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62

가천대에서 이매까지 걷다

성남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사진전을 구경하고 탄천으로 나가 이매까지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자가용으로 다녀오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봄날씨가 좋아 탄천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유혹에는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게 심신에 유익한 법이다. 가천대학교 캠퍼스는 처음 들어가 보았다. 오가는 20대의 청춘들이 봄(spring)처럼 밝고 싱그러웠다.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조형물은 가천대의 상징인 것 같다. 바다 사진을 찍는 김정식 작가의 사진전이었다. '파도 소리'라는 대형 작품 앞에 오늘 만난 셋이 섰다.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요사이는 AI가 사진만 아니라 영상도 만들어 준다. 상황만 제시해 주면 그에 맞는 분위기의 그림을 알아서 생산한다. 앞으로 ..

사진속일상 2024.03.21

뒷산에 스며드는 봄

봄이 가까이 다가왔다. 스며드는 봄기운을 느끼려고 뒷산에 올랐다. 두꺼운 점퍼를 벗고 가벼운 바람막이 옷을 입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고 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에 적당했다. 어느 해나 그러하듯이 뒷산의 봄은 생강나무꽃이 제일 먼저 보여준다. 진즉에 피었을 것이지만 당분간은 진노랑 색깔을 뽐내며 봄의 도래를 알릴 것이다. 꽃에 코를 대니 고운 향기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흰털괭이눈도 수줍게 꽃을 피웠다. 얘는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줄어들어 안타깝다. 어린 솔잎도 새 봄을 맞아 윤기로 반들거린다. 지금은 키가 두 뼘 정도 되지만 올해가 지나면 훌쩍 커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박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연신 따라온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뒷산에 찾아온 봄을 느껴본다. 봄..

사진속일상 2024.03.18

어머니를 뵙고 오다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2박3일을 함께 지내면서 옛 추억을 소환한 여러 얘기들을 나누었다. 친척들과 많은 마을 사람들이 한두 사지 사연들을 던져주고 명멸하듯 스쳐 지나갔다. 그들 대부분은 이제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어머니와 함께 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가면 두문불출하고 어머니와 붙어 지낸다. 어머니도 외출할 생각을 안 하신다. 아들과의 이런저런 수다가 즐거운 것이다. 내려가는 길에 제천 의림지에 들러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며 초봄의 바람을 쐬었다. 어머니가 놓으신 마늘의 초록 잎이 싱싱하게 돋아났다. 덮었던 비닐을 며칠 전에 벗겼다고 한다. 다른 집에서도 마늘을 심었지만 어머니 마늘만큼 생생하지 못하다. 이웃에 사는 선배는 어머니의 작물 키우는 ..

사진속일상 2024.03.14

소금산을 걷다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 열려 아내와 같이 소금산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6년 전 출렁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지만, 그 뒤로 울렁다리와 잔도가 새로 설치되어 걷는 길이 많이 달라졌다. 변한 소금산 그랜드밸리가 궁금했다. 소금산 그랜드밸리의 원조격인 출렁다리.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노란색 울렁다리가 새로 생겼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출렁다리 - 잔교 - 울렁다리 순으로 일방통행 진행이다. 울렁다리 쪽에서 본 출렁다리와 삼산천. 삼산천은 조금 더 흘러 섬강과 합류한다. 에스컬레이터 등 전체 공사는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놓은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출렁다리 입구까지 가자면 600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지만 케이블카가 완성되면 지상에서 바로 연결된다..

사진속일상 2024.03.08

집 앞에서 만난 올해 첫 봄꽃

시내에 나가 이발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집 앞에서 올해 첫 봄꽃을 만났다. 길 옆 양지바른 곳에 개불알풀꽃 여남은 송이가 피어 있었다. 아직 때가 이른 탓인지 낮은 기온에 잔뜩 지실이 든 모습이었다.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오늘이다. 잔뜩 찌푸린 채 간간이 가는 비도 뿌리는 날씨다. 강원도에는 많은 눈이 내린다는 예보다. 남부 지방에서는 예년보다 이른 꽃소식이 들리지만 여기는 아직 봄을 체감하기에는 빠르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팝콘 터지듯 봄꽃들이 팡팡 피어날 것이다. 생명이 약동하는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이 세상에 나와서 일흔 번 넘게 봄을 맞고 있다.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를 먹을수록 봄의 감흥이 애틋한 쪽으로 기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봄을 더 볼 수..

