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738

꽃 피는 아차산

봄의 한가운데라는 내 기준은 벚꽃이 만개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봄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어제 지인들과 아차산을 찾았는데 전체 벚꽃 중에 10% 정도만 꽃을 피운 상태였다. 나머지는 아직 꽃봉오리가 맺힌 정도다. 아차산의 봄에서 제일 아끼는 수양벚나무는 다행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벚꽃이 아쉬웠으나 대신 다른 여러 꽃들과 만나 기뻤다. ▽ 홍매  ▽ 청매  ▽ 복수초  ▽ 광대나물  ▽ 개불알풀꽃  ▽ 히어리  ▽ 미선나무꽃  ▽ 개나리  ▽ 앵두꽃  ▽ 진달래(올해 가장 화사한 진달래를 산길에서 만났다)  ▽ 귀룽나무  ▽ 소나무 산책로  ▽ 산 중턱 쉼터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이날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한 날이었다. 산길에서 기쁜 소식을 듣자 지인들 얼굴이 꽃처럼 밝아졌다...

사진속일상 2025.04.05

평사리 최참판댁

소설 20권 읽기를 마쳤다. 작년 12월 중순에 시작했으니 넉 달 가까이 걸렸다. 대하소설은 호흡이 긴 책 읽기다. 다 읽고 나니 소설의 무대가 된 하동 평사리의 최참판댁에 가 보고 싶었다. 9년 전에 간 적이 있지만 그때는 건성으로 본 터였다. 평사리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소설 내용에 맞게 최참판댁을 만들어 놓았다. 마당에는 책을 읽는 최치수의 동상이 있다. 최참판은 최치수의 할아버지다.  당주인 최치수가 살았던 사랑채다.  중문채는 집안 살림을 관장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서희의 거처였던 별당이다. 서희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 곳이라 왠지 모르게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집 뒤에 있는 사당. 마을 폭동이 일어난 날 조준구는 사당 마룻장 밑에 숨어 목숨을 구한다. 서희가 간도로 떠나면서 조..

사진속일상 2025.04.02

설렘을 잃은 봄

봄이 왔건만 봄의 설렘을 잃었다. 말 그대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매해 버릇처럼 쓰는 말이지만 올해는 각별하다. 왜 그런지 굳이 밝힐 필요가 있을까. 헌재 밀실에 숨어서 그분들은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답답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뒷산에 올랐다. 산길 초입에서부터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가 반겼다. 아무리 시절이 수상해도 봄이 되면 피는 꽃이 반갑지 않으랴. 인간 세상의 혼탁과 무관하게 봄이 찾아온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박새 소리도 정겨웠다. 너희들은 여전하게 그 모습 그대로구나.  영남 지역에는 산불 피해가 크다. 스무 명이 넘는 인명 피해에다가 사라진 삼림과 숲의 생명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뒷산 정상부의 괭이눈도..

사진속일상 2025.03.27

3월의 풍성한 눈

3월 하순으로 접어드는데 한겨울 같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에 대설 특보가 내리고 아침까지 계속되다가 그쳤다. 습기를 머금은 무거운 눈에 소나무 가지가 부러질 듯 휘청인다. 오후에는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나와 있으니 곧 작별을 해야 할 마지막 눈일 듯싶다.  올 겨울은 눈이 많았다. 농경사회에서 눈은 풍년을 약속하는 반가운 존재였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공휴일이 되는 나라도 있다. 얼마나 낭만적이면 이런 기념일도 있을까.     어제는 수서에서 면목회 모임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차를 나누며 40여 년 전의 옛이야기에 젖었다. 각자가 소환하는 얼굴들에서 갖가지 추억들이 안개처럼 피어올랐다. 지금은 다들 어떻게 지낼까 궁금해지기도 하면서 인간 사이에 맺어지는 인연과 우연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들었다. 눈은 곧..

