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1672

바람 좋은 날에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늘도 맑고 파랗다. 이런 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날씨의 유혹에 저항할 수가 없다. 작은 배낭을 메고 가벼운 걷기에 나선다.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는 기초 공사가 끝나고 1층이 올라가고 있다. 산길로 들어선다. 이쁜 산길이어서 뒤돌아 다시 갔다가 온다. 쉼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해가 다르게 변한다. 모두가 근래에 새로 들어선 아파트들이다. 내가 이사왔을 때 전부 공터였던 곳이다. 집을 저렇게 지어대는데도 집이 모자란다고 난리다. 세상 일은 참 불가사의하다. 산에서 내려와 경안천으로 향한다. 천 건너편의 아파트 역시 신축된 단지다. 이젠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파트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내 일생은 우리 국토가 아파트로 뒤덮이는 걸 ..

사진속일상 2022.06.14

무주 모임

무주에서 장모님의 구순 기념을 겸해 처갓집 형제들이 모였다. 불가피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가족이 빠져 단출해진 모임이 되었다. 숙소는 무주리조트 내 진달래동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1,520m)에 올랐다. 걸음이 되는 사람은 내친김에 향적봉으로 향했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은 설천봉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산지대 날씨는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햇볕이 났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원래는 나 혼자 덕유산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궂은 날씨 예보 때문에 포기했다. 막상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내렸으니 일찍 나섰으면 지장이 없을 뻔했다. 향적봉에는 여러 꽃들이 있었지만 그중 함박꽃이 제일 눈에 띄었다. 오래된 주목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오후에는 무..

사진속일상 2022.06.11

하늘 좋은 날에

하늘 좋은 날이었다. 원래는 등산을 계획했지만 맘껏 하늘을 보고 싶어 시야가 넓게 트이는 물안개공원에 갔다. 청화한 초여름이 눈부셨다. 누가 말해줬지~ "비 좀 맞으면 어때. 햇볕에 옷 말리면 되지. 살아가는 게 슬프면 어때. 눈물 좀 흘리면 되지." 살다 보면 활짝 개이기도 하는 것을, 저 하늘처럼. 그때는 다 잊은 듯 껄껄 웃어주면 되는 것을. 넓은 물안개공원은 기이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Que Sera Sera! 공원을 한 바퀴 돌고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든해졌다. 건너편은 두물머리다. 당겨보니 두물머리 느티나무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저쪽은 볼거리 놀거리가 많겠지만 난 심심한 이쪽이 좋다. 근심 걱정은 어디서 오는가?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아무리 선한 바람..

사진속일상 2022.06.07

초여름 백마산

여름 산행의 방해꾼은 산모기와 날벌레들이다. 이놈들이 따라붙으면 여간 성가시지 않다. 몇 해 전 여름에 백마산에 갔다가 너무 심하게 달려들어서 등산을 포기하고 돌아선 적이 있었다. 집 주변에 있는 산 중에서는 유독 백마산이 제일 심하다. 이번에는 모기 기피제를 몸에 뿌리고 산에 들었다. 뉴질랜드 밀포드 트레킹을 할 때는 악명 높은 샌드플라이를 막느라 얼굴 방충망을 가지고 갔다. 실제로 현지에서 효과를 톡톡이 봤다. 우리나라 여름 산은 방충망을 덮어쓸 정도까지는 아니다. 써 보면 생각보다 많이 답답하다. 이번에 사용한 모기 기피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모기는 많이 막아주는 것 같은데 날벌레는 여전했다. 얼굴 앞에 안개처럼 모여 있다가 가미가제 특공대 마냥 눈으로 돌진해 왔다. 대여섯 마리가 눈 속으..

