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 가을물이 들기 시작했다. 계절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지만 산에 들면 느리고 유유하게 찾아온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을 오시는 산길을 자연의 리듬 따라 나도 유유하게 걸었다. 그러고 보니 '유유하다'는 말이 참 좋다. 유유자적(悠悠自適)한 노년은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유유하게 살기 위해서는 세상사에 어느 정도 초연해야 할 것이다. 우주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니 변화에 거역하지 않는다. 순리로 받아들이면 시달릴 일이 줄어든다. 괴로움은 외부가 아닌 내 마음에서 생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삶의 종착점은 장자의 목계(木鷄)가 아닐까. 불교의 무아(無我)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으면서 '내'가 온전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삑 삑 삑삑~" 산길에서는 청딱따구리의 노래가 연신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