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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해넘이를 보러 나선 길이 헛헛했다. 저무는 가을 풍경 탓만은 아닐 것이다. 사위는 온통 단풍색으로 찬란하지만 내 마음은 무채색이다. 같은 길이어도 여느 때와 다른 길이었다. 오늘 해넘이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배경이었다. 구름 장식 없이 밋밋한데 서서히 지는 해가 하늘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몸을 움츠리는 나를 따스히 위무해주는 고요한 저녁이었다. 아무런 미련 없이 아쉬움도 없이 해는 진다. 아름답고 장엄하다. 지상의 수많은 생명체에게 온기와 에너지를 전하고 태양은 소리 없이 사그라진다. 그가 남긴 잔광도 곧 어두운 하늘에 묻힌다.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한다.
어머니 돌아가시다. 전날 병원에서 뵙고 나오며 우리집 가까운 요양병원으로 옮길 거라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셨다. 집으로 오면서 A 요양병원에 들러 상담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은 B 요양병원에 찾아갈 계획이었고, 결정되는대로 전원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적어도 올 겨울은 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이야. 10/28(수) 아침에 동생한테서 어머니 상태가 나빠져 집중치료실로 옮겼다는 연락이 왔다. 부리나케 짐을 챙겨 아내와 달려갔다. 운전하는 내내 회복하실 수도 있다는 기대와 이대로 큰 고통 없이 돌아가시는 것도 축복이라는 두 감정이 오락가락했다. 어머니는 집중치료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부착한 채 힘겹게 숨을 쉬고 계셨다. 고갯짓으로 반응은 했지만 말소리는 내지 못했다. 폐와 심장 상태가 ..
체했을 때 소화제를 먹으면 속이 뻥 뚫린다. 마음의 체증에는 걷기가 소화제의 역할을 한다. 이런 날은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서는 게 최고다. 아무 목적 없이 그저 걷기만 해도 효과가 나타난다.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가본다. 중앙공원이 생긴 뒤로 경안천에 나갈 일이 드물어졌다. 시내를 통과하며 설렁탕으로 점심을 때운다. 설렁탕의 뽀얀 국물이 헛헛한 속을 채우면서 마음까지 따스하게 위무해 준다. G스타디움이 있는 체육공원을 한 바퀴 돌고 억새가 익어가는 경안천 길을 걷다. 청석공원 임시 무대에서는 소박한 공연이 열리고 있다. 무수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관계를 생각한다. 아무리 사소한 사념이나 행위라도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언젠가는 그 흔적이 나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다..
답답한 마음을 안은 채 무거운 발걸음으로 중앙공원으로 향한다.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동네에 이런 위안거리가 있다는 게 무척 고맙다. 오늘 노을은 은은하게 구름을 물들이며 번진다. 아름답게 채색된 저녁 하늘은 희로애락의 인간 세상을 아랑곳없이 내려다본다. 그런 자연의 무심함에 숙연해진다. "Que Sera Sera" -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안 일어날 일은 안 일어날 것이다.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다. 노을 구름을 배경으로 동쪽으로 날아가는 여객기를 따라가다. 작은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호대기에서문득 올려다본 하늘색아아 파아랗습니다 오이지 짓눌렀던 그 오래인 맷돌짝무릎 아래저리 순하게 흩어놓다니요 흔들어, 흐은들어 머리 얼마나 헹구었었는지잔잔히 추억 쪽으로 흘러가네요하아얀 새털구름 떼 웬일인지 목이 메여옵니다 - 그리고 가을입니다 / 안영희 가을 하늘은 저리 푸르고 새털구름은 흩어져 자유롭게 흘러간다. 자연이 너무 무심해서 더 서글퍼지는 계절이다. 내 가슴속 무겁디 무거운 맷돌짝이 새털구름처럼 가벼얍게 흩어질 날이 올 것인가. 머리 헹구듯 깨끗이 씻어질 날이 올 것인가. 한 고비가 넘어가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리라. 결코 저 가을 하늘처럼 되지는 못하리라. 그러함을 알면서도 살아나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오늘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기조차 두렵다. 울컥 목이 메여올 것 같다.
