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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64]

예수께서 헌금함 맞은편에 앉아 사람들이 동전을 넣는 모양을 바라보고 계셨다. 여러 부자가 많은 돈을 넣고 있었다. 그런데 가난한 한 과부가 와서는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과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진실히 말하거니와, 이 가난한 과부야말로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누구보다도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모두들 넉넉한 가운데서 얼마씩을 넣었지만, 이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진 것을 모두, 곧 생활비를 몽땅 던져넣었기 때문입니다." - 마르코 12,41-44 불교에는 '빈자일등(貧者一燈)' 일화가 있다. 에 나오는 이야기다. 석가께서 사위국(舍衛國)의 어느 정사(精舍에 머물고 계실 때 그곳 국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각각 신분에 걸맞는 화려한 공양을 하였다. 가난한 ..

삶의나침반 10:21:48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새롭게 떠오르는 일본의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가 쓴 책이다. 부제가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으로 책 읽기의 혁명성을 고찰하는 내용이다. 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는 단연 사사키 아타루라고 한다. 그는 1973년생으로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은 서가에서 강렬한 제목에 끌려 꺼내 보았다. 제목은 어느 서양 시인의 시에서 따온 문구라고 한다. 책 내용과 상응하는 좋은 제목인 것 같다. 책은 전체적으로 니체 톤의 목소리가 울린다. 우리 시대를 두고 문학이나 예술이 끝났다고 쉽게 말하지만 지은이는 강하게 반박한다. 문학은 반정보며 변혁이다. 지은이가 정의하는 문학은 범위가 상당히 넓다. 어쨌든 문학이 살아남아야 혁명이 살아남고 인류가 살아남는다. 우리는 혁명으로 왔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읽고본느낌 2022.12.04

우리 동네 다운타운

영어의 '다운타운(downtown)'은 시내의 중심 지역을 뜻한다. '다운(down)'으로 연상되는 의미와는 다르다.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나는 다운타운을 오랫동안 헷갈렸다. 다운타운을 생활 수준이 한 수 아래인 달동네로 착각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잘못된 해석으로 오답을 적은 적도 있었다. 점수를 잃고나서야 제대로 개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시내에 나가자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말 그대로 '다운(down)' 타운이다. 미국에서도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거 지역이 대체로 고도가 높다 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실감한다. 우리 동네 다운타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스카이라인이 계속 바뀌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규제를 받다가 해제된 탓인지 고층 아..

사진속일상 2022.12.03

어머니 / 이시영

어머니 이 높고 높은 아파트 꼭대기에서 조심조심 살아가시는 당신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죽어도 이곳으론 이사 오지 않겠다고 봉천동 산마루에서 버티시던 게 벌써 삼 년 전인가요? 덜컥거리며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에 아직도 더럭 겁이 나지만 안경 쓴 아들 내외가 다급히 출근하고 나면 아침마다 손주년 유치원길을 손목 잡고 바래다주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하루 일거리 파출부가 와서 청소하고 빨래해주고 가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외치고 가고 계단 청소 하는 아줌마가 탁탁 쓸고 가버리면 무덤처럼 고요한 14층 7호 당신은 창을 열고 숨을 쉬어보지만 저 낯선 하늘 구름조각말고는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허리 펴고 일을 해보려 해도 먹던 밥 치우는 것말고는 없어 어디 나가 걸어보려..

시읽는기쁨 2022.12.02

젊은 날의 초상

내 젊은 날의 노트를 열어본다. 노트 안에는 진리를 향한 갈구에 목말라하던 20대 초반의 내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중에서 49년 전인 1973년 11월 30일의 일기가 눈에 들어온다. '사랑하는 C'라고 부르면서 적은 글이다. 그 시절에 나는 인간과 세계는 무엇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질문에 답해주는 것이 진리였다. 진리는 반드시 존재하고 그걸 발견하는 것이 내가 태어난 이유라고 믿었다. 진리야말로 무명의 세상을 비추는 횃불이었다. 내가 볼 때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 정신의 금자탑이 철학이었다. 철학 사상을 파고들면 나름대로 진리에 접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대학 생활의 대부분을 철학과 기독교 사상에 몰두했다. 전공 공부는 아예 도외시했다. 얼..

