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2

눈 내린 뒤 경안천이 만든 백조의 호수

눈 내린 다음 날 경안천에 나가 보았다. 그동안 날이 풀어져서 경안천의 얼음이 많이 녹았다. 호수 같은 수면에 고니가 노니는 모습이 북쪽 지방에서 볼 법한 '백조의 호수'를 만들었다. 고니는 한자로 '곡(鵠)'이고, 백조(白鳥)로도 불린다. 우아한 이름과 달리 성격이 거칠고 몸집도 크다. "꿔억 꿔억" 하는 요란한 울음소리도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러나 무리에서 떠나 한둘씩 물 위를 유유히 헤엄 치는 광경은 평화롭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고니는 고니, 큰고니, 혹고니 정도다. 대부분이 큰고니이고 고니나 혹고니는 드물다. 고니와 큰고니의 차이는 덩치가 아니라 부리의 노란색 부분이다. 노란색이 넓게 콧구멍 앞까지 나와 있으면 큰고니다. 사진의 고니는 큰고니다. 고니가 모여 있는 곳은 시끄럽다. 아마 짝을..

사진속일상 2023.01.17

겨울비 내리는 날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자다 깨다를 여러 차례 했다. 한겨울 새벽인데도 눈이 아닌 비가 내릴 정도로 날이 눅었다. 비는 낮까지 이어져 오다 그치다를 계속했다. 예보로는 앞으로 이틀 더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한다. 내리는 겨울비를 바라보다가 따끈한 수제비가 먹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드라이브 겸 하남에 있는 수제비집을 찾아갔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오랜만에 맛집의 맛을 보고 싶었다. 옛날 자주 찾아갔던 안국동의 수제비 맛이 떠올라서였다. 벌써 10여 년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제대로 된 수제비를 맛보지 못했다. 잔뜩 흐린 채 안개비가 보얗게 낀 날씨였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먼저 팔당 한강변에 나가 보았다. 고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니는 70마리 정도가 있었는데 두 무리로 나누어 모래톱에서 쉬고 있었다...

사진속일상 2023.01.14

성남 희망대공원

성남 단대동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인근에 있는 희망대공원을 찾았다. 희망대(希望臺)공원은 1970년대에 성남시에서 만든 최초의 공원이라고 한다. 지하철 단대오거리역에서 가깝다. 희망대공원은 성남 제1공단근린공원과 붙어 있다. 이름으로 봐서 옛날에 이곳에는 공단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살지 않았으니 옛 모습과 비교는 어렵지만 면모가 일신된 것은 확실하다. 두 공원이 맞붙은 곳에 이 원형 육교가 있다. '공단'과 '희망'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원형 육교에서 바라본 공원 아래쪽 모습이다. 배롱나무는 하얀 겨울 외투를 입고 있다. 희망대공원은 얕은 야산에 조성되어 있다. 산을 끼고 도는 산책로다. 산 꼭대기에는 공원 표지석과 팔각정이 있다. 1990년대 초반에 성남에 산 적이 있었다. 그때의..

사진속일상 2023.01.10

물빛공원을 걷고 달콤짜장을 먹다

날이 많이 풀어졌다. 오전 10시가 되니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아내와 물빛공원에 나가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 포근한 날씨가 사람의 마음도 따스하게 만든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천천히 산책하려 하지만 누가 앞에서 끄는 듯 자꾸 속도가 붙는다. 저수지는 꽁꽁 얼어 있고 눈이 덮여 있다. 머지않아 남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고요한 이곳도 생명의 활기로 가득해지리라. 저수지로 물이 흘러들어오는 입구에는 물닭들이 모여 있다. 쇠딱따구리 한 마리가 열심히 먹이를 찾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도 전혀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딱따구리를 이렇게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다. 우리 동네에 서식하는 새들을 조사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저수지를 배경으로 아내와 한 컷을 남겼다. 며칠 전에 산..

