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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안의 저녁노을

영종도 마시안 해변에서 저녁노을과 함께 했다. 요사이 해 지는 시간은 저녁 7시 부근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해변을 산책하다가, 바위에 앉아 바다를 마주하며 멍 때리다가, 해 떨어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평일 저녁 바닷가는 조용했다. 느긋하고 한가로운 시간이 좋았다. 들끓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저어새 두 마리가 여유 있게 오가며 먹이를 찾는 바닷가였다. 낮에는 인천공항으로 착륙하는 비행기를 구경했다. 온갖 설레임과 기대가 저 비행기 안에 담겨 있을 걸 생각하면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르 스페이스'에서 영상으로 우주 여행도 했다. 현란한 색채 속에서 눈호강을 제대로 했다. 피신하듯 찾아갔던 영종도 나들이였다.

사진속일상 09:18:49

그만 내려놓으시오 / 공광규

인생 상담을 하느라 스님과 마주 앉았는데보이차를 따라놓고는잔을 들고 있어 보라고 한다 작은 찻잔도 오래 들고 있으니 무겁다 그만 내려놓으시오찻잔을 내려놓자금세 팔이 시원해졌다 절간을 나와화분에 담겨 시든 꽃을 매달고 있는 화초와하수가 고여 썩은 개천을 지나오는데 꽃은 화려함을 땅에 내려놔야 열매를 얻고물을 도랑을 버려야 강과 바다에 이른다는 말씀이내 뒤를 따라온다 - 그만 내려놓으시오 / 공광규 찻잔 내려놓듯 할 수 있다면 근심 걱정이 아닐 것이다. 시름이 아닐 것이다. 스님의 말씀이 이해는 간다. 결국 마음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나를 짓누르는 만 근의 무게도 알고 보면 찻잔 정도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몇 그램짜리를 몇 톤으로 만든 게 과연 누구인가. 그걸 아는 게 깨달음인지도. 시에 나오는 '화분..

시읽는기쁨 2025.09.05

퇴원 후 첫 진료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진료를 받았다. 퇴원 후 3주 만이었다. 다행히 뼈는 잘 붙고 있고 경과가 좋았다. 다만 어머니가 식사를 잘 못하면서 무기력증을 보여 걱정이다. 집으로 퇴원할 때만 해도 활기에 차서 금방 일어설 것 같았는데, 한 번 몸살을 앓고 난 뒤 상황이 나빠졌다. 만사를 귀찮아하신다. 몸보다 정신에서 문제다. 노인은 몸이나 정신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희망을 주다가도 금방 퇴행을 한다. 사람의 궁리로는 이해하기도 예상하기도 힘들다. 다행히 여동생이 옆에서 정성으로 구완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 이번에 병원 진료를 받기 위해서 1시간 30분을 대기했다. 그런데 의사와 면담한 시간은 3분 쯤 되었을까. 문을 닫고 나오며 너무 허망했다. 여기는 예약 시간도 없이 그냥 접..

사진속일상 2025.09.04

1410a(7)

모든 사물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마음을 주지 않으니 보지 못할 뿐이다유심히 바라보면 모두가 다 사랑스럽다 너는 왜 여기 누워 있니,길에 떨어진 나뭇잎을 쪼그려 앉아 오래 바라봤다 (141001) 새 발자국은날아가는 새를 닮았네 내가 남기는 자취는 어떨까 사람값은 하고나사는 걸까 마음 속 거울을들여다보는 눈 내린아침 (141002) 네가 나를 비추고내가 너를 비춘다 네 속에 내가 있고내 안에 너가 있다 중중무진!나마스떼! (141003) 그대 오시는가 창문을 열어보니 뜰에 빗소리 (141004) 활활꽃불이 탄다 내 속에도저 불 지르고 싶어라 (141005) 해 질 무렵이 가로등 아래서 기다리면 마법의 나라로 가는꼬마 기차가 올 것만 같아 (141006) 스..

포토앤포엠 2025.09.02

사기[51]

대장군이 말했다."나 위청은 다행히 폐하와 인척인 관계로 대장군에 임용되어 위엄이 없을까 하고 근심하지는 않소. 주패는 나에게 위엄을 분명히 하라고 했으나 내 뜻과는 사뭇 다르오. 또 내 직책상 비장을 밸 수 있다고는 하나 폐하의 총애를 받는다고 하여 국경 밖에서 내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소. 천자께 이 일을 상세히 보고하여 천자께서 스스로 재가하시도록 하겠소. 이렇게 함으로써 남의 신하 된 자가 감히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음을 보이는 것도 좋지 않겠소?"군관이 모두 말했다."좋습니다." - 사기(史記) 51, 위장군표기열전(衛將軍驃驥列傳) 한무제 때 대장군을 지내며 흉노를 토벌한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 장군에 대한 열전이다. 둘은 미천한 출신이었지만 흉노를 물리치는 큰 공을 세우면서 무제의..

