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줬으면 그만이지

김장하 선생을 알게 된 건 2년 전에 MBC TV에서 방송된 '어른 김장하'라는 2부작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선생의 고결한 삶에 많은 사람이 감명을 받았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보여주는 분이다. 이 책 는 김주완 기자가 선생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글로 밝히고 있다. TV 프로그램과 겹치는 내용이 많지만 책으로 다시 만나는 선생의 모습은 여전히 감동이다. 이런 분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느껴진다. 부제가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다. 선생의 일생과 삶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1944년생인 선생은 집이 가난해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한약방에 취업한다. 19세 때 한약업사 면허를 따고 사천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연 게 선생..

읽고본느낌 10:05:27

사기[47]

관부는 사람됨이 강직하고 술기운을 빌려 기세를 부리기도 하였으며, 대놓고 아첨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귀한 친척이나 자기보다 신분이 높고 세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절을 지키려 하지 않고 반드시 업신여겼다.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가난하고 천할수록 더욱더 존경하고 자신과 동등하게 대우하였으며,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을 추천하고 아꼈다. 선비들도 이로 인해서 그를 높이 평가했다. 관부는 문장과 학문을 즐기지 않고 협기를 좋아하였으며 약속한 일은 반드시 지켰다. 그가 교유하며 왕래하는 자는 호걸이거나 대단히 교활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집안에는 수천만 금을 쌓아 두었으며 빈객은 날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에 달했다. - 사기(史記) 47, 위기무안후열전(魏其武安候列傳..

삶의나침반 2025.07.07

신들의 신 예수

'그리스-로마의 눈으로 신약의 예수님 보기'라는 부제 그대로 이교적 맥락에서 예수의 정체성과 초기 복음의 확산을 조명하는 책이다. 유대 전통이 아닌 이교 전통의 눈으로 예수 운동을 살펴보는 관점이 색다르다. 다신교가 지배했던 시대에 예수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는지 분석한다. 성경 해석에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좋은 책이다. 신학자인 이상환 선생이 썼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 쓰였지만, 우리에게 쓰이지 않았다." 성경의 초월성과 함께 역사성을 강조하는 문장이다. 성경의 저자는 동시대인을 대상으로 성경을 기록했다. 현재의 우리는 이차 독자이지 일차 독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당시의 문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단지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의미를 놓친다. 성경에 왜..

읽고본느낌 2025.07.06

참새의 어머니 / 가네코 미스즈

어린애가새끼 참새를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울음소리 참으며그걸 보고 있었다. - 참새의 어머니 / 가네코 미스즈 마음이 진흙탕을 휘저은 듯 탁해지고 울적할 때는 가네코 미스즈의 시를 찾는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얼마나 타락하고 있는지를 감지할 때, 불가항력으로 떠밀려 세월의 물살에 휩쓸리는 게 슬프다. 가만히 그녀의 품에 안겨본다. 이런 섬세한 감성과 순결한 동심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참새의 어머니'와 '가운데 눈'을 살필 수 있는 시인의 심안이 고마울 따름이다.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그런 마음일 테니까. 위의 눈은추울 거야.차가운 달님이 비추어 주니. 밑의 눈은무거울 거야.몇백 명이나 지고 있으니. 가운데 눈은쓸..

시읽는기쁨 2025.07.05

이재명의 길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어제는 한 달을 맞은 기자회견이 있었다. 차분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모습이 믿음직하다. 돌이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은 하늘이 내리지 않았나 싶다. 작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없었다면 이재명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선거권을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은 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윤석열이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은 박시백 화백이 그린 이재명의 전기 만화다. 박 화백은 반대 진영에 의해 악마화된 이재명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200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이어서 넉넉잡고 두 시간이면 인간 이재명을 만날 수 있다. 만화는 이재명의 성장기로..