사진속일상 2025.03.18

청계산 진달래능선을 걷다

용두회의 이번달 걷기는 청계산 진달래능선이었다. 진달래가 피는 때에 맞추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으나 꽃이 나오기 전 이른 봄의 산도 좋았다. 산길에서는 봄이 오는 소식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청계산역 2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원터골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원터골 계곡에서는 얼음 녹은 물이 봄을 재촉하듯 재잘거렸다.   진달래능선을 따라 옥녀봉으로 올라간다. 약간의 황사가 있었으나 크게 개의할 정도는 아니었다.   진달래는 긴 겨울잠에서 이제 막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4월 초가 되면 이 길은 분홍색 꽃물결로 일렁이리라.   유일하게 생강나무꽃이 샛노란 봉오리를 선보이고 있었다.  진달래능선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의 모습이다. 먼 시야는 흐릿했다.  친구들은 중턱까지 오르더니 못 가겠다며 다들 쉼..

사진속일상 2025.03.14

봄 오시는 동네를 산책하다

봄 오시는 발걸음이 느리다. 시베리아의 한기가 늦게까지 한반도를 덮고 있었던 탓이다. 꽃 피는 시기가 예년에 비해 한두 주는 늦는 것 같다. 덩달아 세상살이에도 냉기가 걷히지 않고 있다. 우리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민주주의와 인류애라는 가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실감한다. 그래도 때가 되면 봄은 온다. 자연의 철리는 어김이 없다. 내복을 벗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밖에서 놓아먹이는 닭을 만났다. 장닭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가 흙을 파헤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자유롭고 기운찬 모습이 반가웠다. 특히 장닭의 기세는 지구를 떠받칠 듯 늠름했다. 셋은 기분이 좋은 듯 연신 꼬꼬 거리며 만족스러운 소리를 냈다. 닭장 안이 아니라 이렇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닭을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

사진속일상 2025.03.09

양양, 속초 여행(2)

방음이 잘 안 되어 잠을 설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밤 10시가 넘으니 시끄럽던 옆방도 조용해져서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온돌방 바닥도 따스했다.  일어나서 리조트 15층에서 바라본 영랑호 주변의 속초 풍경이 아스라했다. 아침 해는 빌딩 사이로 솟아오른 뒤였다.  리조트에서 나오는 조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바로 영랑호를 걸었다. 역시 바닷가에서는 아침과 저녁에 부는 해풍이 차고 거셌다. 그럼에도 설악산을 배경으로 한 영랑호 풍경은 아름다웠다.  원래는 한 바퀴를 돌 생각이었으나 날씨가 망설이게 했다. 결국 반 바퀴만 도는 것으로 수정했다. 산책로를 따라 벚나무가 도열해 있는데 봄에 오면 참 멋질 것 같다.  이번에는 범바위에 올라가 보았다. 위에는 거인의 공깃돌 같은 바위들과 영랑정(永郞亭)이 있었다. ..

사진속일상 2025.03.01

양양, 속초 여행(1)

아내와 2박3일로 양양과 속초 여행을 다녀왔다. 첫날은, 양양으로 가서 남대천을 걸었다. 2월 하순이지만 바닷바람이 너무 거세고 차가워서 오래 걷지는 못했다. 대신에 양양 5일장이 서는 날이라 전통시장을 구경했다.  이어서 하조대해수욕장을 찾았다. 하조대전망대에서 바다 풍경을 구경하고, 백사장을 밟으며 산책을 했다.  4시쯤 낙산비치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낙산해수욕장과 동해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젊었을 때 낙산에 놀러 오면 늘 바닷가 민박이나 모텔에 묵었다. 언덕 위에 있는 하얀색의 비치호텔을 보면서 언젠가는 저기에서 잠잘 때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이제야 이루어졌다.   객실에서 바다 일출을 보았다. 운좋게 오메가 일출을 보는 행운이 찾아왔다.  호텔에서 뷔페식 조식을 먹고 바로 옆에 ..

