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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스웨덴 한림원은 작가의 '시적 산문'을 한 이유로 꼽았다. 시적 산문이라는 특징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품 이 아닐까 싶다. 은 2016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과연 을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소설이기보다는 시 같고 수필 같은 작품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플롯도 분명하지 않다. 기존 소설과는 다른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같은 거부감도 들지 않은, 제목대로 하얀 도화지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작품이다. 마침 첫눈이 내리는 날 이 소설을 읽었다. 눈을 떼고 창밖을 보면 하얀 눈이 대지를 소복하게 덮고 있었다. 책과 잘 어울리는 날씨였다. 은 작가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지낼 때 쓴 소설이다. 2차세계대전 때 폐허가 되었던 도시의 흔적을 보며 작가..

읽고본느낌 15:28:05

붓다의 치명적 농담

지인이 빌려준 책이다. 부제가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인데 2011년에 나와서 현재 15쇄까지 찍었으니 종교 서적으로는 인기 있는 스테디 셀러라 할 수 있다. 불교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색다르게 접근하여 신선한 느낌을 준다. 내용이 알차서 맛있는 걸 먹듯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생각할 거리가 많아서 한 번만 읽고 말기에는 너무 아쉬워 나도 새 책을 한 권 샀다. 옆에 두고 다시 읽어보려 한다. 지금으로서는 이 책을 논할 처지가 못 된다. 지은이는 불교를 불성, 번뇌, 반야라는 세 축으로 설명한다. 불교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는지 설명한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 세계는 인간에 의해 구성된 세계다. 즉, 세계는 주관이 만든 환상이다. 그런 면에서 불교는 관념론에 가깝다. 그렇다고 객관적 실재를 부정하지..

읽고본느낌 2024.11.24

허송세월

동네 서점에서 산 일곱 권의 책 중 하나다. 한 달 만에 10쇄를 찍었으니 김훈 작가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겠다. 나 역시 작가의 문체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공감한다. 작가에게는 세계에 대한 깊은 응시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과 애틋함이 있다. 이 책에서는 불교적 세계관도 자주 느껴졌다. 특히 '흐름'이라는 말이 자주 나왔다. 인간의 삶도 자연의 큰 흐름과 연계하게 된다. 비교하기에 뭣하지만 김형석 선생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소설가가 훨씬 더 철학적이다. 책 제목으로 쓰는 '허송세월'이란 글은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로 시작한다. 음미하고 사색하는 철학자의 글이다. 이런 말도 참 좋다."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

읽고본느낌 2024.11.19

청춘의 문장들, 오롯이 내 인생이잖아요

최근에 읽은 두 권의 책이다. 김연수 작가의 은 2004년에 나온 후 49쇄까지 찍은 베스트셀러다. 2년 전에 내용을 보강한 개정판이 나왔다.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는 책 서두에 나오는 말처럼 청춘의 고뇌를 감명받은 명문장들과 연결하여 그려냈다. 작가가 30대에 들어서서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쓴 '삼십자술(三十自述)'이라 할 수 있다. 글에는 김 작가 특유의 감성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문학을 지망하던 20대의 작가가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탐구하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그 나잇대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작가만큼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방황하던 내 20대 역시 포근히 감싸안아주고 싶도록 따스하게 추억했다. 초판 서문에 나오는 ..

읽고본느낌 2024.11.05

빅스비 선생님의 마지막 날

이런 책인 줄 몰랐다. 우선 초등학생이 나오는 소설로 어린이 도서에 속한다. 제목만 보고 죽음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나오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용의 대부분은 병원에 입원한 선생님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좌충우돌 소동이다. 소설 끝에 가서야 왜 아이들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슴 뭉클해지는 멋진 마무리가 있다. 빅스비 선생님은 30대 중반의 여자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대하는 태도가 특별한 선생님이다. 지식을 전수하는 교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도와주는 진정한 의미의 선생님이다. 책에는 선생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누면서 그중 '좋은 선생님'을 이렇게 묘사한다."이분들은 학교라는 고문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는 유형이다. 우리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단번에 알 ..

