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 30

엄마를 부탁해

삐딱이 성질 때문이겠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작품은 부러 멀리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천만 관객의 영화라든지 베스트셀러 책 같은 것은 접하지 않은 게 더 많다. 대신에 알려지지 않고 입소문으로 전해지는 작품은 애써 찾아본다. 그런 작품 중에 알짜배기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2008년에 나온 신경숙의 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대중들이 환호하니까 일부러 읽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번에 신 작가의 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가 소환되었다.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2011년 판인데 무려 197쇄를 찍고 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해진 책을 16년이 지나서야 읽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작품성으로 따지자면 보다는 가 더 나아 보인다. 부모를 향한 애틋한 감정과 독자들이 받는 공감은 비슷..

읽고본느낌 2024.05.31

사기[19-1]

양후가 왕계에게 물었다."당신은 제후의 식객 따위는 데려오지 않았을 테지요. 그런 자들은 쓸모도 없으며 남의 나라를 어지럽힐 뿐이오."왕계가 대답했다."감히 그러지 못합니다."양후는 그대로 헤어져 떠나갔다. 범저가 말했다."저는 양후가 지혜로운 선비라고 들었는데, 일처리는 더디군요. 방금 수레 안에 사람이 숨어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뒤져 보는 것을 잊고 가더군요."그리하여 범저는 수레에서 내려 달아나며 말했다."이 사람은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10리 남짓 갔을 때 정말로 양후는 기마병을 보내와 수레를 뒤지게 했으나 아무도 없으므로 그냥 돌아갔다. 왕계는 드디어 범저와 함께 함양으로 들어갔다. - 사기(史記) 19-1, 범저채택열전(范雎蔡澤列傳)  범저(范雎)의 일생에서 여러 결정적 장면이 나오지만 ..

삶의나침반 2024.05.29

꽃아까시

서후리숲에서 붉은색 꽃이 피는 아까시나무를 처음 보았다. 공식명이 '꽃아까시나무'다. 아까시를 흔히 아카시아라고 말하지만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아카시아는 호주 원산의 상록수로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북미가 원산인 흰 꽃의 아까시나무는 1891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번식력이 좋고 잘 자라 전역에 급속도로 퍼졌다. 붉은 꽃을 피우는 꽃아까시나무는 그로부터 30년 후에 관상용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꽃아까시도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눈에 띄었다. 꽃아까시는 흰색의 아까시보다 꽃이 크고 화려하다. 관상용으로 기르면 색다른 맛이 날 것 같다. 붉은색의 아까시꽃이라는 게 아직까지는 신기하니 말이다.

꽃들의향기 2024.05.28

서후리숲 소풍

아내와 양평에 있는 서후리숲으로 소풍을 갔다. 점심은 외식을 할까도 했지만 소풍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김밥을 싸 가지고 갔다. 비 그치고 더없이 맑고 청명한 봄날이었다. 2014년에 개장한 서후리숲은 양평군 서종면 서후리에 있는 10만 평 규모의 사설 수목원이다. 수목원 안에는 자작나무숲 등 다양한 나무의 숲이 있으며 되도록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한 채 가꾸고 있다. 입장료는 8천 원이다.  카페 옆에 삼색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었다. 플라밍고 셀릭스(Flamingo Salix)인데 흰색, 분홍, 초록색으로 된 잎 색깔의 조화가 신비하게 어우러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주택의 정원에 심으면 무척 예쁠 것 같다.  숲에는 이 계절에 맞는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댕강나무꽃의 향기에 취한 건 ..

사진속일상 2024.05.28

신의 연주에 끼어들지 말라니까

"농담 하나 듣겠나. 아인슈타인이 죽고나서 눈을 떠보니 천국이었지. 자기 바이올린도 있었어. 그는 기뻤지. 바이올린을 사랑했거든. 물리학보다 여자보다 더. 천국에서 연주 실력은 어떨지 알아보고 싶었어. 바이올린을 조율하는데 천사들이 급히 그에게 왔어.- 뭐하는 건가?- 연주하려고요.- 관두게. 신께서 싫어하실 거야. 색소폰 연주자시거든.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멈췄어. 그런데 높은 곳에서 색소폰 연주가 들려와. 아인슈타인은 생각했지. 신과 함께 연주하겠어. 우리 합주는 근사할 거야. 그러고는 그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색소폰 연주가 멈추고 신이 나타났어. 신은 아인슈타인에게 다가와 사타구니를 뻥 찼어.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바이올린도 박살났지. 아인슈타인이 바닥에 누워 몸부림치는데 천사가 와서 말했지.- 우..