사진속일상 2024.03.05

아내와 경안천을 걷다

아내와 오포 쪽 경안천을 걸었다. 이쪽에는 혹시 고니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금년 2월에는 희한하게도 경안천에서 고니를 볼 수 없다. 무슨 연유로 경안천을 외면하는지 모르지만 아예 마음을 닫은 건 아닌지 걱정이다. 고니도 이제 북쪽으로 이동할 때가 되었다. 연말이 되어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서운하기 그지없다. 고니 없는 겨울 경안천은 썰렁했다. 경안천의 터줏대감인 백로와 흰뺨검둥오리는 걷는 동안 그나마 심심찮게 만난다. 항시 볼 수 있으니 그러려니 하지만 너희들도 귀한 존재들이 아니냐. 경제적이나 심리적으로 우리가 평가하는 사물의 가치는 희소성에 의해 결정된다. 베란다에 있는 제라늄은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까닭에 이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 있는 둥 없는 둥이다. 만약 일 년에 단 하루만 꽃을 피..

사진속일상 2024.02.29

눈 내린 탄천

밤 사이에 많은 눈이 내렸다. 당구 모임이 있는 날이라 오전에 분당으로 나가면서 탄천에 잠깐 들러보았다. 나무들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눈옷을 무겁게 걸치고 있었다. 하늘은 다시 눈이 쏟아질 듯 찌뿌둥했다. 사람들은 휴대폰을 꺼내 도시의 드문 설경을 찍느라 분주했다. 셋이 모인 당구 모임은 단출했다. 모임 내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었던 터라 분위기가 무거웠다. 당분간 내가 연락책을 맡기로 했다. 오후가 되니 눈은 많이 녹고 오전의 설경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여정이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짧은 여행객들이다. 따스한 날에 내린 눈처럼 우리 또한 소리소문 없이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원망할 일도, 안달할 일도 없어라. 그때가 되면 다 부질없었다고 할 게 아닌가. 세파의 잔물결에 마음이 요동쳐서는 안 ..

사진속일상 2024.02.23

물안개공원 산책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 나갔으나 고니를 보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제일 많은 고니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달 초에 마실 나간 고니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텅 빈 경안천이 쓸쓸했다. 발길을 물안개공원으로 돌려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어제 비와 눈이 내린 덕분인지 대기와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했다. 영상의 기온으로 땅에는 눈의 흔적이 없지만 산에 내린 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하루이틀이 지나면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연밭이 있는 곳에서는 오리들이 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정물화 가운데서 오리들의 기운찬 동작이 돋보였다. 산책하며 나눈 대화 중에 '시절인연'이란 말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저 오리의 날갯짓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다. 생명붙이를 비롯한 모든 만남에..

사진속일상 2024.02.16

넉 달만에 뒷산을 걷다

어제는 갑자기 봄이 찾아온 듯 날씨가 따뜻했다. 전국의 낮 기온이 20도에 이르렀고, 곳곳이 2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길거리에는 반바지 차림의 젊은이도 있었다. 밖은 완연한 봄기운이었다. 따스한 기운에 이끌려 뒷산을 걸었다. 얼마나 겨울잠이 깊었는지 넉 달만이었다. 적당한 눈비가 찾아준 올 겨울이어서 물기 촉축한 산길은 폭신했다. 맨발 걷기를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아직 산의 나무들은 겨울 모습이었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봄소식이 날 이토록 설레게 하다니... 쯔쯧, 박새가 나뭇가지를 옮겨가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정겨웠고 양지바른 곳에 봄꽃이 피지 않았을까, 자꾸 두리번거렸다. 지지난주에는 홍릉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간 세상이 하 수상해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다.

사진속일상 2024.02.15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고니 없는 경안천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이런 경우이리라. 서울에서 옛 동료 두 분이 고니를 보러 내려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저께만 해도 볼 만했는데 하루 사이에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제 큰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한 탓에 고니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두 분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니 없는 경안천 풍경이 쓸쓸했다. 대신 물에 잠긴 관목 뒤에서 노는 원앙 가족을 봤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원앙을 본 건 처음이었다. 손 형이 찍어준 사진 - 내 뒷모습은 그런대로 날씬하지 않은가. 초록색 조끼를 입은 여인들은 공원을 순찰하며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다. 공원 안의 생태에 대해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전에 이분들 덕분에 공원에서 서식하는 황금개구리를 보기도 했다. 고니를 ..

