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 33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착해지지 않다고 돼무릎으로 기어다니지 않아도 돼사막 건너 백 마일, 후회 따윈 없어몸속에 사는 부드러운 동물사랑하는 것을 그냥 사랑하게 내버려두면 돼절망을 말해보렴, 너의, 그럼 나의 절망을 말할 테니그러면 세계는 굴러가는 거야그러면 태양과 비의 맑은 자갈들은풍경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거야대초원들과 깊은 숲들산들과 강들 너머까지그러면 기러기들, 맑고 푸른 공기 드높이다시 집으로 날아가는 거야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너는 상상하는 대로 세계를 볼 수 있어기러기들, 너를 소리쳐 부르잖아, 꽥꽥거리며 달뜬 목소리로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세상 모든 것들그 한가운데라고 - 기러기 / 메리 올리버 위안이 되는 따스한 시다. 처음에 나오는 "착해지지 않아도 돼(You do not have to be good)..

시읽는기쁨 2025.04.30

초록 뒷산 한 바퀴

봄날씨에 끌려서 뒷산을 한 바퀴 돌았다. 간식 담긴 배낭을 메고 스틱까지 준비해서 등산 흉내를 낸 산길 걷기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따사로운 봄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신록이 익어가는 산은 초록 세상이었다. 초록은 생명의 색깔이다. 숲은 아기자기한 생명의 약동으로 빛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 안의 생명 에너지가 공명을 일으켜서 엔돌핀이 샘솟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계절에 산길을 걸으면 존재 자체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자작나무 숲도 초록 새 잎으로 단장하고 있었다.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이 해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새 아파트가 여럿 들어섰고 공사중인 곳도 있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앞산에 만들어지고 있는 중앙공원이다. 걷기 좋은 산책로와 다양한 편의 시설을 내년에는 만날 수 있..

사진속일상 2025.04.29

여수천 겹벚꽃

벚꽃이 지고 나면 겹벚꽃이 핀다. 나는 '겹'자가 들어가는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겹벚꽃도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는 꽃이란 걸 알게 된 것이다. 작년에 문수사에서 본 아름다운 겹벚꽃 가로수 길이 생각난다. 자주 지나다니는 여수천에 겹벚꽃이 활짝 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나무인데 가지가 산책로를 터널처럼 덮고 있는데 분홍 솜사탕이 나무에 가득 매달려 있는 것 같다. 화사한 봄의 생명력과 풍요를 보여주는 겹벚꽃이다.

꽃들의향기 2025.04.28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만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다.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에서는 극우 세력이 힘을 받아 세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겉으로나마 민주주의 이념을 전파하던 예전의 미국이 아니다. 개인이든 나라든 각자도생이라는 험난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작년에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이런 지구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전에는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로 표상되는 이데올로기/가치관을 주도해 나가는 국가가 있었지만 이젠 더 이상 없다. 그들도 제 코가 석 자인 상태다. 우리나라는 계엄 후 일차 위기는 넘겼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한국 엘리트의 상당수가 파쇼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바탕이 튼실하지 못하면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연약한 구..

길위의단상 2025.04.27

노년에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친구가 단톡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일본 의사가 쓴 '80세의 벽'이라는 책을 요약한 내용이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즐기며,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살기를 원하는 노인들이 어떻게 80대의 벽을 넘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과도한 강박과 욕심이 스스로를 압박하고 무리한 절제 때문에 결과적으로 행복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삶을 만든다고 말한다. 대부분 건강에 대한 내용인데 경청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현대인은 지나칠 정도로 병원과 약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매스컴에서 알려주는 건강 상식에 매달려 자신의 몸을 거기에 맞추려 한다. 사람의 신체는 표준화할 수 없는 각자의 특성이 있는데, 획일적인 건강 지침은 오히려 몸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80세의 벽..