사진속일상 2023.01.07

TV를 바꾸다

TV를 10년 넘게 사용하니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화면에 안개가 끼면서 흔들리는 증상이 한 달 전부터 나타났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아서 보는 데 큰 지장은 없었다. 이런 현상은 3년 전에도 생겨서 30여만 원을 주고 부품을 교체한 적이 있었다. 또 고쳤다가는 새로 TV를 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래도 먹통이 될 때까지 버텨보자고 했는데 아이들이 이왕이면 빨리 큰 것으로 바꾸라면서 새 TV를 사서 보내주었다. 전에는 49인치였는데 이번 것은 65인치다. 화면이 넓으니 시원하면서 눈이 피곤하지 않아서 좋다. TV를 설치하고 제일 먼저 PBA 당구 경기를 봤다. TV를 멀리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보는 맛이 생겼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때 사용한 TV 화면 크기는 나이와 연동하는 것 같다. 내 나이가 20..

사진속일상 2023.01.05

뒷산에서 겨울바람을 맞다

날이 풀어졌지만 새벽 기온은 -10도를 오르내린다. 낮기온 역시 영상으로 치고오르기는 벅차 보인다. 춥지는 않지만 싸늘하다. 겨울 냉기를 맞기 위해 뒷산에 올랐다. 응달진 산길에는 눈이 녹지 못하고 사람들 발에 밟혀 얼어 있다. 뒷산은 경사가 급한 곳 없이 온순해 걷기에는 지장이 없다. 일흔 줄에 들어서니 새해를 맞는 심사가 심드렁하다. 또한 세월의 무상함에 대한 슬픔이 짙다. 에밀리 디킨슨은 이렇게 말했다. "How sad it makes one feel to sit down quietly and think of the flight of the old year, and the unceremonious obtrusion oh the new year upon our notice! How many thing..

사진속일상 2023.01.04

새해 첫날 경안천을 걷다

2023년이 열렸다. 새해 첫날 창밖에서 우짖는 까치들의 노랫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왠지 좋은 일이 여럿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드는 2023년이다. 떡국으로 아침을 먹고 경안천에 나갔다. 자글거리는 겨울 햇살이 따스했다. 산책로의 눈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졌고, 경안천의 얼음도 풀리기 시작했다. 요 며칠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효과다. 천변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경안천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을 즐겼다. 햇빛으로 반짝이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이것만 보면 벌써 봄이 온 것 같다. 산 능선과 높이를 맞추며 가지런히 자라는 나무를 보라. 나 혼자 튀어나가지 않고 옆 나무와 보조를 맞추며 사이좋게 나란히 자란다. 머리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다. 우리 지역을 통과하는 이 길은 일본과 미주로 오가는 비행기 노선이..

사진속일상 2023.01.01

습지생태공원의 고니

강추위에 바깥의 경안천은 꽁꽁 얼었는데 습지생태공원의 물은 얼지 않았다. 고여 있는 물이라 쉽게 얼 것 같은데 따스한 작용을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고니 30마리 정도가 이곳에 모여들었다. 한 무리는 열심히 먹이 활동을 하고, 일부는 휴식을 취하고 있다. 물닭과 청둥오리도 사이좋게 어울려 있다. 덩치가 작은 물닭은 고니 주변을 맴돌다가 고니가 바닥에서 건져 올린 먹이의 일부를 취하는 것 같다. 공생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고니는 지상에 있을 때보다 비행하는 자태가 훨씬 더 멋지다. 마침 경안천 상류에서 날아온 고니가 내 머리 위를 지나갔다. 잠시 황홀경에 젖었다.

