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714

물안개공원 산책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 나갔으나 고니를 보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제일 많은 고니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 달 초에 마실 나간 고니가 지금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텅 빈 경안천이 쓸쓸했다. 발길을 물안개공원으로 돌려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어제 비와 눈이 내린 덕분인지 대기와 하늘은 더없이 맑고 청명했다. 영상의 기온으로 땅에는 눈의 흔적이 없지만 산에 내린 눈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마저도 하루이틀이 지나면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연밭이 있는 곳에서는 오리들이 식사를 하느라 분주했다. 정물화 가운데서 오리들의 기운찬 동작이 돋보였다. 산책하며 나눈 대화 중에 '시절인연'이란 말이 따스하게 다가왔다. 저 오리의 날갯짓 하나도 귀하고 소중하다. 생명붙이를 비롯한 모든 만남에..

사진속일상 2024.02.16

넉 달만에 뒷산을 걷다

어제는 갑자기 봄이 찾아온 듯 날씨가 따뜻했다. 전국의 낮 기온이 20도에 이르렀고, 곳곳이 2월 최고기온을 기록했다. 길거리에는 반바지 차림의 젊은이도 있었다. 밖은 완연한 봄기운이었다. 따스한 기운에 이끌려 뒷산을 걸었다. 얼마나 겨울잠이 깊었는지 넉 달만이었다. 적당한 눈비가 찾아준 올 겨울이어서 물기 촉축한 산길은 폭신했다. 맨발 걷기를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아직 산의 나무들은 겨울 모습이었지만, 오감으로 느껴지는 봄소식이 날 이토록 설레게 하다니... 쯔쯧, 박새가 나뭇가지를 옮겨가며 노래 부르는 소리가 정겨웠고 양지바른 곳에 봄꽃이 피지 않았을까, 자꾸 두리번거렸다. 지지난주에는 홍릉에 복수초가 피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간 세상이 하 수상해도 어김없이 봄은 온다.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다.

사진속일상 2024.02.15

2024 설날

올해 설날은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단출하게 보냈다. 도로 정체가 풀린 뒤인 까치 설날 저녁에 내려갔더니 막힘 없이 갈 수 있었다.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명절이랄 것도 없이 간단했다. 성묘 가는 길... 어머니는 과거를 추억하며 많이 서운해 하셨다. 나도 기억하는 그 시절 동네 골목에는 설빔을 차려입은 아이들로 북적였고, 집에는 연신 세배하러 오는 손님이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설날이 되어도 적막강산이다. 마을에는 아예 아이들이 없다. 새해 인사도 다니지 않는다. 차례를 지내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외지에서 찾아오는 가족 친척도 적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어울리다 간다. 우리 동네만 아니라 작금의 보편적인 현상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새 시대에 적응할 수밖에 없잖은가. 어쨌든 한 시대가 저무..

사진속일상 2024.02.12

고니 없는 경안천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이런 경우이리라. 서울에서 옛 동료 두 분이 고니를 보러 내려왔는데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저께만 해도 볼 만했는데 하루 사이에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제 큰 소음이 나는 작업을 한 탓에 고니가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설명이다. 두 분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니 없는 경안천 풍경이 쓸쓸했다. 대신 물에 잠긴 관목 뒤에서 노는 원앙 가족을 봤다. 경안천습지생태공원에서 원앙을 본 건 처음이었다. 손 형이 찍어준 사진 - 내 뒷모습은 그런대로 날씬하지 않은가. 초록색 조끼를 입은 여인들은 공원을 순찰하며 자원봉사를 하시는 분이다. 공원 안의 생태에 대해 물어보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전에 이분들 덕분에 공원에서 서식하는 황금개구리를 보기도 했다. 고니를 ..

