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375

서울둘레길 걷기(1)

작년에 서울둘레길 157km가 열렸다. 금년에 용두회에서 이 길을 일주하기로 했다. 매월 두 번씩 만나 11월까지 8코스 전체를 돌 계획이다. 오늘이 그 첫 번째 날이었다. 1코스는 수락산과 불암산을 통과하며, 길이는 14.3km다. 한 번에 걷기에는 무리여서 오늘은 수락산 코스만 걸었다. 전철 도봉산역에서 출발하여 당고개역에 이르는 7.2km의 길이다. 길은 참 잘 나 있다. 적당한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예쁜 산길이다. 안내 표시도 잘 되어 있어 헷갈릴 염려도 없다. 정성 들여 만든 흔적이 보인다. 오늘은 서울 기온이 21도까지 올라서 갑자기 봄이 덮친 느낌이다. 입고 간 겨울옷은 전부 배낭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받았다. 다른 사람은 바삐 일해야 하는 평일에 이런 한가한 걸음으로 산길을 ..

사진속일상 2015.03.19

백마산에서 양벌리로 내려오다

거의 석 달 만에 산에 올랐다. 집 가까이 있는 백마산이다. 걸어서 30분이면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 이사 온 지 4년이 되었는데 백마산을 찾은 것은 이번이 겨우 세 번째다. 곁에 있는 걸 너무 소홀히 했다. 경안교에서 백마산에 올랐다가 양벌리 대주아파트로 하산했다. 거기서부터는 동네를 지나고 경안천변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산길 6km에 2시간 30분, 평지길 9km에 2시간 30분, 총 5시간 걸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힘들었으나 이 정도면 내 걸음으로는 적당한 길이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코스가 백마산 외에 칠사산과 국수봉도 있다. 모두 아담한 산들이다. 산만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을 지나고 강도 지난다. 움직이지 않아서 그렇지 걸으면 참 좋다. 멀리만 욕심내지 말고 가까이 있는 길을 ..

사진속일상 2015.02.13

야탑에서 잠실까지 걷다

야탑에 있는 치과에 들른 길에 탄천을 따라 서울 잠실까지 걸었다.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태풍 '봉퐁'의 영향으로 바람이 셌지만 더없이 맑고 상쾌한 가을날이었다. 이런 날은 어디든 무작정 걷고 싶다. 또한 어떤 날은 고행처럼 걷고 싶기도 하다. 넓은 세상에서 혼자가 되어 길이 끊어지는 데까지 걸어가 보고 싶은 날이 있다. 지쳐서 비틀거리며 다시 돌아오지 않을 듯한 모습으로 걷고 싶은 날이 있다. 야탑에서부터 끝까지, 가는 길 내내 맞바람이었다. 반대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 행렬은 쌩쌩 가속이 붙었다. 바람이 더 세게 불었어도 좋았다. 구름은 빠르게 제 모양을 바꾸었다. 원래는 강변역까지 걸을 예정이었지만 시멘트 길을 계속 걸어선지 발이 아파 중도에서 접었다. 목표 지점 6km 전이었다. 종착지가 잠실운동장 ..

사진속일상 2014.10.14

원터골에서 양재까지 걷다

양재에서 저녁 모임이 있는 날, 청계산을 거쳐서 가기로 하고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날이었다. 그러나 기분은 우울했다. 너무 맑은 날씨가 가슴 속에 잠들어 있던 그 아이를 깨운 지도 몰랐다. 청계산은 휴일이면 등산객으로 북적대는 산이다. 다행히 정오 즈음의 시간이라 사람들의 소란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적을 길을 골라 걸었다. 산길을 걸으면서 안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느껴졌다. 산다는 게 꼭 난해한 고등수학 문제를 푸는 것 같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마주하고 끙끙 씨름하는 안타까움, 우리는 모두 애당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받아든 수험생인지도 모른다. 누구는 쉽게 풀었다고 큰소리치지만, 오답을 내놓고 ..

사진속일상 2014.10.06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

프랑스 철학자인 프레데리크 그로가 쓴 걷기 예찬서다. 책은 걷기를 찬양하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중에 하나를 고르면 이렇다. 걸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걷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직 걷기만 하면 순수한 존재감을 되찾을 수 있고, 어린 시절을 만들어낸 삶의 소박한 즐거움도 재발견할 수 있다. 이렇듯 걷기는 부담을 덜어주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도록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그 영원성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준다. 나는 걷기가 어린아이의 놀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날의 날씨와 태양의 광채, 나무의 크기, 푸른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 걷기다. 경험이나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너무 많이 걷거나 너무 멀리..