읽고본느낌 2025.07.04

강릉 바닷바람을 쐬다

바닷바람을 쐬러 아내와 강릉에 갔다. 흐려서 여름해가 가려진 날씨였는데 대관령을 넘으니 파란 하늘이 나타나며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았다. 첫 목적지는 경포호의 가시연습지였는데 땡볕 속을 걷기가 힘들어서 습지를 한 바퀴 도는 것은 포기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으니 경포호 산책길에도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에 서니 가슴이 뻥 뚫렸다. 햇살은 따가웠으나 바닷바람은 시원했다. 이런 걸 비취색이라고 하는 걸까. 동해 바다 색깔이 이리 예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청정 자연을 자랑하는 해외 유명 관광지에 나오는 바다 같았다. 오늘은 이 바다 색깔 하나만으로도 강릉에 온 이유가 충분했다(사진은 실제보다 훨씬 탁함). 아직 여름휴가철이 되지 않아서 해변은 조용했다. 주변에는 개를 데리고 노는 ..

사진속일상 2025.07.03

6월 걷기 통계

한 달여 전에 '삼성 헬스' 앱을 작동시켰다. 너무 몸을 안 움직이는 것 같아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어서였다. 그동안은 하루에 몇 보를 걸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수치로 내 걸음이 측정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효과가 있었다. 목표를 정하고 나니 한 번이라도 더 몸을 움직이게 되었다. 이왕이면 목표를 이루고 팡파르를 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이었다. 앱에 정한 내 하루 목표는 '걸음 수 8000, 활동 시간 90분, 활동 칼로리 300kcal'다. 6월 한 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왔다. 30일 동안 셋 모두의 목표를 달성한 날은 5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걸음 수에만 한정하면 8000보 이상 걸은 날이 16일이었다. 이틀에 한 번은 8000보 넘게 걸었으니 상당한 성과였다. ..

길위의단상 2025.07.01

1409a(6)

외롭고 고단치 않은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기는사바세계다 (140901) 때가 되어피고 때가 되어진다 그뿐 (140902) 숲길에서환호성이 터졌다 금강초롱을처음 만난 날 (140903) 내 씨를 퍼뜨리려는수컷의 처절함 내 새끼를 보살피려는암컷의 지극함 본능의 집요함이 만든기하학적 아름다움 뭉클해진다 (140904) 커튼이 미세하게떨린다 아침 햇살이간지러운가 보다 (140905) 컴퓨터 바탕 화면에새겨두었다 忍! 이게 안 되고는만사가 도루묵이다 (140906)

포토앤포엠 2025.06.30

동료를 위해 가면을 써라

"동료를 위해 가면을 써라." 인문학자인 엄기호 선생이 쓴 책을 읽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온 문장이다. 동료를 대할 때는 가면을 벗고 진실된 마음으로 마주해야 할 텐데 가면을 쓰라니, 이건 무슨 말인가. 선생이 말하는 뜻은 동료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미가 아니라 세심한 배려라는 것이다. 의미를 추구하는 순간 친구들과의 관계가 깨지기 쉽다. 내 경우를 돌아보아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알게 모르게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나봤자 쓸데없는 소리만 지껄이고 아무 의미가 없는데 뭣 하려 나가느냐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끊은 모임이 여러 개다. 만나면 배울 점도 있고, 생각할 만한 점도 있고, 유용한 점도 있어야 하는데 만나면 하나마나한 말만 하니까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선생의 ..

참살이의꿈 2025.06.29

대단한 노익장

'노익장(老益壯)'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기력이 왕성해짐. 또는 그런 사람'으로 나와 있다. 드물기는 하지만 세월을 거꾸로 사는 듯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95세인 권노갑 이사장(김대중재단)이 골프를 치다가 이글을 했다는 보도를 봤다. 그날 기록이 이글 1개, 버디 5개, 보기 2개로 총 2 언더에 70타를 쳤다는 것이다. 골프를 못 치니까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록인지 감이 오지 않지만 신문에까지 난 걸 보니 특별한 것인가 보다. 하긴 95세면 걷기도 힘들 나이인데 보통 사람이라면 골프 라운딩을 하면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것만도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말이다. 권노갑 이사장은 김대중 대통령 곁에서 정치를 한 분이다. 겉으로도 타고난 체력과 건강을 소유한 분으로 보였다. 관리도 잘..