사진속일상 2022.06.03

5월 끝날에 뒷산 한 바퀴

5월 끝날에 뒷산 한 바퀴를 돌았다. 맑고 바람 선선한 날이었다. "좋다!" 산길을 걸을 때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이다. 어제저녁에는 남파랑 걷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중학 동기 S, 설악산 공룡능선을 타고 온 지인 G와 통화를 했다. 둘 다 대단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라 존경스러운 마음에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친구들이다. 지금의 뒷산길에서는 S도 G도 부럽지 않다. 성취감이 없는 자족이 오히려 더 풍요롭다.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숲의 향기를 전해주고, 옆에 찾아온 새가 노래를 불러준다. 내 마음도 봄의 숲만큼 부풀어 오른다. 머리 위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새를 겨우 찾았다. 나무와 같은 보호색이어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확실하진 않으나..

사진속일상 2022.06.01

경안천 으악새

경안천에 나가면 백로와 왜가리는 꼭 만난다. 왜가리보다는 백로가 두세 배는 더 자주 눈에 띈다. 백로 중에서는 쇠백로가 제일 많다. 백로나 왜가리는 몸집이 큰 데다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 않아 사진 찍기에 좋다. 어제 만난 왜가리는 한참 사진 모델이 되어 주더니 내가 조금씩 접근하자 귀찮다는 듯 건너편으로 날아갔다. "아~ 으악새 슬피 우는 가을인가요"라는 유행가가 있다. 여기서 '으악새'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새가 아니라 억새라는 해석이 유력했는데 작사자가 남긴 말이 밝혀지면서 지금은 왜가리로 보는 게 통설이다. 작사자인 박영호 씨가 어느 날 뒷산에 올라갔는데 멀리서 "으악 으악" 하는 새 소리가 들리길래 그냥 으악새라고 부르면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런 소리를 내며 우는 새는 왜가리..

사진속일상 2022.05.31

설봉공원 산책

J 수녀님을 만나러 이천에 간 길에 한 시간 정도 짬이 나서 설봉공원을 한 바퀴 산책했다. 설봉공원은 갈 때마다 더 예뻐진다. 5월의 설봉공원에는 수련과 더불어 화사한 봄꽃들이 많았다. 작년에 만든 인공폭포도 있다. 공원 전체에 야간 조명 시설이 보이는 걸로 봐서 밤의 설봉공원도 아름다울 것 같다. 폭포 앞은 동화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열흘 정도 지나니 진정되었다. 아직 머리가 완전히 맑아지지는 않았으나 이만하면 빨리 회복된 셈이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되었다. 예전 같으면 가벼운 나들이였을 텐데 이젠 쉽게 지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하물며 나는 장사도 아니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사진속일상 2022.05.27

비 온 뒤 검단산

봄 가뭄 속에서 어젯밤에 단비가 내렸다. 작은 텃밭 하나 있는데도 이렇듯 비가 반가운데,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는 더할 수 없이 반가운 비였을 것이다. 덕분에 대기도 깨끗해졌다. 집에서 가까운 윗배알미에서 검단산에 올랐다. 검단산에서는 윗배알미 계곡이 제일 크다. 어제 내린 비로 졸졸 물소리가 들렸다. 이곳에서 오르는 산길은 급한 데 없이 부드럽고 편안하다. 길에 떨어진 꽃을 보고 쪽동백나무가 있음을 안다. 올라가면서 다섯 사람을 추월했다. 요사이는 늘 추월당하는 처지지만 오늘은 달랐다. 워낙 느리게 걷는 사람 때문임에도 괜히 뿌듯했다. 사람한테는 남을 앞서려는 기본 욕구가 있는 것 같다. 특히 심하게 나타날 때가 도로 위에서 운전할 때다. '뒤처지면 도태된다'는 경쟁 사회의 슬로건이 우리 무의식에 깊이 ..