참살이의꿈 2024.05.26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 신경림

떠나온 지 마흔해가 넘었어도나는 지금도 산비알 무허가촌에 산다수돗물을 받으러 새벽 비탈길을 종종걸음치는가난한 아내와 부엌도 따로 없는 사글셋방에서 산다문을 열면 봉당이자 바로 골목길이고간밤에 취객들이 토해놓은 오물들로 신발이 더럽다등교하는 학생들과 얼려 공중화장실 앞에 서서발을 동동 구르다가 잠에서 깬다지금도 꿈속에서는 벼랑에 달린 달개방에 산다연탄불에 구운 노가리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골목 끝 잔술집 여주인은 한쪽 눈이 멀었다삼분의 일은 검열로 찢겨나간 외국잡지에서체 게바라와 마오를 발견하고 들떠서떠들다 보면 그것도 꿈이다지금도 밤늦도록 술주정 소리가 끊이지 않는어수선한 달동네에 산다전기도 안 들어와 흐린 촛불 밑에서동네 봉제공장에서 얻어온 옷가지에 단추를 다는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도시락을..

시읽는기쁨 2024.05.25

김남주 평전

"나는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여!"김남주는 스스로 행동하는 전사가 되기를 택했고 그 길을 갔다. 총명했던 젊은이가 입신양명의 길을 마다하고 혁명의 대의를 따른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좇아가며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 인간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신념을 올곧게 지켜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을 만하지만 하물며 자기희생이 따르는 험난한 여정임에랴. 책 어딘가에는 김남주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자유를 향하여 전 존재를 내던진 자, 사적 소유로부터 멀찍이 벗어나 버린 자, 개인적 욕망을 아예 포기한 자." 해남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들어간 김남주는 고등학생때부터 영어와 독어 원서를 읽을 정도로 어학에 뛰어난 재질을 보였고, 많은 독서를 통해 사회와 역사의식에도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는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읽고본느낌 2024.05.24

사기[18]

"초나라 왕께서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이 친형제보다 더합니다. 이제 당신은 20년이 넘게 초나라 재상으로 계셨고 왕께는 아들이 없습니다. 만일 뒤에 왕이 돌아가시고 왕의 형제가 왕위에 오르면 초나라는 임금이 바뀌고, 새 군주는 예전부터 친밀했던 사람들과 친척들을 소중히 여길 것이니, 당신이 어찌 오래도록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뿐만 아니라 당신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정권을 잡은 지 오래니 왕의 형제들에게 예의에 벗어난 행동도 많이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 형제가 왕위에 오르면 재앙이 당신 몸에 미치게 될 텐데 어떻게 재상의 인수와 강동이 봉읍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지금 소첩만 임신할 것을 알 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릅니다. 소첩이 당신의 총애를 받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삶의나침반 2024.05.23

가만히 햇볕 쬐기

고뿔이 들었다. 닷새 전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꽉 잠겨서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선제 대응한다고 바로 병원에 가서 나흘치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는 약을 다 먹은 뒤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이번 감기는 증상이 목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밤이 되면 기침이 통제할 수 없게 터져 나온다. 장마철 폭포수처럼 거세다. 한 바탕 난리를 치고 나야 잠잠해진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어제부터 밤 기침은 사라졌다. 대신 약 기운이 떨어져서인지 머리가 띵 하다. 매일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사뭇 집에만 있다가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밖에 나섰다. 집 주변을 가만히 걷다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쬤다. 햇볕이 보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 보았다면 영낙없이 곧 죽어갈 듯한 노인네 꼬락..