읽고본느낌 2014.07.13

광주 금봉산

예년 같으면 장마 기간이지만 기다리는 빗줄기는 행방불명이다. 장기 예보를 봐도 앞으로 열흘 안에는 비 소식이 없다. 기상 변화가 하수상하니 장마라는 말도 이젠 소멸되어 가는 것 같다. 태풍은 일본 내륙을 관통해 지나가고 한반도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아내와 인근에 있는 금봉산에 올랐다. 금봉산은 경기도 광주시의 팔당호를 끼고 있는 높이 233m의 야트막한 산이다. 날씨 탓인지, 너무 오랜만에 산에 올라선지, 2백 미터급 산을 오르는데도 무척 힘들었다. 들머리는 분원리 백자자료관이다. 자료관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이 길은 금봉산 외에 해협산 등 다른 산들과도 연결된다. 분원리를 중심에 두고 산줄기를 따라 한 바퀴 돌 수도 있다. 산길이 순해서 산책 코스로 적당하다. 정상에서..

사진속일상 2014.07.11

제주도 4박5일 - 우도 걷기

제주도 4박5일 여행의 둘째 날은 우도(牛島)를 걸어서 일주했다. 올레 1-1 코스인 이 길은 마을과 밭을 지나고 바다를 끼고 걷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잔뜩 흐린 날, 성산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걸려 우도 천진항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승객은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 스쿠터를 빌려 우도 구경을 시작했다. 걸으려 작정한 사람은 아내와 나, 둘밖에 없었다.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돌기로 했다. 길은 해안가를 벗어나 밭 사이로 꼬불꼬불 나 있었다. 밭의 경계를 나누는 돌담이 이색적이었다. 밭은 새로 경작을 시작하려는지 이랑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우도의 특산품은 땅콩이라고 한다. 밭길에 올레 표시가 잘 안 되어 있어 이리저리 많이 헤맸다. 그러나 어디를 걸어도 길인 것을, 멀리 보이는 우도 등대..

사진속일상 2014.06.14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불곡산과 대광사 연등

사월 초파일에 불곡산길을 걸었다. 분당 쪽 산자락에 대광사(大光寺)가 있어 하산하면서 화려한 연등 구경을 했다. 대광사는 천태종에 속한 사찰로 분당이 만들어지면서 신도시 주민의 포교를 목적으로 창건되었다. 지금도 공사가 계속되고 있는 큰 절인데 너무 규모가 커서 오히려 다가가기가 어렵다. 종교만은 현대의 물량주의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종교 역시 세태의 영향에서 벗어나기가 힘든가 보다. 어쩌면 분당이라는 이미지와 대광사가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아니다 하지만 밀려오는 스트레스는 어쩌지 못하겠는가 보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날카롭게 반응하고 상처를 받는다. 식탁에 놓인 약봉지에 더 마음이 아프다. 답답한 심정은 산길을 걸어도 덜어지지 않고, 5월의 숲도 위로가 되지..

사진속일상 2014.05.06

봄이 오는 뒷산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아침부터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어서 센 바람을 맞고 싶어 뒷산에 올랐다. 때가 되면 변해가는 계절은 속일 수 없음인가, 산 능선에서 바람 앞에 섰으나 이미 찬 기운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명색이 북풍인데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한껏 잠바를 열어젖히고 가슴이 뻥 뚫리도록 바람을 맞았다. 겨울 동안은 전혀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석 달 만에 찾은 뒷산이었다. 봄이 가까워지면 숲에서는 새들이 먼저 분주해진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바쁘기만 한 박새가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찌찌 쯔르르르, 새소리가 없다면 숲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 산기슭에는 괭이눈 초록 잎이 돋아났고, 버들강아지도 고운 물을 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총천연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행복이..