사진속일상 2022.12.29

경안천에 찾아온 재두루미

경안천에 귀한 손님인 재두루미가 찾아왔다. 모두 11마리다. 우리 동네에서 두루미를 볼 줄이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횡재를 한 기분이다. 실은 고니를 보러 나갔는데 뜻밖에 재두루미를 만났다. 이곳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두루미를 만난 것은 처음이다. 요사이 날씨가 너무 추워서였나, 철원에 있던 두루미 중 일부가 잠시 남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다. 여기는 두루미가 상주할 여건이 못 된다. 주변에 논이 없으니 먹이인 낙곡을 찾을 수 없을 게다. 아마 며칠 지나면 떠날 게 분명하다. 두루미도 가족 단위 생활을 하는데 새끼는 확실히 구분되어 보인다. 11마리 중 4마리가 날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며칠 전에는 고니가 수백 마리 모여 있었다는데 오늘은 찾아보기 힘들다. 경안천 물은 추위로 거의 다 얼어붙었다..

사진속일상 2022.12.27

경안천의 고니 가족

바깥바람을 쐴 겸 고니를 보러 경안천에 나갔다. 매산동을 지나는 경안천에서는 10여 마리의 고니 가족을 볼 수 있다. 작년의 고니 가족이 다시 찾아온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매해 비슷한 숫자의 고니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고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더 친근감이 든다. 두루미의 빼어난 외모에 비할 바 못 되지만 하는 행동은 너그럽고 우아하다. 내가 천변에 서 있어도 겁내지 않고 도리어 내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다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면 슬며시 방향만 틀뿐이다. 까칠한 성격이 아니다. 고니가 노니는 평화로운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일주일 동안 맹위를 떨치던 추위가 잠시 누그러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갔다. 얼지 않은 천의 물길을 따라 오리들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그락거리며 눈 밟히..

사진속일상 2022.12.21

어머니를 뵙고 오다(12/12~12/14)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를 뵙고 왔다. 눈 내리면서 추운 날씨여서 외출은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사흘 내내 어머니와 한 방에서 지냈다. 옛날 얘기며 친척들과 동네 소식, 거기다가 정치 논평까지 많은 대화를 했다. 몸보다 사실 더 걱정되는 건 어머니의 정신 건강이다. 말에서 치매 징조가 읽히지 않는지, 전과 달라진 점은 없는지 유심히 살피게 된다. 좀 불안하기도 하지만 아직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100수를 하셨던 외할머니는 95세를 지나면서부터 치매 증세가 나타나셨다. 어머니도 정신줄을 놓게 될까 봐 제일 걱정하신다. 둘째 날은 오후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저녁까지 내린 적설량이 5cm는 될 것 같다. 고향 마을은 작은 동네다. 마을회관에 모이는 노인분들은 서너 명 남짓이다. 어머니의 가장 친했던 친구분이 지난..

사진속일상 2022.12.15

아차산숲속도서관

서울 광진구 아차산 자락에 새로 생긴 도서관이다. 주택가와 떨어진 곳에 산을 옆에 끼고 있어 이름이 '아차산숲속도서관'이다. 접근성은 떨어지지만 쉼터와 힐링에 중점을 둔 도서관이다. 도서관 내부도 장서보다는 책과 함께 하는 쉼터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뒀다.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다. 이제는 도서관이 책을 보고 빌리는 장소만이 아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복합 문화 시설로 변하고 있다. 이런 인프라가 문화 강국을 만드는 바탕이 될 것이다. 우리 동네에도 중앙공원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박물관, 체육관 등 여러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도서관 소식은 없다. 나중에라도 추가될 희망을 품어본다. 도서관을 구경하고 아차산길을 걸었다. 광진숲나루에서 바라본 천호대로가 ..

