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0

밍밍한 걷기

하루의 감정 상태는 일기(日氣)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요 며칠 동안 잔뜩 흐린 채 간간이 비가 뿌리는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왕 내리는 비라면 시원하게 뿌렸으면 좋으련만 전립선 걸린 중년 남자의 오줌발처럼 찔끔거린다. 경안천으로 걷기에 나서보지만 우중충한 하늘 아래서 마음만 개이길 바랄 수 있겠는가. 밍밍하면서 기계적인 걷기다. 이런 마음이라면 발 옆에 핀 꽃에도 눈길을 주지 못한다. 맹물에 식은 밥을 말아먹는 맛이다. 된장에 매콤한 고추라도 마련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안팎이 다 시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우울하다. 가끔 이럴 때가 있다. 공원의 약 올리듯 선명한 초록 잔디를 보며 중얼거린다. 뭐,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밍밍한 맛도 때론 별미가 될 수 있..

사진속일상 2023.08.25

여름 하늘

염제(炎帝)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졌다. 한낮 땡볕 가운데를 걸어도 긴 시간이 아니라면 즐길 만하다. 집 에어컨도 이제 한철 소명이 끝났다. 대신 선풍기 도움은 당분간 받아야겠지. 여름 하늘이 아름답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뭉게구름이 떠 간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풍경만 바라봐도 지리할 수가 없다. 길을 걸으면서 연신 하늘로 고개를 쳐든다. 그때마다 하늘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변화무쌍한 청(靑)과 백(白)의 그림판이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열렸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아이들은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고함치며 뛰놀았다. 청과 백으로 나눈 것이 하늘에서 따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렇지만 하늘은 누가 누굴 이기는 마당이 아니다. 청과 백이 어울리는 조화의 세계다. 지..

사진속일상 2023.08.18

태풍 지난 뒤 경안천

태풍 카눈이 얌전하게 지나갔다. 한반도에 들어온 뒤에는 세력이 약해져서 우리 고장을 관통했건만 태풍이라는 실감을 하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가 갑자기 시동이 꺼져버린 자동차 같은 모양새였다. 대신 태풍이 남긴 구름이 이틀째까지 사라지지 않으면서 가는 비가 오락가락했다. 우산을 들고 오랜만에 경안천에 나갔다. 그래도 천변의 낮은 길은 물에 잠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안천의 지류인 직리천에서는 궂은 날씨지만 아이를 데리고 산책 나온 부부가 보였다. 어머니 손에는 곤충 채집망이 들려 있다. 우리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여름방학이면 곤충/식물 채집 숙제가 있었다. 방학책 표지에는 으레껏 채집망을 어깨에 걸친 아이들 그림이 나왔다. 지금 돌아보면 생명의 소중함을 깨우치려는 의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

사진속일상 2023.08.13

도서관에 다녀오는 길

더위를 피해 오전 일찍 도서관에 다녀오다. 도서관은 청량한 매미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실내는 냉방이 잘 되어 엄청 쾌적하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사람들도 드문드문이고 한적하다. 피서 장소로 이만한 곳이 없다. 그러나 나는 책을 빌린 뒤 이내 나온다. 아무래도 집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매미 소리에 끌려 나무 사이를 살피니 매미 한 마리 한창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중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위협을 느꼈는지 노래를 멈춘다. 얼른 사진만 찍고 자리를 피해주다. 더워서 그런지 밖에 나선 사람들이 적다. 요사이 우리 고장의 낮 최고 기온은 33도 정도다. 저녁이 되면 28도 아래로 떨어진다. 아마 도시 한가운데라면 열기가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교외 지역에 사는 장점 중 하나다. 오가는 길에 배롱나무꽃이 불붙..