삶의나침반 2025.09.01

정처 없는 이 발길

음치지만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릴 때가 있다. 우울할 때면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이라는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이 무심코 튀어나온다. 음정 박자가 자유롭게 놀아도 쓸쓸한 가사에 공감해서다. 어제도 그랬다. 50년 전 옛날이 떠오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다닐 때의 출근길에서도 이 노래를 자주 벗삼았다. 아침에 전철 대방역에서 내려서 가는 길은 공장 지대를 끼고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스산하고 슬펐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갇혀 살 것 같다는 미래에 대한 절망 비슷한 심정도 있었으리라. 20대 때 흥얼거리던 노래가 70대가 되어서도 변함없다. 인생이 나그넷길이란 게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잖는가. 가사 중에서도 '정처 없는'에는 북받치는 무엇인가가 있다. 정처(定處)가 없다는 ..

길위의단상 2025.08.31

일인칭 가난

읽으면서 너무 안타까워 책장을 넘기기 힘들었다. 150페이지 정도 되는 얇은 책이지만 드문드문 읽다 보니 여러 날이 걸렸다. 지은이가 겪은 시련과 가난에 마음이 아팠다. 풍요 속에 가려진 우리 시대 가난의 아픔이 절절이 다가왔다. 을 쓴 안온 작가는 태어나서부터 20년을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았다. 가난에 더해 예민한 청소년 시기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의 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다. 밖으로는 숨겨야 하고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난은 대개 가족의 애사를 동반한다. 가난이 원인인지 가족이 원인인지 모르게 둘은 얽혀 있다. 지은이는 책의 한 부분에서 그래도 가족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개인이나 가족보다 사회적 책임을 상기하려는 것 같다. "나는 가난을 말할 때 가족을 맨 뒤에 배치한다. 가족이 그 모양..

읽고본느낌 2025.08.30

다읽(28) - 유년기의 끝

40여 년 전에 읽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는 SF 소설이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하는 소설의 끝 장면을 두근거리며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서 클라크의 작품인데 당시 번역된 책 제목은 였다. 응당 절판되었고 지금은 원 제목인 를 직역한 으로 나와 있다. 21세기 초반의 어느 날 갑자가 지구로 외계생명체가 찾아왔다. 여러 대도시 상공에 거대한 우주선이 출현한 것이다. '오버로드'라고 불리는 그들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구인과 소통하며 지구를 변화시켜 나간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은 불가능한 것이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나자 지구는 겉으로 보면 유토피아로 변했다. 전쟁이나 기아, 질병이 없어지고 진정한 평화가 찾아왔다. 대신에 예술, 종교, 과학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감내해야 했다. 분쟁이나 갈등이 사라진 대..

읽고본느낌 2025.08.29

1409e(8)

어렸을 때 마을 앞 철길은우리들 놀이터였지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굼뱅이처럼 기어가던 시절이었어 달리는 기차 옆을 닿을 듯 따라 뛰어도무섭지 않았어 열차 안 승객과 눈을 맞추고손을 흔들면 사탕을 던져주기도 했지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어 총알처럼 달리는 고속열차가공기를 사납게 가르게 된 것이 이제 더 이상 밖을 내다보는승객은 없어 누구도 지나가는 기차에관심을 두지 않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지 안과 밖을 가르고너와 나를 단절시키며기차는 바람 소리만 내며 달려가지 그렇게 쏜살같이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140928) 너희들은 좋겠다 씽씽 신나게 달려갈 곳 많고 반기며 기다리는 사람있을 거고 희희낙락거릴일 많을 테니 (140929) 파란 하늘이 고왔던 날 저 길 끝에서짜잔~..