길위의단상 2025.06.28

대모산을 넘어 모임에 나가다

수서에서 만나기로 한 면목회의 점심 모임에 이왕이면 걷기를 겸해 대모산을 넘어서 갔다. 대모산입구역에서 전철을 내리려 했는데 지나치는 바람에 개포동역에서 산에 들었다. 역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들머리가 나온다. 살짝 는개가 내리는 산길이 고즈넉하고 예뻤다. 이럴 때는 "아, 좋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삶에 대한 애정이 뿜뿜 솟아난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울의 강남 지역이 뿌옇게 흐려 있었다. 지금은 장마 기간인데 날씨가 이만하길 다행이었다. 개포동 들머리에서 대모산 정상(293m)을 지나 수서까지 가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현재의 내 체력에 딱 적당한 걸음이다. 모임에서는 9박10일의 일정으로 다녀온 G의 여행담에 귀를 기울였다. 여섯 명이 지인인 현지인 가이드를 고용하여 안내를 받으며 다녔다..

사진속일상 2025.06.27

사기[46]

효문제 때 오나라 태자가 조정으로 들어가 천자를 뵌 다음 황태자를 모시고 술을 마시고 박(博)을 두게 되었다. 오나라 태부들은 초나라 사람들로서 경박하고 사나웠으며, 오나라 태자도 줄곧 교만하였다. 박을 두는 데 길을 다투는 것이 불손하므로 황태자는 박판을 끌어당겨 오나라 태자에게 집어 던져 죽이고 말았다. 그러고는 그 시신을 관에 넣어 돌려보내 장사 지내게 하였다. 태자의 시신이 오나라에 이르자 오왕은 노여워하며 말했다."천하는 같은 종족인데 장안에서 죽었으면 장안에서 장사 지내야지 무엇 때문에 꼭 오나라에 와서 장사 지내야 하는가!"다시 유해를 장안으로 돌려보내 그곳에서 장사 지내게 하였다. 이때부터 오왕은 점점 번신(藩臣)으로서의 예의를 잃고 병을 핑계 삼아 조정으로 나가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오왕..

삶의나침반 2025.06.26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초경(初經)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젠 내가 껴안아줄 수도 없고생이 끔찍해졌다딸의 일기를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눈빛만 형형한 아프리카 기민들 사진,"사랑의 빵을 나눕시다"라는 포스터 밑에 전가족의 성금란을표시해놓은 아이의 방을 나와 나는바깥을 거닌다, 바깥,누군가 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사람들을 피해 다니는 버릇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다옷걸이에서 떨어지는 옷처럼그 자리에서 그만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생,뚱뚱한 가죽부대에 담긴 내가, 어색해서, 견딜 수 없다글쎄, 슬픔처럼 상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등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면서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水位)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

시읽는기쁨 2025.06.25

용문사 은행나무(2025)

용문사 은행나무를 처음 만난 것은 50년 전인 1970년대였다. 당시 용문사는 당일 나들이나 야유회로 찾던 장소였다. 마의태자의 전설이 담긴 이 나무는 처음 봤을 때 크기에서 압도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수령이 1,100년 정도인데 실제 측정 결과는 고려 목종 때에 심어진 것으로 밝혀졌다니 100년은 감해야 할 것 같다. 이 은행나무는 줄기가 위로 곧게 뻗어 올라간 게 특징이다. 나무 형태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 이 정도 크기의 나무가 태풍이나 벼락에서 큰 손상을 입지 않고 천 년 세월을 버텨왔다는 게 볼 수록 대단하다. 영험하다고 믿을 수밖에 없을 터니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를 하고 소원문을 붙이는가 보다. 지금은 여름이라 나무는 무성한 초록잎을 달고 있다. 가을에 노랗게 ..

천년의나무 2025.06.24

용문사에서 친구를 만나다

중학 동기인 두 친구를 용문사에서 만났다. 둘 다 10여 년 전부터 양평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어 산책을 할 겸 함께 만나기에 용문사가 적당했다. 용문사관광단지에서 같이 점심을 하고 용문사로 향했다. 용문사은행나무길은 계곡을 따라 걷는 녹음 짙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전에는 아기자기한 산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폐쇄되어 있었다. 졸졸 흐르는 계곡물소리가 맑고 청량했다. A는 3년 만에, B는 15년 만에 만나는 참이었다. 50대 때는 자주 만났는데 그동안은 한참을 격조했다. 이렇듯 오랜만에 만나면 흐른 세월의 깊이에 잠시 멍해진다. 나이를 먹으니 다들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졌다. 할아버지들의 수다도 여자들 못지 않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만났으니 반가워서 그렇다고 치자. 하여튼 고성..

