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5

봄내길 2코스를 걷다

코로나19로 멀리 나가는 걸 자제하다가 두 달만에 동네 밖으로 나갔다. 강촌에 있는 봄내길 2코스를 걷기 위해서였다. '봄내길'이라는 이름이 왠지 이 봄과 어울릴 것 같아 선택한 길이었다. 아내와 함께 손주가 동행했다. 봄내길은 춘천 지역의 트레킹 길이다. 전부 일곱 개 코스가 있다. 이번에 걸은 2코스는 별칭이 '물깨말구구리길'이다. 안내판 설명에 나온 대로 '물깨말'은 '물가 마을'이란 뜻이고, '구구리'는 '골 깊은 아홉 굽이를 돌아드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물깨말과 구구리를 거치는 길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구곡폭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반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임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을 길게 올라야 한다. 봄내길 2코스는 전체 길이가 7.2km이고, 소요 시간이 두 시간 반으로 나와..

사진속일상 2020.04.14

손주와 남한산성에서 놀다

손주를 데리고 남한산성에 갔다. 산성마을에 주차하고 현절사를 지나는 산길에 들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서 처음에는 무척 차가운 날씨였다. 아이들은 시력이 엄청 좋다. 어른 눈에는 띄지 않는 것을 무척 잘 잡아낸다. 또한, 움직이는 것에도 매우 예민하다. 슈퍼 레이더이다. 아이 눈에는 길을 걸으며 보이는 모든 것이 신기한가 보다. 나는 사소한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아이를 신기해 한다. 손주는 다른 아이에 비해 자연물에 호기심이 많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이든 움직이는 걸 찾아내고 놀려고 한다. 아이들이 '개미 박사'라고 불러줄 정도다. 식물에 대한 관심도 많다. 이번 산길에서도 새로운 꽃 이름을 여러 개 알려 주었다. 할머니와 손 잡고 성곽길을 걷는다. 이만큼 컸으니 이젠 어디든 ..

사진속일상 2020.04.09

만만한 뒷산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하니 만만한 게 뒷산이다. 뒷산을 찾는 빈도가 두 배는 늘었다. 그 또한 좋은 일이다. 만화방창한 봄이 집 주변이라고 비껴갈 리 없다. 코로나19로 지구가 조용해지고 깨끗해졌다는 보도가 연신 나온다. 인간 활동이 주춤해진 결과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부산스럽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여행' 대신에 '소풍'이라는 말이 되살아날까. 탐욕을 좀 덜어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코로나19 전과 후로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말하는데, 과연 어떻게 변한다는 의미일까. 국가간 연대나 차별을 넘어선 인류의 통합이라는 가치가 살아날 것인가. 위기는 기회가 된다지만 IMF나 금융 위기를 겪고 나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방향 전환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코로나로 잠깐 멈칫하겠지..

사진속일상 2020.04.07

뒷산 진달래(2020)

뒷산에 진달래가 만개했다. 진달래를 보니 산과 들판으로 천방지축 뛰놀던 유년 시절이 생각난다. 집에서 보면 뒷산은 봄이면 진달래로 발갛게 물들었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진달래가 많은 민둥산이었다. 뛰놀다가 출출해지면 꽃잎을 따먹었다. 소나무에 물기가 돌면 가지를 꺾어 속살을 씹어먹기도 했다. 그런 것이 군것질거리가 된 어린 시절이었다. 그때는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했다. 철쭉이 진달래였다. 훗날 서울에 와서야 이름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고치는 데 한참 걸렸다. 뇌리에 새겨진 각인이 깊은지 진달래보다는 참꽃이라고 해야 유년의 봄이 쉽게 다가온다. 참꽃 뒤에서 옛 동무가 까꿍, 하면서 뛰쳐나올 것만 같은 산길이었다.

