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샌. 2022. 4. 22. 10:41

 

이맘때 숲에 들면 꽃향기가 가득하다. 벚꽃이나 진달래 꽃잎은 떨어졌지만 향기의 여운은 아직 숲에 배어 있다. 아니면 새싹이 뿜어내는 향기인지 모른다. 나는 궁금해서 새로 돋아난 잎에 코를 바투 대 본다.

 

순한 뒷산길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내 마음도 따라서 순해진다. 세상의 각박한 다툼이 사라지는 길이다. 길가에 있는 돌탑에는 지나갔던 사람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사는 게 뭐 별 것 있겠는가. 돋아나는 초록잎, 그 사이로 살랑거리며 스치는 바람,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자연은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고개를 들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본다. 나무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면서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걸까. 숲은 조화의 세계다. 깔개가 있다면 나무 아래 오래 누워 있고 싶다. 오감으로 숲의 향기를 받아들이고 싶다.

 

 

산자락에 아파트가 계획되면서 주변이 어수선해졌다. 산을 깎아서 그쪽과 통하는 진입로를 내는 모양이다. 넓은 공원까지 만든다고 하니 산은 몇 년간 몸살을 앓아야 할 것 같다. 

 

 

산에 있는 산소는 전부 이장 대상이 되었다. 파묘를 한 곳에는 이렇듯 석물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다. '西紀二千一年陽四月十九日 謹立'이라는 문구가 뚜렷하다. 산소를 단장할 때의 '근(謹)'의 마음은 어디에 간 걸까. 땅에 고이 묻어라도 주면 좋으련만.

 

 

건너편에서도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산과 주변이 온통 어수선한 봄이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 아파트를 짓고 있는데 집은 늘 부족하다고 난리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느는 것도 아니고 증가율은 도리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주택보급률도 100%가 넘었다. 이건 공급보다 분배의 문제가 아닌가. 내 단순한 머리로는 그렇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삶의 활력소라고 한다. 적당한 선이 어디까지인가가 문제지만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보는 색안경을 내가 고를 수는 있을 것 같다.

 

다시, 집에 가까이 오니

입구 화단에 봄맞이꽃이 환하게 반긴다. 꽃사과도 눈부시다.

 

 

'스프링 피크(spring peak)'라는 말이 있다. 자살을 하는 사람이 봄에 가장 많아지는 현상이다. 제일 찬란한 계절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더 우울감에 빠지는가 보다. 봄이 주는 활기가 자신의 무기력을 심화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것이다. 어쨌든 인간이 복잡한 동물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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