사진속일상 2025.02.28

어느 하루

일주일에 한 번 분당에서 당구 모임이 있다. 이날은 일부러 목적지보다 대여섯 정거장 전에서 버스를 내린다. 걷기 위해서다. 천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좋은 산책로가 있는데, 매번 이 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이다. 30여 분 걸을 뿐이지만 나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당구는 11시부터 시작한다. 회원은 아홉이나 보통 대여섯 명 정도 모인다. 두 테이블로 나누어 4구와 3쿠션 게임을 한다. 나는 하수지만 주로 3쿠션을 친다. 수지는 몇 년째 10이다. 작년에는 책과 유튜브를 보면서 연구를 했지만 별 진척이 없다. 공 다루기가 당구만큼 어려운 종목도 없다. 나이 들어서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절감한다. 이젠 실력이 느는 건 포기했다. 그저 즐기기로 하니 마음이 편하다. 오후 2시경..

사진속일상 2025.02.21

전주, 군산, 고창

전주 구시가지에는 6, 70년대에 지은 단독주택이 많이 남아 있다. 일부는 빌라나 다세대주택으로 변했지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집이 상당하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개발할 여력이 안 되는 동네다. 전주에는 한옥마을이 유명하지만 특정 지역일 뿐이고 대부분은 시멘트로 지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집들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담장 너머로 작은 마당이 있으며 대개 유실수 몇 그루가 지붕까지 닿아 있다. 벽이 도로에 맞닿아 옹색한 집도 있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어수선해 보여도 사람 살아가는 향취가 느껴진다. 전주의 골목길을 산책한 이른 아침이었다.  장모님이 소환해서 형제들이 모두 모였다. 파티가 열렸고, 하사하는 금일봉을 받았고, 밤늦게까지 시..

사진속일상 2025.02.19

경안천의 큰부리큰기러기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기러기를 가까이서 만났다. 기러기 중에서도 큰부리큰기러기로 매년 겨울이면 이곳으로 찾아오는 손님이다. 얘들은 시베리아에서 지내며 번식을 하고 월동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  기러기는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무리로 모여 수초 사이에서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내지르는 소리가 봄철 개구리 합창처럼 요란했다. 둘레에는 몇 마리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아마 보초병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새들이 그러하듯 기러기도 경계심이 크다.  얼음판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다른 무리가 있고,   심심한 하늘에 그림을 그려주기도 하고,  다른 쪽에는 고니와 함께 쇠오리들이 모여 있었다.   단톡방 세 군데에 오늘 찍은 기러기 사진을 올렸다. 사람마다 각각의 반응을 보..

사진속일상 2025.02.12

물닭을 지키는 고니

겨울 철새가 모이는 경안천에는 이들을 노리는 맹금류가 모여든다. 덩치가 큰 고니는 어찌할 수 없어도 물닭 같은 작은 새는 좋은 먹잇감이다. 어제 아침에 경안천에 나갔다는 흥미로운 광경을 봤다. 물닭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리를 고니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왼쪽에 까만 작은 새가 물닭이다. 아직 새끼인 듯한데 어미는 보이지 않는다. 수리에게는 이만한 표적이 없다. 그런데 고니 세 마리가 물닭 옆을 둘러싸고 수리가 다가오지 못하게 지켜주는 것이었다. 수리는 한참을 어슬렁대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무 위로 날아갔다.   연약한 생명을 지키려는 고니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다. 종을 떠나서 약자를 보호하려는 의지가 본능적으로 작동되었던 것 같다. 수리가 떠나고 고니가 자리를 옮기자 물닭도 어미를 따르듯 고니 뒤를..