사진속일상 2025.06.24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다. 2006년에 나왔으니 꽤 오래된 영화인데 비주얼이나 표현 방식이 독특해 재미있으면서 감동이 있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작품인데 일본적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결이 다른 영화라 느꼈다. 마츠코는 삼 남매의 장녀인데 부모의 관심과 사랑은 아픈 여동생 쿠미에게 쏠려 있다.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에 시달린 마츠코는 교사가 되지만 행복도 잠시일 뿐 불운한 사건에 연루되어 교단에서 쫓겨난다. 학생을 감싸려 한 행위가 도리어 화를 부른 것이다. 착하고 순수한 마츠코는 험한 세상에 내동이쳐진 셈이다. 이후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 같이 마츠코를 파멸로 이끌고, 그럴수록 마츠코는 더욱 애정에 집착한다. 결국은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인생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읽고본느낌 2025.06.23

천국이 없다면

심심할 때 TV 리모컨을 누르다 보면 종교 채널에 머물 때가 있다. 종교의식이나 설교, 강론, 법문을 들으면 재미가 있다. 어떤 때는 코미디 프로를 보는 것 같다. 어느 날 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는 중에 고개를 젓게 되는 내용이 있었다. 만약 부활이 없고 천국이 없다면 내가 미쳤다고 힘들게 목사짓을 하고 있겠느냐는 반문이었다.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피우고 세상 재미도 못 보면서 사는 이유는 나중에 천국이 줄 보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올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고작 내세의 보상에 대한 기대만일까. 인간이라면 보상 여부를 떠나 현재를 바르게 살아가도록 노력하는 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맹자는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

참살이의꿈 2025.06.22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

문화심리학자인 한민 선생이 쓴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하는 책이다. 감어인(鑑於人)이라는 말이 있듯 나를 알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거울에 비춰봐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다른 점이 너무 많다. 서로를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나라라고 말한다. 이 책은 두 나라의 차이를 역사성이 깃든 문화의 관점에서 재미있게 분석한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다. 나도 10년 전 야쿠시마에 갔을 때 일본인들의 친절과 양보에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들은 좁은 산길에서 마주오는 상대를 보면 멀리서부터 비켜서서 기다린다. 먼저 지나가라고 길을 양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소를 띠고 인사까지 건넨다. 길에서 만난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왜 ..

읽고본느낌 2025.06.21

초여름 하늘

오늘부터 중부 지방에는 장마가 시작되었다. 밤부터 비가 시작되었고 오늘내일 사이에 세찬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다. 어제는 당구 모임에 나가는 길에 여수천을 걸었다. 산책로에는 녹음이 짙었고 하늘에는 고적운이 떠 있었다. 형태상으로 양떼구름이라 불리는데 비 내릴 전조로 알려진 구름이다. 탄천에 많던 잉어가 요사이는 여수천에서도 자주 보인다. 두 하천이 연결되어 있으니 서식지가 넓어지는 건 당연한 것이겠다. 잉어한테는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려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물 깊이가 아주 얕은 곳까지 진출해 있다. 가물면 어쩌려고 하는지 불안하다. 잘 알아서 적응해 나가겠지만. 흰뺨검둥오리는 아침부터 나른한가 보다. 가까이 다가가도 별 반응이 없다. 생명체가 가지는 특징들을 살펴보면 신비하기 그지없다. ..

사진속일상 2025.06.20

1408h(5)

나무 그림자를 배경으로 붕어잉어물장군물방개소금쟁이들이 유유자적노니는 오후 여름 호수는시시각각 변하는유화 그림판이다 (140839) 저 가없는 무등의 세계를 보아 (140840) 나비가찾아오지 않는다고 찡그리는꽃을 보았니? (140841) 미워하지 말자원망하지 말자 상대를 겨눈 칼날이 먼저그대 가슴을 찌를 것이니 (140842) 오늘은왜 여태 안 나올까 앞집 사는할매를 기다리는 느티나무 할배고개가 아프다 (140843)

포토앤포엠 2025.06.19

사기[45-2]

