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우리는 무엇으로 깊이를 얻을 것인가

샌. 2012. 10. 8. 11:31

얼마전 KBS TV '아침마당'에 소설가 이철환 님이 출연하여 '우리는 무엇으로 깊이를 얻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님의 모습이나 말에서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뒤의 맑고 깊은 향기가 느껴졌다. 연약한 나무 뿌리가 어두운 땅속으로 깊고 넓게 뻗어갈 때 땅 위의 나무는 키가 크고 무성해진다. 무성한 잎사귀와 열매를 위해서는 어둠과 아픔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님은 본인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깊이를 얻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감명을 받았던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첫째, 때로는 나의 기준을 버린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자기 견해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자기 생각과 기준에 매여 있는 사람은 마치 끈으로 묶여 있는 강아지와 같다. 좁은 말뚝 주위가 강아지의 세계다. 고정관념이란 진실을 보지 못하는 장벽이 된다.

 

사마귀는 자기 앞 발에 대한 맹목적인 확신 때문에 달리는 자동차도 정면으로 맞선다. 확신이란 그만큼 위험하다. 현대인은 욕망, 불안, 불신, 무한경쟁, 질투 속에서 산다. 그것이 세상의 모습인 줄 착각한다.

 

님은 화장실에서 경험한 얘기를 했다. 언젠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소변기가 없더란다. 여자 화장실에 잘못 들어간 것이다. 부리나케 나오는데 입구에서 아가씨와 마주쳤다. 이때 아가씨의 반응은? 죄송합니다, 하면서 남자 화장실로 뛰어들어가더란다. 잘못된 확신은 또 다른 잘못된 확신을 낳는다.

 

기린은 키가 크다, 라는 말도 사람의 기준에서 타당할 뿐이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결코 기린이 키가 크지 않다.

 

풍경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풍경을 보기 위해서 우리는 나의 기준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남을 배려한다.

 

배려란 내 것의 절반을 내어주는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나를 배려하는 것과 동일하다. 남을 존중해야 나도 존중 받는다.

 

배려는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절대 조건이다.

 

셋째, 내 안에 있는 나의 손을 잡아준다.

 

내 안에는 '울고 있는 나'가 있다. 초라하고 불쌍해 보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울고 있는 나'를 따스하게 손잡아 줄 수 있어야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야 상대도 소중하게 대할 수 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겸손이다.

 

사람들은 나방을 징그럽다고 싫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생존을 계속해 나간다. 지금 못마땅해도, 지금 아파도, 장벽이 있어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넷째, 책을 읽는다.

 

독서란 내 안에 있는 나와 대화하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책을 통해서 지혜와 통찰력을 기르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얻는다.

 

님은 알랭의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을 소개했다. '만약 당신이 악마를 만난다면 그 근처에 있는 바늘을 찾으면 된다.' 그를 악마로 만든 바늘이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찌르는 무수한 바늘에 의해 한 인간이 악마로 변한다. 님은 이 구절을 읽고 인간에 대한 관점이 변했다고 말했다.

 

독거미도 처음부터 독을 지닌 건 아니었다. 새들이 엄마를 물어가고 친구를 뺏아가는 바람에 독을 지니게 되었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고 이해하는 지혜를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님은 마지막으로 다람쥐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가을 다람쥐는 도토리를 닮았다. 주야장창 도토리만 생각하니까 얼굴도 도토리를 닮은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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