사진속일상 2014.03.06

스모그에 갇힌 서울

한반도가 엿새째 미세먼지에 갇혔다. 여기에 스모그까지 더해져 서울의 공기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으로 떨어진다길래 배낭을 멨는데 별로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나마 산에서는 덜 했는데 도심으로 내려오니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끔거리는 게 도저히 사람이 숨 쉴 공기가 아니었다. 참말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가. 생명의 기본인 물과 공기를 더럽혀 놓고는 행복과 웰빙을 찾느라 난리니 말이다. 공기 청정기를 틀어놓아야 안심이 되는 게 현실이 되었다. 물을 사 마시듯이 공기마저 사서 들고 다니며 호흡해야 할 시대가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착잡한 심정으로 아내와 독립문에서 출발하여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까지 걸었다. 서울을 뜬지 처음으로 다시 찾은 인왕산이었다. 인왕산은 338m지만 독립문 쪽..

사진속일상 2014.03.01

안산 일출

안산 자락에서 일출을 보았다.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은 듯이 해가 떠올랐다. 두 눈으로 해돋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듯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는 그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다. 또는 마음속에 그 무슨 간절함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아니면 인생을 건성건성 살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뒤섞인 도시 위로 우주의 등대인 양 태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새해 첫날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자락길을 한 바퀴 돌았다. 8km를 걷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우리 수준에서는 딱 걷기 알맞은 길이었다. 어느 길이나 다 그러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긍정과 감사의 에너지를 길에서 받는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도 스르..

사진속일상 2014.01.28

경안천 20km를 걷다

집에 있으려니 너무 답답해서 밖으로 나섰다. 경안천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려 했는데 쌀쌀한 날씨 탓에 열심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겨울 소백산 능선의 칼바람을 맞는 게 옳았다. 요사이는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이젠 격한 감정의 요동이 잦아지고 좀 차분해질 때가 되었다. 나부터 사태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도 필요하다.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 하나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맹자는 말했다. "사람은 모두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人皆有不忍人之心]."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에 사람 구별이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오늘은 4시간 넘게 약 20km를 걸었다. 걷기의 위안이 없다면 나는 얼마나 슬플 것인가. 걷다 보면 쪼그라진 ..

사진속일상 2014.01.18

안산 자락길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鞍山) 자락길의 특징은 경사도가 완만한 목재 데크를 설치하여 휠체어나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한 점이다. 7km 전 구간이 보행 약자를 위해 편안하게 만들어져 있다. 실제로 유모차에 의지하여 걸으시는 할머니도 계셨고, 유유히 책을 읽으며 산책하는 사람도 있었다. 쉬엄쉬엄 한 바퀴 도는데 두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안산 자락을 따라 목재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전체 길의 90% 이상이 이런 인공의 나무길이다. 안산은 도심에 위치하고 있어 서울 시민이 많이 찾는다. 등산로로 인한 자연 훼손이 심각하다. 이런 길은 토양 유실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도록 유도해 전체적인 효과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자연에 손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대야 하는지, 케이블카 설치..

사진속일상 2014.01.11

경안천 걷기

겨울이 되니 활동량이 확 줄어들었다. 대신에 늘어난 건 잠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도 겨울잠을 잔다면 세상이 훨씬 조용해졌을 거라는 상상을 해 본다. 겨울이라 산에는 가지 않고 가끔 경안천에 나가 걷는다. 오늘은 집에서부터 목현천을 따라 경안천에 들어서 양벌대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16km 정도를 걷는데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추위가 풀렸다고는 하지만 공기는 싸늘했다. 새들 역시 천 가운데에 모여서 미동도 하지 않고 이 겨울을 견디고 있었다.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나 속에 가시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가시는 숨어있다가 불현듯 나타나 가슴을 콕콕 찔러댄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가,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이 가시로 박혀 있다. 건강이, 돈이 가시인 사람도 있다. 지금 당신의 '..

사진속일상 2013.12.29

제주도(2) - 올레 7, 8, 9코스

올레 7코스는 외돌개에서 월평마을까지 13.8km다. 서귀포 해안을 대표하는 풍광인 외돌개에서 7코스가 시작된다. 12월이지만 가을 분위기가 나는 길. 야자수가 있는 풍경. 바닷가에서 맛보는 회 한 접시. 범섬. 아픔의 현장, 강정 해안. 8코스는 월평마을에서 대평포구까지 19.2km다. 8코스를 대표하는 갯깍주상절리대. 웅대한 규모에 놀랐다. 암벽에 핀 꽃. 하얏트리젠시호텔 앞으로 올레길이 지나간다. 6코스에 있는 칼호텔은 길을 폐쇄했는데 하얏트는 길을 개방해 주어서 고마웠다. 중문해수욕장. 8코스의 바다 풍경.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해변까지 7.1km다. 대평포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 박수기정은 '샘물이 솟는 절벽'이라는 뜻이다. 올레 9코스는 박수기정 위를 지나게 된다. 옛날에는 박수기정 위 평..