사진속일상 2024.02.05

고니를 보다

미세먼지가 사라진 착한 날이었다. 경안천으로 고니를 보러 나갔다. 얼음이 녹고 있는 경안천은 봄이 오는 듯 포근했고, 유유히 떠 있는 하얀 고니들이 강 풍경을 화룡점정으로 꾸미고 있었다. 기우뚱거리며 얼음 위를 걷는 고니의 몸짓도 재미있었다. 서울에서 모임이 있었지만 나가지를 않았다. 버스와 지하철로 왕복 네댓 시간이 걸리는 이동 시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 나이 탓일 게다. 반면에 고니는 룰룰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러 간다. 겨울 고니는 나에게 고맙고 기특한 존재다. 별자리 중에 백조자리가 있다. 바람기 많은 제우스 신은 인간 여인을 유혹할 때 동물의 모습으로 변신을 했다. 제우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를 유혹하기 위해 변신한 것이 백조(고니)였다. 그들 둘 사이에서 난 자식이 쌍둥이자리의 카스..

사진속일상 2024.02.03

겨울 아침의 한강 윤슬

'윤슬'이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이라는 의미의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비슷한 말로는 '물비늘'이 있다. 인터넷에서 '윤슬'을 검색하면 연예인이 20명 가까이 나온다. 그만큼 예쁜 이름이라는 뜻이겠다. 겨울 아침의 한강에서는 아침 햇살을 받은 윤슬이 부드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렸지만 윤슬은 개의치 않고 영롱했다. 명멸하는 빛무늬가 강에 뜬 미리내처럼 보였다. 우리네 인생도 저 수많은 반짝임 중 하나가 아닐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은 한순간이며, 하물며 강물에 무슨 흔적인들 남길 수 있으랴. 해가 뜨든 말든, 윤슬이 반짝이든 말든, 무심한 강물은 유유히 흐를 뿐이다. 아서라, 선악이 무엇이며 애증이 무엇이란 말인가. 더구나 희망이란 것조차도.

사진속일상 2024.01.31

탄천의 저녁

분당의 바둑 모임이 끝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때가 해질녘이 아닌가. 발걸음은 자연스레 탄천으로 향했다. 이번주 초반의 강추위에 얼어붙었을 텐데 며칠간 날이 풀리더니 다 녹았는가 보다. 강물은 윤슬로 반짝였다. 겨울바람이 누그러진 탄천의 하늘은 고우면서 아늑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오고 나서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했다. 몸이 피곤했지만 마음도 일말의 저기압 상태에 빠졌다. 폐허가 된 앙코르 유적이 준 느낌이 귀국 후에도 남아있었던 것 같다. 인생살이의 덧없음이랄까, 뭐 그런 쓸쓸함과 우울한 감정에 잠겼던 탓이다. 문명의 흥망성쇄를 축소하면 개인에게도 그대로다. 살아 애지중지 추구하는 것들이 결국은 바람에 흩날리는 지푸라기와 같지 않은가.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 존재와 행위의 의미..

사진속일상 2024.01.28

씨엠립(6) - 반띠에이쓰레이, 반띠에이쌈레

씨엠립 북동쪽에 있는 이 두 유적은 차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한다. 유적에 어지간한 관심이 없으면 여기까지 찾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보석은 눈에 잘 안 띄게 숨겨져 있는 법이다. 반띠에이 쓰레이(Banteay Srei)는 10세기 후반 라젠드바라만 2세 때 세워졌다. 규모가 작지만 정교한 조각이 아기자기하면서 아름다운 여성적인 사원이다.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성소에 이르는데 가장 바깥 대문에서부터 섬세한 조각이 눈길을 당긴다. 문 상단에 코끼리를 타고 있는 인드라가 보인다. 성소로 향하는 참배로가 100여 미터 정도 뻗어 있다. 양쪽에 남아 있는 기둥으로 보아 원래는 회랑이 있었을 것이다. 참배로 옆에 있는 작은 건물 문 위에는 칼라가 선신을 잡아먹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성소에 들어가는 입..