사진속일상 2023.08.06

텃밭 허수아비

이웃 텃밭에서 허수아비가 망을 보고 있다. 하늘을 보면서 싱긋 웃는 모습에서 노래하는 송창식이 떠오른다. '참새의 하루' 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바람이 부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오늘도 허수아비 뽐을 내며 깡통 소리 울려대겠지" 요사이 새들이 허수아비를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친구로 여기지 않을까. 하도 별스런 일들이 자주 생기는 세상이니 허수아비와 새가 동무가 된다 한들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 같다. 소년 시절의 풍경 하나가 떠오른다. 곡식이 익어가는 철이 되면 아이들은 논으로 양철통을 들고 나갔다. 여무는 벼 낟알을 먹기 위해 몰려다니는 참새떼를 쫓기 위해서였다. 허수아비로는 참새를 막는데 역부족이었다. 양철통을 북처럼 두드리고 고함을 지르면 논에 내려앉았다가도 부리나케 도망갔다. 동네..

사진속일상 2023.08.04

당구 혀?

지인과 통화할 때면 늘 물어보는 말이 있다. "당구 혀?" 그렇다는 답이 돌아오면 무척 반갑다. 선뜻 장소와 시간 약속을 잡는다. 어제도 5년 만에 한 친구와 만났다. 며칠 전 통화를 하다가 당구를 한다는 얘기에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한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다음에 보자, 라고 하면서 미루었을 게 분명하다. 당구가 아니었으면 언제 볼지 기약이 없었으리라. 요사이 당구 공부에 빠져 있다. 당구 책도 샀다. 좀 더 잘 치고 싶은 욕구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예전에 바둑 공부할 때는 바둑책 수십 권을 봤다. 그에 비하면 당구는 이제 시작한 셈이다. 너무 앞서나가려는 마음은 자제시켜야 마땅하리라. 목표가 있으면 의욕과 활력이 생기지만, 대신에 스트레스도 받게 된다. 알고 보..

사진속일상 2023.08.01

텃밭의 선물

이즈음 텃밭이 주는 선물은 고추, 가지, 호박, 상추, 토마토 등이다. 아내는 매일 이른 아침에 텃밭에 나가서 무언가를 들고 온다. 덕분에 아침 식탁이 초록으로 싱싱하다. 그중에서도 제일 감사하며 먹는 것이 토마토다. 밭에서 바로 따온 토마토의 맛은 시장에서 사는 것과는 비교될 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게 한 가지 있다. 토마토에 발간 색깔이 돌기 시작하면 새가 먼저 와서 시식한다. 농숙하기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익기 전에 미리 따 와서 하루 정도 집에 두어야 한다. 맛있는 걸 누가 먼저 먹나, 새와 시합하는 것 같다. 선조들은 날짐승을 위해 까치밥을 남겨뒀다. 나도 토마토 한 포기 정도는 그들의 먹이로 제공할 생각이 있다. 그런데 새들은 무차별적으로 쪼아버린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협상을 할 수도 ..

사진속일상 2023.07.28

말죽거리의 저녁

양재동 말죽거리에서 저녁 모임이 있었다. 말죽거리 골목을 걸으며 아련한 옛 추억 하나를 소환했다. 50년 전 이곳에 찾아왔던 기억의 조각들이 단속적으로 스쳐갔다. 1972년이나 1973년이었을 것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N 선교회 멤버들과 같이 농촌 봉사 겸 전도를 왔었다. 예닐곱 명의 일행은 버스를 타고 제3한강교를 건너 말죽거리에 내렸다. 그리고 한 시간 남짓 걸어서 어느 시골 마을 앞에 텐트를 쳤다. 냇가 옆이었는데 아마 양재천이었던 것 같다. 낮에는 농촌 일을 도우면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치며 전도를 하고, 밤에는 성경 공부를 했다. 닷새 정도 머물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지금은 서울 강남 지역이 되어서 천지개벽을 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진다. 당시 말죽거리에 ..