참살이의꿈 2025.04.26

1408a(6)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말 것 너는 네 심장의 리듬만 따를 것 꼭두각시 춤은 그들끼리 실컷 추라고 할 것 이것이 하찮은 세상에 저항하는 자세. (140801) 들꽃이 얼마나아름답게 피는지 봐 새들이 얼마나즐겁게 지저귀는지 들어봐 잘보라구! 그래서'봄'이잖아 (140802) 네가 이리 서럽게 울면 난 어떡하니 (140803) 열매를 맺으면고개를 숙인다 사람이라고다르지 않을지니 (140804) 세상 모든 사람이제 가슴을 열고상처를 드러낸다면 세상은한숨과 비탄에 빠질까 아니면동정과 위안으로 따스해질까 너와 나는가련한 포옹을 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은생명은 없다 (140805) 보는 눈이 없어야보인다 듣는 귀가 없어야듣는다 주인을 잃어야주인이 된다 가창오리 떼 날아오르는금강 하구에서..

포토앤포엠 2025.04.25

작별하지 않는다

이런 작품을 쓰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를 생각한다. 야만의 시대 속 인간의 아픔에 스며들지 않고서는 써질 수 없는 작품이다. 피해자의 눈물과 비명을 직면하며 슬픔을 이겨내고 어찌 이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한강 작가의 는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고발한다. 5.18 광주항쟁을 다룬 와 맥을 같이 하는 소설이다.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희생자들의 이야기다. 국가 폭력 앞에 인간의 생명과 삶은 얼마나 연약한지를 생각한다.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작가는 오죽했을까,라고 유추하는 것이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를 거점으로 한 남로당 무장대의 습격으로 시작하였지만 진압은 지나치게 잔혹했다.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주민이 많았다. 아무 죄 없는 아녀자와 어린이도 상당했다. 마을 전체..

읽고본느낌 2025.04.25

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

아파트 현관 앞에 라일락이 활짝 폈다. 드나들 때마다 강렬한 꽃향기에 취한다. 아줌마 한 분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라일락에 휴대폰을 갖다댄다. "오빠, 라일락 향기가 기가 막혀. 냄새를 맡아봐." 이 정도 바람이라면 폰으로 냄새를 전송하는 기술이 개발될 날도 멀지 않았으리라. 라일락, 하면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떠오른다. 국어 시간에 처음 배운 시가 김용호 시인의 '오월의 유혹'이었다. 곡마단 트럼펫 소리에탑(塔)은 더 높아만 가고유유히젖빛 구름이 흐르는산봉우리분수인 양 쳐오르는 가슴을네게 맡기고, 사양(斜陽)에 서면풍겨오는 것아기자기한 라일락 향기계절이 부푸는 이 교차점에서청춘은 함초롬히 젖어나고넌 이브인가푸른 유혹이 깃들여감미롭게 핀황홀한 오월 이미 60년 가까이 흘렀지만 이 시를 읊던 국어선생님의..

꽃들의향기 2025.04.24

진달래 시첩 / 조명암

진달래 바람에 봄치마 휘날리더라저 고개 넘어간 파랑 마차소식을 싣고서 언제 오나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앉아도 새가 울고 서도 새 울어맹서를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갈 길도 멀건만 봄날도 길고 길더라돌 집어 풀밭에 던져보면이렇단 대답이 있을쏘냐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산 넘어 산 있고 물 건너 벌판기약을 두고 간 봄날의 길은 멀다 범나비 바람에 댕기가 풀어지더라산허리 휘감은 아지랑이봄날은 소식도 잊었는가그날이 그리워 오늘도 길을 걸어노래를 부르노니 노래를 불러아가씨 가슴속에 붉은 정성과행복을 두고 간 마차의 길은 멀다 - 진달래 시첩 / 조명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었다. '진달래 시첩'은 1941년에 가수 이난영이 불렀는..