사진속일상 2022.05.26

도락산에 오르다

충북 단양에 있는 도락산(道樂山, 965m)은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산이다. 마침 트레커에서 산행을 한다기에 동행했다. 트레커와는 3년 만의 산행이었다. 도락산이라는 이름에서는 우선 '안빈낙도(安貧樂道)가 떠오른다. 물질을 탐하면 도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예수님도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정도면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닌가.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도락산에 들었다. 상선암에서 출발했는데 도의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말해주듯 길은 급경사의 오르막이었다. 10분 이상을 걷지 못하고 쉬어야했다. 힘든 고비를 넘기고 나면 도락산은 멋진 풍경을 보여준다. 도락산이 끌린 건 소나무 때문이었다. 암반 지대에 뿌리를 내리..

사진속일상 2022.05.22

속초, 춘천 여행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약속된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1박 2일 중 첫째 날은 춘천, 둘째 날은 속초를 계획했으나 중부 영서 지방은 날이 궂어서 바로 속초로 직행했다. 처제네가 동행했다. 처음 들린 곳은 영랑호였다. 울산바위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교로 된 영랑호수윗길을 건너 호수를 반 바퀴 돌았다. 멀리 설악산과 깨끗한 호수, 그리고 속초 시내가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영랑호의 동쪽 데크길은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반 바퀴를 돌고 왔더니 하늘은 말끔하게 개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부교는 잘 만들어놓은 것 같다. 환경 단체가 부교 설치를 반대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혹 철새의 도래에 악영향을 주는지는..

사진속일상 2022.05.20

풍성해지는 텃밭

열흘 전부터 텃밭에서 나는 상추와 부추를 먹고 있다. 먹고 싶을 때면 슬리퍼를 신은 채로 나가 뜯어올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마운 텃밭이다. 시장에서 사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 좀 더 지나면 이웃에 나누어주면서 먹어도 남는 풍성한 채소를 생산해 줄 것이다. 상추, 부추,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시금치, 토마토, 생강, 겨자, 참외, 애플수박, 대파, 고추 네 종류(일반, 청량, 가지, 당뇨), 강낭콩 세 종류. 올해 심은 작물이다. 이번에 나가서는 고추와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고랑의 잡초를 뽑았다. 작년보다 내 노동량이 늘고 있다. 작년에는 아내에게 일임했지만 올해는 가능한 한 힘을 보태려 한다. 잡초를 뽑을 때는 땅이 말라선지 흙먼지가 일었다. 어릴 때 흙을 만지며 놀던 생각이..

사진속일상 2022.05.17

정평천 산책

둘째 집에 간 길에 이른 저녁을 먹고 가까운 정평천을 산책하다. 정평천(亭坪川)은 용인시 수지구를 지나는 약 5km 길이의 작은 하천이다. 성복천, 탄천과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러간다. 하천 옆으로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나 있는데, 다른 하천에 비해서는 옹색한 편이다. 그래도 도시를 지나는 이 작은 하천의 가치는 값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사는 곳에서 이만큼만 벗어나도 풍경의 낯섦이 살짝 긴장하게 만든다. 어디를 가나 아파트와 상가, 비슷한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어긋남이 있다. 처음 만나는 것이라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게 보인다. 길 끝에 가면 어떤 풍경이 있을지 기대도 된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이런 낯선 경험을 하기 위해선지 모른다. 외국이라면 더욱 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 정보가 범람..

사진속일상 2022.05.15

북한산 숨은벽

북한산 숨은벽은 오래전부터 가 보고 싶던 곳이었는데 드디어 오르게 되었다. 날씨 좋은 봄날이었다. 고양시 효자동에 있는 북한산국립공원 밤골공원 지킴터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숨은벽능선을 타고 올라가 숨은벽 아래까지 간 다음 밤골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순환 코스였다. 그런데 초입부에서 엉뚱하게 계곡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역으로 돌게 되었다. 30분 정도 올라가다가 알아챘으니 되돌릴 수도 없었다. 계곡 따라 올라가는 게 결과적으로는 잘 되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능선을 타고 숨은벽으로 접근한다. 계곡길은 그늘 지고 사람 없어서 말 그대로 유산(遊山)을 만끽할 수 있었다. 계곡은 가물어서 물이 말랐다. 지도에 '숨은폭포'라고 나와 있다. 묘하게 생긴 나무가 눈길을 끈다. 철쭉은 한창을 지나서 지고 있다...