사진속일상 2024.05.22

씀바귀 & 고들빼기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구별할 때 종종 헷갈린다. 꽃은 거의 똑같아서 분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을 나누자면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우선 꽃에서 다른 점은 씀바귀는 꽃 가운데에 있는 꽃술에 검은색을 띠는 부분이 있지만 고들빼기는 전부 노란색이다. 윗 사진에서 왼쪽이 씀바귀이고 오른쪽이 고들빼기다. 잎을 보면 더 정확하게 차이가 난다. 고들빼기 잎은 줄기를 감싸고 달려 있어 씀바귀와 완전히 다르다. 이런 설명을 듣고 나면 씀바귀와 고들뻬기는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다음 해가 되면 또 긴가민가해진다. '감싼 잎 = 고들빼기'라는 등식을 그 사이에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물어보거나 도감을 찾아보는 일이 상례가 되었다. 전주 처갓집에 가면 장모님이 해 주시는 음식 중에 고들빼기무침이 맛있..

꽃들의향기 2024.05.20

학살1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밤 12시 나는 보았다전투경찰이 군인으로 교체되는 것을밤 12시 나는 보았다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밤 12시 나는 보았다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이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이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밤 12시 나는 보았다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밤 12시 나는 보았다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밤 12시 나는 보았다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시읽는기쁨 2024.05.19

탄천 붉은토끼풀

요사이 탄천 둔치에는 붉은토끼풀(red clover) 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한참을 걸어도 끊어질 줄 모르는 붉은토끼풀 꽃밭이다. 우리가 클 때는 거의 흰색의 토끼풀이었는데 이제는 붉은토끼풀이 더 많이 눈에 띈다. 붉은토끼풀은 토끼풀에 비해 키나 꽃이 더 크다. 이만한 생장력이면 목초지의 사료용 식물로는 최상일 것 같다. 붉은토끼풀은 연등을 닮았다. 마침 붉은토끼풀 꽃이 필 때가 부처님 오신 날과 겹친다. 5월이면 자연이 만든 붉은토끼풀 연등으로 산책길이 환하다. 굳이 네 잎 클로버를 찾지 않아도 이 아름다운 연등 꽃밭을 볼 수 있음이 하늘이 우리에게 준 행운이 아니겠는가.

꽃들의향기 2024.05.18

the BUCK STOPS here!

지난 9일에 윤석열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취임한 지 2년이 되는데 고작 두 번째였다. 이것만 봐도 처음에 장담했던 국민과의 소통은 무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제 불통의 이미지로 굳어 버렸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보다가 '역시나'라는 실망에 TV를 끄고 말았다. 대통령의 발언 내용보다 내가 주목한 것은 기자회견 전 모두 발언을 할 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팻말이었다. 거기에는 'the BUCK STOPS here!'라는 생소한 영어 문구가 적혀 있었다. 뜻이 무엇인지, 왜 저런 영어 문장을 내세웠는지 궁금했다. 'buck'을 사전에서 찾아봐도 이해가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에 얼핏 든 느낌은 '내 앞에서 헛소리하지 말라!'로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갈치는 게 아닌가 ..

길위의단상 2024.05.17

집 앞 산딸나무

아파트 단지 안에는 여러 꽃나무가 있어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꽃을 볼 수 있다. 5월은 산딸나무 꽃과 함께 하는 시기다. 왜 이름이 '산딸'인지 가을이 되면 알게 된다. 삘갛게 익는 열매가 딸기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은은한 백색의 꽃잎은 넉 장으로 십자 모양을 이룬다. 기독교의 상징과 비슷해서 서구인이 사랑할 만한 꽃이다. 그런데 여어로는 '도그우드(Dogwood)'로 불린다. 아무리 그래도 '개나무'라니, 이 나무 껍질 즙으로 개의 피부병을 치료해서 그리 명명되었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식물 이름은 좀 엉뚱한 데가 있다. 꽃만 본다면 더 멋진 이름을 가져도 좋으련만.

꽃들의향기 2024.05.16

아버지에게 갔었어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어느 외국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한국의 시골 사람들은 오직 친척들에게 잘 하고 자식을 부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조상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죽도록 일하는 것을 삶의 전부로 안다." 신경숙 작가가 그리는 아버지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의 미덕일 수도 있고, 가부장적인 유교 문화의 한계일 수도 있다. 마침 정읍 깻다리 마을 출신의 지인이 있어서 신경숙 작가와 가정에 대해 짧게나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소설에 묘사된 아버지가 얼마나 사실적인지 물었더니 미소로 대신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객관성을 따지는 것이 우문인지 모르겠다. 형제라도 부모에 대한 기억과 인상이 달라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의 후반부에도 작가 외에..