포토앤포엠 2025.08.28

8월 하순의 능소화

햇볕은 따가우나 바람은 시원하다.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는 신호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골목에서 여전히 환하게 피어 있는 능소화를 봤다. 6월 하순에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 같은데 두 달 동안 피고지기를 이어가고 있다. 새 꽃봉오리가 맺힌 걸 보니 9월까지는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름꽃이 대체로 강렬한 색감을 뽐내는데 능소화는 은은한 주황색이어서 정겹다. 목백일홍이라 부르는 배롱나무꽃은 졌지만 능소화는 지칠 줄을 모른다. 백일홍 명칭은 능소화에 붙여 마땅해 보인다. 능소화는 은근하면서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꽃이다. 이런 짧은 시가 있다. '하염없이'를 떠올리며 다시 능소화를 그윽히 바라본다. 누가 그렇게하염없이 어여뻐도 된답니까 - 능소화 / 서덕준

꽃들의향기 2025.08.27

넥서스

는 지인이 추천하면서 빌려준 유발 하라리의 책이다.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라는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말해준다. 정보의 흐름으로 보는 인류 역사가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펼쳐진다. 지적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이미 읽었던 에서 하라리는 상호주관적 현실이 인간의 문명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인간은 이야기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주관적 현실을 만들고 수백만 명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다. 이때 주고받는 정보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한다. 정보 네트워크의 역사는 진실과 질서 사이의 균형 맞추기였는데 하라리가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정보가 많아도 진실에 접근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역사에는 자주 나타났다. 정보가 오도되는 대표적인 예로 에는 중세의 마녀..

읽고본느낌 2025.08.26

다정가 / 이조년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다정(多情)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하노라 - 다정가(多情歌) / 이조년(李兆年)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시조는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었다. 그때 10대의 아이가 어떤 느낌을 가졌을지 추측이 되지 않는다. '일지춘심'이나 '다정'으로 나타나는 잠 못 드는 봄밤을 얼마큼 공감할 수 있었을까. 이 시조를 지은 이조년(1269~1343)은 고려말의 선비였다. 다섯 형제가 있었는데 이름이 특이하게도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었다. 이조년은 막내인 셈이다. 동생이 있었다면 아마 경년(京年)이 되었으리라. 이런 이름을 지은 아버지는 재미있는 분이었을 것 같다. 이조년에게..

시읽는기쁨 2025.08.25

봇이 점령한 블로그

AI 혁명이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실감하지는 못한다. 직접 업무에 이용하거나 실생활에 활용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챗GPT나 영상 AI를 작동시켜 보지만 일시적이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AI 시대의 그늘을 목격한다.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거슬리는 점이 AI 봇에 의해 생성되는 천편일률적인 댓글이다. 글을 읽지도 않으면서 봇이 댓글을 자동으로 만든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은 전부 봇이 만들었다. 내 블로그의 경우에는 9할이 이런 의미 없는 댓글들이다. 스팸 처리를 하여 보이지 않게 하지만 한계가 있다. "왔다간 흔적 남깁니다.""정성어린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내용 잘 읽었어요.""잘 봤어요.""공감 누르고 가요." 등등 어떤 것은 마치 인간이 쓴 것인 양 교묘하게 위장하려 하지만 봇인 게 금방..

길위의단상 2025.08.24

다읽(27) - 미지와의 조우

젊었을 때 SF를 무척 좋아했다. 요새 말로 덕후쯤 되었다 할까, 출판되는 SF 소설은 모두 사 모았다. 그때만 해도 드문드문 번역서가 나와서 기다리느라 조바심을 냈던 기억이 난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에 본 영화 중에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는 것이 '미지와의 조우'라는 이 영화다. 원제는 '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인데 '미지와의 조우'라는 번역도 멋지다.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30세에 만들었다. 젊은 나이에 이런 영화를 만들다니 천재는 천재였던가 보다. 몇 년 뒤에는 'ET'가 나와서 대히트를 쳤다. 'ET'와 정서적으로 연결되는 영화가 '미지와의 조우'다. 외계인과의 접촉이라고 하면 우선 침공이나 전쟁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인간에 내재한 폭력적인..

읽고본느낌 2025.08.23

여수천의 늦여름 아침

처서가 내일인데 늦더위가 만만치 않다. 한낮 기온이 31℃ 정도지만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하다. 교과서에서 배운 북태평양기단의 성질을 체감하는 중이다. 차라리 건조한 땡볕이 낫겠다. 여수천을 걸어 야탑 모임에 나가다. 산책로에는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든다. 걷기도 좋지만 다들 밖에 나설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 대신 매미 소리만 요란하다. 오전인데도 살에 달라붙으며 흐르는 땀이 끈적끈적하다. 심란하니 공이 잘 맞을 리 없다. 점심 식사 중에 여동생 전화를 받고 다시 마음을 졸였다. 요사이는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다. 불안을 술로 풀어보고 싶었으나 자제했다. 알코올의 위로는 후과가 크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잘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는 족저근막염으로 병원에 다..