사진속일상 2022.05.10

넉 달만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코로나 일 확진자 수가 여러 달째 수십만 명대를 기록하며 발을 묶었다. 노모를 찾아보려고 해도 혹시 감염을 시킬까 불안해서 가지를 못했다. 다행히 파고의 정점이 지나고 이번 달부터는 야외 마스크 쓰기도 해제되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넉 달만이었다. 이제 고향은 어릴 때의 그 포근하고 넉넉했던 품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만상을 쇠락시키는지 확인시켜주는 쓸쓸한 공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고향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새로워지는 것도 분명 있으련만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병들고 낡고 스러지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가득한 곳이 고향이다. 동네 어귀에서 보면 소백산 옥녀봉이 여일하게 가깝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동생 집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

사진속일상 2022.05.09

부용산길을 걷다

새로 개통한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 볼 겸 부용산을 찾은 것이 13년 전이었다. 그때는 국수역에서 출발해서 형제봉과 부용산을 거쳐 양수역까지 걸었다. 한여름이라 무척 힘들었다고 옛날 일기장에 적혀 있다. 이번에는 짧은 거리인 신원역에서 시작한다. 차는 양수역 주차장에 세워두고 전철로 신원역까지 이동했다. 이곳은 독립운동가였던 몽양 여운형(呂運亨, 1886~1947) 선생의 고향이다. 선생을 낳을 때 어머니가 꾼 태몽이 커다란 해를 품에 안는 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가 '태양을 꿈꾼다'는 뜻의 몽양(夢陽)이 되었다. 당시 지명은 경기도 양근군 서시면 묘곡리(묘골)이고, 현재 지명은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다. 부용산으로 가자면 묘골애오와공원과 몽양기념관을 지나야 한다. '묘골'은 지명이고 '애오와(愛..

사진속일상 2022.05.03

저녁 산책

저녁을 먹고 주택가 골목길을 산책하다. 여기는 구시가지라 허름한 단독주택과 연립 형태의 집이 많다. 도로와 면한 곳은 정비가 되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6, 70년대의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정감이 가서 자꾸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게 된다. 초저녁인데도 벌써 인적이 끊어지고 사람보다 고양이가 더 눈에 띈다. 멀리서 웅웅거리는 자동차 소음 외에는 조용하다. 저 불빛이 환한 창은 어느 집 부엌인가 보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음식 냄새가 골목으로 흘러나온다. 잠시 발을 멈추고 음악을 감상하듯 눈을 감는다. 고시원 작은 방들에도 불이 들어와 있다. '청운의 꿈'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다. 푸른색의 구름이라는 청운(靑雲)은 젊은이의 야망을 표현한 아름다운 말이다. 우리 때는 많이 썼는데 요사이는 잘 ..

사진속일상 2022.04.29

성지(33) - 치명자 성지

성지 48. 치명자 성지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치명자산(致命者山)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 일가의 합장묘가 있는 성지다. 원래 산 이름이 승암산(僧岩山, 중바위산)이었는데 김제에 가매장되어 있던 시신을 1914년에 이곳으로 옮겨 모시면서 치명자산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치명자는 순교자란 뜻이다. 산 정상부에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와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조카 유중성(柳重誠), 제수 이육희(李六喜), 동정부부인 유중철(柳重哲)과 이순이(李順伊)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된 유항검은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전주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1801년 10월 24일 남문 밖에서 45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사진속일상 2022.04.28