읽고본느낌 2024.10.22

해방촌의 채식주의자

독서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일상에서는 절대 접촉하지 못할 사람을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사적인 대화도 가능하다. 내 질문에 저자는 책의 어디선가에서 꼭 답을 해 준다. 물론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를 쓴 전범선 씨는 특이한 이력과 함께 별난 삶을 산다. 학력은 상위 0.1%라고 할 정도로 화려하다.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다트머스대학교,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을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까지 합격했다. 엘리트 계급에 진입하고도 남을 스펙이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잡고 노래를 한다. 그뿐이 아니다. 폐점 위기에 몰린 인문학 서점을 인수해서 살리고, 해방촌에서 채식주의를 실천하며 동물 보호와 기후 위기를 막는 운동에 앞장선다. '휘뚜루마뚜루 자유롭게 산다는 것..

읽고본느낌 2024.10.16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권으로 된 박지리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무대는 1지구부터 9지구까지 철저하게 신분으로 갈라진 세계다. 각 지구간에는 제한된 왕래만 가능하고 서로를 침범할 수 없다. 1지구는 온갖 혜택을 누리는 파라다이스지만, 9지구 주민은 겨우 생존해 나가는 폐허가 된 세계다. 신분이 세습되는 가상의 세계지만 이미 계급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구조라고 누구나 느낄 것이다. 1지구에는 최고의 엘리트만 갈 수 있는 프라임 스쿨이 있다. 주인공인 다윈 영은 프라임 스쿨에 다니는 학생이고, 아버지 니스는 문교부 차관으로 권력의 중심부에 있다. 소설에는 니스, 버즈, 제이의 세 친구가 나오고 후대로 이어진 친분은 십대인 다윈, 레오, 루미의 얽힌 관계를 틀로 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30년 전에 살해된 제이..

읽고본느낌 2024.10.08

있는 자리 흩트리기

정치인 중에서 호감이 가는 인물이 김동연 경기도지사이다. 그분에 대해서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정도만큼만 알기 때문에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좋아하는 정치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지상으로는 그나마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보인다. 얼마 전에는 전국 시도지사 직무 수행 평가가 있었는데 김 지사가 1등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는 김 지사가 쓴 책이다. 무엇보다 제목에 끌려 읽어 보았다. 부제가 '나와 세상의 벽을 넘는 유쾌한 반란'이다. 내가 기대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을 극복하고 입신출세를 한 그의 삶과 생각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김 지사는 상고 출신으로 은행원으로 근무하면서 야간대학을 다니고 행정고시와 입법고시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고하는 대목을 보면 초인..

읽고본느낌 2024.09.27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두 권 읽었다. 문단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일곱 권의 작품을 남기고 요절한 은둔 작가였다는 프로필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대표작인 은 다음에 읽어보기로 하고 남겨둔다. 작가는 문학 수업을 전혀 받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선지 두 작품이 주는 신선한 느낌이 좋았다. 작가의 첫 작품은 인데 2010년에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심심풀이로 썼다는데 수상을 하고 주목을 받은 걸 보면 타고난 작가로서의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은 고등학생인 주인공이 가정폭력의 희생자면서 가해자가 된 사연을 아프게 그려낸 소설이다. 소방관인 아버지는 가정을 지옥으로 만드는 폭력을 행사한다. 어머니는 무기력해서 아무 대응을 못하고 누나와 주인공은 둘 만의 피난처인 맨홀 속으로 도망..

읽고본느낌 2024.09.20

청춘유감

청춘이 지나간 지는 아득하다. 나에게도 청춘이란 시절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그래도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심장이 고동친다. 청춘의 청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지만 지금은 청춘과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 부득이 책을 통해서 청춘을 만날 수밖에 없다. '청춘(靑春)'이라는 말에 끌려 고른 책이 이다. '유감'은 섭섭하거나 불만이 담겨 있는 '遺憾'이 아니라 무감의 반대말로서의 '有感'이다. 지은이는 한국일보 문학 담당 기자로 재직하는 한소범 씨다. 30대 초반의 젊은이로 자신이 통과한 소녀와 청년 시절의 꿈과 좌절, 희망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현실에 적응해 가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일종의 성장기로 볼 수도 있다. 지은이는 소설가와 영화 제작에 도전하다가 꿈을 접고 신문 기자가 되었다...