10/19(월) X-레이 사진상으로는 폐의 반 이상이 하얗게 변해 있다. 이 정도면 심한 기침과 가래가 동반될 것 같은데 둘 다 양호하다. 기침은 집에 있을 때 심했으나 점차 진정되다가 병원에 와서는 거의 사라졌다. 현재 주된 치료는 폐 염증을 줄이기 위한 항생제 주사 처치다. 다행히 염증 수치는 점차 낮아지고 있다. 오후에 담당 의사님과 면담을 가졌다. 이런 상태면 앞으로 1주일 정도 더 입원이 필요하단다. 식사량은 병원에서 나오는 죽의 반 정도만 억지로 드신다. 망가진 폐는 이제 어찌할 수 없고, 식사를 통해 원기를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집에서도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0/20(화) 아침에서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식욕촉진제를 투여하는 게 어떠냐고 해서 허락했다. 여동생과 같이 점..
지인이 빌려줘서 읽은 책이다. 정치인 이해찬은 나와 동년배로 같은 학번이고 같은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다. 삶의 이력은 다르지만 한때는 같은 캠퍼스 생활을 공유했다는 면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읽었다. 그해는 교련 반대 데모로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수학을 과락해서 계절 학기 수업을 들었다는 점도 같았다. 은 최민희 의원과의 대담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생생한 육성을 듣는 것 같다. 앞서 나왔던 과 같은 스타일이다. 김대중이 더 큰 정치인이지만 한 세대 앞선 분이어서 거리감이 있었고, 이해찬의 음성은 같은 시대를 경험해서인지 훨씬 더 실감 있게 다가왔다. 나의 청장년 시절을 반추해가며 추억 속에 잠길 수 있었다. 이해찬은 유신이 선포되고 학교가 문을 닫자 고향에 내려갔다가 아버지의 질타를 받고 다시 상경..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구순 특별 회고록이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70여 년의 비폭력 투쟁'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티베트가 1950년에 중국에게 점령, 흡수된 후 달라이 라마는 1959년에 인도로 망명해서 티베트 불교와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한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이 책은 70여 년간 그가 싸워 온 여정의 기록이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슬픔을 간직한 우리로서는 티베트의 사정이 남 같지 않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를 받았으나 티베트는 76년째 국권을 빼앗기고 망명정부가 독립 투쟁을 하고 있다. 이미 티베트 국내는 중국의 동화 정책으로 저항의 싹이 돋아나지 못하고 있다. 언어는 중국어로 통일되고 학교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의무화하여 티베트 아이들을 일찍부터 부모와 격리시킨다. 민족의식을 차단할 목..
동네 중앙공원 전망대에서 만난 어느 날의 저녁 하늘이다. 저녁노을을 보기 위해 맞춤한 시간대에 찾아갔다고 할 수 있다. 전망대에는 나처럼 노을을 보기 위해 올라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의자에 앉아 사색에 잠긴 듯 해 지는 하늘을 감상했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야 잘 나올까, 나만 바빴다. 서쪽 하늘에서 비켜 선 하늘 다른 부분의 구름이 예뻤다. 저 하늘 색깔처럼 맑고 투명하게, 저 구름처럼 가볍게 살라고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쉼 없이 부글거리는 내 마음이 과연 얼마나 진정될 수 있으랴.
여동생에게서 어머니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이 왔다. 추석에 식사를 못하시면서 기력이 쇠해가는 걸 느꼈는데 이즈음 들어 급격히 악회된 것 같다. 다음날 아침에 부리나케 내려갔다. 10/12(월)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우선은 병원에 가서 링거를 맞혀 드렸다. 원기 회복에 대한 얄팍한 기대를 가지고서. 10/13(화) 밤새 잦은 기침이 이어졌다. 어제 링거 영향인지 아침에는 다소 기력을 회복했다. 소량의 식사를 하고 종일 잠에 뻐져 들었다. 그러나 몇 발자국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힘들어했다. 동생과는 며칠 더 지켜보자고 했다. 오전에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오후에는 햇볕이 났다. 집 주변은 가을의 색깔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누워 있기만 했다. 잘 보시던 TV 프로그램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일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