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24) - 수인

샌. 2025. 4. 19. 10:14

다시 읽은 황석영 작가의 자전 기록이다. 유소년 시절부터 책이 나온 2010년대 중반까지 모자이크식으로 작가의 일생이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역사의 한가운데를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한 인간의 진솔한 기록이다. 1권(경계를 넘다)과 2권(불꽃 속으로)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제목인 '수인(囚人)'은 감옥에 갇힌 죄인을 뜻하지만 - 작가는 민주와 통일 운동으로 5년 넘는 옥고를 치렀다 - 분단된 한반도에서 이념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작가는 에필로그는 이렇게 말한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한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작가의 일생을 보면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6.25전쟁을 겪은 유소년기를 지나 청소년기의 방황,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청년기의 행적, 그리고 월남 파병 군인으로서의 경험 등이 작가의 세계관을 형성하지 않았나 싶다. 결혼한 뒤의 가난한 소설가로서의 삶, 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 운동과 민주화 투쟁, 방북과 망명, 이어지는 도피와 투옥 등 역사의 최전선에서 작가는 믿을 수 없는 신념과 정열로 가열차게 살았다.

 

재담이 뛰어나대서 작가의 별명은 '황구라'이다. 그만큼 <수인>의 내용도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재미있다. 그중에서 10대와 20대의 삶은 마치 내가 경험하는 것처럼 가슴을 뛰게 한다. 상당한 비중으로 나오는 감옥 속 이야기도 신기하면서 흥미롭다. 작가는 나보다 10년 연상이지만 비슷한 시대를 경험했음에도 삶의 궤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나 싶다. 작가가 야생마라면 나는 온실 속의 화초인 것 같다.

 

작가가 만난 여러 문인들 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이문구, 조태일, 고은, 천승세, 송기숙, 백낙청, 염무웅, 김지하, 김남주, 이어령, 김훈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개성 있는 인물들이다. 통일과 노동, 민주화 운동에 함께 한 동지들도 많다. 일신의 영화를 멀리하고 대의에 몸바친 사람들이다. 난세가 인물을 만드는지 현시대에는 그때만큼 큰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은 과거에 읽은 줄을 모르고 골랐는데 다 읽고나서야 알아챘다. 어쩐지 책 속에서 낯 익은 장면이 있다 했더니 7년 전에 읽었던 책이었다. 부지불식간에 다시 읽고 말았다. 이젠 기억력의 테두리가 점점 좁아진다. 독서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마찬가지다.

 

책 표지에 적힌 '그의 삶은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문학이다'라는 문구가 황석영 작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결코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뛰어난 소설 작품과 더불어 고난의 현실에 뛰어든 작가의 찬란한 삶을 기억한다. 벌써 80대 중반이 된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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