사진속일상 2025.02.07

설 지나서 어머니를 찾아뵙다

올 설날 연휴는 임시공휴일까지 겹쳐 6일이나 되었다. 회사에 따라서는 9일간 쉬는 곳도 있었다. 덕분에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몰린 인천공항만 북적였다고 한다. 폭설에 날씨가 험한데다 정국 상황과 맞물려 국내는 어수선했다. 설날이 지난 나흘 뒤에 아내와 함께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좋아하시는 피자와 도너츠를 사가지고 갔는데 맛있게 먹다 보니 저녁 대용이 되었다. 전에 쓰던 카세트가 고장 나서 새로 작은 라디오를 사다 드렸다.   초저녁 하늘에는 초생달과 금성이 나란히 떠 있었다. 밤에 눈이 살짝 지나갔다.  다음날, 찬바람이 거세 산소에는 혼자 다녀왔다. 산소가 있는 자리는 바람이 막히고 아늑해 마른 잔디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땅 속에 계신 이분들과 함께 지낸 어린 시절이 아련했다. 추모란 타인을..

사진속일상 2025.02.04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7학년이 되니 새해가 되어 주고받는 인사조차 덤덤하다.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도 예전 같이 시끌하지 않다. 어쩌다 새해 인사가 올라오지만 반응이 심드렁하다. '오는 년이나 가는 년이나' 별다르지 않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신정과 설날이라는 두 번의 새해가 있어 덕담 주고받기도 과유불급이 되기 십상이다.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한 친구는 그래도 기념일인데, 라며 동의를 못하는 표정이었다. 자주 안부를 전할 수 있으니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니 부럽기도 하다. 아무래도 나는 세상사에 대해 시니컬한 측면이 있다. 인사치레라지만 마음에 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게 싫다. '복(福)'이 너무 남용되어 싸구려로 전락한 느낌도 싫다. 설 연휴 당구장은 문전성시였다. 영감들이 집에 있지 않..

사진속일상 2025.02.01

파사성과 여강길 8코스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날 치고는 맑고 바람 없이 따스했다. 바깥나들이를 하자고 아내와  의기투합하여 불현듯 떠오른 장소가 파사성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지나치고 직접 오르지는 못한 성이었다. 파사성(婆娑城)은 여주시 대신면 파사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석성이다. 6세기 중엽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면서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의 성은 조선 시대에 다시 쌓은 것이며 성의 둘레는 1,800m이고 성벽의 최대 높이는 6.5m로 규모가 큰 편이다. 성 안에서는 백제, 신라, 고려, 조선 등 여러 시기의 건물터가 확인된다. 파사산은 해발 230m로 야트막하지만 산성에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팔랐다.  파사성에 서면 남한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고 사방이 뚫려 있어 경치가 좋다.   여강길 8코스 파사성길이 이곳을 지..

사진속일상 2025.01.25

겨울 여수천

지난 며칠간 추위가 가셨으나 대신 미세먼지가 자욱했다. 안개가 낀 듯 시야가 흐릿했다. 다행히 오늘부터는 대기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야탑 모임에 오가는 길에 걷는 여수천의 아침저녁은 을씨년스러웠다. 날이 풀리고 있지만 천변 산책로를 걷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쪽에는 남아 있는 지난 눈의 잔해가 패잔병처럼 초라해 보였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안다. 물길을 따라 비둘기, 백로, 흰뺨검둥오리, 물까치 등이 보였다. 그중에서 물까치가 제일 활발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이내 사라지고 없었다.  파란 하늘에 여객기가 흰 줄을 그으며 지나갔다. 프로펠러 군용기 한 대는 계속해서 하늘을 선회하고 있었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름 없는 서쪽 하늘이 발갛게 물들었다. 새들도 저..