참살이의꿈 2022.12.01

마르코복음[63]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어떻게 율사들이 그리스도는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윗 자신이 성령에 힘입어 말하기를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도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잡아놓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하였습니다. 다윗 자신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하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많은 군중이 그분 말씀을 즐겁게 들었다. 예수께서 가르치셨다. "율사들을 조심하시오. 그들이 바라는 것은 기다란 예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 장터에서 인사받는 것이며, 회당에서 높은 좌석을, 잔치에서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고 겉꾸며 길게 기도하는 이런 자들이야말로 더욱 엄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 마르코 12,35-40 마르코복음 1..

삶의나침반 2022.11.30

쓸쓸하고 가련한

늦가을 비가 떠나가는 가을을 재촉한다. 지난밤의 차가운 비바람에 나무는 더욱 홀쭉해졌다. 성하(盛夏)의 계절을 장식하던 나뭇잎은 생명의 물기가 빠지고 바닥에 떨어져서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날린다. 제 역할을 다하고 나면 해체되고 소멸하는 것이 생명체의 숙명이다. 인간 역시 유전하는 만물의 흐름 속에서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진다. 가을 끝자락 풍경을 보면 울적해진다. '울적(鬱寂)'은 사랑스러운 말이다. 사전에는 '쓸쓸하고 답답한 마음'이라고 나와 있지만, 나는 '우울한 적요(寂寥)'라고 해석한다. 즉, '우울과 함께 하는 고요/평화'다. 세상사의 덧없음을 비관하면서 동시에 긍정한다. '울적'이라는 말에는 단순한 감정으로서의 우울을 넘어서는 깊은 울림이 있다. 가을에는 어쩔 수 없이 죽은 사람들이 자주 생각..

참살이의꿈 2022.11.29

만약은 없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이라는 부제 그대로 병원 응급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연들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다. 긴박한 죽음을 마주하는 응급실 의사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순간 선택에 직면한다. 만약 다른 처치를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라는 의문과 후회는 늘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는 일회성인 인간의 삶과 죽음을 대변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한 남궁인 선생이 썼다. 책에 실린 38개의 이야기는 인간의 고통과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접하면서도 지은이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죽음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것이 타인의 문제이건 혹은 자신의 문제이건 간에 아무도 ..

읽고본느낌 2022.11.28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여보게 친구,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마음속의 무심한 미움일랑 꺼내진 말고 사세. 우리도 이젠 중늙은이 파도에 떠밀리는 통나무같이 세상 풍파에 이리저리 뒹굴다가 남몰래 지은 죄 많아 낯 들고 살기 쉽지 않으니 죽은 듯이 살아서 하늘이나 바라보세. 눈 침침해 앞이 잘 안 보이면 돋보기 안경을 쓰고, 안경을 써도 잘 안 보이면 눈짐작으로라도 하늘 뚫은 별자리 하나 미리 봐두세. 내일 일을 생각하여 마음속에 묻어두세. - 아무리 화가 나시더라도 / 김형영 표출하지 못하는 화가 쌓이면 화병이 된다. 특히 한국의 중년 여성에게 화병이 많다고 한다. 오죽하면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화병(Hwa-Byung)'이라는 병명까지 만들었다니 말이다.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제도나 사회 구조가 여성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다..

시읽는기쁨 2022.11.27

트레커에서 나오다

14년간 함께 했던 모임인 트레커에서 나왔다. 요 몇 년 동안 참여하는 횟수가 적다 보니 뜸하게 만나게 되고 마음도 멀어지게 되었다. 끝이 다가왔음을 작년부터 감지하고 있었다. 해외 트레킹에서 연이어 배제되는 걸 보면서 굳이 회원으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긴 시간 함께 했던 인연을 쉽게 놓지 못했다. 즐거웠던 추억거리가 많은 트레커였다. 히말라야 랑탕 트레킹을 계기로 트레커 모임에 가입했다. 2008년 가을이었으니 14년이 넘었다. 그동안 국내 산행과 여행의 대부분을 트레커와 함께 했다. 특히 해외 트레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09년 랑탕, 2015년 야쿠시마, 2016년 뉴질랜드는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트레킹이었다. 트레커가 아니었다면 맛보지 못했을 값진 경험이었다. 그 사실 ..

길위의단상 202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