사진속일상 2023.07.21

장맛비 속 고향에 다녀오다

올 장마는 성질이 사납다. 마치 인간에 대해 화풀이를 하려는 것 같다. 고향 동네에도 산사태가 나서 여러 군데 피해를 입고 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현대의 자연재해는 인과응보적 경향이 크다. 자연 훼손과 무분별한 삶에 대한 셈값을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고향에 있는 나흘 동안 내내 비가 내렸다. 지금 장마전선은 충청도와 경상도 지역에 머물며 강한 비를 뿌리고 있다. 며칠째 꼼짝을 안 하고 있어 애를 태운다. 고향 마을도 집중호우대에 들어가 있다. 한 주 전에는 고향에 하룻밤새 200mm의 폭우가 퍼부었다. 여러 군데 산사태가 생겼고, 우리 산소도 허물어졌다. 마침 내려가 있던 여동생이 임시 땜질을 했다. 장마가 그쳐야 제대로 보수를 할 수 있을 것..

사진속일상 2023.07.15

탄천의 여름 저녁

분당에서 셋이 만나 네댓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니 저녁 무렵이었다. 그냥 들어가기가 아쉬워 탄천에 나가서 산책로를 걸었다. 야탑에서 정자까지 약 6km 되는 거리였다. 장마철이라 공기는 꿉꿉했고, 구름이 드리운 하늘은 매직아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걷다가 우연히 너구리를 만났다. 도심 하천에서 너구리를 만날 줄이야. 숲에서 살아야 할 녀석이 어찌 인간의 마을 속으로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저들의 서식지가 파괴되어 쫓겨나듯 피난 온 것일까, 아니면 먹이를 찾아 여기까지 내려온 것일까. 지난 코로나의 경험으로 보건대 야생동물과 인간의 접촉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앞으로 환경 파괴가 가속화되면 더욱 불가피한 일이 될지 모른다. 너구리 하면 1980년대에 삼미에서 활약했던 장명부 선수가 떠오른다..

사진속일상 2023.07.09

당구와 바둑

노년에 들어서 취미는 당구와 바둑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요사이는 당구에 열중이다. 전에는 술 한 잔 걸치고 심심풀이로 하는 당구였다면 이제는 맨정신으로 제대로 쳐보려 한다. 금주가 준 효과다. 쓰리 쿠션 시스템은 어느 정도 머리에 입력시켰는데 문제는 스트로크다. 모든 운동이 마찬가지겠지만 당구 역시 기본 자세가 중요함을 절감한다. 고수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려 해도 손놀림은 옛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교정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G는 당구와 바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둘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 기원과 당구장을 왕래하며 논다. 실력이 서로 비등하니 재미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G가 한 뼘 정도 앞서 있다. 승률은 대체로 G가 나은 편이다. 이제 당구에서는 G를 추월하기..

사진속일상 2023.07.03

콩을 까다

텃밭에서 콩 일부를 수확해 왔다. 겉으로 봐서는 시원찮았는데 까 보니 열매는 그런대로 튼실했다. 앞으로 한참 동안 밥에 앉혀 먹을 수 있겠다. 콩을 까는 단순 작업도 재미있었다. 콩깍지를 살짝만 비틀어도 접시에 또로로 떨어지는 콩알들이 귀여웠다. 이 정도라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거리다. 요사이는 텃밭의 혜택을 담뿍 받고 있다. 아내는 잠에서 깨자마자 댓바람에 텃밭에 나가서 여러가지를 거두어 온다. 상추, 쑥갓, 오이, 고추는 단골 작물이다. 막 뜯어온 야채로 차려진 식탁은 싱싱하다. 시장에서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텃밭이 주는 일상의 행복이라 할 수 있다.