사진속일상 2024.02.05

고니를 보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착한 날이었다. 경안천으로 고니를 보러 나갔다. 얼음이 녹고 있는 경안천은 봄이 오는 듯 포근했고, 유유히 떠 있는 하얀 고니들이 강 풍경을 화룡점정으로 꾸미고 있었다. 기우뚱거리며 얼음 위를 걷는 고니의 몸짓도 재미있었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나가지를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로 왕복 네댓 시간이 걸리는 이동 시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 나이 탓일 게다. 반면에 고니는 룰룰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간다. 겨울 고니는 나에게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가 있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 신은 인간 여인을 유혹할 때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것이 백조(고니)였다. 그들 둘 사이에서 난 자식이 쌍둥이자리의 카스..

사진속일상 2024.02.03

겨울 아침의 한강 윤슬

'윤슬'이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의미의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물비늘'이 있다. 인터넷에서 '윤슬'을 검색하면 연예인이 20명 가까이 나온다. 그만큼 예쁜 이름이라는 뜻이겠다. 겨울 아침의 한강에서는 아침 햇살을 받은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렸지만 윤슬은 개의치 않고 영롱했다. 명멸하는 빛무늬가 강에 뜬 미리내처럼 보였다. 우리네 인생도 저 수많은 반짝임 중 하나가 아닐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며, 하물며 강물에 무슨 흔적인들 남길 수 있으랴. 해가 뜨든 말든, 윤슬이 반짝이든 말든, 무심한 강물은 유유히 흐를 뿐이다. 아서라, 선악이 무엇이며 애증이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희망이란 것조차도.

사진속일상 2024.01.31

탄천의 저녁

분당의 바둑 모임이 끝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가 해질녘이 아닌가. 발걸음은 자연스레 탄천으로 향했다. 이번주 초반의 강추위에 얼어붙었을 텐데 며칠간 날이 풀리더니 다 녹았는가 보다. 강물은 윤슬로 반짝였다. 겨울바람이 누그러진 탄천의 하늘은 고우면서 아늑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했다.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도 일말의 저기압 상태에 빠졌다. 폐허가 된 앙코르 유적이 준 느낌이 귀국 후에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인생살이의 덧없음이랄까, 뭐 그런 쓸쓸함과 우울한 감정에 잠겼던 탓이다. 문명의 흥망성쇄를 축소하면 개인에게도 그대로다. 살아 애지중지 추구하는 것들이 결국은 바람에 흩날리는 지푸라기와 같지 않은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 존재와 행위의 의미..

사진속일상 2024.01.28

씨엠립(6) - 반띠에이쓰레이, 반띠에이쌈레

씨엠립 북동쪽에 있는 이 두 유적은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유적에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보석은 눈에 잘 안 띄게 숨겨져 있는 법이다. 반띠에이 쓰레이(Banteay Srei)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바라만 2세 때 세워졌다. 규모가 작지만 정교한 조각이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적인 사원이다.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성소에 이르는데 가장 바깥 대문에서부터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당긴다. 문 상단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가 보인다. 성소로 향하는 참배로가 100여 미터 정도 뻗어 있다. 양쪽에 남아 있는 기둥으로 보아 원래는 회랑이 있었을 것이다. 참배로 옆에 있는 작은 건물 문 위에는 칼라가 선신을 잡아먹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성소에 들어가는 입..

사진속일상 2024.01.26

씨엠립(5) - 똔레삽

어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오늘 오전은 휴식이다. 늦잠을 푹 자고 아침 식사 전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똑 같다. 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공원에서는 조깅이나 걷기를 하는 현지인의 발걸음이 상쾌하다. 이 모든 풍경을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다. 물놀이하는 손주를 보며 풀장의 파라솔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손님은 대부분이 서양인들이다. 가끔 호텔 식당에서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때뿐이다. 낮에는 관광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낮에도 풀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쉬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긴 하다.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다. 그들한테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반면에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24.01.25

씨엠립(4) - 앙코르와트, 쁘레아칸, 네악뽀안, 따솜, 이스트메본, 쁘레룹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와트 입구까지 가서 휴대폰 불빛을 의지해 일출을 보는 장소인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과 주변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경관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이 적은 호젓한 곳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에 부대끼며 굳이 연못에 비치는 반영 앞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출을 보고 그저께에 이어 다시 앙코르 와트에 입장했다. 일출을 본 사람들은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 앞에서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양인은 혼자나 둘씩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패키지로 오는 경우는 드문드문 눈에 띈..