사진속일상 2022.12.10

겨울 맞는 경안천에 나가다

오랜만에 망원렌즈를 챙겨서 경안천에 나갔다. 혹시 황새나 고니를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겨울철새들을 만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 여기서는 대체로 1월은 되어야 한다. 초겨울 추위가 물러가고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 날이었다. 천변길에는 산책 나온 사람들이 늘었다. 파크골프장에서는 동호인들의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 파크골프는 공을 굴려서 홀에 넣는다는 점이 골프와 다르다. 공을 치는 사람들이 화기애애하면서 상당히 재미있어한다. 은근히 관심이 가는 운동이다. 새들이 겨울 햇살을 쬐며 옹기종기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늘 눈에 띄는 놈은 청둥이와 흰뺨검둥이다. 배가 하얗고 머리는 까만 오리가 몇 마리 섞여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돌아오면서 고향순대집에 들러 뜨끈한 순댓국으로 배를 채웠다. 전 같으..

사진속일상 2022.12.08

눈 내린 아침

올겨울 들어 첫눈은 지난 3일에 내렸다. 새벽에 살짝 내린 터라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눈 온 흔적만 보였다. 오늘 아침에는 나붓나붓 흔들리며 내리는 제대로 된 모양의 눈이 왔다. 이 역시 양이 많지는 않고 땅을 간신히 가리는 정도였다. 베란다 창 밖에는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 모습이 앙증맞게 귀엽다. 엄마나 할머니, 또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 아침에는 다들 중무장을 했다. 아내가 전주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같이 나가는데 이것도 눈이라고 도로가 막혀서 예매한 버스를 놓쳐버렸다. 두 시간 뒤의 버스를 다시 예매하고 시간 여유가 생겨 물빛공원을 걷고 드라이브까지 하게 되었다.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뜻대로 안 된다고 짜증을 낸들 어쩌겠는가. 혹 더 좋은 일이 생길 수..

사진속일상 2022.12.06

우리 동네 다운타운

영어의 '다운타운(downtown)'은 시내의 중심 지역을 뜻한다. '다운(down)'으로 연상되는 의미와는 다르다. 영어를 배우고 나서 나는 다운타운을 오랫동안 헷갈렸다. 다운타운을 생활 수준이 한 수 아래인 달동네로 착각한 것이다. 고등학생 때는 잘못된 해석으로 오답을 적은 적도 있었다. 점수를 잃고나서야 제대로 개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곳으로 이사 와서 시내에 나가자면 완만한 경사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말 그대로 '다운(down)' 타운이다. 미국에서도 시내 외곽에 위치한 주거 지역이 대체로 고도가 높다 보니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다는 걸 여기에 와서야 실감한다. 우리 동네 다운타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스카이라인이 계속 바뀌고 있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규제를 받다가 해제된 탓인지 고층 아..

사진속일상 2022.12.03

늦가을 양재천

양재동 모임에 나가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어서 양재천에 내려가 보았다. 군데군데 지난여름의 수해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천에는 늦가을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영동1교와 영동3교 사이를 1시간여 어슬렁거렸다. 마침 점심시간 즈음이라 천변에는 식사를 마치고 산책 나온 직장인들이 많았다. 사위어가는 추광(秋光)을 쐬며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정겨웠다. 하나 같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외국과 비교하면 늘 아쉽게 여겨진다. 그래도 가끔은 독서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양재천을 걷는 내내 시야에서 타워팰리스 빌딩군을 피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저 우뚝한 건물에서 받는 느낌은 위압감과 소외감이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

사진속일상 2022.11.25

풍경(51)

몸 안이든 밖이든 누구나 가시를 가지고 있다. 가시는 잠복해 있다가 불시에 깨어나 찌른다. 불가항력이다. 가시가 고통을 주지만 인간에게 겸손을 가르쳐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어젯밤은 잠을 설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였다. 바람을 쐬러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에 나갔다. 늦가을 풍경이 일말의 위로가 되었다. 경안천에 나간 것은 고니가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산책로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 십여 마리의 고니가 보였다. 올해 경안천에 맨 처음 도착한 선발대 무리일 것이다. 가을이 가는 스산한 계절이어선지 천변에는 산책 나온 사람이 드물었다. 시야를 가리던 나뭇잎이 떨어지니 경안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묵묵하게 세월을 견디며 성장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대견하다.