넌 누구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고양이를 가끔 만난다. 지하 주차장은 어둡고 따스하니까 고양이의 쉼터로 적당한 조건을 갖추었다. 차 보닛과 앞 유리창에 자주 찍히는 고양이 발자국이 이곳이 고양이 놀이터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보닛 위를 좋아하는 건 차 엔진의 온기 탓인 것 같다. 오늘은 무심코 운전석에 앉은 뒤 앞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시커먼 놈이 날 노려보고 있어서였다. 처음에는 부엉이인 줄 알았는데 고양이였다. 갑자기 등장한 인간에 저도 놀랐음이 틀림없었다. "저놈은 뭐야?"라는 듯 째려본다. 눈싸움이 한동안 이어졌다. "야 인마, 이건 내 차야. 빨리 안 비킬래?" "누구 차든 여기는 내 구역이야. 방해하지 말고 니가 꺼져라." 녀석은 도무지 물러날 기미가 없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여러 장 찍..

사진속일상 2022.04.25

꽃 향기에 취해도 보고

이맘때 숲에 들면 꽃향기가 가득하다. 벚꽃이나 진달래 꽃잎은 떨어졌지만 향기의 여운은 아직 숲에 배어 있다. 아니면 새싹이 뿜어내는 향기인지 모른다. 나는 궁금해서 새로 돋아난 잎에 코를 바투 대 본다. 순한 뒷산길을 따라 느리게 걸었다. 이런 길을 걸으면 내 마음도 따라서 순해진다. 세상의 각박한 다툼이 사라지는 길이다. 길가에 있는 돌탑에는 지나갔던 사람의 소박한 염원이 담겨 있다. 사는 게 뭐 별 것 있겠는가. 돋아나는 초록잎, 그 사이로 살랑거리며 스치는 바람, 바람 따라 흘러가는 구름, 자연은 그렇게 살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고개를 들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빈 공간을 본다. 나무들은 무슨 신호를 보내면서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걸까. 숲은 조화의 세계다. 깔개가 있다면 나무 아래 오래 누워..

사진속일상 2022.04.22

예빈산에 오르다

팔당의 예빈산(禮賓山)은 예봉산과 마주 보고 있다. 직녀봉과 견우봉의 두 봉으로 되어 있는데, 주봉인 직녀봉의 높이가 590m다. 예전 같으면 예봉산과 예빈산을 연계해서 걸었을 텐데 이젠 하나만 고른다. 일흔이 넘으니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 분수를 알아야지 욕심 내고 무리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래도 이만한 게 어딘데, 하며 스스로 대견해한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곡을 따라 산에 든다. 계곡은 예봉산과 예빈산을 가르는 경계다. 입구에서부터 여러 봄꽃들이 반겨준다. 예봉산은 꽃이 많이 피는 산이다. 꽃을 살피느라 발걸음은 느리다. 예빈산 정상부에는 아직 진달래가 한창이다. 북쪽으로 예봉산의 강우 관측 레이더가 보인다. 디지털 30배로 레이더를 당겨 보았다. 화면 가득 담기지만 ..

사진속일상 2022.04.20

뒷산과 시내 야경

며칠간 바람 불고 비 흩뿌리며 봄날이 궂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개였다. 아침을 먹고 상쾌하게 뒷산에 오르다. 식사를 하고 바로 나와선지 오르막 산길에서 몸이 무겁다. 한창 초록색 옷으로 단장 중인 뒷산은 봄 향기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에 아직 산벚꽃이 남아 있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네요."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코로나 시절이 되면서 산길 인사가 줄어들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이런 날의 산길 걷기는 마냥 설레고 행복하다. 저녁에는 시내에 나간 길에 S22의 야경 테스트를 해 보았다. S22 카메라의 특장 중 하나가 야경 사진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장면에 따라 노이즈가 눈에 거슬리는 사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ISO가 굉장히 올라가고 셔터 타임이 느려질 텐데 이 정도..