사진속일상 2023.07.02

장마 시작된 전주천

장모님 생신을 맞아 처가쪽 형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장마가 시작된 날과 겹쳐서 사흘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비가 소강상태일 때 전주천변 길을 걸었다. 둔치에는 6월의 코스모스 꽃밭이 있었다. 이미 한창이 지난 듯 꽃씨를 받는 사람도 보였다. 전에는 코스모스가 가을의 전령사라 했는데 이젠 옛말이 되었다. 전주천의 여름은 기생초와 개망초꽃으로 환했다. 군데군데 루드베키아가 화려한 치장술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말로는 원추천인국이다. 이 꽃을 보면 여름이 깊어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꽃이 피면 시들듯 인간이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다가올 죽음을 예견하며 온갖 근심 걱정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발버둥친들 피고짐을 어찌 막을 수 있으랴. 하물며 어떤 꽃은 개구쟁이의 손에 꺾여서 버려지기도 한..

사진속일상 2023.06.27

당남리섬을 산책하고 천서리 막국수를 맛보다

아침에 처가 쪽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아내와 같이 외출을 했다. 멀리 나가지는 못하고 여주 당남리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을 하고 천서리 막국수로 점심을 했다. 기온이 33℃까지 올라간 땡볕 속이었다. 당남리섬은 청보리는 때가 지나 모두 베어졌고, 수레국화 꽃밭도 대부분 꽃이 지고 씨를 맺고 있었다. 개망초, 금계국, 메밀꽃이 그나마 한창이었다. 멀리 남한강 이포보가 보인다. 볕이 따가워 쉼터에서 자주 쉬어야 했다. 사람들 살아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인간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데 공감을 했다.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돼 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백 년의 수를 누리면서 호의호식하는 악인도 있다. 세상은 선악의 결과가 공평하게 구현되는 곳이 아니다. 천도(天..

사진속일상 2023.06.19

셋이서 강릉 1박2일(2)

B가 전세로 얻은 숙소는 강릉 시내에 있는 10평형대의 소형 아파트다. 상시 거주하는 것은 아니고 쉬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와서 지낸다고 한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도 이런 집 하나 가져볼까,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음만 맞는다면 두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경비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둘째 날은 먼저 허난설헌 생가에 들렀다. 여기서는 언제나처럼 생가 주변의 솔숲이 제일 마음에 든다. 솔향을 맡으며 미인송 사이로 아침 산책을 즐겼다. 난설헌의 묘가 우리 고장에 있어서 더욱 애정이 가는 여인이다. 만날 때마다 애잔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허난설헌기념관을 둘러보다가 한 액자에 이름을 '虛'난설헌이라고 잘못 적은 걸 보고 실소했다. 이런 무신경을 어찌 할꼬. 다시 바닷가를 찾았다...

사진속일상 2023.06.14

셋이서 강릉 1박2일(1)

콧구멍에 바닷바람을 쐬러 가자는 제안에 셋이서 길을 나섰다. 마침 B가 강릉에 마련해 둔 작은 아파트가 있어서 숙소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구름 많고 바람 선선한 초여름의 한 날이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점심은 강릉 초당순두부를 맛봤다. 초당순두부 맛이 예전 같지 않다고 근래에는 찾지 않았는데 이번에 B가 추천한 '차현희순두부청국장'은 그런 선입견을 불식해줬다. 다음에는 청국장 맛도 보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먼저 강문해변에 들렀다. 강문해변은 작은 천을 경계로 경포해변과 나란한 곳이다. 강문해변과 송정해변은 아름다운 솔숲길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길을 보면 걷지 않을 수가 없다. 경포해변, 강문해변, 송정해변, 안목해변으로 이어지는 푸른 바다와 백사장, 송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멋진 풍경..

