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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피곤해서였는지 잠을 설쳤다. 깼다 자다를 반복하다가 일출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났다. 푹 잘 수 있었다면 굳이 일출을 보러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경포의 새벽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해가 수평선을 뚫고 거침없이 솟아올랐다. 오메가 일출이었다. 막 떠오른 햇살을 받은 해변가 송림도 발갛게 물들었다. 체크 아웃을 하고 아내와 같이 아침 해변을 산책했다. 초당마을에서 순두부로 아침을 먹었다. 인근 경포호로 가서 2인승 전기 자전거를 빌려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귀로에 들자마자 아내는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졌다. 중간에 다른 장소도 계획에 있었으나 집에 일찍 들어가 쉬는 쪽을 택했다. 둘째 날, 부부가 함께 울산바위에 오른 것으로 대만족이었던 이번 여행이었다. 울산바위 길을 걷던 다섯 시간 ..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설악산 울산바위 등산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울산바위를 올라가 보자는 말을 꺼냈을 때 아내도 흔쾌히 동의했다. 마침 아내는 계단 오르기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던 참이었다. 속초에서 김밥을 사 가지고 내설악으로 향했다. 아직 단풍철이 되지 않아서 설악산 입구는 붐비지 않았다. 어제처럼 맑고 청명한 날씨였다. 멀리 병풍처럼 둘러싼 울산바위 일부가 보였다. 흔들바위를 지나면서부터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무거워 처음부터 힘이 들었다. 아내는 앞서 가다가 나를 기다리기 일쑤였다. 길 중간에 이런 경치들이 있어서 피로를 씻어준다. 세 시간이 걸려 정상에 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를 추월해 갔다. 정상에 서니 공룡의 등뼈 위에 올라탄 느낌이었다. 울산바위를 아내는 처음..
콧구멍만 아니라 헛헛한 마음자리에도 바람을 쐬어주고 싶어 아내와 2박3일 강원도 여행을 다녀왔다. 초가을의 고성, 속초, 강릉을 거치는 일정이었다. 고성을 향해 가면서 인제에서 열리는 가을꽃 축제장에 들렀다. 올해는 박인환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꽃 정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진부령을 넘었다. 고개를 넘으니 소똥령 숲길이 있어 잠시 맛보기로 들어가 보았다. 첫날의 목표는 이번 달에 오픈한 고성의 '송지호 바다하늘길'이었다. 송지호 바다하늘길은 육지와 죽도를 잇는 길이 630m 되는 보도교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월요일은 문을 닫아 입구에서 눈요기만 했다. 가을 하늘이 이쁜 날이었다. 대신 능파대를 찾았다. 능파대(凌波臺)는 해안가 바위에 생긴 타포니(tafoni) 지형으로 암석 ..
아내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셋이서 단촐하게 추석을 보냈다. 내려가는 길에 희방사와 희방폭포에 들렀다. 희방사는 40대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근 30년 만이었다. 아련한 추억에 잠기느라 발걸음이 무거웠다. 추석 전날 성묘를 다녀왔다. 산소와 주변 밭은 두 동생이 다할 수 없이 깔끔하게 정리해 놓았다. 밭을 둘러싼 야산에는 아내가 '황금어장'이라 부를 정도로 떨어진 밤이 많았다. 들고 가지를 못해서 뒤돌아서야 했다. 호박과 들깻잎도 땄다. 쓸쓸한 명절 아침을 맞는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하랴 싶다. 오랫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시지를 않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한껏 욕하는 것으로 달랬다. 인두겁을 쓰고 어찌 행실이 그렇단 말인가. 악몽에 시달렸고 이틀 몸살을 앓았다. 다행히 회복은 빨랐다.