꽃들의향기 2020.03.27

초봄의 경안천 걷기

겨울옷은 두껍고 봄옷은 얇다. 햇살이 비치면 따스하다가 바람이 찬 기운을 몰고 휙 지나가면 몸이 움츠러든다. 겨울이 지나갔지만 아직 봄이 완전히 오지는 않은, 지금이 그런 때다. 경안천을 따라 난설헌 묘까지 가려고 길을 나섰다. 묘는 걸어서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천변을 따라 걷는 길이 좋은데, 마지막 부분에서는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 도로에 올라서 보니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없어 위험해 포기했다. 다른 접근로를 알아봐야겠다. 천변에 긴 띠 모양의 생태연못이 있다. 수초를 이용해 동네에서 나오는 물을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는 것은 좋은데, 처리 용량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경안천은 도시 하천에 비하면 인공의 느낌이 덜 하다. 자연스런 모습이..

사진속일상 2020.03.19

물빛공원 세 바퀴

코로나19가 준 선물이 있다. 아내와 함께 걷기를 하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실내에서 만나는 강좌나 모임이 취소되니 어쨌거나 둘이 놀 수밖에 없다. 집 가까이 있는 물빛공원을 세 바퀴 돌다. 물빛공원은 홍중저수지 주변에 산책로를 만들고 간단한 시설을 들인 공원이다. 한 바퀴 돌면 2km다. 세 바퀴 돌면 6km를 걸은 셈이고, 시간으로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 정도가 딱 알맞다. 어느새 산수유 꽃봉오리도 피어났다. 이쯤 되면 남도에는 꽃잔치가 벌어졌을 것 같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보도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와중에 꽃구경은 엄두를 낼 수 없다. 가능하면 집안에서 지내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다. 공원 길은 평시보다 사람이 많다. 활동 부족을 집 가까운 데서 걷기로 만회하려는 것 같다. 그..

사진속일상 2020.03.03

연이틀 걷다

코로나19로 떠들썩하지만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바깥출입이 드문 방콕형이라 평소대로 지내는 게 격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아내는 생활 패턴이 확 바뀌었다. 배우러 다니는 강좌들이 닫히고, 집안에서만 버텨야 한다. 요사이는 답답해하는 아내 들러리로 같이 바깥나들이를 한다. 덕분에 연이틀 걷기를 했다. 공기가 깨끗하고 날씨가 좋은 탓도 있었다. 어제는 물안개공원을 걸었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으나 공원이 워낙 넓어서 안에 들어가니 인적이 드물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사람들은 되도록 타인과 접촉을 피하려 한다. 북적이는 곳보다는 이런 한적한 장소가 인기다. 공원에는 평소보다 사람들이 더 늘어났다. 단체는 없고 전부가 두셋 정도의 가족끼리다. 우리도 그동안은 따로따로 노는 경우가 많았는데..

사진속일상 2020.02.27

손주와 오르는 뒷산

뒷산에 가고 싶다고 손주한테서 연락이 왔다. 손주와 함께 뒷산에 오를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먼저 요청을 하니 잘된 일이었다. 아내도 따라나섰다. 뒷산조차 겁내던 아내는 손주의 에너지를 빌려 얼떨결에 정상까지 다녀왔다. 할머니에게 손주는 힘이 세다. 아이는 산길에서도 분주하다. 이것저것 만지고, 낙엽을 발로 긁고, 무슨 나무냐고 묻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딸이었던 내 자식을 키울 때와는 딴판이다. 딸은 너무 수동적이고 얌전해서 걱정했었는데, 이 녀석은 천방지축이다. 생명의 활기를 보며 감탄하다가도 뭔가 숙연해지며 먼 하늘을 쳐다 보게 된다. 보통 때 평일이면 두세 시간 산길에서 겨우 한두 사람 만나는 정도다. 그런데 이날은 10여 명을 만났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붐비는 바깥 대신 인적 드문 뒷산..