사진속일상 2025.01.24

두루미를 보고 물윗길을 걷다

철원에 가서 두루미를 보고 물윗길을 걸었다. 새로 개통한 세종포천고속도로를 이용하니 오가는 길이 수월했다. 추위가 가시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오른 따스한 날이었다. 아내와 함께 했다. 두루미를 손쉽게 볼 수 있는 곳은 동송읍 이길리에 있는 두리미 탐조대다. 주기적으로 먹이를 뿌려주기 때문에 두루미가 많이 몰려온다. 재두루미가 90%가량 되고, 적은 숫자의 두루미가 섞여 있다. 기러기와 고니도 있다.   이동하는 길 주변의 논에도 서너 마리씩 모여 있는 두리미 가족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올해만큼 두루미를 많이 본 적도 없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오후에는 물윗길을 걸었다. 철원 물윗길 얼음 트레킹은 순담계곡에서 직탕폭포까지 한탄강을 따라가며 걷는 8.5km를 걷는 길이다. 고석정, 승일교, 내대양수장, ..

사진속일상 2025.01.18

날아라 고니

경안천이 대부분 얼음으로 덮였다. 일부 얼지 않은 곳에는 고니와 기러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동장군에 맞서 물을 지켜내려고 진을 치고 있는 병사들 같다. 다행히 당분간은 강추위 예보가 없다. 새들이 놀 수 있는 터전이 이만큼이라도 계속 보존되면 좋겠다.  얘들은 한낮에는 잘 움직이지 않는다. 휴식시간인 것 같다. 그래도 기다리다 보면 운 좋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고니를 볼 수 있다. 솟구쳐오르는 힘찬 날갯짓에 내 심장이 마구 뛴다. 유유히 비행하는 우아한 자태를 넋을 빼앗기고 바라본다.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다.  근처에는 맹금류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앉아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사냥할 생각이 가득한 듯하나 무리지어 있으니 공격할 엄두가 안 나는가 보다. 천변을 걷다 보면 새털이 무더기로 흩어져..

사진속일상 2025.01.14

찬바람 맞으며 경안천을 걷다

날이 추워졌다. 올겨울 들어 처음으로 한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이틀 전이 소한(小寒)이었다. 옛날 어른들이 '소한이 대한네 집에 가서 얼어 죽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 무렵이면 한차례 추위가 지나갈 만한 때다. 앞으로 사나흘간 강추위가 몰려올 것이라는 예보다. 더 추워지기 전에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에 경안천에 나갔다. 중무장을 했건만 찬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물, 콧물이 줄줄 흘렀다. 몸도 자꾸 수굿해졌다. 그러나 한남동에서 밤을 새우며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웠다. 내리는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앉아서 버틴 '키세스 시위대' 사진에 가슴 뭉클했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툴툴댄단 말인가.  백로나 왜가리가 드문드문 눈에 띄고,  이 왜가리는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를 않는다. ..

사진속일상 2025.01.08

2025 첫날의 산책

열흘 만에 외출을 하다. 고뿔 손님을 접대하느라 밖에 나갈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랄까, 이제는 얌전해진 손님을 집에 두고 조심스레 동네 산책을 하다. 2025년의 첫날이다. "가는 년(年)은 가고, 오는 년(年)은 온다." 오는 년이라고 가는 년과 달리 특별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년이 그 년인 것이다. 1월 1일의 거리는 한산하다.  날은 맑고 포근하다.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번잡한 세상사는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여객기 한 대가 미미한 소리를 남기고 동쪽으로 날아간다.  어쩌다 보니 뒷산도 두 달 만이다. 산은 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받아준다. 박새가 이 가지 저 가지로 자발스럽게 옮겨 다닌다. 모든 것을 품은 산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이대로 족하다!"  새해 첫날 점..