사진속일상 2023.06.14

일자, 고덕산 둘레길을 걷다

일자산, 고덕산 둘레길은 서울 둘레길 3코스의 일부다. 용두회 여섯 명이 이 길을 걸었다. 7년 전에 같은 모임에서 서울 둘레길 전 코스를 걸었었는데 그때와는 역방향이지만 완전히 처음 걷는 길처럼 새로웠다. 길이야 얼마나 달라졌겠느냐만 인간의 기억이란 게 대부분 아침 안개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스러지기 때문이리라. 이번 길에서는 일자산공원에 있는 미루나무/포플러에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미루나무만 보면 곧장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그때는 신작로 가로수가 미루나무였다. 길 양쪽에 두 줄로 도열하듯 늘어선 키다리 미루나무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 미루나무는 동네 앞을 흐르는 냇가를 따라서 자랐고, 저수지 둑방에도 있었다.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고향이 서운한 것은 미루나무의 부재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진속일상 2023.06.08

신현회 셋이 부용산을 걷다

코로나 이후로 첫 만남이니 거의 4년 만이다. 신원역에서 다섯 명이 만나기로 했으나 실제 나온 사람은 셋이었다. 한 사람은 아침에 갑자기 불가피한 일이 생겼고, 다른 한 사람은 여름에 산에 오르기가 망설여졌는가 보다. 점심 자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부용산에 오르기 위해서 몽양기념관을 지난다. 작년에 공사를 시작하더니 왼편에 번듯한 새 건물이 자리 잡았다. 바로 산을 타지 않고 신원리 마을길로 들어선다. 과거 인연이 있는 분의 집에 들리기 위해서다. 정원을 잘 가꾸어놓은 집이다. 노쇠한 어머니 대신 지금은 아들이 거주하면서 관리한다. 구름 끼어서 덥지 않고 바람 시원한 날이었다. 대신 하계산 전망대에서 보이는 양수리는 선명하지 못했다. 6월의 녹음 속을 걷는다. 부드러운 전나무 숲길이 콧노래라도 나올 듯 ..

사진속일상 2023.06.07

한강회의 영주 나들이

한강회 네 명이 1년 만에 만나서 영주 나들이에 나섰다. 부석사와 무섬마을에 가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향이랍시고 내가 안내하는 꼴이 되었다. 9시에 곤지암역에서 합류하여 소머리국밥으로 아침을 먹고 먼저 무섬마을로 향했다. 나로서는 영주댐이 완공되고 나서는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댐이 영향이 어떤지 궁금했다. 모래사장은 변함이 없었으나 물은 많이 탁해 보였다. 사람들이 무섬마을을 찾는 이유는 이 외나무다리를 건너보기 위해서다. 외나무다리는 아련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일깨워준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무섬마을은 이 외나무다리를 이용해 외부와 연결되었다. 내성천 모래사장은 정말 아름답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는 풍경이다. '무섬'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

사진속일상 2023.05.31

지주를 세우고 잡초를 뽑다

이틀간 넉넉하게 비가 내려 텃밭 작물이 생기를 찾았다. 미루어 온 지주 세우기와 잡초 제거 작업을 했다. 상추, 겨자 등 야채는 두 주 전부터 식탁에 올라 입맛을 돋우고 있다. 고추, 오이 등도 작은 열매가 맺힌다. 아내는 나중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처음 나오는 오이는 따내 버린다. 올해 제일 풍성한 건 콩이다. 이것도 일이랍시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콩 고랑을 멜 때 한 노랫가사가 생각났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감히 투덜대거나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지 못하겠다. 허리가 아파도 가능하면 오래 버티려 했다. 옛 아낙네에 비하면 내 동작은 일이 아니라 유희인 것이다. 어쨌든 땀을 흘리고 나니 말끔해진 텃밭만큼 마음도 개운해졌다. 내 몸 조금..