사진속일상 2013.12.15

제주도(1) - 올레 5, 6코스

딸이 비행기표를 건네주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여행이라 부랴부랴 숙소를 정하고, 주로 올레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아내와 함께 한 8박9일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14.7km다. 남원포구 앞 바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비가 지나간 길. 나무의 윤곽이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5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큰엉 해안. 파도에 깎인 해식절벽이 길게 이어지고, 올레길은 절벽을 따라 나 있다. 위미리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 온 현병춘(1858~1933) 할머니가 해초캐기와 품팔이 등 근면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이곳 황무지를 사들인 후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뿌린..

사진속일상 2013.12.14

서하리에서 칠사산을 넘다

오늘은 본당에서 천진암으로 도보 성지 순례를 하는 날이다. 약 500명의 신자들이 구역별로 모여 아침 9시에 성당에서 출발했다. 나도 대열에 끼여 힘차게 따라 나섰으나 중간에 여의치 못한 일이 생겨 유턴하게 되었다. 두 시간 정도만 함께 걸었다. 본당에서 천진암까지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도가 없는 찻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여섯 시간 정도가 걸리는 만만치 않은 길이다. 경안천을 끼고 걷는 이 길이 제일 호젓하고 양호하다. 광주시 경안동과 무갑리를 이어주던 옛 도로였다는데 천 건너편으로 새 도로가 생기면서 잊혀진 길이 되었다. 이런 길을 개발하여 트레킹 코스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무갑리까지 같이 걷고는 되돌아서 칠사산으로 들어갔다. 혼자 걷는 산길이 편안했다. 생각지도 않게 서하리에..

사진속일상 2013.10.13

금오도 비렁길을 걷다(2)

새벽에 일어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6시 30분에 민박집을 나섰다. 오후 4시에 출항하는 뱃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심포마을에서 시작하여 4, 3, 2, 1코스를 걸어 함구미마을까지 간다. 거리로는 15km다. 아침 바다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눈 돌리는 곳마다 절경이어서 감탄이 절로 났다. 길은 해안을 따라서 이어졌다. 대부분 흙길이고 경사가 심한 곳은 나무 계단을 설치했다. 3코스 매봉전망대. 3코스 사다리통전망대. 직포마을에서 3코스가 끝나고 2코스가 시작된다. 직포마을은 해송이 볼 만했다. 직포마을 부근 바다 풍경. 마을을 지나는 트레커. 집을 둘러싼 돌담이 지붕을 가릴 정도로 높았다. 세찬 바람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밭에는 주로 방풍(防風)을 심어 놓았다..

사진속일상 2013.10.09

금오도 비렁길을 걷다(1)

트레커 여덟 명이 금오도 매봉산길과 비렁길을 걸었다. 금오도(金鰲島)는 섬 모양이 자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전남 여수에 있다. 돌산도 신기항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면 도착한다. 우리는 여수에 있는 회원 별장에서 일박을 하고 7시 45분에 출발하는 첫 배를 탔다. 5코스까지 있는 금오도 비렁길은 총 길이 18.5km에, 쉬지 않고 걸었을 때 7시간 정도가 걸린다. 배가 다니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하루에 다 걸을 수는 없다. 우리는 섬에서 묵으며 이틀에 걸쳐 매봉산을 종주하고 비렁길 전 구간을 걸었다. 섬을 한 바퀴 일주한 셈이다. '비렁'은 이곳 사투리로 '벼랑'이라는 뜻이다. 비렁길 안내 팸플릿에 보면 금오도는 '명성황후가 사랑한 섬'이었다고 나와 있다. 고종이 명성황후가 살던 명례궁..