사진속일상 2020.02.25

입춘 지난 뒷산

입춘 즈음에 반짝추위가 찾아오더니 다시 포근해졌다. 이제부터는 양(陽)의 기운이 흥하면서 뭇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겨울잠에서 깨어날 것이다. 햇볕 좋은 날, 뒷산에 올랐다. 주로 집에 있다 보니 햇볕 쬐는 시간이 부족하다. 양지 바른 쉼터에서 태양을 향해 앉아 햇빛바라기를 하다. 얼굴에 닿은 햇살과 그 햇살을 그리워한 피부가 서로 희롱하는 즐거움이 느껴진다. 걸을 때도 파란 겨울 하늘이 좋아 자꾸 고개를 들다. 산등성이 낙엽 가운데 어딘가에 샛노란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만 같다. 한 달 전부터 잎눈을 낸 진달래는 그다지 진도가 안 나갔다. 너무 성급했던 걸까, 봄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이 길다. 우리 동네 양지 바른 비탈에도 개불알풀꽃이 피었다. 사람들 얘기로는 꽃을 본 지 한참 되었다 한다. 확..

사진속일상 2020.02.08

봄날 같은 겨울 속 전주천을 걷다

전주에 내려간 길에 잠시 짬을 내 전주천을 걸었다. 백제교에서부터 상류 방향으로 한벽당까지 걸었는데, 지나간 다리를 체크해 보니 11개였다. 거리로는 6km 정도 될 것 같다. 남쪽으로 내려왔으니 안 그래도 더욱 봄 같은 날씨였다. 낮 기온이 10도 가까이 올랐다. 역시 전주천에서도 겨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주에서도 올해는 눈 구경을 못했다고 한다. 산책로를 따라 개불알풀 꽃이 활짝 폈다. 아무리 남쪽 지방이라지만 굉장히 빠른 편이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는 옆으로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갔다. 전주 분들에게는 일상이 된 풍경인가 보다. 한 시간 정도 걸어서 남부시장 옆을 지났다. 남부시장은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조선시대 3대 시장 중 하나라고 한다. 볼 때마다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사진속일상 2020.02.01

수상한 겨울

소한, 대한이 지나가며 겨울의 정점을 통과했지만 유례없이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낮 최고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하루도 없다. 서울 기준으로 소한인 6일은 4.6도, 대한인 20일은 5.5도였다. 어느 날 밤에는 빗소리에 잠이 깨기도 했다. 겨울 새벽에 듣는 빗소리가 기묘했다. 경안천변도 겨울 풍경이 아니다. 아무리 따뜻한 겨울이라 해도 그늘진 곳에는 얼음이나 눈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올해는 말끔하다. 강물에서도 해동이 끝난 봄 냄새가 난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좋지만, 무슨 겨울이 이렇나 싶다. 목도리, 장갑을 모두 풀고 벗어야 했다. 마른 풀 속에 무슨 꽃이라도 피지 않았을까, 살피게 된다. 도서관에 들린 길에 시내를 거쳐 경안천 주변을 걸었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자주 걸어..

사진속일상 2020.01.21

추위가 사라진 겨울

겨울인데 겨울답지 않다. 올겨울 들어서는 제대로 추워 본 날이 없다. 서울 기준으로 작년 12월 1일부터 오늘(1월 16일)까지 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사흘밖에 안 된다. 12월 5일이 -0.2도, 6일이 -1.0도, 31일이 -4.5도였다. 이번 겨울 47일 동안 낮에도 영하인 날이 고작 3일이었다. 겨울이 실종되었다. 강원도에는 겨울비가 내려 얼음축제장이 엉망이 되었다. 앞으로 예보를 보면 1월 말까지는 이런 날씨가 이어진다고 한다. 겨울인데 눈과 얼음을 보기 힘들다. 집 주변 개울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마치 봄이 된 것 같다. 뒷산에 올랐는데 나뭇가지에는 연초록 잎눈이 돋았다. 기후 변화가 수상하다. 따스한 겨울이 사람 살기에는 다행이다 싶다가도 왠지 꺼림직하다. 예견하지 못하는 변고가 닥..