읽고본느낌 2024.05.15

오로라 잔치

지난 5월 8일부터 강력한 태양 폭발이 연이어 발생했다. 현재 태양 표면에는 지구 크기의 16배에 이르는 흑점이 생겨 있고 맨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서는 10시간 정도의 주기로 대폭발이 일어나면서 엄청난 입자들을 우주로 쏟아내고 있다. 이 여파로 11일부터 지구가 자기 폭풍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태양에서 날아온 플라스마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교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 지자기 폭풍은 가장 강력한 G5 등급에 해당하며 21년 만의 최강 태양 폭풍이다. 태양 폭풍은 전 세계의 통신이나 전력망에 장애를 일으키지만 저위도 지역에서도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되는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권에 들어오면서 공기 분자/원자들과 충돌할 때 생기는 빛이다. 어..

길위의단상 2024.05.14

어느 하루

치과 진료를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섰다. 2024년 5월 13일, 비발디의 '사계'가 울려퍼지는 듯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병원에 예약한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가까이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렀다. 요사이는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 때문에 서점을 찾는 일이 거의 없다. 중고서적에서 풍기는 냄새가 고향을 찾은 것처럼 아늑했다.  입구에 있는 '당신은 책 중독자인가?'라는 게시문을 보면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책 중독'이란 책 수집벽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마음에 드는 책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못 배기는 때가 나에게도 있었지.  올초에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단골 치과에서는 임플란트 대신 브릿지를 권했다. 그래서 옆 이빨 3대를 신경치료 한 뒤 함께 브릿지 시술을 ..

사진속일상 2024.05.14

꽃댕강나무

청와대의 오운정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진한 꽃향기가 풍겨왔다. 코를 흠흠거리며 향기를 따라가니 꽃댕강나무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꽃 가까이 다가가니 라일락 닮은 진한 향내가 코를 찔러 흠칫 뒤로 물러나야 했다.  친구가 꽃댕강나무에 대한 자료를 찾아줬다."꽃댕강나무는 이른 봄, 진한 녹색의 작은 잎을 단 가느다란 가지가 나올 때부터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여름에 들어서면 가지 끝에 꽃이 피는데, 길이 2cm 정도의 작은 나팔 모양의 붉은보랏빛 꽃통은 녹색 잎과 대비된다. 이 꽃통은 끝이 다섯 개로 갈라지면서 지름 1cm 정도의 하얀 꽃이 피어 늦가을까지 꽃피기를 계속한다. 꽃에서 강한 향기를 내뿜어 금방 꽃댕강나무가 어디 있는지 찾아낼 수 있다. 꽃댕강나무는 다른 댕강나무가 낙엽이 지는데 반해 반상록이므..

꽃들의향기 2024.05.12

사기[17-2]

조나라 효성왕은 신릉군이 진비의 군사를 속여 빼앗아 조나라를 존속시켜 준 일을 고맙게 여겨 평원군과 상의하여 성 다섯 개를 공자의 봉읍으로 주려고 했다. 신릉군은 이 이야기를 듣고 교만한 마음이 생겨 공을 자랑하는 안색을 보였다. 그러자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이 ..

삶의나침반 2024.05.12

청와대 주목, 말채나무, 회화나무

2022년에 청와대에 있는 노거수 여섯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반송, 말채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등이다. 문외한이 보기에는 굳이 천연기념물이 아닌 보호수로 지정해도 무난한 나무도 포함되어 있다. 수령이 700년이 넘은 이 주목은 청와대에서 제일 오래된 나무다. 그러나 천연기념물에서는 제외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른 곳에서 옮겨왔다는 게 감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너무 고령이라 줄기는 대부분 죽어버리고 폭이 한 뼘 남짓되는 껍질이 살아있어 겨우 연명하고 있다. 어쨌든 줄기는 이미 '죽어 천 년'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 같다.    상춘재 앞마당에 있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말채나무다. 말채나무가 천연기념물이 된 것은 이 나무가 유일하지 않나 싶다. 나이는 150년 정도로 추정하는데 경..