사진속일상 2022.04.16

텃밭 울타리를 보수하다

아내는 텃밭 얘기를 할 때면 눈에 이채(異彩)가 돈다. 그만큼 텃밭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텃밭보다 더한 애정의 대상은 손주다. 손주한테서 전화가 오면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더 올라간다. 텃밭 울타리를 보수했다. 전에는 대충 둘러쳐 놓아서 보기에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밭 전체를 사람 키 높이로 둘러쌌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는지 물었지만, 사람들이 밭 안으로 들어와 밟고 다녀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영역 표시는 동물의 기본 본능이 아닌가 싶다. 씨를 뿌린 땅에는 상추만 작은 초록잎을 내밀었을 뿐 아직 뚜렷한 소식이 없다. 파가 자라는 이랑에는 주인공보다 풀이 더 무성하다. 짐짓 모른 체 해찰하다가 곧 풀 뽑는 아내 일을 도와주었다.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미라 이러다가..

사진속일상 2022.04.15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에 나섰다. 우선 벚꽃을 보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남종면의 한강변 벚꽃길로 향했다. 그러나 초입인 분원리로 진입하는 길이 막혔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대타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였다. 서울은 벚꽃이 지지만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서울 사람들이 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다. 점심은 천서리에서 막국수로 맛나게 먹었다. 수육을 첨가했다. 외식은 꼭 두 달만이다. 이젠 코로나의 기세가 꺾였으니 조금은 자유롭게 행동해도 될 것 같다. 식당은 평일인데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대기표를 뽑아야 했다. 식당 안에서도 술 마시고 떠들며 거침이 없다. 나는 자꾸 몸이 움츠러들었다. 식사 후에..

사진속일상 2022.04.12

창경궁의 봄

전 직장 동료들이 창경궁에서 만나자고 했을 때 내심 벚꽃을 구경할 수 있겠다고 좋아했다.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바꾸면서 벚꽃을 없애긴 했으나 춘당지 부근에는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과 이삼 년 전에 춘당지에서 화려한 벚꽃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가 보니 착각이었다. 창경궁에는 벚나무가 드물 정도로 없다. 춘당지의 기억은 벚꽃이 아니라 가을 단풍이었다. 벚꽃은 귀해도 창경궁의 봄은 따스했다. 열 달만에 만난 동료들의 얼굴도 반가웠다. 나는 사진을 찍는답시고 동선이 다르게 움직였다. 이번에는 봄을 즐기는 사람들을 넣어 보았다. 한 분은 코로나 자가격리 중이라 못 나오고 여섯이 모였다. 다음주에 고향 어머니를 찾아갈 예정이라 나는 점심도 같이 못 하고 헤어졌다. S22 자랑을 하면서 ..

사진속일상 2022.04.09

13년 만에 예봉산에 가다

예봉산은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갈 수 있는데, 어쩌다 보니 다시 오르는 데 13년이 걸렸다. 왜 그렇게 잊어버렸는지 나도 모르겠다. 10년이 넘으니 예전에 걸었던 산길은 까마득히 멀어져 갔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처음 찾아온 길인 것 같다. 와부제4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 들머리로 향했다. 날은 맑았지만 시야는 뿌옇게 흐렸다. 중턱을 넘었을 때 시야가 트인 곳이 나왔다. 밑에 팔당역과 팔당대교가 보이고, 강 건너편은 하남시다. 산 정상에는 강우 관측 레이더가 설치되어 있다. 산 아래와 관측소를 연결하는 궤도가 깔려 있어 차량이 운행한다. 인접한 관악산에도 기상 레이더가 있는데 서로 기능이 다른가 보다. 어쨌든 환경 훼손은 피할 수 없다. 북쪽으로 보이는 서울은 흐릿했다. 재미로 셀카를 찍어보았다. 새..