사진속일상 2020.01.16

내가 싫어지는 날

내가 싫어지면서 우울한 날이 있다. 그런 때는 운동화 끈을 매고 집 밖으로 나간다. 집안에 있으면 어두운 감정의 늪에 점점 빠져들기 때문이다. 정처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타박타박 걷다 보면 토닥토닥 나를 다독여주는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 "다 괜찮아." "아무렇지 않은 거야." 오랜만에 걸어보는 경안천이다. 경안천에는 한낮이 되었는 데도 아침 서리가 남아 있다. 징검다리를 건너 겨울 햇빛을 정면으로 쬐며 남쪽으로 내려간다. 시간이 지날 수록 햇볕에 서리가 녹듯 마음 속 응어리가 풀어진다. 못난 '나'가 내 안에서 그제야 미소를 짓는다. 두 시간여를 걷고 시장 안에 있는 단골 순댓국집에 들어간다. 점심때가 한참 지난 오후라 식당 안은 손님 너덧 명이 있을 뿐 조용하다. ..

사진속일상 2019.12.24

12월 중순 뒷산

한 달 반만에 뒷산을 찾다. 걷기를 위한 걸음도 꼭 그만큼만이다. 올해만큼 걷기를 소홀히 한 적도 없다. 등산은 두세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핑계는 있지만, 그냥 게을러졌다고 해야겠다. 며칠 전 모임에 나갔더니 다들 휴대폰으로 걸음수를 체크하며 하루 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Y는 11월의 하루 평균 걸음수가 2만 보가 넘었다며 자랑스레 보여주었다. 나도 분발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한 번 발동이 꺼지니 다시 불붙이기 쉽지 않다. 더구나 겨울이 닥쳤으니 해동되는 내년 봄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다. 오랜만에 걸으니 우선 숨이 차다. 내 몸이 이렇게 무거웠나 싶다. 속도를 늦추고 쉬엄쉬엄 오른다. 등산화를 신고 집 밖을 나서기가 어렵지 어쨌든 나오면 좋다. 맑고 차가운 산기운을 흠뻑 들이킨다..

사진속일상 2019.12.16

혼자 걷는 뒷산

가을 짙어가는 뒷산을 혼자 걷다. 소문난 장소를 찾지 않아도 가을은 바로 옆에 와 있다. 나만의 산길이 무척 호젓하고 좋았다. 두 시간여 산길에서 딱 한 사람밖에 만나지 못한 나를 위한 길이었다. 세상의 일에 대한 성취나 소유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오직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도 있다. 지상(至上)의 행복은 지상(地上)의 일을 떠나 있다. 오늘처럼 뒷산을 홀로 걸을 때 오로지 존재에서 오는 행복을 잠깐 맛본다. 오늘 산길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은 환자복을 입은 분이었다. 뒷산 밑에 요양병원이 있는데 주로 중환자가 계신다. 아내가 봉성체 봉사하러 이 요양병원을 주기적으로 방문하는데 환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간접적으로 듣고 있다. 오늘 산길에서 만난 분은 환자복 위에 겨울 패딩을 입고 모자를 쓰고 마스크를 한..

사진속일상 2019.11.02

주전골 단풍

올해 설악산 단풍 감상은 십이선녀탕으로 잡았다. 너무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해서 가는 도중에 점심까지 먹고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아뿔싸, 12시까지만 입장이 된다며 들어가는 걸 막는다. 헛걸음이 되었다. 한두 시간만 단풍 구경을 하고 나오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긴 시간 등산하는 사람이야 조난 위험 때문에 늦은 시간 입장을 통제할 수 있다지만 잠깐의 단풍 구경도 막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투덜대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 한계령을 넘어 주전골로 향했다. 3년 전에 찾았던 곳이다. 만경대를 개방하면서 구경하러 갔는데 만경대 입구에 긴 줄이 서 있어 주전골만 보고 되돌아왔었다. 개방 첫해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워낙 몰리니 지금은 만경대에 가기 위해서..