황제가 순우의에게 물었다."문왕이 병을 얻어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된 까닭을 아시오?"순우의가 대답하여 말했다."문왕의 병을 직접 진찰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어 보니 문왕은 천식이 있었고 머리가 심하게 아팠으며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이 마음속으로 이 증상을 헤아려 보니 그것은 병이 아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살이 찌고 정력이 쌓이기만 하여 몸을 잘 움직일 수 없고 뼈와 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천식이 생긴 것이므로 의약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맥법에도 '나이 스물에는 혈맥이 왕성하므로 달리는 것이 좋고, 서른에는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이 좋고, 마흔에는 편안히 앉아 있는 것이 좋고, 쉰 살에는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이 좋고, 예순 살이 넘으면 원기를 깊이 감추어 두는..

삶의나침반 2025.06.18

49 : 41

두 주일 전인 6월 3일에 실시된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만들어진 선거라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다. 단지 이재명 후보가 몇 %로 득표 차이로 이기느냐가 관건이었다. 결과는 이재명 대 김문수의 득표율이 49:41이였다. 나는 이재명 후보가 50%를 넘을 거라 봤고, 김문수 후보는 많아야 30%대 중반쯤일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견과 동떨어졌다. 탄핵을 반대하면서 여전히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는 김문수가 40%가 넘는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번 선거는 이재명 개인에 대한 반감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경상도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윤석열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이재명 같은 나쁜 놈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경상도만 아니라 많..

길위의단상 2025.06.17

1408g(4)

꽃잎 둘 띄워놓고돌아서는 보살님 댕그랑홀로 매달린풍경이 울었다 (140835) 부끄러울 때가 있다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가만히 자신을 토닥여주기 그래 괜찮아누구나 실수를 하는 거지이만하면 잘 살아내고 있는 거야 (140836) 아무리 얼굴을 맞대도 너의 목소리를들을 수 없어 너의 깨진 가슴도안아볼 수 없어 (140837) 풍경 앞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된 경험이우리 생애에 몇 번이나 될까 그랜드 캐니언과 마주했을 때가 그랬다 (140838)

포토앤포엠 2025.06.16

오늘 / 메리 올리버

오늘 나는 낮게 날고 있어.말 한 마디 하지 않고모든 야망의 주술을 잠재우고 있지. 세상은 갈 길을 가고 있어,정원의 벌들은 조금 붕붕대고,물고기는 뛰어오르고, 각다귀는 잡아먹히지.기타 등등. 하지만 나는 오늘 하루 쉬고 있어.깃털처럼 조용히.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사실은 굉장히 멀리여행하고 있지. 고요. 사원으로 들어가는문들 가운데 하나. - 오늘 / 메리 올리버 시집 에 실려 있는 메리 올리버의 시다. 메리 올리버의 시를 읽으면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진다. 시집의 시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표지 뒷면에 실린 시인의 사진을 훔쳐보는 버릇이 있다. 시의 분위기와 시인의 얼굴이 잘 매치되어 시를 읽는 효과가 배가되는 느낌이다. 이 시에서도 모든 단어들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생명..

시읽는기쁨 2025.06.15

다읽(25) - 순교자

작년에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동안은 고은, 황석영 등이 후보에 회자되었으나 정작 엉뚱한(?) 분이 노벨상을 받게 되어 더욱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 문학상에 근접했던 분은 김은국 작가라고 알고 있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탓에 아무래도 국내 작가들보다는 세계 문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23살 때인 1955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작품 활동을 했다. 대표작인 이다. 오래전에 접한 는 읽으면서 상당히 거북했던 느낌이 아직 남아 있다. 왜 그랬는지 의문이 들어 이번에 다시 읽어 보았다. 작가가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정서와는 왠지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이번에 확..

읽고본느낌 2025.06.14

남한산성 걷기

용두회의 이번 달 트레킹은 남한산성 걷기였다. 남문에서 만나 수어장대를 거쳐 산성마을로 하산하는 가벼운 코스였다. 다섯 명이 함께 했다. 청명한 하늘에다 초여름에 걸맞게 그리 덥지도 않은 걷기 좋은 날이었다. 수어장대가 위치한 청량산 정상은 482m이고, 123층인 롯데월드타워의 높이는 555m이다. 산 꼭대기에서 타워를 올려다보는 셈이다. 친구들이 간식을 즐기는 동안 잠시 수어장대에 들렀다. 이번에는 D750에 20mm를 물려서 들고나갔다. 장롱에서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카메라에 바깥바람을 쐬어주기 위해서였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전적인 셔터음에 기분이 좋았다. 산성마을에서 두부, 파전에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성남으로 내려가 당구를 즐겼다. 여사장님과 함께 친 복식 게임이 재미있었다. 생맥주집에서..