시읽는기쁨 2025.04.23

신록으로 물든 남한산성 한 바퀴

밤부터 설사가 많이 나와서 오늘 못 나가겠다고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노년이 되니 이런 식의 약속 어긋남이 자주 있다. 수시로 몸에 탈이 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외출하려고 준비중이었는데 그냥 집에 있기도 뭣해서 남한산성으로 행선지를 잡았다.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산야는 봄의 신록으로 물들고 있다. 이때의 숲 색깔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특히 신록의 이른 시기에 나타나는 연두빛은 너무나 신비하다. 그윽한 생명의 색이다. 이제 막 옹알이를 하는 아기의 얼굴에 서린 미소 같은 것, 부드러움의 완전체 같은 것. 사진으로는 이 색깔이 전해주는 느낌을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 성곽길을 걸을 때 곁을 스쳐가는 꽃들과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제비꽃이 반겼다. 개별꽃, 양지꽃, 붓..

사진속일상 2025.04.22

1407c(6)

아침 햇살을 받은초원의 강아지풀 천 개의 태양으로빛나고 있다 손에 잡힐 듯은하가 떠 있다 (140714) "우째 사람 그림자도 안 보이노?"할머니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제 주인 잃은의자만 남고 먼지쌓여가는 고가(古家)는적막하다 (140715) 산 넘고 강 건너 평탄한 길에 접어들었다 쉬울 줄 알았는데금방 지치고 싫증이 났다 쉬운 게쉬운 게 아니었다 나그네는 걸으면서 배운다 모든 길은하나라는 것을 길 위에 선 자는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140716) 이쪽의 휴식은다른 쪽의 노동 이쪽의 웃음은다른 쪽의 눈물 이쪽의 평화는다른 쪽의 분쟁 물어 보아라 이 안락이어디서 오는지를 (140717) 공부염불수행좌선 이 모든 종착지는하나 바로이 얼굴 (140718) 자신의 몸을불..

포토앤포엠 2025.04.21

사기[41]

문제가 패릉에서 올라갔다가 서쪽 가파른 고갯길을 달려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때 원앙은 타고 있던 말을 황제의 수레 옆에 대고는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황제가 말했다."장군은 두렵소?"원앙이 말했다."신이 듣건대 1000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마루 끝에 앉지 않고, 100금을 가진 아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지 않으며, 성스러운 군주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여섯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달려 가파른 고갯길을 내려가시려고 하는데, 만일 말이 놀라 수레가 부숴지기라도 한다면 폐하께서는 자신을 가볍게 여긴 것이라 치더라도 종묘와 태후께 무슨 낯으로 대하시겠습니까?"그래서 황제는 생각을 거두었다. - 사기(史記) 41, 원앙조조열전(袁盎鼂조列傳) 원앙과 조조는 한나라..

삶의나침반 2025.04.20

다읽(24) - 수인

다시 읽은 황석영 작가의 자전 기록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책이 나온 2010년대 중반까지 모자이크식으로 작가의 일생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한 인간의 진솔한 기록이다. 1권(경계를 넘다)과 2권(불꽃 속으로)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제목인 '수인(囚人)'은 감옥에 갇힌 죄인을 뜻하지만 - 작가는 민주와 통일 운동으로 5년 넘는 옥고를 치렀다 -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념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에필로그는 이렇게 말한다."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작가의 일생을 보면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

읽고본느낌 2025.04.19

되새의 죽음

동네를 산책하다가 어느 빌라 현관 앞에 새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되새 암컷과 수컷으로 보이는 두 마리였다. 몸이 차갑지 않을 걸로 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빌라 유리창이 번쩍이고 있었다. 숲으로 날아가다가 유리창에 충돌한 게 분명했다. 새는 뼈가 비어 있고 약해서 충돌에 취약하다고 한다. 대부분이 순식간에 즉사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만 매년 수만 마리가 이런 충돌로 죽는다고 한다. 전 세계로 환산하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나온다. 불의의 죽음을 방지하고자 방음벽이나 유리창에 점 스티커를 붙이기도 한다. 이런 작은 관심으로도 새의 죽음을 90% 이상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빌라에 사는 주민이라면 새의 죽음을 수시로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사정..