사진속일상 2013.10.08

아내와 남한산성을 일주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아내와 성곽을 따라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수없이 남한산성을 찾았지만 아내와 일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용한 평일날 부부가 함께 길을 걷는 행복을 누렸다. 또한 아내의 체력이 많이 회복된 걸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동문에서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느릿느릿 한 바퀴 도는데 4시간이 걸렸다. 솔숲에서 쉬는데 어느 외국인이 지도를 보이며 'West Command Post'로 가는 길을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것이 수어장대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외국인만 대하면 왜 머리가 하얘지는지 모르겠다. 뭉게구름이 키자랑을 하며 솟아올랐다. 더위의 기세도 이제 많이 누그러졌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기도 했다. 인생길도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법이었다. 일..

사진속일상 2013.08.27

대모산과 구룡산 둘레길을 걷다

서울에도 'Seoul Trail'이라 불리는 둘레길이 있다. 서울 외곽에 있는 산들을 연결하는 182km의 길이다. 동쪽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덕산, 일자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 봉산, 복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구릉산, 망우산, 용마산, 아차산을 지난다. 일부 구간은 안양천과 한강변도 지나간다. 이번에 용두회에서 서울 둘레길 중 대모산과 구룡산 코스를 걸었다. 기존 등산로와 겹치기도 하지만 능선과 정상을 거치는 대신 산 옆구리를 지나서 간다. 길은 아주 걷기가 좋지만 대신 꼬불꼬불하다. 두 산을 지나는 길이가 7.4km다. 두 산 모두 300m 안팎이라 가볍게 봤는데 전혀 만만하지 않았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도 있을 것이고, 오랜만에 걸은 탓도 있을 것이다. 무려..

사진속일상 2013.05.12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략 난감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지요." 내 삶의 에너지는 걸을 때 나온다. 길은 호젓한 산길이 좋다. 그리고 동행 없이 홀로여야 한다. 이 세 가지 박자가 맞으면 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고 아드레날린이 샘솟듯 분출한다. 혼자면 외롭지 않느냐고? 천만에, 전혀 그렇지 않다. 산길에는 사람 대신 풀과 나무 친구가 있다. 또한 꽃 친구도 나를 반겨준다. 이들과는 말 없어도 말 이상의 교감을 나눈다. 조용한 산책을 위해서는 산은 낮으며 부드럽고, 길은 익숙해야 좋다. 그래서 집 뒷산이야말로 제격이다. 정상까지 갔다 오는데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적당한 길이다. 그동안에 한두 사람을..

참살이의꿈 2013.05.10

서울대공원 산림욕로 걷기

용두회 29차 모임으로 서울대공원 산림욕로를 걸었다. 일주일 가까이 이어진 꽃샘추위가 누그러진 날이었다. 이맘때쯤이면 서울대공원 벚꽃이 활짝 폈을 텐데 맺힌 꽃봉오리가 펴지지를 않고 있다. 벚꽃 축제가 시작된 여의도도 마찬가지다. 산천의 초목들이 전부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이미 봄의 방아쇠는 당겨졌다. 산길에는 귀룽나무의 초록색이 환했다. 대공원 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소풍 나온 가족들의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내 아이들 데리고 저렇게 대공원에 놀러다닌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할아버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원래는 한 바퀴를 돌 예정이었지만 오후에 결혼식에 가야 하는 일행이 있어서 반으로 단축했다. 그래도 세 시간이나 걸렸다. 이만한 길이가 오히려 지금의 내 몸에도 알맞다. ..

사진속일상 2013.04.13

해솔길과 구봉도

대부도에도 '해솔길'이라는 트레킹 길이 있다. 7개 코스에 전체 길이가 74km에 이른다. 그중에서 시화방조제가 끝나는 지점부터 해안을 따라 구봉도를 지나는 길이 1코스다. 오늘 1코스의 일부를 걸었다. 해솔길 맛보기였는데 산책하기에 참 좋은 길이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씨도 맑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바다는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따스한 평화가 대기에 가득했다. 구봉도 낙조전망대까지 다녀오는 길은 산길과 해안길이 있다. 갈 때와 올 때를 다르게 택하면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바다 풍경. 대부도 해안에 있는 나무는 대부분이 서어나무다. 노루귀도 한창이다. 구봉도 선돌. 할매바위, 할아배바위로 불린다. 낙조전망대에 있는 조형물. 서해로 지는 태양을 형상화했다. 수도권에서 그런대로 가까이 있는 ..