사진속일상 2023.05.29

장어로 보신하고 공원을 걷다

아내가 몸살(?)을 앓은 뒤끝이라 몸보신을 하러 장어집에 갔다. 큰 것과 중간 것, 두 마리를 시켜서 한껏 먹었다(8만 원). 오랜만의 장어 기름이 속에 부담이 되었는지 저녁에 같이 설사가 나와서 실소를 했다. 이래서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먹는가 보다. 봄에 들면서 식사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 지난겨울은 입맛이 없고 조금만 많이 먹어도 위에 부담이 돼서 소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식 소동(小食 小動)'의 생활이었다. 다행히 봄이 되면서 입맛이 돌아오고 위장도 괜찮아졌다. 덕분에 좀 더 활기차졌다. 식사 후 물빛공원을 찾아서 두 바퀴를 돌았다. 황사가 끼었지만 산책하기에는 무난한 낮이었다. 풍성하진 않아도 아담한 장미 터널이 있고, 물빛버즘도 공작 날개처럼 초록잎을 펼치고 있었다. 이즈음의 나..

사진속일상 2023.05.23

신안 여행(3)

셋째 날, 볼일이 있는 처제네는 아침 식사 후 장모님을 모시고 일찍 집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퍼플섬을 구경하고 올라가기로 했다. 먼저 숙소 가까이 있는 '천사섬 분재공원'에 들렀다. 이 공원은 압해도 송공산 남쪽 기슭 5만 평 부지에 조성되어 있다. 명품 분재와 수목, 조각상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공원의 중심은 애기동백숲이다. 겨울에 애기동백이 필 때 와야 공원의 진가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온실에서는 이 주목나무가 눈길을 끌었다. 물경 1,500살이나 되었다고 한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자태가 웅장하다. 그러면서 잎이 달린 가지는 싱싱하고 균형 잡혀 있다. 옆 온실에는 2,000살 된 주목도 있는데 개방을 하지 않아 멀리서 흐릿하게만 봤다. 이어서 퍼플섬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안좌도로 갔다. ..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2)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가만히 숙소 앞 바닷가에 나갔다. 하루도 안 지났지만 벌써 이런 풍경에 익숙해져 있다.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이것저것 기웃거리며 느릿느릿 걸었다. 이곳 신안 압해도 송공리 바다는 김 양식과 낙지잡이가 주업인 것 같다. 갯벌 낙지 맨손 어업이 국가 중요 어업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압해도(壓海島)는 신안에서 제일 큰 섬이라는데 무식하게도 신안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바닷가에는 압해도를 사랑한 노향림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인은 가난한 유년기를 보낼 때 목포에서 건너다 보이는 압해도가 무한한 위로가 되어 주었다고 한다. 시인은 수십 편의 압해도 연작시를 지었다. 섬진강을 지나 영산강 지나서 가자 친구여 서해 바다 그 푸른 꿈 지나 언제나 그리..

사진속일상 2023.05.18

신안 여행(1)

처제 부부와 함께 장모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계획과 어긋났다.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긴 했으나 엉뚱하게 두 팀으로 나누어 따로 다니게 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생길 수 있고, 상황에 맞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신안에 들어가는 길에 목포에 들러 해상케이블카를 탔다. 북항승강장에서 탑승하여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코스다. 목포 해상케이블카는 2019년에 개통되었고 길이는 3.2km다. 케이블카에서 보니 고하도 둘레로 해상데크 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섬 가운데 있는 것은 전망대인 것 같다. 다음에 시간 여유를 가지고 목포에 온다면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 유달산승강장에서 내리면 유달산 정상에도 다녀올 수 있다. 30분 정도 일등봉까지 오가는 산길을..

사진속일상 2023.05.18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어버이날에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버이날이면 동네에서 노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졌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봉사를 할 중년층이 사라진 탓일 게다. 이미 마을 주민의 9할 이상이 70대가 되어 있다. 저녁 식사를 하고 해 질 즈음에 마을 주변 산책에 나섰다. 매직 아워의 전원 풍경이 평화로웠다. 다음날은 밭에 나가 잠시나마 어머니 일손을 도와 드렸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밭일이 아니면 생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시는 것 같다. 삶을 지배하는 관성의 무서움이다. 힘들다 하면서도 밭은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다. 나도 꼼꼼한 편이지만 어머니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여러 해 전부터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올해 역시 깨 농사를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3.05.10