사진속일상 2025.04.18

귀여리 벚꽃(2025)

매년 벚꽃 피는 때면 나가보는 귀여리 지역이다. 팔당호를 따라 이어지는 벚꽃 가로수가 볼 만한 곳이다. 다른 곳에 비해 일주일 정도 개화가 늦지만 이미 한창 때가 지났다. 벚꽃은 밝고 화사한 색깔을 잃었다. 대신 물안개공원의 분홍벚꽃이 눈을 사로잡았다. 물안개공원의 나무들은 아직 크기가 작다. 좀 더 시간이 흐르면 호수와 어울리는 멋진 풍경이 될 것 같다. 가슴 설레는 봄이 벚꽃과 함께 지나가고 있다.

꽃들의향기 2025.04.17

고향 복사꽃

고향 마을 뒤에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초등 1년 선배인 이웃 형이 가꾸는 과수원이다. 형은 밭을 일구어 직접 묘목을 심고 이 과수원을 가꾸었다. 지금 과수원 복숭아나무에는 분홍색 복사꽃이 활짝 폈다. 그런데 정작 주인은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다. 올해는 복숭아 농사를 하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복숭아나무를 캐내야 할지 모른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인이 아프거나 말거나 복숭아나무는 때가 되니 도발적인 색깔로 꽃을 피웠다. 얼마 뒤에 다가올 자신의 운명이 어떤지도 모를 것이다. 오늘이 내가 볼 복숭아 과수원의 마지막 봄이 될지 모르겠다. 하물며 주인의 심정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꽃들의향기 2025.04.16

청풍호 벚꽃

고향에 내려가던 길에 단양 상방리의 청풍호변에서 만난 벚꽃이다. 벚꽃 축제장인 청풍문화재단지 주변은 너무 어수선해서 그냥 지나쳤는데 청풍호의 거의 끝 지점인 이곳에서 멋진 벚꽃 가로수를 만났다. 찾은 사람들도 적어 조용한 가운데 벚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다만 갈수기라 호수 물이 빠진 상태여서 배경이 아쉬웠다. 앞으로 나의 벚꽃 명소로 삼아야겠다.

꽃들의향기 2025.04.16

닷새간 어머니와 지내다

고향에 내려가서 닷새 동안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개나리, 벚꽃, 복사꽃이 활짝 핀 봄날이었다. 그러나 날씨는 불순하여 이틀간 비바람이 몰아치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집 앞에 나서면 보이는 소백산은 4월 중순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눈 모자를 썼다. 마을 입구의 벚꽃은 이때를 고비로 다 떨어졌다. 할아버지 기일과 겹쳐 어머니와 함께 산소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산소의 잡초 정리를 하고 고사리와 두릅을 채취했다. 어머니는 올해도 산속에 있는 밭을 놀리지 않을 것 같다. 10년 전부터 계속되는 실랑이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밭 주변에는 할미꽃, 자주괴불주머니, 흰민들레, 제비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었다. 길섶에 있는 어느 산소는 보라색 꽃밭이 되어 있었다. 하루는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 병원..

사진속일상 2025.04.16

동네 벚꽃(2025)

이맘때면 우리나라 어디든 벚꽃 천지다. 어릴 적에 비하면 꽃나무가 엄청 많아졌다. 우리 동네도 마찬가지다. 밖에 나서면 눈 돌리는 곳마다 하얀 벚꽃이 반긴다. 굳이 멀리 찾아갈 필요가 없다. 일본에서는 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고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며 꽃맞이를 하는 풍습이 있다고 들었다. 꽃을 찾아 분주하게 돌아다니기보다는 집이나 직장 근처 꽃나무 아래서 지인들과 함께 어울리는 풍경이 아름답다. 벚꽃은 한자로 앵화(櫻花)다. 일본인들이 벚꽃을 사랑했다면 우리 선비들은 매화(梅花)를 사랑했다. 과문인지 모르지만 앵화는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벚꽃보다는 복사꽃이나 살구꽃 구경을 우선으로 했다. 벚꽃이 일본말로는 '사꾸라'인데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도 쓰인다. 우리나..