사진속일상 2024.01.26

씨엠립(5) - 똔레삽

어제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강행군을 한 탓에 오늘 오전은 휴식이다. 늦잠을 푹 자고 아침 식사 전 숙소에서 가까운 공원을 가볍게 산책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서나 똑 같다. 거리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활기가 가득하다. 공원에서는 조깅이나 걷기를 하는 현지인의 발걸음이 상쾌하다. 이 모든 풍경을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감싼다. 물놀이하는 손주를 보며 풀장의 파라솔 아래에서 시간을 보냈다. 숙소 손님은 대부분이 서양인들이다. 가끔 호텔 식당에서 한국인을 만나는데 그때뿐이다. 낮에는 관광을 하느라 바쁠 것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낮에도 풀장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면서 쉬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긴 하다. 손에는 늘 책이 들려 있다. 그들한테서는 삶의 여유가 보인다. 반면에 우리는 ..

사진속일상 2024.01.25

씨엠립(4) - 앙코르와트, 쁘레아칸, 네악뽀안, 따솜, 이스트메본, 쁘레룹

앙코르 와트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다. 툭툭이를 타고 앙코르 와트 입구까지 가서 휴대폰 불빛을 의지해 일출을 보는 장소인 연못으로 향했다. 연못과 주변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앙코르 와트 일출은 너무 사람이 많이 모여 있어 분주하고 어수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경관이 떨어지더라도 사람이 적은 호젓한 곳을 고를 것이다. 사람들에 부대끼며 굳이 연못에 비치는 반영 앞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일출을 보고 그저께에 이어 다시 앙코르 와트에 입장했다. 일출을 본 사람들은 돌아가기도 하고 우리처럼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눈 앞에서는 서양인 단체 관광객이 지나가고 있었다. 서양인은 혼자나 둘씩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패키지로 오는 경우는 드문드문 눈에 띈..

사진속일상 2024.01.24

씨엠립(3)

사흘째는 쉬는 날로 잡았다. 오전에는 씨엠립 시내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머물며 휴식을 취했다. 손주는 숙소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다. 씨엠립(Siem Reap)은 캄보디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다른 무엇보다 앙코르 유적지가 곁에 있어 유명해졌다.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화려하고 활발한 도시다. 씨엠립은 '씨엠(태국)을 물리친 도시'라는 뜻이다. 시내 관광이라지만 특별히 갈 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숙소 가까이 있는 왕실정원에 들렀다. 왕실정원은 캄보디아 국왕 별장이 있는 도심 속 공원이다. 이 정원은 박쥐가 사는 나무가 있어 유명하다. 박쥐는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서 쉬고 있었다. 동굴 안의 어두컴컴한 곳이 아니라 햇빛 속에서 살아가는 박쥐가 신기했다. 정원에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사진속일상 2024.01.23

씨엠립(2) - 앙코르톰, 따프롬, 앙코르와트, 프놈바켕

앙코르 유적 입장권은 필요에 따라 1일권(37$), 3일권(62$), 7일권(72$)을 구입하면 된다. 유적 입장료가 캄보디아인은 무료지만 외국인한테는 비싼 편이다. 우리는 3일권을 끊었다. 열흘 동안에 아무 날이나 사흘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첫날은 앙코르 유적의 중심인 앙코르 톰, 따 프롬, 앙코르 와트, 프놈 바켕을 찾기로 했다. 한국어 가이드와 차량은 미리 예약해 두었다. 첫날만 가이드를 이용하고 나머지 날은 우리끼리 가이드북을 들고 찾아다닐 것이다. 앙코르 톰(Angkor Thom)은 12세기에 인도차이나를 지배하던 앙코르 제국의 수도였다. 당시에 무려 백 만명이 거주했다고 한다.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 남문으로 향한다. 다리 양쪽에는 54개의 신이 뱀 몸통을 잡고 있는 모습이 세워져..