사진속일상 2025.01.01

고향에 다녀오다(12/16~19)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뵙고 왔다. 겨울로 들어선 계절이 고향집의 안팎 풍경을 스산하게 했다. 집에 있었던 3박4일 동안 두문불출하고 방 안에서 어머니하고만 지냈다. 고향에 내려가면 게으른 몸이 더 게을러져 나무늘보가 된다.   감사하게도 어머니는 무탈하게 잘 지내시는 편이다. 지남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외로움을 많이 타신다. 90대 중반이니 친구들이 대부분 떠나고 이제는 말상대가 거의 없다. 장수한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몫인 것 같다.   어머니의 조각그림 맞추기 속도는 나보다 낫다. 시력, 청력도 젊을 때와 같다. 허리가 아픈 걸 빼면 신체에 다른 이상도 없다. 그럼에도 고령의 연세로 혼자 지내시기 때문에 자식 입장에서는 늘 걱정이며 불안 요소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심정을 하소연..

사진속일상 2024.12.20

성지(38) - 배티성지

성지 53. 배티성지(충북 진천군 백곡면) 경기도 안성에서 충북 진천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배나무 고개'라는 뜻의 배티다. 산에 돌배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고 한자로는 '이치(梨峙)'라고 쓴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이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기 시작하고 교우촌이 만들어졌다. 1850년에는 작은 초가집에 최초의 신학교가 세워졌고, 최양업 신부님이 이 초가집에 살면서 신학생들을 지도했다. 배티성지는 박해시대 비밀 교우촌이었고, 조선대목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곳이며, 최양업 신부님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사목 중심지였고, 무명 순교자들의 안식처이기도 하다. 배티성지에는 최양업 신부를 기념하는 성당과 박물관, 옛 신학교, 피저의 집, 순교자의 무덤 등이 있다.  오랜만에 배티성지를 찾으니 새로운 곳에 온..

사진속일상 2024.12.05

청주에 다녀오다

나에게 청주(淸州)라면 교육의 도시면서 깨끗한 도시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런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이 예전부터 있었다. 아내와 함께 청주에 다녀왔다. 새로운 거처로 적당한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콕 집은 동네도 있었다. 가는 길에 안성의 금광호수와 진천의 배티성지에 먼저 들렀다. 5년 전에 금광호수의 박두진문학길을 걸은 적이 있지만 최근에 세워진 하늘전망대가 어떤지 보고 싶어서였다. 쌀쌀했으나 겨울 하늘의 구름이 아름다운 날이었다.  청주의 목적지는 사천동이었다. 청주의 외곽지대로 한적했으며 가까이에 성당과 병원이 있어서 우리 조건에 맞았다. 하지만 청주공항이 가까워 비행기 소음이 심한 게 단점이었다. 청주공항은 전투기도 이용하기 때문에 그 날카로운 굉음이 낯설었다. 사천동성당을 둘러보는..

사진속일상 2024.12.04

11월의 폭설

첫눈이면서 대단한 폭설이었다. 우리 지역에서는 27일 새벽 3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28시간 동안 누적적설량 45cm가 쌓였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11월에 내린 눈의 최고 기록이었다. 28일 아침의 집 앞 도로는 옴짝달싹 못 하는 자동차가 긴 줄을 만들었다. 학교는 휴교했다. 나도 바깥 약속이 있었지만 나가지 못했다.  기상청에서는 이번 폭설의 원인을 "예년보다 높은 해수면 온도로 인해 서해상의 해기차(대기와 바닷물간 온도차)가 크게 났고 그로 인해 찬 공기가 따뜻한 바다 위를 통과하면서 지속해서 수증기로 인한 눈구름대가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이 역시 지구온난화의 한 결과라는 얘기다. 아름다운 설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런 식으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고 지구온난화가 진행한..