사진속일상 2024.01.24

씨엠립(3)

사흘째는 쉬는 날로 잡았다. 오전에는 씨엠립 시내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손주는 숙소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씨엠립(Siem Reap)은 캄보디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다른 무엇보다 앙코르 유적지가 곁에 있어 유명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화려하고 활발한 도시다. 씨엠립은 '씨엠(태국)을 물리친 도시'라는 뜻이다. 시내 관광이라지만 특별히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숙소 가까이 있는 왕실정원에 들렀다. 왕실정원은 캄보디아 국왕 별장이 있는 도심 속 공원이다. 이 정원은 박쥐가 사는 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박쥐는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서 쉬고 있었다. 동굴 안의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라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 박쥐가 신기했다.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사진속일상 2024.01.23

씨엠립(2) - 앙코르톰, 따프롬, 앙코르와트, 프놈바켕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필요에 따라 1일권(37$), 3일권(62$), 7일권(72$)을 구입하면 된다. 유적 입장료가 캄보디아인은 무료지만 외국인한테는 비싼 편이다. 우리는 3일권을 끊었다. 열흘 동안에 아무 날이나 사흘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첫날은 앙코르 유적의 중심인 앙코르 톰, 따 프롬,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을 찾기로 했다. 한국어 가이드와 차량은 미리 예약해 두었다. 첫날만 가이드를 이용하고 나머지 날은 우리끼리 가이드북을 들고 찾아다닐 것이다. 앙코르 톰(Angkor Thom)은 12세기에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던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다. 당시에 무려 백 만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남문으로 향한다. 다리 양쪽에는 54개의 신이 뱀 몸통을 잡고 있는 모습이 세워져..

사진속일상 2024.01.22

씨엠립(1)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 캄보디아 씨엠립에 6박7일 동안 다녀왔다. 아내와 둘째 딸, 손주와 함께 했다. 이번 해외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지 5년 만의 재개였다. 오랜만에 바다 밖으로 나가는 여행 준비를 하다 보니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귀찮고 부담도 되었다. 여행도 젊을 때 하라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앙코르 유적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던 곳이었다. 그동안 한두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이제야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다. 씨엠립으로 결정된 것은 가족이 내 뜻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 30분이 걸려 '씨엠립 앙코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10월에 문을 연 신공항으로 우리는 스카이 앙코르 항공을 이용했다...

사진속일상 2024.01.21

흐린 겨울 하늘

연말연시 내내 흐린 하늘이다. 올해의 새해 첫날 일출도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이왕이면 멋진 해돋이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겨울 하늘은 심술을 부리는 듯 잔뜩 찌푸려 있다. 나라 안팎 사정도 이런 날씨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인다. 2024년은 여느 연초와 달리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로 시작하는 해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경안천에 나갔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몸을 덜 움직이니 운동 부족이 되기 십상이다. 걷기 위해 밖에 나가는 것이 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날씨는 누긋하다. 구름이 감싸주는 탓인지 요사이는 밤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짙은 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경안천에는 사시사철..

사진속일상 2024.01.02

올해 마지막 당구

올해만큼 당구에 집중해 본 때가 없었다. 그동안은 심심풀이로 치는 당구였다. 그런데 올봄에 불현듯 당구 실력이 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 당구 강좌를 보며 공부했다. 당구 모임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당구를 치자고 졸랐다. 당구 치는 횟수가 몇 배로 늘어났다. 노력하면 일취월장할 것 같았다. 가을이 되면서 벽에 부딪쳤다. 예상한 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공놀이든 자신 있다고 여겼는데 당구는 아니었다. 당구가 얼마나 섬세하고 어려운지를 실감한 거다. 소질이 없는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진척이 없으니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겨울에 들면서 당구 공부를 포기했다. 못 치더라도 즐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올해의 마지막 당구 모임에 참석..

사진속일상 2023.12.29

평화로운 백조의 호수

지난 한파에 경안천이 얼었다. 다행히 일부 얼지 않은 데가 있어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 노니는 운동장이 되었다. 백조(고니)의 호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경안천의 새들은 백과 흑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고니는 고니대로, 기러기는 기러기대로, 함께 있되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내 땅이니 나가라고 폭력을 쓰지도 않는다. 낮 동안에는 대부분이 쉬거나 유유히 헤엄 치며 보낸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인간도 새처럼 가볍게 살 수는 없는지, 잠깐만이라도 너희와 동류가 되어 덕지덕지 쌓인 인간의 때를 벗어버리고 싶구나.