천년의나무 2024.05.11

청와대 녹지원 반송

청와대 상춘대 앞 정원인 녹지원에 있는 반송이다. 균형 잡힌 단아한 모습이 어느 방향에서 봐도 아름답다. 청와대에 많은 나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빛나는 나무다. 수령은 170년 정도로 추정하고, 나무 높이는 7.4m에 이른다. 여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지내며 이 나무를 수도 없이 보았을 것이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이 반송처럼 반듯하게 정치를 했다면 나라가 얼마나 좋아졌을까,를 생각한다. 반송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나무다.

천년의나무 2024.05.11

국수나무꽃

경복궁 건청궁 옆에 있는 녹산에서 꽃으로 덮인 국수나무를 봤다. 이렇게 무더기로 화려하게 핀 국수나무꽃은 처음이었다. 식물 공부를 하던 초창기에 꽃 선생이 국수나무에 대해 설명해 주던 기억이 난다. 산길을 헤매다가 국수나무를 만나면 인가가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안도하게 된다는, 옛사람에게는 고마운 나무였다고 말했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열면 되겠지만. 국수나무꽃은 귀엽고 앙증맞다. 가운데 노란 수술이 꽃잎 같이 보이면서 국수나무꽃의 포인트가 된다. 꽃 이름에 음식이 들어가면 과거 선조들의 배 고팠던 시절이 떠올라 애틋한 감정을 갖게 한다. 이름 때문일까, 뭔가 서민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국수나무꽃이다.

꽃들의향기 2024.05.10

경복궁 - 청와대 - 광화문 광장

2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벌인 이벤트 중 하나가 청와대의 용산 이전이었다. 돌격작전 하듯이 급작스럽게 시행되어 어리둥절했고 논란도 많았다. 어쨌든 슬로건대로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되었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굳이 찾아가 볼 필요도 느끼지 않았다. 다만 청와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다가 경내에 있는 나무들에는 호기심이 일면서 직접 만나고 싶었다. 전 직장 동료와 북악산 트레킹을 계획하다가 청와대에서 시작하는 새로 난 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청와대 구경도 겸할 수 있게 되었다. 셋은 경복궁역에서 만났다. 비 그친 뒤 더욱 맑고 화창한 봄날이었다.  전에 왔을 때보다 경복궁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외국인들이 엄청 많아지고 대부분이 한복을 입고 있었..

사진속일상 2024.05.10

비 온 뒤 마가렛

어떤 꽃을 보면 특정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나에게 마가렛은 흰 복장을 한 정결한 수녀를 연상시킨다. 오래전 어느 수녀원 뜰에서 본 마가렛 꽃밭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일 것이다. 사흘 동안 계속 봄비가 내렸다. 남쪽 지방에는 폭우가 쏟아져 피해가 컸다는 보도를 봤다. 이런 험한 봄비는 이례적이어서 지구 온난화의 여파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꼴이 아니길 바라지만. 비가 잠시 그친 사이에 짧은 산책을 했다. 근린공원에는 비에 젖은 마가렛 꽃이 몸을 말리지 못한 채 피어 있었다.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이 더욱 청초해 보이는 비 내린 뒤의 마가렛이었다.

꽃들의향기 2024.05.08

밀크맨

힘들게 읽은 책이다. 책 자체가 가독성이 떨어지는 데다 눈병까지 나서 읽는데 애를 먹었다. 눈이 아파서 몇 페이지를 못 넘기고 책을 자주 덮었다. 그래도 2018년 맨부커 상을 받았다는 화제작이라고 해서 속독이긴 하지만 끝까지 읽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애나 번스(Anna Burns)가 쓴 은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가 무대다. 당시 북아일랜드는 신구교의 종교 갈등에 반정부 투쟁이 겹쳐 통제와 감시가 일상화된 비정상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다. 소설은 18살의 여주인공인 '나'가 이런 관습과 규범의 사슬 속에서 스토킹까지 당하면서 겪는 내면의 고통을 줄곧 일인칭 화법으로 풀어낸다. 소설에는 사람들 이름이나 지명이 나오지 않는다. '나'의 남자친구는 '어쩌면-남자친구'이고 '아무개 아들'하는 식이다. 지역 이름..