고추와 토마토를 심다

연 이틀 반가운 비가 내리고 있다. 남부 지방에는 100mm가 넘는 강수량으로 가뭄 해소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중부 지방도 넉넉하지는 않지만 이만하면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비다. 어제는 잠시 비가 가늘어진 사이에 텃밭에 나가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를 심었다. 지난달에 심은 감자, 콩, 상추, 호박에 이어 두 번째로 심은 작물이다. 고구마 모종은 늦게 구하는 통에 오후에 비가 그치면 심으려 한다. 텃밭도 몇 해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처음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내가 심은 작물이 자라나는 걸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어서 밖에 나갈 때면 일부러 걸음을 해서 찾아보곤 한다. 농부와 작물 사이에 정서적 교감이 있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초든 텃밭의 작물이든 반려식물이라고..

사진속일상 2023.05.06

맑고 바람 좋은 날

노동절 연휴의 끝, 맑고 바람 좋은 5월의 첫날이었다. 오랜만에 뒷산에 오르지만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금은 신록(新綠)을 지나 성록(盛綠)의 계절을 앞두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도 여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런 날은 내 마음도 하늘 높이 올라가는 풍선이 된다. 하늘 높은 데서 지상을 내려다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지구별이 아닐까.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끝없이 끝없이 올라가보고 싶다.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다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 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

사진속일상 2023.05.02

봄비 내린 뒤 탄천

봄비는 언제나 반갑다. 멀리는 산속 울창한 수목들에 산불 위험이 사라져 좋고, 가까이는 텃밭에서 올라오는 새싹들이 생기를 띄게 되어 좋다. 또한 비는 백내장을 앓는 눈처럼 희뿌연한 대기를 말끔히 청소해 준다. 아침에는 우산을 들고 나갔지만, 오후가 되니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S와 만나 당구놀이를 한 뒤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마침 비가 그쳐 탄천을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습기 가득한 풋풋한 내음이 상쾌했다. 저절로 깊은 심호흡이 되었다.

사진속일상 2023.04.30

평창 생태마을에 다녀오다

평창에 있는 생태마을에 아내와 1박2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정식 명칭은 '성필립보 생태마을'이다.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운영하는 환경 생태 농원으로 황창연 신부님이 담당하고 계신다. 친환경 농사를 지으면서 신자들을 위한 피정 시설도 있다. 아내가 생태마을 회원이어서 신청한 후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생태마을은 예상했던 대로 규모가 상당했다. 생태마을의 주 생산품은 우리 콩으로 만드는 간장, 된장, 청국장 가루다. 참나무 장작으로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황토방에서 발효시킨다. 생태마을에는 300개의 장독이 있다. 생태마을 옆으로 평창강이 흐른다. 생태마을을 조성하기까지 애쓴 여러 분들의 노고를 생각한다. 휴식과 힐링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방은 두 명씩 사용한다. 이번에는 여덟 명이 참가했..

사진속일상 2023.04.27

새싹은 힘이 세다

텃밭에 심은 콩이 새싹을 내밀고 있다. 비교적 손쉽게 흙을 뚫고 나온 아이도 있지만 어떤 아이는 커다란 흙덩이에 짓눌려 고군분투 애쓰는 모양이 안타깝다. 이 아이는 고개가 꺾인 채 제 몸무게의 수천 배나 될 법한 흙덩이와 씨름하고 있다. 연약해 보이는 새싹이지만 생명의 의지는 더없이 강하다. 마음 같아서는 흙덩이를 치워주고 싶지만 자연 속 생명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아이는 언젠가는 장애물을 이겨내고 꿋꿋이 제 힘으로 일어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수월하게 자란 아이보다 더 강한 모습으로 우뚝 서지 않겠는가. 나는 생명의 신비에 경탄하며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본다. 힘내라, 새싹!

사진속일상 202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