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아침의 피아노 본문
부제가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이다. 김진영 선생이 생애 마지막 1년여의 나날과 심경을 적은 글이다. 자신이 자신을 애도하는 일기인 셈이다. 선생은 암 투병을 하다가 2018년에 세상을 떴다. 선생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었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철,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무연히 눈 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며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때가 되면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가 아닐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생의 글에서 밑줄 친 대목을 옮긴다.
-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들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 자꾸 사람들을 피하게 된다. 위안을 주려는 마음을 알면서도 외면하게 된다. 병을 앓는 일이 죄를 짓은 일처럼, 사람들 앞에 서면 어느 사이 마음이 을의 자세를 취하게 된다. 환자의 당당함을 지켜야 하건만.
- 베란다에서 세상의 풍경을 바라본다. 또 간절한 마음이 된다.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 입원일이다. 아침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고 담배 한 대를 몰래 피운다. 풍경은 흐리다. 전철역으로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간다. 세상의 일상은 무사하다. 그 무사함 안에 팩트들이 들어 있다. 팩트는 엄혹한 칼이다. 정확하고 용서가 없다. 이 칼의 무심함에 나는 기록으로 맞선다. 기록은 사랑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문득 파란 버스가 풍경 안으로 들어와서 정류장에 선다. 그리고 떠난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가 맞았다.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 아침의 아파트 앞마당.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 있다. 바람이 불어서 아직 덥지 않다. 새들이 울고 담장 너머로 자동차 소리가 지나간다. 가끔 문을 나와서 빠른 걸음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구두 소리가 지나간다. 주차장 한편에 서 있는 나의 자동차를 바라본다. 매일 아침 알렉산더의 충실한 명마처럼 나를 싣고 떠나던 나의 낡은 자동차. 지금은 나처럼 조용히 턱 괴고 앉은 나의 오랜 친구. 바라보면 외롭지만 너무 많이 외롭지는 않다. 조용히 외로운 것들은 늘 안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기 때문일까. 나무들 사이 열린 허공의 창 안에 아침 빛이 그득하다.
- 나 또한 나의 하류에 도착했다. 급류를 만난 듯 너무 갑작이어서 놀랍지만 생각하면 어차피 도달할 곳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나의 하류는 밤비 지나간 아침처럼 고요하고 무사하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공부하고 돌아오는 나에게 큰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다. 여기가 그 서재가 아닐까. 나는 여기서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 나와 나의 다정한 사람들,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깊이 사랑했던 세상에 대해서 나만이 쓸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지금 내가 하류의 서재에 도착한 이유가 아닐까.
- TV를 본다. 모두들 모든 것들이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간다.
- 아침마다 체중을 달고 거울을 본다. 몸의 무게는 조금씩 가벼워지는데 얼굴빛은 나날이 밝아진다. 나는 차츰 빛이 되어가는 걸까. 하기야 내가 품었던 꿈들 중의 하나는 투명하게 소멸(astral body)하는 것이었다.
- 투병이라는 말은 옳지 않다. 손님은 잘 대접해서 보내야 한다고 옛사람들은 가르쳤다. 사랑이 그렇듯 병과도 잘 이별하는 일이 중요하다.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들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 누구에게나 몸 속의 타자가 있다. 환자는 그 타자가 먼저 눈을 뜨고 깨어난 사람이다. 먼저 깨어난 그 눈으로 생 속의 더 많고 깊은 곳을 보고 읽고 기록하는 것 - 그것이 환자의 주체성이다.
- 일찍 일어나 병원 갈 채비를 한다. 필요한 서류를 가방에 넣다가 나도 모르게 손에 잡히는 책 한 권을 넣는다. 슈베르트 평전과 뮐러의 시 <겨울 나그네>. 왈칵 솟으려는 눈물을 겨우 참는다. 그래 나는 깊이 병들어도 사랑의 주체다. 울 것 없다. 그러면 됐으니까.
- 내 안의 텅 빈 곳이 있었다. 돌아보면 그 텅 빈 곳을 채우기 위해 돌아다녔던 세월이 나의 인생이었다. 도서관을 헤매던 지식들, 애타게 찾아다녔던 사랑들, 미친 듯이 자기에게 퍼부었던 히스테리들, 끝없이 함몰했던 막막한 꿈들.... 그것들은 모두가 이 텅 빈 곳을 채워서 그 바람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몸부림들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그 텅 빈 곳을 채우지는 못했다. 이제 또 무엇이 내게 남아 있는 걸까. 무엇으로 이 텅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걸까. 이제 남은 시간은 부족한데 과연 나는 그 텅 빈 곳의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 검진 결과가 안 좋다. 조용하던 종양이 신생 핏줄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또 색전 시술이 필요하다고 의사는 말한다. 다음 주 입원 날짜를 잡는다. 운전하는 주영의 얼굴이 석고상 같다. 집까지 가는 길이 한없이 멀어만 보인다.
- 이 기록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한다. 그 경계 위에서 나는 매일 매 순간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댄스의 스텝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줄타기.
- 우리는 모두 '특별한 것들'이다. 그래서 빛난다. 그래서 가엾다. 그래서 귀하고 귀하다.
- 노인 병원. 파라솔 아래 백발의 노파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할머니, 금방 갔다 올게요. 간병인은 방금 그곳을 떠났다. 노파는 한 손에 휴대폰을 쥐고 스낵을 우물거린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고 코발트빛 허공을 올려다본다.
- 병원에 다녀왔다. 결과가 안 좋다. 기대를 걸었던 면역 치료는 소용이 없었다. 종양은 그사이 더 자랐다. 입원 지시를 받았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 산책을 했다. 바람은 신선하고 맑고 부드럽다. 허공에 맴도는 잠자리들은 흥겹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나는 이 세상을 마지막까지 사랑할 것이다. 그것만이 나의 존재이고 진실이고 의무이다.
- 병은 시간에 대한 관념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든다. 환자가 아니었을 때 나는 자주 읽게 되는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야 더 모자라면 어떻고 더 길어지면 또 무슨 대수이냐고만 여겼었다. 그때 유한성의 경계는 멀고 시간은 다만 추상적 길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내게 시간은 더는 추상적 길이가 아니다. 그건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질량이고 무게이고 깊이다. 그러니까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것이다. 시간은 이제 내게 존재 그 자체이다.
- 몸무게를 달아본다. 자꾸 마른다. 자꾸 가벼워진다. 나중에 나는 날아오르게 될까.
- 환자의 삶을 산다는 것 - 그건 세상과 인생을 너무 열심히 구경한다는 것이다. 소풍을 끝내야 하는 천상병의 아이처럼. 고통을 열정으로 받아들였던 니체처럼.
- 힘이 없다. 많이 힘들다. 그러나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동안 잊었던 나의 주제를 기억한다. 그래, 나는 사랑의 주체다. 사랑의 마음을 잃지 말 것. 그걸 늘 가슴에 간직할 것.
- 가고 오고 또 가고.
- 잘 보살피기.
- 적요한 상태.
- 내 마음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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