사진속일상 2024.01.22

씨엠립(1)

앙코르 유적을 보기 위해 캄보디아 씨엠립에 6박7일 동안 다녀왔다. 아내와 둘째 딸, 손주와 함께 했다. 이번 해외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지 5년 만의 재개였다. 오랜만에 바다 밖으로 나가는 여행 준비를 하다 보니 기대가 없지 않았지만 귀찮고 부담도 되었다. 여행도 젊을 때 하라는 말이 실감이 되었다. 나이가 드니 아무래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앙코르 유적은 오래 전부터 가고 싶던 곳이었다. 그동안 한두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이제야 가족과 함께 가게 되었다. 씨엠립으로 결정된 것은 가족이 내 뜻을 받아주었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에서 5시간 30분이 걸려 '씨엠립 앙코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작년 10월에 문을 연 신공항으로 우리는 스카이 앙코르 항공을 이용했다...

사진속일상 2024.01.21

흐린 겨울 하늘

연말연시 내내 흐린 하늘이다. 올해의 새해 첫날 일출도 영 시원찮았던 모양이다. 이왕이면 멋진 해돋이와 함께 한 해를 시작하면 좋으련만, 겨울 하늘은 심술을 부리는 듯 잔뜩 찌푸려 있다. 나라 안팎 사정도 이런 날씨를 닮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게 보인다. 2024년은 여느 연초와 달리 기대보다는 걱정과 우려로 시작하는 해다. 운동화를 챙겨 신고 경안천에 나갔다. 겨울이 되면 아무래도 몸을 덜 움직이니 운동 부족이 되기 십상이다. 걷기 위해 밖에 나가는 것이 몇 주 만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날씨는 누긋하다. 구름이 감싸주는 탓인지 요사이는 밤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짙은 구름 사이로 잠깐 해가 보이는 순간이 있었다. 경안천에는 사시사철..

사진속일상 2024.01.02

올해 마지막 당구

올해만큼 당구에 집중해 본 때가 없었다. 그동안은 심심풀이로 치는 당구였다. 그런데 올봄에 불현듯 당구 실력이 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책을 사서 읽고 유튜브 당구 강좌를 보며 공부했다. 당구 모임에도 열심히 참가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당구를 치자고 졸랐다. 당구 치는 횟수가 몇 배로 늘어났다. 노력하면 일취월장할 것 같았다. 가을이 되면서 벽에 부딪쳤다. 예상한 만큼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었다. 어느 공놀이든 자신 있다고 여겼는데 당구는 아니었다. 당구가 얼마나 섬세하고 어려운지를 실감한 거다. 소질이 없는지, 아니면 나이 탓인지 진척이 없으니 스트레스만 받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겨울에 들면서 당구 공부를 포기했다. 못 치더라도 즐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어제는 올해의 마지막 당구 모임에 참석..

사진속일상 2023.12.29

평화로운 백조의 호수

지난 한파에 경안천이 얼었다. 다행히 일부 얼지 않은 데가 있어 고니와 기러기가 모여 노니는 운동장이 되었다. 백조(고니)의 호수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으며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한다. 경안천의 새들은 백과 흑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간다. 고니는 고니대로, 기러기는 기러기대로, 함께 있되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내 땅이니 나가라고 폭력을 쓰지도 않는다. 낮 동안에는 대부분이 쉬거나 유유히 헤엄 치며 보낸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 인간도 새처럼 가볍게 살 수는 없는지, 잠깐만이라도 너희와 동류가 되어 덕지덕지 쌓인 인간의 때를 벗어버리고 싶구나.