사진속일상 2025.06.13

초여름 뒷산

우리 부부는 서로가 과하다고 느낀다. 아내는 지나쳐서 과(過)하고, 나는 모자라서 과(寡)하다. 아내는 바깥 활동이 많고, 나는 집에 머무는 날이 많다. 아내는 건강에 관심이 많으며 부지런하다. 내 활동량의 서너 배는 될 것이다.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는데, 2만 보를 찍는 날도 가끔 있다. 나는 매일을 평균하면 2천 보쯤 될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경고한다. 나는 아내에게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심한 움직임은 해가 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아내는 내 게으름을 탓하며 나무늘보가 되지 말라고 한다. 오전에 아내는 뒷산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왔다. 나는 집안에서 빈둥거리다가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밖으로 쫓기듯 나왔다. 정처 없이 나왔다가 마을을 지나 뒷산을 걸치고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뒷산은 산모기를 ..

사진속일상 2025.06.12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지난 9일 미국에서 열린 토니상 시상식에서 우리나라의 창작 뮤지컬인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작품상을 비롯해 6관왕을 차지했다. 이번에 수상한 부문은 뮤지컬 작품상, 남우주연상, 극본상, 작사작곡상, 무대디자인상, 연출상이었다. 토니상은 연극과 뮤지컬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번 토니상은 한국 문화계가 세운 대단한 업적이라 할 만하다. 이 시상으로 우리나라는 미국의 4대 대중문화 시상식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이 된 '기생충'2022년 에미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2025년 토니상 6관왕의 '어쩌면 해피엔딩'그래미는 오래전에 소프라노 조수미가 '베스트 오페라 레코딩상'을 받은 적이 있다. 가까운 시일에 우리나라 K팝 가수가 ..

길위의단상 2025.06.11

사기[45-1]

편작은 제자 자양에게 쇠침과 돌침을 갈게 한 뒤 그것으로 몸 살갗에 있는 삼양(三陽)과 오회(五會)를 찔렀다. 한참 뒤 태자가 깨어났다. 그러자 제자 자표에게 10분지 5의 고약과 10분지 8의 약제를 섞어 달여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번갈아 붙이도록 하니 태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음과 양의 기운을 조절해 가며 탕약을 스무 날 동안 먹게 하니 태자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일로 하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편작은 죽은 사람도 살려 낼 수 있다고 여기게 되었다. 편작이 말했다."나 진월인은 죽은 사람을 살려 내지는 못한다. 이는 내가 스스로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날 수 있게 한 것뿐이다." - 사기(史記) 45-1, 편작창공열전(扁鵲倉公列傳) 편작은 춘추시대 때의 명의로 이름은 진월인(秦越人)이..

삶의나침반 2025.06.10

춘분 / 정양

출근하면서 연구실 문을 잠근다누가 문을 두드려도 시늉도 하지 않으리라마침 강의도 없다 밖에 안 나가려고쉬야도 세면대에 하고 점심 저녁 쫄쫄 굶고앉았다 일어났다 눈 감았다 떴다 어둡도록불도 안 켜고 무슨 쭘뼝인지 나도 모르겠다나를 위해서든 누굴 위해서든아무 짓도 하지 말아야 세월이 옹골질 것 같다봄날이 오든 가버리든 밤낮이 길든 짧든내버려둬라 내비둬라 냅둬라 낯익은 말투로시간이 나를 포기할 때까지 나도세월을 포기하면서 뒨전거렸다퇴근은 해야지 싶어 하루 종일아무도 두드린 일 없는 문을 멋쩍게 열고 밖에 나선다갈 데가 집뿐인가 집뿐인가 주억거리는 주차장 불빛에산수유꽃 몇 그루 빈 주차장보다 더 적막하게 피어 있다 - 춘분 / 정양 지난주에 정양 시인이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우석대..

시읽는기쁨 2025.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