읽고본느낌 2024.05.07

용서 / 김창완

엄마나 학교 가다길고양이도 용서하고신호등도 용서하고큰 트럭도 용서했다자전거 타고 가는 누나도 용서하고날아가는 새도 용서했는데그때 구름도 용서했어요"너 용서가 뭔지 아니?"용서가 한번 봐주는 거 아니에요? - 용서 / 김창완  산울림의 멤버로만 알았던 김창완의 이미지가 지금은 동시 작가면서 음유시인으로 달라졌다. 초기부터 예쁜 노랫말을 직접 지었지만, 70대에 접어들어서도 동시를 발표한다는 것은 동심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천진난만한 그의 표정을 떠올리면 저절로 미소가 인다. 나도 시인의 마음을 닮으면서 늙어가고 싶다. 이 동시를 곱씹어 보면 의미심장하다. 본다는 것은 한자로 '시(視)' '견(見)' '관(觀)' 등이 있고, 영어에도 'see' 'look' 'watch' 등이 ..

시읽는기쁨 2024.05.06

봄날은 간다

오늘이 입하(立夏)다. 어느덧 봄날은 가고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다. 얼마 전에 영화 '봄날은 간다'를 다시 봤다. 일흔줄에 들어서서 보는 영화는 20년 전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조연 정도로 여겼던 치매 걸린 할머니가 이번에는 비중있게 다가왔다. 두 젊은이의 사랑이 인생의 짧은 한 때의 에피소드라면, 할머니에게는 인생 전체가 걸린 '봄날은 간다'였기 때문이다. 매일 기차역으로 나가 죽은 남편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사랑에 아파하는 손주를 위로한다. "버스 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이 영화에 명대사로 회자되는 것이 여럿 있지만("라면 먹고 갈래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 할머니의 대사도 심금을 울렸다.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 당신에게 하고픈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자신이 갈 때..

읽고본느낌 2024.05.05

애기말발도리

수원 자동차등록소 화단에서 만난 꽃이다.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꽃 무더기를 이루며 하얗게 피어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특정할 수 없었는데 네이버 렌즈로 검색해 보니 애기말발도리가 맞는 듯했다. 다른 말발도리에 비해 더 귀여우니까 '애기'라는 이름이 붙지 않았나 싶다. 키도 낮은 편이다. 애기말발도리는 작은 흰색 꽃이 가지에 오밀조밀 매달려 있는 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꽃말이 '애교'로 이 꽃과 잘 어울린다. 집에서 화분에 키워도 좋을 것 같은 꽃이다.

꽃들의향기 2024.05.04

은산리 음나무

경북 예천군 은풍면 은산리에 있는 음나무다. 지금 은산리는 한적한 시골 동네지만 과거에는 풍기군 은풍현청 소재지였다. 나무 옆에는 옛날 풍기군수였던 권명규 등 네 사람의 선정비가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나무가 자리한 이곳은 은산시장이 있었고, 1919년 4월에 만세 운동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400년 된 이 음나무는 태풍으로 줄기가 부러졌고 외과수술한 흔적도 여러 곳에 보인다. 그래도 위로 눈을 돌리면 펼쳐진 봄의 초록이 풍성하다. 음나무는 엄한 가시가 있어 엄나무로도 불린다. 옛 사람들은 음나무의 억센 가시가 재앙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나무를 집에서 기르거나 가지를 담에 걸오놓음으로써 잡귀들이 집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았다. 은산리 음나무는 과거의 번성했던 시절을 간직한 채 도로변에 외롭게..

천년의나무 2024.05.03

어머니와 고추를 심다

고향에 내려갔더니 마침 고추 모종이 도착해 있었다. 맞춘 건 아닌데 묘하게 때가 맞아 어머니 일손을 덜어줄 수 있었다. 특히 고추 지주대를 세우는 작업은 노모가 하기에는 힘에 겨워서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터였다. 어머니 농사는 올해 변곡점을 맞았다. 산을 넘어가야 하는 멀리 있는 밭의 들깨 농사를 그만둔 것이다. 어머니는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걱정 하나를 덜어낸 셈이다. 아흔 넘은 노인이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농사를 짓는 게 불안했기 때문이다. 이제 집 가까이 있는 밭만 남았다. 여기에 고추 300포기를 심었다.   모판에서는 파릇파릇한 벼 새싹들이 자라고 있고,  고향집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제비가 찾아왔다. 마을에서 우리집에만 유일하게 제비가 찾아온다. 작년, 재작년에 쓰던 옛 집이 고스란..

사진속일상 2024.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