사진속일상 2023.12.27

화이트 크리스마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이 오전까지 이어지며 지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일주일 넘게 움츠리게 만든 한파도 물러가고 포근한 성탄절이다.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성탄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사야서의 성탄 예언을 적어 보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친구에게 더욱 애틋하며 간절한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세상의 연약하고 버림 받고 힘없는 존재들이 따스하게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상처 입은 선한 마음도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흰 눈이 세상을 순일하게 감싸주듯, 안팎의 소란이 잠들고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속일상 2023.12.25

경안천 고니(2023/12/18)

아침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다. 오전에 경안천에 나갔을 때도 영하 10도 안팎을 오르내렸다. 강추위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의 위세가 거셀 전망이다. 경안천은 가장자리에서부터 얼기 시작하고 있다. 고니와 기러기들은 몸을 움츠린 채 정지 상태다.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과 장난치는 녀석들도 일부 있다. 시베리아에서 내려왔으니 이 정도 추위는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고니와 기러기가 함께 어울려 지내는 모습이 평화로웠다. 얘들은 자기들 영역을 지키느라 싸우지 않는다. 또한 먹이를 가지고도 다투지 않는다. 날개를 펴면 다 내 하늘 내 땅인데 더 챙길 게 뭐가 있겠는가. 많이 소유하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높이 날 수가 없다. 새들을 보면서 마태오복음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하늘의 새들을..

사진속일상 2023.12.18

겨울비에 젖는 경안천

어제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밤에 잠을 깼더니 양철 환기통으로 조잘거리며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가 정겨웠다. 한밤에도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리는 겨울이다. 하지만 이도 잠시일 뿐, 오늘 저녁부터는 기온이 떨어지고 밤에는 눈으로 변한다는 예보다. 경안천 둑에 서니 강변 풍경이 희뿌옇게 젖어 있다. 사선으로 긋는 빗줄기는 바지 아랫부분을 축축하게 적신다. 경안천에 나온 것은 고니가 얼마큼 와 있는지 궁금해서였다. 고니는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상당한 숫자가 모여 있었다. 둑 위에는 늘 고니를 찍으려는 사진사들이 많은데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경안천 주변 도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우중 드라이브를 즐겼다. 빗줄기를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기분은 드라이브의 백미다. 음악도 끄고 하늘에서 내려와 대지와 차체..

사진속일상 2023.12.15

물빛공원 반영

롯데백화점 건대스타시티점에 있는 한 식당에서 점심 모임이 있었다. 전 같으면 서울 나가는 데 당연히 대중교통을 이용했겠지만 요사이는 자가용을 끌고 나갈까 말까를 고민한다. 편하게 다녀오기 위해서는 자가용이 훨씬 낫다. 이번에도 유혹에 넘어가 결국은 자동차 키를 꺼내 들었다. 편한 게 선택의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은 늙었다는 징후 중 하나다. 대중교통이 있는데 굳이 자가용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지구 환경은 생각하지 않은 채 제 한 몸 편하자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난했었다. 세상은 돌고 도는가, 그런 손가락질을 이제는 내가 받게 되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라고 불편해지는 마음을 외면할 정도로 철면피가 되어 가는 나를 본다.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물빛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호수 반영이 실..

사진속일상 2023.12.14

탑골공원과 익선동 모임

종로3가에서 모임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부터 밖의 거리까지 온통 노인 천지였다. 탑골공원과 종묘 앞 광장, 송해 거리 등 이곳은 노인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다. 홍대나 강남이 젊은이의 거리라면 종로3가 주변은 노인의 거리다. 전과 달리 이제는 나도 같은 노인 무리에 섞여 걷고 있다. 동류의 노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했다. 약속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하게 되어 탑골공원에 들어가 보았다. 원각사지 10층석탑을 보고 싶어서였다. 이곳은 원각사(圓覺寺)가 있던 곳으로, 조선 세조 13년(1467)에 이 석탑을 만들었다. 아마 왕실의 번영을 위한 염원이 들어갔으리라. 고등학생 때 처음 찾았던 탑골공원(그때는 파고다공원이었음)에서 제일 인상적인 것이 이 10층석탑이었다. 절에서 만나는 일반..