사진속일상 2024.11.29

첫눈 내리는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밤에 첫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를 뇌가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설레는 손길로 커튼을 젖히니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점점 기온이 내려갈 테니까. 오디오북으로 소설 한 편을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커튼을 여니 반가운 손님처럼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돋보이게 드러난 눈송이가 춤추듯 흩어져 내렸다. "어떤 소리도 없이, 아무런 기쁨도 슬픔도 없이".  열린 창문 틈으로 "꼬끼요", 멀리서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 두런두런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눈치우개로 바닥을 미는 소리가 났다. 작업을 하는 경비원은 보이지 않았다. 이 새벽에 일터로 나가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자동차 바퀴자국을 눈은 선명하게 드러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사진속일상 2024.11.27

떠나가는 가을

서점에 주문한 책을 찾으러 갔는데 일요일이 문 닫는 날인 걸 깜빡 했다. 빈 배낭을 메고 경안천에 나가서 떠나가는 가을과 함께 했다. 영은미술관 뜰에는 가을이 남긴 흔적이 가득하다.  가을이 떠나가면 고니가 찾아올 거야.   경안천에는 백로가 무리를 지어 모여 있다. 길 떠날 채비를 하는가 보다. 먼 길 떠나자면 길동무가 필요하겠지.  곧 겨울이 다가온다고 수근거리는 소리들.  아파트 뜰의 수양단풍나무는 마지막 치장이 화려하다.   다음주에는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하고 첫눈 예보도 나와 있다. 가을 옷을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다시 겨울옷을 꺼내 장농에 건다. 그렇게 한 계절이 가고 새 계절이 온다.

사진속일상 2024.11.24

여수천의 늦가을

여수천을 걸어서 야탑에 나가다. 여수천 주변은 늦가을을 장식하는 단풍으로 곱다. 노을이 그러하고, 단풍이 그러하고, 사라지는 것들은 이리 아름답다.   11월 하순인데 물들지 않은 단풍나무 잎도 보인다. 일부만 붉게 채색되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초록색이다. 이러다가는 12월에도 단풍이 남아 있겠다. 일본 기상청 자료를 보면 일본에 단풍이 찾아오는 시기가 70년 전보다 19일 정도 늦어졌다고 한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다. 앞으로는 12월 단풍도 드문 말이 아닐 것이다.  나뭇잎은 생의 끝에서 자기의 고유한 색깔로 빛난다. 생명의 활력으로 충만하던 여름에는 서로간에 구별이 되지 않았다. 사람도 그러할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 속에서 부..

사진속일상 2024.11.22

광명동굴과 도덕산, 당구 직관

광명동굴과 도덕산 출렁다리를 찾아본 뒤 광명시민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PBA 팀리그 경기를 직관하다. 잔뜩 흐리다가 오후부터는 가을비가 내리는 날씨였다. 광명동굴은 경기도 광명시 가학동에 있는 폐광 동굴로 2011년에 내부를 단장하여 일반에 개방하였다. 수도권에서는 드문 광산 동굴이라 지금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광산의 아픈 역사와 함께 아이들이 좋아할 여러 볼거리를 갖추어 놓았다.   여기서는 1912년에서 1972년까지 광물을 채광했다. 채광 물질은 금, 은, 동, 아연 등이었다. 갱도 길이는 7.8km였고, 총 9개 층으로 되어 있었다.    광명의 도덕산(道德山)이 유명한 건 2022년에 만들어진 이 Y자형 출렁다리 때문이다. 소문난 곳이니 한 번 와 보기는 해야겠지.  도덕산..

사진속일상 2024.11.20

성지(37) - 윤봉문 요셉 묘

성지 52. 순교복자 윤봉문 요셉 묘(경남 거제시 일운면) 순교복자인 윤봉문 요셉(尹鳳文, 1852~1888)은 1866년 병인박해로 재산을 몰수 당한 뒤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위해 양산에서 거제도로 이주하였다. 거제도에서 전교하며 로베르 신부의 성사 집전을 돕는 등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고 진주로 압송되어 문초를 받았다. 그는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1888년에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2013년에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성지로 조성하였다.  이곳은 거제도에서 유일한 천주교 성지다. 그래선지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순교자 현양탑 안에 복자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현양탑은 순교자들이 옥중에서 쓰던 칼 모양을 형상화 했다.  경당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미사가 집전된다.  성지에는 편백나무와..

사진속일상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