사진속일상 2025.08.22

사기[50]

흉노는 물과 풀을 따라 옮겨 다녀서 성곽이나 일정한 주거지가 없고 밭 가는 일도 하지 않았으나, 각자 땅만은 나누어 가졌다. 문자나 책이 없으며 말로 약속을 했다. 어린아이도 양을 타고 활시위를 당겨 새나 쥐를 쏠 줄 알고, 좀 더 자라면 여우나 토끼를 쏘아 식량으로 삼았다. 남자는 활을 당길 만한 힘이 있으면 모두 무장한 기병이 되었다.그들의 풍속은 한가할 때는 가축을 따라다니며 새나 짐승을 사냥하는 것을 생업으로 삼고, 위급할 때는 모두가 싸움에 참여하여 침략하고 공격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천성이다. 그들이 먼 거리에 쓰는 무기로는 활과 화살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쓰는 무기로는 칼과 작은 창이 있다. 싸움이 유리하면 앞으로 나아가고 불리하면 뒤로 물러서며 달아나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여기지 않았다. ..

삶의나침반 2025.08.21

시름 견디기

시름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때가 있다. 외적 상황이 압도적이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미래가 두렵고 불안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다가 깬 뒤에는 수면제의 도움을 받아야 다시 잠들 수 있다. 스스로 견뎌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버티다 보면 악조건이 정리되고 다시 새로운 질서가 잡힐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은 어찌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지고 다짐한다. 몰려오는 시름을 잊기 위해서는 집안에 있기보다 밖에 나가는 게 좋다. 무엇엔가 몰두하면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걷기나 바둑 같은 것이다. 도피일지 몰라도 정신 건강에는 도움이 된다. 최근에 걸음수가 껑충 뛰었다. 편하면 게을러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러나 지금처럼 마음이 착잡..

사진속일상 2025.08.20

황금종이

"딸이 어머니에게 소송을 걸었다?"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조정래 작가의 두 권으로 된 장편소설이다. 돈 때문에 벌어지는 요지경 세상을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그린다. 주인공인 이태하 변호사에게 의뢰가 들어오는 사건을 중심으로 드러나는 세태가 씁쓸하다. 돈 앞에서는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친구도 없다. 배신하고 증오하고 심지어는 살인도 일어난다. 법원 소송 사건의 9할이 돈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마침 시의적절하게 이 책을 읽은 셈이었다. 내가 속 끓이는 것도 결국은 돈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돈 앞에서는 누구나 비굴해지거나 야만성을 드러낸다. 예외는 거의 없다. 이 소설에서는 청년 시절의 순수했던 지조를 지켜나가는 이태하와 한지섭이 나온다. 대다수가 맘몬교 추종자들인 세상에서 ..

읽고본느낌 2025.08.19

1409d(8)

산들바람에 실려 온네 향기에 밤새몸을 뒤척였어 달콤한 불면의 밤은지나가고 모래밭에 남겨진널 향한 그리움의 흔적 (140920) 한 번 들으면 내 이름절대 안 잊을 거야 날 가만히 바라봐그럼 고개를 끄덕이게 돼 난처녀치마야 (140921) 혈기 왕성할 때는퇴근하면서도 달려갔지 지금은 그때 남긴사진만 바라보지 꽃지 바다로 떨어지는 석양 같은나이가 되어 (140922) 눈 감으면 떠오른다파란 가을 하늘코스모스 꽃길 깡총거리며다시 뛰고 싶다 열 살철부지 아이가 되어 (140923)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묻지 마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2014년 4월 16일 (140924) 퇴직 전,"하루는 길고, 한 달은 짧다." 퇴직 후,"하루는 짧고, 한 달은 ..

포토앤포엠 2025.08.18

상처는 아문다

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병실에 입원해 있을 때 주변에서 자주 들은 말은 "시간이 약이다"였다. 부러진 뼈는 시간이 가면 저절로 붙고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다만 회복의 정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할 것이다. 모든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아문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몸의 상처는 드러나지만 마음의 상처는 드러나지 않는 점이 다를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고 타인과 부딪치며 우리는 이런저런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대부분은 사소한 것일 테지만 어떤 것은 마음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한다. 이런 것은 아물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그러나 육체의 상처가 그러하듯 마음의 상처도 세월이 흐르면 아물기 마련이다. 나는 오랫동안 외이염을 앓고 있다. 병원에..