읽고본느낌 2024.09.11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대학생 때 다니던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명씩 신앙의 선조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다. 루터, 칼뱅, 웨슬리 등을 다루었는데 칼뱅에 대해서는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는 이미지가 그때 새겨졌고 오래 유지되었다. 뛰어난 개신교 이론가였던 칼뱅은 제네바를 신이 다스리는 도시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칼뱅이 저지른 오류에 대해서 그때는 알지 못했다. 분명 칼뱅의 선한 의도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쓴 자료만 제공받았을 것이다. 악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폭력이 필요하다고 수긍했을 수도 있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칼뱅도 마찬가지다.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는 칼뱅의 종교적 독단에 반대하며 관용의 정신을..

읽고본느낌 2024.09.03

사진 한 점 생각 한 줌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다. 80이 되기 전에 책을 한 권 내보고 싶은 꿈이다. 그동안 찍어둔 사진에 글을 덧붙인 형식으로 하고 싶다. 요사이 유행하는 포토포엠(디카시)으로 할지, 아니면 사진 에세이로 할지는 정하지 않았다. 자료함에 수천 장의 사진이 있으니 책을 낼 바탕은 충분하다. 중요한 건 사진과 관련된 스토리일 것이다. 막상 출판을 생각하니 능력 부족을 느낀다. 내용이 부실할 것 같으면 아예 접는 게 좋다. 은 그런 목적하에서 찾아본 책이다. 다양한 경력을 가진 김동준 작가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을 중심으로 사진에 얽힌 이야기 및 단상을 적었다. 각 사진과 글을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의 사군자로 구분하여 정리한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계기로 삼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런 책을 보면 역시 사람의..

읽고본느낌 2024.08.30

어른의 일기

'어른이지만, 어른이기에, 어른이어서, 어른이라서' 일기를 써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책이다. 지은이인 김애리 작가는 스스로를 '일기 장인'이라고 소개한다. 열여덟 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20년째 일기를 쓰고 있다. 책 서두에는 이런 말이 실려 있다."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차근차근 기록해나가는 일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라고요."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도 일기의 한 형식이라면 내 일기도 20년이 넘었다. 그 전에 노트에 썼던 일기는 많이 사라졌고 일부만 남아 있다. 내 일기의 역사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그러므로 일기를 예찬하는 지은이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일기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자신의 감정에 정..

읽고본느낌 2024.08.27

올해의 미숙

정원 작가가 만화로 그려낸 한 소녀의 성장기다. 이름은 정미숙, 친구들이 "미숙아"라고 놀리며 불러도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는 마음 여린 아이다. 그럴 만하다. 명색이 시인인 아버지는 무능하고 폭력을 휘두른다. 어머니가 식당 일로 생계를 꾸리지만 늘 쪼들리는 살림이다. 언니와도 소통이 안 되는 외로운 미숙이다. 가난과 가정폭력은 연약한 여자 아이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하다. 다행히 중학생 때 단짝인 된 재이라는 친구가 있어 미숙의 정신세계를 열어준다. 재이는 미숙과 달리 활달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다. 집과 학교에 갇혔던 미숙은 재이를 따라 작은 일탈을 경험하며 성장해 나간다. 그러나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미숙은 다시 홀로 서야 한다. 아버지와 언니마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학교를 그만둔 미숙은 검정고시를 ..

읽고본느낌 2024.08.23

내 어머니 이야기

김은성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일생을 그린 4권으로 된 만화책이다. 전부터 이 책의 유명세를 알고 있었으나 만화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읽기를 미루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이면 가벼운 만화가 어떨까 싶어 도서관 서가에서 꺼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마치 판화와 같은 흑백의 그림이 주는 효과가 더해져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작가의 어머니는 함경도 북평에서 나고 자라 결혼하며 살다가 6.25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과 남에서 일제 강점시대와 전쟁, 분단과 근대화 과정을 전부 체험한 것이다. 한 개인의 일생에 우리나라의 역사가 투영되어 있다. 험난한 세월을 견뎌낸 한 여인의 사연이 안쓰러우면서 따뜻하다. 특히 함경도에서 보낸 어머니의 소녀 시절 이야기는 옛 농촌 공동체의 따스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 고향 마을..