사진속일상 2022.04.04

새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다

옥수수를 심을 새 이랑을 만들었다. 돌밭이라 작년에는 놀리던 땅이었는데 올해는 울타리를 겸할 양으로 옥수수를 심으려고 아내는 욕심을 낸다. 머슴인 나야 마나님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니 심간이 편하긴 하다. 몸만 움직여주면 된다. 어설프긴 하나 비닐까지 다 씌웠다. 아내를 살펴보니 여자에게는 경작 본능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여자의 쇼핑 욕구도 경작 본능의 일부분이지 싶다. 경작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대인은 쇼핑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식물을 가꾸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것과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밭 옆에서 두 할머니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밭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지다는 것이다. 나는 밭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편이지만 할머니의 말에..

사진속일상 2022.04.01

남한산성 성곽 한 바퀴

남한산성 성곽을 한 바퀴 돌았다. 걷는 겸해서 새로 산 갤럭시 S22U 카메라의 성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다른 카메라 없이 휴대폰만 달랑 들고 걸으니 단출해서 좋았다. 출발은 남한산성 동문이었다. 언제나 쉼터가 되어 준 동장대터였는데 벤치는 모두 철거했다. 집에서 기른 고양이로 보이는데 누군가 버리고 간 걸까,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애절하게 쳐다보며 운다. 산길에서 10배 망원으로 서울과 북한산을 당겨 보았다. 셀카도 찍어 보았다. 이발 안 한지 석 달이 지났고, 수염 안 깎은지도 보름이 넘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남한산성 성곽은 전체 길이가 12km에 이른다. 뱀이 기어가듯 산허리를 따라 꿈틀대며 나아간다. 산 아래 마을은 하남시 춘궁동이다. 북문을 지나면서 대로가 나오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문 ..

사진속일상 2022.03.28

지금 내 손에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일지라도 장롱 안에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 내 손에 있어 언제라도 들고 찍을 수 있는 카메라가 가장 좋은 카메라다. 휴대폰 카메라의 최대 장점이다. 일반 카메라 중에서 휴대성이 좋은 것은 일명 똑딱이로 불리는 하이엔드 카메라다.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지만 이 역시 항상 휴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향상하면서 똑딱이가 설 자리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최근에는 카메라 제조사에서 하이엔드 신제품은 아예 출시를 안 하고 있다. 휴대폰 카메라의 사진 품질은 아직 똑딱이에 미치지 못하지만 부족한 부분은 소프트웨어로 상당 부분 카버하고 있다. 화장발이기는 하지만 색감은 똑딱이보다 휴대폰 카메라가 훨씬 낫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장점은 카메라가 언제나 내 옆에 있다..

사진속일상 2022.03.26

봄 오는 동강

코로나에 답답한 시국이 더해져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정선 동강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내와 함께 했다. 동강을 선택한 것은 이맘때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월을 경유하여 찾아간 정선 동강은 맨 먼저 나리소전망대의 풍경이 반겨주었다. 강변에는 그저께 내린 잔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강가에 내려가니 괴불주머니와 냉이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버들강아지의 뽀얀 솜털도 반짝였다. 강변길에는 바람에 날려온 비닐조각이 나무에 걸려 있어 볼성사나웠다. 농사짓는데 쓰이는 비닐을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어디를 가나 이렇듯 비닐 공해다. 농민의 의식이 우선이지만 안 될 때는 국가에서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가물어서인지 강물도 이끼가 많고 탁했다. 동강할미꽃을 보자면 저..

사진속일상 2022.03.23

손주와 산책

코로나에서 벗어난 손주한테 찾아가서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하다. 두 주 전에 제 어미가 밖에 나갔다가 코로나에 걸리고 손주도 따라서 감염되었다. 둘은 열흘 정도 격리 생활을 했다. 이제 회복되었지만 맛 감각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손주는 반대로 싱글벙글이다. 학교와 학원에 안 가고 엄마와 종일 함께 있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니까 시무룩해진다. 손주는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어 있다. 먹이가 든 봉지를 들고가니 서너 마리가 다가온다. 얘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 같다. 먹이가 탐나서인지 산길까지 따라온다. 손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할아버지한테는 손주에..

사진속일상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