사진속일상 2023.12.27

화이트 크리스마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이 오전까지 이어지며 지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일주일 넘게 움츠리게 만든 한파도 물러가고 포근한 성탄절이다.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성탄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사야서의 성탄 예언을 적어 보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친구에게 더욱 애틋하며 간절한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세상의 연약하고 버림 받고 힘없는 존재들이 따스하게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상처 입은 선한 마음도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흰 눈이 세상을 순일하게 감싸주듯, 안팎의 소란이 잠들고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속일상 2023.12.25

경안천 고니(2023/12/18)

아침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다. 오전에 경안천에 나갔을 때도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렸다. 강추위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의 위세가 거셀 전망이다. 경안천은 가장자리에서부터 얼기 시작하고 있다. 고니와 기러기들은 몸을 움츠린 채 정지 상태다.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과 장난치는 녀석들도 일부 있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왔으니 이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고니와 기러기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얘들은 자기들 영역을 지키느라 싸우지 않는다. 또한 먹이를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 날개를 펴면 다 내 하늘 내 땅인데 더 챙길 게 뭐가 있겠는가. 많이 소유하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높이 날 수가 없다. 새들을 보면서 마태오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하늘의 새들을..

사진속일상 2023.12.18

겨울비에 젖는 경안천

어제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밤에 잠을 깼더니 양철 환기통으로 조잘거리며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겨웠다. 한밤에도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겨울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일 뿐, 오늘 저녁부터는 기온이 떨어지고 밤에는 눈으로 변한다는 예보다. 경안천 둑에 서니 강변 풍경이 희뿌옇게 젖어 있다. 사선으로 긋는 빗줄기는 바지 아랫부분을 축축하게 적신다. 경안천에 나온 것은 고니가 얼마큼 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고니는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상당한 숫자가 모여 있었다. 둑 위에는 늘 고니를 찍으려는 사진사들이 많은데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경안천 주변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우중 드라이브를 즐겼다. 빗줄기를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기분은 드라이브의 백미다. 음악도 끄고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와 차체..

사진속일상 2023.12.15

물빛공원 반영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 모임이 있었다. 전 같으면 서울 나가는 데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요사이는 자가용을 끌고 나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서는 자가용이 훨씬 낫다. 이번에도 유혹에 넘어가 결국은 자동차 키를 꺼내 들었다. 편한 게 선택의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은 늙었다는 징후 중 하나다. 대중교통이 있는데 굳이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지구 환경은 생각하지 않은 채 제 한 몸 편하자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가, 그런 손가락질을 이제는 내가 받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불편해지는 마음을 외면할 정도로 철면피가 되어 가는 나를 본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물빛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호수 반영이 실..

사진속일상 2023.12.14

탑골공원과 익선동 모임

종로3가에서 모임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부터 밖의 거리까지 온통 노인 천지였다. 탑골공원과 종묘 앞 광장, 송해 거리 등 이곳은 노인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홍대나 강남이 젊은이의 거리라면 종로3가 주변은 노인의 거리다. 전과 달리 이제는 나도 같은 노인 무리에 섞여 걷고 있다. 동류의 노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되어 탑골공원에 들어가 보았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곳은 원각사(圓覺寺)가 있던 곳으로, 조선 세조 13년(1467)에 이 석탑을 만들었다. 아마 왕실의 번영을 위한 염원이 들어갔으리라. 고등학생 때 처음 찾았던 탑골공원(그때는 파고다공원이었음)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이 이 10층석탑이었다. 절에서 만나는 일반..

사진속일상 2023.12.09

어머니에게 다녀오다

어머니 표정이 어두웠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틀 전에 꾼 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나서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더라는 것이었다. 꿈에서는 이심전심으로 느껴지니까. "나 금방 갈 께요" 하니 외할머니는 아무 대꾸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곧 죽을 것 같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하셨다. "그건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서 오라고 해야 데려가는 거지요. 외면하며 뒤돌아서 갔잖아요." 내 말에 어머니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다소 안도하셨다. "빨리 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이며 주춤한다. 생(生)에의 본능이 그만큼 질긴 것이리라. 나는 안다. 지금 같은 어머니 건강 상태라..

사진속일상 2023.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