읽고본느낌 2024.08.20

신의 영혼 오로라

이제는 희미해진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오로라 보기다. 나이가 들면 가슴 뛸 일이 하나둘씩 사라지지만 오로라 사진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오로라가 빛나는 북쪽 지방으로 가고 싶은 충동에 손가락은 여행사 홈페이지를 클릭하느라 바쁘다. 는 천체사진가인 권오철 선생이 자신이 직접 촬영한 오로라 사진을 중심으로 오로라를 설명하는 책이다. 오로라의 원리에서부터 오로라 여행을 위한 팁, 그리고 사진 찍는 방법까지 오로라의 모든 것을 상세히 안내해 준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선생이 추천하는 장소는 캐나다 옐로나이프다.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도 있지만 날씨 조건이 옐로나이프가 제일 낫다고 한다. 편의 시설도 옐로나이프가 제일 잘 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옐로나이프의 오로라 여행에 대해 상술한다. 오로라는 ..

읽고본느낌 2024.08.17

애도의 문장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미수를 넘기고 올해 들면서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느낀다. 여기저기 아픈 것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몸이 전과는 또 다른 게 느껴진다. 가령 자다가 숨이 멈출 때가 가끔 있다. 숨이 멈추니까 잠결에도 답답해서 깨는데, 아마 이러다 깨지 않으면 자다가 죽게 되겠지. 사람들은, 너의 어머니도 그렇고, 자다가 죽으면 복이다,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냐고 하지만 나는 생각이 다르다. 사람은 짐승과 달라 살고 죽는 걸 의식하는 존재인데, 자다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게 뭐가 좋으냐? 좀 아프더라도 죽음이 어떻게 오는지, 죽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끼며 죽어야지."나는 좀 놀랐다."죽을 때 괴롭과 아픈 게 겁나지 않으세요? 요즘 사람들은 그걸 많이 걱정하고 그래서 자다 죽으면 좋다고 하는데요."..

읽고본느낌 2024.08.13

오리엔트 특급 살인

무더운 여름을 지내는 데는 추리 소설 읽기도 한 방법이다. 몰입도가 추리 소설 만한 게 없다. 또는 무협지도 괜찮다. 젊었을 때는 무협지를 옆에 쌓아두고 여름을 나기도 했다. 그때 생각이 나서 추리 소설 한 권을 골라 보았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은 워낙 유명한 데도 책으로는 읽어보지 못했다. 오래전에 영화로 본 기억은 난다. 대체적인 내용을 알기에 흥미가 반감될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기억과는 다른 부분이 많았다. 특히 반전이 들어 있는 결말은 처음 대하는 듯 놀라웠다. 왜 애거서 크리스티를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 하는지 알 만했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가 폭설 속에서 고립되고 객실에서 한 사람이 칼에 찔린 채 발견된다. 마침 열차에는 푸아로 탐정이 타고 있었는데 예리한 관찰과 분석으로 사건에 얽힌 비밀을 풀..

읽고본느낌 2024.08.10

바깥은 여름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이다. '입동'을 비롯해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보통은 수록된 작품 중에서 대표작을 책 제목으로 삼는데 이 책은 다르다. '바깥은 여름'은 여기 실린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를 통칭하는 말로 보인다. 이번에도 김애란 작가의 통통 튀는 경쾌한 표현들에 여러 차례 감탄했다. 하지만 작품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중심이 아닌 변두리 삶의 애환과 쓸쓸함이다. '여름'은 만물이 생기를 띄고 번성하는 계절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삶은 겨울처럼 스산하고 춥다. 소외와 상실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작품인 '입동'은 어린 아들을 잃은 부부의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 어렵사리 집을 장만하고 행복해지려는 때에 후진하는 유치원 차에 치여 아들이 숨진다. 그 뒤부터 부부의 삶은..