사진속일상 2013.03.21

용두회에서 청계천을 걷다

용두회에서 청계천을 걸었다. 이번에는 산이 아니라 도시의 길을 택했다. 그래선지 일곱명이나 참석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는데 대개 서너명이 모이는 게 보통이다. 나이가 들어선지 산길에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점은 서울숲이었다. 서울숲을 지나 한강으로 나간 뒤에 중랑천을 따라 오르다가 청계천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이 이 길을 처음 걸었다. 서울숲이 춘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한강변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살곶이다리를 지나서.... 오늘 모인 친구들 가운데도 둘을 제외하곤 모두 퇴직했다. 퇴직 후의 취미 생활에 대한 얘기도 자연스레 나왔다. 어떤 친구는 색소폰을 불고, 어떤 친구는 기타에 빠졌다. 무려 일주일에 세 군데를 돌며 강습을 받는다 한다. 나는 무취미가 취미라 했더니, 넌 ..

사진속일상 2013.03.16

제주 올레길 420km

며칠 전에 제주도 올레길 전 구간이 완성되었다. 26개 코스에 총 길이가 420km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길이와 비슷하다. 한 개 코스가 하루에 걷기 적당하게 되어 있으니 전체를 걷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당연히 걸어보고 싶다. 결심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하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올레길 몇 개 코스 정도는 걸어 보았다. 나만 아직 올레길에 서지 못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유행했다. 퇴직을 한 뒤에 바로 그 길을 걷는 게 목표였었는데 아직도 희망 사항으로만 남아 있다. 거기는 평균거리가 거의 900km가 되니 올레길과는 비교가 안 된다. 솔직히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동안 생각도 변했다..

길위의단상 2012.11.27

산막이옛길과 화양구곡

경떠회 8명이 괴산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3, 4일 이틀간의 나들이였다. 첫째 날은 산막이옛길을 걸었고, 둘째 날은 화양구곡을 답사했다. 산막이옛길은 괴산호를 따라 옛길을 복원해서 만들었다. 옛날에는 깊은 산골짜기 안쪽에 산막이마을이 있었다. '산막이'는 산으로 막혀 있는 뜻이다. 1957년에 괴산댐이 만들어지면서 계곡이나 길이 대부분 물에 잠겼을 것이다. 걷기 열풍이 불면서 이 길이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마을 사람이 오가던 고단한 길이 아니라 건강과 레저용으로 탈바꿈된 길이다. 흙길도 있지만 대부분이 나무 데크로 만들어졌다. 이런 길은 호젓하게 걸어야 맛인데 주말이라 그런지 너무 사람이 많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소란이 잦아졌다. 아담한 괴산호 풍경. 늦가을 산이 포근했다. 연리지. 여러가지..

사진속일상 2012.11.11

가을 강변을 걷다

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산과 들이 오색 단풍으로 덮이고,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 이러한 때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책을 본다는 건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을 햇살의 유혹을 이길 자 누구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과 직장에 매여 꼼짝하지 못하지만, 이럴 때는 나 같은 불한당으로서의 행복을 맛본다. 다산길 1코스(한강나루길)를 걸었다. 1코스는 한강 삼패지구에서 운길산역까지 한강을 따라 걷는 16.7km의 길이지만, 오늘은 팔당역에서부터 운길산역까지 걸어보기로 한다. 팔당역에 승용차를 주차시켰다. 옛 중앙선 철길을 걷어내고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를 만들었다. 새로 포장을 했는지 아스팔트 냄새가 아직 남아 있다. 강가로 나서니 바람이 쌀쌀했지만 안개가 걷히고 햇볕이 비치니 곧 따스해졌다..

사진속일상 2012.10.29

단풍 여행 - 동강 어라연

다음 날은 동강을 찾아갔다. 첫째가 마련해준 숙소가 마침 동강 어라연 가까이에 있었다. 원래 계획은 아내의 상태를 고려해 강변을 따라 걷기 편한 길로 어라연까지 갔다오는 것이었다. 거운리 어라연탐방안내센터에 주차를 하고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10여 분 올라가니 잣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이 나왔다. 다시 걷기 열병이 발동했고 잣봉으로 올라 라운딩하는데 아내도 동의했다. 등산은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운동화 차림의 아내는 나무 작대기를 찾아 짚었다. 잣봉(537m)으로 가는 길. 힘들게 올라서니 편안한 능선길이 나오고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능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동강과 어라연. 청옥빛 물 색깔이 보석 같이 아름다웠다. 잣봉에서부터 동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

사진속일상 2012.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