참살이의꿈 2025.08.17

시름 / 이병기

그대로 괴로운 숨 지고 이어 가랴 하니좁은 가슴 안에 나날이 돋는 시름희도는 실꾸리같이 감기기만 하여라 아아 슬프단 말 차라리 말을 마라물도 아니고 돌도 아닌 몸이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 쌀쌀한 되바람이 이따끔 불어온다실낱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든다찬 구들 외로이 앉아 못내 초조하노라 - 시름 / 이병기 '시름'은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보편적 마음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시름 앞에서는 크게 차별이 없다.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모두 나름의 시름을 안고 살아간다. '웃음을 잊어버리고 눈물마저 모르겠다'는 시인의 시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시름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마음에 걸려 풀리지 않고 항상 남아 있는 근심과 걱정'으로 설명되어 있다. 지속되는 근..

시읽는기쁨 2025.08.16

어머니 퇴원하다

어머니가 퇴원했다. 7월 28일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고 8월 13일에 퇴원했으니 17일 만이었다. 정형외과 병동에는 대개 7, 80대의 환자들이 많다. 낙상 사고로 고관절이나 다리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고 치료중인데 대개는 2, 3주 입원 후 다시 재활병원으로 옮긴다. 아무래도 노인이다 보니 회복이 느려 정상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바로 집으로 퇴원해도 좋다고 의사 샘이 흔쾌히 결정을 내려주었다. 수술 뒤 일주일 만에 워커에 의지해 걷기 연습을 시작했으니 간병사를 비롯해 모두가 놀랐다. 사실 우리도 한 달 정도는 재활 치료를 받아야 할 것으로 마음먹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다시 걷지 못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어머니의 회복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흔다섯 어머니가 빨리 퇴원하는..

사진속일상 2025.08.15

새벽 드라이브

안동으로 가자면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해야 한다. 이왕이면 아침 회진을 하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간병사가 어머니 옆에 있지만 주치의의 말을 직접 들어야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출발하고 한 시간쯤 지나면 동트는 아침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억지로라도 이건 멋진 드라이브라 여기면서 남쪽으로 차를 달린다. 이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뵙지만 만날 때마다 회복되는 게 확연하다. 체어를 밀면서 복도를 걷는 보행 연습도 지난 번보다 훨씬 좋아졌다. 다리 근육에 힘이 돋아 이젠 왕복을 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상태라면 곧 퇴원 허락이 내려질 것 같다. 예상보다 빠른 회복이지만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은 무겁다. 간병하는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를 만나 얘기해 보면 다들 나름의 고민을 가지고 있다. 위로가 ..

사진속일상 2025.08.12

비 맞으며 걷다

하루가 바뀔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일이 잘 풀리는가 싶다가도 돌발변수가 생겨 어리둥절케 한다. 별나기는 별난 패밀리가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마음을 위무받는 최고의 묘약은 걷기다. 가벼운 복장으로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섰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단조로우면서 규칙적인 행위가 머릿속 번잡한 상념을 잠재운다. 하늘은 꾸무룩했고 간간이 비가 뿌렸다.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걸을 만했다. 얼굴에 닿는 빗방울의 감촉이 다정했다. 시내를 거쳐 경안천으로 나갔다. 그리고 장지교에서 중대천을 거슬러 올랐다. 쉼 없이 계속 걸었다. 며칠 전 모임에 나가서 친구들에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꺼낸 걸 후회했다. 그저 가십거리로 화제에 오르는 걸 ..

사진속일상 2025.08.10

다읽(26) - 무서록

왜 이 책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요즈음 같은 심란한 상황에서의 도피일까, 어느 날 이태준의 수필집인 이 떠올랐고,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번잡한 속세에게 벗어나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물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속기(俗氣)와는 거리가 먼 담백하고 정갈한 글에서 위안을 받는다. 동시에 이 글에서 보여주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니 어쩌랴. 이번에 읽으면서 제일 다가온 글은 '고독'이었다. 한 단어 한 단어 귀이 여기며 옮겨 적었다. 고독 댕그렁!가끔 처마 끝에서 풍경이 울린다.가까우면서도 먼 소리는 풍경 소리다. 소리는 그것만 아니다. 산에서 마당에서 방에서 벌레 소리들이 비처럼 온다.벌레 소리! 우는 소릴까! 우는 것으로 너무 맑은 소리! ..