읽고본느낌 2024.08.06

세 여자

재미있으면서 유익한 소설이다.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항일 독립과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를 세 여자(허정숙, 주세죽, 고명자)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남성 중심의 운동사에만 익숙한 우리 눈에 이런 여성 선구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슷한 또래의 세 여자는 20대 초반에 만나 운명적으로 얽힌다. 셋 중에서도 제일 주도적인 인물은 허정숙이다. 허정숙은 중국 상하이 유학중에 박헌영, 주세죽, 임원근, 김단야 등과 만나 사회주의연구소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사상에 몰입한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 덕분에 일본, 중국, 미국, 모스크바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인텔리였다. 또한 임원근을 비롯해 네 번이나 결혼하면서 자유연애를 실천한 여성이기도 했다. 그녀가 활동하던  20..

읽고본느낌 2024.08.03

포기할 수 없는 아픔에 대하여

"병원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의학이라는 영역 너머의 것이 있다. 치료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제도가 없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10년간 허무하게 떠나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지은이인 내과 전문의 김현지 의사는 의료 현장에 있으면서 의료 시스템 뒤에 숨겨진 정책의 부조리, 제도의 부재, 가난과 건강의 불평등에 주목했다. 그가 '정책하는' 의사로 나선 배경이다. 직접 환자를 치료하는 것 못지않게 올바른 의료 제도를 만드는 일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입법 활동을 돕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만인에게 성취 가능한 최선의 건강'이라고 한다. 는 지은이가 병원에서 만난 환자들의 죽음과 삶을 통해 인지하게 된 우리 사..

읽고본느낌 2024.07.26

바늘

고향에 내려가 있는 동안 읽은 천운영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바늘'을 비롯해 아홉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모두 20여 년 전에 쓰인 작가의 초기 작품들이다. 작가가 그리는 여성은 특이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고 있는 여성성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인물이어서 충격을 받는다. 소설에 나오는 그들은 못 생긴데다 폭력적인 야수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여성은 예쁘고 우아하다는 기존의 사고 틀을 여지없이 깨부순다. 가부장제하에서 구축된 모성이나 여성성의 허구를 작가는 깨부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은 전부 육식을 탐한다. 이런 동물적인 피의 욕구는 외부세계에 대한그들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행복고물상'에 나오는 여자는 남편을 상습적으로 매질한다. "아내는 야생의 초원을 가졌다..

읽고본느낌 2024.07.21

성난 물소 놓아주기

당신이 절에 살든, 도시에 살든, 혹은 가로수가 늘어 있는 조용한 거리에 살든, 다른 어디에 살든 때로 문제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삶이라는 게 본래 그렇다. 건강에 문제가 생길 때 "의사 선생님, 제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병이 났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제게 정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병이 났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일을 할 때든, 명상을 할 때든 가끔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할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이 당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지 말고 그대로 관찰하라. 이 세상을 자기 마음에 들게 만들기 위해 다그치거나 밀어붙이려 하지 말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놓아버려라. 자신의 몸과 마음과 가족과 세상과 싸울수록 부수적인 여러 가지 문제..

읽고본느낌 2024.07.16

내 심장을 향해 쏴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1976년에 미국을 뒤흔든 사건이 있었다. 유타주에서 개리 길모어가 두 사람을 권총으로 살해하고는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항소를 포기하고 국가가 자신을 빨리 사형에 처하라고 요구했다. 사형제 존폐가 이슈가 된 당시 상황에서 개리 길모어의 돌발 행동은 미국 사회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개리 길모어는 다음 해에 처형되었다. 는 개리 길모어의 동생인 마이클 길모어가 자신의 형이 왜 그렇게 잔인한 범죄자가 되었는지를 밝히는 책이다. 악의 뿌리에 무엇이 있는지 가계의 역사부터 그들의 신앙이었던 모르몬교의 '피의 속죄' 같은 폭력성까지 파헤쳐 올라간다. 더 나아가면 원주민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자행한 미국이 뿌린 피의 역사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은 저주받은 땅인지도 ..

읽고본느낌 2024.07.12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지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무시할 수 없다. 내용을 알지 못해도 저자를 믿고 책을 사는 경우도 있다. 외국 작가야 정보가 없으니 오로지 책 내용에 집중할 수 있으나, 국내 작가는 단편적이나마 삶이 드러나 있으니 작품만 구분하여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지영 작가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이 있다.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사와 같은 면이 보이지만, 어떤 때는 속된 말로 싼티가 나기도 한다. 문제를 파고 드는 치열함이 있지만 동시에 경솔하고 가벼운 면이 있는 것이다. 내 느낌이 그렇다. 는 작년에 나온 공지영 작가의 산문집이다. 하동으로 내려가서 은거하며 살다가 이스라엘로 성지 순례를 떠나 다시 예수를 만난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다. 여행사의 성지 순례 패키지 여행을 마친 뒤 예루살렘에 남아 며칠 더 ..