사진속일상 2022.11.19

기원 바둑

일주일 전 한탄강 트레킹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바깥 외출을 했다. 관성은 물리 세계만 아니라 사람의 정신에도 있는 것 같다. 지금 나한테는 움직이기 싫고 사람을 만나기 마땅치 않아하는 관성이 작동하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두면 어디로 계속 굴러갈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니 단풍의 막바지가 반긴다. 눈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양재의 한 기원에서 바둑 친구와 만났다. 가끔은 이렇게 바둑돌을 만지면서 돌이 바둑판과 부딪치는 쨍쨍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이런 멋이 없는 인터넷 바둑은 영 적응이 안 된다. 바둑은 생각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 바둑은 수읽기가 생략되고 감각적이다. 장고파인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 기원 바둑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만끽한다. 기원 풍경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금연..

사진속일상 2022.11.18

거미를 관찰하다

지난 초가을 안방 베란다 유리창 밖에 거미가 자리를 잡았다. 짐작컨대 무당거미였고 유리창과 거의 맞붙어서 평행하게 거미줄을 쳤다. 덕분에 무당거미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다. ▽ 9/21 얘는 아무래도 자리를 잘못 잡은 것 같다. 한 달이 되도록 거미줄에 걸려드는 먹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거미는 미동도 없이 기다린다. ▽ 10/17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탈피를 하고 나니 작은 거미 한 마리가 새로 나타났다. 원래 있었던 거미는 암컷이고, 작은놈은 수컷이다. 짝짓기를 노리는 것이다. 수컷 거미의 짝짓기는 굉장히 조심스럽다. 잘못하다가는 덩치가 큰 암컷에게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암컷은 굶주린 상태다. 수컷은 암컷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뒷걸음친다. ▽ 10/18 접근과 후퇴를..

사진속일상 2022.11.16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걷다

용두회 여덟 명이 한탄강 주상절리길을 걸었다. 이 길은 한탄강을 따라 만든 3.6km의 잔도로 한탄가의 주상절리 협곡을 감상할 수 있다. 단풍철이 지난 평일인데도 주차장은 차로 가득했다. 그나마 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드르니에서 순담 가는 방향으로 걸었다. 입장료는 1만 원인데 5천 원은 철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수십 만 년 전 어느때 한탄강 상류 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했고,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린 용암이 굳으면서 각진 기둥형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그 위로 강물이 흐르면서 침식되어 현재의 현무암 협곡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더 침식작용이 일어나면 현무암 밑에 있는 퇴적층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가 있는 명품길임을 ..

사진속일상 2022.11.11

개기월식이 만든 붉은 달

어제저녁에 개기월식이 있었다. 부분월식까지 포함하면 3시간 40분간 진행되었는데, 개기월식은 19시 16분부터 20시 41분 사이에 일어났다. 개기월식이 시작하고 나서 집 밖에 나가보니 흐릿한 붉은 달이 남동쪽 하늘에 떠 있었다. 달이 지구 그림자 속에 숨는 개기월식이지만 지구 대기층에서 산란과 굴절(+회절)을 한 빛의 영향으로 달은 붉은색을 띤다. 서양 사람들은 '블러드 문(Blood Moon)'이라 부르면서 불길한 징조로 여긴다. 환하던 보름달이 붉게 변하면서 어두워지니 충분히 그렇게 상상할 만하다. 사진을 몇 장 찍어봤는데 오랜만의 동작이라 영 서툴렀다. 위의 사진은 개기월식이 최정점에 달한 19시 59분에 찍은 것이다. 데이터는 f5.6, 1s, ISO800이었다. 달만은 밋밋해서 확대 촬영한 달..