초기 천주교 역사를 다루는 정민 선생의 역작이다. 이만한 객관적 시각으로 천주교의 역사를 서술한 책은 보지 못했다. 대개는 신앙이나 순교를 강조하는 책이 많았다. 선생은 오직 문헌을 통해 사실을 알아내려고 한다. 책은 900페이지나 되지만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었다. 책은 조선 천주교의 태동부터 1801년 신유박해 때까지를 다룬다. 공식적으로 조선 천주교의 시작은 1784년에 이승훈이 중국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 뒤부터지만 그전부터 자생적으로 천주교가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중심에 최초의 수덕자로 불리는 홍유한이 있고 이벽을 중심으로 한 연구 모임이 있었다. 1779년의 주어사 강학 모임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내부에서 천주교가 태동한 건 세계 가톨릭 역사상 조선이 최초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18세..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샘도 강도 바다도 말고 옥류 수렴 진주담과 만폭동 다 고만두고 구름 비 눈과 서리 비로봉 새벽안개 풀 끝에 이슬 되어 구슬구슬 맺혔다가 연주팔담 함께 흘러 구룡연 구척절애에 한번 굴러보느냐 - 구룡폭포 / 조운 구룡폭포는 길 수 없는 땅, 금강산에 있다. 아마 시인은 일제강점기 때 구룡폭포를 찾아 그 웅장한 물줄기를 보며 이 시조를 썼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암울하고 답답했을 시인의 마음이 읽힌다. 폭포수가 되어 구척절애로 굴러 떨어지는 소망을 하다니. "사람이 몇 생이나 닦아야 물이 되며 몇 겁이나 전화해야 금강에 물이 되나! 금강에 물이 되나!" 장엄하면서 무심한 비경을 마주 한 시인의 아프고 막막..
임플란트 치료 중에 음식 섭취가 자유롭지 못하고 무료해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본 드라마다. 2022년도에 tvN에서 방영되었는데 20부작이라 다 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14명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달고도 쓴 여러 인생의 애환에 공감하며 가슴 뭉클해지는 따뜻한 드라마다. 다 보고 나서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두 사람씩 묶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편 '한수와 은희'의 애틋한 사연으로 시작해 마지막 편 '동욱과 옥동'의 모자간 눈물의 화해로 끝난다. '영주와 현'의 철부지 사랑도 있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누군가에 의해 보듬어질 때 그 상처는 꽃으로 승화..
경기도 화성시 궁평항 인근에 있는 방풍림 역할을 하는 소나무숲이다. 바닷가를 따라 수백 미터에 걸쳐 천 그루가 넘는 해송(곰솔)이 숲을 이루고 있다. 줄기 굵기로 판단컨대 수령이 100년은 충분히 되어 보인다. 숲 사이로 산책로와 쉼터가 잘 만들어져 있어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걷거나 휴식하기에 좋다. 솔숲 속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그러기에 이 솔숲은 딱 적당한 것 같다. 특히 저녁 낙조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앞으로 자주 찾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궁평 바닷가의 소나무 숲이다.
화성 황금해안길은 제부도와 궁평항을 잇는 길이 17km의 바다를 따라 걷는 길이다. 낙조경관길(제부마리나~송교리, 5km), 소금바다길(송교리~백미항, 4.5km), 궁평관광길(백미항~궁평항, 7.5km)의 세 구간으로 되어 있다. 그중에서 제일 인기가 있다는 궁평관광길을 아내와 같이 왕복하며 걸었다. 시간 여유가 있기에 먼저 제부도에 들러 북쪽 해안 데크길을 걸었다. 제부도는 8년 만이었다. 바지락칼국수로 점심을 먹고 궁평항으로 이동했다. 궁평관광길은 바다 위로 설치한 데크 길이 많았다. 완전 썰물이어서 넓게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해송 숲길이 멋졌다. 차를 세워둔 궁평왕으로 되돌아와야 했기에 백미항 가까이 가서 유턴을 했다. 길 옆에 야자수 카페가 있어서 한 시간 반 정도 편안한 휴식을 취했..
학습관에서 일 년에 한 번 가을에 작품 전시회를 연다. 마침 때가 맞아 배우고 있는 디지털 캘리그래피 작업물을 내게 되었다. 고작 두 달 정도 배우고 작품이랍시고 제출한 것이다. 그 전시회가 지금 열리고 있다. 내가 쓴 문구는 '행복,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기'였다. 선생님이 준 글씨체를 흉내 내었고, 좋아하는 미루나무와 달팽이 그림을 그렸다. 달팽이는 다른 사람 그림을 참고했다. 언제 내 글씨와 내 그림이 나올지는 까마득하다. 부족하나마 이 정도 결과물이 나왔다는데 뿌듯하다. 짧은 기간에 이만하면 만족해야겠지. 연초에 붓 캘리그래피, 지금은 디지털 캘리그래피, 다음에는 딥펜 캘리그래피 수업을 들어보려 한다. 금년은 캘리그래피에 빠져 있는 해다. 글씨를 쓸 때면 잡념을 잊고 행복하다. 덕분에 아이패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