꽃들의향기 2025.04.11

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손으로 수저를 들 때식..

시읽는기쁨 2025.04.10

다산생태공원의 봄

봄기운에 끌려 드라이브를 나갔다. 목적지는 팔당호를 끼고 있는 다산생태공원이었다. 이 공원 주변에는 내가 아끼는 산책로가 있다. 잔잔한 호수가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 공원에 들렀다. 벚꽃 만개하기 직전이다. 예쁜 사진을 남기고자 갖가지 소품을 들고 온 아가씨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수년만에 장롱에서 D750을 꺼내 들고나갔다. 스마트폰과 비교한 사진 결과물이 궁금했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굳이 무거운 디카를 들고 다녀야 할 의미가 없어진 것 같다. 그만큼 스마트폰 사진이 좋아졌다. 물론 작품이 아니라 생활 사진을 찍는 사람에 한하는 얘기다.

사진속일상 2025.04.10

1407b(7)

사람들은모를 거야 해가 뜰 때의 감미로운 속삭임을들판에 찾아오는 바람의 미소를내 품에 깃든 새들의 어리광을구름이 펼치는 황홀한 군무를 나는있는 그대로충만이며 자유 부족함도갈증도 없어 그러니 더 이상 날'왕따나무'라 부르지 말아줘 나는'왕자나무'거든 (140707)   질주한다뒤돌아볼 틈도 없다 멈칫하는 누군가 있다나는 왜 달려야 하는 거지? 경쟁자들이 쏜살같이 앞질러간다불안하다 그는 뒤쳐진 걸 만회하려는 듯더욱 세게 채찍을 잡는다 다시 흙먼지 자욱해진다 (140708)   저 길 끝에'시인의 마을'이 있을 것 같다 쓸쓸한 사람들이모여 사는 곳 가난한 가슴들끼리 만나온기를 나누는 곳 힘내자! 저 언덕까지는올라가 봐야겠다 (140709)   퇴직하면시골 초등학교 앞에 조그만 문방구를 차리고꼬맹이들과 함께 살..

포토앤포엠 2025.04.09

벚꽃 피기 시작하는 탄천

탄천에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늦은 편이다. 지난 주말에 벚꽃 축제가 있었는데 꽃이 없는 행사가 되고 말았다. 지각생이지만 해맑게 웃는 모습이 반갑다. 세상이 아무리 어수선해도 봄은 오고야 마는구나. 기어코 오고야 마는구나. 무심하기만 한 자연의 철리가 고맙다.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떠올린다.   해 지는 탄천은 그윽히 아름다웠다. 벌써 바닥에 떨어지는 꽃잎도 있었다. 다음에 걸음 할 때면 벚꽃은 사라지고 없으리. 그렇게 세월은 가리라.

사진속일상 2025.04.08

[펌] 윤석열 탄핵 선고문

☆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선고문 요지(2025/4/4, 문형배 재판관 낭독) 지금부터 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적법요건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① 이 사건 계엄 선포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지에 관하여 보겠습니다. 고위공직자의 헌법 및 법률 위반으로부터 헌법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탄핵심판의 취지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계엄 선포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그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를 심사할 수 있습니다. ② 국회 법사위의 조사 없이 이 사건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점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헌법은 국회의 소추 절차를 입법에 맡기고 있고, 국회법은 법사위 조사 여부를 국회의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법사위의 조사가 ..