사진속일상 2019.10.22

박두진 문학길

안성에 간 길에 '박두진 문학길'을 걸어보다. 박두진 시인의 고향이 안성이고, 말년의 집필실이 이곳 금광호수변에 있었다. 문학관을 비롯해서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 호수 주변에 만들어졌다. 박두진 문학길도 그중 하나다. 시인이 4.19 혁명 직후 연세대에서 해직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는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반대한 서명 문인 1호였다고 한다. 당대 현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문단 정치와도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걸은 분이다. 혁명 뒤에 쓴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는 시를 보면 선생의 의기를 느낄 수 있다. 시의 한 구절은 이렇다.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사진속일상 2019.10.15

한양 삼십리 누리길 걷기

'한양 삼십리 누리길'은 경기도 광주시에서 최근에 만든 길이다. 광주 목현동에서 남한산성 산성리까지 12km 길이로 기존의 등산로와 마을길을 연결했다. 4개 구간으로 되어 있으며 오전리, 불당리, 검복리를 차례로 지난다. 옛날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이 이용하던 길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과거 시험 길'을 주 컨셉트로 잡은 것 같다. 경떠회 다섯 명이 전 구간 걷기 도전에 나섰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만나 역방향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남한산성 7암문이 출발점이다. 산국이 곱게 피어 있다. 회원 여섯 중 하나만 빠지고 다섯 명이 만났다. 우리는 전부 '좌빨'이라 불릴 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다. J가 새로운 용어를 하나 알려줘서 한참을 웃었다. '대깨문'이라고, '대가리가 깨져도 문..

사진속일상 2019.10.12

태풍 지나가고

태풍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태풍 뒷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날, 하늘에 취해 경안천을 걸었다. 청석공원에 파크 골프장이 생겼다. 멀리서 봤을 때는 게이트볼인 줄 알았는데 요사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새로운 스포츠다. 파크 골프는 골프를 노년에 맞게 변형시킨 운동인 것 같다. 좀 더 나이 먹으면 한 번 해 볼만 하겠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밝은 햇살을 한껏 받았다. 저 맑고 파란 하늘을 닮고 싶어서.....

사진속일상 2019.10.03

초가을 뒷산 한 바퀴

신경이 날카롭고 짜증이 늘어났다. 머리가 무겁고 사는 게 별 재미가 없다. 무엇보다 잠을 편안히 자지 못하는 영향이 크다. 기본에서 덜거덕거리니 우울감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다. 계절마저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가볍게 배낭을 매고 뒷산에 오른다. 목 마른 것도 참고 한 번의 쉼도 없이 정상에 이른다. 바지런히 걸으니 꼭 한 시간이 걸린다. 땀을 흘리니 몸이 개운하고 머리도 조금은 가벼워진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모든 게 내 '마음'으로부터 기인한 게 아니겠는가. 바깥 탓을 대지만 사실은 내면에 관한 문제다. 깊게 심호흡을 한다. 산길에서 도토리를 줍는 한 남자를 만났다. 인공관절 수술을 한 사연이며,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일흔 셋인데 지금도 버스를 몬다고 했다. 직장인을 아침 저..

사진속일상 2019.09.27

신장생태공원을 걷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뒤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공기도 극상으로 깨끗하다. 아무리 방콕파라 해도 그냥 집 안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이다. 가까운 하남의 신장생태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나가다. 11년 만에 다시 찾아보는 곳이다. 신장생태공원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산곡천과 덕풍천 사이에 있다.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를 이룬 공원이다. 서울의 한강변처럼 건물이나 위락 시설 없이 산책로만 있다. 산책로 밖으로는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전에 없던 메타세콰이어 길이 새로 생겼다. '위례 강변길'이라는 표찰이 달려 있다. 길이가 1.3km 가량 되는데 앞으로 10년만 더 자라면 명품길이 될 것 같다. 산곡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에 팔당대교가 있다. 건너편이 예봉산이다. 한강에는 자연스레 섬이 생기고 풀이 무성..