읽고본느낌 2025.08.09

사기[49]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그것을 번번이 부하들에게 나눠주고, 음식도 병사들과 함께 먹었다. 이광은 죽을 때까지 40여 년에 걸쳐 봉록 2000석을 받는 관직에 있었으나 집에는 남아 있는 재물이 없었으며, 끝까지 집안의 재산에 대해서는 말하는 일이 없었다.이광은 군대를 인솔할 때 식량과 물이 부족한 곳에서 물을 보아도 병졸들이 물을 다 마시기 전에는 물에 가까이 가지 않았으며, 병졸들이 음식을 다 먹고난 뒤에야 비로소 음식을 먹었다. 이렇듯 사람들에게 관대하면서 까다롭지는 않아 병졸들은 그에게 지휘받기를 좋아했다. 또 활을 쏠 때는 적이 습격해 와도 거리가 수십 보 안에 들어오지 않거나 명중시킬 자신이 없으면 쏘지 않았는데, 쏘기만 하면 활시위 소리가 나자마자 고꾸라졌다. 이 때문에 그는 싸움터에서 자..

삶의나침반 2025.08.08

아흔다섯 어머니의 재기

어머니가 낙상 사고로 허벅지뼈가 부러져서 수술을 받은 날이 지난 7월 28일이었다. 아흐레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어선지 몇 달이나 되는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 그날 허겁지겁 250km를 달려가서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고 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왼쪽 허벅지뼈가 엿가락 부러지듯 두 동강 나 있었다. 두세 가지의 신체상 우려가 있었지만 다행히 어머니는 수술을 잘 견뎠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일주일만에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아흔다섯의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어머니는 다음주에 퇴원을 한다. 워낙 고령이라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는 장기전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빠른 회복을 보이신 것이다. 이런 상태면 집으로 가도 너끈하다고 의사 선생님이 허락했다. 어머..

사진속일상 2025.08.07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이다. 책장을 열면 맨 처음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작가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시를 쓰고산문을 쓰고사진을 찍는다.술을 마시고식물을 기르고사랑을 한다.저 'ㅅ'들과 함께 사는 혼자 사람." '함께 사는 혼자 사람'이라는 말이 강렬했다. 에는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이며 다짐의 말들이 실려 있다. 시인은 여행을 좋아하는 것 같다. 당연히 홀로 여행이겠지. 이 책은 여행 산문집이라고 해도 될 듯한데 여행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에 대한 단상이 주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며 단단해져야겠다는 다짐을 나에게도 한다. 징징대지 말고 내적으로 단단한 사람이 될 것, 외로움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치며 달콤하게 요리할 것, 등이다. 책에는 글만 아니라 감성 가득한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다. 주로..

읽고본느낌 2025.08.05

낙천 / 김소월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맘을 그렇게나 먹어야지 살기에 이러한 세상이라고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이 운다 - 낙천(樂天) / 김소월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는 모르나 분명 낙담하고 시절에 절망했으리라 짐작된다. 꽃 지고 잎 진 가지에 바람까지 세차게 분다. 살다 보면 생활이 내 뜻과는 무관하게 난관에 빠질 때가 자주 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상처가 아물 틈이 없다. 그렇다고 염세의 늪에 빠질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억지로라도 낙천(樂天)의 마음을 가지자고 독려하는 시인의 다짐이 읽힌다. 사는 게 그렇고 세상이 그런 걸 어떡하겠는가. 그런가 보다, 하고 살아갈 수밖에. 사나운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여린 불꽃이 아슬아슬하지만 나는 꼭 지켜내야겠다. 시인의 다짐을 내 주문으로..

시읽는기쁨 2025.08.04

깨진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

어제 지인한테서 글 한 편을 받았다. 후한 시대의 고사에서 유래한 '파증불고(破甑不顧)'에 대한 내용이었다. 우리말로는 '깨진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사자성어가 있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가슴을 울리면서 동시에 위안이 되었다. 깨진 시루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은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라는 교훈이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보고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파증불고'의 고사에는 후한 시대 학자며 정치가였던 곽태(郭泰)와 맹민(孟敏)이 나온다. 곽태가 길을 가는데 가난해 보이는 한 젊은 사내(맹민)가 지고 가던 지게에서 시루가 떨어지는 것을 봤다. 맹민은 땅에 떨어져 산산조각난 시루를 본체만체하고 태평하게 갈 길을 갔다[荷甑墜地 不..

참살이의꿈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