사진속일상 2023.12.09

어머니에게 다녀오다

어머니 표정이 어두웠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방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이틀 전에 꾼 꿈 때문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타나서 어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더라는 것이었다. 꿈에서는 이심전심으로 느껴지니까. "나 금방 갈 께요" 하니 외할머니는 아무 대꾸 없이 등을 돌리고 걸어갔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곧 죽을 것 같다." 어머니는 수심이 가득하셨다. "그건 아직 갈 때가 안 됐다는 뜻이에요. 외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서 오라고 해야 데려가는 거지요. 외면하며 뒤돌아서 갔잖아요." 내 말에 어머니는 미심쩍어하면서도 다소 안도하셨다. "빨리 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망설이며 주춤한다. 생(生)에의 본능이 그만큼 질긴 것이리라. 나는 안다. 지금 같은 어머니 건강 상태라..

사진속일상 2023.12.07

첫눈(2023/11/29)

지지난주에 눈이랍시고 살짝 보이긴 했다. 그러나 워낙 찔끔 내리고 땅에 흔적도 남기지 않아 첫눈이라고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늘 낮에는 가랑비가 내리더니 저녁이 되면서 눈으로 변했다. 이 역시 영상의 기온 탓에 바닥에 쌓이지는 못하고 금방 녹았다. 밖에 나가 첫눈을 맞아보려고 옷을 갈아입었더니 눈은 사그라들며 이내 그치고 말았다. 집에서 창문으로 바라본 올해 첫눈이었다.

사진속일상 2023.11.29

찬 강바람을 맞다

한강변에 서니 늦가을 바람이 차가웠다.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옷차림이어서 냉기가 살갗으로 스며들었다. 더 차가운 바람을 맞은들 불평이 나올 수는 없었다. 나태해진 정신을 일깨우는 데 이 정도의 찬바람으로는 어림없을 터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오전의 습지생태공원은 고즈넉했다. 고니가 와 있지 않을까 살폈으나 경안천은 텅 비어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한강으로 나가 더 거세진 바람을 맞았다. 멀리 강 건너 운길산 8부 능선쯤에 있는 수종사가 보였다. 아뿔싸, 오늘 같은 기분이라면 수종사에 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시원한 눈맛을 즐겼으면 좋았겠다는 늦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어제는 감정의 과잉 상태였다. '인간 혐오'라는 말이 부지불식간에 튀어 나왔다. '통화 거절'로 읽히는 메시지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사진속일상 2023.11.28

과수원의 노란 손수건

"방에서 꼼짝 않는 사람이 어쩐 일이람." 아내가 반색하며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 아침 하늘이 좋아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가 보인 반응이었다. 뜻하지 않게 연이틀 바깥출입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복숭아 과수원이 많다. 수확은 오래 전에 끝났지만 복숭아를 쌌던 봉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멀리서 보면 노란 손수건을 걸어 놓은 것 같다.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이 담긴 'Going Home'의 사연이 바로 노란 손수건이다. 보기 흉할 수 있는 비닐봉지가 간절한 표징으로 변했다. 사연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누굴 기다리는 간절함일까 과수원 가득 걸어놓은 노란 손수건" 동네 걷기에는 여러 코스가 있다. 오늘은 뒷산을 넘어 중대동으로 넘어..

사진속일상 2023.11.21

잎 떨군 자작나무

자주 다니는 나지막한 뒷산에서 길을 잃었다. 자작나무를 보러 가는 길이었는데 귀신에 홀리듯 진입로를 착각한 것이었다. 눈에 익은 데서도 이럴진대 큰 산이라면 어떠하겠는가. 늙어 총기가 흐려진다는 걸 산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뒷산에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있다. 주 등산로에서 벗어난 3부 능선쯤에서 자란다. 수령이 오래 되지 않아서 감탄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이서 자작나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나는 자작나무를 좋아해서 밤골 생활을 할 때는 집 뒤에 자작나무를 10그루 정도 열을 맞춰 심었다. 오류선생(五柳先生) 도연명의 흉내를 내 본 것이다. 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되돌아갈 수 없게 많이 내려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아랫마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제대로 된 길로 올라가..

