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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변 자귀나무

자주 이용하는 버스정류장 옆에 자귀나무 한 그루가 있다. 차가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변에서 소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나무다. 여름이 되니 분홍색 꽃을 피워 자꾸 올려다보게 된다. 지나가는 차가 일으키는 바람에 꽃잎은 쉼없이 흔들린다. 자귀나무 꽃은 비단이 연상될 고운 색깔을 띄고 있다. 미풍에도 한들거릴 만큼 가늘고 부드럽다. 자귀나무는 꽃만 아니라 가지런한 잎도 예쁘다. 기품 있고 우아한 모습이 고급 정원수에 어울리건만 험한 도로변이 있을 곳은 아닌 것 같다. 분별을 일삼는 인간의 생각이겠지만. 원뜻이 뭔지는 모르지만 자귀나무의 '자귀'를 나는 '自貴'로 읽는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긴다" - 꽃 이름에서도 내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꽃들의향기 10:00:38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병원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의학이라는 영역 너머의 것이 있다. 치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제도가 없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10년간 허무하게 떠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지은이인 내과 전문의 김현지 의사는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의료 시스템 뒤에 숨겨진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가난과 건강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나선 배경이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올바른 의료 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입법 활동을 돕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이라고 한다. 는 지은이가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통해 인지하게 된 우리 사..

읽고본느낌 2024.07.26

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작은 봉우리 얘길 해줄까 봉우리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오르고 있었던 거야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얼마 남지 않았는데 잊어버려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봉우리에 올라서서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아무것도 아냐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그저 고갯마루였을 뿐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거기 부러진나무 등걸에 걸터앉아서나는 봤지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시읽는기쁨 2024.07.24

2024 세미원 연꽃

올해 세미원 연꽃은 끝물에 가서인지 시원찮았다. 넓은 연밭에서 제대로 형태를 갖춘 연꽃을 찾기 힘들었다. 꽃이 그래선지 세미원 관리도 엉성해 보였다. 아내와 같이 가서 세미원에서 두물경까지 왕복 걸음을 했다.  수련, 빅토리아연, 빗물 담은 연잎.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다. 장마철이어선지 팔당호 주변은 쓰레기로 지저분했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앞 벤치에 귀여운 조형물이 생겼다. 양평을 상징하는 캐릭터로 '봄처럼 따스한 양평'이라는 뜻의 '양춘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손에 핫도그를 들고 있다. 옆에 앉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포근한 모델이다.

꽃들의향기 2024.07.23

사기[21-1]

"지금 신이 진나라에 이르니 왕께서는 신을 별궁에서 만나고 예절을 하찮게 여기며 아주 거만하십니다. 그리고 화씨벽을 받으시고는 비빈들에게 차례로 건네주면서 신을 희롱했습니다. 신은 왕께서 화씨벽을 받은 대가로 조나라에 성을 내줄 마음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에 화씨벽을 다시 돌려받은 것입니다. 왕께서 기필코 만일 신을 협박하려고 하신다면 신의 머리는 지금 이 화씨벽과 함께 기둥에 부딪쳐 깨질 것입니다." - 사기(史記) 21-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전국시대에 조나라는 강국인 진나라 옆에 위치해서 잦은 침략과 협박을 받았다. 염파와 인상여는 조나라 말기에 장군과 재상으로 있으면서 조나라를 지켜낸 인물이다. 당시 조나라는 천하의 보물이라는 화씨벽(和氏璧)을 가지고 있었다. 진나라가 가만히 두고 볼..

삶의나침반 2024.07.22

바늘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 읽은 천운영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바늘'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모두 20여 년 전에 쓰인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다. 작가가 그리는 여성은 특이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여성성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인물이어서 충격을 받는다. 소설에 나오는 그들은 못 생긴데다 폭력적인 야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여성은 예쁘고 우아하다는 기존의 사고 틀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가부장제하에서 구축된 모성이나 여성성의 허구를 작가는 깨부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전부 육식을 탐한다. 이런 동물적인 피의 욕구는 외부세계에 대한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행복고물상'에 나오는 여자는 남편을 상습적으로 매질한다. "아내는 야생의 초원을 가졌다..

읽고본느낌 2024.07.21

나흘 동안 어머니와 지내다

고향에 내려가서 나흘 동안 어머니와 지내다가 왔다. 장마 기간이라 내내 비가 오는 통에 집에만 있었다. 바깥 외출은 옆집 친구를 찾아가서 잠깐 근황을 나눈 게 전부였다. 비는 사납게만 내리지 않으면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존재다. 농민도 비 핑계를 대면서 고단한 몸을 쉴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고향을 오가는 길이 운치 있는 드라이브가 된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줄 밭작물을 다듬고 나는 옆에서 거드는 흉내를 낸다.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어찌  따라갈 수 있으랴. 잠시라도 비가 그치면 금세 보이지 않는데 텃밭에 나가면 찾을 수 있다. 장수 노인들의 공통점은 가만히 있지 않고 쉼 없이 몸을 움직인다. 어머니도 예외가 아니다.  점심에는 어머니와 둘이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반주를 곁들였다. 어머니는 ..

사진속일상 2024.07.20

성난 물소 놓아주기

당신이 절에 살든, 도시에 살든, 혹은 가로수가 늘어 있는 조용한 거리에 살든, 다른 어디에 살든 때로 문제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렇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 "의사 선생님, 제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이 났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제게 정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병이 났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일을 할 때든, 명상을 할 때든 가끔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관찰하라. 이 세상을 자기 마음에 들게 만들기 위해 다그치거나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놓아버려라. 자신의 몸과 마음과 가족과 세상과 싸울수록 부수적인 여러 가지 문제..

읽고본느낌 2024.07.16

에어쇼, 고공낙하, 퍼레이드, 불꽃놀이

내일부터 우리 고장에서 '세계 관악 컨퍼런스'가 열린다. 격년으로 개최되는 이 행사는 세계 관악(管樂人)들의 축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열린다고 한다. 이번 주말에 다채로운 개막 행사가 있었다. 1. 블랙이글스의 에어쇼예행연습을 하느라 일주일 전부터 하늘이 시끄러웠다. 예고된 시간에 집 밖에 나가서 봤는데 좀 더 발품을 팔아서 비행기가 다니는 라인 아래에 갔더라면 더 멋진 구경거리가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공연 시간은 30분 정도 되었다.   2. 공수특전단의 고공낙하   3. 군악대의 거리 퍼레이드   4. 불꽃놀이"펑 펑"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카메라를 꺼내 창에 기대어 찍었다. 시청 광장에서 K-Music 공연이 끝나고 쏘아올리는 불꽃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세계 관악 컨퍼런스'의 몇 야외..

사진속일상 2024.07.15

이재명의 먹사니즘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다." 지난 10일에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재명 후보가 한 말이다. 먹사니즘/먹고사니즘은 '먹고살다'와 '-ism'의 합성어로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태도다. 또는 생계유지에 급급해 다른 것들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꺼리는 태도를 의미하기도 해서 부정적인 의미가 큰 용어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시 되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국민의 주목을 받는다.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강조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설마 이 후보의 본심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을 갖는다. 첫째, 먹사니즘이 과연 이 시대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가,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

길위의단상 202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