길위의단상 2025.04.07

토지(19, 20)

20권 읽기를 마쳤다. 작년 12월 초순에 시작했으니 넉 달 정도 걸린 셈이다. 통영에 있는 박경리 기념관을 찾았을 때 읽기를 결심했고, 다 읽은 뒤에는 하동 박경리 문학관에서 마무리했다. 소설 후반부는 일제강점기 말의 가혹한 탄압을 견뎌내야 하는 민초들의 삶이 그려진다. 영웅 중심의 서사가 아니라 이 강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계층의 고군분투하는 삶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땅의 현실을 이만큼 구체적으로 기술한 소설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작가는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하여 25년이 지난 1994년에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최참판댁으로 대표되는 봉건적 사회제도와 신분질서의 해체를 다루는 1부로 끝낼 계획이었지만, 나중에 일제강점기 전체를 다루는 5부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덕분에 우리 문학계에 대단..

읽고본느낌 2025.04.06

꽃 피는 아차산

봄의 한가운데라는 내 기준은 벚꽃이 만개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의 봄은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다. 어제 지인들과 아차산을 찾았는데 전체 벚꽃 중에 10% 정도만 꽃을 피운 상태였다. 나머지는 아직 꽃봉오리가 맺힌 정도다. 아차산의 봄에서 제일 아끼는 수양벚나무는 다행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벚꽃이 아쉬웠으나 대신 다른 여러 꽃들과 만나 기뻤다. ▽ 홍매  ▽ 청매  ▽ 복수초  ▽ 광대나물  ▽ 개불알풀꽃  ▽ 히어리  ▽ 미선나무꽃  ▽ 개나리  ▽ 앵두꽃  ▽ 진달래(올해 가장 화사한 진달래를 산길에서 만났다)  ▽ 귀룽나무  ▽ 소나무 산책로  ▽ 산 중턱 쉼터에서 보이는 서울 시내  이날은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한 날이었다. 산길에서 기쁜 소식을 듣자 지인들 얼굴이 꽃처럼 밝아졌다...

사진속일상 2025.04.05

유기방 수선화

서산에 있는 유기방 가옥에 수선화가 피기 시작했다. 고택을 둘러싼 야산의 수선화 밭 중에서 집 뒤편 수선화는 활짝 폈고, 나머지는 꽃 봉오리가 맺혀 있다. 순차적으로 피도록 조절한 것인지, 아니면 그늘이어서 늦게 피는지는 모르겠다.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 이곳은 수선화의 노란색 물결로 덮인다. 눈이 어지럽고 꽃멀미가 생길 정도다. 워낙 소문이 난 탓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것이 흠이다. 주말에는 꽃보다 사람에 치일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꽃들의향기 2025.04.04

섬진강 벚꽃

섬진강 벚꽃을 즐기기에는 때가 약간 일렀다. 일주일 뒤라야 전체적으로 만개할 것 같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꽃 피는 시기가 늦고 있다.  그래도 섬진강 벚꽃길을 드라이브하며 봄의 정취를 즐길 만했다. 3월 중순부터 4월 초까지 남도의 섬진강 주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는 특히 이 계절을 가리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섬진강 가 벚꽃 아래를 거닐며 아내는 말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이쁜데 굳이 외국에 나갈 필요가 있을까." 나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한 햇살 아래 벚꽃 피어나는 어느 봄날이었다.

꽃들의향기 2025.04.03

평사리 부부송

평사리 앞 너른 들판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하다.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다정한 부부를 닮아 '부부송'이라 부른다. 인근에 최참판댁이 있어 서희와 길상 나무라고도 한다. 어쨌든 평지에 소나무 두 그루만 자라고 있어 금방 눈에 띈다. 가까이에는 동정호라는 작은 호수가 있고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옛날에는 호수가 더 넓었고 소나무가 있는 곳은 호수 가운데 섬이었다고 한다. 그랬다면 더 운치가 있었을 듯하다. 곧 봄 들판에 자운영이 피고 과수원 나무에도 꽃이 만발하면 소나무와 어우러진 풍경이 멋질 것 같다. 눈 내린 풍경 속 모습도 아름답게 연상이 된다. 지금은 좀 썰렁한 편이지만.

천년의나무 2025.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