사진속일상 2022.11.09

성지(35) - 황새바위

성지 50. 황새바위 순교성지 충남 공주에는 일찍부터 관찰사와 공주 감영이 있어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송되어 와서 배교를 강요당하고 이를 거부할 때는 여지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이름이 전해지는 순교자만 248명이며 그밖에 무수한 순교자가 있었을 것이다. 최초의 순교자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참수형을 받은 내포의 사도 이존창(李存昌, 1759~1801)이다. 황새바위는 처형지 인근에 세워진 순교성지다. 황새바위라는 명칭은 이곳에 황새가 많이 서식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과, 죄수들이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쓰고 언덕 바위로 끌려 나와 처형당했기에 붙은 이름이라는 두 설이 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에는 순교탑을 비롯해 돌무덤 경당 등 여러 시설물이 있다. 정문에서 비탈길을 올라가면 석문이 나온다. 형..

사진속일상 2022.11.07

전주에 다녀오다(11/2~5)

아내와 전주에 내려가서 나흘간 머무르다 왔다. 장모님과 바깥나들이를 나가서 가을 구경시켜드리는 게 목적이었다. 오가는 길에 우리 역시 가을 풍광을 즐기는 건 덤이었다. 가는 길에 공주에 들러서 황새바위 성지와 공산성을 찾았다. 공주에 대한 기억이 까마득하다. 공주를 마지막으로 찾은 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 적어도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좁은 땅덩어리지만 다시 찾아보기가 이렇게 어렵다. 공산성 앞에 선 황금빛의 무령왕 동상이 눈길을 끈다. 공산성(公山城)은 이곳이 백제의 수도였던 시기에(475~538년) 도읍지인 웅진(熊津)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성 둘레는 약 2.5km로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중기에 석성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공산성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사비성에서 도망친 ..

사진속일상 2022.11.06

우리 동네를 물들인 가을 색깔

경안천을 걸으려고 집을 나섰다가 동네 단풍에 홀려서 가야 할 곳을 잊어버렸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내 곁의 단풍이 이렇게 예쁜 줄 몰랐다. 가을 색깔에 취해서 아파트 단지를 놀멍쉬멍 돌아보는 데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입주한 지 십 년이 넘었으니 단지 안 나무들도 어느 정도 무성해졌다. 이곳 나무들은 사계절 중에서 이맘때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각자의 색깔로 성장(盛裝)한 청년기의 매력이 넘쳐나는 나무들이다. 감탄사 없이 지나칠 수 없는 이 가을이 어느 누구에게는 가장 슬픈 색깔이 될지 모른다. 희희낙락하는 뒤편 그늘에는 울음조차 사치스러운 아픔이 있다. 세상의 비극은 가없이 깊은데, 가을빛은 눈부시게 반짝인다.

사진속일상 2022.10.31

2022년 남한산성의 가을

가을 속에서 가을을 만나러 남한산성에 갔다. 이번에는 장경사를 기점으로 해서 성곽을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가을이 잘 익은 맑은 날이었다. 남한산성에는 단풍나무가 드물어 산 색깔이 화려하지는 않다. 동문 주변도 갈색 톤으로 물들었다. 사람이 많을 남문과 북문 구간을 피하기 위해 개원사로 내려와서 산성리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향했다. 주 성곽에서 벗어나 남한산 정상까지 다녀왔는데 새롭게 정상 표지석이 만들어져 있었다. 정상부는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표지석은 실제 위치에서 100m 정도 벗어난 곳에 있다. 산하를 물들인 가을 색깔이 은은하며 고왔다. 남한산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1624년(인조 2)부터 쌓기 시작해서 2년 뒤에 완성한 성이다. 축성 작업에는 주로 군인과 승려들이 동원되었..