사진속일상 2019.09.23

맑고 푸른 날

웬일일까, 올해는 늦봄부터 초가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세먼지 염려 없이 살고 있다. 연일 맑고 푸른 날이다. 시국은 어지러워도 자연은 더없이 청명하고 밝다. 이 좋은 날씨에 이끌려 아내와 밖에 나섰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이 좋아 일부러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반바지도 입었다. 피부도 얼마나 생생한 햇빛을 원하겠는가. 드러낼 수 있는 한 한껏 쬐어주고 싶었다. 그늘이 아니라 햇볕 따라 걸었다. 후줄근한 마음도 이 쨍한 햇볕에 말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뽀송뽀송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비 뒤여서인지 목현천 냇물이 더욱 깨끗하다. 송사리떼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목현천은 경안천과 합류하며 넓은 하천이 된다. 더 내려가면 경안천은 한강과 합쳐진다. 세상 살면서 근심 걱정 없길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

사진속일상 2019.09.17

횡성호수길(5구간) 걷다

횡성호수길은 강원도 횡성 갑천면에 있는 횡성호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다. 6개 구간이 있으며 전체 길이는 32km다. 이중에서 인기 있는 구간은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다시 회귀하는 5구간이다. 풍광이 제일 좋고 길이도 4.5km로 걷기에 적당하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호수를 옆에 끼고 걷는다. 흙길이고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호수 건너편의 전원주택 단지가 무척 마음에 든다.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 건 왜일까. 길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어 눈요기도 쏠쏠하다. 횡성호수길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관리도 깔끔하게 잘 하는 것 같다. 2000년에 만들어진 횡성댐은 원주, 횡성..

사진속일상 2019.09.03

뒷산 세 시간

당신에게 제일 편안한 장소는 어디입니까? 나한테 묻는다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대답이 튀어나올 것이다. 뒷산이다. 뒷산길을 걸을 때 나는 제일 행복하다. 높지 않아도 뒷산의 품은 넉넉하고 따스하다. 뒷산은 말로 무엇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내 마음은 부드러운 위무의 손길을 느낀다. 모난 생각도 산길을 닮아 부드러워진다. 집에서 뒷산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바지런히 걸으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그렇게 바삐 걷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세 시간에서 네 시간까지 걸린다. 숲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쉬는 시간은 마음의 포만감에 비례한다. 여름 산은 성가시게 달려드는 날벌레와 모기 때문에 짜증을 유발한다. 뒷산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도 뒷산 찾는 횟수가 뜸했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 부는..

사진속일상 2019.08.31

햇볕 걷기

아침부터 우울하다. 눈 뜨자마자 자동으로 확인하는 뉴스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국내나 국외 관계 모두 삐거덕거린다. 그동안 잠잠하던 단톡방에서도 '수꼴'의 목소리가 힘을 받으며 큰소리 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혜롭게 이 난국을 헤쳐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햇볕을 받고 싶어 한낮에 밖으로 나간다. 적당히 햇볕을 쬐야 하는데 덥다고 방안에만 있으니 우울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일부러 반바지를 입고 가볍게 배낭을 맸다. 자기 선전하는 국회의원과 'No Japan'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는 삼거리다. 집에서 20여 분 걸어 나가면 목현천이 나온다. 2년 전에 개울을 완전히 파헤치며 배관 공사를 했는데 금방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있다. 백로나 왜가리가 자주 찾는 걸 보니 물고기도 다시 들어온 듯하다. 자연..

사진속일상 2019.08.26

남한산성 벌봉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물러났지만 꼬리가 길다. 짙은 구름이 벗겨질 줄 모른다. 간간이 가는 비가 뿌리는 날, 산성리에 차를 파킹하고 남한산성 벌봉에 다녀오다. 남한산성은 하나의 성곽으로 되어 있지 않고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다. 벌봉은 본성이 아닌 봉암성(蜂巖城)에 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내부를 볼 수 있는 벌봉을 청군에 빼앗겨 곤란을 겪었는데,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숙종 12년(1686)에 봉암성을 쌓았다. 벌봉에 가자면 본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관문인 3암문을 지나야 한다. 3암문에서 벌봉으로 가는 길을 40대 때는 무척 좋아했다. 바람이 시원하고 꽃이 많은 길이었다. 한동안 뜸했다가 이번에 오랜만에 걸어본다. 남한산에서 이만한 바위는 벌봉..

