계든 인간 세계든 마음 편하게 살자면 우선 이웃을 잘 만나야 하는 법이다. 세상살이에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등꽃을 ..

꽃들의향기 2023.05.05

근린공원 철쭉

진달래, 벚꽃이 지고 철쭉의 계절이 찾아왔다. 어딜 가나 화려한 색깔의 철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개인적으로는 철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요란하게 화장을 한 여인네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나는 작고 소박해서 눈에 뜨일락말락한 꽃에 끌린다. 동네 근린공원에도 경사면에 심어진 철쭉밭이 있다. 조성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가까이서 철쭉 군락을 볼 수 있다는 것만도 감사한다. 철쭉은 이렇듯 무리지어 피어있어야 볼 만하다. 멀리서 보면 꽃주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철쭉과 연산홍을 구분하는 것에 아직 자신이 없다. 내가 소싯적에 동네 산에서 만난 철쭉은 - 당시는 철쭉이라 하지 않고 진달래라 불렀고, 진달래는 참꽃이라 했다 - 아래 사진처럼 연분홍 색깔이었다. 워낙 뇌리에 강하게 남..

꽃들의향기 2023.04.22

탄천 벚꽃

토요 번개 모임이 있어 야탑에 나간 길에 전후로 짬을 내어 탄천 벚꽃을 구경하다. 수도권에서는 지금이 벚꽃의 절정이다. 이맘 때 탄천은 어딜 가나 벚꽃 속에 파묻힌다. 오늘 낮기온은 26℃까지 올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했다. 다음주 중반에는 전국에 비가 내린다니 벚꽃이 곁에 있을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탄천의 지류 중 하나인 여수천을 걸으며 만난 2023년 봄 풍경이다.

꽃들의향기 2023.04.01

봉은사 홍매

봉은사 홍매는 서울에 봄이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피었다. 지금이 만개 상태인데 색깔은 예상보다 선명하지 못했다. 지난 1월의 강추위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봉은사에는 꽃 구경하며 산책하며 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홍매 외에도 백매, 산수유도 활짝 폈고 제비꽃도 눈에 띄었다. 봄한테서 기습 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참새들이 홍매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놀고 있었고, 옆의 나무 높은 곳에서는 흰꼬리수리(?)가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연등을 다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시골 학교 운동회의 만국기를 보는 것처럼 설레었다. 사월 초파일 부근에 다시 한번 찾아와봐야겠다. 20여 년 전 봉은사 옆에 있는 학교에서 근무했을 때는 점심을 먹고 나면 봉은사 숲길..

꽃들의향기 202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