읽고본느낌 2024.07.03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이 책을 쓴 김선영 박사는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종양내과란 암환자가 찾아오는 곳이라 병원에서도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은이가 종양내과를 '암을 지니고 살아가는 삶을 돕는 곳'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책의 부제가 '의사가 되어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다'이다. 지은이가 중3 때 아버지가 담낭암에 걸려 1년 동안 투병하시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를 잃은 딸은 의사가 되었고, 환자의 죽음을 볼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은 아버지의 죽음을 복기하면서 지은이가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사연 및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지은이는 아버지의 죽음부터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음에도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조차 이해하지 ..

읽고본느낌 2024.06.29

유신

박정희의 유신시대는 나의 20대와 겹친다. 유신시대 7년 동안 대학생과 사병의 신분이었으니 아름다운 청춘을 암흑의 시대에서 보낸 셈이다. 보통 '10월유신'이라 부르는데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목적으로 단행한 초헌법적 비상조치를 말한다. 박정희가 유신을 선포한 1972년 10월 17일부터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의 기간이다. 이 동안 아홉 번의 긴급조치와 계엄령, 위수령 등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했다. 사학자인 한홍구 선생이 쓴 은 이 비극의 시대에 대한 기록으로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여서인지 되풀이되는 역사에 대한 비감이 서려 있다. 사건들마다 그때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내 20대를 돌아보면서 흥미롭게 읽었다. 돌아보니 197..

읽고본느낌 2024.06.25

너의 목소리가 들려

지금은 뜸해졌지만 한때 오토바이 폭주족이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특히 삼일절이나 광복절에 벌이는 대폭주는 규모가 엄청났고 시민들에게 주는 피해도 컸다. 저게 무슨 짓거리냐,가 대부분의 반응이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강한 경찰력으로 제대로 단속하지 않는 걸 원망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는 그들을 보는 관점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하 작가의 는 폭주를 감행하는 십대들의 분노와 절망을 그들의 시선에서 담아낸 장편소설이다. 소설은 가출 청소년의 어두운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이런 삶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어두운 뒷골목이나 지하의 사연을 외면하기 때문일 것이다. 버려진 아이로 태어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제이는 자신과 같은 불쌍한 처지의 아이들과 지..

읽고본느낌 2024.06.17

침이 고인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침이 고인다'를 비롯해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전반부에 실린 소설은 밀도가 높고 뛰어나지만, 후반부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작가는 주로 도시 변방의 가난한 젊은이들의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것 같다. 잘 보이지 않는, 외면하고픈 아픈 현실을 위트 넘치는 문제로 보여준다. 일상은 고달프고 비루하지만 주인공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밟혀도 꿋꿋이 견뎌내고 일어서는 길 위의 잡초처럼 살아내는 숫한 청춘들이 있다. '침이 고인다'에서는 학원 강사로 일하는 그녀가 사는 원룸에 더 가난한 후배가 찾아온다. 그날 밤 그녀는 후배의 얘기를 들으며 같이 지내기로 결심한다. 후배가 그녀에게 들려준 얘기는 어떻게 부모에게 버림받았는가에 대한 아픈 추억이..

읽고본느낌 2024.06.06

엄마를 부탁해

삐딱이 성질 때문이겠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작품은 부러 멀리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천만 관객의 영화라든지 베스트셀러 책 같은 것은 접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대신에 알려지지 않고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애써 찾아본다. 그런 작품 중에 알짜배기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2008년에 나온 신경숙의 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대중들이 환호하니까 일부러 읽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번에 신 작가의 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가 소환되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2011년 판인데 무려 197쇄를 찍고 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책을 16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품성으로 따지자면 보다는 가 더 나아 보인다. 부모를 향한 애틋한 감정과 독자들이 받는 공감은 비슷..

읽고본느낌 202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