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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산. 바. 라. 기.
도서관 서가 앞을 지나다가 박완서 작가의 소설집이 눈에 띄었다. 문득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어졌다. 작가의 글은 읽기 쉬우면서 편안하다.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권을 빌려왔다. 두 권은 자전소설이다. 소설 형식을 빌은 자화상인 셈이다. 는 유년시절부터 작가가 스무 살 되던 6.25전쟁이 발발한 해까지, 는 전쟁 중 서울에 남아 있으면서 겪었던 고난의 시절을 그린다. 이 두 소설의 그 시대의 풍속도라 해도 될 정도로 묘사가 뛰어나다. 동무들과 들과 산에서 뛰어놀던 작가의 유년 시절을 읽으며 내 경험을 자연 떠올리게 된다. 작가와는 20년 가까운 시차가 있지만 1930년대나 1950년대 시골 풍경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싱아..
네덜란드 작가인 핸드릭 흐룬의 소설이다. 사람들에게 호오가 갈릴 것 같은데 나는 참 재미있게 읽었다. 왜냐하면 주인공인 헤르트 푸트만스라는 캐릭터가 독특한데 나와 닮은 점이 많아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헤르트가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을 나도 공유하기에 동병상련의 느낌으로 만날 수 있었다. 헤르트는 까다로우면서 괴팍한 성격의 사람이다. 사회성이 제로에다 지나치게 고지식하고 꼼꼼하다. 자신 뿐 아니라 세상도 확실하고 빈틈없이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불편하다. 다른 사람의 간섭을 싫어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경멸한다. 한마디로 독불장군형이지만, 냉정하면서 합리적인 측면도 있다. 성격에 걸맞게 직업이 회계사였고 모든 걸 숫자로 환산하길 좋아해서 일상은 숫자로 기록된다. 그는 사람 속에서 ..
신성모독적인 이름을 가진 데니스 존슨의 단편소설집이다. 이 책을 펼쳤을 때 느낌은 '이게 뭐야?'였다. 이상한 문양의 어지러운 패턴이 처음 여러 장을 채우더니 제목도 없이 소설이 시작되었다(제목은 소설이 끝나면 자그마하게 적혀 있다). 목차도 책 끝에 있다. 형식부터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정작 작품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데 그것마저 없다. 소설 내용도 험상궂다. 술과 마약에 취한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이 그려져 있다. 갱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망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세기말의 타락한 풍경이 펼쳐진다. 어찌 보면 사이코패스의 독백 같다. 읽기에 매우 거북하다. 이 소설이 문학적으로는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지만 내 이해 범위 밖이다. 사실 중간쯤 읽다가 책을 덮었다. 데니스 존슨은 을 꾼 작가로 알고..
이 책을 쓴 김도미 작가는 30대 중반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항암치료를 거쳐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하고 회복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를 병자(病者)며 암 경험자라 부른다. 치료 과정에서 틈틈이 쓴 글을 모아 밖으로 내보냈다. 나름의 주관을 가진 한 사람이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애틋한 심정으로 읽었다. 는 보통의 투병기와는 결을 달리 한다. 작가는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냉철하게 유지하며 자신을 지켜나간다. 암 환자가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진솔하게 쓰여 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대체로 무감각하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 방관자가 되는 것은 천지차이다. 작가는 당사자이면서 관찰자로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 책에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슬픔이 배어있지만 인간 정신의 높음을 상기..
첫째가 재미있게 읽었다면서 이 책을 두고 갔다.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진진해서 책에 푹 빠졌다. 마침 영화도 개봉한 터라 극장으로 달려가서 영상으로도 만났다. 책은 4/5 정도 읽은 상태였으니까 뒷부분은 영화를 먼저 본 셈이었다. 책과 영화를 교차로 접하면서 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는 미국 작가 앤디 위어(Andy Weir)가 쓴 SF 소설이다. 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은 몇 해 전에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는 이번에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이 역시 개봉하자마자 호평이 따르고 있다. 태양의 온도가 점점 떨어지는 위기가 지구에 닥친다. 조금씩이긴 하나 수십 년 뒤에는 인류가 사라질지도 모를 위험이다. 과학자들의 조사 결과 태양에너지를 흡수하는 아스트로파..
일본인 의사인 나카무라 진이치 선생이 쓴 책이다. 선생은 1940년생으로 교코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의사로 근무하다가 현재는 노인요양원의 진료소 소장을 맡고 있다. 평생 환자와 노인을 돌보면서 자신이 믿게 된 의료 철학을 이 책에서 설명한다.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 하라고 한다. 부제도 '당신도 치료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을 수 있다'이다. 병과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이다. 선생은 말한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죽음은 원래 조용하고 평온한 것이었다. 생을 마무리하는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순간이고, 떠나보내는 사람들에게도 살아 있는 매순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바로 죽음이다. 그 의미 있는 순간을 의료가 깊이 관여함으로써 더할..
부제가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이다. 김진영 선생이 생애 마지막 1년여의 나날과 심경을 적은 글이다. 자신이 자신을 애도하는 일기인 셈이다. 선생은 암 투병을 하다가 2018년에 세상을 떴다.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철,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 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
지은이인 그레이스 조(Grace M. Cho)는 미국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 교수로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이다. 한 살 때인 1972년에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태평양을 건넜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이 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0대 때 어머니가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어두운 사춘기를 겪는다. 그녀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 대학 교수가 되고 어머니의 한 많은 일생을 이 책으로 펴냈다. 그녀는 성장하고 나서 어머니가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조현병을 생물학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하면서 사회학자로서 세상의 구조악을 드러내는 일에 몰두한다. 동시에 어머니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도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저자가 궁금한 경우가 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했다. 한정원이라는 이름만 보고는 의례 남자라 생각했다(내 친구 중에 정원이가 있다). 참 다정하고 감성적인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1/3쯤 지나서야 여자분일 걸 알았다. 그랬구나, 하면서 앞에 읽었던 글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산책과 고양이를 좋아하고 은둔형이며 수도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점 등 저자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한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에밀리 디킨슨, 1830년생의 이 여성과 내가 이웃하여 살았다면,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거라고 넘겨짚어본다. 시대의 격차와 개인적인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몇몇 지점에서 겹쳐진다. 나는 아무..
은유 작가의 글은 통통 튀는 탁구공처럼 경쾌하다.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 않다. 모든 글에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애틋한 시선이 담겨 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싸움닭 같은 기질도 마음에 든다. 작가는 자기 성찰과 성장으로서의 글쓰기를 지도하면서 인간 내면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길을 독서와 글쓰기에서 찾고 있다. 은 책과 글쓰기를 통해 인간 해방을 희망한다. 작가는 말한다. "책은 해방의 문을 여는 연장이다." 작가가 책을 읽으며 얻은 귀한 문장을 중심으로 우리가 어떻게 마음의 장벽을 허물고 빛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를 돌아보며 생각할 거리를 주는 귀한 말들이 모여 있다. 이 책에 소개되는 책은 50권이나 된다. 이만한 책을 소개하자면 엄청난 독서량이 쌓여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