사진속일상 2019.07.30

장마 속 갠 날 경안천 걷다

장마 기간이지만 중부 지방은 아직 제대로 된 장맛비는 찾아오지 않았다. 장마전선이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서 정체 상태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환한 날, 경안천을 걷다. 같은 태양이라도 스페인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여름 햇볕은 끈적끈적한 편이다. 습도가 높아서 공기가 후덥지근한 탓이다. 반면에 지중해의 태양은 강렬하지만 쨍그랑, 소리가 날 듯 맑고 경쾌하다. 스페인 역시 바다로 둘러싸여 있지만, 여름에는 유라시아 대륙 기단의 영향을 받는 모양이다. 하늘 색깔이 참 예쁘다. 이 산책로는 흙길이었는데 어느새 시멘트로 포장해 버렸다. 길 걷는 아기자기한 맛이 사라졌다. 시멘트에서 나오는 열기도 대단하다. 그대로 뒀으면 더 좋았으련만.....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 예상했던 길을 다 걷지 못하다. 자꾸 나무 그늘을 따..

사진속일상 2019.07.13

여름 오는 길

6월이면 여름이 시작되는 달이다. 그 첫날에 뒷산길을 걷다. 이맘 때 숲은 하루가 다르게 풍성해진다. 동네 뒷산인데 깊은 산 속에 온 듯하다. 숲에는 온갖 움직이는 생명들이 모여들고, 그들의 수선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제일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역시 검은등뻐꾸기의 지저귐이다. '홀딱벗고' 새라고 해야 더 알아듣기 쉽겠지. 새 소리를 들으며 재미있는 시 한 편을 꺼내 읽어본다. 복효근 시인의 '검은등뻐꾸기의 전언'이라는 시다. 5월 봄밤에 검은등뻐꾸기가 웁니다 그 놈은 어쩌자고 울음소리가 홀딱벗고, 홀딱벗고 그렇습니다 다투고는 며칠 말도 않고 지내다가 반쯤은 미안하기도 하고 반쯤은 의무감에서 남편의 위상이나 찾겠다고 처지기 시작하는 아내의 가슴께는 건드려보지도 않고 윗도리는 벗지도 않은 채 마악 아내에게..

사진속일상 2019.06.01

곰배령과 불바라기약수

점봉산 일대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점봉산은 2026년까지 출입 통제이고, 곰배령도 하루 입장 인원을 450명으로 제한한다.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곰배령의 별칭이 '천상의 화원'이다. 여름 꽃밭이 유명하지만 사계절 어느 때나 야생화를 한껏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곳이다. 이번에 트레커 팀과 1박2일에 걸쳐 곰배령, 불바라기약수를 둘러보았다. 5월 중순이라 들꽃에는 어중간한 시기지만 역시 곰배령은 이름값을 했다. 얼레지를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곰배령은 수도권 산보다 한 달 이상 계절이 늦다. 쥐오줌풀 참꽃마리 병꽃나무 졸방제비꽃 벌깨덩굴 미나리아재비 개별꽃 미나리냉이 피나물 현호색 줄딸기 홀아비바람꽃. 정상부에는 홀아비바람꽃 군락이 대단했다. 회리바람꽃 양지꽃 동의나물..

사진속일상 2019.05.19

봄 물드는 뒷산

산벚꽃 사이로 봄 산은 연초록 새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매년 맞이하지만 봄은 늘 새롭고 경이롭다. 올해의 봄은 작년의 봄과 다르다. 같은 색깔,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우리가 봄을 보는 눈은 같지 않다. 봄과 봄 사이의 인간사 사연들이 투영된 마음의 프리즘으로 우리는 봄을 맞이한다. '절망의 의지'를 너무 들여다보지 말고, 지상이 표상하는 생명의 약동에 한눈팔아도 괜찮은 봄이다. 잘려나간 나무줄기에서도 생명은 돋아난다. 멀리 산골 동네서 개 짖는 소리도 포근하다. 연초록 새잎이 꽃보다 더 예쁘다. 봄 물드는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사진속일상 2019.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