사진속일상 2023.11.20

늦가을의 서울식물원

모임이 있는 마곡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전철 정거장까지 한 시간가량 걸은 것을 포함하면 총 세 시간이 걸렸다. 전철은 경강선, 신분당선, 9호선을 타야 했다. 그렇게 지하에 있는 동안 살짝 눈이 뿌렸던 모양이다. 첫눈을 맞았다고 들뜬 사람이 있었다. 지상으로 나왔을 때 눈은 다 녹았고, 보도는 물기만 젖어 있었다. 이걸 첫눈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환담을 나누고, 그리고 늦가을의 서울식물원을 돌아보았다. 개원한 지 4년이 되었지만 처음 와 본 식물원이었다. 식물원이기보다는 잘 꾸며진 도시공원이었고,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과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식물원의 중심 시설은 대형 온실이다. 이곳에서는 지중해와 열대 지방에 위치한 세계 12개 도시 식물과 식물 문..

사진속일상 2023.11.18

경안천 억새와 올해 첫 고니

이맘때 경안천은 하얀 억새밭으로 바뀐다. 매년 그 넓이가 확장되어 천을 따라 수 km에 걸쳐 뻗어 있다. 혼자 보기에는 아까운 풍경이다. 여기는 대부분이 억새이고 일부 갈대가 섞여 있다. 역광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억새를 보며 가을의 정취에 빠져든다. 억새는 살을 베이는 소리를 내며 가을바람에 흔들린다. 겉은 눈부시게 보일지라도 이면에는 어느 생명이나 속울음이 있는 것이다. 배낭을 맨 외국인 한 쌍이 옆을 지나간다. 여자가 짧게 뭐라고 말하니까 남자가 팔로 어깨를 감싸준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바람이 차다고 했을지 모른다. 사람의 온기가 자꾸 그리워질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 첫 고니 가족을 만났다. 색깔로 보아 부모에 자식 넷으로 보인다. 이 가족을 뒤따라 많은 고니가 우리 땅에 찾아올 것이다. 내..

사진속일상 2023.11.11

텃밭 가을걷이와 김장

텃밭의 가을걷이를 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가 있어 서둘렀다. 조그만 땅뙈기에서 나오는 산물이라 규모가 아담했다. 배추 20 포기, 무 30여 개를 비롯해 고추, 가지, 파, 상추, 호박 등 여러 채소를 거두었다. 고추와 상추는 앞으로도 더 따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되돌아보면 올해만큼 텃밭 덕을 톡톡이 본 해도 없었다. 우리 식탁은 대부분 텃밭에서 나는 남새로 차려졌다. 덕분에 야채값이 너무 비싸졌다는 불평은 우리와는 무관했다. 텃밭의 효용이라면 기르는 재미를 제일로 봤는데, 건강하고 풍성한 먹을거리를 무한 공급해주는 현실적인 이득이 올해는 앞섰다. 땅을 기꺼이 빌려준 이웃분에게 감사한다. 아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김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빠른 셈이다. 나는 말없이 조수 역할에..

사진속일상 2023.11.08

어머니와 닷새를 지내다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닷새를 함께 지냈다. 어머니가 거처하시는 방은 저녁에 군불을 넣으면 밤 동안은 찜질방이 된다. 몸을 굽는 데는 최고다. 어머니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도 이 구들장 있는 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닷새 동안 뜨듯한 아랫목 덕을 톡톡이 보았다. 시골에서 부엌일은 내 몫이다. 어머니가 쌀을 안쳐주면 식사나 후식 준비, 설거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먹을거리는 대부분 준비해서 내려간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여느 때보다 식사를 잘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마련한 음식을 식구들이 잘 먹어줄 때의 주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부지런함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장수를 하시는지 모른다. 반면에 나는 게으름뱅이다. 몸을 움..

사진속일상 202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