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가만히 햇볕 쬐기

샌. 2024. 5. 22. 16:03

고뿔이 들었다. 닷새 전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꽉 잠겨서 겨우 목소리가 나왔다. 선제 대응한다고 바로 병원에 가서 나흘치 약을 처방받았다. 의사는 약을 다 먹은 뒤에도 호전되지 않으면 코로나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이번 감기는 증상이 목에 집중되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밤이 되면 기침이 통제할 수 없게 터져 나온다. 장마철 폭포수처럼 거세다. 한 바탕 난리를 치고 나야 잠잠해진다. 다행히 차도가 있어 어제부터 밤 기침은 사라졌다. 대신 약 기운이 떨어져서인지 머리가 띵 하다. 매일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

 

사뭇 집에만 있다가 오늘은 안 되겠다 싶어 밖에 나섰다. 집 주변을 가만히 걷다가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쬤다. 햇볕이 보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누군가 보았다면 영낙없이 곧 죽어갈 듯한 노인네 꼬락서니였을 것이다. 작은 고뿔 하나에 이럴진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중병이라면 얼마나 무너져 내릴 것인가. 그게 두렵고 자신이 없다.

 

"삶에는 기습이 있다." 신경숙 작가의 말처럼 우리네 인생살이는 그만큼 예측 불허이고 위태위태하다. 고뿔은 작은 예고편 같은 것이다. 물론 인생에는 망외의 기쁨이나 행복도 숨어 있다. 행이든 불행이든 인생은 가시적인 인과응보의 관계로만 성립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웃음이 눈물이 되고, 눈물이 웃음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표피적인 현상을 따라 일희일비한다면 인생은 피곤해질 뿐이다. 그런 관점이라면 고뿔이나 불행을 대하는 태도도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마음을 달랜다.

 

 

5월의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는 놀이터는 아이 하나 없이 적막했다. 깔깔대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생기를 찾을 듯 싶어 한참을 기다렸지만 허탕이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귀한 세상이 되었구나. 심술궂은 5월의 바람이 점점 세져서 할 수 없이 자리를 떴다. 자꾸 뒤돌아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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