사진속일상 2022.10.28

가을이 무르익는 검단산에 오르다

가을이 무르익는 검단산에 올랐다. 기점은 윗배알미다. 윗배알미는 집에서 가까우면서 외진 곳이라 찾는 사람이 적어 좋다. 언제 가도 산길이 한적하다. 산 전체를 전세 낸 듯 혼자 독차지한다. 윗배알미 산길은 계곡을 끼고 있어 청량한 가을 물소리를 옆에 두고 걷는다. 계곡의 바위 사이를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계절마다 다르다. 이 계절에는 살을 모두 발라내고 남은 생선뼈 같은 소리를 낸다. 오르는 길은 단풍이 화려했다. 검단산 단풍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의 가을 향연에 초대받은 횡재를 했다. 검단산 정상은 조망이 좋다. 북쪽 방향으로는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쪽에는 팔당호와 양수리/두물머리가 있다. 내려오는 길도 단풍 구경으로 황홀했다. 갑자기 강원도 정선의 동강 따라 단풍 드라이브를 하고 싶어..

사진속일상 2022.10.26

10월 하순의 뒷산

10월 하순의 뒷산은 선방처럼 고요하다. 여름 지나 초가을까지 요란하던 풀벌레 소리도 희한하게 딱 그쳤다. 바람이 스치면 바싹 마른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길에 깔린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멀리 나가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주변에서 보는 올해 단풍은 칙칙하다. 뒷산에 있는 단풍나무는 붉은 색깔이 드는 듯하다가 거무튀튀하게 변했다. 강수량이 적어서 많이 건조한 탓일까. 지난 두 주일은 바쁘게 지냈다. 둘째 주는 고향에 나흘간 가 있었고, 셋째 주는 바둑, 당구, 이웃 모임이 있었다. 평소에 비하면 나들이가 잦은 셈이었다. 그래선지 안정이 되지 못하고 뭔가 붕 떠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혼자의 산길이 고마웠다. 이때에야 비로소 위안을 받으면서 충만해진다. 사람 사이의 인연이란 무엇인지, 사람..

사진속일상 2022.10.24

텃밭 고구마를 캐다

아내와 둘이서 텃밭의 고구마를 캤다. 작년에는 손주가 와서 체험을 했는데 올해는 다른 데 갈 일이 생겨 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겸하여 시들어가는 가지와 고추를 뽑고 밭 정리를 했다. 고구마는 18kg이 나왔다. 기대를 안 했는데 역시 수확량은 빈약했다. 올 텃밭 농사는 옥수수, 상추, 고구마, 감자는 흉작이고 호박, 토마토, 가지, 고추 등은 풍성했다. 일 하기는 귀찮았지만, 그래도 텃밭 덕분에 우리 식탁은 풍요로웠다. 오전에 텃밭에 나갔다가 오후에는 첫째네 집에 들렀다. 잠시 짬이 난 틈에 한 시간 정도 집 주변을 산책했다. 골목길 뒤로 123층의 롯데월드타워가 자주 보였다. 송파동에는 빌라가 많아선지 깔끔한 서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골목길의 전신주와 이리저리 뒤엉킨..

사진속일상 2022.10.18

고향에서 나흘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나흘간 함께 있었다. 어머니의 가을걷이를 도와줄 목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들깨를 베는 일이 첫째였다. 들깨 모종 심고, 베고, 털고 하는 작업은 형제들이 나누어 내려와서 맡고 있다. 올해 내 일은 그나마 제일 쉬운 들깨를 베는 일이었다. 어머니와 둘이서 한나절이면 충분했다. 들깨 작업을 마치고 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심은 나무들이라는데 밤나무 고목이 산의 능선을 덮고 있었다. 이젠 마을 사람들한테도 잊혀서 오로지 어머니의 전용 밤밭이었다. 나는 10분여 줍다가 포기했는데 어머니는 30분 넘게 산을 타고 다니셨다. 아흔이 넘은 연세인데 모두가 놀라는 체력이다. 비슷한 또래의 동네 할머니들은 대부분 바깥출입하기도 벅차다. 자식 입장에서는 그러다가 다치실까 봐..

사진속일상 20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